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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골로새서 1:1-8 바른 말씀의 승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른 말씀의 승리
골로새서 1:1-8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2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5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1: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를 쓴다. 너희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1:3 우리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해 너희가 가진 사랑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이다. 

1:5 너희의 믿음과 사랑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에 근거한 것이니, 이 소망은 진리의 말씀, 곧 복음 안에서 너희가 이미 들은 것이다. 

1:6 이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렀고, 너희가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안에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다. 

1:7 너희는 이것을 우리와 함께 종이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다.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며,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자이다. 


1. 문안축복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임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이 네 서신을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골로새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써서 골로새 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본문 1절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사도된 것은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것입니다. 범사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어야만 팔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또 “형제 디모데”라고 하였는데, 디모데전서 1:2절에는, 바울이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행 16:1).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고, 또 디모데는 바울을 아버지와 같이 받들고 충성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디모데를 형제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인 동시에 믿음의 동역자로서 대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함

본문 2절에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이란 골로새 지방에 있는 예수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하였는데, 성도를 신실한 형제라고 한 것은 성도의 인격 전체가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과 중생한 영혼은 다 신실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신실하지 못하면 믿음을 버린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신실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거룩한 무리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붙음으로서 성도가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성도인 것입니다. 물론 믿는 사람이 부족한 것도 많고, 또 죄도 짓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붙었고, 또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고, 하나님이 사용하는 그릇이 되었기 때문에 성도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신실한 형제라고 하였는데, 신실이 중요합니다. 요새는 예수 잘 믿는 사람한테 “열심 있는 신자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신실한 신자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신실과 신앙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과 중생한 영혼은 다 신실합니다. 전부 참되고, 털끝만큼도 거짓이 없고, 헛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신실하지 않으려고 해야
않을 수 없고, 또 중생한 영혼을 쓰는 사람은, 신실을 떠날래야 떠날수 없습니다. 신실하지 못한 사람은 벌써 믿음을 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언제나 신실해야만 됩니다. 신앙의 대명사는 신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는데, 다른 데는 보통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빌립보서 1:2에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했는데, 여기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용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다는 말이나,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순서를 다 말하지 않은 것뿐이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실 때에,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6-17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는 말입니다. 은혜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속에 대한 모든 하나님의 선물을 거저 주신 것을 말합니다. 값을 따지고 주신 것이 아니고, 전부 거저 주셨기 때문에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가 옵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신 것도 은혜입니다. 또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도 은혜이고, 우리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피 흘려주신 것도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또 새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 우리를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데려가시는 것 등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도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속에 대한 모든 선물이 은혜입니다. 그러면 은혜의 내용이 어디에 기록되었습니까? 그 내용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성경 말씀을 받는 것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보통 “은혜를 받았다”고 할 때에, 그저 일시적인 감동, 일시적인 위안, 일시적인 기쁨, 일시적인 흥분 등을 가지고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일시적인 감동이나, 위로나, 힘이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게 은혜입니다. 말씀을 받아 가졌으면 그것은 은혜를 받은 것이고, 말씀을 받아 가지지 못했으면 은혜를 받지 못한것입니다. 말씀은 받지 아니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은사주의가 있습니다. 은사주의는 성경 말씀은 집어치우고, 박수나 치며, 일시적으로 흥분되는 것이므로, 잘못된 것입니다. 말씀을 다 집어치워 놓고 떠들썩하게 무당 굿하는 식으로 하는 일시적 흥분이 무슨 은혜입니까?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가지는 것인데, 말씀을 받아 가진 것이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말씀에는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내용이 전부 들어있습니다. 그 구속에 대한 내용 전체가 은혜입니다. 일시적인 어떤 감정이 은혜가 아닙니다. 감정은 일시적인 것으로 다 지나가고 맙니다. “은혜가 항상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항상 은혜 속에 살라는 말입니다. 은혜를 떠나지 말고, 늘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에서 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 살라는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살고, 영이 날마다 살고, 은혜 속에서
날마다 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큰 축복입니다. 

평강은 은혜 속에서 산 결과가 평강입니다. 은혜 속에서 살게 되면 결과적으로 심령이 평안하고, 또 하늘에서 주시는 하늘의 평강이 심령 속에서 넘치게 됩니다. 아무리 세상에 환난 풍파가 많아도, 은혜 속에서 사는 사람은 언제나 그 심령에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평강 속에서 사는 사람이 제일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 해주어도 거기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참된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만 누릴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기록한 전도서에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려보았지만 거기엔 평강이 없다고 했습니다. 즉 세상에는 평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살 때에 궁궐이나 초막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이고, 거기에 참된 평강과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떠나면 행복이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속을 떠나서 행복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은혜 속에서 살 때에만 평강이 심령 속에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사는 보람이 있습니다. 

2.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감사

본문 3절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고, 기도할 때마다 감사가 나왔습니다. 이와 같은 교인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너무 신앙이 좋으니까 기도해 주려고 하면 감사부터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도하려고 할 때에 걱정부터 나오면 그 교회나 성도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어느 교회나 교인을 위하여 기도해 주려고 할 때에 감사가 나오는 교회와 성도가 참 복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임

본문 4-5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감사가 나왔습니까? 그 이유는 골로새 교회가 믿음과 사랑과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라고 했는데, 골로새 교회는 믿음과 또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살전 1:3). 바울이 믿음이 좋고, 사랑이 풍성하고, 소망을 하늘에 많이 쌓아 나아가는 골로새 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먼저 감사하였습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았으면 기도하려고
할 때에 감사부터 나왔겠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1:3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은 믿음의 역사가 있고, 사랑의 수고가 있고, 인내가 따르는 소망이 있는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신앙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만 이런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골로새 교회도 이런 신앙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다 역사가 있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즉 운동력 있는 신앙가운데 있었습니다. 야고보서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신앙입니다.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고, 그 믿음에 생명력이 있고, 운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즉 행함으로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이와 같이 믿음에 실행이 따르는 좋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 믿음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임

말로만 사랑하는 게 아니고 수고가 있는 사랑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즉 봉사하고 섬기는데 있어서 수고를 즐거움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뜨거운 사랑입니다.
베드로전서 1:22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는 사랑에는 희생이 들어가고, 수고가 들어갑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그런 사랑이 있었고, 골로새 교인들도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 있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성도를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빌레몬서1:5에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초대 교회의 사랑은 이런 사랑입니다. 즉 예수에 대한 사랑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16:22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 하였는데, 주님을 제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우리가 가져야겠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촛대를 옮기겠다고 했습니다(계 2:4-5).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촛대를 옮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여야겠습니다. 사랑이 없다고 하지 말고, 사랑을 먼저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랑이 없다고 하면 사랑이 나옵니까? 즉 쌀이 없다고 하면 쌀이 나옵니까? 쌀이 없다고 하지 말고, 쌀을 주면 쌀이 있는데, 주지는 않고 왜 쌀이 없다고 합니까? 주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다하지 말고, 먼저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려 하지 말고, 먼저 사랑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7:12절에 대접을 받고자 하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선지자요, 율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사랑을 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을 하면 됩니다. 먼저 사랑을 하면 사랑이 자꾸 많아집니다. 또 사랑이 돌고 돌아서 풍성해집니다. 그런데 사랑하지는 않고, 사랑이 없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와 희생이 따릅니다. 그러나 힘든 줄 모릅니다. 참사랑은 고난도 즐거움으로 받습니다. 골로새서 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기쁨으로 희생한다는 말입니다. 또 사도행전 2:44-45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사랑하면 물질도 기쁨으로 희생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8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수고도 즐거움으로 하고, 물질도 즐거움으로 희생하고, 생명까지도 즐거움으로 희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런 사랑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또 골로새 교회에 그런 사랑이 있었고,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그런 사랑이 있었습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임

그 다음에 소망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소망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입니다. 베드로전서 1:4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있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니고, 하늘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간직해 놓았기 때문에 든든합니다. 하늘에 간직해 놓은 소망은 도적이 와서 도적질 해 갈 수도 없고, 악한 자가 와서 빼앗을 수도 없고, 좀이 먹을 수도 없고, 녹이 슬
지도 않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은 잃어버릴 염려가 없습니다. 

로마서 5:3-4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소망을 이룬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즉 환난에서 인내, 인내에서 연단, 연단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것이 소망을 점점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점점 이루어 가는 것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 됩니다. 그것은 영원부동하고 영원불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간 것을 누가 와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들어올 때에 말씀을 붙들고 참아야 됩니다. 말씀을 붙들고 참으면 연단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조금 이루어졌든, 많이 이루어졌든 이루어진 만큼 하늘나라에 쌓이게 됩니다. 하늘에 쌓인 것은 없어지지도 아니하고, 빼앗기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환난 가운데서 생명을 내놓고 말씀 지키는 것은, 하늘에 소망을 쌓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은 벌써 얻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고난 가운데에서도 말씀을 지키는 것은 소망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생명 내놓고 말씀 지키며 나가다가 순교당하는 것은, 지옥에 갈까봐 순교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소망을 쌓느라고, 환난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순교를 당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쌓은 소망이 없다는 것은 이루어 놓은 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예수 믿으면 하늘나라에 가긴 가지만, 불붙는 집에서 벌거벗고 도망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바로 믿고, 환난을 통과한 성도의 신앙은, 소망을 하늘에 쌓아 나가는 신앙이기 때문에 보배로운 신앙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광의 상급이 있습니다. 또 영광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강요당할 때에, 생명 내놓고, 감옥에 갇혀서 고문을 당하며,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사참배 했다고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성경말씀 한 구절, 즉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말씀 하나 지키기 위해서 생명 내놓고 나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고, 소망을 하늘나라에 쌓아 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일보에 여러 목사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신사참배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에는 조상에게 제사하지 않으려고 순교를 당하며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는데, 이제는 제사지내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십계명 2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런 악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 2계명은 우상을 섬기지도 말고, 만들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인격이 있습니까? 인격적인 부모를 섬기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인격이 아니므로, 그것에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이제 성경말씀대로 바로 지키며 소망을 하늘에 쌓아야겠습니다.

말씀대로 바로 믿을 때에 환난이 옵니다. 환난이 오면 거기서 참아야 합니다. 참으면 연단을 받습니다. 연단을 받으면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즉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하늘에 쌓아두는 소망인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가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골로새 교인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왔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하늘에 소망을 얼마나 많이 쌓아 놓았겠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원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있습니다. 소망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대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도 무한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닮아가야 됩니다. 또 믿음은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신뢰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도 영원히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이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어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했는데,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 피차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랑의 역사가 있는 교회, 소망을 쌓는 역사가 있는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3. 바른 말씀의 승리
섞지 않은 순전한 복음을 지킬 것 

본문 6절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라고 했는데, 이 온 천하에서도 이 말씀이 열매를 맺어 자라난다는 말씀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한삼서 1장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심히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대로 행하는 것을 듣는 것 밖에는 더 기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말씀대로 창조하셨고, 또 말씀을 가지고 모든 일과, 구원 운동을 이루어나가시고, 또 심판도 말씀을 가지고 하실 텐데, 그 말씀이 언제나 이기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 1절로부터 보면, 흰 말이 나오는데 ‘흰 말을 탄자가 이기고 또 이기더라’라고 했습니다. 계속 승리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계속 승리하고, 가는 데마다 승리합니다.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달음박질해서 많은 사람을 굴복시키고, 또 여러 지방을 바른 복음의 말씀으로 정복하고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섞은 것이 없는 순수한 말씀의 중요성

그런데 바울이 전한 말씀이 곧 바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바른 복음, 섞은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2절에 보면,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아무거나 섞은 것이 없이 순수한 말씀 그대로 바울이 전했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2절에,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섞지 않은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섞어놓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6-8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받습니다. 우리가 전해도 저주받고, 또 천사가 와서 전해도 저주받습니다. 바른 복음만 세워나가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전하든지 바른 복음이 아니고,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바른 복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재앙을 더하고, 감하면 낙원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 순전한 진리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감해도 안 되고, 말씀 그대로만 전해야 됩니다. 뭘 섞어도 안 되고, 깨끗한, 오염되지 아니한 말씀, 섞은 것이 없는 순복음의 말씀, 참 말씀, 참 진리만 세워나가는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에게 섞은 것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 가감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것을 하나님이 아주 상당히 기뻐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계약신학 측에서 전하는 복음은 오염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염된 것이 없고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뭐 섞은 것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오염되지 아니한 맑고 깨끗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복음에다가 뭘 섞어서, 즉, 인본주의를 섞고 또 세상주의를 갖다가 섞고, 인간의 지식을, 철학을 갖다가 섞으며 나가지만, 우리는 바울이 전한 그대로 섞은 것이 없는 순전한 복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 복음을 가지고 나가려고 힘을 썼는데, 계속 우리가 섞은 것이 없는 참된 복음만 가지고 사람의 귀에 즐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가르친 그 말씀대로만 전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복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4. 참 복음은 능력으로 승리함
능력과 생명이 있음

그러면 복음은 승리하고 또 승리합니다. 반드시 승리하는데 복음이 왜 승리하느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또 복음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참 복음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변형시켜 놓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종자를 옥수수나 오이나 보리나 배나 종자를 그대로 심어야 생명이 있지, 그것을 좀 보기좋게 하느라고 가루를 만들어서 반죽을 해서 아주 보기 좋게 만들어서 심는다고 하면 그건 생명이 없습니다. 심어도 안 나옵니다. 종자는 찌그러졌든지 넓적하든지 쭈글쭈글하든지 그대로 심어야 생명이 있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수하게 가
감 없이 그대로만 전하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시고 바울이 우리에게 준 그 참 복음,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이 흥왕하여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왕성해서 이기고, 또 많은 사람이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말씀에는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돌아옵니다. 

복음은 성도들을 보호하고 승리함

사도행전 20:31~32절에, 이 복음이 너희를 보호한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이 든든히 세워주고, 기업이 있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보호해주고, 든든히 세워주고, 기업이 있게 해줍니다. 또 복음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20:31~32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지킨 자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0절,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라고 했습니다. 네가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또한 내가 너를 지켜서 보호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장차 온 세상에 환난이 오겠지만, 네가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온 천하에 바른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자라나게 해줍니다. 

마가복음 4장 26-29절에,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씨(종자)인데, 종자를 내가 심어 놓으면 이게 싹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게 자라난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추수할 때에 추수를 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심어놓은 것은 절대 실패가 없습니다. 각처에서 자라나고, 천하에서 이 말씀이 자라나서 열매를 맺습니다. 바른 복음은 반드시 승리하고, 또 자라나서 열매를 맺고, 이기고 또 이깁니다.

5. 참 말씀을 전하는 교회는 자라남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은 성경을 말하는 곳에 모임

이 말씀은, 최근에 미국에 가 있는 중에 깨달았습니다. 금년에도 미주노회가 모였는데, 약 20여개 교회에서 교역자가 스물다섯 명 모였습니다. 그런데 대개 다 우리 신학교 졸업생들입니다. 우리 신학교 졸업생 아닌 사람 한 두 사람 있지만 대개 우리 신학교 졸업생들입니다. 그들이 각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으며 또한 교회들도 많이 자라났습니다. 안 자라난 교회도 있지만, 여러 교회가 이전보다 많이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신학교 졸업생들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이 말씀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벌써 삼십 여 년 간 우리 교단에서 신학교를 운영하는 동안 졸업한 많은 신학생들이 지금은 국내, 외 각처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미주노회 교회 약 이십 여개를 포함하여, 국내 외 모두 약 백 이십여 교회가 됩니다. 또한 구소련에 선교사를 보내서 말씀을 전하고 있고, 각처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어 자라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신학교를 운영하여 교역자를 배출하지 않았다면, 각처에 교역자 보낼 수 없고, 교역자 안 보냈다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했을 텐데, 우리는 이 말씀을 가르치고, 졸업한 교역자들은 국내, 외에 퍼져서 배운 말씀을 전하니까 각처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한 것이 많은 우리 교단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만 전하는 것이 우리 교단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말씀 그대로만 전하면 “저 교회는 성경 말씀만 전하는 교회다”라는 소문이 각처에 납니다. 미국 LA 동부교회도 이용규 목사가 성경 말씀만 전하니까 각처에 소문이 나서 말씀을 사모하는 많은 성도들이 모여듭니다. 다른 교회 있던 장로들이 여럿이 찾아오고, 목사도 오고, 교인도 오는데 새 교인이 한 주간에 여러 명씩 등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동부교회로 나오느냐 하면 “성경말씀 배우려면 저 교회 가야 된다”는 소문을 듣고 온다고 합니다. 성경만 말하면 성경 좋아하는 사람은 그곳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교회 건축을 통해 자라나야 함

샌프란시스코에 박영식 목사가 시무하는 목양 교회에 있는데, 성경만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부근에서 성경 바로 배우려면 목양교회에 가야 된다고 소문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약 60-70명 모입니다. 한 칠십 명 모이는데 십 년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남의 예배당을 임대해서 예배드린다고 합니다. 오후 한 시 반인가 까지 예배드리는데 미국 교회를 빌려서 예배드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십 년이나 되었고, 교인들이 한 60-70명 모이는데, 이제는 남의 집에 있지 말고, 예배당 하나 장만해야 한다고 하며, “예배당 지을 생각 안하고 왜 가만히 있느냐? 이번에 건축연보 작정해서 예배당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건축연보 하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나온 교인들이 많은데, 믿음 없는 교인들이 건축연보 하라고 하면 실족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실족하지 않을 것이니 건축연보 하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연보해야만 힘을 쓰게 되고, 바로 서게 되고 자라나게 되고, 교회가 그래야 바로 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처음에 하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강도할 때에 발람에 대한 강도를 했습니다. 요한계시록2장, 버가모 교회에 발람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 교회 장로가 설교를 듣는 중에, “아 내가 건축 헌금 안 하다가 이제 발람이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하는 그런 걱정이 좀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교인들이 모두 건축연보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나온 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연보가 얼마 나오지 않을거라고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해주실 테니까 하라”고 하였더니, “언제 할까요?” 그럽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날 내가 있을 때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간 다음에는 또 맥이 다 빠질 것 같아서 제가 있을 때에 작정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인가 토요일인가 제직회를 하여 건축연보를 하기로 결의하고, 주일날 작정했습니다. 

첫날 작정연보가 모두 17만 8천 불이 나왔습니다. 앞으로 더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모두 한 20만 불이 나올 것 같다고 합니다. 20만불이면 우리 한국 돈으로 2억 6천만 원입니다. 지금 빌려 사용하는 미국교회는 땅이 넓어서 예배당 하나 더 지을 수 있으니 그 돈으로 미국교회와 의논하여 미국교회 남는 땅에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새예배당은 그 사람들 주고 우리는 아랫집 예배당을 사용하든지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목양교회도 교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목양교회 교인들이 승리하게 해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미주에 있는 다른 교회들도 전부 다 자라났습니다. 그중 시애틀에 있는 작은 지교회에 오성진 목사가 있는데, 교인이 한 십여 명 됩니다. 열댓 명 더 전도해야 되는데 여기도 예배당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예배당을 사든지 짓든지 하라 했습니다. 다른 교회 예배당을 빌려서 사용하기 때문에 오후에만 예배드리고 있었는데, 이것은 반타작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오성진 목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기에,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15만 불 있다고 합니다. 15
만 불 있으면, 주일날 건축연보를 작정하라고 하였습니다. 인근에 예배당 할만한 창고가 있는 개인 집이 있는데, 땅이 약 3,000평 되고 가격이 26만 불이라고 하기에 그걸 사라고 하였습니다. 모자라는 돈은 주일날 작정연보하면 조금 더 나올 것이고, 한 10만 불은 융자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교회에서도 갚아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예배당을 짓는 일이나, 기타 교회일이 잘 되려면 첫째는 목사님이 토요일과 수요일에 기도원에 가서 기도해야 됩니다. 무조건 가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기도 하겠냐?”고 물어보니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교인들도 예배당 짓기 위해서 전적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둘째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있는 것을 바쳐야 됩니다. 가지고 있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바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일 해 주시지 않습니다. 바치고 나서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교인들이 다들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하면 우리 서울에서도 한 5천 불 연보해준다”고 했는데, 5천 불이면 한 육백 만원 됩니다. 미국에서 아마 이번 주일에 연보할 것입니다. 
 
바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납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점점 자라나고, 각 교회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또한 외국에서도 자라나고, 구소련에도 자라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송 완규 목사의 말로는 교회가 열 교회가 되었고, 이제 교단 허가가 나오면 신학교 허가도 나오고, 그 다음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서도 나온답니다. 
 
이렇게 지금 열매를 맺어 자라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국내에서도 각처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나고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말씀이 흥왕하여 이기고 열매를 맺고, 또한 말씀은 자라납니다. 말씀을 심어놓으면 자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