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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12:1-2 산 제사와 죽은 제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산 제사와 죽은 제사
로마서 12:1-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합당한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본문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는 말은 위의 말씀한 모든 구원의 도리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고, 또 지금도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구속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성도들을 볼 때에 “하나님이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의 행동들을 보면 가증한 것, 악한 것, 더러운 것, 서로 물고 찢는 것 등이 많지만 “하나님이 위해 주시는 분들이다”고 볼 때에는 전부 아름답고 귀합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이 위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시고,인도해 주시며, 간섭해 주시고, 또 예수님도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위해 주시는 성도들인데 얼마나 귀한 성도들입니까? 그러므로 그 은혜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고,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는 마음을 늘 가져야 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겠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해서 “너희는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큰데 우리가 보답을 해야 합니다. 보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몸으로 산 제사부터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산 제사 드리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는 것은 먼저 너희 몸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우리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야 되겠습니다.고린도전서 6:19-20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인데 그 은혜에 감사해서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값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며 하나님께 몸 바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몸을 하나님께 바쳐놓은 다음에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 달라고 하는 생활, 또 죽어도 만족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바쳐 놓은 다음에 순교 당하는 것은 더 큰 복입니다. 그러므로 몸을 바쳐서 제물노릇을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였는데, 몸이라고 하면 육신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을 가리킵니다. “육신”은 육신의 고깃덩이를 가리키는 것이고, “영”은 중생한 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혼은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몸에 속합니다. 육신과 영과 혼이 온전히 되기를 원한다고 데살로니가전서 5:23에 말했습니다. 여기 몸이라고 하면 육신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가리키는, 영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육신, 마음, 영 전체를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입니다. 즉 영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고, 마음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 육신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입니다. 

2. 산 제사와 죽은 제사

제사는 산 제사가 있고 죽은 제사가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 아벨은 산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죽은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안받으셨습니다. 가인이 자기 농작물 가운데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아무리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어도 하나님이 안받으셨습니다. 정성을 다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 좋은 것을 바쳤다고 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데, 아벨이 어떻게 제사를 드렸기에 하나님이 받으셨습니까? 아벨은 양을 잡아서 양의 피와 양의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맞는 제사입니다. “너희가 범죄 했기 때문에 희생을 가지고 나와야만 하나님 앞에 합당하다” 하는 하나님의 말씀, 즉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며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예언하셨는데, 아벨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흘려 구속해 주실 것을 믿고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와서 제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양의 피만 가지고 나왔다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 1:11에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와도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벨이 가지고 나온 양의 피는 이사야 1:11의 양의 피와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올 때에 그 피만 보지 않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영적 제사를 아벨이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제사가 산 제사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안 맞으면 그것은 산 제사가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와 영적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는 첫째, 말씀에 안 맞았고, 또 오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 교통이 없었으므로 죽은 제사입니다. 산 제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생명의 교통이 있는 제사입니다. 즉 생명의 역사가 있고, 말씀의 역사가 있는 제사입니다. 

오늘날도 형식적으로만, 의식적으로만 예배드린다고 하면 그 예배는 하나님께 산 제사가 못됩니다. 말씀에 맞느냐?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것이 없느냐?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영적 교통하는 예배인가? 이것이 합해야 산 제사가 됩니다. 요한복음 4:23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령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말하며, 진정이라는 것은 진리를 말합니다.
말씀에 맞는 제사라야만 그것이 산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몸을 바치고, 마음을 바치고, 영도 바치고, 우리 생명도 하나님께 바쳐놓아야 됩니다. 먼저 무엇을 바쳐야 됩니까? 몸과 마음과 영과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바쳐야만 됩니다. 또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고, 교통하며 영적 생명 있는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예배, 말씀의 역사가 있는 예배가 하나님께 산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 이는 너희의 영적 예배이니라”고 하였는데, 영적 예배라는 말은 산 제사를 말합니다. 산 제사는 영적 예배이며, 육적 예배가 아닙니다. 의식적 예배도 아닙니다. 영적 예배는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말씀에 맞는 예배가 영적예배이며, 산 제사입니다.

3.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

본문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대”란 빌립보 2:15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하였는데,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가 “이 세대”입니다. 이 세대는 진리에서 어그러지고, 진리를 거스르는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받으면 진리에 어그러지고, 거스르며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6:4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대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입니다. 이것을 본받으면 안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므로 이것을 본받으면 자기도 악하고 음란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본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 요한일서 5:19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받으면 안 됩니다. 이 세대는 육신중심, 자기중심, 이기주의이며, 또 사치하고 향락, 방탕하는 세대입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겠다는 정신이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내려가고, 방탕과 연락과 사치와 향락주의로 내려가는 세대입니다. 

주일은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놀러 다니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도 1부 예배 한 시간 참여하고 세상으로 놀러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이 다 이 세대를 본 받는 것입니다. 낮에 예배당 나오려면 놀러 못가겠으므로, 아예 새벽에 한 시간 참여하고 놀러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배를 드렸다고 스스로 자위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그런 사람을 양성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을 내놓고 주일을 지켜야 하고, 생명을 내놓고 이 세대를 끊어 버려야 되고, 생명을 내놓고 믿음을 지켜야 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하였는데,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중생한 영에게 이용되는 마음입니다. 또 거기에 이용되는 몸을 말합니다. 중생한 영은 성령에 이용되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중생한 영에게 이용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의 몸은 새롭게 되는 마음에 이용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이 거룩한 마음에 이용당하고, 마음은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고, 중생한 영은 성령에 이용당하여 전체가 거룩한 몸이요, 의의 병기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

그러면 몸을 산 제물로 바쳐 놓은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절 마지막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대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아서 그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천하를 다 주어도 받지 말고, 죽어도 그것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면 생명을 내놓고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서 찾아야 되고,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되고, 신앙 양심에서 찾아야 되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찾아야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원리원칙인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에는 성경에 맞나? 안 맞나? 성경에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고 그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쳐놓고,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며, 희생하며, 봉사하며, 섬기며 나가는 생활이 산 제물이 되는 생활입니다.

2017년 1월 1일 일요일

창세기 4.1-12 산 제사와 죽은 제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창세기 4:1-12

4:1 아담이 자기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도움으로 남자 아이를 얻었다." 하였다. 

4:2 하와가 또 가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땅을 경작하는 자였다. 

4:3 세월이 흘러 가인이 땅의 열매 가운데서 여호와께 제물을 바쳤고, 

4:4 아벨도 자기 양 떼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바쳤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므로 가인이 매우 화가 나서 그의 얼굴을 떨어뜨렸다.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왜 화를 내며 왜 네 얼굴을 떨어뜨렸느냐? 

4:7 네가 선을 행하였으면 왜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네가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 하셨다. 

4:8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들로 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대적하여 일어나 그를 쳐 죽였다.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라고 물으시자, 가인이 대답하기를 "모릅니다. 제가 제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라고 말하였다. 

4:10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동생의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부르짖고 있다. 

4: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으로부터 네 동생의 피를 받았으니, 이제 너는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4:12 네가 땅을 경작하더라도 다시는 땅이 그 효력을 네게 나타내지 않을 것이며, 너는 땅에서 피하며 떠도는 자가 될 것이다." 


1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10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

본문 1-2절에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여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는 가인이요, 둘째는 아벨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아우 아벨은 양치는 자였습니다.

본문 3-4절에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기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하나님께 죽은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죽은 제사이므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산 제사를 드린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죽은 제사와 산제사는 어떤 제사입니까? 농사하는 자인 맏아들 가인도 하나님을 섬기려고 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농작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아들인 아벨은 양치는 자로 자기의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까?


2. 아벨은 산 제사를 드림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제사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제사이기 때문에 받으셨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에 하나님께서 ‘장차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창 3: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여인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피 흘려 대속해 줄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피를 가지고 나와서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아담이 그 자녀들에게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 했기 때문에 피를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고 두 아들에게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잘 섬기려는 생각을 가지고 정성껏 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맞지 않습니다. 아벨은 아버지 아담이 전해준 말씀 그대로 했기 때문에 양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사하므로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제사이기 때문에 받으셨습니다.

영적 면이 있는 제사

그러나 하나님께 제사할 때에 양의 피만 가지고 나와서는 안됩니다. 장차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위에 어린양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사야 1:11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이 드린 제사는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왔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죄를 회개하지 않고, 의식적으로만 하나님께 제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왔을 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셨습니다.
양의 피는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여 주실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실 것을 바라고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믿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심
령이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하는 심령입니다. 또 피를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에는 성경에 맞아야 하고, 영적 면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은 영적 면이 없었습니다. 그저 양의 피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맞지 않게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또 성경대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영적인 면이 없으면 받지 않으십니다. 영적인 면이 없는 예배는 죽은 제사입니다. 아벨이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온 것은 성경에도 맞고 영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 흘려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감사함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입니다. 가인의 제사는 성경에도 맞지 않고 영적인 면도 없습니다. 의식적인 제사이며, 외부적인 제사입니다. 자기 정성을 다해 드렸으나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죄를 회개하며 드리는 제사

바리새교인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교인도 성경 말씀을 잘 지키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였고, 음란하지 아니하였고, 호색하지 아니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교인의 기도는 어느 정도는 성경에 맞았지만 영적인 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의 제사가 이와 같이 영적인 면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려면 외부적으로만 제사 드리지 말고 영적인 면이 있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하는 믿음,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회개하면서 자기는 마땅히 죽어야할 자로 알고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나는 살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피 흘려주심을 감사합니다’하며 나가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 보면서 감사하고, 신약시대에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 산제사입니다.

우리는 죽은 제사와 산제사를 잘 분별해야 됩니다. 쉽게 말하면 성경 말씀에 맞지 않으면 죽은 제사입니다. 또 성경 말씀에 어느 정도 맞았어도 바리새교인들과 같이 의식적인 면으로만 제사 드리고, 회개도 없고 영적인 면이 없는 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바리새교인이 일주
일에 두 번 금식하고, 음란, 호색 하지 아니하고, 세리와 같지 아니한 것은 감사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교인들은 회개가 없었습니다. 회개하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되겠는데 바리새교인들은 회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바른 예배를 드리고 또한 언제나 자기는 죄인인줄 알고 모든 죄를 찾아 회개해야 합니다. 죄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죄 없다고 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의 모든 죄를 찾아 회개하면 하나님이 기뻐 하시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세리가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하물며 바리새교인들이 회개하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나는 죄인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아니면 나는 살 수가 없는 자입니다” 하면서,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아벨의 제사이고 산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증거가 있는 제사

히브리서 11: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에 예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증거
하셨다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열납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물에 대하여 어떻게 증거 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예물을 열납하신 것을 알 만한 외부적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고 하였는데, 증거가 있습니
다. 사무엘이 제사를 드릴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물을 받으셨다는 외적 증거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적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물을 받으셨다는 내적증거가 중요합니다.

내적증거가 있어야 구속의 은혜에 감동이 되어 기쁘고, 즐거움이 충만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노래가 되고, 힘이 되어 자기의 영이 살아서 역사하며 찬송이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셨다는 증거가 확실합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이 뚝뚝 떨어져 나가고 성령의 역사가 있고, 즐겁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 송이보다 달게 됩니다. 또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셨다는 증거입니다. 가인의 제사는 이러한 것들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제사 드리면 다 된다는 식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벨만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가인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렇지만 가인의 제사에는 생명의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에 분하여 했습니다.


3. 가인이 아벨을 죽임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고 분을 냄

본문 5-6에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였습니다.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하였는데, 가인이 분해서 안색이 변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가인이 분해서 안색이 변했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제사는 안받으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동생은 잘 되고, 자기는 잘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가 났고, 시기가 났습니다. 동생이 산 제사 드렸으면 자기도 좋은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가인은 동생 아벨에 대한 시기심으로 안색이 변했습니다. 이때에 가인이 분노할 것이 아니라 동생을 찾아가서 “네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내 제사는 안받으셨는데, 네가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들 드렸기에 하나님께서 네 제사는 받으신 것이냐?”라고 물어 보
고 바로 섰더라면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분노하여 안색까지 변한 것은 마귀의 충동을 받아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스스로 패망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
이 다 아시고 “네가 어찌하여 안색이 변했느뇨”라고 하셨습니다.

선을 행치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림

본문 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립니다. 왜 죄가 문에 엎드립니까? 기회를 보아서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지 않을 때에는 죄와 싸워서 내어 쫓으려고 해도 죄가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면 죄가 달아납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와 아무리 싸워 이기려고 해도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문만 열면 죄가 미리 엎드려 있다가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죄를 이기는 법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할 수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선으로 모든 것을 행할까, 내가 어떻게 하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하며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만 하면 마귀는 달아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것이 없이 죄와 싸워서 이
기려고 하면 죄가 물러가지 않습니다. 죄가 문 앞에 엎드려 기회를 보아서 쳐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방법으로 모든 악과 싸워야 합니다. 즉 선으로 악을 이기고, 선으로 모든 것을 하여야 합니다. 선한 행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죄는 점점 물러갑니다. 죄와 더불어 싸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며 선을 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이십니다. 선이신 하나님을 붙들며, 하나님께 돌아가려고 힘을 쓰면, 하나님께서 죄와 원수는 막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혼자서 마귀와 싸우려고 하면 결국은 마귀한테 지고 맙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붙들고, 전적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이기게 해주십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임

본문 8절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왜 죽였습니까? 시기가 나서 죽였습니다. 시기는 뼈를 썩게 한다고 했습니다. 시기 죄가 살인하는 데까지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가인이 아벨을 못 죽입니다. 아벨을 하나님께서 순교자로 받으시려고, 즉 아벨을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순교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순교자의 반열은 특별 반열입니다. 순교자는 하나님 앞에 가면 영광스러운 큰 상급을 받습니다. 아벨을 하나님이 데려가시려고 가인이 죽이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못 죽입니다.
더 좋은 것을 아벨에게 주시려고, 즉 순교자의 상급을 주시려고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을 가만히 놓아두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심판

본문 9절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가인의 마음이 편안하여야 할 것입니다. 보기 싫은 아벨을 죽였으니 마음이
편안하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하시며 물으셨습니다. 그 때에 가인이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말은 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본문 10-12절에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
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이 땅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공의로우신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야고보서 5:4-6절의 “삯이 소리를 지르며”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당하는 것을 가만히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
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면 공의로운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그 때에는 변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공의로우신 재판장이 나타나시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양심을 깨끗하게 써야 합니다. 양심을 삐뚤게 써서 남을 속이고, 남을 죽이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피를 다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즉 억울한 피를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4절에 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오히려 말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벨이 순교 당했으나 산제사를 드린 믿음, 곧 생명 있는 믿음으로 오히려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아벨이 드린 제사가 참 제사이고 아벨의 믿음이 생명 있는 산 믿음이다. 이러한 제사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신다”라고 세세토록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산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공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바로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