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더하는 법
누가복음 17:5-10
누가복음 17:5-10
5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8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본문 5절에,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믿음이 연약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너무 믿음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소원은 신자들이 대개 다 가지고 있을 줄로 압니다. 믿음 더하는 법을 예수님이 가르쳐주십니다.
1.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
본문 6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더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는데,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말하자,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라고 하셨는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는 것은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겨자씨는 좁쌀알의 10분의 일 정도 될 만큼 아주 작습니다. 좁쌀알도 우리가 작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보다 10분의 일 정도 되면 얼마나 작겠나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믿음이라도 생명만 있으면 거기서 역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명 있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리 커도 아무 힘을 못 쓰고 또 자라나지도 못하고 세상으로 떠내려가고 맙니다.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 생명의 역사가 있는 믿음, 그 믿음이 중요합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리 커도 아무 일도 못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역사가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다.
속에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믿음의 감동, 역사, 감화, 믿음의 운동력,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역사하는 믿음, 생명 있는 믿음,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만 있으면 그 다음엔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고 하면 그것이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깊이 박혀있다고 하는데 뽕나무에게 “뽕나무 뿌리가 뽑혀라!” 하면 뽑히고, 뽑힌 다음에 “바다에 가서 바다에 심기우라!”고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그랬습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생명 있는 믿음, 산 믿음이라면 뽕나무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기우라 명령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순종해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2. 믿음을 더하는 법
뽕나무 뿌리를 뽑으라
뽕나무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에서처럼, 떠난다는 뜻이 있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뿌리를 뽑으라는 말입니다.
또한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뽑으라는 말이 됩니다. ‘물욕에서 뿌리를 뽑아라’라고 하시는데, 어떤 젊은 부자가 예수님께 왔었지만 물질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부자는 물질이 우상이 되어있고, 물질에 붙잡혀 사는 것인데, 그런 물질에서 뿌리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욕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사욕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다 뽑아버려야 됩니다.
로마서 13장에 보면 방탕과 술 취하지 말고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이렇게 6가지가 있습니다. 로마서 13:13-14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뽑으라는 말이 됩니다. ‘물욕에서 뿌리를 뽑아라’라고 하시는데, 어떤 젊은 부자가 예수님께 왔었지만 물질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부자는 물질이 우상이 되어있고, 물질에 붙잡혀 사는 것인데, 그런 물질에서 뿌리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욕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사욕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다 뽑아버려야 됩니다.
로마서 13장에 보면 방탕과 술 취하지 말고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이렇게 6가지가 있습니다. 로마서 13:13-14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방탕과 술 취하는 것을 뽑아버리란 말입니다. 그러한 뿌리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담배 붙이고 술 먹는 사람들 그거 뿌리 뽑기가 힘든 모양 같습니다. 이전에 제가 열여덟 살 났을 때에 봉천에 가서 공장에 다녔었는데, 같이 기숙사에 있는 한 사람이 밤에 자지 않고 왔다 갔다 합니다. 왜 자지 않고 남도 못 자게 왔다 갔다 하냐고 그러니까 담배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담배가 떨어졌으면 잠을 자고나서 해결해야지 왜 남도 못 자게 다니느냐니까 잠이 안 온답니다. 담배 피는 사람 담배 떨어지면 잠이 안 온답니다. 그거 끊는 게 상당히 힘든 모양입니다.
또, 술 먹는 사람이 술 끊는 것이 뽕나무 뿌리 뽑는 것처럼 아주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안 먹겠다고 결심하고도 또 먹고 그럽니다. 안 하겠다고 손가락 자르고 또 하는데, 어떤 도박하는 사람이 다시 안 한다고 손가락 잘랐다고 합니다. 손가락 자르고 싸매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게 다 낫기 전에 또 와서 도박을 했답니다. 경매하는 사람, 그 뿌리를 뽑아야 되겠는데 뿌리가 잘 안 뽑아 지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뽕나무 뿌리가 뽑혀야 됩니다. 뽑을 수 있습니까? 여기서 못 뽑는다고 하지 않고,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여도 하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네, 뽑을 수 있습니다. 생명 있는 믿음만 있으면, 작은 믿음이라도 뿌리를 뽑을 수 있습니다. 뽑고 바다에 갖다 심기 울 수 있습니다.
뽕나무 뿌리를 바다에 심기우라
바다라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17:15에 보면 백성과 나라와 방언이라고 나옵니다. 이 세상이 바다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세상이 바다이고, 둘째는 생명수가 흘러 내려간 바다를 말합니다.
사해바다는 바다인데 에스겔 47:8-9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사해바다가 다 죽은 바다 같지만 거기에 생명수가 흘러내려가니까 다 소생해 올라왔다고 그랬습니다. 살아있는 바다가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살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이 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에서 바다는 사해바다입니다. 사해바다에 생명강수가 흘러들어가니까 생명이 사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 바다입니다.
사해바다는 사해바다인데 거기에 생명수가 흘러 들어가니까 소생함을 얻었습니다.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되었습니다. 사해바다는 생명의 바다가 되었고, 뽕나무는 그 바다에 심기운다는 겁니다. 뽕나무가 과거에는 땅에 뿌리를 박고 그저 거기서만 살았는데, 이제 그 뿌리를 그냥 둬두면 안 되겠으니까 “뿌리를 뽑아라. 그걸 들어서 바다에 갖다 심기워라”라고 했습니다. 나무를 바다에 심기운다는 게 이상하지만 바다에 심기운다고 그랬습니다.
바다라는 것은 사해바다인데, 사실 이 세상이 사해바다입니다. 거기에 생수가 흘러들어 가니까 생명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사해바다에 생수가 흘러들어가서 생명의 바다, 생명의 바다가 된 겁니다.
이 세상에 ‘생수가 들어가서 생명의 바다가 되는 것’은 교회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해바다에 생수가 흘러들어가서 생명이 살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심기우라는 것입니다. “거기다 심기우라”라고 했고, 그래서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기운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 보면, 과거에 왜 믿을 거 같지 않던 사람들이 교회 나와서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홍풍완 장로도 그 부인만 나왔었는데, 심방 가서 교회 나오라고 하면 교회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술 먹고 돌아다니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뿌리를 뽑아서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나중엔 그 사람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뿌리를 뽑아서 이 생명의 바다, 이 바다로 인도된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깡패 대장하던 사람도 뿌리가 뽑혀서 교회 나오고, 변하여 새 사람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바다라는 것, ‘바다에 옮기운다’는 것은 생수가 흘러들어간 바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바다, 생명이 사는 바다, 그 바다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라
본문 6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바다에 심기우라’ 하는 그것이 보통이 아닌데,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1:21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라고 했는데, ‘산을 옮기는 믿음’을 말하는 본문은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보면 거기는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에서는 그저 그 일이 ‘될 것이요’라고 했지 어디 ‘순종하였을 것이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의 본문에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긴다고 했는데, 그저 옮긴다고 했고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순종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순종한다는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다에 심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바다에다 어떻게 나무를 심기우겠는가 해도, 그래도 심기운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또 나무가 어떻게 순종하겠나 싶어도 그래도 순종한다고 그랬으니까 순종했습니다. ‘산이 옮겨 질 것이요’ 할 때에는 산이 순종하는 게 아니라, ‘옮기우라 하면 옮기워 질 것이요’라고 그랬지 그 본문에는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로 성경 번역한 것이 많이 있는데, 뽕나무가 ‘순종한다’고 번역한 성경이 여러 성경이고, 표준 새번역은 순종한다는 말을 빼버렸습니다. 표준 새번역 그것은 못씁니다. 그래서 우리가 표준새번역성경을 반대하는 겁니다. 원어에 ‘순종’이란 말이 있는데 왜 빼버리느냔 말입니다. 영어번역에도 ‘순종’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 보십시오. 영어 성경에도 ‘순종’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원어에도 ‘순종’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에도 순종이 있으니까 순종이 있게 번역한 것이 맞는 번역이고 표준새번역은 못씁니다. ‘순종’을 빼버렸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순종하였으리라”라고 그랬는데, 여기서 이 ‘순종’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뭐가 순종한다고 그랬습니까? 뽕나무가 순종한다고 그랬습니다. 뽕나무가 육지에 뿌리를 깊
이 박고 살았는데, 뿌리가 하나의 줄기만이 아닙니다. 여러 개 입니다. 나무들이 뿌리가 여러 개 인데, 그걸 쭉 뽑아가지고 ‘바다에 심기우라’하면 그것이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였으리라. 순종 할 것이라”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이 세상뿌리가 아직도 많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지 못하는 그 뿌리,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함과 쟁투와 시기하는 뿌리, 세상을 사랑하는 뿌리, 인정에 깊이 빠져있는 뿌리, 인간적인 사랑인 에로스에 빠져있는 뿌리, 물욕과 정욕과 사욕, 이 세상 명예 영광에 박혀있는 뿌리, 돈 물질에 뿌리를 박아가지고 물질만 있으면 사는 줄 알고 거기 깊이 박혀있는 뿌리, 이 뿌리를 빼내버리라는 것입니다.
빼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뿌리가 뽑혀야 합니다. 뿌리를 빼지 못하면 바다에 옮겨 심을 수가 없습니다. 껍데기만 바다에 가지 말고 뿌리째 옮겨져야 합니다. 혈기, 신경질 부리는 것, 남 미워하는 것, 시기 원수 맺는 것 그거 다 뿌리 뽑아야 됩니다. 뿌리를 쪽 뽑아가지고 바다에 갖다 심기우라고 하면 그것이 순종한다고 했습니다.
뽕나무가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 성도의 순종하는 걸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뽕나무더러 “뿌리를 빼 가지고 바다에 갖다 심기우라!” 하면 그대로 순종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게 믿음 자라나는 법입니다. 믿음 더하는 법은, 뿌리를 뽑고, 바다로 가고, 그곳에 갖다 심고, 그 다음엔 순종하는 것입니다. 뿌리를 뽑아서 바다로 가서 순종하는 그것이 믿음을 더하는 법입니다.
뿌리 안 빼고 그냥 다니는 사람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믿음을 더하지 못합니다. 믿음 더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뿌리를 뽑고, 그 다음은 바다에 가서 심기우고. 그 다음은 순종입니다.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은 무조건 순종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매일 뿌리를 뽑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박혔던 뿌리, 흙에 박혔던 뿌리 매일 뽑으란 말입니다. 여러 뿌리가 많이 있는데 뽑아가지고 생명수 바다가 있는 데로 가야합니다. 거기다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심습니다. 거기서 살아야 합니다. 거기서 생명을 얻어야 됩니다. 그렇게 다 하고 난 뒤에 순종을 하란 말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더해집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됩니다. 지금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저도 알지 못했던 것인데 엊저녁에 봉원동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지금 새로 발견한 것입니다.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옮기워지고, 바다사람이 되고나서 그리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밭을 갈거나 양을 치라
본문 7-8절에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라고 했는데,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양은 성도인데, 양을 치라는 것은 성도를 길러나가라는 것입니다. 밭을 갈라는 것은, 마음 밭을 갈아서 옥토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을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언제나 성도는 나가서 밭을 갈고 농사하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자라나게 하고, 김매주고, 물주고, 곡식 거둘 때가 되면 추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금 밭을 갈거나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양을 치거나, 교인들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그것도 뽕나무 하나를 옮기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세상에 속했던 사람의 뿌리를 뽑아가지고, 생명강이 있는 데로 인도한다는 것은 뽕나무 하나 옮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양을 치거나 잘 기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오게 하고 잘 기르는 게 양 치는 것입니다. 잘 돌봐주는 것이 양을 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는 밭을 갈거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또다시 씨를 뿌리고 자라나게 만들어서 열매를 거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전도해야 됩니다. 밭을 갈아서 곡식을 뿌리고, 거기서 추수할 때에 단을 묶어서 교회로 가져와야 됩니다. 또, 양을 발견해서 가서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해서 양을 잘 기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밭 갈고 양치고 돌아와서는 자기 대접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돌아와서 “내가 밭 얼마나 갈았습니다. 양 몇 마리 쳤습니다. 보상해 주십시오”하면 못씁니다. 와서 뭐라고 한다고 했습니까? 본문 8절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밭을 갈고 양치다 돌아와서 대접 받으려는 생각은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돌아와서 뭘 하라고 했습니까?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와서 하나님께 대접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일하고 돌아와서 자기 대접 받으려는 생각 그만두고 하나님 대접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다가 돌아왔어도, 아무리 수고 많이 했다고 해도, 와서 수고했다는 보상 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 대접을 잘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걸 하나님께만 돌리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라고 하십니다. 자기가 영광 받으려고 하면 그건 안 됩니다.
자기를 나타내면 안 됩니다. “내가 양 얼마나 치고 돌아왔다. 내가 밭을 얼마나 갈고 돌아왔다”는 그런 것은 못씁니다. 하나님만 대접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자기는 무익한 종인 줄 알아야 함
본문 9-10절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이라’라고 해야겠습니다.
‘무익한 종이라’, 세례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되겠고 나는 쇠하여 되겠다”라고 그랬는데, 예수님만 잘되게 하고, 하나님의 일만 잘 되게 하고, 자기는 쇠하여야 되겠다고 그랬습니다. ‘나는 쇠하여야 되겠다’, ‘자기는 무익한 종이라’고 하는 자기 부인,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해야합니다.
이렇게 양을 치거나 밭을 갈거나 하고 돌아온 다음에, 어떠한 자기 공로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다”, “내가 뭘 많이 했다” 이렇게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이라”라는 모습 가져야 합니다.
연보 많이 했어도 “주께 받아서 한 것뿐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성경에도 ‘주께 받아서 한 것뿐입니다’라고 그랬습니다. 많은 연보를 했지만 ‘주께 받아서 주의 것을 드린 것뿐입니다’라고 했고, 그게 바로 된 것입니다.
믿음을 더하는 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더하기를 다들 원하는데, 믿음을 더하려면, 생명 있는 신앙이 있어야 됩니다. 작아도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없으면 아무리 커도 쓸 데가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 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첫째가 뭐라고 했습니까?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입니다. 그 다음에 ‘그것이 순종하였으리라’는 것입니다.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심는 일, 우리 자신부터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심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 여러 곳에 뿌리를 다 박고 사는 데 그걸 다 뽑아야겠습니다. 뿌리를 뽑아버려야 됩니다.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유대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뿌리를 다 뽑아버려야 됩니다. 자기 지역, 지방에 관련된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자기 지방에 얽매여서 거기서 뽑혀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신자 구실을 못합니다. 다 뽑아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북 사람은 이북 뿌리를 뽑아버려야 됩니다. 경남사람, 호남사람 다 뿌리를 뽑아야 됩니다.
우리에게 뿌리 뽑을 것이 많이 있습니다. 애착심, 물욕, 정욕 이 세상에 뿌리박고 사는 것, 너무 뿌리가 깊습니다. 지금 뽑아서, 뽑혀 바다에 심으라고 하셨습니다. 바다, 생명의 바다로 가야 합니다. 거기서
순종하여야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
순종’입니다. 뿌리는 뽑아서 바다에 갖다 던져 놓고, 그리고 나면 ‘순종’입니다.
그 다음엔 양을 치거나 밭을 갈거나 해야 됩니다. 양을 잘 먹이라고 하십니다. 밭을 갈고 곡식을 심어서 곡식 단을 하나씩 교회로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다 한 다음에 자기대접 받는다고 했습니까? 하나님 대접만 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대접 받으려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 대접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기는 무익한 종이라. 나의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이라” 라며, 스스로 무익한 종인 줄 알아야 됩니다. 교만하면 망합니다. 항상 자기는 한 것이 없는 줄 알고 무익한 종인 줄 아는 자리에 서야 믿음이 더해집니다.
이렇게 믿음 더하는 법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이 법대로만 가야 믿음이 더해져 나갑니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믿음이 더해집니다. 믿음 더해지는 사람은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백부장에게 그랬고, 또한 가나안 여인 보고도 “네 믿음이 크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자라나서 큰 믿음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성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