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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3일 토요일

누가복음 17:5-10 믿음을 더하는 법,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믿음을 더하는 법
누가복음 17:5-10

5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8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본문 5절에,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믿음이 연약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너무 믿음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소원은 신자들이 대개 다 가지고 있을 줄로 압니다. 믿음 더하는 법을 예수님이 가르쳐주십니다.

1.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

본문 6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더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는데,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말하자,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라고 하셨는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는 것은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겨자씨는 좁쌀알의 10분의 일 정도 될 만큼 아주 작습니다. 좁쌀알도 우리가 작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보다 10분의 일 정도 되면 얼마나 작겠나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믿음이라도 생명만 있으면 거기서 역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명 있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리 커도 아무 힘을 못 쓰고 또 자라나지도 못하고 세상으로 떠내려가고 맙니다.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 생명의 역사가 있는 믿음, 그 믿음이 중요합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리 커도 아무 일도 못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역사가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다.

속에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믿음의 감동, 역사, 감화, 믿음의 운동력,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역사하는 믿음, 생명 있는 믿음,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만 있으면 그 다음엔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고 하면 그것이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깊이 박혀있다고 하는데 뽕나무에게 “뽕나무 뿌리가 뽑혀라!” 하면 뽑히고, 뽑힌 다음에 “바다에 가서 바다에 심기우라!”고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그랬습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생명 있는 믿음, 산 믿음이라면 뽕나무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기우라 명령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순종해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2. 믿음을 더하는 법

뽕나무 뿌리를 뽑으라

뽕나무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에서처럼, 떠난다는 뜻이 있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뿌리를 뽑으라는 말입니다.
또한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뽑으라는 말이 됩니다. ‘물욕에서 뿌리를 뽑아라’라고 하시는데, 어떤 젊은 부자가 예수님께 왔었지만 물질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부자는 물질이 우상이 되어있고, 물질에 붙잡혀 사는 것인데, 그런 물질에서 뿌리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욕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사욕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다 뽑아버려야 됩니다.
로마서 13장에 보면 방탕과 술 취하지 말고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이렇게 6가지가 있습니다. 로마서 13:13-14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방탕과 술 취하는 것을 뽑아버리란 말입니다. 그러한 뿌리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담배 붙이고 술 먹는 사람들 그거 뿌리 뽑기가 힘든 모양 같습니다. 이전에 제가 열여덟 살 났을 때에 봉천에 가서 공장에 다녔었는데, 같이 기숙사에 있는 한 사람이 밤에 자지 않고 왔다 갔다 합니다. 왜 자지 않고 남도 못 자게 왔다 갔다 하냐고 그러니까 담배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담배가 떨어졌으면 잠을 자고나서 해결해야지 왜 남도 못 자게 다니느냐니까 잠이 안 온답니다. 담배 피는 사람 담배 떨어지면 잠이 안 온답니다. 그거 끊는 게 상당히 힘든 모양입니다.
또, 술 먹는 사람이 술 끊는 것이 뽕나무 뿌리 뽑는 것처럼 아주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안 먹겠다고 결심하고도 또 먹고 그럽니다. 안 하겠다고 손가락 자르고 또 하는데, 어떤 도박하는 사람이 다시 안 한다고 손가락 잘랐다고 합니다. 손가락 자르고 싸매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게 다 낫기 전에 또 와서 도박을 했답니다. 경매하는 사람, 그 뿌리를 뽑아야 되겠는데 뿌리가 잘 안 뽑아 지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뽕나무 뿌리가 뽑혀야 됩니다. 뽑을 수 있습니까? 여기서 못 뽑는다고 하지 않고,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여도 하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네, 뽑을 수 있습니다. 생명 있는 믿음만 있으면, 작은 믿음이라도 뿌리를 뽑을 수 있습니다. 뽑고 바다에 갖다 심기 울 수 있습니다.

뽕나무 뿌리를 바다에 심기우라

바다라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17:15에 보면 백성과 나라와 방언이라고 나옵니다. 이 세상이 바다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세상이 바다이고, 둘째는 생명수가 흘러 내려간 바다를 말합니다.
사해바다는 바다인데 에스겔 47:8-9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사해바다가 다 죽은 바다 같지만 거기에 생명수가 흘러내려가니까 다 소생해 올라왔다고 그랬습니다. 살아있는 바다가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살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이 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에서 바다는 사해바다입니다. 사해바다에 생명강수가 흘러들어가니까 생명이 사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 바다입니다.
사해바다는 사해바다인데 거기에 생명수가 흘러 들어가니까 소생함을 얻었습니다.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되었습니다. 사해바다는 생명의 바다가 되었고, 뽕나무는 그 바다에 심기운다는 겁니다. 뽕나무가 과거에는 땅에 뿌리를 박고 그저 거기서만 살았는데, 이제 그 뿌리를 그냥 둬두면 안 되겠으니까 “뿌리를 뽑아라. 그걸 들어서 바다에 갖다 심기워라”라고 했습니다. 나무를 바다에 심기운다는 게 이상하지만 바다에 심기운다고 그랬습니다.
바다라는 것은 사해바다인데, 사실 이 세상이 사해바다입니다. 거기에 생수가 흘러들어 가니까 생명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사해바다에 생수가 흘러들어가서 생명의 바다, 생명의 바다가 된 겁니다.

이 세상에 ‘생수가 들어가서 생명의 바다가 되는 것’은 교회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해바다에 생수가 흘러들어가서 생명이 살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심기우라는 것입니다. “거기다 심기우라”라고 했고, 그래서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기운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 보면, 과거에 왜 믿을 거 같지 않던 사람들이 교회 나와서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홍풍완 장로도 그 부인만 나왔었는데, 심방 가서 교회 나오라고 하면 교회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술 먹고 돌아다니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뿌리를 뽑아서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나중엔 그 사람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뿌리를 뽑아서 이 생명의 바다, 이 바다로 인도된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깡패 대장하던 사람도 뿌리가 뽑혀서 교회 나오고, 변하여 새 사람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바다라는 것, ‘바다에 옮기운다’는 것은 생수가 흘러들어간 바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바다, 생명이 사는 바다, 그 바다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라

본문 6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바다에 심기우라’ 하는 그것이 보통이 아닌데,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1:21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라고 했는데, ‘산을 옮기는 믿음’을 말하는 본문은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보면 거기는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에서는 그저 그 일이 ‘될 것이요’라고 했지 어디 ‘순종하였을 것이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의 본문에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긴다고 했는데, 그저 옮긴다고 했고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순종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순종한다는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다에 심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바다에다 어떻게 나무를 심기우겠는가 해도, 그래도 심기운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또 나무가 어떻게 순종하겠나 싶어도 그래도 순종한다고 그랬으니까 순종했습니다. ‘산이 옮겨 질 것이요’ 할 때에는 산이 순종하는 게 아니라, ‘옮기우라 하면 옮기워 질 것이요’라고 그랬지 그 본문에는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로 성경 번역한 것이 많이 있는데, 뽕나무가 ‘순종한다’고 번역한 성경이 여러 성경이고, 표준 새번역은 순종한다는 말을 빼버렸습니다. 표준 새번역 그것은 못씁니다. 그래서 우리가 표준새번역성경을 반대하는 겁니다. 원어에 ‘순종’이란 말이 있는데 왜 빼버리느냔 말입니다. 영어번역에도 ‘순종’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 보십시오. 영어 성경에도 ‘순종’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원어에도 ‘순종’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에도 순종이 있으니까 순종이 있게 번역한 것이 맞는 번역이고 표준새번역은 못씁니다. ‘순종’을 빼버렸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순종하였으리라”라고 그랬는데, 여기서 이 ‘순종’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뭐가 순종한다고 그랬습니까? 뽕나무가 순종한다고 그랬습니다. 뽕나무가 육지에 뿌리를 깊
이 박고 살았는데, 뿌리가 하나의 줄기만이 아닙니다. 여러 개 입니다. 나무들이 뿌리가 여러 개 인데, 그걸 쭉 뽑아가지고 ‘바다에 심기우라’하면 그것이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였으리라. 순종 할 것이라”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이 세상뿌리가 아직도 많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지 못하는 그 뿌리,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함과 쟁투와 시기하는 뿌리, 세상을 사랑하는 뿌리, 인정에 깊이 빠져있는 뿌리, 인간적인 사랑인 에로스에 빠져있는 뿌리, 물욕과 정욕과 사욕, 이 세상 명예 영광에 박혀있는 뿌리, 돈 물질에 뿌리를 박아가지고 물질만 있으면 사는 줄 알고 거기 깊이 박혀있는 뿌리, 이 뿌리를 빼내버리라는 것입니다.

빼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뿌리가 뽑혀야 합니다. 뿌리를 빼지 못하면 바다에 옮겨 심을 수가 없습니다. 껍데기만 바다에 가지 말고 뿌리째 옮겨져야 합니다. 혈기, 신경질 부리는 것, 남 미워하는 것, 시기 원수 맺는 것 그거 다 뿌리 뽑아야 됩니다. 뿌리를 쪽 뽑아가지고 바다에 갖다 심기우라고 하면 그것이 순종한다고 했습니다.
뽕나무가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 성도의 순종하는 걸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뽕나무더러 “뿌리를 빼 가지고 바다에 갖다 심기우라!” 하면 그대로 순종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게 믿음 자라나는 법입니다. 믿음 더하는 법은, 뿌리를 뽑고, 바다로 가고, 그곳에 갖다 심고, 그 다음엔 순종하는 것입니다. 뿌리를 뽑아서 바다로 가서 순종하는 그것이 믿음을 더하는 법입니다.
뿌리 안 빼고 그냥 다니는 사람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믿음을 더하지 못합니다. 믿음 더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뿌리를 뽑고, 그 다음은 바다에 가서 심기우고. 그 다음은 순종입니다.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은 무조건 순종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매일 뿌리를 뽑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박혔던 뿌리, 흙에 박혔던 뿌리 매일 뽑으란 말입니다. 여러 뿌리가 많이 있는데 뽑아가지고 생명수 바다가 있는 데로 가야합니다. 거기다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심습니다. 거기서 살아야 합니다. 거기서 생명을 얻어야 됩니다. 그렇게 다 하고 난 뒤에 순종을 하란 말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더해집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됩니다. 지금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저도 알지 못했던 것인데 엊저녁에 봉원동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지금 새로 발견한 것입니다.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옮기워지고, 바다사람이 되고나서 그리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밭을 갈거나 양을 치라

본문 7-8절에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라고 했는데,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양은 성도인데, 양을 치라는 것은 성도를 길러나가라는 것입니다. 밭을 갈라는 것은, 마음 밭을 갈아서 옥토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을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언제나 성도는 나가서 밭을 갈고 농사하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자라나게 하고, 김매주고, 물주고, 곡식 거둘 때가 되면 추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금 밭을 갈거나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양을 치거나, 교인들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그것도 뽕나무 하나를 옮기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세상에 속했던 사람의 뿌리를 뽑아가지고, 생명강이 있는 데로 인도한다는 것은 뽕나무 하나 옮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양을 치거나 잘 기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오게 하고 잘 기르는 게 양 치는 것입니다. 잘 돌봐주는 것이 양을 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는 밭을 갈거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또다시 씨를 뿌리고 자라나게 만들어서 열매를 거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전도해야 됩니다. 밭을 갈아서 곡식을 뿌리고, 거기서 추수할 때에 단을 묶어서 교회로 가져와야 됩니다. 또, 양을 발견해서 가서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해서 양을 잘 기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밭 갈고 양치고 돌아와서는 자기 대접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돌아와서 “내가 밭 얼마나 갈았습니다. 양 몇 마리 쳤습니다. 보상해 주십시오”하면 못씁니다. 와서 뭐라고 한다고 했습니까? 본문 8절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밭을 갈고 양치다 돌아와서 대접 받으려는 생각은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돌아와서 뭘 하라고 했습니까?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와서 하나님께 대접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일하고 돌아와서 자기 대접 받으려는 생각 그만두고 하나님 대접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다가 돌아왔어도, 아무리 수고 많이 했다고 해도, 와서 수고했다는 보상 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 대접을 잘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걸 하나님께만 돌리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라고 하십니다. 자기가 영광 받으려고 하면 그건 안 됩니다.
자기를 나타내면 안 됩니다. “내가 양 얼마나 치고 돌아왔다. 내가 밭을 얼마나 갈고 돌아왔다”는 그런 것은 못씁니다. 하나님만 대접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자기는 무익한 종인 줄 알아야 함

본문 9-10절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이라’라고 해야겠습니다.

‘무익한 종이라’, 세례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되겠고 나는 쇠하여 되겠다”라고 그랬는데, 예수님만 잘되게 하고, 하나님의 일만 잘 되게 하고, 자기는 쇠하여야 되겠다고 그랬습니다. ‘나는 쇠하여야 되겠다’, ‘자기는 무익한 종이라’고 하는 자기 부인,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해야합니다.
이렇게 양을 치거나 밭을 갈거나 하고 돌아온 다음에, 어떠한 자기 공로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다”, “내가 뭘 많이 했다” 이렇게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이라”라는 모습 가져야 합니다.
연보 많이 했어도 “주께 받아서 한 것뿐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성경에도 ‘주께 받아서 한 것뿐입니다’라고 그랬습니다. 많은 연보를 했지만 ‘주께 받아서 주의 것을 드린 것뿐입니다’라고 했고, 그게 바로 된 것입니다.

믿음을 더하는 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더하기를 다들 원하는데, 믿음을 더하려면, 생명 있는 신앙이 있어야 됩니다. 작아도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없으면 아무리 커도 쓸 데가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 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첫째가 뭐라고 했습니까?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입니다. 그 다음에 ‘그것이 순종하였으리라’는 것입니다.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심는 일, 우리 자신부터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심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 여러 곳에 뿌리를 다 박고 사는 데 그걸 다 뽑아야겠습니다. 뿌리를 뽑아버려야 됩니다.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유대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뿌리를 다 뽑아버려야 됩니다. 자기 지역, 지방에 관련된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자기 지방에 얽매여서 거기서 뽑혀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신자 구실을 못합니다. 다 뽑아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북 사람은 이북 뿌리를 뽑아버려야 됩니다. 경남사람, 호남사람 다 뿌리를 뽑아야 됩니다.

우리에게 뿌리 뽑을 것이 많이 있습니다. 애착심, 물욕, 정욕 이 세상에 뿌리박고 사는 것, 너무 뿌리가 깊습니다. 지금 뽑아서, 뽑혀 바다에 심으라고 하셨습니다. 바다, 생명의 바다로 가야 합니다. 거기서 순종하여야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 순종’입니다. 뿌리는 뽑아서 바다에 갖다 던져 놓고, 그리고 나면 ‘순종’입니다. 

그 다음엔 양을 치거나 밭을 갈거나 해야 됩니다. 양을 잘 먹이라고 하십니다. 밭을 갈고 곡식을 심어서 곡식 단을 하나씩 교회로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다 한 다음에 자기대접 받는다고 했습니까? 하나님 대접만 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대접 받으려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 대접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기는 무익한 종이라. 나의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이라” 라며, 스스로 무익한 종인 줄 알아야 됩니다. 교만하면 망합니다. 항상 자기는 한 것이 없는 줄 알고 무익한 종인 줄 아는 자리에 서야 믿음이 더해집니다. 

이렇게 믿음 더하는 법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이 법대로만 가야 믿음이 더해져 나갑니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믿음이 더해집니다. 믿음 더해지는 사람은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백부장에게 그랬고, 또한 가나안 여인 보고도 “네 믿음이 크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자라나서 큰 믿음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성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16:19-31 부자와 나사로 비유,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부자와 나사로 비유
누가복음 16:19-31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고민하나이다 25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26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자는 자색 옷을 입고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 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고 했고 개들이 와서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인데 아브라함 품에 들어간 것은 하늘나라에 간 것입니다. 나사로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품에 간 것은 예수 믿었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로는 믿는 일을 잘 하고 간 나사로입니다. 부자는 예수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자도 마침내 죽어서 장사 되었고 그 영혼은 마귀에게 끌리워서 지옥에 갔습니다.

1. 부자는 예수님을 안 믿고 지옥에 감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는 부자

본문 23절에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음부는 지옥입니다. 부자는 예수님을 안 믿었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은 불꽃가운데서 고민하는 곳입니다. 물 한 방울 없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곳으로 다시 나올 수 없는 곳입니
다. 지옥은 한번 가면 못 나옵니다. 불이 훨훨 붙는 그 불꽃 가운데서 세세 무궁토록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됩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속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나사로의 손 끝에 물을 좀 찍어다가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손가락 끝에 물 한방을 찍는 것 얼마나 찍겠습니까? 그래도 잠시라도 물 한방을 찍어다가 혀를 서늘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물 한방울 없는 맹렬한 불꽃이 계속 되는 그런 무서운 곳입니다. 얼마나 고난을 당했길래 이렇게 말했나 생각해 보십시오. 지옥이란 곳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이 계속 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천당은 생명수 강이 흘러 내려 가는 낙원입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는 기쁘고 즐거움이 충만한 곳입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여 천군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는 곳이 낙원입니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은 거기에 가서 영원히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지옥에서 세세 무궁토록 물 한방울 없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계속 당하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늘 기억해야 됩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저 어떤 사람은 전도하면 자기는 지옥가겠다는 것입니다. “천당이 만원이다”하며 그래서 자기는 “지옥에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이 심한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지옥은 한번 가면 못나옵니다. 세상 감옥도 여러 가지 고난이 많이 있는데 그러나 세상감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옥은 불이 훨훨 붙는 그런 불구렁텅입니다. 한번가면 나오지 못하는 곳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하나 생각해야 될 것은 부자는 왜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는가?입니다. 예수를 믿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예수 믿기가 힘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 귀로 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9:24에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또 실제로 부자들이 예수님을 믿기가 힘이 듭니다. 젊은 부자 한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할 때 예수님께서 내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부자는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네가 오히려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늘에 보화가 있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쫓으면 하늘에 보화가 있고 또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는데 부자가 재물이 많은고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재물이 우상이 되어서 그것을 팔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불가능 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누가 구원을 얻겠습니까?라고 제자들이 물어 볼 때에 마태복음 19:26에 “사람으로 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사람으로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부자도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야 할 때도 있지만 부자가 재산이 있어도 없는 것 같이 하고 주님을 따라가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의지하고 나가는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은 믿지도 못하고, 믿어도 껍데기만 믿는 것이지 실제로 속에 믿음이 안 들어갔으므로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면 부자는 어떻해야 되는가? 그 재산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재산이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재산을 의지하지 말고 그것을 가지고 살려고 하지도 말고 또 그것에 소망을 두지도 말아야 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없는 것 같이 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부자도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5에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전파된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됩니다.

야고보 1:9-10에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고 하였습니다. 낮은 형제는 예수를 잘 믿어서 부해졌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 부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한 형제는 부한 것 의지하고 살므로 믿는 일을 못하였기 때문에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볼 때 가난한 사람이 예수를 잘 믿습니다. 부자들은 예수를 잘 믿지 않습니다. 양반들 예수 많이 믿지 않고, 부자들 예수 많이 믿지 않고, 또 학자들, 문벌 좋은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멸시 받는 사람, 없는 사람, 무식한 사람 이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해서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강한 사람 위에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놓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 거지 나사로는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감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는 일 한 나사로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았으며, 헌데가 났으나 병원에 갈수도 없고 또 누가 와서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개가 와서 헌데를 핥아 주는 것이 다입니다.
나사로는 믿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도 예수님을 안 믿었으면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에 의지 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세상에 바라볼 것 없으므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세상에 소망을 둘 곳이 없으므로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세상에 사랑할 데가 없으므로 하나님만 사랑하고, 세상에서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의 도움만 받으려고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려고 합니다. 다른 것 할 것이 없습니다.

나사로가 예수를 잘 믿으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믿는 것 하나밖에 할 게 없단 말입니다. 그것만 하는 것입니다. 믿는 일만 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으로 즐거워하고, 예수님의 사랑만 받고 좋아 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신령한 영적 교제하며 즐거워하고, 예수님의 명령만 좋아하고, 그 말씀만 순종하려고 애를 쓰고, 선한 마음을 가지려고 하고, 선한 행실을 가지려고 합니다. 나사로만큼 믿는 일을 잘 한사람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자가 예수 믿었어도 부자는 나사로만큼 믿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왜 할 수 없겠습니까? 세상에서 호화로이 연락할게 있지 않습니까? 연락하느라고 언제 믿는 일 할 시간이 있나요? 예수 믿어도 껍데기만 믿는 것입니다. 또 왜 할 수 없었겠습니까? 세상 것을 사랑하고, 세상 것을 의지하고, 세상 것으로 즐거워하고, 세상 사람의 사랑을 다 받고, 세상 사람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세상 것으로 자랑하고, 세상에서 향락을 다 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껍데기만 믿는 것입니다. 세상 것 하느라고 믿는 일에 보낼 시간이 없고, 정력을 기울일수도 없고, 정성을 기울일 수도 없단 말입니다. 예수 믿어도 껍데기만 하는 것입니다. 믿는데 시간을 조금만 기울입니다.

모든 정성을 하나님께 기울인 나사로

나사로는 믿는데 얼마나 기울였겠습니까? 하루 스물네 시간 전체 다 믿는 데만 기울였습니다. 부자는 예수 믿었어도 온종일 세상 것누리느라고 믿는데 시간을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업 하느라고 마음도 세상에 쓰고, 정성도 세상에 기울이고, 사랑도 세상에 기울이고, 즐거움도 세상 것을 가지고 살려고 하고, 돈도 세상에다 기울여서 세상 것을 좀 더 풍성케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세상 것을 할래야 할 게 없습니다. 모든 정성 하나님께 다 기울입니다. 모든
시간을 하나님께 다 기울입니다. 마음 전체를 하나님께 다 기울입니다. 사랑 전체를 다 하나님께 기울입니다. 몸 전체를 하나님께 다 기울입니다. 또 하나님의 것만 받아 가지고 삽니다. 사람의 것은 받을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것을 받으려면 떨어지는 부스러기 조금 밖에 없습니다.

이젠 하나님의 것을 받아가지고 살려고 하며,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의 나라만 소유 하려고 하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려고 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 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것을 풍성하게 하려고 하고, 신령한 것을 좀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하늘의 위로와 평강을 좀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일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은 나사로로 볼 수가 있습니다.

가령 정성이 100이라고 합시다. 내게 있는 모든 정성, 마음, 시간, 재산을 전부 100으로 잡아 놓으면, 부자는 예수 믿었다고 해도 정성과 마음과 시간과 돈이 한 50%는 세상으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70~80%가 세상으로 가고 남는 것만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99%가 세상으로 가고 남는 것 1%만 하나님께로 갑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세상으로 갈래야 갈 데가 있나요? 자기의 마음, 정성, 시간, 힘, 사랑, 정력 전부 100% 다 하나님께만 갖다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가는 것이 몇%이고, 세상으로 가는 것이 몇%인가? 생각해 봅시다. 마음이나 시간이나 정성이나 사랑이나 의지하는 것이나 즐거워하는 것이나 세상으로 가는 것이 얼마이고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세상으로 가는 것이 몇 %고,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몇 %입니까? 어떤 사람은 세상으로 가는 것이 90%고,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10%랍니다. 우리 마음, 시간, 정성, 사랑, 의지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 소망, 세상의 소망이 몇 %고 하늘나라 소망이 몇 %인가? 세상 것을 붙들고 살려는 것이 몇 %고, 하나님의 것을 붙고 살려는 것이 몇 %인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100%가 못됩니다.

나사로는 믿느라고 힘을 조금만 쓰면 100% 다 가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갈 데를 다 끊어 놓았기 때문에 갈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전부 다 가는 것입니다. 의지하고 사는 것도 하나님만 의지하려고 하고, 소망도 하나님께만 두고, 또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려고 하고, 자기 사랑도 하나님께만 다 기울이고, 시간도 하나님께만 다 기울이고, 돈도 있으면 하나님께만 다 바치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 것으로 부유 한 것은 예수 믿는데 손해입니다. 세상 것이 가난한 것은 세상 편으로 볼 때는 안 되었지만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IMF가 온 것이 세상 편으로 볼 때는 안 되었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위해서만 살려고 하는,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려는 하나님의 큰 사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부유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저께 신문을 보니까 가난한 것이 유익이 많다고 나왔습니다. 아이들도 가난한 집 아이들은 죄 안 짓는다는 것입니다. 부유한 집 아이가 술 먹고 방탕하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부유할 때는 마음이 헤이해지기 쉽습니다. 가난할 때는 적은 것을 가지고도 거기서 만족합니다. 부요하면 마음에 허영심이 들어오고, 만족이 없이 늘 모지라고, 기쁨이 없고, 방탕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한집 아이보다 부요한 집 아이들의 방탕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사로의 신앙을 우리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나사로와 같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하나님께만 다 기울여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7:29-30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와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이 신앙입니다. 아내 있는
자는 어떻게 하라구요? 아내 있는 자는 없는 것처럼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우는 자는 울지 않는 자 같이, 울 일이 생겼어도 “울 일이 없다”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세상 일을 위해서 기뻐하는 자는 기쁘지 않는 것처럼 살라는 말입니다. 또 매매 하는 자들은 매매하지 않은 것처럼 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는 다 쓰지 못하는 것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시간을 다 빼앗기고, 세상에 소망을 두고, 세상 것으로 향락을 삼고, 세상 것으로 살려
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없는 자와 같이 하여 심령이 가난해져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의 것만 찾으라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처럼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하고,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는 것은 하늘나라에 보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정성, 모든 시간, 모든 사랑, 모든 의지하는 것, 모든 즐거워하는 것 등을 전부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없는 것과 같이 만들어 놓고 하늘나라의 것을 추구하고, 하늘나라의 것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영이 부요 하려고 애를 쓰고, 영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세상을 이기려고 애를 쓰고, 영적 부요한 생활을 하려고 애를 쓰고, 그래서 하늘나라의 것으로 부요해지는 자가 큰 복을 받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나사로가 큰 자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늘나라에만 기울였습니다. 세상에 기울일래야 기울일 데가 있어야지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다른 것을 의지 할래야 의지할 데가 있어야지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으로만 즐거워했습니다. 다른 것으로 즐거워 할래야 즐거워 할 게 있어야지요.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하는 나사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것을 가지고 즐거워합니다.

술 마시는 사람들은 술 한잔 마시고 “캬~,하하하하”하며 한잔 더 합니다. 그 바람에 즐거움이 세상으로, 기쁨이 세상으로, 오락이 세상으로 다 갑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 끊어 버리면 하나님께로 전부 가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얼마나 믿는 일을 잘하였는가? 생각해 봅시다. 부자는 안 믿었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부자는 믿었어도 그저 세상으로 다가고 하나님께 보내는 것은 조금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하고, 매일 잔치 하
느라고 믿는 것은 그저 조금 기울였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해야 됩니다. 재산이 좀 있어도 없는 자와 같이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아내 있는 사람도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하지 말고, 남편 있는 사람도 남편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없는 자와 같이 하고, 이젠 하나님만 기쁘게 하란 말입니다. 그러나 남편 대접은 잘 해야 됩니다. 대접 잘해도 사랑은 누구만 하라고요? 예수님만 사랑하란 말입니다. 대접하라고 성경에 그랬기 때문에 성경대로 하려고 대접하는 것이지 사랑은 예수님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남편 의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진짜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일에 다 기울여야 합니다. 믿는 일이라 하면 발 벗고 나서는 것입니다. 앞장서서 나가는 것입니다. 전진하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것입니다. 믿는 일 하는 것이 첫째이고, 세상 것은 없는 것처럼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또 없어도 됩니다. 없다고 해서 나사로 굶어 죽었습니까? 하나님이 살려 주십니다. 나사로가 뭘 먹고 살았습니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반드시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들은 부자의 나라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삽니다. 미국이 부자라고 볼 수 있는데 가난한 나라들은 미국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것입니다. 제가 부스러기를 먹었습니다. 언제 먹었는가? 하면 6.25사변 때 사진관 하는 집사가 한명 있는데 우리 졸업 사진을 찍어 준다고 오셨습니다. 감사해서 맛있는 것 대접 하겠다고 하였더니 따라 오셨습니다. 그 집사님이 어디를 가려고 하냐?고 물어 볼 때 “남포동 시장 꿀꿀이 죽을 먹자”고 하였더니 이 집사님이 냉큼 놀랍니다. 그때 우린 이따금 가서 사 었먹는데 꿀꿀이 죽처럼 좋은 것이 없었습니다. 꿀꿀이 죽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꿀꿀이 죽은 미군 부대에서 미군들이 고기 먹다가 남긴 것을 통에다 모아 가지고 가져다가 끓여서 파는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이 먹던 부스러기 먹는 것입니다. 그래도 학생들이 많이 나가서 사먹었습니다. 그것이라도 사먹지 않으면 영양 부족에 걸릴 것인데 부스러기 먹는 바람에 영양부족에 안 걸렸습니다.

떨어지는 부스러기 먹어도 믿음만 잘 지키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세상 것으로 즐거워하지 말고, 세상 것을 의지하며 살려고 하지 말고, 세상 것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 것을 없는 자 같이 여기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께만 소망을 두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모시고, 예수님으로만 즐거움을 삼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부요해지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