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승시(勝試)와 전도
마태복음 4:1-20
마태복음 4:1-20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12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1.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심
기도로 시험을 이기심
본문 1-2절에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 가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거기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언제나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항상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모든 일을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역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40일간 광야 금식 기도로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일을 내내 기도로 하시었습니다.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고,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는 기도를 하시므로, 십자가를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생동안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셨다가 기도로 끝마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도 항상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모든 일을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역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40일간 광야 금식 기도로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일을 내내 기도로 하시었습니다.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고,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는 기도를 하시므로, 십자가를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생동안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셨다가 기도로 끝마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서, 항상, 무슨 일이나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마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고 했는데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광야 40일 금식 기도하러 가신 것이 분명합니다. 마가복음 1:12-13에는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한 다음에 마귀의 시험이 온 것이 아닙니다. 40일 광야 금식기도 첫날부터 마귀는 시험을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광야로 나가신 목적은 시험을 받으러 가신 것이며 예수님은 첫날부터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 기간이 40일이 걸렸습니다. 40일 후에는 완전 승리 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히브리서 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시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체휼 하시고, 우리가 받는 시험을 몸소 다 당하시고, 다 이기시고, 이긴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물질 시험
예수님이 당하신 첫째 시험은 물질시험으로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40일 동안 굶었으니 얼마나 시장하셨겠습니까? 물질시험이 시험가운데 제일 초보계단입니다. 물질시험에 많은 사람이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물질시험에서 이기고 나와야 다음 시험을 통과 할 수 있고, 또 그 다음 시험을 통과 할 수 있습니다. 학교로 말하면 물질 시험은 초등학교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돌이 떡이 되게 하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먹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먹으라고 한 것을 먹으면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또 마귀가 간 다음에 돌 하나를 주워 돌이 떡이 되게 하여 먹으면 괜찮겠습니까? 그것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먹으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하나님의 먹으라는 명령이 없는데 마귀가 돌이 떡이 되게 하여 해 먹으라고 해서 해 먹으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먹으라”는 명령이 있을 때 해 먹어야 합니다. 40일을 굶었어도 하나님의 명령이 없으면 안 먹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없는 것은 아무리 그 떡을 주어도 먹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물질 시험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모든 세계가 지금 물질 시험에 잠겨 있습니다. 물질 때문에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다투고, 잡아먹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질 시험을 이겨야 제대로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즉, 물질을 초월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먹고, 안 주시는 것은 먹지 않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 즉 말씀을 어기는 것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성도가 물질 따라가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가지려고 하다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갑니다.
본문 4절에“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8:3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겁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에 생명이 있지 물질에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확실히 붙들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의 영혼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혼이고 예수 믿을 때에 그 죽었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또 영혼이 사는 것은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영혼이 살지 못합니다.
말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말씀의 중심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므로 영혼이 살아납니다. 또중생한 영혼이 날마다 계속 살아 나가는 것도 날마다 말씀을 먹어야 살아납니다. 신령한 영적양식의 말씀을 받아 먹어야 그날 살고 또 받아 먹어야 그날 살고, 또 받아 먹어야 그날 삽니다. 육신의 양식도 매일 먹어야 힘을 얻고 살지 않습니까? 신령한 양식도 늘 새롭게 받아 먹어야 새 생명으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산 영혼은 언제나 영적 양식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어야 날마다 소생하고, 새 힘을 얻고, 자라나고, 새 생명의 역사가 있으며 산 믿음, 산 생명, 산 길, 산 역사로 걸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먹지 못하면 생명의 역사가 없고 죽은 믿음이 되고 맙니다. 영혼이 살면 육신도 하나님이 살려 주십니다.
마태복음 6:31에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면 즉 영적 생명이 살아 나가는 역사만 있으면 다른 것은 하나님이 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일,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가는 일, 이것만 하면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무슨 집을 짓고 살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으니 믿는 일만 해나가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떡으로 만 살 것이 아니요”에서 ‘떡으로만’에서 ‘만’자가 왜 들어갔는가?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가지고 ‘육신은 떡으로 살고 영혼은 말씀으로 산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된 해석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했는데 한 손에는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한 손에는 떡을 붙들고 나가면 두주인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떡으로만’에서 ‘만’자가 들어간 것은 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에만 있다는 뜻입니다. 말씀만 붙들고 말씀대로 나가면 물질 문제는 하나님이 덤으로 준다는 뜻으로 ‘만’자가 들어간 것입니다. 영적 말씀만 붙들고 나가면 세상 것은 덤으로 주십니다. 둘 다 붙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하나만 붙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만 있으면 영적 생명이 살고 또 하나님이 물질을 덤으로 주어서 육신도 살게 하시고, 앞길도 말씀만 붙들고 나가면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확실히 붙들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명예 시험
본문 5-6절에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시험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가서 마귀가 한번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마음으로 받은 시험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인기를 얻고, 네가 위대해 질것이다”라는 예수님을 높이기 위한 마귀의 시험입니다. 그러면 “큰일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너를 우러러 보고 네 명령을 다 순종 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시편 91:11-12의 말씀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신다는 것은 성도가 믿음을 지켜 나갈 때에 위태한 지경을 당하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는 시험입니다. 성경을 순종하면서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데 자기를 위해서 성경을 갔다가 이용합니다. 성경을 왜곡시키는 자들은 다 이와 같이 자기를 위해서 말씀을 오용합니다.
마귀의 시험은 성경을 오용하며, 본뜻이 아닌 다른 뜻을 붙여서 성도를 미혹합니다. 요새도 성경의 본뜻을 어겨서 성도를 미혹시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원은 영적 구원으로 우리의 영혼을 죄 가운데 구원해서,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는 것을 뜻하는데, 해방 신학에서의 구원은, 기독교가 사회구원 해야 된다하며, 기독교 사회주의로 성경을 오용합니다. 또 인본주의로 하나님 일을 크게 하겠다는 것도, 성경을 오용해서 하나님 일을 잘 하겠다는 시험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고, 오용하고, 사람을 미혹시키고 인본주의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것들이, 다 마귀의 시험입니다. 마귀도 성경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성경의 원리와 성경의 본 뜻에 맞지 않습니다.
본문 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또 성경으로 이기셨습니다. 마귀가 성경을 가지고 시험했으나, 예수님은 ‘또 기록하였으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신 것입니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을 가지고 오는 마귀의 시험은 ‘또 기록하였으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겨야 됩니다. 성경의 한 구절을 보면 그럴 듯하지만, 다른 곳에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원리 원칙, 원뜻. 원목적이 있는데, 어느 한 절만을 가지고 나가면 삐뚤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또 기록 하였으되’를 말할 수 있으려면,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을 가지고 오는 마귀의 시험은 ‘또 기록하였으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겨야 됩니다. 성경의 한 구절을 보면 그럴 듯하지만, 다른 곳에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원리 원칙, 원뜻. 원목적이 있는데, 어느 한 절만을 가지고 나가면 삐뚤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또 기록 하였으되’를 말할 수 있으려면,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많이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성경을 많이 배워서, 마귀가 성경을 가지고 시험할 때, ‘또 기록하였으되’로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길러나가야 합니다. ‘또 기록하였으되’를 못하면, 마귀의 시험에 넘어 갑니다.
영광 시험
본문 8-9절에,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마귀가 한번만 절하면 천하만국의 그 영광을 다 네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한번만’ 절하면 다 준다는 것입니다. 이 ‘한번’이 중요합니다. 절 한다는 것은 진리를 양보하는 것, 신앙 양심을 양보하는 것, 옳지 않은 것에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는 언제나‘한번만’으로 시험한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넘어 가면 안 됩니다. 술도 “한잔만 마시라”고 합니다. 한잔만 마시면 “석잔 까지도 괜찮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석 잔은 마신다”고 하고, 석잔을 마시면, ‘구주 예수’라고 해서 “아홉 잔 까지도 마신다”고 하며, 술 마시는 자리로 끌고 갑니다. 그러므로 ‘한잔’에서 이겨야 됩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지, “한잔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고 하며, “한잔은 괜찮다”고 하며 술을 마시게 합니다. 그러나 한잔에 술이 안 취하면 백 잔에도 안 취해야 합니다. 한잔부터 백 잔이 되었지, 한꺼번에 백 잔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한번만’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또 둘째 계단에서는 마귀가 ‘남도 그러는데...’ 하며 미혹시킵니다. 셋째 계단에서는 ‘차차 하지요’라고 미혹시킵니다. 1년이 가도 “차차”, 3년이 가도 “차차”, “차차, 차차” 하다가 죽으면 “아차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한번에서 이겨야 합니다. 신앙의 정조는 한 번에 이기는 것입니다. “한번만 절해라, 한번만 양보해라”고 마귀가 할 때 예수님은 신명기 16:13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의 말씀을 댈 때 마귀가 떠났습니다. “한번만 양보하면 천하 영광을 다 준다”고 할 때 예수님은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것은 마귀를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를 섬겨라”에서 ‘다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만'하면, 다른 것은 다 부인하는 것입니다. ‘다만’하는 것은, ‘이것 하나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 하나만 한다”는 것입니다. 천하 영광도 하나님이 주시면 올 것이고, 안 주시면 안 옵니다. 하나님 한분만 섬기는 ‘이것 하나만 나는 한다’라고 ‘다만’ 할 때 마귀는 뚝뚝 다 떨어져 나갑니다. ‘다만’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같이 하셔서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져 나갑니다. 하나님 한 분만 모시면 다른 것은 다 그 안에 있습니다. 즉 천하를 다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
모시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고, 내 아버지이므로 다른 것은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말씀만 붙잡고 모든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천사들이 나와서 수종 들었습니다.
2. 예수님이 전도하심
본문 12-20절에,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앚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과 이방의 갈릴리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예수님이 가시므로 큰 빛이 비취어졌습니다. 죄만 짓고 우상을 섬기며 흑암 속에 있는 백성에게도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나갑니다. 요새도 흑암에 앉은 백성이 많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이 복음을 가서 전파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 형제, 야고보 형제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세상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힘 있게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망의 흑암에 앉은 백성들을 생명으로, 빛으로 인도하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공산권에도 우리가 이 일을 잘 하여야겠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야 하며,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더 남겨서 가야합니다. 사망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서 많은 생명들을 살려나가는 일이 우리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