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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5일 일요일

열왕기하 13:14-25 이스라엘 요아스 왕과 엘리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스라엘 요아스 왕과 엘리사
열왕기하 13:14-25

14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15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16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17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18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20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 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21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22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23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쫒아내지 아니하셨더라 24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25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하였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1. 이스라엘 요아스 왕과 엘리사의 관계

심은 대로 거두고 믿는 대로 받음

본문 14-15절에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귀히 쓰는 종이요 능력이 충만한 종이라도 죽을 병이 들리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면 병이 다 낫는다. 무슨 병이든지 기도만하면 다 낫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낫게 될 병은 기도하면 다 낫습니다. 그러나 죽을 병은 기도해도 죽습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에 걸리니까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전에 엘리사가 자신의 선생인 엘리야에게 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아스 왕이 엘리사를 향하여 그대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심은 대로 거두고 믿는 대로 받는 것입니다.

활을 잡으소서, 쏘소서, 살들을 취하소서, 땅을 치소서

본문 16절에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활을 잡은 왕의 손을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안찰(按察)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왕과 같이 하심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왕과 같이 하시는 것과 왕이 활을 가지고 원수를 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임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엘리사가 활과 살을 가진 왕의 손을 안찰하였습니다.

본문 17절에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요아스 왕이 동편 창을 향하여 활을 쏘았습니다. 당시에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동쪽을 점령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군대가 점령하고 있는 그곳을 향해서 활을 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 요아스 왕이 활을 쏘았습니다. 몇 개나 쏘았는지 모르지만, 엘리사가 “살들을 취하소서”라고 한 것을 보니 화살이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인 것 같습니다. “동쪽으로 쏘소서”라고 하여 왕이 쏘았습니다. 여러 개를 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아람 사람들이 아벡을 점령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엘리사가 아벡에서 최후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왕에게 예언을 했습니다.

본문 18-19절에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엘리사가 “살들을 취하소서”라고 하니 왕이 화살들을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화살을 든 손으로 땅을 치소서”라고 하니까 땅을 세 번 쳤습니다. 처음에 엘리사가 “화살들을 잡으소서”라고 하니까 왕이 잡았습니다. 그리고 “땅을 치소서”라고 하니까 세 번을 쳤는데, 이에 엘리사가 노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왜 대 여섯 번을 치지 아니하고 세 번만 쳤습니까? 처음에 몇 번을 치라고 했습니까? 대여섯 번을 치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도 않았는데, 엘리사는 왜 노하는 것입니까? 더 치라고 하면 될 텐데, 대여섯 번 쳐야 할 것을 어째서 세 번만 쳤느냐고 하면서 노했습니다. 어쨌든 엘리사는 이제 왕이 화살들로 땅을 세 번만 쳤으니까, 아람 사람을 세 번만 치고 더는 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네 번째 부터는 아람 사람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대여섯 번 쳤어야 할 것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처음에 엘리사가 화살들을 들고 대여섯 번을 치라고 했음에도 세 번만 쳤으면 노할 일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치라고 하여 세 번을 쳤는데 노하고 책망하며 세 번 밖에는 원수를 못 친다고 하니까 왕이 너무나 섭섭했을 것입니다.

책망을 달게 받고 순종하며 책임을 자기가 지고 나갈 때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짐

세상에는 섭섭하다고 생각하면 섭섭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다 믿음으로 이기고 책임을 자기가 지고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섭섭해지려면 얼마든지 섭섭해집니다. 처음부터 두 번을 더 치라고 하면 될 것을, 노하여 앞으로 왕은 아람을 세 번 밖에는 못 친다고 하니 정죄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섭섭하게 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책임을 자기가 지고 달게 받아야 합니다. 

제가 전화를 하다가 전화번호 숫자 하나를 틀렸습니다. 34번을 눌러야 하는데 32번을 눌렀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아무개 씨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몇 번에 전화했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제가 “34번입니다”라고 하니 제가 전화를 잘못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화 좀 똑똑히 걸지, 무슨 전화를 그렇게 거느냐”며 욕을 합니다. 한참 욕을 먹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속에서 섭섭한 생각이 들려고 했습니다. ‘전화를 잘못 걸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욕을 하는구나.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일을 되새겨보니까 내가 그 사람을 번거롭게 했으니 욕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잘못했으니 욕먹어 마땅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달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런 실수를 다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는 전화할 때에 숫자를 잘못 누르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합니다. 사실을 달게 받으면 그것이 다 은혜가 됩니다. 다음에 실수하지 않도록, 실수 안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려고 욕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그 번호를 알고 그 사람은 제 번호를 모르니까 32번에 전화를 걸어 그 이상의 욕
을 해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도 한 번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내가 욕을 달게 먹어야 옳지, 왜 그 사람에게 욕을 해야겠습니까? 그 사람이 저에게 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욕을 하면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고 사람 앞에서도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달게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섭섭한 생각이 많이 들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음으로 받으면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책임을 지고 ‘내가 잘못했다. 내가 대여섯 번을 치면 되었을 것을 왜 세 번만 쳤는가? 이런 욕을 먹어도 마땅하다.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대여섯 번을 쳤으면 하나님의 종도 만족하였을 것이고 나도 복을 받을 것인데, 내가 왜 세 번만 쳤는가? 내가 잘못했다’라고 생각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 살들로 땅을 무조건 치라고 하고서 ‘왜 대여섯 번을 치지 않았느냐?’라고 하면 섭섭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 더 치면 되지 않겠느냐”하고 좋게 말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섭섭한 생각은 다 쓸데가 없습니다. 자기만 손해인 것입니다. 만일 요아스 왕이 엘리사에게 섭섭하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으로라도 불만을 품었다면 자기만 망하는 것입니다. 책망을 받을 것은 마땅히 책망을 받아야 옳습니다. 그러나 책망 받은 것에 대해 섭섭하여 불만을 품고 대항을 한다면 자기만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책망을 달게 받고 순종하며 잘못된 책임을 자기가 지고 나갈 때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요아스 왕을 책망한 이유 - 원수와 끝까지 싸우려는 정신이 없음

엘리사는 책망을 해야겠기에 책망을 한 것입니다. “살들을 취하소서”, 그리고 “땅을 치소서”라고 할 때에 이미 왕으로 깨달을만하게 한 것입니다. 아람을 치도록 깨닫게 한 것입니다. 왜 깨달을만하게 한 것인가 하면 벌써 활을 쏜 것이 있지 않습니까? 또 왕이 엘리사에게 이미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요아스 왕이 엘리사는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병거와 마병인 줄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엘리사인 줄을 알았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제일 큰 적군은 아람입니다.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의 동부를 다 점령하여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제일 큰 원수는 아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동안 아람의 침략에서 보호해준 사람은 엘리사라는 것을 왕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엘리사가 “동편 창을 열고 활들을 쏘소서”라고 해서 쐈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이라 아람 군대를 진멸할 때 쓰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이라”고 분명히 말해주었습니다. 아람을 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왕은 현재 제일 큰 대적이 아람이고, 아람 군대로부터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을 알았습니다. 또 화살을 여러 개 쏘는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를 진멸해주실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살들을 취하소서”라고 하였는데, 살은 전쟁에서 쓰는 것이 아닙니까? 살들을 취하는 것은 원수를 치라는 것으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화살을 들고 “땅을 치소서”라고 하는 것도 왕이 원수를 치는 것으로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먼저 활들을 쏘라고 하였고 그다음에 땅을 치라고 한 것을 보면 원수에 대해서 활들을 치라는 것을 알도록 한 것입니다. 알도록 만들어놓고 이제는 “땅을 치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즉, 땅을 치는 것은 아람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원수를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 번만 치는 것은 원수에 대해서 끝까지 싸우려는 정신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왕을 책망한 것입니다. 물론 그다음에 두 번을 더 치면 되었습니다. 세 번을 치고 나서 두 번을 더 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원수를 향해 싸우는 왕의 정신이 희미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원수를 향해서 끝까지 싸우는 정신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싸우다가 그만두는 정신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이런 정신을 가지고 앞으로 아람 군대와 싸운다고 하면 몇 번 싸우다가 그만 실패할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노하여 “대여섯 번을 칠 것인데 왜 세 번만 치는 것입니까?”하고 권면한 것입니다. 죽을 병에 걸렸어도 왕에게 간곡한 책망과 부탁을 하고 권면을 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왕의 정신이 틀렸습니다. 왜 하나님의 원수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가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려는 마귀의 군대에 대하여 관용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조금 싸우다가 중단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마귀와 더불어 싸우려 하지 않고 어째서 세 번만 하고 그만 하려는 것입니까? 정신 상태가 해이하고 싸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가 노해서 책망을 한 것입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며,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 것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기뻐하십니까? 죄와 싸우되 끝까지 싸우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죄와 싸우다가 의와 진리를 양보하고, 비 진리와 싸우다가 진리를 양보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싸우다가 말씀을 양보하고, 의와 싸우다가 의를 양보하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세워 나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한 번 옳다고 주장했으면 끝까지 세워 나가야 합니다. 선한 싸움을 한 번 시작했으면 끝까지 싸워나가야 하고 죄와 싸우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끝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또 히브리서 12장 5절에는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징계를 받을 때에 회개하고 죄와 더불어 끝까지 싸워서 그 죄를 떠나야 합니다. 싸우다가 몇 번하고 그만 두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다가 얼마 안 가서 그만 두어야겠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도 원수가 살아서 대적을 하고 있는데 힘들다고 그만 두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면서 두세 번 하다가 그만 두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것이 아무리 힘이 들어도 끝까지 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진리를 세워나가고 반대세력이 나와도 또 세워나가야 합니다. 세 번, 네 번, 안 되면 다섯 번, 일곱 번, 백 번, 천 번, 만 번이라도 옳은 진리라면 끝까지 세워나가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싸우겠다는 정신도 없이 대적이 많으면 양보하고 나아가 옳은 것도 양보하면 안 됩니다. 옳은 것은 끝까지 세워 나가야 합니다. 진리를 양보하면 안 됩니다. 진리는 생명을 내놓고 세워나가야 합니다. 몇 번 하다가 끝내면 안 됩니다. 끝까지 해나가야 합니다. 죽도록, 완성할 때까지 해나가야만 이 일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중간에 피곤하다고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피곤하지 아니하다는 것은 선을 행하다가 중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피곤해서 못 하겠다, 아무리 해보려 해도 안 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피곤해서 중단하는 것은 요아스 왕처럼 세 번 치고 그만 두는 것과 같습니다. 대여섯 번을 쳐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데 중간에서 피곤하여 낙심하여 중단하면 안 됩니다. 낙심하지 말고 양보하지 말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왕을 면책하여 노하고 세 번 밖에는 아람을 칠 수가 없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힘들다고 그만 두지 말고 피곤해서 쓰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일을 하되 죄와 싸우고 마귀 역사와 싸우며 의 세워나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믿는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일, 시온을 지키는 일,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는 일, 끝까지 이 일을 해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일을 하다가 그만 두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하다가 그만 두는 정신을 버려야 합니다. 불의와 싸우고 비 진리와 싸우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진리 세워나가기를 계속하고 내 자신이 믿는 일하기를 계속하는, 그런 정신을 우리가 가져야겠습니다.

2. 엘리사의 최후

시체가 죽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섬

본문 20-21절에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 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했였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죽은 지 한 일 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일 년이 되었는데, 모압 적당(賊黨)들이 국경선을 넘어 침략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묘실에 누구의 시체를 던졌다고 했습니까? 그 당시의 묘실은 굴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시체를 던질 수 있는 굴과 같은 곳인가 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해가 바뀐 것을 보니까 엘리사를 장사한지 일 년 쯤 된 것 같습니다. 엘리사는 이미 살은 다 썩고 뼈만 남아 있는데,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지내고 있었는데, 죽은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때 모압 적당들이 침략을 해서 들이닥쳤습니다. 모압 적당들이 갑자기 쳐들어오니까 장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례를 하다가 중간에 던지고 달아나야 했습니다. 마침 옆에 엘리사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마자 벌떡 일어났습니다. 엘리사의 뼈에 죽은 사람의 시체가 닿으니까 죽었던 사람이 일어난 것입니다. 엘리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고 장사한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종들을 통하여 생명 살려나가는 일을 계속 해나가심

그러면 무슨 뜻으로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것입니까? 엘리사의 뼈에 시체가 닿으니 죽었던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살리셨습니까? 이것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신 것과 같이, 죽었던 사람을 묘실에서 살리신 것 같습니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고 육신의 몸으로 일시적으로 다시 살아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신령한 부활체로 변하는 것이 아닌데, 살리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살아나게 하신 것입니까?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추측과 해석이 있지만, 과거의 엘리사, 즉 죽기 전의 엘리사가 하나님의 참된 종이었음을 상기시키시는 뜻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참된 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살려내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이 사람을 살려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참된 종들을 통하여 생명 살려나가는 일들을 하시고, 과거 엘리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많이 살려냈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려고 지금 시체가 살아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다음에 엘리사의 묘실에 또 시체를 가져다 던진다고 해서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은 사람마다 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시려는 뜻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즉, 과거에 참된 종 엘리사를 통하여 죽었던 영혼을 살려내시고 심령을 살려내셨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고, 앞으로도 참된 종을 통하여 죽었던 심령을 살려내실 것임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하실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선지자이기 때문에 많은 생명들을 살려 내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엘리사를 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엘리사 외에도 다니엘이나 예레미아,에스겔이나 요엘 선지자 등을 통하여 생명들을 살려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 그리스도 다음에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통하여 살려내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신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종들을 통하여 생명 살려나가는 일을 어느 시대에나 계속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과 참된 진리를 가지고 생명들을 살려나가는 일을 계속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하며 절대 변하지 않음

본문 22절-23절에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쫒아내지 아니하셨더라”고 하셨습니다. 아람 왕 하사엘이 늘 이스라엘을 학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 그 언약을 기억하셔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 때문에,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늘 보호하시며 긍휼히 여기시고 또 지켜주시며 권고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잘해서 멸망시키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 또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하신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절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늘 기억하셔서 이스라엘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시고 부족하지만 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또 긍휼히 여겨주시고 잘못을 해나가도 권고해주시며 멸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로 하나님 앞에서 쫒아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이 큰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으로 우리를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고 긍휼히 여기사 버리지 않으시고 늘 인도해주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항상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끝까지 하겠다는 정신이 중요함

본문 24-25절에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그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두어 성읍을 회복하였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아스가 아람의 벤하닷을 세 번 쳐서 파하였습니다. 왜 세 번 쳐서 파했습니까? 엘리사가 땅을 치라고 할 때에 세 번 치지 않았습니까? 땅을 세 번 쳤으니까 세 번쳐서 파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노했습니다. 왜 세 번밖에 못 쳤습니까? 정신 상태가 몇 번 못치고 말 상태였기 때문에 그 정신 상태 그대로 쳤던 것입니다. 실제로 전쟁하기 전에 신앙의 무장이 단단히 되어서 ‘내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되 생명을 내놓고 지킬 것이다’라고 결심하고 나갔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끝까지 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 상태가 두서너 번하다가 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전쟁에 나가서도 두세 번밖에 못하고 물러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무장이 앞서야 합니다. 영적 무장을 먼저 해서 하나님의 의를 내세워 끝까지 나가야 합니다.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을 끝까지 해야 합니다. 비 진리와 더불어 싸우는 일을 끝까지 해야 합니다. 진리 운동을 하는 이상, 끝까지 진리 운동을 해나가야 합니다. 순종을 해도 끝까지 해야 합니다. 몇 번 하다가 그만 두면 안 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어떻게 섬겼다고 했습니까? 엘리야가 승천하려고 할 때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했습니다. 자기 선생을 아버지로 섬겼고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믿고 존경을 하니까 요아스 왕이 엘리사를 그렇게 받들어 섬겼습니다. 자기가 부모에게 한 대로, 윗사람에게 한 그대로 아래 사람에게 대접 받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끝까지 한 것입니다. 엘리사가 하다가 그만 둔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늘로 가려할 때에도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따라갈 때까지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따라가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길갈에서 여리고로 갈 때에 엘리야가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갔습니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엘리야가 하늘로 올려 갈 때에도 끝까지 따라갔고 엘리야의 의복이 내려올 때에도 그것을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의복이 회오리바람을 타고 다닐 때 얼마나 왔다 갔다 했겠습니까? 그래도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엘리사는 조금 하다가 그만 두는 정신이 아니고 끝까지 하는 정신입니다. 따라가도 끝까지 하고 바라봐도 끝까지 하는, 진정을 다하는 정신입니다. 그러나 요아스 왕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치라고 했으면 끝까지 쳐야 하고 여러 번 쳤어야 했는데, 조금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나가서 전쟁할 때에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세 번하다가 그만 두는 것입니다. 다시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으로 실력이 다인 것입니다. 정신적인 생각으로도 그것이 전부이고, 실제로 전쟁에 나갔을 때에도 그 실력이 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이 불의한 일과 비 진리와 끝까지 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진리를 끝까지 세워나가는 정신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