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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3일 금요일

요한복음 19:1-27 빌라도의 심문과 재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빌라도의 심문과 재판
요한복음 19:1-27

19:1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하였다. 
19:2 군인들이 가시로 관을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겉옷을 입히고, 
19:3 그분께 나와서 "유대인의 왕, 만세." 라고 말하며 그분의 뺨을 때렸다. 
19:4 빌라도가 다시 밖으로 나와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보아라, 내가 그 사람을 너희들에게 데려오겠다.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음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19:5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자주색 겉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말하였다. "보아라, 이사람이다." 
19:6 대제사장들과 하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소리쳐 말하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아라.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 라고 하였다. 
19:7 유대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 율법이 있는데, 그 율법에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이는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19:8 빌라도가 이 말을 듣자 더욱 두려워하며 
19:9 다시 총독 관저로 들어가서 예수께 묻기를 "네가 어디서 왔느냐?"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대답하지 않으셨다. 
19:10 그러자 빌라도가 말하기를 "네가 나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내게는 너를 놓아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다는 것을 알지못하느냐?" 하니,
19:11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위에서 네게 주지 않으셨다면, 너는 내게 대하여 아무 권한도 갖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19:12 이 말 때문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쳐 말하기를 "이 사람을 놓아 주면 총독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왕이라고 하는 자는 모두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입니다." 하므로, 
19: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자, 예수님을 데리고 나와서 표석이 깔린 곳의 재판석에 앉았다. 
19:14 그 날은 유월절 예비일이었고, 때는 육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보아라, 너희들의 왕이다." 하니, 
19:15 그들이 소리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가 말하기를 "너희들의 왕을 내가 십자가에 못 박으란 말이냐?" 하니, 대제사장들이 대답하였다. "가이사 외에는우리에게 왕이 없습니다." 
19:16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내주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넘겨 받았다. 
19:17 예수께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의 장소라고 불리는 곳으로 나가셨으니, 그곳은 히브리어로 골고다라고 하였다. 
19:18 거기서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다른 두 사람도 그분과 함께 양쪽에서 못 박고 예수님을 가운데 두었다. 
19:19 빌라도가 명패도 써서 십자가에 붙였는데, 거기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 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19:20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으므로, 유대인들 중 많은 이들이 그 명패를 읽었는데 그것은 히브리어와 라틴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19: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말하기를 " '유대인의 왕' 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 이라고 쓰십시오." 라고 하였으나, 
19:22 빌라도가 대답하였다. "내가 쓸 것을 썼다." 
19:23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분의 겉옷을 가져다가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각 군인마다 한 부분씩 차지하고, 속옷도 차지하였는데 속옷은 이은 데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으므로, 
19:24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것은 찢지말고 누구의 것이 되는지 제비를 뽑자."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내 겉옷을 서로 나누고 내 속옷을 제비 뽑았습니다." 라고 말한 성경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군인들이 이런 일을 하였다. 
19: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자신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서 있었다. 
19:26 예수께서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 하셨고, 
19:27 그 다음에 그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보아라, 네 어머니이시다." 하시니,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다. 
19:28 이 말씀 후에 예수께서 모든 것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목마르다." 라고 하셨다. 
19:29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꿰어 예수님의 입에 대니,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신 후 머리를 숙이시고 숨을 거두셨다. 
19:31 그 날은 준비일이었다. 그 안식일이 큰 날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이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고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치워 달라고 요청하니, 
19:32 군인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19:33 예수께 와서는 이미 돌아가신 것을 보고 그분의 다리를 꺾지 않았다. 
19:34 군인들 중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19:35 이것을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의 증언이 참되다. 그는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았으니, 그의 증언을 너희도 믿게 하려는 것이다. 
19: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한 성경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19:37 또 다른 성경에 다시 말하기를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자를 볼 것이다." 라고 하였다. 
19:38 이일들 후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가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들을 무서워하여 그것을 숨겨 왔다. 빌라도가 허락하니, 그가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왔다. 
19:39 전에 예수님을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알로에를 섞은 것을 백근쯤 가지고 와서, 
19:40 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관습대로 향료들과 함께가는 베로 쌌다. 
19: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고, 그 동산에는 아직 아무도 장사된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19:42 그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었고 또한 무덤도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거기에 두었다.

1. 빌라도의 재판

예수님께서 우리가 맞을 매를 맞으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이 기록이 됐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다 짊어지시고, 우리가 받을 고난을 대신 다 받으시고, 우리가 받을 사형을 대신 받으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본문 1절에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아무 죄가 없는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채찍질을 했습니다. 요한복은 18:38에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라고 해놓고는 예수님을 이렇게 채찍질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채찍에 맞으신다는 말씀을 응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런 채찍이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고 했습니다.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씌웠다는 것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왕으로서의 왕관을 씌우는 의미에서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서 씌웠습니다. 그 가시에 찔리어서 피가 나고 매우 아픈 상태에 있으셨고, 또한 군병들이 자색 옷을 입히고 예수님을 손바닥으로 때렸는데, 그때에 예수님은 매를 많이 맞으셨습니다. 

이사야 53:4-5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채찍에 맞아야 할 그 채찍을 주님께서 대신 다 맞으셨습니다. 이렇게 가시 면류관을 엮어서 조롱과 비방을 당하시며,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군병들은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며 와서 꿇어 엎드려서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희롱하고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때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가 맞을 것을 대신 맞으시며, 우리 죄 값으로 이렇게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놔주지 않은 정치인 빌라도

본문 4절에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무리 심문해 봐도 아무 죄가 없는 줄을 알고 나와서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다”는 말을 빌라도가 여러 번 합니다.

본문 5절에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라고 했는데, 예수님에게 아무 죄가 없으면 석방을 했어야 마땅하겠는데, 빌라도가 예수님을 이렇게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채로 대중 앞으로 끌고나왔습니다. 이렇게 빌라도는 비루한 정치가였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면 놔줘야 되겠는데 아무 죄 없는 예수님을 끌고 다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비루한 정치가인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 6절에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죄를 찾지 못했다고 벌써 몇 번째 천명하면서도 예수님을 석방하지 못하고, 지금 대제사장의 세력에 눌려서 이렇게 예수님을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우리 법대로 하면 당연히 십자가에 못 박을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때문에 못 박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빌라도는 알만한 것입니다.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죄는 로마 법정에서 죽일만한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문제이지 정치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종교문제로 죽이려고 하는데 그만 빌라도는 거기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타락한 종교권과 부패한 정권이 합해가지고 예수님을 죽는 데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정치가는 마땅히 공의를 행해야 되겠는데,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제사장들에게 따라가고, 타협하고 협상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타협하고 협상하는 것 자체가 벌써 잘못된 것입니다. 죄가 없으면 놔줘야 되고 죄가 있어야 벌해야 되겠는데, 제사장들이 시기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종교문제로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종교지도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양심을 굽히고, 정의를 굽히고 빌라도가 예수님을 놔주지 못하고는 이렇게 예수님을 죽이는데 까지 나가게 됩니다.

본문 7-9절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했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면 어떡하겠는가?’하며 빌라도는 안 믿는 사람이었어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어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 두려운 마음이 조금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님에게, “너는 어디로서냐?” 하고 물어보았지만, 예수님은 대답하여 주지 않으셨습니다. 죄 없는 줄 알면서도 제사장에게 피동이 되어서 자꾸 물어보는 것에 대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심문의 자리에서도 바른 것을 알려주심

1) 빌라도의 권세로 바로 행했어야 했음 

본문 10절에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스스로 ‘나는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고 놔줄 권세도 있다’고 자기 권세를 말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주지 않았다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빌라도에게 권세를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권세를 주신 목적은 권세를 가지고 바로 하라고 준 것이지 이렇게 권세를 가지고 의인을 정죄하고 죽이라고 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권세 준 것을 바로 쓰지 못하면 너는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2) 빌라도에게 넘긴 제사장들의 죄는 더 큼

 “나를 네게 넘겨준 죄는 네 죄보다 더 크니라”,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준 죄는 제사장들의 죄입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죄는 네 죄보다 더 크다고 예수님께서 판결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판결하는 자리에 외부적으로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빌라도를 심판하시고 또한 제사장들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한 판결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전에서 판결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법에서 판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빌라도에게 끌려 다니며 사형선고에 받는 자리에 나가시면서도,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언제나 정정당당하시고, 도리어 그 사람들의 죄를 불쌍히 여기시고 탄식하시면서 “왜 그렇게 이런 악한 일을 하느냐? 네게 권세 준 것은 하나님께서 주었는데, 악한일 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바로 서지 못 하면 그 죄가 얼마나 큰데, 그 죄 값을 네가 반드시 받을 것인데, 제사장들도 받을 것인데, 어찌하여 이런 악한 일을 행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이 범죄하고 있는 사실, 이런 범죄를 하면 안 된다는 것, 죄 값은 반드시 멸망이라는 것과 심판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벌써 판결을 다 받은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애씀

1) 빌라도의 두려움 

본문 12절에,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놓는 게 마땅하면 석방이다 하고 놔주면 끝나는데 애를 쓰기만 했습니다. 빌라도에게는 로마 총독의 권세가 있고 또 경비대를 사용할만한 권세가 있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놔주는 것을 반대해서 군중들의 떠드는 소리가 심하고 반역이 심하면, 로마 경비대가 빌라도에게 있기 때문에 로마 경비대를 시켜서 해산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놔주어야 될 때는 마땅히 놔주고 제사장들과 여러 백성이 반역을 일으키면 경비대에게 명해서 다 진압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겁한 정치가는 타락된 종교 지도자들에게 잡혀가지고 돌아갔습니다.
빌라도가 아무리 놓으려고 하지만, 유대인들은 소리 지르며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라며 빌라도를 위협 공갈하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충신이 아니라고,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가이사의 반역자라고 하니, 그것을 어떻게 놓아주겠습니까? 예수를 놓아주면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못 된다’는 말에 겁이 났습니다. 빌라도에게 있어서 가이사 황제는 우상이었고,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게 되면 총독의 자리가 파면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에,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 (히브리 말로 가바다) 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고 했는데, 자기의 정권,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빌라도는 재판을 하려고 앉았습니다.

2) 보라 너희 왕이로다 

본문 14절에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 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재판하느라고 나와 앉아서 “보라 너희 왕이로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15절에 “저희가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라고 했는데, 실제로 이 사람들이 가이사가 황제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대제사장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가이사 식민지 밑에서라도 왕이 있으면 독립할 수 있으니까, 사실 유대인의 왕이 있으면 제사장들이 좋아해야 되는데 안 그러니까, 빌라도가 “너희 왕이라고 하면서 왜 죽여 달라고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제사장들이 우리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아주 가이사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합니다. 속으로는 가이사 섬기는 것을 좋아서 섬기는 것이 아닌데,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려고 가이사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했습니다. 왕이라고 하는 자는 가이사의 반역자이니 반드시 죽여야 된다고 합니다.

2.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히신 예수님

본문 16-17절에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라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내주었습니다.
죄가 없다고 빌라도가 여러 번 말했는데, 불의의 재판입니다. 제사장들이 지금 데려온 것도 시기로 데려온 것도 알았고,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백성에게 아부하느라고, 백성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주었습니다. 정치가들이 이렇게 공의에 서지 못하고 백성에게 아부하고, 백성의 비위를 맞추려드는 이런 정치가가 많습니다. 이런 정치가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얼마 안가서 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맡아가지고 예수님에게 십자가 형틀을 지우고 해골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무거운 형틀을 지고 가시다가 넘어지시면 채찍으로 때려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나중에는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지워가지고 골고다까지 갔습니다.

본문 18절에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예수님은 못 박히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우리가 받을 형벌을 다 받으시고, 우리가 받아야 될 고난을 다 받으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예수님께서 고난이 심했겠는지 짐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히 상상도 못합니다. 한사람의 죄를 위해서 한사람이 죽는 고통만 해도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모르겠는데, 예수님은 만대만민 중의 택한 백성 몇 억만 사람의 그 죄를 다 짊어지시고 그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죄 값으로 죽을 고난을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얼마나 그 고난이 크겠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가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병에 걸렸을 때에 아픈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아픕니까? 말할 수 없이 아프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픈 때도 있습니다. 죽는 사람은 얼마나 아팠으면 죽었겠는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몇 억만 사람, 몇 백억 사람, 창세 이후로부터 말세까지 하면 몇 십억, 몇 백억 사람들의 죄를 한꺼번에 짊어지고 그 벌을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그 고난을 단번에 다 예수님께서 받았습니다. 한사람이 죽는 죄도 큰데, 몇 십억 되는 사람의 죽는 고통을 한꺼번에 받으셨다는 것은 말할 수 없고, 육신의 고통도 말할 수 없지만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벌, 정죄 받고 형벌아래 들어가는 마음의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인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죽을 고난을 예수님께서 다 당하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시면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본문 19-20절에,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 되었더라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십자가 위에다가 죄 패를 써 붙였습니다. 죽이는데 죄명이 있어야 하니까 뭐라고 썼는가 하면, ‘유대인의 왕’이라고 히브리 말과 헬라 말과 로마 말로 기록했습니다.

본문 21절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이렇게 말하니까, 본문 22절에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고 합니다.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쓴 것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입니다. 영적 왕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이스라엘 나라의 영적 왕입니다. 왕으로서 구속 사업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인데 유대인의 왕이라 쓰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이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죽이면서까지도 가혹하게, “그냥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라”고 빌라도에게 와서 요청을 했습니다. 빌라도는 “나의 쓸 것을 썼으니 잔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야 옳은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빌라도에게 이렇게 시켰고 또 제사장들의 말을 안 들어주게끔 했습니다. 

본문 23-24절에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서 나눈다고 했습니다. 시편 22:18에 있는 말씀을 응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시 22:18)”. 시편 22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나타낸 장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응해져서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다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시편 22편이 다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시고, 시편 22편에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시는 첫마디가 있는데, 그것을 읊으면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예수님께서 눈으로 보시면서, 승리의 십자가를 지고 나가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어머니를 부탁하심

본문 25-27절에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가시 면류관에서 피가 나오고, 양손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발의 못 박은 자리에서 피가 흐르는데, 우리가 몇 억만 사람의 택한 백성의 당할 고난을 한꺼번에 당하는 가운데 있는데, 그렇게 고난가운데서라도 예수님은 정신이 똑똑하시고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을 계속하시면서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바로 하려고 힘을 쓰십니다. 

십자가 밑에 어머니가 오고, 그다음에 사랑하는 요한이 그 밑에 오는데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가는 것입니다. 죽으면서라도 예수님은 어머니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 가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느라 천륜을 이루느라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만, 인륜에 있어서도 마땅히 자기가 하여야 할 것인 어머니에 대한 도리를, 죽는 자리에서 그렇게 아프고 쓰라린 고통가운데서 어머니를 생각하시고,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했습니다.
다른 제자는 다 달아났고, 지금은 사도요한 하나밖에 십자가 밑에 따라간 사람이 없습니다. 큰 환난인 십자가를 당할 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열 두 제자가운데서도 한 사람, 요한 외에는 그 십자가 밑에 간 사람이 없었고,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여자 몇 사람만 간 것뿐입니다. 
환난당할 때에 끝까지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가는 제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도 평안할 때에만 주여 주여 하며 따라가는 자가 되지 말고,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가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사각오하고 십자가 밑에 따라가려면 죽을 각오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이 그 제자도 죽일 수 있으므로 결사각오하고 예수님의 고난 받는 자리까지,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데 까지 운명하는데 까지 따라가는 그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자의 자격으로 하신 말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사람의 자격으로 못 박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으로 못을 박히신 것입니다. 성자의 구속 사업을 위해서 못 박히시는데, 육신으로는 마리아가 모친이지만 성자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에 있어서는 일개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모친을 여자라고 불렀고, 또 자기 제자에게 그 모친을 부탁을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부모를 얼마나 공경하여야 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부모를 얼마나 우리가 공경해야하는가? 구약에 보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아들은 때려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죽으면서까지 자식 된 도리, 인륜의 도리를 다하는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고 해서 부모를 버리는 자는 성경위반입니다. 인륜의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부모에 대한 도리, 교회에서는 교역자에 대한 도리, 형제에 대한 도리, 친구에 대한 도리, 국가에 대한 도리, 임금에 대한 도리 등, 우리가 그 모든 것에서 인륜에 대한 것을 해나가면서,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이루어드리는 그러한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