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한복음 11:23-44
요한복음 11:23-44
11:23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오라버니가 일어날 것이다."
11:24 마르다가 그분께 말하였다. "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부활할 것을 압니다."
11:2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곧 부활이고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11:27 그 여자가 말하기를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가 믿습니다." 라고 하였다.
11:28 이 말을 하고 마르다는 돌아가서 자기 자매 마리아를 불러 가만히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11:29 그 여자가 그 말을 듣자마자 급히 일어나 그분께로 갔다.
11:30 예수께서는 아직 마을에 들어오지 않으시고 마르다가 그분을 맞이하던 곳에 여전히 계셨다.
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그 여자를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서 나가는 것을 보고, 울기 위하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그 여자를 따라갔다.
11:32 마리아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가서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말하기를 "주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니,
11:33 예수께서 마리아도 울고 함께 온 유대인들도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이 비통하여 괴로워하시고,
11:34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하시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주님, 와서 보소서." 하였다.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니,
11:36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보시오, 이분이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였는가." 하고
11:37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말하기를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분이 그는 죽지않게 할 수 없었다는 말이냐?" 라고 하였다.
11:38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으로 가시니, 무덤은 굴이었으며 돌로 막혀 있었다.
11:39 예수께서 "돌을 옮겨 놓아라." 라고 말씀하시니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말하였다.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니,
11:40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11:41 그러자 사람들이 그 돌을 옮겨 놓았고,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1:42 언제나 제 말을 들으시는 것을 제가 압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둘러선 무리를 위한 것이니, 곧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11:43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시기를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시므로,
11:44 죽었던 자가 나왔는데, 손과 발은 천으로 감겨 있었고 그 얼굴은 수건으로 싸매어져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를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 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본문 4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가정으로 나사로와 나사
로의 누이 마리아와 마르다, 세 식구가 사는 가정이 있었는데 나사로가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집에 가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장사 지낸 뒤 나흘이 되던 날에 예수님께서 그곳에 가셨습니다. 그 때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예수님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병을 예수님께서 많이 고치셨기 때문에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예수님께서 오셨더라면, 그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니 본문 33-35절에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3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라”고 하셨으면 다시 살 줄을 믿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 말씀하신 것은 다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지만 “다시 살리라”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예수님께서 전해 주셨습니다.
본문 24절에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다시 산다고 하신 말씀이 세상 끝에 가서 다시 사는 것으로 이해하여 그것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배운 것입니다. 전에 배워 놓았던 신앙입니다. 마지막에 다시 산다는 것을 배워서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에 ‘다시 산다’는 말씀에 마지막 날에 다시 산다는 것을 믿는다고 한 것입니다. 배운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배운 대로 믿는 것이 마리아와 마르다의 신앙입니다.
1.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다
본문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산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생명이시라는 것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으니,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믿는다’는 말은 ‘중생해서 믿는다’는 뜻이고, 거듭나 다시 산다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다시 살았으니, 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산 생명을 받았으니, 예수님 믿는 사람은 그 영혼이 산 영혼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죽은 영혼입니다. 산 영혼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생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 이들은 영혼이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영생의 생명이 예수님 믿는 사람에게는 다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산 영혼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산 영,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영,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영, 이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죽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다 받았는데, 이 생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접붙인 가지와 같다
요한 1서 5:13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에게 영생이 있는 것을 알게 하려고 이 요한 1서 편지를 썼다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 속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 예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있다는 말씀이고, 또한 죽었던 영혼이 물과 성령으로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살아서 믿는 사람은 산 영을 가지며 영생을 가지고,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인데,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접을 붙였으니, 원 나무의 진액을 받아서 그 가지가 사는 것입니다.그래서 산 가지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김인권 장로님 댁에 가보니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대추나무 같았습니다. 아래는 나뭇가지가 하나인데 위로 올라오면서 가지를 쳐서 가지 두 개가 아주 커졌습니다. 한 가지에는 대추가 아주 크게 열렸습니다. 큰 밤알만큼 커졌습니다. 한 쪽에는 대추가 조그맣게 콩알만치 열렸습니다. 가지 이쪽에는 큰 대추가 열렸습니다. 김 장로님이 그것을 하나 따주면서 먹으라고 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설어서 맛이 없었는데, 그래도 먹으라니까 먹어야지요. 어떻게 합니
까? 거기서 왜 이 가지는 뿌리가 하나이고 원 가지도 하나로 올라와서 갈라졌는데, 한 가지는 이렇게 조그맣고 열매도 작고, 왜 이 가지는 큰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은 접붙였을 것이다. 처음에 조그만 열매 맺는 나무가 올라와서 두 가지가 쳤는데, 하나를 자르고 좋은 대추 맺히는 가지를 접붙인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사과나무도 마찬가지고 배나무도 마찬가 입니다. 처음에 씨를 뿌려서 올라오는 나무는 조그맣게 열매 맺히는 나무입니다. ‘고염’이라는 것입니다. 그 나무의 가지를 자르고 좋은 열매 맺히는 나무 가지를 접붙여 놓으면 큰 것이 열립니다. 그래서 두 가지에 하나는 작은 열매, 하나는 큰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접붙인 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서 삽니다. 그것은 죽지 않습니다. 영생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죽어도 영원히 삽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죽습니까? 영원히 삽니다. 또, 육신은 죽어도 다시 부활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다시 부활하고, 또한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서 중생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다시 가르쳐 주시는 이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가셨습니다. 미리 가셔서 죽지 않게 하실 수도 있지만 죽은 다음에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죽은 지 나흘이 된 다음에 가셨습니다.
2.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믿음
가보니까 죽었다고 다 울고 있고, 위로하려고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 죽은 것을 어디에 두었느냐고 물으시니, 장사 다 지내서 굴 속에 두고 돌로 다 막아놨다고 했습니다. “와 보시옵소서”라고 했고 예수님께서 그 무덤 앞에 가셔서 우셨다고 하였습니다. 왜 우셨느냐 하면 불쌍해서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므로 부활도 되고 생명도 되십니다. 부활시키실 수도 있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오셨는데, 그 사람들은 나사로가 생명이 없다고 죽었다고 울고 있으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불쌍해서 우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울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자신이 왔는데 ‘왜 생명이 없다고 우느냐?’, ‘왜 부활을 믿지 못하고 우느냐?’는 마음으로 울고 있는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것 때문에 우신 것이 아닙니다. 우는 사람들을 보니까 불쌍하다는 말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 왔는데, 이것을 모르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거기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본문 39-4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라고 하였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는 것은 굴 속에 장사지낸 뒤 무덤을 막아놓은 돌을 옮기라는 것인데,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납니다. 돌을 옮겨 놓으면 냄새가 더 나겠는데, 왜 옮겨 놓으라고 하십니까?”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것도 참 좋은 말씀입니다. 믿으면 영광을 본다 이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무엇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말씀을 믿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성자에 대해서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시고 생명이신 것을 믿습니다. 살리시는 주님을 믿습니다. 또,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이것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신 말씀, 본문 23절을 다시 봅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는 이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는 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라는 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돌을 옮겨 놓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믿음
돌을 옮겨 놓는 것은 ‘순종’입니다. 믿음에는 순종이 들어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데,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마음으로만 순종하는 것은 반쪽 믿음 밖에 안 됩니다. 반쪽입니다. 몸으로 순종할 때에 그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해야만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은 ‘나사로가 살리라’하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믿어야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몸으로 순종을 해야 합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순종시키시는 것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냄새가 더 날거라고 합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어져서 냄새가 나는데’하며 안 옮겨 놓으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셨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순종을 해라”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순종해 봐야 쓸데가 없습니다. 일이 더 틀어지고 비참해 집니다. ‘더욱 더 냄새가 나겠는데 돌을 옮겨 놓아야 무엇 하겠습니까?’, 마르다의 마음이 이러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옮겨 놓아라, 순종을 해라, 순종을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하십니다. 순종을 하라고 하시니, “순종해야 쓸 데 없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는데 봐서 무엇을 하겠습니까?”라고 하며 안 된다고 합니다. 더 어지러워지고 더 수치만 드러나고 냄새만 더 나고 일이 더 틀어지고 지금보다 더 한심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순종을 해라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이기셔야지 자기가 이기면 안 됩니다. 그것은 밴댕이 속같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한 치 밖을 모를 때 예수님은 영원한 것까지 다 내다보고 계시는데, 예수님의 의견을 들어야지 자기 의견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옮겨 놓아라”하실 때에 자기 의견을 다 내어 버리고, 자기가 부끄러움 당하고, 썩어진 것이 나타나 비참해도,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의 의견에 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기신 것은 예수님도 이기시고 마르다도 이긴 것입니다. 여기서 마르다가 이겼더라면 둘 다 지는 것입니다.
둘 다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선한 싸움입니다. 순종하여 자기가 지고 예수님이 이기시면, 결과는 예수님도 이기고 자기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의견대로 끝까지 나가면 자기도 실패하고 예수님도 실패합니다. 얍복강에서 야곱이 씨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데, 야곱이 이겼더라면 둘 다 실패한 것이고 야곱이 졌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기시고 야곱도 이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언제나 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만 이기고 자기는 지는 것을 배우고, 예수님만 높아지고 자기는 낮아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의 의견은 버리는 것을 배우고, 예수님의 의견만 따라가는 것을 배워야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나사로가 나왔습니다. 본문 43-44절에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하시니 나사로가 살아나서 나왔습니다. 굴 속에서 얼굴을 베로 동인 채로 나왔는데, 예수님께서는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는 말씀에 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아까는 돌 옮겨 놓으라는 것을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살아나온 다음에는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것을 순종시키십니다. 그래서 풀어놓으니 죽었던 나사로가 자유스럽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하나님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신 말씀 한 마디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죽은 자를 살려내시는 만능이신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믿음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 6:25-27에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
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11:33-38에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
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에서 나타난 이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보십시오. 전쟁의 원수를 이기기도 하고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고 풀무불 권세를 멸하기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합니다. 믿음은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 하는 사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모든 일에 믿음으로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순종함으로 행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