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규례
갈라디아서 6:11-18
갈라디아서 6:11-18
11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13할례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16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18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6: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아라.
6:12 육체에 모양을 내려 하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받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6:13 할례를 받은 자들이 자신은 율법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는 것이다.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렇게 되었다.
6:15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새롭게 지으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6:16 이 규례를 따라 사는 자들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6:17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하지 마라. 내가 내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영에 있을지어다. 아멘.
6:12 육체에 모양을 내려 하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받지 않으려는 것뿐이다.
6:13 할례를 받은 자들이 자신은 율법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는 것이다.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렇게 되었다.
6:15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새롭게 지으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6:16 이 규례를 따라 사는 자들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6:17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하지 마라. 내가 내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6: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영에 있을지어다. 아멘.
1. 십자가의 규례는 핍박이 따라 옴
십자가의 규례를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평강과 긍휼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16절).
본문 11절에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4:15에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눈이 나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대필시키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자기가 쓴 증거로, 싸인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 11절 부터는 “내 손으로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고 한 것을 보면, 바울이 큰 글자로 자기가 쓴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직접 기록한 것을 보면 중대한 일을 기록한다는 것입니다. 즉 “중대한 글을 너희에게 보냈다, 요긴한 내용을 주의해서 보고, 말씀을 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자”는 할례당을 가리킵니다. 할례당이 억지로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즉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할례당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억지로 할례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억지로 할례를 받았는가 하면 십자가로 인한 핍박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규례는 핍박이 따라오게 됩니다. 즉 십자가를 믿고, 십자가의 길만 걸어가려고 하면 핍박이 따라오는데, 그때에 진리를 양보하면 핍박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면하기 위해 진리를 양보하고 할례를 받는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 된 겁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양보하지 말고, 십자가를 각오하고,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만 따라가야 됩니다. 진리를 조금이라도 양보하고 혼합시키면 핍박은 안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생명의 도에서 떠나게 됩니다.
2. 육체로 자랑하지 말라
본문 13절에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할례 받은 사람들도 율법을 다 지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율법은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다 지키지 않으면서 할례를 받으라고 권면하는 것은 할례를 받았다고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율법을 다 지키는 게 아닙니다.
율법을 다 지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3.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라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음
본문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2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만 알기로 작정했다는 말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1:31에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만 자랑하라, 예수님 안에서만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지혜요, 의요, 거룩이요, 구속함이 됩니다. 십자가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으로, 죄인이 죄 사함 받을 길은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우리 죄를 대신하여 못 박혀 죽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아야 구원받게 되는 겁니다. 천하 인간이 다른 이름으로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 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히 9:22).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아니면 우리가 죄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또 예수님이 보통사람이라고 하면, 한 사람의 죄 밖에 대속할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하면 자기 죄 때문에 죽은 것 뿐입니다. 의인이라고 해도 한 사람 밖에는 살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한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 흘려주심으로, 모든 만대의 택한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한 분의 생명은 몇 백억만, 몇 천억만의 사람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만 자랑하는 겁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는데, 세상은 사도 바울을 못 쓰겠다고 십자가에 못 박아 내버렸고, 또 바울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아 내버렸습니다. 즉 서로 마주 못 박았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바울을 볼 때에는 아주 몹쓸 자요, 쓸 가치가 없는 자로 봅니다. 즉 바울이 십자가만 밤낮 전하고, 성경만 이야기하고, 성경대로만 나가는 외골수로 도무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바울이 세상을 볼 때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만 짓고, 복음을 반대하고 나가므로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는 겁니다. 그러므로 서로 못을 박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만 믿고, 십자가의 길만 걸어가고, 진리만 세워 나가면 세상이 볼 때에 도무지 못 쓸 사람으로 봅니다. 주일에 무슨 대사가 있을 경우에, 오라고 하면 안가기 때문에 안 믿는 친척이 볼 때에 못 쓸 자로 봅니다. 즉 “예수 믿다가 사람 다 버렸다”고 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 내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내버립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세상을 볼 때에는 우상이나 섬기고, 방탕하고, 성경을 어기고 나가므로 서로 맞지 않습니다. 이것이 마주 못 박는 겁니다. 세상 친구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성경대로 믿으면 못 쓸 사람이라고 하며 내버립니다. 세상 친구들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술 한잔 먹자고 하면 따라 가기를 가나?, 오락을 하러 가자고 하면 따라 오기를 하나? 아무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아 내버리는 겁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도 세상 친구를 볼 때에는 하나도 쓸게 없습니다. 술이나 마시며 방탕하므로 세상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서로 못 박는 겁니다. 즉 성도는 죄만 짓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아 놓습니다. 또 세상이 예수 믿는 사람을 볼 때에는 못 쓸 사람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놓습니다. 서로 못 박는 겁니다.
4.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생명의 역사가 있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생명의 역사가 있음
본문 15절에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할례 받았다고 해서 큰 게 아닙니다. 또 할례 안 받았다고 해서 큰 것도 아닙니다.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고 하였는데,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하며, 새 생명의 역사가 있고, 산 길을 걸어가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5:6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서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다 효력이 없습니다.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특별히 봐주시는 게 아닙니다. 또 할례를 안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덜 봐주시는 게 아닙니다. 할례를 받으나 안 받으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는 말씀을 따라 가야 함
다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라고 했는데, 예수를 믿음으로 새로 지으심을 받고, 역사하는 믿음으로 말씀만 따라가는 일이 중요한 겁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성경대로 믿는 겁니다. 또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은 영적인 신앙에 서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사는 생활하는 것입니다. 즉 영의 생명으로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활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고, 떠나지 말라고 하면 안 떠나고, 떠나라고 하면 떠나며,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가라고 할 때에 요나가 니느웨로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니느웨로 안 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다시스로 가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서 다시스로 갔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지고, 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할 때에, 예루살렘을 안 떠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겁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예루살렘을 떠나서 기도하면 그것은 안 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할 때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해야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겁니다.
예루살렘을 안 떠나면 핍박이 오고, 환난이 옵니다. 그래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나 산골에 가서 기도한다고 해서 거기에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계시고 기도를 들으시지만, 하나님이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안 떠나야 됩니다. 떠나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에는 특별히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해야 합니다. 환난과 핍박이 기다리는 곳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가라고 하면 가야 합니다. 또 아무리 생명이 위태한 곳일지라도 떠나지 말라고 하면 안 떠나야 합니다. 니느웨로 가라고 하면 니느웨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서야 할 위치가 어디인가를 바로 찾아야 합니다. 또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바로 찾아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일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고,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켜 나가려고 할 때에 환난과 핍박이 오는데, 그것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환란과 핍박을 달게 받으면 자기가 연단이 되고, 자기가 만들어지고, 구원을 이루어 나갑니다.
5. 십자가의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평강과 긍휼이 있음
본문 16절에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규례를 행하는 자란 십자가의 규례를 말합니다. 규례란 법칙, 법도를 말합니다. 즉 십자가의 도, 복음 진리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양보하면 안 됩니다.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는 자기가 지어야 됩니다. 바른 복음만 생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바른 복음을 양보하고, 타협을 하면 안됩니다. 조금이라도 가감하면 그것은 바른 복음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을 좇는 자는 저주를 받음
갈라디아서 1:6-8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복음인데 조금 다르게 만들어 놓은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즉 열가지 가운데 아홉은 같고, 하나만 달라도 다른 복음입
니다. 그것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열가지가 다 같아야지, 한 가지만 달라도 안 됩니다.
만 원짜리에 세종대왕의 수염이 백 개가 넘는데, 그 중에 수염 한 개만 없어도 그것은 만 원짜리로 쓸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돈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면 감옥에 들어가야 됩니다. 이와 같이 복음도 한 가지만 달라도 복음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에 마귀가 하와에게 와서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어볼 때에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변경시켜 대답하였습니다. 즉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를 “죽을까 하노라”로 변경
시켜 놓았으므로 마귀의 미혹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조금만 복음을 다르게 만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음에는 양보가 없고,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 그대로만 나가야지 조금만 고쳐 놓으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는 복음의 진리인데, 조금이라도 변경시키지 말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가감시키면 더이상 복음이 아닙니다.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십자가의 규례대로 나가는 자에게는 새생명의 역사가 있고, 평강과 긍휼이 있습니다.
6.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짐
본문 17절에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하였습니다. 흔적이란 증표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따라감으로 몸에도 받은 증거가 있습니다. 즉 바울이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매도 여러 번 맞고, 감옥에도 많이 갇히며 많은 환난과 핍박을 받았는데, 그 때에 어떠한 흔적이 남은 것 같습니다.
또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바울을 내다 버린 적도 있지 않습니까?그 때에 어떠한 흔적들이 많이 난 것 같습니다. 또 영적으로도 받은 증거가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가는 자에게는 여러 흔적이 많이 생깁니다. 즉 받은 증거가 많습니다. 이러한 흔적들은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많이 따라가다가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많이 받으면 육신에도 흔적이 생기고, 영적으로 확실한 증거가 생기며, 영혼이 많이 자라납니다. 이것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가면, 예수님이 거기에 대해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와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주를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해야 흔적이 생깁니다. 평안하게 믿는 사람은 흔적이 없습니다.
또 힘써 믿어야 흔적이 생깁니다. 일심정력을 다해서 충성해야만 받은 증거가 생깁니다. 그 흔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7. 영적 생활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떠나지 않음
본문 1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생활 하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항상 있습니다. 즉 십자가의 규례를 따라가는 사람, 새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 영적 평강과 긍휼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규례를 걸어가는 사람에게 심령의 평강이 언제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만 자랑하고, 십자가만 따라가고, 십자가만 지고 가야겠습니다. 즉 심령에 생명의 역사와 평강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항상 같이하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