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極樂)의 하나님
시편 43:1-5
1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3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4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3:1-5
1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3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4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1. 불의한 자에게서 건져달라는 기도
하나님의 선한 판단을 바라고 기도함
본문 1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건지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치 않은 나라, 또 경건치 않은 사람, 경건치 못한 단체가 나를 송사한 것을 변호해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변호해주지 않으시면 사람이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전도서 3장 16절에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재판하는 곳에도 불의가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판만 하면 다 되는 것으로 알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재판을 받아야지, 사람의 재판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경건치 않은 나라에 대해서 내 송사를 변호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간사하고 불의한 자가 많은데, 거기에서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성도가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 속아 넘어가고 사기를 당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건져주셔야지, 사람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간사하고 불의한 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나를 건져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또 송사를 한다고 해도 공의로 안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해주시면 다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지 않으시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하면 송사하는 것은 잘 안 되어도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을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내가 달라는 것은 안 주실 때가 있지만 신령한 것, 더 좋은 것, 영원한 것, 생명적인 것을 주시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 다 얻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힘이 되어 주신 것을 경험했고 그것을 언제나 믿고 있는데, 현재는 왜 힘이 되어 주지 않으시고 버려두시는지, 그것에 대해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도와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하는 말입니다. 질문 형태로 기도한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힘이 되어 주신 것을 경험했고 그것을 언제나 믿고 있는데, 현재는 왜 힘이 되어 주지 않으시고 버려두시는지, 그것에 대해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도와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하는 말입니다. 질문 형태로 기도한 것입니다.
2. 빛과 진리를 보내달라는 기도
주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본문 3절에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해결 방침이 나옵니다. 원수의 압제로 인해서, 경건치 않은 자의 송사로 인해서, 간사한 자와 불의한 자의 압제로 인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대한 해결책이 본문 3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라는 것입니다. 건져달라고 기도했는데, 건져주시는 데에서만 그치면 안 됩니다.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3.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기를 원함
하나님의 단과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기를 기도함
본문 4절에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주시려고 경건치 않은 자의 압제, 불의한 자와 간사한 자의 압제, 원수의 압제를 허락하시고 성도를 슬프게 만드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의 성산(신령한 곳)’과 ‘장막(주의 집)’에 이르게 하시려고, 또 하나님의 단에 이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나를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신 이유는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극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그 하나님께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본문 3절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빛을 발견해야 합니다. 또 주의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주의 빛, 주의 진리, 주의 인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극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그 하나님께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본문 3절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빛을 발견해야 합니다. 또 주의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주의 빛, 주의 진리, 주의 인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의 빛과 진리
주의 빛이 무엇입니까? 찬송가에 보면 ‘태산을 넘어 험곡(險谷)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라고 하였습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험곡으로 가지만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생명이 거기에 있고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괜찮습니다. 찬송하면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빛을 찾아야 합니다. 주의 빛을 잃어버린 사람은 속이 어둡고 답답합니다. 주의 빛을 발견한 사람은 속이 시원하고 심령에 기쁨이 찾아오며 앞 길이 환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진리는 성경말씀입니다. 진리를 찾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진리는 아주 귀한 것입니다. 진주 장사가 진주를 구하다가 값진 것을 하나 만났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귀중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그 장사가 돌아가서는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 진주(진리)를 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바로 하겠는가? 어떻게 해야 바른 길을 걸으며 바로 믿겠는가? 어떻게 해야 모든 문제가 바로 해결되겠는가?’, 이것이 진리, 즉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루터가 찾은 진리
루터는 천주교 신부였습니다. 그가 로마에 있는 빌라도 쇠 다리라고 하는 상당히 높은 다리를 무릎으로 올라가다가 진리를 발견하고 종교개혁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러 가실 때에 그 계단으로 올라가셨다고 하는데, 그것을 로마에 갖다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빌라도 쇠 다리를 무릎으로 걸어 올라가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이 당시에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원죄는 예수님의 공로로 용서를 받고, 자기가 지은 죄는 예수님의 공로로 조금 사함을 받고, 그 다음에 자기가 고난을 받아야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한 교리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공로가 모자라면 성자들의 공로를 빌려와야 된다고 합니다.
루터는 천주교 신부였습니다. 그가 로마에 있는 빌라도 쇠 다리라고 하는 상당히 높은 다리를 무릎으로 올라가다가 진리를 발견하고 종교개혁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러 가실 때에 그 계단으로 올라가셨다고 하는데, 그것을 로마에 갖다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빌라도 쇠 다리를 무릎으로 걸어 올라가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이 당시에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원죄는 예수님의 공로로 용서를 받고, 자기가 지은 죄는 예수님의 공로로 조금 사함을 받고, 그 다음에 자기가 고난을 받아야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한 교리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공로가 모자라면 성자들의 공로를 빌려와야 된다고 합니다.
적십자 병원에 갔는데, 한 천주교 교인이 세상을 떠났다고 성당의 교인들이 열댓 명 모여 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보고 뭘 자꾸 외웁니다. 그래서 가만히 들어보니 “성 어거스틴이여, 도와주시옵소서. 성 안토니여, 도와주시옵소서. 성 프란시스여, 도와주시옵소서”하며 외우는 것입니다. 과거의 성자들을 보고 좀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공로로 얼마 사함을 받았고 이제는 자기가 고난을 받아야 사함을 받겠는데, 밑천이 모자란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자기 고난을 다 받고 남겨놓은 것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성자들에게 그것을 좀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 허무맹랑한 교리입니다. 내가 천주교인이 되었더라면 저러고 있었을 텐데, 천주교인이 안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속으로 참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무슨 죄를 사해 주겠습니까? 허황된 것이고 허튼 소리입니다.
우리가 성경대로 딱 믿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성자 필요 없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공로로만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빌라도 쇠 다리를 걸어 올라가야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는 천주교 교리를 따라서 루터가 걸어 올라가다가 가운데쯤 가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느니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라는 성경말씀을 깨달은 것입니다. 루터가 구원은 고난을 받음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이 바로 진주입니다. 진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가 천주교의 잘못된 것 95개 조항을 들어 종교 개혁을 하였습니다. 성자의 고난을 빌려오는 것, 마리아를 빌려오는 것, 마리아가 승천한 것,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다는 것 등의 95개 조항은 허튼 소리이고 전부 다 거짓말들입니다. 루터는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 다음부터는 그 진리의 말씀 하나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말씀 하나를 가지고 종교 개혁을 하고, 말씀 하나 전하는 것으로 자기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보내달라는 말은 그런 것입니다. ‘이런 일이 생겼는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성경대로 바로 믿겠습니까?’, 이것이 진리를 보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이다. 내가 이렇게 하면 되겠다. 이것이다’, 이렇게 깨달은 것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진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성경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연설을 하면 안 됩니다. 성경 한 절 읽고 연설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연설 듣고 문 바깥으로 나가면 머릿속에서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을 배운 것은 속에서 역사하고 일생 동안 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보내주옵소서’라고 하고 ‘빛을 보내주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게 해달라고 하고, 진리를 발견하며, 발견한 다음에는 그 진리가 귀한 줄로 알고, 자기의 있는 것을 팔아다가 말씀을 사야 합니다. ‘말씀을 산다’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며 그 말씀대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삼고 말씀대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를 인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나를 인도해주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주시고 성령으로 나를 인도하셔서 이제는 ‘주의 성산에, 장막에, 주의 제단에 나아가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성산에 나아가야 하고, 주의 장막에 들어가야 하며, 주의 단에 나아가야 합니다.
성산은 하나님께서 계신 신령한 곳이고 장막도 하나님께서 계신 신령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제단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곳인데, 거기에 이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제물이 되어 육신은 이 세상에 속해 살아도 마음은 하나님의 장막, 하늘나라에 가
서 사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제단에 가서 언제든지 자기가 제물로 바쳐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는 것입니다.
극락의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극락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극락의 하나님이신 것을 어떻게 압니까? 자기가 거기에 도달해보아야 압니다. 말만 듣고는 모릅니다. 주의 보내신 빛을 받고 진리를 받으며 주의 인도를 받으면서 기도를 많이 하면, 그 장막에 들어갑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가까워집니다. 하나님과 교통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통이 되면 나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시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극락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거기가 극락의 세계입니다. 극락의 세계가 다른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안이 극락 세계입니다. 이 다음에 천당에 가서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도 극락 세계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이 극락의 하나님이시므로 내가 극락의 지경에 이릅니다. 항상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박국 3장 17-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 것이 없어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이 극락의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극락의 하나님이시고 기쁨의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을 영접하면 이렇게 기뻐집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억지로 하라는 것이 아니고 극락의 하나님께 도달해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으므로 그 세계는 기쁨의 세계이고 거기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4. 불안 중에 하나님의 권고를 믿고 찬송함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
본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낙망과 불안함이 생긴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원수가 압제하고 간사한 자가 속이고 불의한 자가 와서 괴롭게 하는데,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가만히 내버려두십니다. 일이 안 되고 억울한 일만 생기며 불의한 자만 득세하고 자기는 압박과 원수의 압제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버리신 것처럼 돌봐주지 않으십니다. 또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송사를 비뚜로 하고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이 판을 치고 나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해도 안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망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또 속에서 불안을 느껴 안절부절 하며 안정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늘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악한 자가 득세하게 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굴을 도와주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빛을 보내주시고 진리를 보내주시며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안에 떨지 말고 언제나 극락의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산, 주의 장막, 주의 제단에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하면 극락의 하나님께 이릅니다. 그러면 불안하던 것들과 낙망하던 것들이 다 없어지고, 나아가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얼굴을 도와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얼굴이 펴지고 얼굴에 근심이 다 없어지며 기쁨이 생기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보면 압니다. ‘이 사람에게 요새 근심이 있나 없나’를 알고, ‘사업이 잘되나 안 되나’를 압니다. 하여간 얼굴을 도와주시는 하나님께서 얼굴이 펴지도록 까지 얼굴에 희열이 넘치도록 까지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도의 얼굴을 도와주셔서 얼굴을 펴게 만드시고 은혜로운 얼굴이 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간사하고 불의한 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
1) 돈을 꿔주는 것에 대하여
요새 돈 거래하다가 시험에 드는 사람이 많은데,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 마음대로 안 되어 못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돈을 꿔줄 때에는 아예 안 받아도 괜찮을 만큼만 꿔주고, 그렇지 않으면 꿔주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이자 받을 욕심으로 꿔주고 또 꿔주고 하다가, 뒤로 나가 넘어갑니다. 차라리 안 꿔주어서 그 사람이 스스로 무슨 일이든 하여 사는 것이 나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초보
들이 돈을 꿔서 무슨 사업을 하다가 대개 다 실패를 합니다. 자기가 돈이 있는 것만큼만 사업을 벌이고 없으면 취직하여 버는 것이 상책입니다. 언제든지 무엇이나 자기 힘닿는 대로만 하라는 것입니다.
2) 보험 회사에 취직한 사람 이야기
그리고 보험 회사에 다니는 것에 대한 얘기인데,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주기 바랍니다. 보험약관이나 취직 조건을 잘 알아봐야 합니다. 일을 잘해나가는 사람은 제외하고, 공연히 낭패 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어야 같은 경우의 사람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말합니다.
우리 교회 어떤 교인이 보험 회사에 가면 취직을 잘 시켜준다고 해서 취직하기 힘든 때이므로 가서 취직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취직 조건이 한 달에 다섯 건씩 보험 계약을 해오면 보험 회사의 직원으로 내내 월급을 받을 수 있고, 모집해오지 않으면 월급을 받지 못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이 놀다가 월급 받는다는 기쁨에 기를 쓰고 친척 집부터 쫓아다니고 형제,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다니면서 사정을 하여 모집을 하였답니다. 친척들은 하는 수 없이 사정을 봐서 들어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몇 달이 가니 한계에 이르렀고 그러다 못하면 수당도 깎고 월급도 못 받게 되니까,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모자라는 모집 건수를 채워나가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돈 벌러 간 사람이 50만원씩 납입금을 넣느라 허덕이고, 그러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자신의 모든 돈을 보험 모집에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다 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자신이 든 보험을 해약하려고 하니 계약한 것이 전부 생명 보험인데 해약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망 시에나 돈을 지급해준다는 말에 그 사람이 뒤로 넘어 가고 말았습니다.
참 안 되었습니다. 돈을 다 넣어놓고 또 꿔다가 넣어놓고 이제는 납입도 못하는데, 해약도 안 되게 된 것입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빚더미에 앉지 않도록 보험 회사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해약할 때 한 푼도 안 주는 보험을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과 친척, 형제들에게까지 모두 계약하게 하고 해약도 못하고 한 닢도 못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보험 회사 다닌 결과가 돈 몇 푼 있던 것만 다 없애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이 되었습니다. 자기도 못 살고 남도 못 살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예 미리 잘 생각해서 하시길 바랍니다.
3) 고리대금(高利貸金)을 하지 말아야 함
시편 15편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5편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리대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에 I.M.F.가 온 것은 ‘종금사’라고 하는 금융기관들이 안 좋은 일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랍니다. 종금사에서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싼 이자를 얻어다 동남아에 비싸게 대출하였는데, 국가에서도 예산 없이 돈을 빌어다 대기업에 막 주고 그 뒤에 감당을 못하므로 구멍이 난 것이랍니다. 우리 교인들도 그런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렇게 나가면 반드시 망합니다. 망할 날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리대금을 하며 가만히 앉아 이자로 돈을 벌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자를 받으려면 은행 이자 정도로 받고, 빌려줄 때에는 안 받아도 괜찮을 만큼만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들 가운데도 지금 부도날 교회가 있습니다. 한 교회가 빚을 많이 얻어 예배당을 샀는데, 있던 땅이 팔리면 갚을 예산으로 빚을 많이 얻어 새 예배당을 샀습니다. 그런데 지금 I.M.F.가 되어서 땅은 안 팔리고 이자는 계속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연보로 이자를 갚아도 한 달에 오백만 원씩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나도 밤잠을 못 자게 되겠고 해서 ‘에잇, 집어치워라.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니 부도가 나도 제가 부도가 나겠지, 나까지 밤잠을 못 자면 되겠느냐?’하고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또 분당에 어떤 큰 교회가 하나 있는데, 거기는 빚이 백억이 넘는답니다. 백 몇 십억을 빚으로 얻어다가 은행 돈으로 교회를 지어놓았는데 I.M.F.가 오니 백억이면 이자만 해도 한 달에 일억 육천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예산도 없고 하여 건물을 경매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언제나 예산 없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되어도 함정에 빠지지 않을 만큼만 하라는 것입니다. 돈도 꿔주었다가 못 받아도 함정에 빠지지 않을 만큼만 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