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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데살로니가전서 3:1-13 교회를 위하는 생활과 기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교회를 위하는 생활과 기도
데살로니가전서 3:1-13

1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2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6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10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11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12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1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우리만 아테네에 남는 것을 좋게 여겨, 

3:2 우리의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냈으니, 이는 너희를 견고하게 하고 너희의 믿음을 격려하여, 

3:3 아무도 이 온갖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해 세우심 받은 것을 너희가 알고있다. 

3: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우리가 환난당할 것을 너희에게 예고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고 너희도 그것을 알고 있다. 

3:5 그러므로 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너희의 믿음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를 보냈으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3:6 그런데 지금 디모데가 너희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우리를 항상 좋게 생각하며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 주었다. 

3:7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3:8 너희가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으면, 이제 우리는 산다. 

3: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해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 수 있겠느냐? 

3:10 우리는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열심히 간구하고 있다. 

3:11 이제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우리의 길을 너희에게로 바로 인도하시고, 

3:12 우리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주께서 너희에게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풍성하고 넘치게 하셔서 

3:13 너희 마음을 굳세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오실 때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없게 하여 주시기를 원한다. 아멘.


1. 교회를 위하는 생활
주의 일군을 잘 영접하고 대접하는 생활

본문 1-3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참다 못하여’란 말이 1절에도 있고, 5절에도 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너무 사랑하므로 바울의 마음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가운데서 실족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한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가 디모데를 잘 영접해 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디모데를 잘 대접한 것은 바울을 영접한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쓰는 사람이며, 바울의 동역자이므로 디모데를 잘 영접하고, 대접한 것은 바울을 잘 영접하고, 대접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를 반대하는 사람은 바울을 반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환란 중에 요동치 않는 신앙생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고 하였는데, 당시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 가운데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이 요동할까봐 바울이 상당히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환난 당하는 것을 마땅한 것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4:22에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환난을 통하여 성도가 연단을 받습니다. 로마서 5:3-4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 안다고
하였습니다. 소망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환난은 성도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고,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1:29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환난 받을 각오로 준비하는 생활
 
본문 4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을 때에 바울이 “앞으로 환난을 받는다”고 미리 말해 놓았는데, 지금 환난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오기 전에 교회에서 미리 가르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성도들이 환난 받을 각오와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제자들에게 미리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십자가가 닥쳤을 때에 제자들이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잘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올 환난을 자주 말해주는 게 좋습니다.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는 앞으로 올 환난에 대해서 많이 기록을 했는데, 자주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미리 말해주어야 환난 받을 준비를 했다가 환난이 오면 쓰러지지 않고 연단을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평안하다”고만 말해주면 안됩니다. “환난이 온다”고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서에 거짓 선지자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고만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6:14에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은 “평안하다”고만 밤낮 말해 줍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환난이 온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들이 “평안하다, 잘 산다, 복 받는다”고만 말해주면 교인들은 좋아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됩니까? 우리 교회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시는데, 그분이 우리 교회에 나오시기 전에는 기장측 교회에 나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니시던 교회 목사님이 축복 기도를 해주시는데, “뭐도 잘 되고, 뭐도 잘 되고”하며 한참 무당 푸념하듯이 축복을 해 주길래, “오늘 복을 너무 많이 받아 과분하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복 받았나 하면 복을 받긴 뭘 받았습니까? 도리어 믿음을 찾지 못하겠기에 우리 교회로 오셨습니다. 

또 어떤 교인의 자녀가 대학교 시험을 치려고 하는데, 어떤 목사가 와서 대학교에 붙는다고 축복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대학교에 붙는다고 하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닭을 잡아 잘 대접하고 보냈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붙었겠습니까? 붙긴 뭘 붙었습니까? 괜히 닭 한 마리만 죽였습니다. 이와 같이 거짓 선지자는 언제나 “잘 된다, 복 받는다, 평강하다”고 하지만, 참 선지자는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가 온다”고 하였지, “평강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앞으로 “환난이 온다, 환난 받을 각오를 하라, 연단을 받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신학생들에게 가르칠 때에도 이 다음에 교회를 맡아서 할 때에 “평강하다, 잘 된다, 복 받는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죄에 대하여 책망하며 환난을 가르쳐야 교인들이 바로 섭니다.

본문 5절에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라고 하였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와서 시험할 때에 시험에 넘어가면 바울이 전한 것이 다 헛된데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이 염려하여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2. 교회를 인하여 기뻐함

본문 6-7절에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가 돌아왔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했는데,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을 가지고 돌아와서 보고하였는데, 참 좋은 보고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환난과 궁핍을 당하는 중에서도 데살로니가 교회의 좋은 소식을 들을 때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8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서 배운 사람이 주 안에서 굳게 서면 바울이 사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가르친 사람들이 믿음에 굳게 서서 믿음을 잘 지켜 나가면, 가르친 자(교역자)가 사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용기를 얻고, 힘을 얻고, 생명이 소생함을 얻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르친 사람들이 다 쓰러지고, 배반하면, 교역자가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칼빈이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의 사람인데, 우리가 칼빈의 5대 교리를 잘 지키면 칼빈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를 다 내어 버리고 알미니안주의, 현대신학, 신신학으로 기울어지면 칼빈이 죽는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가르친 사람들이 그의 진리를 그만큼 잘 지키면 김현봉 목사님이 사는 것이고, 그와 반대로 나가면 김현봉 목사님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진리를 배웠으면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는 것이 자기도 살고, 가르친 선생도 살고, 둘 다 사는 것입니다. 

3. 교회를 위한 기도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고 기도함

본문 9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이 잘되는 것을 볼 때에 기뻐서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지 말할수가 없었습니다.“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는데, 믿음을 보충해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중에서도 믿음과 사랑에 굳게 서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그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고, 온전케 하려고 주야로 간구했습니다. 성도의 부족한 면과 무지한 면과 연약한 면과 잘못된 면을 보충시켜 주는 자는 하나님 앞에 영원히 남습니다.

더욱 더 사랑이 풍성해지기를 기도함

본문 11-13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사랑이 더욱더 넘치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본래부터 사랑의 수고가 많은 교회이고 환난 중에서도 믿음과 사랑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렇지만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랑이 더욱 더 많아져서 피차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를 바울이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사랑의 세계와 영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는 하나입니다.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마음이 연약하면 신앙을 지키지 못합니다. 에스겔 16:30에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음녀의 행동과 같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약한 자는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13:9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굳게 하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
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주의 재림하실 때에 거룩하고 흠이 없이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만큼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받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와 상급이 다릅니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고 하였는데, 자라난 것은 천국에 가서 영원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