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요, 너희이다
고린도후서 12:11-21
고린도후서 12:11-21
11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에게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사도의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14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16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 17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18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9이 때까지 우리가 우리를 너희에게 변명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 하노라
12: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나에게 강요한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비록 내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12:12 사도의 표들이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들과 놀라운 일들과 기적들로 나타났다.
12:13 나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은 것 외에 너희가 다른 교회들보다 부족하게 된 것이 무엇이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라.
12:14 보아라, 이제 내가 세 번째 너희에게 갈 준비를 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겠다.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고, 오직 너희이다. 자녀들이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들을 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이 마땅하다.
12:15 너희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것을 기쁘게 쓰고 나 자신도 희생하겠다. 내가 너희를 더 많이 사랑하는데, 내가 더 적게 사랑을 받아야 하겠느냐?
12:16 어쨌든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내가 교활하여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았다고 말한다.
12: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들 가운데 누구를 시켜 너희를 착취한 일이 있느냐?
12: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한 형제를 보냈는데, 디도가 너희를 착취한 일이 있느냐? 우리가 동일한 영으로 행하지 않았느냐? 동일한 보조로 행하지않았느냐?
12:19 너희는 우리가 여전히 변명하고 있는 줄로 생각하느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와 하나님 앞에서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를 세우려는 것이다.
12:20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갈 때에 너희가 혹시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또는 내가 너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것이고, 또 너희 가운데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거림과 교만과 무질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12: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시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또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들이 그들이 행한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않아 내가 슬퍼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12:12 사도의 표들이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들과 놀라운 일들과 기적들로 나타났다.
12:13 나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은 것 외에 너희가 다른 교회들보다 부족하게 된 것이 무엇이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라.
12:14 보아라, 이제 내가 세 번째 너희에게 갈 준비를 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겠다.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고, 오직 너희이다. 자녀들이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들을 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이 마땅하다.
12:15 너희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것을 기쁘게 쓰고 나 자신도 희생하겠다. 내가 너희를 더 많이 사랑하는데, 내가 더 적게 사랑을 받아야 하겠느냐?
12:16 어쨌든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내가 교활하여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았다고 말한다.
12:17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들 가운데 누구를 시켜 너희를 착취한 일이 있느냐?
12: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한 형제를 보냈는데, 디도가 너희를 착취한 일이 있느냐? 우리가 동일한 영으로 행하지 않았느냐? 동일한 보조로 행하지않았느냐?
12:19 너희는 우리가 여전히 변명하고 있는 줄로 생각하느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와 하나님 앞에서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를 세우려는 것이다.
12:20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갈 때에 너희가 혹시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또는 내가 너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것이고, 또 너희 가운데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거림과 교만과 무질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12:21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시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또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들이 그들이 행한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않아 내가 슬퍼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1. 바울의 사도된 증거
본문 11절에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에게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왜 칭찬 받아야 마땅합니까. 바울이 바른 복음을 가지고 있고, 그 복음을 가지고 교인들을 살려 놓았으므로 칭찬 받아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사도가 아니다”라는 등의 거짓 선지자들의 말만 듣고 바울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은 일이지만, 바울이 자기 자랑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너희가 억지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자신에 대하여 ‘칭찬 받아야 마땅한 이유’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억지로 시켰다’는 뜻은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받을 뿐만 아니라, 악선전하는 자들에게 자꾸 넘어가서 바울에 대해 비방하고 사도가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부득불’, ‘어쩔 수 없이’ 바울이 자랑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너희가 억지로 자랑하게 시킨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 12절에는 바울이 사도가 된 표가 나옵니다. 참교역자 된 표도 이와 같습니다. 참교역자된 표가 무엇입니까?
모든 참음
첫째, 모든 참음, 잘 참음이 참 교역자의 표입니다. 참지 못한 것은 참교역자 표가 아닙니다. 참아야 참 교역자 된 표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표는 모든 것을 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심으로 참았고, 믿음을 써서 참았다는 말입니다. 또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죽음에 넘겨져도 참았습니다. 이것이 사도된 표입니다. 의의 명령을 순종하고, 모든 성도를 위해서 죽음에 넘겨져도 참고, 예수의 죽은 것을 몸에 짊어지고 가면서 참고 끝까지 참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사도된 표입니다.
표적과 기사
둘째는 표적과 기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가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것을 가리킵니다. 이적 가운데 제일 큰 이적은 그리스도의 도성인신입니다. 그 다음 둘째 이적은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것이 표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죽었던 영혼을 살려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사도된 표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당신의 쓰시는 종들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지 없는지, 참 종인지 아닌지는 살려내는 것을 보면 압니다.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있으면 참 종이고, 생명을 살려내는 역사가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참으로 쓰시는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생명을 살려내느냐, 생명이 살아있는 교회냐, 살아나가는 교회냐, 계속 하나님의 종이 생명을 살려나가는 역사를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현상유지나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생명을 살려내는 역사가 있으면,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그 곳에는 하나님이 일해주십니다. 또 생명을 살려내는 역사가 있으면 대개는 다 굴복을 하게 됩니다.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조금 남는데, 조금 남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리를 말해도 말 안 듣는 것 같지만, 그래도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있으면 다 깨져 나갑니다. 강한 것이 다 깨져 나가게 됩니다. 견고한 성도 다 깨져 나갑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하였습니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강력의 역사가 하나님의 참 종을 통해서 역사하는데 그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오랫동안 몇 십 년 고질적인 악습관이 있어도 깨져나갑니다. 하나님께서 만능이신데 그것 하나 못 깨치시겠습니까? 반드시 하나님이 깨쳐 내버리실 것이므로 하나님의 참된 종은 어디를
갖다놔도 하나님의 강력이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 표적적인 역사, 살려내는 역사, 앞길을 열어주는 역사, 원수를 막아주는 역사, 홍해바다를 갈라주는 역사 등이 다 나타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인 증거라는 것입니다. 황무지에다 갖다놔도 거기에서 소생해서 올라옵니다. 어디를 갖다놔도 소생해 올라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의 표적이란 말입니다.
능력의 역사
셋째는 ‘능력을 행한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능력의 역사가 또 사도바울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참 종을 통해서는 어느 시대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으로서는 안 될 것 같지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생명운동과 구원운동이 이루어져 나가게끔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사도의 표요, 또 하나님의 참 종의 표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또한, 교역자가 기도 많이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늘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고 약한 것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교인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때, 잘 참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잘 사랑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 된 표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만 붙들고 나가면 여러 가지 이적, 기사가 나타납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쫒겨나기도 하는데, 개척을 해서 더러 귀신들린 사람이 오면, 기도 해주어서 귀신이 나가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폐 끼치지 않았다는 것은 고린도교회에서 돈을 안 받았다는 것입니다. 생활비를 안 받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비방 거리가 됐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돈을 받았는데 고린도교회에 가서는 안 받고 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공평치 않다면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2.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성도임
폐 끼치지 않는 선교를 해야 함
본문 14절에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번째 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 1차 전도여행, 2차 전도여행도 갔고, 3차 전도여행 가려고 합니다. 세 번째 고린도 교회에 가기로 예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서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작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폐를 끼치지 아니함은 세 번째 가도 돈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례금 안 받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보내준 것으로 생활하고 너희에게서는 받지 않을 작정인 것입니다. 전에도 안 받았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게 아니요,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나의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고 한 것은 바울이 구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서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고, 연보해주고 생활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가
잘 되기를 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를 위해 대접받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가 바로 되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역자들의 사표입니다. 표준입니다. 재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성도들이 바로 되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재물은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 것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고 있으면 있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어떤 방식을 통하여 주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사는 겁니다. 조금 주면 조금 가지고 살고 많이 주면 많이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모님이 남편이 생활비를 적게 주어 돈벌이 하러 나가야 하겠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어보니까 동사무소에서 일 시키는 공공 근로 나가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공 근로 나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모님이 공공 근로 나가면 교회가 어찌되겠냐고 했지요. 들어보니 교회에서 생활비를 안 줄 때도 있고 조금 줄 때도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주면 조금 가지고 살고, 안 주면 굶으라고 했습니다. 또 굶어 죽게야 하겠냐고, 조금 주면 조금 가지고 살라고 했습니다. 최소한 돈이 얼마 있으면 되겠습니까? 집은 사택이고 쌀은 한 말 있으면 되고 소금 한 되 있으면 됩니다. 쌀 한 말에 2만원, 두 말이면 4만원이요, 소금 한 되 몇 천 원 합니다. 그것도 교회에서 안 주면 굶고, 2만원 4만원도 안 주면 굶고, 굶어서 쓰러지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의 권고가 올 것입니다.
죽으면 장례하는데 돈 얼마 들겠습니까. 절대 공공 근로 나가지 말고 조금 주면 조금 준대로 살고, 안 주면 굶고, 그렇게 하다보면, 다 일이 해결된다고 했습니다. 여기 사모님들 많이 왔는데 그렇게 하십시오. 교회에서 조금 주면 조금 준대로 살고 안 주어서 굶게 되면 하나님의 권고가 옵니다. 하루 3만원 받고 공공근로가 말이 됩니까. 공공근로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을, 밥벌이 못하는 노인들을 동회에서 공짜로 주려고 하는 것인데 왜 공짜 주는데 나가려는 것입니까. 교회에서 생활비 조금 주면 어떻게 사느냐구요? 조금 가지고 살고 안 주면 굶으면 됩니다. 그래도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죽지 않게 해 줍니다.
목사님들도 그렇게 하십시오. 교회에서 조금 주면 조금 가지고 살고, 안 주면 굶는 한이 있어도 강단에는 서야 됩니다. 또 굶으면 힘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굶었다는 소리는 하면 안 됩니다. 교인들이 볼 때 목사가 죽어 가는데 왜 그럴까 알아보자 해서 더 주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인들도 교역자를 굶기면 안 됩니다. 자기는 잘 먹으면서 교역자 굶기면 말이 되겠습니까. 자기는 한달에 몇 백 만원이나 쓰면서 교역자에게는 조금 주면서 “요것 가지고 살아라” 하는 것은 양심을 안 쓰는 것입니다. 교역자를 자기 식구와 같이 생각해야 하고 자기 아버지 같이 생각해야 하고 자기가 사는 형편처럼 교역자도 살 만하게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찌하든지 폐 끼치지 않는 정신을 갖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엊저녁에 우리도 교역자 연수회 모였을 때, 중국선교를 위해 우리 교회 교단 교역자들이 일 년에 두 번 이상 가기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두 번 이상 가야 됩니다. 전에는 네 사람씩 갔는데 이제부터는 매번 아홉 사람이 갑니다. 아홉 사람이면 배나 더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년에 각 교역자들이 두 번씩 중국선교를 다녀와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너무 교회를 많이 비우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
래서 두 주간 만 교회를 비우라고 했습니다. 화요일에 떠나서 그다음 주일날에 한주일 비고, 그 다음엔 주일 지나서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국 가서 가르치려고 하는 교역자는 자기 시무하는 교회 두 주간 만, 주일 날 두 번 만 비우면 되는 것입니다. 또 두 번 비울 때는 그 본 교회 집사가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목사를 초청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용은 하나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국 선교 가게 되면 비용이 들고, 데려오면 또 비용이 듭니다. 본 교회 교역자가 중국에 가는 비용도 내고, 주일 지키러 오는 사람도 주려면 이중으로 나가니까 교회에 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푼도 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차비는 선교부에서 조금 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점심만 가지고 가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도록 하고 교회에도 폐를 끼치지 않게 하려고 이렇게 비용을 선교부에서 조금씩 주고 교회에서는 주지 않도록 합니다. 폐 끼치지 않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가도 바울이 폐를 끼치지 않기로 작정하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국에 선교하러 갈 때에 폐 안 끼치려고 작정하고 갑니다. 선교지에 가면 성도들이 돈을 모아서 선물을 사준다고 합니다. 그런 것을 아예 가지고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국에 있는 성도들이 한 달에 한국 돈으로 월급이 5만원인데 얼마 모아서 사준다고 해도 얼마나 사주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것은 폐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꾸 사다가 싸주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싸줘도 안 가지고 오면 됩니다. 안 가지고 그냥 와야 이 다음에 안 주지, 가지고 오면 이 다음에 또 준다는 말입니다. 또 그런 것을 받게 되면 교회와 그들에게 얼마나 폐가 되냐는 말입니다.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14절에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고 ‘너희’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바로 되기를 구하는 것이지 재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희생이 있어야 교회가 됨
본문 15절에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희생을 뜻합니다. 희생이 아니면 교회가 안 됩니다. 내 자신까지 너희를 위해서 희생한다는 말입니다. 재물도 희생하고 자신까지 희생을 해야만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되는 방법은 희생입니다. 교역자부터 희생을 하는 정신을 가지고 교회를 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 재물을 너희를 위해서 다 허비하고 또 자신까지 다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더욱 사랑을 하는데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을 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오해하여 바울을 의심하고 미워하고 멀어져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6절에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 아니하였어도 공교한 자가 되어, 즉, 수단꾼이 되서 궤계로 속여서 너희를 취하였다”라고 비방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주 공교한 자다. 수단꾼이다. 사기꾼이다. 속여서 너희를 지금 취하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바울을 비방하였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 바울이 변명합니다. 본문 17-18절에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라고 하였습니다. ‘공교한 자가 되어 즉, 속여 사기꾼이 되어 너희를 취한다’ 같은 비방이 돌아가기 때문에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들을 보내었는데 디도가 너희에게서 뉘의 이를 취하더냐?” ‘가서 돈 받았느냐’라는 말입니다. 이를 취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였느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말씀은 바울과 디도는 동일하게 한 것이지, 무슨 이를 취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3. 두려워하라
원치 않는 모습으로 보일 것을 두려워할 것
원치 않는 모습으로 보일 것을 두려워할 것
본문 19절에 “이 때까지 우리가 우리를 너희에게 변명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변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덕을 세워서 유익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덕은 유익입니다. “너희에게 유익하게 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지 우리가 변명해서 칭찬이나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마귀에게 전부 다 속아 넘어가고, 마귀 시험에 다 넘어가기 때문에 부득불 이렇게 변명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라고 했습니다. 두려워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까? 바울이 이제 가려고 하는데 바울이 갈 때에 그가 보기에 그들을 원치 않는 자 같이 보이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그들이 바울을 볼 때 원치 않는 자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원치 않는 자 같이 보이면 좋겠습니까? 바울이 원치 않는 것처럼 교인이 보이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교인들이 보기에 바울이 자기의 원치 않는 바울과 같이 보이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갈 때에 죄 지은 사람이 그냥 있으면 내가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가서 너희를 책벌할 것인데, 또 너희는 내가 와서 벌주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내 원치 않는 자 같이 보이지 않도록 하고, 내가 너희에게 원치 않는 자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다툼이 일어남을 두려워 할 것
그런데 어떤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까? 먼저는 ‘다툼’입니다. 다투는 사람을 바울은 원치 않는 자로 본다는 것입니다. 또 시기와 분내는 것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또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이런 일이 있을 가능성이 많고, 실제로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당 짓는 것도 있고, 시기 분내는 것도 있었습니다. 또 수군수군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수군수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이 들을까봐 외딴데 가서, 저희끼리 끼리끼리 모여서 수군수군하는 것입니다. 남이 들으면 안 될 말 하는 것입니다. 당파를 맺는 것입니다. 외딴 데 모여서 자기네끼리 수군수군하면서 남이 들으면 안 될 말을 하며 당파를 맺고, 자기네끼리 짜고, 자기네끼리 공작하고, 선전하고, 자기네끼리 통일하고, 수군수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군수군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다투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다투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시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당 짓는 사람 있습니다. 베드로당, 바울당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중상 모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만한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지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어지럽게 만드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회개할 것
이렇게 되면 바울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러면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속상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오길 원합니까? 좋은 얼굴로 오길 원하지, 어떻게 속상한 얼굴로 오길 원하겠냐는 말입니다. 또 바울이 가서 매를 때려야갔는데, 매 때리는 바울이 오길 원하겠습니까? 좋은 얼굴로 오는 바울을 원합니다. 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고 회개하고 바로 서서, 다 믿음에 서 있는 걸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이런 일을 해 나가면
이것이 바울에게 얼마나 짐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울에게 얼마나 짐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본문 21절에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이 다시 갈 때 하나님이 바울을 낮추실까 바울이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낮춘다고 하였는데 왜 낮춥니까? 고린도 교회가 죄만 짓고 나가고 어지러워지면 바울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교회가 잘 되고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야지, 죄만 짓고 서로 싸우기나 하고 시기분쟁이나 하고 교회가 어지러워지면 바울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바로 못서면 교역자가 낮아집니다. 교회가 바로 서야 낮아지지 않지, 바로 못 서면 낮아지게 됩니다.
“또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을 회개치 않음을 근심할까 두려워한다”고 했는데 이런 것이 있으면 낮아집니다. 전에 고린도 교회에 고린도전서를 통해 경고하였듯이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음란, 호색, 간음, 음탕, 이런 성적 더러움들이 고린도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적 더러움들과, 다툼,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수군수군 하는 것, 중상함, 거만함, 어지러움 같은 죄들이 고린도 교회에 있으면 바울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치리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도 낮아지고 바울도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리 말함은 이런 것들로 인하여 바울이 근심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기 전에 다 회개하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