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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야고보서 2:14-26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
야고보서 2:14-26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아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5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14 나의 형제들아, 만일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2:16 너희 가운데 누가 그들에게 "평안히 가라.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여라." 하고 말만하고 그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2:17 이와 같이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2:18 어떤 이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러면 나도 나의 행함으로 믿음을 네게 보이겠다." 라고 할 것이다. 

2:19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네가 믿느냐? 잘하는 일이다. 악령들도 믿고 떤다. 

2:20 허황된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익하다는 것을 네가 알고자하느냐?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지 않았느냐? 

2:22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 것을 네가 안다. 

2:23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하신 성경이 성취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었다. 

2:24 너희가 아는 대로,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다. 

2:25 이와 같이 기생 라합도 사자들을 영접하고 다른 길로 가게 하였을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았느냐? 

2: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다.


1. 믿는다 하며 행함이 없으면 구원을 이룰 수 없음

본문 14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고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합니다. 속에 생명 있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아무리 다녀도 그런 사람은 행함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원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습니다. 한 분인 줄을 믿습니다.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만 믿고 그 다음은 행하지를 못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 못 받고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마귀 즉 사탄의 믿음이고 귀신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서 영이 중생한 사람인데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긴 믿는데 행함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했는데 자기 구원을 이루어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유익을 받지 못합니다.

2.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임

본문 15-18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먹을 것이 없이 헐벗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보고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면서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자체가 죽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 있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 긍휼이 나올 것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나올 것이고, 그 사람에게 얼마라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면 어떻게 안 줄 수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봐도 못 본체하고, 주지 않고, “더웁게 하라 평안히 가라”하면 속에 생명이 없는 증거입니다.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없는 것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속에 생명의 역사는,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나옵니다. 또한 행함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도 안 나오는 것을 보니까 자체가 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속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긍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안 나오는 걸 보니까 속에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없는걸 보니까 생명의 역사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체가 죽었고, 죽었기 때문에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행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행함이 없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고, 죽었기 때문에 행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걸 보니까 죽은 증거입니다. 숨 쉬지 못하면 죽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숨을 쉬지 못합니다. 숨을 쉬지 못해서 죽은 게 아닙니다. 죽었기 때문에 숨을 못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안나오는 것이고 그 자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7-18절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했습니다. 김현봉 목사님 말씀에 사람이 믿으면 행함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양잿물 먹고 죽는 줄 알면 안 먹습니다. 양잿물을 먹게 되면 죽기 때문에 때려도 안 먹고 내 쫓겨도 안 먹는 것입니다. 죽으면 무얼 하겠습니까?

그와 같이 확신 있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안할 것은 안 하게 됩니다. 옳은 것은 반드시하고 아닌 것은 절대 안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런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하고 그러면 안 해야 할 것은 안 합니다. 옳은 것은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죽은 믿음은 행함 없기에 감흥과 역사가 없습니다.

3. 행함이 없는 것은 귀신의 신앙임

본문 19절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귀신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한 분이신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습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줄을 믿습니다. 말씀에 귀신도 믿는다고 했으니까 믿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귀신에게 이 다섯 가지 믿음이 있어도, 문제는 행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하나님을 믿지만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복음을 생명으로 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마귀와 사탄, 귀신이 가진, 다섯 가지 신앙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행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서 생명으로 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믿긴 하지만 심령 속 깊이 생명의 복음을 받아서 생명으로 삼지 못하고 행함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가 귀신에게는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행함이 없으면 귀신이 믿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 귀신의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에게 속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3:15절에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라고 했는데,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신앙입니다. 또 야고보서 3:14절에는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고 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시기와 다툼이 있고, 또 자기 자랑이나 하고 진리를 거슬려 거짓말하면 안 되겠습니다. 신앙은 신앙인데 마귀의 인도를 받는 신앙이 ‘세상에서 온 것이라, 정욕적으로 보낸 것이라, 육신 중심의 신앙이라, 자기 중심의 신앙이라, 사탄의 인도를 받는 신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귀신의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을 받아서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살아야 합니다. 자기속에서 이 복음을 즐거움으로 받고, 그 복음을 생명으로 삼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즐거움이 있고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행하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가 없으면 그것은 귀신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까닥하다가는 귀신의 신앙으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세상적인 신앙말입니다. 세상에 속한 신자, 정욕적인 신자, 마귀의 인도를 받는 신자말입니다. 신자가 마귀의 인도를 받습니까? 받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 하시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마귀의 인도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의 신앙은 마귀적이고, 정욕적이고, 세상적이었습니다. 마귀에게 속한 신앙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의 신앙에 얽매이지 말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항상 복음을 받아서 즐거워하며 생명으로 삼고, 그 다음에 행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는 왜 행하지 못합니까? 마귀 신앙은 왜 거기까지 나가고 못올라갑니까?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서 즐거워하며 행하면 되겠는데 왜 안 받습니까? 허락이 없어서 못 받는 것입니다. 허락이 있으면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마귀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아무리 받으려 해도 못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만 주셨습니다. 그런데 자녀들,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이 이 복음의 떡을 주셨는데,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먹으면 되고 행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것을 한 상을 받았습니다. 마귀는 아무리 받으려 해도 하나님께서 주시질 않으니 못 받습니다. 또 행하려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있어야 행하지 않겠습니까? 마귀는 그저 자기 행할 것 즉, 하나님을 방해하고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귀신이 돼지에게 들어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귀신들도 예수님께 순종해야 하는데 가만있다가 쫓겨나면 안 되겠으니까 돼지에게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라’하시니 귀신들이 돼지에게 다 들어가서 돼지 이천 마리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처럼 귀신들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따라서 지식적으로 여기까지만 믿는 성도는 귀신의 신앙을 소유한 것입니다. 이제 한걸음 더 들어가고 귀신의 손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복음을 생명으로 받아서 생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즉, 생명의 역사가 있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귀신이 못 하는 것입니다. 하려고 해도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성도의 첫번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복음을 생명의 복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 복음이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이 복음으로 위로를 받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고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행해야 합니다! 귀신은 행하지 못합니다. 행하지 못하는 것은 귀신의 신앙입니다. 행하여야만 참된 성도의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17절에 보면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는데, 행함이 없으니까 죽은 것이 아니고, 죽었으니까 행함이 없다고 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것을 보니까 이미 죽어 있다는 말입니다. 나무에 잎사귀가 안 나오는 것을 보니까 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것입니다. 잎사귀가 안 나왔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잎사귀가 안 난 것이라는 말입니다. 숨을 못 쉬니까 죽은 것이 아
니라 죽었기 때문에 숨을 못 쉬는 것입니다.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자체가 종의 생명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행함이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4.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

아브라함의 신앙

본문 20-23절에, “아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하나
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5-6절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전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말씀을 아브라함이 믿으니,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 뒤에 네 아들 이삭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번성할 것이라고 하셨을 때에도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말씀을 믿었고, 두 번째는 이삭을 통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는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신 뒤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삭을 죽이라는 명령은, 이삭을 통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다른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것도 믿어서 이삭을 번제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바쳐도 나중에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려서 이삭을 통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겠다는 약속을 이뤄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습니다”하면서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삭을 죽인다고 해도 이 약속을 이뤄주실 것을 아브라함은 믿은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결과가 “행함”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이삭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는데, 믿고 행한 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확실히 믿으면 아브라함과 같은 이러한 행함이 나옵니다.

기생 라합의 신앙

본문 24-25절에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기생 라합도 정탐꾼을 지붕에 숨겨두는 행함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했는데, 라합이 어떻게 믿었습니까?

여호수아 2:9-12절에,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정탐꾼을 숨겨 준 것은 행한 것입니다. 그것은 쉬운 것입니다. 믿었으니까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 천하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리고를 이스라엘백성에게 붙일 것이므로 여리고성은 망할 것이고,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 만나서 살 길을 물어 볼 기회가 생겼는데 안 숨겨주겠습니까? 숨겨준 것이 탄로 나면 죽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해주고 대접해 주면 하나님이 죽지 않게 해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은 쉽습니다. 믿음을 행하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믿지 않으니까 행하기 힘듭니다. 정탐꾼들을 숨겨줬다가 탄로 나면 자기가 죽을 것인데 어떻게 숨겨주겠습니까? 또 자기 백성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나 기생 라합이 믿었기에 정탐꾼들을 영접하고 숨겨주었고, 믿었으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어 본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망할텐데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어보자 정탐꾼들이 붉은 줄을 창에다 매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도시가 당장 망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행하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망하는데 구원 받을 도리를 찾아야 될 게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왔는데 그 기회를 어떻게 놓칠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좋은 길을 가르쳐 줄 것을 분명히 믿으니까 생명 내놓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믿음은 행함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장망성’ 즉, 장차 망할 성에
소망을 두지 않고 정탐꾼들을 숨겨주었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귀한 줄 알고 하나님의 사람을 생명 내 놓고 영접했고, 또 믿으니까 구원 받을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기만 하고 행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기생 라합이 상천하지(上天下地)의 하나님을 믿고 여리고성이 망할 것을 믿고,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인 것을 믿고, 정탐꾼들을 이스라엘의 사자라고 믿기만 하고 그들을 영접하지 않고 대접하지 않았으면 구원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믿은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었다고 하면 대접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여리고성이 진짜 망한다고 하면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망하는걸 아는데 왜 살길을 안 찾겠습니까? 짐승들도 지진이 날 걸 알면 며칠 전부터 달아난다고 합니다. 왜 달아날까요? 살려고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확실히 알면 행함이 나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이 여리고성과 같은 장망성인 것을 아니까 살 궁리를 하고 살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종에게 살길을 가르침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하면 살길이 생깁니다. 이것이 기생 라합의 신앙입니다. 그녀의 신앙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입니다.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저들에게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정탐꾼을 영접하고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큰 것입니다. 믿었기 때문에 행함이 나온 것입니다. 믿는 것이 절반이고 행하는 것이 절반이 되어 둘이 합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없으면 안 됩니다. 반쪽이 되면 안 됩니다. 참으로 믿었으면 행함이 나와야 하고, 행한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은 숨쉬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면 숨 쉬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영혼이 없습니까? 영혼이 없기 때문에 못 쉽니까? 영혼이 없기 때문에 못 쉬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다고 하면 반드시 행함이 나오는데 행함이 안 나오는 것을 보니까 생명이 없고 영혼이 없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산 믿음은 반드시 생명의 역사가 나옵니다. 언제나 산 믿음, 말씀을 생명으로 받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 끊으라면 끊고 이기라면 이기고 가라면 가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게 행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