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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31일 금요일

잠언 22:1-29 마땅히 행할 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마땅히 행할 길
잠언 22:1-29

1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 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9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10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11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12여호와께서는 지식 있는 자를 그 눈으로 지키시나 궤사한 자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
니라 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14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15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 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16이를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17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찌어다 18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에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19내가 너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20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기록하여 21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22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23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24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25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26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27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 하겠느냐 28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찌니라 29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1. 재물보다 명예가 귀함

본문 1절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명예와 관련하여 창세기 12장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였는데, 이름이 창대해지는 것은 인격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게 되고 존경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멸시를 받고 손가락질을 받는 성도는 합당치 않습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남에게 비방거리만 되고 욕이나 먹는 사람은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재물보다는 인격이 중요해서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재물보다 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덕을 세워야 합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자기 몸 단장이나 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기에게도 유익이 없고 사회에도 독이나 주는 사람이 되어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의 신앙 인격을 키워나가며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일을 잘해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은이나 금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은혜로
사는 것이지, 은이나 금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금과 은만 찾고 그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믿음에 서려고 하고 은혜 가운데 거하려고 해야 합니다.

본문 2절에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빈부가 섞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하나님께서 지으셨기 때문에, 부자라고 교만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의미에서 보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 똑같습니다. 또 중생하여 성도가 된 것도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 같고, 같은 일생을 살게 됩니다. 부자라고 해서 더 사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해서 덜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빈부가 다 섞어 살도록 공평하게 내셨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살만큼 살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다른 사람의 생명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만큼만 살고 그 다음에는 어김없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나 가난한 자들이나 교만하거나 멸시하거나 낙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을 보면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잘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부자의 수는 적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는 가난한 자의 수는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가난한 사람을 택해서 믿음을 부여하신다고 한 말씀이 있는데,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빈부가 섞여 살도록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3절에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고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잘못으로 재앙을 만납니다. 그것은 자기가 구렁텅이를 파고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올무를 자기 목에 스스로 거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합니다. 잘못함으로 인해 오는 재앙을 받지 않도록 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슬기로운 자는 성경말씀대로 행하므로, 언제나 말씀이 피난처가 되고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십니다. 성경말씀대로 믿는 사람은 언제나 피난처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성경을 지키지 않고 어기고 나가기 때문에 반드시 구렁텅이에 빠지고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2.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

본문 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겸손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여호와를 경외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겸손한 자리에 서서 여호와를 잘 공경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경외(敬畏)’라는 것은 두려움으로 공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와 같이 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의 영광의 눈 앞에서 모든 것을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덤으로 주십니다. 영적 생명도 주십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이 필요하면 재물도 주시고 영광도 주시고 생명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를 다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를 주셨습니다. 없다, 없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주셨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본문 5 에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패역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인데, 그런 자에게는 가시와 올무가 있습니다. 가는 길마다 올무가 있고 가시밭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을 지키는 자는 영으로 사는 자입니다. 우리는 영으로 살고 마음을 지키며 신앙양심을 써야 합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영혼을 지키는 자이고, 언제나 마음을 다스리고 양심을 쓰며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영혼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올무가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3.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본문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늙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말씀이 그 아이에게 지식이 되고 그 아이를 지배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어릴 때 배운 것을 따라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에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란 후에는 말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려 합니다. 제 마음대로라는 것은 자신의 기본 지식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받으려고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 때에 잘 가르치면 자라서도 그것들이 기본 지식이 됩니다. 성경의 바른 도리가 그 아이의 지식이 되어 커서도 바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에 잘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4. 빚진 자와 구제하는 자, 다투는 자

본문 7절에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려는 것이 보통이고, 빚진 자는 채주(債主)의 종이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빚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빚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빚을 안 지도록 해야겠습니다. 보통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주관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가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을 주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언제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동등합니다. 돈이 있다고 남을 주관하는 것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그러나 빚진 사람은 채주의 종이 된다고 했으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빚지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빚을 졌으면 빨리 갚아야 합니다. 고리대금(高利貸金)을 하는 것은 악한 죄입니다. 돈이 좀 있다고 해서 고리대금을 하면 그것은 남
의 피를 빨아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고리대금을 하는 자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본문 8절에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뿌리면 재앙을 만납니다. 지금은 악을 뿌리고 다니지만 하나님의 재앙을 만날 때에는 그 기세가 쇠할 날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제하는 부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 10절에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6장 20절에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장이’는 거만하여 자기만 옳다고 하는 자들인데, 그들은 싸움만 잘하는 자이고 불평만 하는 자입니다. 자기만 위하고 자기만 옳다고 하니까 언제나 세상 어디를 가든지 불만이 가득하게 됩니다. 세상에 자기만 위해 주고 자기만 옳다고 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늘 불만이 가득합니다. 항상 불평하며 싸움만 하게 됩니다. 또 자기만 위하고 교만하며 다툼만 일으키기 때문에 상종할 바가 못 됩니다.

5. 정결한 자와 지식 있는 자의 복

본문 11절에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임금의 친구가 되는 사람은 여러 사람의 친구가 됩니다.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는 지식 있는 자를 그 눈으로 지키시나 궤사한 자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식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뜻입니다. 올바른 지식을 소유한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는 자는 여호와께서 지켜주십니다. 말씀대로 나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인간은 약하고 무지합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6. 게으른 자와 음녀에게 빠지는 자의 결과

본문 13절에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게으른 자는 사자가 밖에 있으면 안 나가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자가 진짜 밖에 있겠습니까? 이것은 게으른 사람이 밖에 사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미리 추측하며 겁을 먹고 할 바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잘 지키는 부지런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나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자기의 할 바를 담대히 해나가는 사람이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이요,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은 된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신다’고 믿고 나가야 합니다. 옳은 데도 인간의 생각으로 걱정하며 나가지 않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그런 사람은 게으른 자 입니다. 옳은 것은 사자가 있어도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일단 나가면, 사자가 있다고 해도 그 사자가 아무런 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본문 14절에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음녀가 사람을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 ‘입이 함정’이라는 것은 음녀가 말로 사람을 꼬여서 함정에 빠뜨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이렇게 음녀에게 빠집니다. 믿지 않는 자,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는 음녀의 깊은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니다.

7. 징계와 학대

본문 15절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3장 13-14절에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혀 있는데, 채찍이 그것을 빼내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것도 빼내고, 잘못된 생각과 습관도 빼내어버리고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또 징계는 채찍으로 할 때도 있고 말로 책망할 때도 있으며, 여러 가지 다른 벌로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징계를 해야만 아이들이 바로 섭니다. 징계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바로 서지 못합니다. 가만 둘 때에 바로 가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주 자주 책망하고 징계하며 훈계해서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과하게 강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아이를 노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아이가 깨닫도록 적당하게 훈계하고 성경말씀으로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또 가만 보면 아이들에게만 징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어른들도 징계를 받아야 깨닫고 바로 서며 못된 버릇이 빠져나갑니다. 에베소서 5장 13절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책망을 받는 것이 빛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책망을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잘못한 것을 말해주는 자가 내 선생이고 잘한 것을 말해주는 자는 도적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한 것을 자꾸 말해주는 사람은 나를 망하게 만드는 도적이고, 잘못한 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선생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한 것을 말해줄 때에 겸손하게
그것을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근신하며 바로 서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나 보통은 잘못한 것을 책망하지 않고 잘한 것만 말합니다. 듣기에는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자기를 망하게 하는 도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잘한 것이 두 가지가 있고, 잘못한 것이 또 두 가지가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은 잘한 것 두 가지만 말해서 존경하는 것처럼 하고 상대를 높여줍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잘한 것은 말하지 않고 못한 것 두 가지만 가지고 책망을 합니다. 이 둘 중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환영을 받겠습니까? 보통은 첫째 사람입니다. 자신이 못한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선생임을 알아야 하는데, 거꾸로 되니까 못한 것은 평생 고칠 수도 없고, 못하면서 잘하는 줄로만 알고 사는 것입니다.
가령 예배 시간에 늦었지만 와서는 봉사를 잘했다고 합시다. 그럴 때에 “봉사 잘했다”라는 사람이 있고, “왜 예배 시간에 늦었느냐”라고 책망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에 늦었다고 책망하는 사람이 선생이고, 칭찬하는 사람은 도적입니다. 따라서 책망해주는 것이 좋은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칭찬은 책망 후에 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본문 16절에 “이를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학대하고, 부자에게 주며 아부하는 자는 필경 가난해진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쓰지 않고 정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가다가 실패합니다.

8. 지혜의 말을 듣는 자의 복

본문 17절에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자의 말을 뜻하는데, 이 성경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귀를 기울여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라는 것이고, 성경말씀에 마음을 두라는 것입니다. 즉, 지식은 성경말씀인데, 성경 말씀에 마음을 두고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말을 잘 들어서 모든 것을 성경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에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성경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 받은 것을 마음속에 보존하고 언제나 입에 있게 하며 그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름답고 실패가 없다는 것입니다. 앞 길을 형통하게 만듭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너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지혜있는 자의 말을 듣고 지식에 마음을 두며 그것을 마음속에 보존하고 입에 있게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즉, 바른 성경말씀을 받고 말씀을 마음에 두며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굳게 서서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본문 20-21절에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기록하여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고 진리의 확실한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9. 약자(弱者)와 곤고한 자를 압제하지 말 것

본문 22-23절에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약한 자를 약하다고 해서 그 가진 것을 빼앗지 말고 곤고한 자가 성문에 엎드렸다고 압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약한 자는 약하니까 빼앗겨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고, 성문에서 엎드러진 자를 압제해도 누가 와서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한 자와 곤고하여 엎드린 자를 신원해주시고, 그들을 노략한 자의 생명을 빼앗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또 성도가 약한 자를 도와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갚아주십니다. 성문에서 곤고하여 엎드러진 자를 도와주고 불쌍히 여겨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편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성문에 엎드러져 곤고해 있었는데, 하만이 그를 압제하다가 본인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약하고 곤고하다고 압제하면 자기가 당할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언제나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곤고하여 엎드린 자를 긍휼히 여기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약한 자의 편이시고,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과부의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0. 울분(鬱憤)한 자와 동행하지 말고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 것

본문 24-25절에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노와 불만을 품는 자와 사귀지 말고, 울분하는 사람과 동행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불평분자와 동행하면 올무에 걸려드는데, 그들의 불평에는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나름대로는 불평할만한 정당한 사건이 있기 때문에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이라는 것은 이렇게 해석하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해석하면 저렇게 되니까, 한 가지만 보고 다른 것을 말하지 않으면 옳지 않은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고,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6-27절에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 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라는 것은 동업(同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손잡고 나가다가 다른 사람이 넘어가면 나도 넘어가고, 내가 넘어가면 다른 사람까지 넘어가게 되니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남의 빚에 보증이 되고 갚을 것이 없으면 침대까지 빼앗긴다’는 것은 누울 자리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돈이 없는 사람이 크게 사업을 벌이면 안 됩니다. 또 돈이 없는 사람이 사업을 크게 한다고 보증을 서도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는 보증을 서도 될 것 같습니다. 가령 국가에서 아이들의 학비를 융자 받기 위한 사업으로 보증을 서달라고 하면, 서줘도 괜찮을 듯합니다. 하여간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망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도는 돈에 대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11. 지계석(地界石)을 옮기지 말 것

본문 28절에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계석’이라는 것은 땅의 경계를 표시하는 돌을 말하는데, 그것을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돌은 옮길 수 있는 돌이지만, 만약 옮긴다면 다른 사람의 땅을 훔치는 것이 됩니다. 물론 측량하면 다 나오지만 매일 측량하는 것도 아니고, 산과 같은 경우에는 오래도록 측량하지 않는 사례가 많습니다. 지계석은 까딱하면 옮기기 쉽지만, 성경말씀에 옮기지 말라고 했으니까 옮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맡은 사업을 근실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