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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2일 화요일

누가복음 7:36-50 사죄와 예수님 사랑,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사죄와 예수님 사랑
누가복음 7:36-50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3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49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1. 사죄

바리새인의 집에 예수님이 대접을 받아 갔는데 그 동네에 죄 많은 한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눈물을 흘리며 향유를 부은 사실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6:7-13, 마가복음 14:3-9, 요한복음 12:1-8의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 부은 것과는 별개의 사건입니다. 이 여자는 마리아가 아닙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죄 많은 여자입니다. 무슨 죄를 많이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저 여자는 죄가 많은 여자이다”라고 그 동네에서도 죄 많은 여자로 인정을 한 모양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창기와 같은 여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창기와 같은 여자는 모든 사람이 볼 때에 “더러운 여자이다, 죄 많은 여자이다” 이렇게 보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저 여자는 죄를 많이 짓고 다닌 여자이다”라고 인정되었고 또 자기 자신도 “나는 죄 많은 여자이다”라고 생각하며 이 죄를 어떻게 사함을 받을까? 하며 자기 자신도 늘 자기의 죄를 한탄하고 부끄러워하며 죄 사함 받을 길과 구원 받을 길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셨다는 말을 들었고, 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여자가 구약에서부터 내려 온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교훈을 들었는데 이젠 그리스도가 여기 왔으니 “우리의 죄를 사해 줄 것이 분명하다, 또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 분명하다, 내가 가서 그리스도를 가서 영접해야겠다” 이렇게 믿고 예수님이 계신 바리새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찾아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고 옥합에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갔습니다. 예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합당할까? 생각하다가 다른 것보다 향유를 붓는 것이 예수님께 합당하겠다고 생각되어 예수님께서 구속해 주시는 그 구속의 향기가 온 세계에 퍼질 것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향유를 준비해서 예수님께 부으려고 갔습니다.

회개의 눈물, 감사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심

이 죄 많은 여자는 자기가 감히 예수님 앞으로 갈수가 없어서 예수님 뒤로 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니 자기의 죄가 더욱 더 생각이 나고 원통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지옥의 영영한 구렁텅이에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려 오신 예수님께 감사 감격의 눈물이 나온 것입니다. 이 눈물은 회개의 눈물인 동시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해 주시는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흘리는 감사의 눈물입니다. 그
눈물이 예수님의 발에 떨어졌습니다.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에 떨어진 눈물을 닦음

그리고 예수님의 발을 수건으로 닦지 아니하고 자기의 머리털로 닦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1:15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 하였습니다. 긴 머리는 여자의 영광입니다. 머리털로 닦았다는 것은 자기의 가장 귀한 것으로 닦은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머리털이 내게 가장 귀한 것임을 깨닫고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에 떨어진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그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발에다 입을 맞추는 것은 보통이 아닙니다. 너무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 감격에 넘치는 가운데에서 감히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출 자격도 없는 자인 줄 알면서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몇 주간 전에 모스크바에 다녀 올 때에 모스크바 성도들이 너무 감사해서 제 손에도 입을 맞추고 뺨에도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감사해서 이렇게 할까? 생각하니 참 귀합니다. 죄 많은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춘 것도,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발에 입을 맞출 수 있을까?”하며 너무 감격에 넘쳐서 예수님 발에 입을 맞춘 것입니다.

향유를 부음

그리고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그 향유 냄새는 온 방에 가득 찼습니다. 이런 귀한 역사가 있었는데 바리새인은 이것을 보고 비방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선지자이면 죄 많은 여자가 발을 만지는데 왜 가만히 두시는가?”하며 속으로 마땅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빚진 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의 빚을 졌고,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의 빚을 졌는데 둘 다 값을 것이 없어 탕감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고 시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청한 바리새인의 이름이 시몬입니다. 시몬이 많이 탕감을 받은 자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많이 탕감 받은 자가 주인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많은 것은 정해놓은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시몬아 네 판단이 옳도다”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님 사랑

죄 사함을 많이 받은 자가 예수님을 많이 사랑

본문 44-46절에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죄 사함을 많이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합니다. 죄가 적으면 예수님을 적게 사랑합니다. 또 죄 사함 받은 일이 없으면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예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만 예수님과 상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 사양한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많은 죄를 사함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집니다.

세리와 바리새인 중에서 바리새인은 잘 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기도하고, 음란하지 아니하고, 토색하지 아니하고 잘한 것이 많으나 회개를 못했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며 회개할 때에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더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도 잘한 것 외에 잘못한 것을 깨닫고 회개하였다면 세리보다 바리새인이 더 의롭다 함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잘한 것 몇 가지만 내세우고 죄를 회개한 것이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이 없는 것을 보니 구주를 사모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주를 영접할 수 없고 죄 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며 자기의 죄가 많은 것을 깨닫고 원통히 회개하므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입니다.
많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눈물로 회개하면 예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겨서 많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린 몇 가지 잘한 것만 가지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것은 죄 짓다 와서 회개한 사람보다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일하느라고 힘을 쓴 사람은 죄를 더 많이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했습니다(눅 5:32).

예수님 앞에 나올 때는 죄를 가지고 나와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을 때에 회개한 것은 기본 회개이고, 기본 회개한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사함 받았습니다. 중복 회개는 자기가 날마다 지은 죄를 가지고 나와서 회개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발 씻어 주신 것과 같습니다. 목욕한 것은 기본 회개(중생)이고, 발 씻는 것은 그날 자기가 지은 죄를 깨닫고 나와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매일 죄를 가지고 나와야 하고, 매일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죄 없다 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요일1:8). 늘 하나님께 나올 때마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자기의 부족한 것을 깨닫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1:15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까? 물론 과거에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에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합니다. 바울이 과거에 지은 죄만 가지고 괴수라는 말이 아니고 현재에도 나는 죄인가 운데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매일 자신의 죄를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한 것이 분명합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3번 부인하고서 대성통곡하면서 회개하였고, 또 일생동안 닭이 울 때마다 예수님을 부인한 죄를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이나 베드로가 늘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 하였고, 또 순교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가복음 7:21-23에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홀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 속에는 이런 죄가 다 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악한 생각, 음란, 도적질, 살인, 탐욕, 악독, 속이는 것,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 등 이런 것들이 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네 눈에 있는 들보
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느냐 외식하는 자야 네 속에 있는 들보부터 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자기 속에 있는 죄악성을 가리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다른 사람의 행위로 나타난 죄를 가리킵니다. 다른 사람의 행위로 나타난 죄보다 자기 마음에 있는 죄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간음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어떻게 할까요?” 라고 예수님께 물을 때 예수님이 땅에다 글씨를 쓰시며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치라”고 하였습니다(요 8:7). 그 때 한 사람씩 다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글씨를 쓰셨을까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 사람들의 죄가 생각나도록 하는 글인,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간음을 하였느니라”를 쓰셨을 것입니다. 그 글을 보고 사람들이 다 달아났습니다. 음란한 마음을 다 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외부로 나타난 죄보다 자기 속에 있는 죄가 더 큽니다. 이것을 붙들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입니다. 날마다 속에 있는 죄를 찾아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죄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많이 깨닫고 나온 사람은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죄를 많이 깨닫지 못하고 나온 사람은 은혜를 적게 받습니다. 즉 죄를 조금 깨닫고 나온 사람은 은혜를 적게 받고, 예수님을 사랑함이 적고, 죄를 깨
닫지 못하고 나온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는 버림 당함

호세아 4:14에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 죄부터 깨닫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또 구속의 은혜에 대해서 깨닫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나의 죄가 무엇인가? 어떤 때는 잘못한 것이 생각이 나지 않고 다 잘한 것만 생각이 납니다. 그럴 때는 회개할 것이 없다고 가만히 두면 내어 버리겠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여 죄를 회개하게 하기 위해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실수하게 만들고,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게 만듭니다. 모든 사람이 볼 때나, 자기가 생각할 때나 “무슨 큰 죄를 졌는가”하도록 구렁텅이에 빠뜨립니다. 그때는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됩니다. 자기 부패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않으면 부패성이 나오는데 부패성이 나오면 죄 가운데 빠집니다. 그러면 회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회개 못하는 사람은 바리새인처럼 잘한 것만 알고,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므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목사가 교단의 간부들과 어떤 일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목사가 혈기를 부리면서 싸웠는데, 후에 그 목사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며 회개하고 거꾸러졌는데 그 이후에 좋은 목사가 되어서 많은 사람 앞에 존경을 받았습니다. 싸움한 것은 잘못되었지만 싸움하는 바람에 자기 속에 있는 혈기가 나왔고, 그 혈기가 나온 것을 볼 때 자기는 참 형편없는 자임을 알고 자신도 부끄럽고, 다른 사람 앞에도 부끄럽고, 하나님 앞에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통히 회개했을 것입니다. 실수 한 것은 잘못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부인되고, 하나님께 나와서 원통히 회개하였기 때문에 유익이 많습니다. 싸우지 않고, 실수 하지 않고 그런 회개하였으면 더 좋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속에 있는 부패성이 나오지 않으면 회개를 원통히 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속에 부패성이 다 있는데 부패성이 나올 때만 회개하고 나오지 않을 때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속에서 부패성이 나오기 전에 회개하여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속에 있는 죄가 자신의 행동으로 나온 다음에 회개하면 죄가 나오는 것만큼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또 자기가 부끄러움을 당하며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실수하지 않고 회개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복 받을 사람은 자기 죄를 많이 깨닫고, 회개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시편에도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이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을 가지고 언제나 나가야 합니다.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가고, 현재에 지은 죄로 인해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가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못한 죄로 인해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가고, 알고도 행치 못한 죄로 인해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선을 알고도 행치 못한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또 로마서 14:23에 믿음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알고도 선을 행하지 못했으면 그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 할 때에 도와주지 않았으면 그것이 죄입니다.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면 그것이 죄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예수 못 믿고 죄 가운데 망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망했지만 그 피 값은 전도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찾는다고 하였습니다(겔 3:18).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이 죄입니다. 또한 기도하지 않은 것도 죄입니다. 기도는 하루에 두시간 이상씩 하여야 하고, 성경은 한 시간 이상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지 못한 죄를 회개하여야 하고 기도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여야 겠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삼상 12:23). 또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다면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여야 하고 용서해주지 못했다면 용서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하늘에 계신 천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모든 죄를 찾아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남을 미워한 죄, 원수를 사랑하지 못한 죄 등 모든 것을 찾아서 회개하려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죄가 있는 줄 모릅니다. 베드로, 다윗이 전에 지은 죄를 가지고 원통히 회개하였습니다. 현재 선을 행할 줄 알고도 선을 행치 못한 것, 적극적으로 하여야 할 것을 못한 것,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과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지 못한 것 등 모든 죄를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술 마시는 사람은 회개하고 술을 끊어 버려야 하며 담배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화목하지 못한 사람은 화목하여야 합니다. 또 남하고 원수진 것은 다 풀고 화목하여야 합니다. 화목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죄입니다. 모든 것을 회개하고 바로 서야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과 같이 자기가 죄인의 괴수인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인 줄 알고 날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죄 많은 여자는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믿음으로 알고, 또 예수님이 구속주이심을 믿고 예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나아갈 때 자기의 죄를 너무 원통히 생각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또 구속 주가 나를 구원하러 오신 것에 대해서 너무 감격에 넘쳐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재산을 아까워 하지 않고 향유를 사서, 자기에게 있는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려 아낌없이 향유를 부었습니다. 사랑하면 무엇을 바치려고 애를 씁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좀 더 대접하려고 하고, 좀 더 잘해주려고 하고, 좀 더 주려고 모든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죄 많은 여자도 예수님을 사랑하므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들여 향유를 사서 부었습니다. 그리고 발에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리고, 머리털로 닦았습니다. 참 귀한 믿음의 열매입니다.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갖다가 부었습니다.

본문 47절에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죄 사함 받은 것이 많으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많습니다. 죄를 깨달은 것 만큼, 죄를 회개한 것만큼, 예수님을 안 것 만큼 예수님을 더 사랑합니다. 우리도 자기의 부족을 많이 깨닫고 나가야겠습니다. 얼마나 나의 죄가 많은가? 얼마나 내가 하나님 앞에 불충성했는가? 얼마나 바칠것을 안바치고 아까워했는가? 그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내가 혈기를 부렸는가? 얼마나 내가 훼방을 했는가? 얼마나 내가 원수를 사랑하지 못했는가? 이것을 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죄를 많이 깨닫고 회개하면 예수님의 사랑이 크고 죄를 적게 깨닫고 나오면 사랑이 적습니다. 우리가 많이 깨닫고 나와서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자리에 들어가야겠습니다.

본문 48절에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회개하므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양털같이 희게해 주십니다. 피와 같이 붉은 죄라도 회개하면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십니다.

본문 49-50절에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는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함을 받았고, 평안함을 받았습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참된 평안, 참된 구원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찾으러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