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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히브리서 6:1-8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말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말라
히브리서 6:1-8

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초보적 가르침을 떠나서 온전한 데로 나아가자.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 

6:2 세례와 안수, 죽은 자의 부활과 세상의 심판에 관한 교훈의 기초를 다시 닦지 말자. 

6: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할 것이다. 

6:4 한 번 비췸을 받고 하늘의 은사도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자가 되고, 

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시대의 능력을 맛보고 나서도, 

6:6 타락한 자들은 회개에 이르도록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공개적으로 그분을 욕되게 하기 때문이다. 

6: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경작하는 자들에게 유용한 농작물을 내어주면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다. 

6:8 그러나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받고 저주에 가까워 마지막에는 불태워질 것이다. 


1.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

본문 6절에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또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중심 사상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그리스도께서 와서 피 흘려서 저희를 구속해 주실 것을 구약시대 내내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동정녀 마리아의 복종을 통해서 오셔서,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심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아주 귀중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 된다고 했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구속의 피의 능력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신앙의 기초가 예수님의 십자가이고, 또 중심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피를 믿지 않는 종교는 몽땅 지옥갈 종교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훈이 있다고 해도 십자가의 구속을 믿지 아니하면 전부다 지옥 갈 것입니다. 유교나 불교 할 것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믿지 않는 종교들이기에 전부 지옥 갈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피로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죄악의 담을 헐어 버리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2. 도의 초보에서 완전한 데 나아갈 것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가진 것을 버리지 말 것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고 했는데, 도의 초보를 버리지 말고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가라는 것입니다. 

도의 초보를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한데 나가라는 것입니다. “도의 초보를 버리고”라는 말은, 이를 버리지 말고 다른 터를 닦지 말고 온전한데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도의 초보를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버리고 터를 다시 닦지 말라’는 것은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한데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초보적인 진리에서 온전한데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의 초보를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버리고 터를 다시 닦는 것이 문제입니다. 

도의 초보가 무엇입니까?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 하나님께 대한 신앙, 이것이 도의 초보라고 했습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에 지은 모든 죄를 다 회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지는 일,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구속을 믿는 이것이 도의 초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받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고 깨끗함을 받은 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을 받은 표로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세례는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 구원의 표로 주는 것입니다. 증명서와 같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주민 등록증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표를 받았습니다. 

세례는 십자가의 구속을 믿는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아서 깨끗해진 표를 받은 것입니다. 표를 받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습니다. 성부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 세례는 잘못된 것입니다. 성부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다시 세례 받는 일은 잘못된 것입니다.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세례를 주는 재세례파가 있는데 그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요새 와서는 장로교인들이 침례교회로 가면 세례 다시 받으라는 침례교도 있고, 또는 자기네교회에서 세례 안받았어도 인정해주는 침례교도 있습니다. 또 장로교에서도 침례교에서 침례 받은 사람에게 다시 받으라고 하지 않고 인정해 줍니다. 그러나 다시 받으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인정해 주는 것은 괜찮습니다. 

세례 양식이 귀한 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구속을 믿는 것이 귀한 것이기 때문에, 또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았기 때문에 다시 못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받은 세례를 버리지말고 다시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초보적인 신앙을 버리면 예수님을 다시 못 박는 것임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의 터를 다시 닦지 말아라’고 했는데, 죽은 사람이 부활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부활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다 살아납니다. 죽어서 장사지내었던 사람의 무덤이 터지고 예수님 재림하실 때 다시 살아납니다. 화장해서 재가 됐다고 해도 원소는 세상에 있습니다. 다시 부활할 날이 옵니다. 

죽은 자의 부활과 심판에 대한 교훈의 터, 사도신경에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십니다. 그 심판과 영원한 하늘나라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고, 신앙을 가지고, 그다음에 세례를 받고, 그 다음에 직분을 받고, 그다음에 죽어도 부활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죽은 사람은 다 부활하는데, ‘나도 죽으면 부활 한다’는 이것을 믿고, 그다음엔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이것이 초보적인 신앙입니다. 이것이 기초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져야 되는데 이 신앙을 배반하면 안 됩니다. 이 신앙을 배반하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구속의 도를 배반하는 것이 왜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되는가 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 진리는 기초이고, 중심 줄거리이고, 여러 가지 진리는 가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 심판 부활 재림 회개, 이것이 다 초보적 신앙이요 기초인데, 모든 참된 진리는 다 예수님께 붙은 가지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성도는 가지라고 하였는데 모든 진리가 가지입니다. 그래서 진리 하나를 버리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됩니다. 옳은 진리인줄 알고 따라가다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는데, 옳은 진리는 예수님의 지체 아닙니까? 예수님의 몸입니다. 옳은 진리를 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한 가지라도 깨닫게 해주신 옳은 진리는 절대 버리면 안 됩니다.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 하나, 한 성구를 위해서 죽는 것이 순교입니다. 순교라는 것은 여러 성구를 한꺼번에 지키다 죽는 것이 아니고, 성경말씀 한 구절을 지키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는 것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요긴한 진리 한 가지만 버려도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절대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온전한데 나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버리지 말고 옳은 진리를 깨달았으면 이제는 거기서부터 온전한데 나가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고 했는데, 완전한데 나가라는 것입니다. 한번 깨달은 진리는 절대 버리면 안 됩니다. 생명입니다. 거기서부터 온전한데 나아가야 합니다. 자라나야 됩니다. 깨달은 데에서부터 온전한데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깨달은 진리를 기초로 해서 자라나고 온전한 자로 만들어지라는 것입니다.

3. 타락과 회개

중생한 사람도 타락할 수 있음

중생한 사람도 타락할 수 있는가? 중생한 사람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본문 4-6절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6절에 타락한 자들은 중생한 사람으로서 교리적으로 타락한 자들로 봅니다. ‘한번 비침을 얻고’라고 하였는데, 신령한 영적 빛, 즉 하늘의 빛이 비취어 졌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라고 하였는데, 하늘의 신령한 은사를 맛본 것입니다. ‘성령의 참예한 바가 되고’라고 한 것은, 성령에 참예한 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 아닙니까? 

본문 5절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선한 말씀에 참예한 바가 됐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생명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라는 것은, 내세의 능력도 맛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이렇게 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빛의 비췸을 얻고, 성령의 은사를 맛보고,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것은 중생한 사람이 아니면 맛볼 수도 없고 참예하는 사람은 중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다 맛을 보았는데 그 진리를 버렸다면 그것이 타락입니다. 맛을 본 사람, 은혜의 참예했던 사람이 그 진리를 버리는 게 타락 아닙니까? 중생한 사람도 타락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안갑니다 한번 중생한 사람이 타락은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중생했어도 까딱하면 타락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말세에는 미혹하는 자가 많이 나타나 할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이라도 미혹하리라고 했습니다. 택한 백성도 타락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까딱하면 타락입니다.

행위적 타락과 교리적 타락

타락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행위적으로 타락하는 수가 있고, 교리적으로 타락하는 수가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타락하는 사람들은 다시 회개케 할 수 없습니다. 교리적으로 타락해서 잘못된 사람들은 그게 옳은 줄 알고 나아갔기 때문에 회개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행위적으로 타락된 사람은 타락되었어도, 자기가 타락이 됐다는 것을 알고 나아갔기 때문에 회개할 기회가 옵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 타락한 사람은 자기 생각에 옳은 것을 어떻게 돌이키겠느냐는 것입니다. 잘못된 교리를 붙잡고 나가면서 그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신신학으로 나간 사람은 신신학이 옳다는 것입니다. 신비주의로 나아간 사람은 신비주의가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리적으로 타락한 사람은 다시 회개케 하여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른진리를 버리고 잘못된 것을 붙들면 그것이 옳은 교리인 줄 알기 때문에 돌아오기 힘이 듭니다. 모르고 잘못된 곳으로 갔던 사람은 돌아올 희망이 있지만, 진리를 다 배우고 다 알던 사람이, 잘못된 진리를 좇아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며 나가는 사람은 다시 돌아오기가 힘이 듭니다. 

이단으로 나간 사람, 즉,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에 나간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단으로 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합니다. 신신학으로 나간 사람들도 돌아오기가 힘이 듭니다. 다시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였기 때문에 다시 회개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한번 붙잡았으면 양보하면 안 됩니다. 그대로 실천을 해야 합니다. 실행을 해야 합니다. “옳긴 옳은데 내가 그대로 할수 없다”는 것은 썩은 생각입니다. 썩어지고 부패되고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을 붙들고도 그것이 옳다고 나간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한 자는 도덕적으로나 교리적으로 타락된 자라도 구원을 얻되 많은 징계를 받고 불가운데서 나온 구원과 같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혜의 비를 받는 자

은혜를 받아 열매 맺는 자 복이 있음

본문 7-8절에,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땅이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채소를 내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자주 내리워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채소를 내기도 하고 또 곡식이 열매를 맺기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자주 내리워주는 은혜를 받는 사람, 다시 말하면 주일날마다 내리워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비를 받는 사람입니다. 땅이 흡족하게 받아서 채소가 나서 자라나고 열매를 맺으면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지 못하면 못씁니다. 모래바닥은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지만 다 빠져 내려가서 며칠 지나면 다 말라 죽습니다. 구멍이 안 뚫어져 있어야 합니다. 은혜 받았는데 구멍이 나지 않도록 하고, 걸림이 없이하고, 하나님께서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도록 항상 마음을 열어놓고, 언제나 은혜 받으려고 하고, 가리우는 것이 없이해야 합니다. 불평불만 원망은 다 가리우는 것입니다. 은혜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불만하고 원망하고, 또 하나님의 종과 맞서려 하는 사람은 은혜 받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아무리 자주 내려주셔도 열매 맺지 못합니다.

그 다음엔 무엇을 낸다고 했습니까?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고 했습니다. 못된 것만 냅니다. 못된 것은 못된 열매만 맺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주 은혜를 내리셔서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데, 은혜를 받지 못하고 거역하고 나가므로 가시와 엉겅퀴와 같이 못된 것만 낸다면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지고 마지막엔 불사름이 됩니다. 

불붙는 가운데 얻은 구원이 되지 말 것

불사름이 된다는 것은 아주 지옥 간다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3장 15절에, "누구든지 공력에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것은 불로 공력을 시험할 때 공력이 불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안 갔습니다. 불 난 집에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다, 즉 불붙은 집에서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받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5장 5절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음행 죄가 들어왔는데, 음행하는 사람들은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은 멸하고 영혼만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것이 불붙는 가운데 얻은 구원인 것입니다.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고 했는데, 불사름에서 벌거벗은 몸만 나온 것과 같은 그런 구원입니다. 그러나 음행 죄를 지은 사람도 회개하면 됩니다. 회개하지 않고 나아가면 마지막에는 쫄딱 망하는데, 육신은 망하고 영혼만 주예수의 날에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불사름이 되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신앙 생활한 것 다 불타져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초보적인 진리 한 말씀이 중요한줄 알아야 합니다. 절대 버리면 안 됩니다. 거기서 단단한 식물을 먹고 자라나야 합니다. 

바른 진리를 버리지 말고 한 말씀을 지킬 것

초보적인 진리를 버리고 다른 것을 하고, 다른 터를 닦는 사람은 다시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불사름에 되서 저주함에 가까와 불사름이 되는 그 자리에 나가게 됩니다.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중요한 줄 알고 그것을 생명 내놓고 지켜야 합니다. 생명보다 귀합니다. 하나님말씀 한 마디가 육신의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한 성경구절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성경 한 구절 지킨 것이 남아 있습니다. 

바른 진리를 깨닫고 나가다가 버리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것입니다. 옳은 진리는 절대 버리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지키기 위해서 생명 내놓고, 말씀 지키다가 환란과 핍박을 당하기도 하고, 또 말씀 지키다가 순교당한 사람도 많습니다. 

과거에 신사참배 바람 불 때 주기철 목사를 비롯해서 여러 목사들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주기철 목사가 지킨 한 마디 성경구절은 “우상 섬기지 말라”는 2계명입니다. 그 한성구 지키다가 목숨 바쳐서 순교 당했습니다. 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그 성구 한 말씀 지키려고 많은 환란을 당했습니다. 

오늘날에는 4계명 지키라는 시대입니다. 요즘은 4계명으로 하나님의 시험 치는 시대입니다. 그때는 2계명 시험 쳤지만 이제는 4계명을 지켜야합니다. 4계명이 주일 지키는 것 아닙니까? 주일 지키라는 4계명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오는데 그것을 이겨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시험하는 것으로서, 직장에서 떨어진다, 내좇는다, 핍박을 받는다, 생활의 곤란한 가운데 빠진다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북에서는 주일 지키다가 감옥에 갇히고, 순교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일 지키다가 이렇게 고난당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주일날을 양보하면 안 됩니다. 그게 생명이고 그것 양보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한 성구를 양보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절대 양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십일조 드리는 것,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말씀도 다 마찬가지 입니다. 성경말씀 하나가 영원한 생명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지만, 하나님 말씀 지키다가 없어지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말씀 하나 지키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말씀 양보하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알게 해주셨는데, 그게 다 예수님의 구속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구속의 도리에 다 포함되어있습니다.
옳은 진리는 예수님의 구속의 도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속의 도리에 포함되어 있는 옳은 진리를 위하여 생명 내놓고 나가고, 이것을 버리다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저주 받는 자리에 이르지 아니하고,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해야 합니다. 

자주 내리는 은혜를 흡수하는 것은 자주 내리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 받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막히는 것을 다 제거 시키고, 회개하고 전심전력으로 사모하고, 이 말씀을 받아서 자기 생명으로 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채소도 잘되고 곡식도 잘 되어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고 버리면 저주함에 가까워 마지막에 불사름이 됩니다. 성경말씀을 버리면 저주함에 가까워 마지막에 불사름이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됩니다.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더욱 온전한데 나아가야 합니다. 젖이나 먹지 말고 단단한 식물을 먹어서 더 완전한 데로 나가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