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되라
에스더 1:1-22
1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된 것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 구스까지 일백이십칠 도를 치리하는 왕이라 2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궁에서 즉위하고 3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4왕이 여러 날 곧 일백팔십 일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5이날이 다하매 왕이 또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쌔 6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7금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 왕의 풍부한 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8마시는 것도 규모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하여 각 사람으로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9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10제 칠 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 11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12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붙는 듯하더라 13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14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15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명을 좇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 16므무간이 왕과 방백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할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 방백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17아하수에로 왕이 명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부녀에게 전파되면 저희도 그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18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방백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19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찐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20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무론하고 모든 부녀가 그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21왕과 방백들이 그 말을 선히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22각 도 각 백성의 문자와 방언대로 모든 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방언대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에스더 1:1-22
1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된 것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 구스까지 일백이십칠 도를 치리하는 왕이라 2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궁에서 즉위하고 3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4왕이 여러 날 곧 일백팔십 일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5이날이 다하매 왕이 또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쌔 6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7금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 왕의 풍부한 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8마시는 것도 규모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하여 각 사람으로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9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10제 칠 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 11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12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붙는 듯하더라 13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14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15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명을 좇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 16므무간이 왕과 방백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할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 방백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17아하수에로 왕이 명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부녀에게 전파되면 저희도 그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18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방백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19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찐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20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무론하고 모든 부녀가 그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21왕과 방백들이 그 말을 선히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22각 도 각 백성의 문자와 방언대로 모든 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방언대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1. 아하수에로 왕이 왕궁에서 큰 잔치를 베풂
에스더서의 배경
에스더서를 기록한 사람은 모르드개로 추정됩니다. 혹자는 에스더를 에스라가 기록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성경 에스더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시대적 배경은 아하수에로 왕 때인데, 아하수에로 왕은 주전 485∼465년까지 바사 나라를 치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일명 크세르크스(Xerxes)라고도 하는데, 아하수에로와 크세르크스는 같은 말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는 주전 486∼465년까지이며, 그때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귀국하기 전 시기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1차 포로로 잡혀간 것이 주전 605년입니다. 그리고 약 70년 뒤인 주전 538년에 1차 포로 귀환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귀환하지 않고 바벨론에 남아 있던 유다 사람들이 큰 환난을 당한 일과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사실이 에스더서의 내용입니다. 즉,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오기 전에 유다 사람들이 아직도 바벨론에 많이 남아있었는데, 그때 본서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에 좀 더 많은 수의 유다 백성들을 함께 돌려보내시기 위해 바벨론에 남은 유다 사람들로 하여금 죽을 지경에 빠지게 하신 것입니다. 큰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곧이어 2차, 3차 포로 귀환이 있게 될 것인데, 그때에 너무 평안하면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셔서 다음 기회에 빨리들 돌아가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평안한 때를 맞아 큰 잔치를 베풂
본문 1절에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된 것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 구스까지 일백이십칠 도를 치리하는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는 바사 나라가 인도까지 통치한 때입니다. 127도나 되는 광범위한 나라를 치리하던 때입니다. 다리오 때는 120도라고 했습니다. 다니엘 6장 1절에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다리오가 다스릴 때는 120도였는데, 지금 127도로 늘린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위에 있은 지 삼 년에’라고 하였는데, 삼 년을 치리한 그 시기는 아하수에로 왕의 지위가 견고한 때였습니다. 그전에 불순한 세력들이 많이 있었는데, 아하수에로가 왕이 되어 3년째 되던 해에 그 불순 세력들을 다 숙청하여 나라가 견고하게 섰다고 합니다. 즉, 그 전에는 나라에 반란도 좀 있었고 여러 가지 어지러움이 있었지만, 3년 째 되던 해에는 그러한 혼란들을 다 평정시켜 나라가 견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푹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가 삼 년 동안 수고한 모든 방백과 장수들을 위해서 대접도 좀 하고, 연락도 좀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되었습니다. 마음을 놓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연회를 하려는 생각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평안할 때는 이렇게 마음을 놓다가 방탕하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을 힘을 써서 해나가며 애를 쓰지만, 평안해지면 힘을 쓰지 않고 방탕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교역자들도 처음에 개척 교회를 할 때에는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려고 합니다. 애를 씁니다. 피땀을 흘려서 하려고 합니다. 예배당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려고 애를 씁니다. 교회를 세우려고 굉장히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을 하다가 교회가 편안해지고 교
인들이 좀 모여 기반이 잡히면 그때는 힘을 안 씁니다. 그때는 방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방탕하며 나가다가는 결국 망하게 됩니다.
다니엘 5장에 보면 벨사살 왕도 방탕하다가 망했습니다. 연락하며 술을 부어 마시며 방탕하게 나가다가 망한 것입니다. 이 아하수에로 왕도 방탕한 가운데 빠졌다가 어지러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잔치를 베풀며 나라의 부귀와 위엄, 혁혁(赫赫)함을 나타냄
본문 4-5절에 “왕이 여러 날 곧 일백 팔십 일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이날이 다하매 왕이 또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쌔”라고 하였습니다.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 방백들을 왕 앞에 청했다고 했습니다. 장사는 힘을 잘 쓰는 사람이고, 장수는 통수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군대의 사단장이나 장관들, 통솔자가 장수인 것입니다. 즉, 나라를 삼 년 동안 잘 치리하여 평정하게
했으니까 장수들의 공로가 큽니다. 그래서 왕이 그 사람들을 다 모아서 한 번 대접하려 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을 왕 앞에 모아놓고 180일(6개월) 동안을 잔치하면서 나라의 부귀와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같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180일 동안 잔치한 것은 아니고 사람을 교대하여 잔치한 것 같습니다. 한 번에 한 주간이면 한 주간, 열흘이면 열흘씩 얼마 동안 잔치를 베풀고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서 잔치하고 내보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초청해서 잔치하고 내보냈다는 것입니다. 127도나 되니까 방백도 많고 장수도 많고 귀족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을 교대로 초청하여 잔치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귀족과 장수들을 먼저 초청해서 180일 동안을 잔치하고, 그 다음에는 수산에 있는 대소 인민을 위하여 또 7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였습니다. 수산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도를 말하는 것인데, 수도에 있는 어지간한 사람들을 다 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청해서 대접을 잘한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깐 땅에 진설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대리석 기둥에 자색 가는 베줄로 잡아맸는데, 그 잡아맨 고리는 은입니다. 그리고 걸상은 금과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땅에는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깔았습니다. 전부 보석을 깔아놓은 것입니다. 지금 보석으로 바닥을 깔고, 걸상은 금과 은으로 만들고, 기둥은 대리석이며, 잡아 맨 고리는 은입니다. 그리고 휘장은 백색, 녹색, 청색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부귀가 극치에 달한 것입니다.
본문 7-8절에 “금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 왕의 풍부한 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마시는 것도 규모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하여 각 사람으로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잔을 금잔으로 마시게 하니’라고 하였는데, 그 잔이 다 같은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잔마다 모양이 달랐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잔, 어떤 사람에게는 저런 잔으로 식양을 다 다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처음에 먹는 잔, 다음에 먹는 잔, 그 다음에 먹는 잔이 나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잔이 전부 다른 모양입니다.
또 ‘어주(御酒)가 한이 없으며’라고 하였는데, 왕이 주는 술이 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모대로 잘 정해서, 즉 조직과 규칙을 정하여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먹도록 했습니다. 연회하는 것이 많이 발전되었습니다.
2. 왕후 와스디의 불순종
왕이 주흥(酒興)하여 백성과 방백들에게 왕후를 보이도록 명함
본문 9절에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고 하였습니다. 와스디 왕후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왕은 후원 뜰에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이유는 너무 사람을 많이 청하여 왕궁에서는 그들을 다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넓은 뜰에서 큰 휘장을 쳐놓고 잔치를 베푼 것 같습니다.
바사 나라는 지금의 이란이라고 합니다. 바벨론은 이라크입니다. 메데 바사는 나중에 바벨론까지 점령을 하였는데, 와스디도 지금 왕궁에서 자기와 가까이 하는 부녀들을 청해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왕은 남자들만 청해서 잔치한 것 같고 부녀들은 와스디가 청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남편이 방탕을 하니까 아내도 연회를 하면서 방탕하게 되었습니다. 윗사람이 이렇게 연락하고 방탕하면 아랫사람도 방탕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하니까 아내도 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0-11절에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주흥(酒興)이라는 것은 술이 취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을 말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기분이 좋아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왕후 와스디로 하여금 일어나 면류관을 정제하고 백성들 앞에 나아와 아리따운 얼굴을 한 번 보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아내 자랑할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사람을 보내서 왕후를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내시 일곱 명이 왕후에게 가서 면류관을 정제하고 앞으로 나와,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였습니다. 지금 왕후의 용모가 보기 좋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앞에 자랑하려고 그녀로 하여금 나오게 했는데, 그날은 잔치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180일이 다 지나고, 대소 인민을 위하여 잔치하는 7일째 되는 날, 즉 잔치의 마지막 날 나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왕이 실수한 것입니다. 왕이 잘못했습니다. 주흥이 일어나서 벌인 행동이므로 잘못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정신을 차려서 바로 해야 되겠는데, 주흥이 일어나서 그 기분으로 자기 아내를 나오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자기 아내를 사람 앞에서 구경
시키고 자랑하려고 나오라고 한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 당시의 풍속으로 보면 왕후가 백성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합당치 않은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백성들 앞에서 자기 아내를 구경시키려고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7명을 보내서 나오라고 했는데, 7명을 보낸 자체도 잘못되었습니다. 보내려면 한 사람만 보내도 됩니다. 왕의 뜰에서 궁까지 큰 소리만 치면 들릴 수 있는데, 일곱 명씩이나 보낸 것은 위력을 써서 아내를 데려오려고 하는 것과 같이 보입니다. 그러한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음
본문 12절에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붙는 듯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왕후 와스디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왕이 진노하여 심중이 불붙는 듯하더라’고 하였는데, 진노하여 심중에 불붙는 듯한 것도 왕이 실수한 것입니다. 분한 마음으로 일 처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을 처리할 때 분한마음으로 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분을 억제해야 하는데, 이렇게 방탕한 자리에서는 분을 억제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기분대로, 분대로, 주흥대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이런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왕후 와스디가 안 온 것은 잘되었습니까? 물론 왕이 오라고 한 것은 실수한 것입니다. 와스디는 남편인 왕이 아내인 자신의 인격을 무시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술김에 사람들 앞에 오라고 한 것이 잘못된 것이고, 왕후의 지위를 생각하지 않고 백성들 앞에 구경
시키려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놀림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을지 모릅니다. 또 ‘나와서 보이려면 정당하게 하지, 사람을 일곱 명씩이나 보내 무력으로 끌어가려느냐’라고 생각하여 자존심이 상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풍속으로 보면 왕후가 백성들 앞에 구경거리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후 와스디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여 왕 앞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법으로 되어 있으면, 왕후가 안 가기를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원리 원칙대로 하면 가야 합니다. 원리 원칙으로 따지자면,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필종부(婦必從夫)’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이 오라고 했으면 갔어야 합니다. 물론 자기 체면이 안 서고 백성들 앞에서 무시를 당하며 왕도 자기를 무시 하는 것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갔어야 합니다. 이것은 진리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이상 자기가 좀 낮아진다고 생각을 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안 가면 왕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왕이 오라고 했는데, 왕후가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 왕이 어떻게 왕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왕의 명령이 무시당하면 나라의 일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왕후 와스디가 이런 큰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작은 문제만 생각하고, 왕이 실수한 것만 생각한 것입니다. 나라 문제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무시를 당해도 자기가 좀 희생을 하고 나라와 왕을 위해 갔어야 합니다. 자기 한 사람 낮아지고 멸시를 당하며 구경거리가 되어도, 왕이 잘되고 나라가 잘될 뻔한 일입니다. 그런데 가지 않았으므로 아주 잘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왕후 와스디가 남편을 순종하지 않은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왕으로 하여금 왕의 일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고 나라에 소문이 퍼지면 그 나라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와스디는 자기 생각만 하고 안 간 것입니다. ‘사람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이 말이 되느냐? 왕후는 대중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데 대중 앞에 나타나겠느냐? 그것도 정당하게 오라는 것이 아니라 주흥이 일어나서 술기운에 오라고 하는데 내가 무슨 창녀냐?’, 이런 생각으로 안 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자기 중심으로 나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하지 말고 나라 중심으로 해야 하고 남편의 위신을 세워줘야 합니다. 남편을 세워줘야 자기도 세워집니다. 남편이 넘어가면 자기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남편을 세우고 나라를 세워나가는, 그러한 중심을 가지고 나아가야 나라도 바로 되고 왕도 잘됩니다. 자기 위신이 낮아지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왕이 잘되면 자기도 잘되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위신이 떨어지고 구경거리가 된다고 해도 왕이 잘되어야 자기가 잘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신랑된 예수님께 잘 순종해야 함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 순종함에 부족한 것들을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잘못된 것을 찾아야 합니다. 성도는 주께서 오라고 하실 때에 어디든지 가야 합니다. 멸시와 천대를 당하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비방거리가 되어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잘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이 아하수에로 왕을 예수님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또 왕후 와스디를 성도라고 해도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부의 위치에 있는 우리가 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라고 하실 때에 어디든지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멸시나 천대를 받는 곳도 가고, 무시를 당하는 곳도 가야 합니다. 어디든지 가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어디든지 가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께서 오라고 하시면 희생을 당해도 가야 하는데, 가지 않은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디든지 완전무결하게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가야 하니까 인도하시는 것인데, 내 평안과 일신상의 향락을 버리지 못해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안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낮아지지 않으려고 안 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위신 문제 때문에 안 갑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과 행동은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왕은 예수님이고 와스디는 성도다’, 이렇게 비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안 됩니다. 남편을 순종하지 않은 와스디가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남편 되는 예수님을 잘 순종하고 있는가, 한 번 생각 해보고 지나가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을 생각하며, 순종하지 않은 것을 회개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결심해야겠습니다. 어디든지 가야겠다는 결심을 해야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아내로서 남편 순종을 잘했는가?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에 대한 순종을 잘했는가?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주흥에 취해 구경거리로 삼아 인도한 바가 없었는가?’ 등을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나 윗사람, 아랫사람의 관계 속에서 회개할 바를 찾아 바로 회개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윗사람이나 남편은 아내나 아랫사람을 인도할 때에 원리 원칙대로 바로 해야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랫사람이나 아내는 자기의 위신이나 평안함을 위해 남편이나 윗사람에게 순종하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해야겠습니다. 물론 진리 문제에 대해서는 생명을 내놓고 순종해야 하지만, 진리 문제가 아닌 이상 우리는 모든 면에서 윗사람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아내들도 남편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못한 것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두 사람이 있었는데 같은 날 태어난 동갑내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집은 잘 살고 한 집은 못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형편의 사람이 왜 그런지 가서 물어보니까 잘 사는 집 사람이 내가 한번 보여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그 집에 가서 맏아들을 부르니 맏아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더러 소를 끌고 지붕으로 올라가라고 하니까 지붕으로 올라가려고 애를 쓰고 또 어머니도 나와서 뒤에서 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둘째에게는 기둥을 찍으라고 했더니 기둥을 찍으려고 했답니다. 셋째한테는 나와서 곡식을 벨 때가 아닌데 곡식을 베라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한참 동안 곡식을 베었답니다. 익기 전이니까 베면 내버리는 것인데, 그래도 베어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것이 우리가 잘되는 이유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 안 되는 친구가 그것을 누가 못 하겠느냐고, 자기 집에 가서 똑같이 해본 것입니다. 맏아들에게는 소를 끌고 지붕에 올라가라고 했는데, 맏아들이 “소를 끌고 어떻게 지붕에 올라가겠습니까?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십니다”하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또 둘째에게는 기둥을 찍으라고 했더니 “기둥을 찍으면 집이 무너지는데 어떻게 찍습니까?”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셋째에게 가서 곡식을 베라고 했더니 “익지도 않은 곡식을 어떻게 벱니까?”라고 하며 전부 다 반대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잘 사는 집의 사람이 “너희 집은 이래서 안 된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잘되는 집 아들은 기둥을 찍으면 집이 무너지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래도 아버지가 시켰으니까 무조건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생각이 있으니까 기둥을 찍으라고 하셨겠지, 찍어서 죽으려고 하시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소를 끌고 지붕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고, 안 익은 곡식을 베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지만, 아버지의 말을 그만큼 순종하여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순종할 때에 집이 잘되었습니다.
3. 왕후 처벌에 대한 제의
므무간이 왕후의 처벌을 정당하게 제의함
본문 13-15절에 “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때에 왕에게 가까이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명을 좇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왕이 묻는 전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여기 박사들은 지혜 있는 자라는 뜻인데, 왕이 이 박사들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고문 일곱 방백들이 이후의 모든 일을 처리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은 법을 잘 알고 사례를 밝히 아는 사람들인데, 지혜 있는 모사가 있는 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 16-18절에 “므무간이 왕과 방백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할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 방백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명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부녀에게 전파되면 저희도 그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방백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므무간이라는 사람이 바로 말했습니다.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에게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바른 말입니다.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개인만 생각하여 이렇게 되었는데, 나라는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더욱이 왕후가 남편인 왕의 말을 안 들었다는 소문과 함께 왕의 말이 무시 되었다는 말이 돌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왕의 말에 복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왕의 말이 무시되었으니 다른 백성들이 왕을 어떻게 공경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남편의 말이 무시되었으니 다른 부녀들도 그 말을 듣고 자기 남편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멸시와 분노가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9절에 “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찐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와스디를 왕후의 위에서 폐하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와스디를 심판하심으로 왕후의 위를 폐하시고, 에스더를 그 자리에 등용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자는 제하여버리시고 합당한 자를 등용하시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령한 뜻이 있습니다.
합당치 않은 자는 다 빼앗김
언제나 합당치 않은 자는 다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한 달란트를 빼앗겼습니다. 또 혼인 잔치 집에는 예복을 입고 들어오라고 했는데,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사람은 그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으로 길가에 나가서 만나는 소경, 절름발이를 데려다가 그 자리를 채우라고 하였습니다. 합당치 않은 자는 언제나 그 자리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대신에 합당한 자를 그 자리에 앉혀서 일하게 하십니다. 또 레위인의 제사장
이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게 행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합당치 않은 그들을 폐하시고 합당한 사람을 그 자리에 두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 때에는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청지기도 합당치 않으면 그 자리를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치 않는 사람을 그 자리에 그냥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다 빼앗으십니다. 그 대신에 합당한 사람을 거기에 앉히십니다.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환경과 좋은 위치, 좋은 일터를 주셨을 때에 하나님 앞에 바로 하려고 해야겠습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자기가 낮아지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세우는 방향으로 행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하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나가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겠는지에 목표를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잘되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자기 위신 문제, 자기가 낮아지는 문제, 자기 자존심 문제, 이런 것들은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의가 잘되겠는가, 진리가 잘 세워져나가겠는가, 구원 운동이 잘되겠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은 낮아지고 멸시와 천대를 당하더라도 진리 운동만 잘되고 하나님의 나라 운동만 잘되면 나는 만족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쇠하여야겠고 그는 흥하여야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자기 문제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요새 기성 교회들이 당파를 만들어 노회나 총회 때 싸움이 나고 서로 자신들이 권세를 잡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노회나 총회에서 여러 당파가 모여 자기 당파가 세력을 잡으려고 하다가 사분오열(四分五裂)하여 깨져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한 일입니다. 자기 당파나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는 진리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일 전체를 생각하며 진리 운동을 생각해야 합니 다.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당파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 나라와 의만 생각하면 됩니다. 언제나 ‘나는 희생이 되어도 전체가 잘되어 나가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러한 자리에 서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지만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았기 때문에 광야에서 다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새로 난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20세 이상과 새로 난 사람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합당한 사람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가나안 땅을 유다 사람들에게 주셨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다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합당히 행했는가?’ 또 ‘사람 앞에서도 할 바를 바로 했는가? 윗사람이나 남편에게 바로 했는가? 아랫사람이나 아내에게 바로 했는가?를 언제나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래서 합당치 못하게 한 것을 찾아서 회개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못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다 빼앗기고 맙니다.
과거의 위치를 생각하지 말고 합당한 열매 맺기를 힘써야 함
우리는 자신이 과거에 왕후의 지위에 있었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한 몫 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합당한가? 내가 하나님께 합당한 자가 되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과거에 왕후였다. 왕과 동등이었다. 부부가 일심이다’, 이러한 것들만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하였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면 하나님께서 쓰실 것이고, 합당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제하여버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을 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합당한 자가 되려고 늘 힘을 쓰며 자신을 부인하고 낮아져야 합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하나님의 일만 잘되어나가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잘됩니다.
이제 우리도 합당한 자기의 위치를 잘 지켜서 맡겨주신 직무를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써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위치를 합당히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일을 못하면, 하나님께서 제하여 버리시며 다른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사람들이 합당치 않으므로 그 대신에 이방 사람들을 세워놓으셨습니다. 또 참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니까 가지는 찍어버리고 들 포도나무를 접붙여서 포도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하여간 합당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빼앗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열매를 맺었는지, 합당한 일을 행하였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지위와 귀중한 자리를 주셨는데, 우리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 자리를 잘 지켰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지키지 못했으면 결국 빼앗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리를 주셨어도, 교회에서도 쫓겨나고 다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합당한 자기의 직무를 감당하며 잘해나가면 하나님께서 더욱 더 잘되게 해주십니다.
4. 와스디를 왕후의 위에서 폐함
본문 20-22절에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무론하고 모든 부녀가 그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왕과 방백들이 그 말을 선히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각 도 각 백성의 문자와 방언대로 모든 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방언대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므무간의 말이 옳았습니다. 다 옳게 여겼습니다. 왕도 그 말을 옳게 여겨서 그대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도에 조서를 내려서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방언대로 말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와스디는 왕후의 위에서 폐해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이 왕후로 택함 받게 되었습니다. 또 전국에 조서를 내려서 남편으로 그집을 주관하게 하고 여자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남편이 호주가 되는 것이 성경의 원리 원칙에 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호주가 가정을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단체로 말하면 단체에 책임자를 세워서 그 책임자가 단체를 주관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행해야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