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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31일 화요일

사무엘하 24:1-25 인구 조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인구 조사
사무엘하 24:1-25

1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2왕이 이에 그 곁에 있는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 3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4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장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장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서 5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6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서 7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편으로 나와서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8저희 무리가 국중을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9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 만이었더라 10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1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2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13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 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 일 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 14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15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인이라 16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 17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18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19다윗이 여호와의 명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20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 신복들이 자기를 향하여 옴을 보고 나가서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21가로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다윗이 가로되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 22아라우나가 다윗에게 고하되 원컨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23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24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25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1.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함

인구 조사 준비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왕이 이에 그 곁에 있는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 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켜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군대장관 요압과 다른 사람을 불러다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전부 다 조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단은 북쪽이고 브엘세바는 남쪽입니다. 

본문 3절에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요압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듣지 않았습니다. 

본문 4-6절에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장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장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서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서”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명령을 재촉하기 때문에 요압과 군대장관들이 인구 조사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장막을 치고 인구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안 해야 될 인구 조사를 한 것입니다. 역대상 21장 1-2절에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서 내게 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 1절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다윗을 감동시켜 가서 인구 조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맞습니까? 둘 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사탄을 이용해서 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마귀인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 사람을 격동도 시키고 시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사탄이 하지 못합니다. 

인구 조사를 실시한 다윗

그런데 다윗은 인구 조사를 해서 그것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그것 가지고 잘해보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인구 조사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요압 군대장관은 이것을 알고 ‘왜 인구 조사를 하려고 합니까?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구했습니다. 인구 조사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해주실 텐데 왜 인구 조사를 해서 그것을 의지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왕이 그래도 말을 안 들었습니다.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하니까 요압과 군대 장관들이 인구 조사를 하려고 떠났습니다.

본문 5-9절에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서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편으로 나와서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저희 무리가 국중을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 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브엘세바까지 다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아홉 달 스무날 동안 했습니다. 9개월 20일 만에 인구 조사가 다 끝났습니다. 군대 나갈만한 사람이 이스라엘 가운데 팔십 만이고, 유다 사람 오십만을 합하면 일백 삼십 만입니다. 일백 삼십 만 대군을 조사한 것입니다. 일백 삼십 만 대군이라 하면 굉장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군이 몇 명입니까? 육십 만입니다. 일백 삼십 만 대군이 우리 한국 군대보다 배나 더 많습니다. 일백만 대군도 상당히 큰 것인데 일백 삼십만 대군이 조사가 됐습니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습니까? 일백 삼십만 대군만 가지고 있으면 그 주변 나라도 다 쳐부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바로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군사가 많아서 그것을 가지고 든든한 나라를 세우고 주변 나라들을 다 정복하고 큰 나라 만드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바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

1) 다윗이 교만해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을 향하여 진노하사 인구를 조사하도록 하셨습니까? 인구 조사를 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으로 인구 조사를 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진노하셨습니까? 

지금 다윗의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유다가 이스라엘에 복종하고, 대적이 다 굴복을 하였습니다. 사울의 모든 집도 다 굴복시켜 모든 것이 안정이 되어 건실하고 창성하게 나아간 때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진노하셨겠습니까? 다윗이 교만해서 진노하신 것 같습니다. 잘된 것을 자기가 한 줄로 알고,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며 하나님의 은혜인지 알지 못하고 자랑하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모든 일은 잘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충성스러운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몇 명씩 죽였다고 했습니까? 한 사람이 팔백 명도 죽이고 삼백 명도 죽였습니다. 소나무 채찍으로는 사백 명을 죽였습니다. 장대한 자를 창과 막대기 하나 가지고 싸워 이기고, 그 창을 빼앗아 죽였습니다. 대승리를 했습니다. 형통하게 되고 모든 것이 안정되고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정되고 잘 될 때에 신앙이 잠들기 쉽고, 교만하기 쉽고, 제가 한 줄 알기 쉽습니다. 지금 다윗은 모든 일을 자기가 하려고 하는 생각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마귀를 시켜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를 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다윗이 북쪽 단에서부터 브엘세바 남쪽까지 나라의 인구 조사를 해서 도수를 자신에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2) 인구 조사의 목적이 잘못됨

 인구를 조사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모세 때에도 인구 조사를 하고, 출애굽 때에도 인구 조사를 했는데, 그때는 하나님께서 시켜서 했습니다. 인구 조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모세 때에 인구를 조사해 보니 애굽에서 나온 사람이 몇 명이라고 했습니까? 육십만 명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 중에 전쟁에 나갈 만한 사람이 육십만 명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지 않아야 할 인구 조사를 했습니다. 모세 때에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한 것이고, 다윗은 안 할 것을 한 것입니다. 그 목적이 틀렸습니다. 다윗의 인구 조사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은 것을 자랑하며 그것으로 앞으로 한 몫 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의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또 그것으로 한 몫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또 잘된 것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과 더 잘 해보려고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목적이 틀렸습니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잘되던지 잘못되던지, 성공하던지 실패하던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 하나만 존귀해지면 만족하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많은 군사를 조사하여 더욱 강력한 나라, 군대가 강한 나라를 만들어 좀 더 사람 세력을 의지해 잘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5-8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믿고 권력을 의지하며 혈육으로 권력을 삼아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력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력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사람을 의
지하고 믿으면 안 되고, 돈을 믿으면 안 되고, 성공한 것을 믿으면 안 되고, 사업이 잘 되는 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믿을 바가 아닙니다. 믿을 바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잘되든 못되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뢰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뢰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면 망합니다. 사람, 권세, 숫자가 많은 것, 군사가 많은 것, 돈 많은 것 등을 의지하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처음부터 잘못되었습니다. 교만하여 제가 한 줄로 알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위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 하나가 있으면 그것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실력이 있으면 그것을 의지합니다. 

평양에서 이기선 목사님이 성경 연구원을 했습니다. 이기선 목사님 대소지 책에 다 나와 있습니다. 학생이 140~150명 정도였는데, 신학교라는 이름을 사용 할 수 없어서 성경 연구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저도 신학 연구원 학생이었습니다. 그때 이십대 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이 커서 지금 이만큼 되었습니다. 그때 이기선 목사님께 배웠으니 제게 대소지 책을 낼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상당히 좋은 것이 많습니다. 책 서론에 나오는데 여자가 거의 절반되었습니다. 남자보다는 숫자가 조금 적었지만 상당히 많았습니다. 어떠한 여자들이 왔는가 하면 다 잘 생겼습니다. 얼굴이 멀건하고, 아주 미끈하게 잘 생긴 여자들이 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잘 생긴 여자들이 왔느냐고 물어보니까 다 이혼당하고 왔다고 합니다. 자기 얼굴 잘 생겼다고 교만하고, 남편 순종 안 하고 제 잘난 맛에 나가다가 이혼하고 갈 데 없으니 성경 배우려고 나온 것입니다. 실력이 하나 있으면 실력을 배경으로 교만해집니다. 실력이 있으니까 ‘네 까짓 것과는 안 살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하고 싸우고 다투다 쫓겨납니다. 아예 못생기고 실력이 없는 사람은 한번 시집가면 감개무량해서 무조건 복종하는 것입니다. 내쫓으려고 해도 내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조건 복종하는데 어떻게 내쫓겠습니까? 어떤 여자는 남편하고 싸우는데 이로 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쫓겨나 갈 데가 없어서 성경 학교 오는 것입니다. 우리 신학교는 그런 사람은 안 받아줍니다. 싸우고 남편 물어뜯고 갈 데 없어서 온 사람은 안 받아줍니다. 무엇 하나 잘되면 교만해집니다. 실력이 하나 있으면 교만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것 가지고 살려고 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의지하려고 하고, 혈육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인구 조사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권력을 위해서 인구 조사하고, 의지하려고 하고, 믿으려고 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 가지고 살려고 하니까 인구 조사한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6절에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과 세력를 믿고 마음이 여호와께 떠난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비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

1) 하나님을 의지하며 의뢰하는 사람

예레미야 17장 7-8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뢰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여호와만 의뢰하는 사람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의뢰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접어놓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야 합니다. 사람이 잘되었어도 사람을 의지하며 자랑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일이 잘됐든 잘못됐든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잘되었어도 괜찮고 못되었어도 괜찮습니다. 그것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뢰하며 나가는 사람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뭐가 잘됐다고 자랑하지 말고, 그것을 의지하며 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야 합니다. 있든지 없든지 그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만 살려고 하며 다른 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2) 신앙양심을 써서 말씀만 붙들고 나가는 사람

또 말씀만 붙들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뢰하고 말씀만 붙들고 나가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신앙양심을 써서 말씀만 붙들고 나가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뿌리가 강변에 뻗친 나무는 더위가 와도 걱정이 없고, 가물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뿌리가 강변에 뻗쳐 열매를 잘 맺고 청청합니다. 

2. 다윗의 회개와 하나님의 징계

다윗의 회개

본문 10절에 “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 후에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죄를 지어도 회개를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의 징계

본문 11-12절에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갓에게 임했습니다. 갓이라는 선지자가 다윗에게 갔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징계를 해야 하는데,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 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 일 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왕의 땅에 칠년 동안 흉년이 있을 것’입니다. 둘은 ‘왕이 석 달 동안 대적에게 쫓겨나 신앙생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왕의 땅에 삼 일 동안 온역, 즉 전염병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죽는 일입니다. 지금 갓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나아와 이렇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 가지 가운데 첫째는 칠 년 흉년이 와서 그 기간 동안 죄 값으로 고난당하는일, 둘째는 석 달을 대적에게 쫓겨나 도망쳐 다니는 일, 셋째는 삼 일 동안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징계를 안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되겠습니까? 안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안 됩니다. 받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안 받겠습니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는 받아야 합니다. 자기가 받게 만들어 놓았는데 어떻게 안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고 작정을 하셨는데 어떻게 안 할 수 있습니까? 

본문 14절에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내가 곤경에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윗이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했는데, 이 말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기 때문에 온역(전염병)으로 치는 것이 다른 경우보다 좀 나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이에 다윗은 삼 일 온역(전염병)이 칠 년 기근이나 원수에게 석 달 동안 피해 다니는 것보다 좀 나을 것 같아서 그것을 택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에 빠진다는 것은 삼 일 동안 온역(전염병) 받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왜 온역을 원했습니까? 여호와는 긍휼이 크시니까 때리다가도 좀 봐주실 것 같았던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고 긍휼이 크시니 하나님께 매를 맞으면 그래도 얼마동안 때리다가 그 매를 거둬주실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긍휼이 크시니 끝까지 때리지 않고 어느 정도 때리시다가 건져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본문 15절에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칠만 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라고 한 것은 사흘 동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전염병으로 칠만 명이 죽었으니 많이 죽은 것입니다. 다윗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많이 죽은 것입니다. 

지도자의 범죄는 영향력이 큼

지도자가 범죄하면 그 영향력이 굉장히 큽니다. 다윗이 왕인데 왕이 범죄하니 이스라엘 백성 칠만 명이 죽은 것입니다. 지도가가 잘못하면 백성이 큰 손해를 봅니다. 지도자가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대통령 선거를 이번 목요일에 하는데 바로 뽑아야 합니다. 바로 뽑지 못하면 우리 한국 백성들이 앞으로 큰 환난을 당하고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뽑으면 그러한 곤경에 안 빠질 것 같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적합한지 잘 생각하여 바로 뽑아야 합니다. 신중하게 판단을 해야 합니다. 거짓말로 선전하는 사람은 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택해야만 하겠습니까? 실제로 바로 알아서 바로 택해야 합니다. 이번에 바로 택하지 못하면 큰 일 나는 것입니다. 큰 일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도자 하나가 잘못하면 많은 사람이 죽고 원수에게로 쫓겨 다니게 됩니다. 칠 년 기근이 있고 경제가 파탄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자가 바로 나오도록 언제나 기도하고 자기 신앙양심을 써서 바로 투표해야겠습니다. 우리나라가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또 이북에도 복음이 들어가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을 세우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3. 징계 후에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주심

본문 16절에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칠만 명이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죽었는데 천사가 아직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칼을 들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흘이 다 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흘째가 되어야 정한 때입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천사가 계속 나가는 것을 보면 만 사흘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은 기간 동안 종일 멸망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 모릅니다. 예루살렘이 다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다윗이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천사에게 손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이만 했으면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17절에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자신은 범죄하였으며 악을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애매한 백성만 많이 죽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라는 하였는데, 이것은 백성들을 치지 말고 범죄한 자신을 치고 자기 아비 집을 쳐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습니다.

4. 다윗이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림

아리우나가 타작 마당과 소를 다윗에게 주려고 함

본문 18-21절에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다윗이 여호와의 명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 신복들이 자기를 향하여 옴을 보고 나가서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가로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다윗이 가로되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갓이라는 선지자가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으로 찾아갔습니다.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자기의 타작 마당으로 왕과 신복들이 오는 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라고 하니까 다윗이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면서 타작 마당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2-23절에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고하되 원컨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라우나가 전부 거저 드린다고 한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왕께 드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를 제물로 삶아 제사 드리라는 것입니다. 또 마당질하는 기구를 다 때려서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타작 마당과 소를 값 주고 삼

1) 물질문제에 믿음을 바로 써야 함 

본문 24절에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자신이 값을 주고 직접 산다고 하였습니다.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타작 마당과 소를 사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직접 사서 제사 드린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이것은 물질문제인데, 물질 문제에 대해서 바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정당한 값을 주고 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재산 분명히 대장부’라는 말이 있는데, 재정에 대해서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재정에 대해서 분명치 않으면 안 됩니다. 정당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사라가 죽었을 때에 그곳의 사람들이 막벨라 굴을 거저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내가 돈 주고 사지 아니하면 여기서 장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3장 16절에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은 사백 세겔을 달아서 에브론에게 값을 주고 막벨라 굴을 사서 사라를 장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기에서 여러 사람이 장사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3장 8절에도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사랑의 빚 외에는 다른 빚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지 빚까지 얻어다가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국에 IMF가 왜 왔습니까? 무조건 무제한으로 빚을 얻어다가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흥청망청 쓴 것입니다. 계속 빚을 얻어다 쓰다가 지금 이 모양이 된 것 아닙니까? 한국이 현재 천오백억 달러 정도의 빚이 있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것은 천오백억 달러이고 그 외에도 많이 있는 모양입니다. 전에 김영삼 대통령에게 어떤 목사가 빚이 얼마인지 물어보았더니 모른다고 했다고 합니다. 아니 살림살이하는 사람이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계속 얻어다 써 놓으면 어떡합니까? ‘국민 소득이 만 달러이다. 선진국이 된다. 해외여행 가라. 달러가 많다. 이제 십대 강국에 들어간다’라고 하면서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는데 참 한심합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정주영 씨는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백성이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왜 대통령으로 뽑았냐는 것입니다. 그때 정주영 씨가 대통령이 됐다면 나라가 경제적으로 큰 부흥이 될 뻔했다고 합니다. 먼저 번에 김영삼 대통령과 경쟁을 한 번 했습니다. 그 말도 옳을 것 같습니다. 정주영 씨 같은 사람이야 경제가 훤하지 않습니까? 울산에 현대 중공업, 현대자동차만 봐도 굉장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경제적으로 참 잘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시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막 쓰고 인건비 올려주어라. 해외여행 시켜라. 경부고속전철을 해라. 뭘 해라’고 하면서 자꾸 벌려 놓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돈이 굉장히 많은 줄 알았습니다. 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뭘 해라. 뭘 해라’하니까 돈이 굉장히 많은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계속 쓰기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구멍이 안 나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것은 대통령만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백성들도 왜 그런 사람 뽑았느냐는 말입니다. 정주영 씨 말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IMF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 문제에 대해 바로 할 줄 알아야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빚진 죄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잠언 22장 7절에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한국 속담에 ‘빚진 죄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대로 된 것입니다.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빚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빚 안지고 사는 생활을 배워야 합니다. 빚을 지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빚을 안 지고 사는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룻은 빚을 안 지려고 이삭을 주어다 먹었습니다. 떨어진 이삭을 주워다 먹으면서라도 빚을 안 져야 합니다.
빚을 안 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바로 된 것입니다. 또 빚을 안 져야 자유가 있습니다. 빚을 지면 자유가 없습니다. 죄인입니다. 어떻게든지 빚을 안 지고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 제사할 곳과 제물을 사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 그래서 재정에 대해 정당해야 합니다. 정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집도 외상으로 빚을 져가며 짓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실력이 될 만하면 집을 짓고 경제적으로 실력이 안 되면 짓지 말아야 합니다. 왜 집을 짓느냐는 말입니까? 안 지으면 되는 것입니다. 지을 필요가 무엇입니까? 감당할 수 있을 때나 집을 짓든지 무엇을 사든지 하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왜 삽니까? 정신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 어떤 여자가 한 명 있는데 남의 빚이 일억 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물어주려고 최선을 다해서 애를 쓰는 것 같기는 한데 정신을 못 차리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고 봤더니 가정주부인데 무슨 대학교를 다니려고 한답니다. 아이가 몇이나 되는 가정주부가 대학교를 뭐 하러 다니려고 합니까? 대학교를 다니면 돈이 얼마입니까? 못 해도 백오십 만원 이상 이백 만원은 내야 되는데, 남의 빚까지 져가며 무엇 때문에 대학교를 다니려고 하느냐는 말입니다. 백 오십 만원이 있으면 빚을 물어주지, 대학교는 뭐 하러 다니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습니다. 재정에 대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은 물어줄 생각을 안 합니다. 덮어놓고 얻어다 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얻어다 쓰면 다인 것입니다. 물어줄 생각은 안 하고 제 것인 줄 아는 것입니다. 얻어만 놓으면 제 것입니다. 정신 상태가 비뚤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못 합니다. 어째서 남의 것을 얻어다 놓고 물어줄 생각은 안 합니까? ‘무조건 얻어다 쓰면 다인가 보다’하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정신이 빠져나간 사람 아닙니까?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빚진 죄인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든지 빚을 물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는 것입니다.
전에 백만 원 가지고 살았으면 오십 만원만 가지고 살면서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오십 만원 가지고 살았으면 삼십 만원만 가지고 살면서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속이 편안하지 않습니까? 물어주어야 자기가 소생해 올라오는 것입니다. 여전히 백만 원 가지고 살려고 하면 못 물어줍니다. 백만 원 가지고 살던 사람이 오십 만원 가지고 살면서 오십 만원씩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또 삼십 만원씩 가지고 살면서도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삼십 만원 가지고도 살 수 있습니다. 왜 못 삽니까? 하여간 빚진 사람은 최소한의 생활을 하면서 오매불망 빚 물어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나 깨나 잊지 않아야 합니다. 

2) 의식주로 생기는 물질문제에도 믿음을 바로 써야 함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한 줄로 아는 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루 먹을 것과 입을 것이면 족합니다. 많이 벌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루에 최소한 얼마를 가지면 살 수 있습니까?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까
최소한도의 생활비만 있으면 됩니다. 하루에 쌀은 얼마 정도 먹습니까? 쌀 한 되 정도면 하루 동안 먹습니다. 한 되에 얼마입니까? 한 가마니부터 합시다. 한 가마니에 얼마입니까? 한 가마니에 십육 만원으로 합시다. 한 가마니면 80kg이고 열 말 정도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 말에 만육천 원이니까 한 되면 천육백 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루에 천육백 원으로
먹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반찬값은 얼마입니까? 반찬도 천육백 원이라고 하면 합이 삼천이백 원입니다. 천육백 원도 넉넉히 잡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녁에 용산 채소 파는 시장에 가면 팔다 남은 우거지 같은 것은 한 광주리에 몇 푼 안 주고도 사온다고 합니다. 사실은 천육백원도 너무 많이 잡은 것입니다. 마지막에 다 팔다 남은 찌꺼기는 아주 싸게 팝니다. 그것은 얼마 정도합니까? 오백 원이면 산답니다. 사봤습니까? 사봤다고 합니다. 그러면 쌀이 천육백 원에다 채소 값이 오백 원이니 모두 이천백 원입니다. 가락동에 가려면 차비가 천원 정도가 듭니다. 한꺼번에 가서 열흘 치를 해오는 것입니다. 소금은 얼마입니까? 하루에 소금 백 원 어치를 먹는다고 하면 총 이천 이백 원입니다. 백 원 어치는 안 판다고 해도, 한꺼번에 사다가 하루 먹는 정도는 백 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여간 이천 이백 원이 맞습니다. 가스가 있으면 가스로 해서 먹는 것입니다. 가스 없는 집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해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은 안 듭니다. 우리 기도원에서 지금 드럼통으로 난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갖다가 때는데 돈은 하나도 안 듭니다. 돈은 안 들지만 얼마나 뜨거운지 모릅니다. 목사님들이 와서 IMF 난로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의복은 어떻게 합니까? 아파트에 가면 거저 가져올 것이 많다고 합니다. 구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루 이천 이백 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안 죽습니다. 이북에는 그것도 없
습니다. 이북에서는 하루 쌀 한 되도 없고 채소도 못 구하고 의복도 거저 가질 것이 없습니다. 이북에서 의복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한심합니다. 양말도 천으로 칭칭 감고 다닐 만큼 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온 식구의 의복이 한 벌인데 한 사람이 나갔다 들어오면 또 바꿔 입고 나가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참한 상태입니다. 최소한 오천 원이면 하루를 생활한다고 했지요? 그것은 아마 중간 생활쯤 되는 모양입니다. 오천 원 가지고 살아도 하루 나가면 아무리 못 벌어도 만원은 법니다. 

또 집세가 많이 나와서 잘 곳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지하도에 가서 자면 된답니다. 그렇지만 지하도에 가서 자지는 말고, 천막 하나를 사서 산에다 치고 살면 됩니다. 낮에는 걷어치우고 저녁이 되면 갖다가 치는 것입니다. 낮에 걷어 놓았다가 밤에 가서 치고 사는데 누가 압니까? 만약 누가 와서 말하면 걷어놓았다가 다른 산에 갖다가 치는 것입니다. 천막치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북에서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북보다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최소한으로 생활하는 데에는 돈이 얼마 안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경제적으로 빚을 안 지고 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빚을 안 지고 살아야 합니다. 맹물을 조려 먹어도, 어떻게 하든지 빚을 안 지고 살아야 합니다. 반찬으로 소금을 해먹어도 빚을 안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빚을 지면 빚진 죄인이 됩니다. 또 만약 빚을 졌으면 어떻게 하든지 물어주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자기가 최소한으로 생활하면서 물어주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빚을 졌는데, 본인은 번듯하게 새 양복을 해서 입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아마 십 년은 더 된 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개는 내 빚을 지고서 안 물어 준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번듯하게 의복도 잘 입고 다니고, 할 것은 다 하면서 안 물어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양심을 비뚤게 쓰는 것입니다. 남의 빚을 졌으면 어떻게 하든지 의복도 해 입지 않고 쓸 데도 쓰지 않으면서, 빚을 물어주려고 해야 합니다. 어떻게 쓸 것을 다 쓰면서 빚을 집니까? 이것이 말이 됩니까? 이런 사람은 빚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빌려 준 사람은 이자를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자를 놓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자놀이를 한 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빚진 사람은 최소한으로 생활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물어주어야 합니다.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밤낮으로 일하면서라도 빚을 빨리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언제든지 모든 것을 정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값을 다 지불할 만한 실력이 없으면 아예 안 사면 되는 것입니다. 괜히 외상을 해서 남도 망하게 하고 자기도 망하게 만들면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가려지는 것입니까?

본문 25절에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은 오십 세겔로 사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을 그치셨습니다. 그때에야 그쳤습니다. 정당하게 해야 그칩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워야겠습니다.

사무엘하 23:1-39 다윗과 그의 용사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다윗과 그의 용사들
사무엘하 23:1-39

1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부음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2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5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6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사르이리로다 하니라 8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이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장의 두목이라 저가 한때에 팔백 인을 쳐죽였더라 9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한 세 용사 중에 하나이라 블레셋 사람이 싸우려고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
고 10저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서 저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11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이 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12저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13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떼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14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다윗이 사모
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16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니이다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18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니 저는 그 삼 인의 두목이라 저가 창을 들어 삼백 인을 죽이고 그 삼 인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19저는 삼 인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저가 저희의 두목이 되었으나 그러나 첫 삼 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20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니 저는 효용한 일을 행한 자라 일찌기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한 사자를 죽였으며 21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저가 막대를 가지고 내려가서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죽였더라 22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3삼십 인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첫 삼 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저를 세워 시위대 장관을 삼았더라 24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인 중에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25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26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27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28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29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30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31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과 32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33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34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35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36소바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37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병기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38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39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도합이 삼십칠 인이었더라

1. 다윗의 마지막 말

창성해지는 법

본문 1-3절에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부음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이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들에서 양 치던 미천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자리까지 높이 올라온 것을 기억하고 자신이 경험한대로 창성해지는 방법에 대해 마지막 말을 하였습니다.
창성해지는 방법과 관련하여
첫째는 ‘창성해지는 사람은 공의로 다스리는 자다’라는 하였습니다. 만사를 공평하게 하나님의 공의대로 통치해 나가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하나님 앞에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사람은 언제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하시는 대로 다스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일해주시고 완성시켜 주시기 때문에 대적할 자가 절대 없고 반대하는 사람은 다 깨져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천하에 막을 자가 없습니다. 세계가 다 들어붙어서 막으려고 하여도 막지 못하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아이들을 다스릴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책망하고, 징계하고 권면해야 합니다. 또 공의롭게 모든 것을 처결해 나가면 누가 봐도 다 옳다고 생각하고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적하는 자를 물리쳐주시고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반드시 그대로 성취되게 해주십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것, 가정과 교회, 국가와 세계를 다스리는 것 전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몸과 마음부터 다스리며 자기부터 바로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바로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자기가 먼저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자기 집을 잘 다스려 나가야 합니다. 재정 문제에서도 하나님께 바로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써야 합니다. 또 교회를 다스릴 때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대로 그 인도를 받아서 하면 교회가 편안해지고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견고하게 해주십니다. 늘 부흥, 발전하게 해주십니다. 또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들도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면 그 나라가 잘 될 것입니다. 아무리 대적이 많아도 하나님께서 다 물리쳐주시고 창성하게 해주십니다.

본문 4절에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돋는 해가 얼마나 희망차고 명랑하며 그 햇빛이 얼마나 넓게 비칩니까? 또 구름 없는 아침이 얼마나 상쾌하고 명랑 합니까? 점점 밝아지고 하루 종일 희망을 줍니다. 그러므로 공의로 다스리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희망차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됩니다. 사람의 수단과 방법을 쓰지 말고, 공의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면 햇빛이 아침에 점점 퍼지는 것과 같이 점점 창성해 나갑니다. 비가 온 후에, 햇빛이 나서 풀에 움이 돋고 점점 창성해서 소생해 올라오는 것처럼 이렇게 소생해 올라오는 역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라고 하였습니다.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사에 구비해주시고 견고케 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모든 소원을 성취해주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6-7절에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사르이리로다 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악한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내어버리시고 당장에 불살라 멸망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2. 다윗의 세 용사(勇士)와 그 공적

군장 두목인 요셉밧세벳이 팔백 인을 쳐서 죽임

본문 8절에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이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장의 두목이라 저가 한때에 팔백 인을 쳐죽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여기 세 용사처럼 충성해야겠는데, 첫째 용사는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입니다. 그는 군장의 두목인데 혼자서 원수 팔백 명을 쳐 죽였습니다. 혼자서 백 명을 무찔렀다고 해도 큰 용사인데 팔백 명을 쳐서 죽였으니 이 요셉밧세벳이 상당히 큰 용사입니다. 이런 용사가 몇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가 견고해지고 또 창성해집니다. 원수가 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멸망시키려 할 때 요셉밧세벳 같은 사람이 나가서 혼자 원수 팔백 명을 다 막아주면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잘 되어 나가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참으로 두목이 될 만합니다. 

보통은 일대일이고 일당백은 아주 잘하는 사람인데 요셉밧세벳은 팔백 명을 당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일 좀 잘하는 사람은 서너 사람 몫을, 또는 다섯 사람 몫을 합니다. 일하기 싫어서, 또는 몸이 약한 상태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하는 척하는 사람, 또 열사람 몫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팔백 명을 감당했다는 것은 아주 큰 용사로서 팔백 명이 할 것을 혼자 다 해치우니 요새로 말하면 불도저, 큰 포크레인 같은 사람입니다. 팔백 명이 삽질해야 할 것을 한꺼번에 퍼서 실을 수 있고, 팔백 명이 실어 나르는 것을 차 하나에 다 실어 운반할 수 있는 이런 요셉밧세벳 같은 사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필요합니다.

또 일을 할 때 감독을 바로 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몫을 하는 것입니다. 이 전에 김학조 장로님이 고천 기도원을 지을 때 감독을 잘 해서 일이 잘되어 갔습니다. 가끔 김장로님이 병이 나셔서 감독하지 못하실 때면, 일이 삼분의 일도 되지 않고, 오 분의 일이나 될까 말까 하였습니다. 일의 진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감독이 제대로 일을 시키면 그 한 사람 가지고도 일의 성과를 세 배나 다섯 배로 낼 수 있습니다. 감독하는 사람이 열 명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감독이 지혜로우면 백 명의 효과가 나도록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한 사람이지만 팔백 명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창성하게 하는 데 요긴한 사람들입니다.

엘르아살은 칼이 손에 붙을 때까지 끝까지 싸움

본문 9절에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한 세 용사 중에 하나이라 블레셋 사람이 싸우려고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 왔을 때 많은 군대들이 나가 싸우다 다 도망쳐 물러갔는데, 엘르아살은 물러가지 않고 계속 혼자 싸운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저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서 저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엘르아살 한 사람이 막아냈다는 말입니다. 혼자 남아서 원수가 몇 만 명이 와도 다 할 수 있다는 결심을 가지고 내쳤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르아살이 얼마나 칼을 힘 있게 잡고 전쟁을 했는지 칼이 손에 붙었다고 할 만큼이 되었습니다. 생명을 내어 놓고 혼자서 희생적으로 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야 도망하건 말건 자기 사명감으로 일해야 합니다. 엘르아살은 ‘내가 생명을 내놓고 막아야 한다. 내가 막지 않으면 이스라엘 나라가 망한다. 혼자라도 막는다’고 하면서 손이 칼에 붙은 것처럼 원수와 더불어 싸워냈다는 말입니다. 삼손이 일천 명을 쳐 죽였다고 하였는데, 엘르아살은 몇 천 명을 칼로 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원수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호하며 건설해 나가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라가 창성해지는 것입니다. 

삼마는 녹두밭을 끝까지 지키며 블레셋과 싸워 이김

본문 11-12절에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이 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저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서 싸웠는데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다 달아났고 삼마는 엘르아살 때처럼 혼자 남은 것입니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보자 녹두밭이 원수에게 넘어가도 할 수 없다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삼마는 그 밭을 원수에게 내줄 수 없고 이스라엘을 위해 뺏기면 안 되겠다는 신앙으로 혼자서 블레셋 사람, 몇 천 명을 대항하여 싸운 것입니다.
‘저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고 하였는데, 혼자서는 안 될 것 같지만 막아 내고자 하면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 역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모르지만, 사무엘 때는 우박으로 원수를 쳐주실 때도 있었고, 우레 소리가 들리게 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 많은 군대 소리로 원수가 무서워 도망간 적도 있었고,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천사를 보내셔서 원수를 물리쳐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혼자 남았어도, 생명을 내놓고 끝까지 싸우는 정신으로 계속 맞서 나갈 때에 할 수 있습니다. 안 될 것 같지만 하나님 나라를 지키려고, 또 녹두밭, 하나님의 양식을 보호하려고, 말씀을 보호하려고 계속 싸우면 하나님의 큰 구원 역사가 나타나 원수를 다 물리쳐주십니다. 어떤 방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맞는 이적의 방법으로 원수를 물리치시어 큰 구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어려울 때 다 도망치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루어가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친다고 해도 혼자서라도 지킨다는 삼마의 결심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나라는 창성해집니다. 

3. 베들레헴 우물 물을 길어온 세 용사

본문 13-16절에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떼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은 앞에 말한 세 용사만큼은 아니나 충성심은 그에 못지 않은 세 용사들입니다. 베들레헴에 블레셋 사람이 진을 치고 있었고, 다윗은 아둘람굴에 있었는데 다윗이 베들레헴의 우물 물을 대단히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충성된 세 용사가 왕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블레셋 군대가 진쳐있는 곳에 충돌하며 후방으로 가서 그 물을 떠 온 것입니다. 이 세 용사가 돌아오느라 죽을 뻔했습니다. 그 물을 떠오기 위하여 적진을 뚫고 싸우며 들어간 다음 또 싸우면서 적진을 뚫고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자기 상관을 위해서 생명을 돌보지 않고 충성 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가 창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세 용사는 베들레헴의 우물 물을 서로 나서서 길어오려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겠거니 한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가 할 일로 알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 가겠다고 한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서로 미루면 어떻게 그 나라가 창성해질 수 있겠습니까? ‘내가 안 가면 누가 가겠지’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다윗이 무엇 때문에 베들레헴에 가서 물을 길어오라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길어 올꼬’라고 하였으니 길어오라는 말이 아닙니까? 물을 길어오라는 왕의 말을 듣고 아랫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다윗이 예전 어렸을 때 먹었던 우물이 기억났던 것 같은데 그 우물 물이 아주 유명하여 그것을 마셔볼 생각이 간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됐습니까? 지금 전쟁 중인데, 왜 옛날에 먹던 좋은 물 생각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물을 마시는 것이 무슨 소용과 가치가 있느냐 말입니다. 다윗 왕이 잘못한 것입니다. 전에 누렸던 복에 대한 어리석은 추억으로 과거에 마시던 그 맛있는 물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왕의 충성된 세 용사가 우물 물을 길어 왔습니다. 다윗이 길어 오라한 것은 잘못 되었지만 길어온 용사들은 아주 잘했습니다. 이 일을 보면 그들이 다른 일에도 매우 충성할 자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7절에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 하리이다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니이다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세 용사가 생명을 내놓고 길어 온 물이라며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가 육신의 감정으로 고향 생각을 했지만 회개한 것을 가리킵니다. 어렸을 때 마시던, 맛있던 물맛이 간절하여 길어오라고 했지만 일단 장수들을 보내놓고 생각하니 잘못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렇게 항상 잘못을 고치는 사람이 성자(聖者)입니다. 부지런히 자기 잘못을 고치는 사람이 본래부터의 성자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일단 한번은 잘못 생각하였으나 빨리 뉘우쳤습니다. 물을 길어오느라 용사들이 생명을 걸었는데 그들의 생명은 자기 생명과 같은 것이므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드린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충성한 결과를 하나님께 돌린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다윗이 고향 생각한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다 좋지 않았습니까? 개천에서 고기와 게 잡아먹던 일, 또 바다에 가서 물고기 사다 먹던 일 등 추억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지나간 것이고 현재 하나님께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 고향은 어디입니까? 하늘나라입니다. 우리가 한 고향 사람입니다. 이북에서 왔던지, 이남에서 왔던지 이제는 하늘나라가 우리의 고향입니다. 또 생일은 12월 25일로 다 한 날입니다.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니 예수님의 생일로 다 바꿔야 합니다. 나도 내 생일을 예수님 생일로 바꾸었습니다. 내게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12월 25일이라고 합니다. 환갑이니, 뭐니 하는 것을 다 치우고, 또 죽은 사람 생일을 차리는 것도 하지 말고 우리의 진정한 본향인 하늘나라를 바라봐야 합니다. 또 한 피로 한 몸을 이룬, 즉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한 형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더 나은 본향, 즉 하늘에 있는 것을 사모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본향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4. 아비새와 브나야

본문 18-19절에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니 저는 그 삼 인의 두목이라 저가 창을 들어 삼백 인을 죽이고 그 삼 인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저는 삼 인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저가 저희의 두목이 되었으나 그러나 첫 삼 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비새는 혼자서 삼백 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삼 인 중에서 두목이 되었습니다.

본문 20-21절에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니 저는 효용한 일을 행한 자라 일찌기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한 사자를 죽였으며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저가 막대를 가지고 내려가서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죽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브나야는 모압 사자와 더불어 싸워 그 사자를 죽일 만큼, 괴력의 용사입니다. 또 원수인 모압과 애굽인을 죽였는데, 창도 없이 막대를 가지고 창 든 적과 싸우다 상대의 창을 빼앗아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큰 용사입니까?

본문 22-23절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삼십 인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첫 삼 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저를 세워 시위장관을 삼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이런 용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가 견고해지고 창성해졌습니다. 

5. 다윗의 삼십칠 인 용사

본문 24-39절에 “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인 중에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과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소바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병기 잡은 자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도합이 삼십칠 인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이들은 모두 다윗을 잘 받들어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충성한 자들입니다. 삼십칠 인의 용사들입니다. 이들이 충성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창성해지고 견고해졌습니다.

사무엘하 22:1-51 다윗의 찬송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다윗의 찬송
사무엘하 22:1-51

1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2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3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4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5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6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7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8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9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10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11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12저가 흑암 곧 모인 물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 13그 앞에 있는 광채로 인하여 숯불이 피었도다 14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심이여 15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시며 번개로 파하셨도다 16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을 인하여 물 밑이 드러나고 땅의 기초가 나타났도다 17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8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19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20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21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22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3그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4내가 또 그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25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 목전에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26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7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 28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29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30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 31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32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
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 33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온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34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5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활을 당기도다 36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7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나이다 38내가 내 원수를 따라 멸하였사오며 저희를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였나이다 39내가 저희를 무찔러 파하였더니 저희가 내 발 아래 엎드러지고 능히 일어나지 못하였나이다 40이는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사오며 41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 버리게 하셨음이니이다 42저희가 둘러보아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 43내가 저희를 땅의 티끌같이 부스러뜨리고 거리의 진흙같이 밟아 헤쳤나이다 44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존하사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45이방인들이 내게 굴복함이여 저희가 내 풍성을 듣고 곧 순복하리로다 46이방인들이 쇠미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47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48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수하시고 민족들로 내게 복종케 하시며 49나를 원수들에게서 나오게 하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50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51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1. 하나님은 반석이시요 구원의 뿔이 되심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 찬양한 노래입니다. 다윗이 사울과 대적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이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신앙체험 속에서 바라본 하나님을 열 가지 경우로 나타내었습니다. 
첫째,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견고하셔서 어떤 세력에게도 요동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든든하게 자기를 붙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나의 요새시요’라고 하였습니다. 요새(要塞)는 높은 언덕 등에 원수가 침입치 못하게 만들어 놓은 피난처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요새가 되셔서 대적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셋째,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망의 골짜기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이 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어떤 환난과 역경 가운데에 처해도 구원해주십니다. 
넷째, ‘나의 하나님이시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 원어로 ‘엘로힘’인데 이것은 능력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의의 싸움을 싸울 때에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다섯째, ‘나의 피할 바위시요’라고 하였습니다. 큰 폭풍이 지나가도 바위로 피하면 다 보호받습니다. 
여섯째, ‘나의 방패시요’라고 하였습니다. 방패는 화살을 막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원수의 화살을 막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일곱째,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라고 하였습니다. 뿔은 힘, 권세,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는 권세라는 것입니다. 
여덟째, ‘나의 높은 망대시요’라고 하였습니다. 망대(望臺)는 적의 상태를 살피어 방어하게 하는 곳으로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살펴 막아주시는 분임을 가리킵니다. 
아홉째, ‘나의 피난처시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피난처는 폭풍이나 전쟁터에서 보호받는 안식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열째,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나를 구원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밖에는 구원해 주실 이가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오늘날 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다윗이 이러한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선한 싸움을 싸웠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는 이러한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2. 사망의 올무에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

본문 4-7절에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환란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구원 받은 것을 찬송하였습니다. 사망의 물결이 두르고 불의의 창수가 나서 떠내려 보내려고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며, 하나님은 들으시고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귀에 들리고,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데,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 많이 있습니다.

3.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

다윗이 여러 환난 중에서 부르짖었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내용입니다. 본문 8-9절에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를 인함이로다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뜻합니다.

본문 10-15절에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저가 흑암 곧 모인 물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 그 앞에 있는 광채로 인하여 숯불이 피었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심이여 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시며 번개로 파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라는 말은 낮게 깔린 비구름을 묘사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한 것을 나타냅니다. 또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라고 하였는데, 그룹은 천사를 가리키며 그 그룹이 하나님께 시중든다는 것입니다.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임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흑암과 빽빽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숯불, 뇌성, 번개’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가리킵니다. 또 ‘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시며’라는 말은 원수 심판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폭풍이 불고, 뇌성이 나고, 번개가 번쩍이는 것 등은 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위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을 인하여 물 밑이 드러나고 땅의 기초가 나타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꾸지람과 콧김’은 하나님께서 진노를 발하시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며, ‘물 밑이 드러나고 땅의 기초가 나타났도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은밀한 것이 다 드러나는 것을 뜻합니다(벧후3:10). 그때는 사람의 생각도 다 드러납니다.

4. 의를 따라 상 주시는 하나님

본문 17-19절에 “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많은 환난 가운데서 건져내셨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라는 것은 나보다 힘이 센 원수이지만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또 ‘나의 재앙의 날’이란 환난 받을 때와 약할 때를 가리킵니다. 이런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새 힘을 얻습니다.

본문 20절에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넓은 곳’은 안전한 곳, 형통한 곳을 뜻하는 것입니다.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은 형통한 곳으로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셔서 우리보다 강한 원수에게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이렇게 구원해주셨습니다. 

본문 21-23절에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하여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고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의를 행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다윗의 의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과 행동입니다. 다윗은 많은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란 행위의 정결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도, 모든 규례, 그 율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악을 떠나 율례를 지키고 의를 따라 깨끗하게 행한 대로 상을 주십니다.

본문 24-25절에 “내가 또 그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 목전에 내 깨끗한대로 내게 갚으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힘을 쓰며,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내 의대로, 내 깨끗한 대로 갚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죄는 죄대로, 의는 의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5. 구원을 이룬 것만큼 하나님을 알게 됨

본문 26-27절에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자비를 베푸는 자에게 주의 자비하심을 보이시고, 완전을 목표로 하여 자라난 만큼 주의 완전하심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야 하나님을 알지 그 세계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맑은 세계에 들어가 보아야 하나님께서 얼마나 맑으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한 세계에 들어가 보아야 하나님께서 얼마나 거룩하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더러운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깨끗하심을 모릅니다. 물속에 들어가 보아야 그 물속에 있는 것을 다 알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자비의 세계에 들어가보면 얼마나 하나님의 자비가 넓고, 크고, 무한하신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라고 하였는데, 사특한 자란 안팎이 다른 악한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런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거스리심’이란 보응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죄악의 길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를 받습니다.

본문 28절에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곤고한 백성’은 가련한 자, 가난한 자, 온유한 자라는 뜻입니다. 즉, 죄와 허물로 하나님께 낮아져서 회개하며 부르짖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지혜와 힘을 믿고 나아가는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책망하시고, 낮추십니다(약 4:6).

6.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음

본문 29절에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등불이 되어주셔서 흑암 속에 있을 때 그 어두음을 밝혀주십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와서 흑암을 밝혀주므로 우리로 든든하게 해주시고 거기서 나오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에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용기 있게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용기가 없어서 미리 겁부터 먹고 ‘못한다,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성벽 때문에 못 간다’라고 하는 사람은 결국 못 갑니다. ‘아무리 성벽이 높아도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라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무서워서 못 간다, 무엇 때문에 안 된다, 길에 사자가 있다, 무엇이 있다’라고 하며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적군에 달리며 성벽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뛰어 넘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는 말은 집어치워야 합니다. 무엇을 집어치우라고 했습니까?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면 만능입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을 하고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다 한다, 하나님의 뜻이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어려울 것이 없다,태산도 넘어 간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천 명을 먹이라고 하셨을 때 자기들은 가진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는데 어떻게 오천 명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뭘 하겠습니까? 하지만 가져가니까 하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다 먹이셨습니다. 부스러기를 얼마나 걷었습니까? 열두 바구니 걷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다 된다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다 한다, 다 넘어 간다, 태산이라도 넘어 간다, 성벽이라도 넘어 간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루어나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그러면 진짜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하면 되는 것입니다. 못한다고 하면 못하는 것입니다. 아예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면 다 된다, 아무리 없어도 된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어도 된다, 그거 가지면 된다’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본문 31절에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도(道)’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한 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미(精微)한 말씀입니다. ‘정미하다’는 세미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정미하니 세밀한 것까지 다 하나님의 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 말씀에 다 있습니다. 자기에게 피하는 자에게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다가 환난 당할 때에는 하나님에게 피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본문 32절에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신이라는 뜻인데, 여호와 외에 능력의 신이 어디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 외에 바위가 어디 있습니까? 바위는 든든한 것인데, 든든하며 견고한 만세 반석은 하나님 외에는 다른 이가 없습니다. 하나님만 반석이시고 방패이시고 피난처이십니다.

본문 33절에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온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적군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해놓은 것이 요새입니다. 요새는 피난처와 같습니다. 그곳에 들어가 있으면 적군이 잘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새시며 또 나를 온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온전한 곳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시고 피난처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34-35절에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활을 당기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신다’는 것은 나의 발을 빠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활은 보통 나무로 만듭니다. 나무로 해서 줄을 매고 그곳에 화살을 끼워 줄을 당겼다 놓으면 화살이 나가는 것인데, 든든한 활은 놋활인가 봅니다. 놋으로 활을 만들었습니다. 상당히 강할 것 같습니다. 놋쇠로 활을 만들어서 활줄을 매고 줄을 당기면 놋쇠가 휩니다. 조금 휘었다가 나가야 하니까 나무보다 얼마나 힘이 있겠습니까? 나무 활은 잡아당기면 나무가 휘었다가 줄을 놓으면 나가는데 이것을 놋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활을 웬만한 사람들은 못 당깁니다. 아주 셀 것입니다. 한번 당겼다 놓으면 보통 나무로 한 것 보다 몇 배 더 강하게 나가는 그런 활입니다. 놋활로 당겼다는 것입니다. 그 놋활을 당겨서 싸웠다는 말입니다. 부딪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가면 놋활을 당길 수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당기지 못하는 활을 당겨서 화살을 내 보낼 수 있습니다. 그 화살이 멀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나가는 사람은 놋활을 당기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본문 36절에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29-30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온유하기 때문에 나를 크게 하셨습니다. 주의 사랑, 따스함, 보호해주심, 주의 온유함으로 인해서 나를 용납해주시고 나를 길러주시고 나를 자라나게 해주셨습니다. 강하게 나갔으면 벌써 망했을 텐데, 강하게 나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참고, 온유함으로, 사랑으로, 기도로 내가 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면서 용납해주시고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커졌다는 것입니다.

본문 37절에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걸음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지 않게 하셨습니다. 걸음을 넓게 했다는 것은 발이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발이 넓고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나로 실족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7. 원수를 이기게 해주신 하나님

본문 38-39절에 “내가 내 원수를 따라 멸하였사오며 저희를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저희를 무찔러 파하였더니 저희가 내 발 아래 엎드러지고 능히 일어나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따라가서 무찌르고, 한번 원수를 무찌르니까 원수가 발 앞에 엎드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본문 40-41절에 “이는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사오며 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 버리게 하셨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시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선한싸움을 잘 싸우게 해놓으셨습니다. 선한싸움을 싸우려고 결심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선한싸움에서 다 이기도록 능력으로 띠를 띠워 주십니다. 나가서 전쟁할 때에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원수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무엇을 내게로 향했습니까? 등을 내게로 향했다는 말은 돌아서 도망을 친다는 것입니다. 돌아서 마주 오는 게 아니라 싸움을 하다가 돌아서 도망치는 것이 등을 내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나가서 싸우려고 할 때에 원수들이 다 돌아서 도망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본문 42절에 “저희가 둘러보아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인 것 같은데, 저희가 돌아보아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여호와께서는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원수가 된 것 같습니다.

본문 43절에 “내가 저희를 땅의 티끌같이 부스러뜨리고 거리의 진흙같이 밟아 헤쳤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다 무찔러 부스러뜨리고 발로 밟았습니다. 

본문 44절에 “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존하사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내 백성의 다툼에서 나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건져주시고 또 열방의 으뜸을 삼아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면 열방의 으뜸이 됩니다. 말씀을 잘 지키고 믿음으로 나가면 열방의 으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열방에 뛰어나게 됩니다. ‘열방의 으뜸을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라고 하였는데, 믿음을 잘 지키고 말씀대로 순종을 잘 하면 열방의 으뜸을 삼으시고 알지 못하는 백성이 섬기게 됩니다. 

본문 45절에 “이방인들이 내게 굴복함이여 저희가 내 풍성을 듣고 곧 순복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믿음 지키면 이방인들이 순복하게 되고 굴복하게 됩니다.

본문 46절에 “이방인들이 쇠미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견고한 곳에 숨어있었지만 이제는 쇠해지고 작아져서 벌벌 떨면서 나오게 됩니다. 

본문 47절에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살아계시므로 이 모든 것을 다 해주셨습니다. 열방의 으뜸으로 삼으시고 능력으로 띠 띠워 싸우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게 해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셨습니다. 힘을 주셔서 놋활을 당기게 해주시고 원수를 정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본문 48-49절에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수하시고 민족들로 내게 복종케 하시며 나를 원수들에게서 나오게 하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보수하시고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십니다. 원수 갚는 것이 누구에게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있습니다. 자기가 갚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원수 갚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 주시고 자신은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믿음만 잘 지켜 나가면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수하시고 민족들로 내게 굴복케 하시고 나를 원수들에게서 나오게 하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져주십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원수들과 대적하는 자들이 많아도, 강포한 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거기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8. 주의 이름을 열방에 찬양함

본문 50절에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승리케 해주셨기 때문에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51절에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기름 부음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뜻이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에게서 기름 부은 받은 그리스도가 날 것이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사람은 영원토록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큰 구원을 주시고 영원토록 후손에게 인자하심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바위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싸우기 위해 힘을 주시고 원수를 이겨주시고 오늘날 다윗으로 큰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내가 주를 의뢰하며 적군에 달리고 내 하나님을 의지하여 성벽을 뛰어넘나이다’라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사무엘하 21:1-22 삼 년 기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삼 년 기근
사무엘하 21:1-22

1다윗의 시대에 연부년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2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저희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물으니라 3다윗이 저희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4기브온 사람이 대답하되 사울과 그 집과 우리 사이의 일은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나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의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5저희가 왕께 고하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경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6자손 일곱을 내어 주소서 여호와의 빼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왕이 가로되 내가 내어 주리라 하니라 7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8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잡고 9저희를 기브온 사람의 손에 붙이니 기브온 사람이 저희를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저희 일곱 사람이 함께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처음 날 곧 보리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10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반석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11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의 행한 일이 다윗에게 들리매 12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취하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벳산 거리에 매어 단 것을 저희가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13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14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 아비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대로 좇아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니라
15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 신복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16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삼백 세겔 중 되는 놋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17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니 다윗의 종자들이 다윗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18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삽을 쳐죽였고 19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
이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 20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 큰 자 하나는 매 손과 매 발에 가락이 여섯씩 모두 스물네 가락이 있는데 저도 장대한 자의 소생이라 21저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저를 죽이니라 22이 네 사람 가드의 장대한 자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 신복의 손에 다 죽었더라

1.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죄로 삼 년 기근이 듦

본문 1절에 “다윗의 시대에 연부년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큰 흉년이 삼 년간 들었습니다. 삼 년 동안 흉년이 든 것은 큰 재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물론 백성 전체가 다 기도했을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그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십니다. 삼 년 기근으로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죄는 사울이 지었는데, 왜 다윗의 시대에 흉년이 들었습니까? 마태복음 23장 35-36절에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세대의 죄악은 그 세대의 사람이 담당합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기브온 사람 죽인 죄 때문에 다윗의 시대에 삼 년 동안 기근의 재앙이 왔습니다.

본문 2절에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저희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물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고 아모리 족속 중의 하나로, 여호수아를 속여 화친 조약을 맺었고,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었습니다(수 9:3-27).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약 사백 년간 가나안 땅에 살아왔는데, 사울 왕이 그 언약을 업신여기고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즉, 사백 년 전에 여호수아가 맹세한 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아모리 족속인 기브온 사람들이 여기
에 와서 사느냐고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그 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삼 년 동안 기근의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에 진노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17장 18-19절에 “그가 이미 손을 내어 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약속도 어기면 안 되는데,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죄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나 십일조 작정한 것 등도 힘든 가운데서라도 지켜야 합니다(신 23:21). 그러나 모르고 성경에 위반된 서원을 했으면 회개하고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는 ‘피 흘린 죄’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살인자를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죄입니다. 

어떤 사람이 맹자에게 “어떤 사람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어보니 그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람이 천하를 통일한다”고 대답하였답니다. 다윗은 전쟁에 나가서 많은 사람을 죽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대하 6:8-9). 그러므로 살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워하는 것, 노하는 것, 미련한 놈이라 하는 것, 라가라 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였습니다(마 5:21-22). 또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사람을위해 열심히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열심은 잘못된 것입니다. 열심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열심이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기브온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2. 다윗이 사울의 자손 칠 인을 기브온 사람에게 내어 주어 죽임

본문 3-6절에 “다윗이 저희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기브온 사람이 대답하되 사울과 그 집과 우리 사이의 일은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나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의 말하는 대로 시행 하리라 저희가 왕께 고하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경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을 내어 주소서 여호와의 빼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왕이 가로되 내가 내어 주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브온 사람들에게 물었고,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의 자손 일곱 사람을 내어 주면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목매어 달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인 줄 알고 내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본문 7-9절에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잡고 저희를 기브온 사람의 손에 붙이니 기브온 사람이 저희를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저희 일곱 사람이 함께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처음 날 곧 보리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일곱 사람을 내어 주었는데,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의 사이에 서로 맹세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사울의 첩 리스바가 낳은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 그리고 사울의 외손자 다섯 사람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이 그들을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아 죽였습니다. 

3. 리스바가 죽은 자를 지킴

본문 10절에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반석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의 첩 리스바가 나무에 목매어 달린 자기 두 아들과 사울의 외손자 다섯의 시체를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내리기까지 밤낮 지켰습니다. 시체가 짐승에게 손상되는 것은 큰 수치이므로, 시체가 방치되어 짐승에게 손상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이 나무에 달려 저주 받은 죽음을 당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풀린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나무에 달려 죽으시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풀리게 된다는 예언적인 요소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4. 다윗이 칠 인의 시체와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함께 장사함

본문 11-14절에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의 행한 일이 다윗에게 들리매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취하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벳산 거리에 매어 단 것을 저희가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다윗이 그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 아비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대로 좇아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의 첩 리스바의 행한 일을 듣고 다윗이 그들을 장사할 때에 다윗이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에서 가져다가 베냐민 땅 셀라에 있는 기스 묘지에 같이 장사하였습니다. 이것은 전에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제1대 이스라엘 왕으로서 공로가 있고, 요나단과는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대접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전의 공로를 생각해서 다윗이 이렇게 한 것은 아주 잘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어주셨고 기근도 면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새 명당자리라고 해서 조상의 뼈를 파서 옮겨 묻는 것은 미신입니다.

5.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에 아비새가 도움

본문 15-17절에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 신복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삼백 세겔 중 되는 놋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죽이니 다윗의 종자들이 다윗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군과 싸울 때에 삼백 세겔 중 되는 놋창을 들고 새 칼을 찬 큰 장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생명을 내어놓고 나가서 도와주어 다윗이 죽음을 면했습니다. 만일 아비새가 다윗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다윗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서 블레셋 사람을 쳐서 죽인 것은 하나님께 복 받을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많은 사람이 도와주었습니다(롬 16:3-16). 

마태복음 25장 35-40절에는 성도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돌봐 준 것은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성도가 피곤한 때에 쳐들어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바로 순종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 나갈 때는 육백 세겔 되는 창을 든 골리앗도 단번에 물리쳤는데(삼상 17:7), 피곤할 때는 골리앗 창의 절반되는 무게인 삼백 세겔의 놋창을 가지고 온 블레셋 사람을 당하지 못하였습니다.
한편 본문 17절 하반절에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의 등불’은 다윗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다윗이 죽으면 이스라엘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즉, 이 말은 지도자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윗은 빛이신 하나님을 늘 모시고 살며 이스라엘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지도자인데, 이런 지도자를 아끼고 보호하는 것은 하나님께 복 받을 일입니다.

6. 다윗의 신복들이 가드의 장사들을 죽임

본문 18-19절에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장대한 자의 아들 중에 삽을 쳐 죽였고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그때에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습니다.

본문 20-22절에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 큰 자 하나는 매 손과 매 발에 가락이 여섯씩 모두 스물네 가락이 있는데 저도 장대한 자의 소생이라 저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저를 죽이니라 이 네 사람 가드의 장대한 자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 신복의 손에 다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가드에서 블레셋과 다시 전쟁할 때에 이스라엘이 승리하였습니다. 그때에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매 손과 매 발가락이 여섯씩 스물네 가락이 있는 블레셋의 큰 장수를 죽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용맹을 발하여 믿음으로 나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다윗을 대적하던 자들이 다윗의 장사들 앞에서 다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더욱 견고하며 창성케 하셨습니다.

사무엘하 20:1-26 세바의 반역과 다윗 왕의 진압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세바의 반역과 다윗 왕의  진압
사무엘하 20:1-26

1마침 거기 난류 하나가 있으니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라 저가 나팔을 불며 가로되 우리는 다윗과 함께할 분의가 없으며 이새의 아들과 함께할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좇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좇으나 유다 사람들은 왕에게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좇으니라 3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더불어 동침치 아니하니 저희가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 4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 있으라 5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소집하러 가더니 왕의 정한 기한에 지체된지라 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쫓아가라 저가 견고한 성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
까 염려하노라 하매 7요압을 좇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8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매었는데 저가 행할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9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형은 평안하뇨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10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치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 배를 찌르매 그 창자가 땅에 흐르니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을쌔11요압의 소년 중 하나가 아마사의 곁에 서서 가로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 할 때에 12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굴어졌는지라 그 소년이 모든 백성의 섰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 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13아마사를 큰 길에서 옮겨 가매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아가니라 14요압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행하여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저를 따르더라 15이에 저희가 벧마아가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하여 해자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그 성에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가 외쳐 가로되 들을찌어다 들을찌어다 청컨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가로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대답하되 그러하다 여인이 저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18여인이 말하여 가로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어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미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20요압이 대답하여 가로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저만 내어 주면 내가 이 성읍에서 떠나가리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저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 던지리이다 하고 22이에 여인이 그 지혜로 모든 백성에게 말하매 저희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서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왕에게 나아가니라 23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장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장관이 되고 24아도니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25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1. 세바의 반역

본문 1-2절에 “마침 거기 난류 하나가 있으니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라 저가 나팔을 불며 가로되 우리는 다윗과 함께 할 분의가 없으며 이새의 아들과 함께 할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좇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좇으나 유다 사람들은 왕에게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좇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서 피난 갔다가, 압살롬이 죽은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유다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 세바는 이 어지러운 틈을 타 다윗 왕을 반역하였습니다. 다시 또 마귀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나라가 견고할 때에는 세바와 같은 사람이 머리도 들지 못하였습니다. 마귀의 역사는 성도가 약하거나 어지러울 때에 기회를 타서 일어납니다.

본문 3절에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더불어 동침치 아니하니 저희가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후궁 열 명을 잡아서 별실에 가두고 동침하지 않은 것은 전에 압살롬이 후궁과 더불어 동침하였기 때문이며,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0장 11절에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회복되는 때에 도덕성이 회복되어야만, 그 나라가 견고하게 됩니다. 

2. 다윗 왕의 진압과정

아마사에게 유다인을 소집하게 함

본문 4-5절에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 있으라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소집하러 가더니 왕의 정한 기한에 지체된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마사는 다윗의 누이의 아들로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압살롬이 죽은 다음 다윗이 그를 불러 군대장관으로 등용하였습니다(삼하 19:13). 다윗이 이렇게 한 것은 세바를 진압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포섭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요압은 군대장관 자리에서 해임당한 것입니다. 다윗은 세바의 반역을 빨리 토벌하지 않으면 화가 더 클 것이므로, 아마사에게 삼일 내로 유다 사람들을 소집하여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이 잘 소집되지 않아 아마사가 기일 내에 돌아 올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사가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으므로 유다 사람들이 그의 뜻을 쉽게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비새에게 세바 토벌을 명함

본문 6-7절에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쫓아가라 저가 견고한 성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요압을 따르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마사가 돌아오지않으므로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를 불러 세바를 진압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비새가 요압을 좇는 자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들을 끌고 반역하는 세바를 쫓으려고 갔습니다.

요압이 세바를 진압하러 감

본문 8-9절에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매었는데 저가 행할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형은 평안하뇨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의 동생 아비새가 세바를 토벌하러 가는 도중에, 요압이 아마사를 만났습니다. 요압은 아마사와 이종 사촌 관계로 요압의 어머니와 아마사의 어머니가 자매입니다. 요압이 아마사에게 “형은 평안하뇨”라며 반가운 얼굴로 인사할 때에 아마사가 속았습니다.

본문 10절에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치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 배를 찌르매 그 창자가 땅에 흐르니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을새”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이 아마사를 만나 입을 맞추는 체하다가 칼로 배를 찔러 죽였습니다. 요압이 아주 악한 일을 한 것입니다. 전에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도 요압이 이렇게 죽였는데, 이번에 아마사도 죽였습니다. 아마사가 왕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삼 일 내에 왔더라면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정해 놓은 기한에 오지 않으므로 왕이 다른 사람을 대신 세워 세바를 치게 하였고, 그 사이에 아마사는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요압이 아마사를 죽인 것은 질투와 원한 때문입니다(삼하 19:13). 아마사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으므로 서로 대적하여 싸웠기 때문에 그 원한을 풀려고 죽인 것 같습니다. 또 아마사가 죽음으로 자기의 권한이 커지고 군대장관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태평세월에 사람을 죽인 죄 값으로 자기도 죽게 됩니다(왕상 2:5-6). 요압이 군대장관으로 다윗을 위해 일을 많이 했지만,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에 요압을 숙청하라고 하였습니다(왕상 2:5-6). 그러므로 악을 행하면 장래에 반드시 그에 대한 보응이 옵니다.

본문 11-13절에 “요압의 소년 중 하나가 아마사의 곁에 서서 가로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 할 때에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굴어졌는지라 그 소년이 모든 백성의 섰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 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아마사를 큰 길에서 옮겨 가매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쫓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마사가 죽은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섭섭해 하여 전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아마사를 길에서 밭으로 옮기고 옷으로 덮어 보이지 않게 하자 그제야 백성들이 요압과 아비새를 따라서 세바를 치러 갔습니다. 우리도 여호와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에 과거에 상처 받은 일, 섭섭한 일 등을 생각하면 선한 싸움을 싸울 수가 없습니다. 요압이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는 요압과 아비새의 인도를 받아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할 일입니다.

본문 14-15절에 “요압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행하여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저를 따르더라 이에 저희가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하여 해자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바가 아벨 성으로 피신하였으므로 요압과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들이 아벨 성을 둘러싸고 성읍을 함락시키기 위해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본문 16-17절에 “그 성에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가 외쳐 가로되 들을찌어다 들을찌어다 청컨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가로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대답하되 그러하다 여인이 저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성의 여인 한 사람이 요압과 대면을 청하여 마주하고 자신을 여종이라며 겸손하게 말을 했습니다.

3. 아벨 성의 지혜로운 한 여인

본문 18-19절에 “여인이 말하여 가로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어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미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벨에 가서 물을 것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속담으로, 아벨에 지혜로운 자가 많아 다른 곳의 모든 문제까지 해결해 준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여기에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해석하고 가르쳐 주는 자를 말합니다. 아벨 성은 예로부터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그곳에 와서 해결을 받는, 이스라엘 중의 어머니와 같은 성인데, 이처럼 중요한 하나님의 기업을 침공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인이 지혜롭게 말했습니다.

본문 20-21절에 “요압이 대답하여 가로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저만 내어 주면 내가 이 성읍에서 떠나가리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저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 던지리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이 성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라 다윗 왕을 대적하는 세바를 죽이려는 것뿐이므로 세바만 내어 주면 아벨 성을 공격하지 않고 이 성에서 떠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지혜로운 여인이 무조건 요압의 군대를 대적으로 삼지 않고 “왜 싸우려고 하느냐?”고 하며 사유를 물을 때에 그 이유를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에 사유를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사실을 바로 알지 못하면 서로 오해하고 원수가 되어 죽이며 하나님의 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주게 됩니다.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성읍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 22절에 “이에 여인이 그 지혜로 모든 백성에게 말하매 저희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서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왕에게 나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읍 여인은 사람들을 설득시켜 세바의 목을 베어 요압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요압과 온 군대가 아벨 성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윗 왕에게 사실을 고하고 세바의 반란은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태평해졌습니다. 죄는 멸해야만 나라가 평안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속에 있는 죄를 날마다 제거하여 항상 견고하며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죄를 그냥 두면 망하게 됩니다.

4. 다윗 왕조의 중직(重職)들

본문 23-26절에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장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장관이 되고 아도니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제사장으로 세울 사람은 제사장으로 세우고, 군대장관으로 세울 사람은 군대장관으로, 역사에 익숙한 사람은 사관으로, 감역관의 자격이 있는 사람은 감역관으로, 대신의 자격이 있는 사람은 대신으로 세웠습니다. 다윗이 압살롬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이렇게 전후 처리를 잘 한 것입니다.
즉, 악은 제거하고 적재적소에 사람들을 잘 등용하여 나라를 견고하게 했습니다.

사무엘하 19:16-43 다윗 왕의 환궁(還宮)과 영접자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다윗 왕의 환궁(還宮)과 영접자들
사무엘하 19:16-43

16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려 내려올 때에 17베냐민 사람 일천 명이 저와 함께 하고 사울의 사환 시바도 그 아들 열 다섯과 종 스무 명으로 더불어 저와 함께 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의 앞에 나아오니라 18왕의 가족을 건네려 하며 왕의 선히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가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려 19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는 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21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22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24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때에 왕이 저에게 물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26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27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29왕이 저에게 이
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30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 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31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을 보내어 요단을 건네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 팔십 세라 저는 거부인 고로 왕이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33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바르실래가 왕께 고하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내 나이 이제 팔십 세라 어
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오히려 누를 끼치리이까 36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어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 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청컨대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컨대 저로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옵시고 왕의 처분대로 저에게 베푸소서 38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내가 너의 좋아하는 대로 저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바르실래의 입을 맞추고 위하여 복을 비니 저가 자기 곳으로 돌아 가니라 40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호행하니라 41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서 고하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여 왕과 왕의 권속과 왕을 좇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네었나이까 하매 42유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내느냐 우리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 주신 것이 있느냐 43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1. 시므이와 시바가 왕을 영접함

본문 16-17절에“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려 내려올 때에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이 저와 함께 하고 사울의 사환 시바도 그 아들 열 다섯과 종 스무 명으로 더불어 저와 함께 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윗을 맞으러 나간 사람들 중 첫째가 시므이입니다.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다
윗을 저주하고 조롱한 사람입니다(삼하 16:5-14). 두 번째는 시바입니다. 시바는 사울의 종으로 사울 집의 재산을 관리하던 자인데 자기가 섬기던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을 참소하여 그의 재산을 가로챈 자입니다(삼하 16:1-4).

2. 시므이의 사과와 다윗의 용납

본문 18-23절에 “왕의 가족을 건네려 하며 왕의 선히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가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려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는 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다윗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로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하고 조롱한 자로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므이가 제일 먼저 요단 강을 밟고 건너와서 자기의 잘못한 것을 자복하였기 때문에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왕을 모독한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잘못하였다고 할 때에는 용서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마태복음 18장22절에도 ‘형제가 죄를 자복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3. 므비보셋의 충성과 다윗의 처사

본문 24-28절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저에게 물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였더뇨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인데, 다윗이 요나단을 생각하여 그를 왕자 중의 하나와 같이 대우하였습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다윗이 피난 다니는 동안, 그 고난에 동참하는 정신으로 근신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양식과 선물을 다윗에게 주면서 므비보셋을 참소 하였습니다(삼하 16:1-4). 참소는 거짓으로 중상 모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 복귀하는 다윗이 함께 피난 가지 않은 이유를 물어 볼 때에 므비보셋이 시바가 자기를 속였고 왕에게 참소했다고 자신의 결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본문 29-30절에 “왕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므비보셋이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라고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 즉, 그 같은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다윗이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고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이 충성된 것을 알고도 재산을 시바와 절반씩 나누어 가지라고 한 것은 시바가 므비보셋에게는 잘못했지만 다윗이 피난할 때 나귀와 양식으로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삼하
16:1-4). 그러나 만일 압살롬이 왕이 되었더라면 다윗을 도와준 것 때문에 시바는 죽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4. 바르실래의 영접과 왕의 대우

본문 31-36절에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을 보내어 요단을 건네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서 함께 요단에 이르니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 팔십세라 저는 거부인고로 왕이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바르실래가 왕께 고하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오히려 누를 끼치리이까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어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 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바르실래는 다윗 왕이 마하나임에 피난 왔을 때에 왕을 공궤한 사람입니다(삼하 17:27-29). 바르실래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다윗이 피난 시에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잘 지낸 것 같습니다. 이 바르실래가 다윗 왕이 요단을 건너는 것을 보고자
로글림에서 멀리 요단 강까지 동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너무 고마워서 바르실래에게 예루살렘으로 같이 갈 것을 권면하였으나 바르실래는 자신의 나이가 팔십 세이므로 거절하였습니다. 바르실래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왕에게 충성한 것입니다.

본문 37-39절에 “청컨대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컨대 저로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옵시고 왕의 처분대로 저에게 베푸소서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내가 너의 좋아하는 대로 저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바르실래의 입을 맞추고 위하여 복을 비니 저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르실래가 왕의 호의를 받아 자기 아들 김함을 왕에게 맡겼고, 다윗 왕은 김함이 구하는 대로 베풀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즉, 원하는 직분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다윗 왕이 신세를 갚으려는 것으로, 김함에게는 아주 큰 혜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갈 6:7-8). 바르실래가 다윗 왕이 피난 갔을 때에 지극한 정성으로 왕을 대접한 것이 좋은 것을 심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대로 거둔 것입니다. 즉, 아버지가 심어 놓은 열매를 아들이 받게 된 것입니다. 부모가 덕을 세워 놓으면 그 덕이 자손에게까지 갑니다. 또 아버지가 악덕을 끼쳐 놓으면 그 영향이 자손에게까지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5. 왕에 대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다툼

본문 40-43절에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을 호행하니라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서 고하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여 왕과 왕의 권속과 왕을 좇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네었나이까 하매 유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지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내느냐 우리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 주신 것이 있느냐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왕궁으로 돌아올 때 유다 백성이 먼저 영접했고, 다음에 이스라엘 10지파의 절반이 영접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가 왕을 앞장서 영접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과 상의 없이 주도권을 행사하며 자기네를 멸시했다고, 유다 백성에게 불만을 품고 항의하였습니다. 그때에 유다 사람들이 뭐라고 답변했습니까? 그들은‘우리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 주신 것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왕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왕은 우리에게 선물을 준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먹었다면 여기서 꼼작 못합니다. 그리고 본문43절 하반절에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 하였더라’고 하였는데, 정당한 일을 한 사람은 언제나 떳떳하고 강경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19:1-15 승리 이후의 다윗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승리 이후의 다윗
사무엘하 19:1-15

1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
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찌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8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9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10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1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 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왕이 돌
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네려 하여 길갈로 오니라 

1. 다윗의 애통

본문 1-4절에 “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아들이지만 아버지를 대적하고, 내쫓고 심지
어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전쟁 중에 상수리 나무에 머리털이 걸려 매달리게 만드시고 또 탔던 노새는 달아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압과 여러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쳐죽인 것입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다윗 왕이 듣고 심히 슬퍼했습니다. 사무엘하 18장 33절에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하면서 그 다락문에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들, 모든 군대들이 왕이 이렇게 슬피 우니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서 쫓겨서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지만 왕은 압살롬을 생각하며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좋을 뻔했다”고 하며 우니까 이 일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슬픔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군인들이 다 돌아오는데도 다윗이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운 것 같습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기 시작하여 군대가 다 돌아올 때까지 운 것을 보면 몇 시간 동안 운 것 같습니다. 군대가 다 돌아오려면 몇 시간 걸리지 않겠습니까? 몇 시간 동안 성문에 앉아서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하면서 우니 모든 백성이 다 그날의 이김이 슬픔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정도에 지나친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에 대한 애착심, 애정이 지나쳤습니다.

그 아들은 하나님을 거역한 아들입니다. 또 아버지를 대적하고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한 아들이며,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아비를 쫓아내고 전쟁을 일으킨 아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는데 그 아들을 위해 이렇게 계속 운다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아들을 생각해서 잠깐 슬퍼할 수 있지만, 계속 이 아들을 위해서 슬퍼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압살롬은 하나님께서 죽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8장 28절에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히마아스는 하나님께서 손을 드시어 압살롬과 압살롬의 군대를 우리에게 다 붙여주셨다고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손에 붙여 심판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우느냐는 것입니다. 또 구스 사람도 하나님께서 해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8장 32절에 “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갚으셨다는 것입니다. 압살롬을 죽인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셨고,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대적을 치셨는데, 다윗왕은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면서 계속 운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인정으로만 기울어지지 말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애착심만 가지면 안 되겠습니다.
다윗 왕이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심판했다, 하나님께서 그 악한 일들을 이렇게 갚으셨다’라고 믿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며 울지 않았겠는데, 지금 오랫동안 운 것은 다윗이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 나갔던 모든 군인들이 아주 슬퍼하면서 돌아왔습니다. 왕이 우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민망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압살롬 죽인 것을 부끄러워 하면서 슬퍼하는 자리에 빠졌습니다.

2. 요압의 권면

본문 5-6절에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압 군대장관이 다윗 왕에게 직접 나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들은 바른 소리입니다. 왕의 생명을 위해 나가 싸우고, 또 왕의 자녀들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신복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한 것은 왕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왕께서 미워하는 자, 즉 압살롬은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 즉 자기들은 미워하시는 행사라는 것입니다. 또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에게 멸시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라는 것은 어떻습니까? 다윗이 과연 그랬을까요? 이것은 지나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위에 이야기한 것은 바른 말인데, 이것은 지나친 소리입니다. ‘압살롬이 만일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윗 왕은 압살롬도 살고, 또 요압이나 그 군대들도 살고, 모두가 사는 것을 원했을 것 같습니다.
다윗의 군대가 전쟁에 나갈 때도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과 왕궁을 다 점령하고 자신은 쫓겨 피난을 갔는데도 다윗은 압살롬을 죽이지 않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보려고한 것입니다. 압살롬도 살고, 자기도 살고, 또 자기의 군대도 모두 다 살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자를 살리고, 그와 맞서는 자기 군대도 살리는 일을 어떻게 다 하겠습니까? 욕심입니다.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을 너무 사랑하는 가운데 생각이 비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생각하면 압살롬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지럽게 한 인물이 아닙니까? 또 아버지를 대적하는 패역무도한 자식입니다. 아버지를 죽이려는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하나님께서 죽이신 것인데, 압살롬에 대해 ‘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애통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인정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에게 아들이 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상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뜻만 가지고 이러는 것입니다. 또 아들이 우상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한테 당한 것입니다. 우상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 그 우상에게 당하는 법입니다. 압살롬이 우상이 되었
기 때문에 압살롬에게 쫓겨 피난을 가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 죽을 뻔했는데도 아들 우상 만들어 놓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다윗이 아직도 압살롬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믿음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공의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렇게 어리석은 가운데 빠집니다. 인정으로 기울어지면 이렇게 어리석은 가운데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이 바른 말을 하기는 했는데 마지막 말은 잘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 죽고 압살롬만 살았다면 왕이 좋게 여기실 뻔 하셨겠습니다”라는 말은 억지로 돌려 말한 것입니다. 또 요압이 왕에게 가서 바른 말을 했지만 왕에 대하여 다 바로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왕에게 가서 간청하는 말로 “왕께서 이러시면 되겠습니까? 모든 신복들이 지금 왕께서 울고 계시므로 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패전한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한번 나가 보셔야겠습니다”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왕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요압은 바른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한 것입니다. ‘왕의 생명을 구원하고 왕의 처자들과 자녀들의 생명을 구원한 신복을 부끄럽게 합니다’라는 말은 바른 말이지만 왕에 대하여 거역하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또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고 미워하는 자는 사랑한다’는 말도 왕의 아픈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죽고 압살롬만 살았으면 좋을 뻔 했겠냐?’는 것도 왕을 상당히 거스른 것입니다. 요압이 왕이 울고 있는 것을 은근히 비난하며 왕을 많이 거역한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으로 교훈하심

본문 7절에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이 바르게 말한 것입니까? 요압은 ‘왕이 곧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해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에서는 맹세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말했습니다. 만일 일어나 나가지 않으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하고 다 달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화보다 더 큰 화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안 나가면 정말 다 떠나가겠습니까? 왕이 울고만 있으면 다윗의 군대가 다 도망치겠습니까? 아무리 울고만 있어도 다 달아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울고만 있으면 몇 사람은 달아날 것입니다. 첫째로 요압 등 몇 사람은 달아날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냥 있을 것입니다. 다 떠나겠습니까? 전쟁은 다 이겨 놓은 것이고, 승전하고 돌아왔는데 왕이 울고만 있으니까 자기들도 가만 앉아서 왕이 우신다, 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달아 나는 것은 요압과 몇 사람만 달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압은 일을 과장되게 만들어 왕을 공격했습니다. 왕이 만일 오늘 밤에 나가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아니하면 이 밤에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달아날 것이니 빨리 나가라는 것입니다. 나가지 않으면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화보다 더 큰 화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요압의 생각은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 같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고, 왕을 위하고, 또 군인들도 위하고 다 잘하자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잘못한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왕이 울다가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며칠 울겠습니까? 요압이 가서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밤새도록 울고 그 다음 날 아침이면 그치지 않겠습니까? 우는 것도 한도가 있지, 마냥 울겠습니까? 또 사흘 동안 운다고 합시다. 사흘 이후에는 그치지 않겠습니까? 가만 두어도 그칠게 될 텐데 왕을 공격하여 곤궁에 빠뜨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의 입장에서 보면 요압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징계로 보아야 합니다. 너무 아들에 대한 애착심만 가지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믿음으로 서지 못하고, 인정에만 기울어져 울고있으니 하나님께서 요압이라는 몽둥이를 들어 다윗을 내리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기서 깨달은 것 같습니다. ‘아, 내가 잘못했다. 이렇게 하다가 큰일나겠다. 요압의 행동이 잘 한 것은 아니지만, 요압이 와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내가 깨달았다’라고 한 것입니다. 

마귀 역사를 통해서 깨닫는 것이 있고, 지나친 말들을 들을 때도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말만 듣고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말할 때도, 또 잘못 행동할 때에도 거기서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바로 서라고 저런 마귀역사를 일으켜서 이렇게 만드시나 보다. 내가 깨닫지 못하니까 마귀역사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나 보다’하며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도적이 와서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도적이 와서 도적질을 해가면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아, 내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즐겨 못 받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적맞게 해주셨구나. 또 하나님께 받쳐야 할 것을 못 받쳤기 때문에 도적맞게 하셨구나’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도적에 붙여서 깨닫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도적이 나쁜 것이지만 그 도적을 통해서 성도로 하여금 깨닫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통해서도 깨닫게 만드십니다. 다윗이 잘못 나가기 때문에 이렇게 요압이 잘못된 언사, 즉 과격하고 과장된 말들로 공격하자 다윗이 많이 깨달았을 것 같습니다. ‘요압도 잘못했지만 내가 참 잘못했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다윗이 잘못한 것 때문에 요압도 이렇게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깨달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하여 깨닫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만 지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도적맞을 때 깨닫고, 사기 당했을 때 깨닫고, 다른 사람이 내게 공격할 때, 또 잘못할 때 깨달아야 합니다. 잘못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서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깨닫게 하시려고 요압이라는 몽둥이를 써서 이렇게 공격하고 곤경에 빠뜨린 것입니다.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 깨달아야 합니다. ‘요압이 나쁘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려고 이런 곤경에 빠뜨리신 줄 알고 바로 서야겠습니다.

또 요압과 같이 바른 말이라고 해서 그냥 들이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왕이 자기보다 얼마나 높은 직위입니까? 그런데 왕에게 자기 친구에게 하듯이 버릇없이 대하였을 뿐 아니라 말도 과장하며 협박하듯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요압이 잘못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요압이 눈물을 흘리며 간청하는 태도로 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또 정도껏 하고 그만 두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밤에 다 달아난다’든지, ‘우리가 다 죽고 압살롬이 살았으면 좋으셨겠다’라는 말은 하지 못할 말이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주 잘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잘못한 말 때문에 다윗 왕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는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 행동할 때 깨닫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잘못했으니까 저 사람이 내게 그렇게 하나 보다. 또 내가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았으니까 아랫사람도 내 말을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순종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기네들이 순종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잘못하는 것을 볼 때에는 내가 하나님께 믿는 일을 잘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한 모든 문제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다윗은 지금 여기서 바로 깨닫고 바로 서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성문에 앉으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왔습니다. 왕이 모든 백성에게 전쟁하였는데 얼마나 수고가 많았느냐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4.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돌아옴

본문 9-10절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의 두목들이 이제 왕을 모셔오자고 하며 왕 모셔오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다윗 왕을 도로 모셔오자. 다윗 왕은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낸 왕이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해내신 분이다. 또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지만,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이 싸움에서 죽었거늘 어찌하여 다윗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고 하면서 이스라엘 전체 여러 지파에서 두목이 될 만한 사람들이 일어나 다윗 왕을 다시 모셔오자고 한 것입니다. ‘다윗 왕이 우리를 과거에 원수의 수하에서 건져내지 않았느냐? 블레셋 수하에서 건져내지 않았느냐? 또 우리가 기름 부어 세운 압살롬은 전쟁에서 죽지 않았느냐? 그러니 다윗을 다시 모셔오는 일이 제일 좋은 일이다’라고 여기며 과거에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한 다윗 왕을 다시 모셔오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과거에 블레셋 나라와 그 외 여러 원수의 나라와 더불어 싸워 이스라엘을 구원한 일을 백성들이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생각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한 것은 모든 백성이 다 압니다. 오늘날도 같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충성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공을 이룬 것은 모든 성도들이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다 압니다. 다윗도 일시적으로 쫓겨났지만 그 다음에는 ‘다윗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지 않았느냐, 또 블레셋 사람의 수하에서도 구원해 내지 않았느냐, 이제 다윗 왕을 다시 모셔오자’고 하여 이스라엘 전 지파에서 일어선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 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족속에게 다윗이 사람을 보내서 말한 것입니다. 다윗의 소관 지파인 유다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라고 한 것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여러 지파가 왕을 도로 모셔 오자고 일어난 것 같고, 유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잠잠하게 있었던 같습니다. 그러자 다윗 왕이 유다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서 너희는 내 골육인데 어찌하여 왕을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려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앞장서서 왕을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잠잠하고 있던 사람들도 깨우쳐 주면 앞장설수 있습니다. 다른 지파들이 먼저 다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유다 지파가 잠잠히 있었는데 깨우쳐 주자 이제는 왕을 모셔오는 일에 제일 앞장을 섰습니다.

5. 다윗의 잘못된 인사행정

본문 13-14절에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마사가 문제입니다.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대장관입니다. 반역하던 장관입니다. 사무엘하 17장 25절에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장을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저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미 스루야의 동생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이 죽고 난 뒤 다윗이 아마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골육이라는 말은 역대상 2장16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희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형제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에게 두 누이 스루야와 아비가일이 있었는데 스루야의 아들은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고, 또 작은 누이 아비가일의 아들은 아마사입니다. 아비새, 요압, 아사헬, 그리고 아마사는 다윗의 누이의 아들들입니다. 요압도 누이의 아들이고, 또 반란군에 가입했던 아마사도 누이의 아들입니다. 누이의 아들이니까 생질(甥姪) 간이 됩니다. 다윗은 외삼촌이 됩니다. 집안끼리 싸운 것입니다. 압살롬 군대는 압살롬에게 고모의 아들인 아마사가 장관이 되었던 것이고, 또 다윗 편에는 누이의 아들 요압이 군대장관으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다윗이 ‘너, 아마사는 내 골육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본문 13절 중반절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윗이 지금 반역하는 압살롬에게 가담했던 아마사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또 ‘항상 내가 너를 군대장관으로 삼겠다. 안 삼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이것은 자신의 말을 확실해 해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요압은 어떻게 할 작정일까요? 현재 요압이 군대장관입니다.
그동안 요압이 나가서 전쟁에서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반역했던 아마사를 데려다가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을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요압은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요압은 아마 군대장관 자리에서 제거시킬 모양입니다. 왜 제거하려 했을까요? 요압이 왕에게 가혹하게 나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기서 다윗의 마음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자를 군대장관으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신 세워야겠는데, 누구를 세워야 할까 하다가 아마사가 진정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군대장관으로 삼으면 좋겠다 생각이 든 모양입니다. 아마사도 마침 누이의 아들이고, 한 골육 친척입니다. 그러니 아마사가 군대장관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대장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요압을 제거하고 압살롬에게 가 붙었던 아마사를 데려다 군대장관을 시키겠다고 공포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 왕이 잘못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요압이 자기를 속상하게 했다고 해도 요압이 군대장관으로 전쟁에 나가 이긴 판에 아무 사건도 일으키지 않은 요압을 군대장관에서 해임하고 대적하던 반역자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데려다 군대장관으로 세운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과오를 범한 것 같습니다. 아마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온다고 해도 어떻게 당장 군대장관으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오랫동안 지내보다가 세우겠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장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차에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 세우겠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장차 세울 계획이 있더라도 공포하지 말고 가만있다가 아마사를 데려와 조용히 ‘장차 내가 너를 군대장관으로 세울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면 모르지만 다 공포에 놓았으니 요압이 얼마나 격분했겠습니까? 전쟁터에서 자기의 대적이었는데, 자기 대신 군대장관을 세우겠다고 하면 요압이 상당히 격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본문 뒷 부분으로 가면 요압이 아마사를 죽이게 됩니다. 결국 다윗 왕이 아마사를 죽게 만든 것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배울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아들이 있는 집에서 아들 하나만 더 사랑하면 다른 형제들이 그를 죽이지 않겠습니까? 요셉의 예처럼, 여러 형제 중에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해 입히고, 요셉을 더욱 사랑하니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구덩이에 빠뜨렸다가 다시 애굽에 팔아먹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요압이 좀 잘못했어도 그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로가 있으니 일단 가만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장차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세울 생각이 있다고 해도 당장 발표할 것이 아니라 아마사가 진정으로 돌이켜 내내 잘 할 것인지 좀 지내보고 판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한다고 하면 받아주는 것이 좋습니다만 받아 주더라도 좀 지내봐야 합니다. 지켜보면서 끝까지 충성하면 등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문 14-15절에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네려 하여 길갈로 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유다의 민심이 다윗 왕에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6. 다윗의 관용

한편 다윗에게는 용납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대적하여 죽이겠다는 편에 섰던 아마사이지만 그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겠다고 하면 받아 쓸 만한 곳에 귀하게 쓰려고 하는 다윗의 마음, 이것도 우리가 배워야겠습니다. “내자물거(來者勿拒)하고 거자막추(去者莫追)하라”는 말이 있는데 오는 자는 거절하지 말, 가는 자는 쫓아 보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마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거절할 필요 없이 받아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가 돌아와서 이스라엘 건설에 한 몫을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과거에는 대적에게 붙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대적을 심판하셔서, 돌아올 기회가 되었으니, 회개하고 돌아오면 받아주면 되는 것입니다. ‘거자막추’는 가는 사람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는 사람은 가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라, 그런 방침입니다. 오고 싶은 사람은 다 받아 주는 것입니다. 가겠다는 사람은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 쫓아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오고 싶으면 또 올 것입니다. 막대기로 때려서 보내면 이 다음에 오고 싶어도 못 옵니다. 갈 때에는 그저 잘 가서 잘하라고 하고, 또 오겠다면 오라고 하십시오. 그렇다고 교인들 심방 가서 다른데 가겠다면 잘 가라고 그러지 마십시오. 미혹 받아서 비뚤게 나가고, 잘못 된 길로 가면 어떻게 하든지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바른 진리에서 떠나려고 하면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로 떠나지 않게 권면하고, 심방하고 돌보아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여간 대적으로 있던 사람들도 받아 주는 것입니다. 오
늘날로 말하면 북한에 있는 군대장관도 한국에 오겠다고 하면 다 받아 주는 것입니다. 받아주면 그 사람도 회개하고 바로 서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꾼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관용하는 마음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8:16-33 압살롬의 최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압살롬의 최후
사무엘하 18:16-33

16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로 그치게 하니 저희가 이스라엘을 따르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17무리가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던지고 그 위에 심히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18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가져 세웠으니 이는 저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을 한탄함이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으로 그 비석을 이름하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19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20요압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날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21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고하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 22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아무쪼록 나로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음질하게 하소서 요압이 가로되 내 아들아 왜 달음질하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인하여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23저가 아무쪼록 달음질하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가로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서니라 24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았더라 파숫군
이 성문루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음질하는지라 25파숫군이 외쳐 왕께 고하매 왕이 가로되 저가 만일 혼자면 그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저가 차차 가까이 오니라 26파숫군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음질하는지라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음질한다 하니 왕이 가로되 저도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 27파숫군이 가로되 나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왕이 가로되 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 28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님 여호
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이다 29왕이 가로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30왕이 가로되 물러나 곁에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섰더라 31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 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32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33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1. 압살롬이 죽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아버지를 내쫓고 예루살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마하나임이라는 곳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압살롬은 군대를 다 소집시켜 자기 아버지를 죽이려고 따라왔고, 다윗은 요단 강 건너편에 있는 모든 백성들과 군대를 모아 전쟁을 했는데 그날에 압살롬의 군대 이만 명이 칼에 죽었고 수풀에 죽은 자가 더 많았다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18장 9절에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 나간지라”고 했습니다. 압살롬이 전장에서 노새를 타고 수풀이 많은 곳을 왔다 갔다 하다가 상수리나무를 지날 때 그 나무 가지 사이에 머리털이 걸려 노새는 빠져나가고 압살롬만 나무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요압의 군사 중 한 사람이 요압에게 가서 그 사실을 고했고, 이에 요압이 압살롬을 찾아가 죽였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 일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압살롬의 군대가 많고 대세가 압살롬에게 돌아가 있습니다. 다윗은 피난자의 형편으로 군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죽이시려고 상수리나무로 가게 해서 그 머리털이 걸리게 하셨고 또 요압의 군대가 와서 쳐 죽이게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군대가 많아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군대가 많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세다고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시편 33편 16-17절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원함에 말은 헛것입니다. 또 전도서 9장 11절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력하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시면 이기고 하나님께서 못 이기게 하시면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에 나간다 할지라도 이기지 못하며 장사라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골리앗이 얼마나 큰 장사였고 블레셋 군대가 얼마나 강했습니까? 그렇지만 골리앗은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 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시면 이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렇게 원수를 죽여주기도 하십니다. 압살롬이 나뭇가지에 안 걸렸으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죽이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나뭇가지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모르는 것입니다.
상수리 나뭇가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거기에 우리가 언제 걸릴 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 가장 보배로운 일임

본문 16-18절에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로 그치게 하니 저희가 이스라엘을 따르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무리가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던지고 그 위에 심히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가져 세웠으니 이는 저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을 한탄함이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으로 그 비석을 이름하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계획하여도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비석을 세웠지만 다 헛된 것이 되었습니다. 참된 비석은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고 희생한 것이 하나님 앞에 기념비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한 것은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주를 위해 순종한 것이 하늘나라에 상달이 되고 기록 된다고 했습니다. 땅에서 다 없어져도 하늘에 기록된 것은 다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사는 동안 주를 위해 봉사하고 충성하고 좀 더 복음을 전하고 좀 더 주의 일을 힘써 해야만 하늘나라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2. 압살롬의 죽음을 다윗에게 전함

모든 사람을 적당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함

본문 19-21절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요압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날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고하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압살롬의 소식을 전하였는데 이번에는 좋지 못한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에 승리했지만 왕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이 군장들에게 압살롬의 군대와 전쟁할 때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무엘하 18장 5절에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너그러이 대접하라’는 것은 죽이지 말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죽었습니다. 따라서 좋은 소식을 왕께 전하는 것이 아니므로 요압은 달음박질을 잘하는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 말고 구스 사람에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2절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아무쪼록 나로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음질하게 하소서 요압이 가로되 내 아들아 왜 달음질하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인하여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좋은 소식을 전할 때에는 아히마아스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승리한 소식은 좋은 소식이지만 압살롬이 죽은 소식은 왕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므로 거기에 합당한 구스 사람을 사용한 것입니다. 다윗은 소식을 전하고 받을 때에도 적당한 사람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천사를 적당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전쟁할 때에는 미가엘을 사용하셨고 좋은 소식을 전할 때에는 가브리엘을 사용하셨습니다. 사용하는 것이 각각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 왕도 이처럼 군대장관으로 사용할 사람, 좋은 소식 전하는데 사용할 사람, 또 좋지 못한 소식 전하는데 사용할 사람 등을 일제히 정해 놓고 그 사람들을 사용하여 소식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사람을 적당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는 모세의 일을 시키실 때 사용하셨고 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을 붙잡아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도록 사용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로 사용하셨고 사르밧 과부는 엘리사를 대접하는 데에 사용하셨습니다.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함

본문 22-23절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아무쪼록 나로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음질하게 하소서 요압이 가로되 내 아들아 왜 달음질하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인하여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저가 아무쪼록 달음질하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가로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서니라”고 했습니다. 아히마아스가 요압에게 자신도 다윗 왕께 달려가서 소식을 전하겠다고 자꾸 졸랐습니다. 구스 사람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떠났어도 아히마아스가 자꾸 가겠다고 하니 요합이 허락했습니다.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섰는데 그의 달음질이 상당히 빨랐던 것 같습니다. 아히마아스가 구스 사람보다 왕에게 먼저 도착했습니다. 

본문 24-26절에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았더라 파숫군이 성문루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음질하는지라 파숫군이 외쳐 왕께 고하매 왕이 가로되 저가 만일 혼자면 그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저가 차차 가까이 오니라 파숫군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음질하는지라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음질한다 하니 왕이 가로되 저도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이 보니 한 사람이 달음질해 오는 것이었습니다. 왕에게 보고했을 때 왕은 한 사람이 달음질하면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보니까 또 한 사람이 달음질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한 사람이 달음질한다고 보고했습니다. 한 사람이 달음질해 오는 것은 좋은 소식인 것 같습니다. 전쟁에서 패했으면 여러 사람이 한 번에 도망쳐 오지 한 사람만 올 리가 없기 때문에 다윗 왕은 혼자 달음박질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소식을 전하러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27절에 “파숫군이 가로되 나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왕이 가로되 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아히마아스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소식을 가져옵니까? 좋은 사람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악한 사람은 악한 소식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히마아스는 좋은 사람이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으로 다윗은 생각했습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일을 할 것이고 말을 해도 사랑으로 좋게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좋은 사람으로 인정되면 그 사람이 하는 일들을 그 주변에서 다 좋게 봅니다. 만약 악한 사람이 와서 감언이설을 하고 비위 맞추는 말을 할 때는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해서 이렇게 할까, 무엇에 손해주려고 할까, 무슨 이득을 보려고 이러는 걸까’하고 생각을 하겠지만, 좋은 사람이 와서 말할 때에는 ‘좋은 말을 할 것이다, 좋은 면으로 도와줄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윗이 아히마아스를 좋게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좋은 사람이 되어서 무슨 일을 하든지 ‘아,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좋은 일이니까 괜찮을 것이다!’라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좋은 마음을 쓰고 선을 베풀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아야하고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나서 하나님 나라가 발전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더욱 좋은 소문이 나고 인정받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들 각자의 믿음과 인격을 만들어 가는데 힘써야겠습니다.

3. 다윗이 압살롬의 죽은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함

본문 28-33절에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이다 왕이 가로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왕이 가로되 물러나 곁에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섰더라 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 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히마아스와 구스 사람의 보고 이후 다윗 왕은 아들 압살롬이 죽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마음이 심히 아파서 다윗 왕이 문루(門樓)에 올라가 울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18:1-15 압살롬의 죽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압살롬의 죽음
사무엘하 18:1-15

1이에 다윗이 그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고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 위에 세우고 2그 백성을 내어 보낼쌔 삼분지 일은 요압의 수하에, 삼분지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수하에 붙이고 삼분지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수하에 붙이고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3백성들이 가로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찌라도 저희는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찌라도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터이라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4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선히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서매 모든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지라 5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6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7거기서 이스라엘 무리가 다윗의 신복들에게 패하매 그날 그곳에서 살륙이 커서 이만에 이르렀고 8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9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 나간지라 10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11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
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12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찌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13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 생명을 해하였더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14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15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1. 다윗이 군대를 조직하여 출전케 함

요압과 아비새, 잇대를 군대장관으로 세움

본문 1-2절에 “이에 다윗이 그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고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 위에 세우고 그 백성을 내어 보낼쌔 삼분지 일은 요압의 수하에, 삼분지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수하에 붙이고 삼분지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수하에 붙이고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군대를 조직하여 장관 세 사람에게 나누어 맡겼습니다. 압살롬도 군대를 많이 조직하여 자기 아버지 다윗을 치기 위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지방과 민족을 초월해서 해야 함

여기서 군대 삼분지 일을 맡은 자 가운데 가드 사람 잇대가 나왔습니다. 가드 사람은 다윗이 블레셋에 피난 갔을 때 만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무엘상 27장 2절에 “일어나 함께 있는 육백 인으로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고 하였고, 같은 본문 7절에 “다윗이 불레셋 사람의 지방에 거한 날수는 일 년 넉 달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일 년 넉 달 블레셋 지방에 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가드는 블레셋 사람의 땅인데, 다윗이 그곳에 피난 가 일 년 넉 달을 있으면서 좋은 장수를 얻은 모양입니다.
잇대가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지만 유능하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을 위해 충성하고 어떻게 하든지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야겠다는 신앙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유능한 사람이었던 같습니다. 우리도 자기 일에 유능해야지, 무능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잇대는 이스라엘 사람은 아니었어도 실력이 있고 양심적이고 충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그를 오른 팔과 같이 썼던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군대 삼분지 일을 가드 사람 잇대에게 맡겼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 즉 자기 지방 사람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방 사람이라 해도 실력이 있고 유능한 사람이면 일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가드 사람도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믿음으로 나가고 양심적이고 충성되며 유능하면, 그런 사람을 써야 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지방 색채를 가지고 일할 때 자기 지방 사람만 쓴다고 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지방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라를 위하여 충성하고 교회로 말하면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일을 잘 해나갈 것 같으면 아무 지방 사람도 괜찮습니다. 지방 알아서 뭐하겠습니까?

다윗이 잇대에게 군사 삼분지 일을 맡긴 것이 참 잘한 것입니다. ‘유능해도 가드 사람이면 안 된다, 유능해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도 유다 지파가 아니면 안 된다, 베냐민 지파가 아니면 안 된다’, 이렇게 나가면 망하고 맙니다. 유능한 사람을 못 쓰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다윗이 잇대가 가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충성되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잘 받들어 나갈 것으로 보고 함께 일할 자로 삼은 것은 잘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점을 배워야 합니다. 지방 다 없애고 어찌하든지 실력대로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믿음대로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 지방 사람들 끼리만 돌아가고 자기 지방 사람들만 쓰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다른 지방 사람들도 얼마든지 유능한 자들이 많은데 자기 지방 사람들만
쓰면 그만큼 영역이 좁아지지 않습니까? 지방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성경에 맞습니다.

다윗 군대의 출전

한편 예전에 다윗이 피난 갈 때에는 군대가 많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15장 18절에 “모든 신복이 그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 인이 왕의 앞으로 진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드에서부터 따라온 이 육백 명이 정기군입니다. 말씀에서 ‘육 백명 정기군이 왕의 앞으로 진행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아히도벨은 몇 명을 데리고 다윗을 죽인다고 했습니까? 사무엘하 17장 12절에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 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 죽이고”라고 하였습니다. 일만 이천 명입니다. 아히도벨이 그날 밤에 갑자기 왔으면 다윗이 그 일만 이천 명을 당할 수 없을 뻔 했습니다. 육백 명으로 어떻게 일만 이천 명을 당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압살롬으로 하여금 아히도벨의 모략을 따라 가지 않고 후새의 모략을 따라 가게 만드심으로 싸움의 날짜가 연기된 것입니다. 

그러면 후새의 모략은 무엇입니까? 사무엘하 17장 11-13절에 “나의 모략은 이러하니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같이 왕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저를 엄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같이 저의 위에 덮여 저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두지 아니할 것이요 또 만일 저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한 작은 돌도 보이지 않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과 그의 모든 신복이 후새의 이 말을 좋게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아히도벨이 군대를 많이 조직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백성들이 가로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찌라도 저희는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찌라도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터이라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윗 왕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싸움터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본문 4-5절에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선히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서매 모든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 지라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아버지로서의 심정이 이 말씀에 자 나타나 있습니다. 출전하는 장관들에게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2. 압살롬의 군대가 다윗의 신복들에게 패함

본문 6-8절에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거기서 이스라엘 무리가 다윗의 신복들에게 패하매 그날 그곳에서 살육이 커서 이만에 이르렀고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을 하다가 칼에 죽은 자가 이만 명이고 수풀에서 죽은 자가 더 많았고 했습니다. 아마도 죽은 자가 오만 명은 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압살롬이 몇 명이나 모집한 것 같습니까? 한 십만 명은 불러 모은 것 같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군사를 모집하면 많이 모을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 다윗 왕은 요단 강 건너 마하나임에서 군사를 모집하였습니다. 요단 강이 경계가 되어서 그 동쪽에 있는 군사만 모집하였습니다. 다윗 왕은 몇 명이나 모집하였을까요? 압살롬은 요단 강 저편으로 지파가 여럿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 만 명 모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삼분지 일은 요압의 수하에 붙였습니다. 요압은 요새로 말하면 연대장입니다. 그 다음 삼분지 일은 요압의 동생 아비새에게 붙이고 다시 삼분지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수하에 붙였습니다. 세 부분으로, 즉 사단으로 군대를 나눈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에브라임 수풀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정글 같은 수풀이었는지 사람이 빠져 죽을만한 곳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군대는 숫자가 작고 압살롬의 군대는 죽은 사람만 해도 사, 오 만 명이 되니 약 십만 명 대군을 거느리고 왔다고 봐야 하겠는데, 다윗 군은 적은 숫자로 그들과 어떻게 싸워 이길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이때 마하나임이라는, 우리나라의 남한산성 같은 곳에 피난을 가 있었는데, 그 부근에 수풀이 많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정글 같은 수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가서 다윗은 군사들에게 전쟁의 여러 방법을 가르친 모양입니다. 가드에서는 육백 명이 다 노병(老兵)이고 전술에 능한 사람들입니다. 다윗도 전술에 능합니다. 그러니 수풀에서 전쟁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자기네들이 경험해 온 전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특별한 영감을 주셨을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이번에 전쟁할 때에 원수가 어느 쪽으로 올 것인가를 어느 정도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압살롬의 군대는 처음 가는 길인데다 노장(老將)이 없습니다. 다 신병들입니다. 군대장관만 해도 아마샤입니다. 이 사람은 전쟁으로 유명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압살롬의 군대는 숫자는 많지만 다 전쟁에 경험이 없는 신병들인데다 전법에 능하지 못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군대는 숫자는 많지 않아 한 만 명쯤 된다 해도 전법에 능한 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에브라임 수풀을 며칠 동안 다니면서 길을 다 알아 놓은 상태입니다. 에브라임 수풀이 아무리 깊어도 길들이 다 있지 않겠습니까? 중앙에도 길이 있고 옆으로도 길이 있는데 땅을 파고 길목마다 매복해 있다가 상대편 군사들이 올 때마다 ‘쳐라’ 하는 전법을 가지고 대전했는지 모릅니다. 압살롬의 군대는 자신들의 군사 숫자가 많은 것을 자랑하고 압살롬이 앞서 의기양양해서 오는데 다윗 군이 땅속에 매복해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 군이 공격할 때에 그 군대가 다 도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 수풀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은 것 같습니다. 

본문 8절에 ‘수풀에서 죽은 사람이 칼에 죽은 자보다 더 많다’고 했습니다. 칼에 죽은 자가 이만 명인데, 그들보다 더 많은 숫자가 수풀에서 죽은 것입니다. 다윗 군이 포위작전을 하니 많은자가 죽었고 마침내 다윗의 군대가 이기게 된 것입니다. 압살롬의 군대는 패하고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3. 압살롬의 최후

자랑하지 말 것

본문 9절에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 나간지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이 건장한 짐승인 노새를 타고 싸움터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패전하여 도망하다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게 되었고 상수리나무 아래로 달아나다 압살롬의 머리털이 나무 가지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새는 빠져 달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렇게 신기합니다. 상수리나무는 우리나라의 도토리나무입니다. 그 나무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걸린 것입니다. 압살롬의 머리털이 많기로 유명했고 그것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머리털이 좋지 않았으면 나무에 매달리지 않았을 터인데 머리털 자랑하다가 머리털로 죽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나 자랑하면 자랑하는 것으로 걸릴 날이 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무엇 잘한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자랑하다가 자랑하는 것으로 걸릴 날이 오게 됩니다. 자랑할 것은 예수 밖에 없습니다. 헤엄 잘 친다 하면 물에 빠져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랑하는 것 때문에 자기가 걸려 매어달릴 날이 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압살롬이 자기 아버지를 대항하여 싸우려 하고 죽이려 하니 이런 상황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렇게 이끄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만사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안 되는 길로만 가게 됩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을 만난 것도 안 되는 길로 가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믿음으로 나가지 않고 의롭게 굴지 않고 사랑으로, 선으로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아무리 군사가 많고 힘이 강해도 꼼짝 못합니다. 자랑하는 것, 의지하는 것 때문에 반드시 걸려 매달릴 날이 옵니다. 그것 때문에 걸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되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언제나 겸손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7절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혼자 나가서 골리앗 대장을 물리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그 신앙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대장을 쳐부순 그 신앙을 가지고 압살롬과 싸웠는데 하나님께서 악한 압살롬을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리게 만드시고 노새는 빠져 나가게 만드시고 그로 나무에 매어 달리게 만드셨습니다.

본문 10-13절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찌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 생명을 해하였더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매어 달렸다고 요압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요압에게 왕의 아들을 죽일 수 없어 압살롬을 살려 두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압살롬의 죽음

본문 14-15절에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군대장관 요압이 압살롬을 쳐 죽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처단하시니 전쟁이 그치고 나라가 원상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악을 벌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악한 자를 반드시 벌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아버지를 대적하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나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런 악한 자를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윗이 일시적으로 피난을 갔지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설 때에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다시 세워주시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