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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5일 화요일

마태복음 9:9-38 죄인을 부르시고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시러 오신 예수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죄인을 부르시고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시러 오신 예수님
마태복음 9:9-38

9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10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4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19예수께서 일어나 따라 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23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24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25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
더라 27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30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31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32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34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35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37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1. 마태를 부르심 (9-13)

세리 마태가 예수님을 좇음

본문 9절에,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셨습니다.
마태는 세금을 받는 세관 직원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고 “나를 좇으라”하시니, 마태가 세관자리 다 집어치우고, 말하자면 사표를 내고 예수님을 즉시로 좇아왔습니다. 요즘에 세무서 취직하려면 힘들지 않습니까? 마태가 세무서 직원인데 월급도 괜찮을 것이고..., 마태가 세무서 일 잘했을 것 같습니까?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했는데 그것을 보면 착실한 사람입니다. 세무서 일도 잘 보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보시고 “나를 좇으라”고 하시니까, 벌떡 일어나서 다 집어치우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예수님을 좇는 것에는 이만큼 힘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못합니다, 세금 받을 것이 많습니다, 계산하려면 며칠 걸립니다, 이런 것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나를 좇으라” 하실 때에 “예!”하고 즉시 좇았습니다. 세관 일이야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가 일어나서 즉시 예수님을 좇아갔는데, 10절에 보면 예수님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본문 10-11절에,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참으로 영접한 다음에는 예수님께 대접할 마음이 생기고, 예수님께 바칠 마음이 생기고, 예수님께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대접했고, 그 자리에 세리 친구들도 많이 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고 비방을 했습니다.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며 비방하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본문 12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의사가 아무리 깨끗한 사람이지만,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쓸 데가 없습니다. 병든 사람
에게 의사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 의인이 오면, 그 사람은 건강하니까 예수님이 필요가 없습니다. 죄인이 오면, 그 사람은 병신이고 병난 사람이니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부르셔서 구원해 주시려고 오셨고, 병난 사람을 부르셔서 고쳐주시러 오셨고, 반신불수를 부르셔서 온전케 하시려고 오셨고, 약한 자를 부르셔서 강하게 하시려고 오셨고, 모든 병자를 부르셔서 온전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다.’ 병든 사람에게만 의원이 필요한 것처럼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말씀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 앞에 나올 때에는 무엇을 가지고 오면 됩니까? 죄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나는 건강합니다.” 이런 것은 필요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나는 이레에 두 번 씩 금식을 하고, 세리와 같지 아니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이렇게 잘 했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눅 18:10-12),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알고 감사하다고 하는 그런 것은 필요 없습니다. 세리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이렇게 기도하니까 오히려 세리가 은혜를 많이 받고 바리새인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앞에 나올 때에는 죄를 갖고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죄가 없으면 어떻게 나옵니까? 죄를 가지고 나오라고 했으니까 죄를 좀 짓고 나옵니까? 자기 죄가 있는 줄 모르는 것은 어두워서 모르는 것입니다. 밝아지면 점점 더 죄가 드러납니다. 어두워서 캄캄할 때에는 무엇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점점 밝아질수록 죄가 점점 더 발견이 됩니다.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수록 죄가 발견이 됩니다. 모세가 40년간 미디안에 가서 회개하는데, 그 때에 “네 발에 신을 벗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3:5). 40년간 죄를 벗어버렸는데, 이제야 조금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40년 죄를 벗어버리고서야 조금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몇 년간 죄를 벗었습니까? 어떤 사람은 죄를 벗어버리다가 방학을 많이 합니다. 일년 방학하는 사람, 오년, 십년동안 방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죄를 좀 벗어버리다가, 그 다음엔 좀 쉬고 방학해놓고, 죄 안 벗어버리고 계속 죄를 따라갑니다. 껍데기만 교회당 왔다 갔다 하고, 죄하고는 상관이 없이 나갑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고, 계속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매일 죄를 벗어버리고, 매일 되지못한 것을 발견하고, 매일 회개해야 합니다.

죄가 무엇인가?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과,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 죄입니다.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 죄인데, 다들 만점 맞도록 순종했습니까? 우리의 몸과 생명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완전히 바치지 못했으면 그것도 죄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마음대로 사용했으면 그것이 죄입니다. 몸과 마음과 영, 전체가 하나님의 것인데 이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세상물질주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자기 명예 영광주의, 돈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다 죄입니다. 우리는 전적부패 했기 때문에 이 죄들을 다 내어버렸다고 해도 또 있습니다. 이것을 또 회개하고 내어버려도 또 있습니다. 전적부패이기 때문입니다. 또 회개하고 벗겨내어도 또 있습니다. 마치 양파껍데기 벗겨내는 것과 같습니다. 양파껍데기 하나 벗겨내면 껍데기 없습니까? 또 있습니다. 또 그 안에 있는 것을 벗겨내면 없습니까? 또 있습니다. 또 벗겨내면 없습니까? 또 있습니다. 또 벗기고, 또 벗기고 하다가 마지막엔 남는 것이 있습니까? 남는 것이 없습니다. 계속 껍데기가 또 남고, 껍데기가 또 남습니다. 계속 그 죄악의 껍데기를 벗겨 내버려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매일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나는 죄인의 괴수라”라고 했습니다(딤전 1:15). 사도바울이 얼마나 위대한 사도입니까? 그렇지만, “나는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합니다. 매일 자기의 부패성을 찾아서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올라가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나쁜 일한 것만 죄가 아니고 올라 가라고 하셨는데, 올라가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얼마나 올라갔습니까?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봉우리로 올라가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얼마만큼 올라가야 합니까? 예수님만큼 올라가야 합니다. 표준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만큼 못 올라갔으면 다 죄입니다. 표준에 미달되는 것이 죄가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표준에 도달했습니까? “예”, 해보십시오. 표준에 도달했습니까? 표준이 누구입니까? 견본이 나와 있는데, 예수님께서 표준이십니다. 그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죄입니다. 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또한, 사랑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또, 몸 바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우리 몸이 예수님이 값 주고 사신 몸인데, 그것이 자기의 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죄입니다. 이것이 도적질 한 죄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이기주의로 나가고, 그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얼마나 죄가 많은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러 오셨습니다. 자기가 병든 줄 알고, 죄인인 줄 알고, 잘못된 줄 알고 예수님께로 나오면 주님께서 영접해 주십니다. 그러나 자기 죄는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죄만 생각하면, 그런 사람은 예수님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 죄만 가지고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죄만 가지고 나와서 회개하면 주님께서 영접해주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14-17)

본문 14-17절에,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나와서 “바리새인교인들은 금식을 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신랑은 예수님이십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라고 하십니다. 낡은 옷에 생베 조각을 붙이면 생베 조각이 강해서, 낡은 옷이 다 해어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옛날에는 포도주를 가죽 부대에다가 넣었습니다. 그런데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다가 넣어서 꽉 묶어 놔두면, 부대가 터집니다. 새 포도주는 자꾸 팽창하는 힘이 있습니다. 새 포도주는 자꾸만 불어나가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낡은 가죽부대에 잡아 묶어 놓았는데, 이것이 자꾸만 불어서 팽창해나가니까 부대가 터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대도 버리고, 새 포도주도 버리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포도주와 새 부대의 의미

새 포도주는 무엇입니까? 낡은 가죽 부대는 무엇입니까? 새 부대는 무엇입니까? 새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새 생명 운동입니다. 새 생명 운동이 새 포도주입니다. 가나안 혼인잔치에 가서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도, 예수님의 새 생명 운동을 상징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새 생명 운동을 갖다가 낡은 가죽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터집니다. 새 포도주가 자꾸 팽창하여 불어나가기 때문입니다. 낡은 가죽부대가 힘이 없으니까 탁 터져나가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부대도 버리고 새 포도주도 버리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낡은 가죽부대는 의식주의입니다. 바리새교인들의 의식주의를 가리킵니다. 로마서 7:6에 보면,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하셨는데, 의문이라는 것은 구약의 제도입니다. 낡은 가죽부대는 구약의 제도와 의문입니다.
새 포도주는 영의 새 생명 운동입니다. 이 영의 새 생명운동은 계속 불어나갑니다. 계속 커나가고 팽창해 나갑니다. 그런데 ‘의문의 묵은 것’은 낡은 가죽부대인데, 그것에 잡아둘 수가 없습니다. 의문의 묵은 것에 얽매일 수가 없습니다. 계속 불어나가니까 터트리고 나가게 됩니다. 결국 둘 다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부대는 무엇입니까? 새 부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생명 운동, 예수님께서 하시는 새 생명운동은 새 포도주이고, 새 부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새 생명운동이 일어나야 하고, 말씀을 떠나면 안 됩니다. 부대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새로운 신약의 계시, 이 성경말씀, 이것이 새 부대입니다. 구약의 의문과 제도, 의식은 낡은 가죽 부대입니다. 이레에 두 번 금식하는 것도 낡은 가죽 부대입니다. 우리는 새 포도주 운동, 새 생명운동에 가입이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새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새 생명운동, 새 포도주 운동, 점점 불어나가서 팽창하는 운동입니다. 새 생명운동은 가두어 놓을 수 없습니다. 낡은 부대에는 가둘 수가 없습니다. 다 터트려서 둘 다 버립니다. 새 부대는 계속 늘어나갑니다. 

새 부대라는 것은 신약의 새로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이 새 부대인데 이러한 새 부대에 넣는 새 생명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새 부대는 진리이고 말씀인데, 진리의 말씀만이 새 부대입니다. 진리에다가 다른 것을 섞어 놓으면 안 됩니다. 새 부대에 다른 것을 섞어놓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 말씀에 새 생명운동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만 갖고 나가도 생명이 없으면 안 되고, 생명의 역사가 있어도 말씀하고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씀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새 생명의 역사는 말씀 속에 들어가야 되고, 말씀 속에서 새 생명의 역사가 보존이 되어야 합니다. 둘이 함께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구멍을 뚫어도 안 되고, 다른 것을 넣어도 안 되고, 다른 것을 기워도 안 됩니다. 말씀 그대로만 보존해야 합니다. 

의식주의는, 낡은 가죽부대이기 때문에 거기에 새 생명운동을 넣어놓으면 다 터지고 맙니다. 새 생명운동은 새 가죽부대인 새로운 진리,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일어나야만 새 포도주 운동이 잘 됩니다. 포도주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부대도 중요합니다. 부대가 터지면 포도주 다 내버리기 때문입니다. 

부대에 구멍 뚫어져도, 포도주가 다 새어나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구멍을 뚫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전하지 못하고, 거기에다가 다른 것을 섞고 하면, 새 생명운동이 보전이 안 됩니다. 새 생명운동이 보전되려면 말씀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부대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부대가 바로 되려면, 말씀을 바로 보전해야 합니다. 마귀가 이것을 알고 어떻게 하든지 이 부대를 공격합니다. 이 부대에 구멍도 뚫어놓고, 다른 것을 가져다가 붙여놓고, 변질을 시키는데 이런 것들이 마귀역사 입니다.
신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고, 성경 번역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번역하지 않고 인간의 뜻대로 번역을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다 부대에 구멍이 뚫어지게 하는 것이고, 그 부대를 썩게 만드는 것이고, 그리로 포도주가 다 새어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생명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생명운동을 보전하려면 이 부대를 잘 보전하여야만 생명운동이 보전됩니다. 이 진리를 변질시키려고 하는 것, 성경을 변경하려고 하는 것, 원문의 뜻에서 어긋나게 해석하는 것들을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요새 성경 번역하는 것들이 잘못 나오는 것이 많고, 표준 새 번역 성경은 신신학, 기독교 사회주의, 인본주의, 전부 성경을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있는 사람이 자기의 것을 ‘나누어 준’ 것을, 표준 새 번역에서는 ‘나누어 가지니’라고 했습니다. 나누어 가지는 것은 유무상통, 공산주의 사상입니다. 그대로 두다가는 교회들을 다 망칩니다.
포도주를 다 쏟아 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표준 새 번역 성경의 신신학적이고 사회주의적이고 기독교 진화론적이고 인본주의 적인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것을 막느라고 우리가 성경공회를 하고 있습니다.

새 포도주, 새 생명의 역사가 있어서 계속 생명의 역사가 늘어나야 합니다. 팽창하고 역사가 커져야 합니다. 자라나야 합니다. 많아져야 합니다. 확장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역사 없이 의식주의만 가지고 나가는 것은 생명의 역사가 아닙니다. 의식주의, 이것은 낡은 가죽 부대입니다. 우리는 새 포도주의 역사, 변화의 역사, 생명의 역사, 커지는 역사, 많아지는 역사, 요한복음 2장에 보면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고 했는데 맛이 변화되는 역사, 용도가 변화되는 역사, 물이 포도주가 된 것 같이 가치가 변화되는 역사,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하시려고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새 포도주의 역사를 하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새 부대에다가 새 포도주를 넣으시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도 그것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해나가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생명의 역사가 다 말라서 빠지고, 부대는 있지만 부대도 구멍이 뚫어지고, 그 안에는 새 포도주가 아닌 묵은 포도주가 있고, 이렇게 다 시들어지고 생명이 없습니다. 이제는 부대로 구멍 안 뚫어지고 썩지 않은 새 부대, 포도주도 새 포도주를 넣어가지고 자꾸 늘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새 포도주 운동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진리가 잘못된 데에 넣으면 안 됩니다. 성경이 잘못된 데를 따라가면 거기는 헌 부대입니다. 구멍이 뚫어진 부대에 가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에 새 부대의 역사, 변화되는 역사, 점점 퍼지는 역사, 점점 맛이 달콤해지는 역사, 점점 가치가 있어지는 역사, 이러한 새 생명의 역사에 우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 일을 하십니다.

3. 예수께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심 (18-38)

혈루증을 고치심

본문 18-22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 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피가 계속 흐르는데,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겉옷만 만져도 낫겠다’하는 믿음으로 와서 예수님의 옷을 만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이켜 보시면서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그 시로 여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낫겠다는 신앙, 고쳐주시려 하는 예수님의 마음, 이 두 가지가 맞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하고, 낫겠다하는 믿음이 함께 맞아야 합니다. 열 두 해 혈루증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낫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만능이십니다. 열 두 해가 아니라, 스물 두 해가 되었다고 해도 나을 수 있고, 마흔 두 해가 되었다고 해도 나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면 다 나을 수 있습니다.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오면 나을 수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본문 23-26절에,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5:38-39에,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고 하셨는데, 여기서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니까 무리가 비웃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내어보내시고 죽은 소녀의 손을 잡으시니까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시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만능이기 때문에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그 소문이 다 퍼졌습니다. 

소경과 벙어리를 고치심

본문 27-31절에,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실 때에 소경들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시니까 소경들이 나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소경들이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 했습니다. “믿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눈을 만지시면서 “너희 믿음대로 되라”하시니까 즉시로 그 눈들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엄히 경계하시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때가 이르기 전에 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업은 십자가로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성하기 전에는 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해놓으면 방해가 많이 들어옵니다. 

본문 32-34절에,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때가 없다 하되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고 하셨습니다.
귀신 들려서 벙어리가 된 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벙어리를 말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무리가 기이히 여기면서 이렇게 한 것을 본적이 없다고 하니까 바리새교인들이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서, 귀신의 왕을 빙자해서 그렇게 하였다고 악평을 했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악평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일꾼 보내 주기를 기도하라

본문 35절에,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천국복음을 받으면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심령의 병, 심령의 약한 것도 천국복음을 받을 때에 예수님께서 고쳐주십니다. 

본문 36-38절에,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무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무리가 바른 목자를 만나지 못해서 고생하며 유리하는 가운데 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 무리들을 인도할 일꾼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갈팡질팡하면서 갈 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보낼 일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라고 간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꾼을 보내어 달라는 기도, 간구를 해야 합니다. 우리 신학교에서 일꾼을 세워서 바른 일꾼을 보내는 그러한 일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기도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