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를 삼가고 세 가지를 행하라(三愼三行)
빌립보서 3:1-3
빌립보서 3:1-3
1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3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3:1 마지막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해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롭지 않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다.
3:2 개들을 주의하고, 악행 하는 자들을 주의하며, 거짓 할례자들을 주의하여라.
3:3 이는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참 할례자들이기 때문이다.
3:2 개들을 주의하고, 악행 하는 자들을 주의하며, 거짓 할례자들을 주의하여라.
3:3 이는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참 할례자들이기 때문이다.
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생활
본문 1절에,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했습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란 이젠 종말로 권면한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은 바울이 여러 번 했던 말입니다. 빌립보서 2장 18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7절에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빌립보서에서는 기뻐하라는 말이 18번 있습니다. 이 짧은 성경에 기뻐하라는 말이 제일 많이 있습니다.
또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했는데,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옥중에서 기록을 하면서 ‘나와 함께 기뻐하라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한 것을 보면 바울이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영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 항상 기쁩니다. 영적 세계에서 살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영적 세계는 기쁨이 충만한 세계이고, 빛의 세계이고, 생명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생활, 신령한 세계에서 주와 동행하는 생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사는 생활 속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빠져서 살면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초월해서 신령한 세계의 길을 걸으면 이 세상의 어떤 환난과 고통이 많아도 항상 기쁨으로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이 땅 위를 걸어가려면 강도 있고, 산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습니다.
또 비도 오고, 눈도 옵니다. 그러나 구름 위로 비행기를 타고 가면 하나도 걸리는 것이 없고, 가리는 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신령한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이 세상 여러 가지 우여곡절 많이 있지만, 거기에 장애를 받지 않고 항상 기쁨으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언제나 영적 세계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2. 반복하여 가르침으로 신앙의 체계에 굳게 서도록 할 것
그 다음에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했습니다.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란 바울이 같은 말을 또 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리 말했지만 같은 말 또 쓴다는 것이고, 또 전에 말해줬지만 같은 말을 또 쓴다는 것이며, 전에 바울이 빌립보에 갔을 때에 말해준 바가 있지만 지금 또 쓴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기록한 바가 있지만 지금 또 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어서 말하고 있는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삼가고, 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나가는 것에 대하여, 전에도 말한 바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빌립보서 1장 28절에,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전에 말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적하는 자가 많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나가라’고 자주자주 말한다는 겁니다. 바울은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자주자주 말합니다. ‘그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했습니다.
같은 요긴한 것을 반복해서 말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말해주는 것이 너희에게 안전하다는 것’은 너희의 신앙이 안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신앙이 안전해진다는 걸 생각할 때에 수고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긴한 것을 반복해서 가르쳐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세 가지를 반복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양심을 똑바로 써라, 일심정력하라, 삼가조심하라’는 말을 늘 해줬는데, 그 요긴한 것을 반복해서 자주 말해줬기 때문에 김 목사님한테 배운 사람은 보통 다 양심을 쓰고자 합니다. 그러나 삼가 조심은 잘 못하는 거 같습니다. 또 일심정력하는 것도 별로 볼 수 없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해줬지만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안 들은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래서 요긴한 것을 반복해서 자주자주 말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하지 말고, 벏은 진리의 세계의 다른 면을 또 충분하게 말해줘야 됩니다. 구원관, 하나님에 대한 신관, 예정론, 교회관, 천년왕국에 대한 것, 내세에 대한 것, 또 인간론, 조직신학에 대한 넓은 세계를 말해줘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넓게 여러 면을 다 아는 동시에 요긴한 것은 자주자주 말해서 그 요긴한 것이 성도들의 신앙에 굳게 서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긴한 것을 자주자주 말해주지 않고, 그저 한 번 말하고 지나가고 말면, 교인들이 신앙의 체
계가 서질 않습니다. 신앙의 체계가 서지 않기 때문에 자기 설 자리도 모르고, 노선도 없고 방향도 없이 그저 가다가, 그 다음엔 미혹을 받고 곁길로 걸어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교인들의 신앙에 체계가 서야 어디 갖다 내다 놓아도 자기 설 자리가 있고 자기 갈 길을 압니다. 체계가 서 있질 못하면 태평양 바다에 던져 놓았을 때, 갈 방향을 모르고, 그저 아무데로 가다가 큰 고기들한테 잡혀 먹히고 맙니다. 그러니까 자주자주 요긴한 것을 가르쳐서 신앙의 체계가 서도록 하는 것이 교인들에게 안전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교인들에게는 안전하게 신앙 안에서 잘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반복하여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계가 서야 되겠습니다. 체계가 안 선 사람은 아무 교회에 나가도 배우는 것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다른 걸 가르치는데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데 신신학과 합작하는 곳이 있어도, 분별하지 못하고 그것이 우리가 배운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속에 체계가 안 서 있기 때문에 분간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주자주 요긴한 것을 반복해서 가르칠 필요가 있고, 또 그 몇 가지만 밤낮 가르치지 말고, 또 광범위한 성경의 여러 면을 다 가르쳐야,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모든 걸 바로 분별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만 가르쳐 놓으면 그 다음엔 그것 밖에 모르고 다른 것을 모르니까 갈 길을 모릅니다. 여러 면을 다 가르쳐서 모든 걸 분별할 줄 알고 또 모든 것을 같이 평가할 줄 알고 뭐가 잘못된 줄 알아야 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야 된단 말입니다.
여러 면을 가르치는 동시에 요긴한 것을 자주자주 반복해서 가르쳐야 됩니다.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는 겁니다. 이사야 28장 9절~10절에,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향해서 비방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뭐 젖 떨어진 아이냐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라고 비방했습니다. 요긴한 것을 이사야가 계속 반복했지만 비방만 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이사야가 안타까워서 그랬겠습니까? 요긴한 것을 꼭 이대로 해야겠는데 듣지 않으니까, 그래서 또 하고, 안 들으면 또 하고 또 하고 한 것인데, 그게 비방거리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반복해서 가르치더라도 교인들이 바로 서는 게 중요합니다.
3. 삼신 삼행(三愼 三行)
세 가지를 삼가라(三愼)
세 가지를 삼가라(三愼)
그 다음 본문 2절에,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말씀했는데 세 가지를 삼가라는 말입니다. 세 가지를 삼가야 하겠는데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했습니다.
1) 개들을 삼가라
이사야 56장 10-12절에 개에 대해서,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파수꾼이라는 건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선지자, 교역자 이런 사람들이 파수꾼입니다. 그 파수꾼들은 다 뭐라고 했습니까? ‘소경이요,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또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
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하는 이런 것이 개라고 했습니다. 소경이요, 벙어리개요, 짖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소경이라는 건 죄를 보지 못한다는 뜻이고, 벙어리 개라는 건 죄를 책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도적이 오는데 가만히 있습니다. 도적이 온다고 짖어야 되겠는데 부르짖어야 되겠는데 교역자들이 죄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면서 좋은 말만 해주는 겁니다. 또 사람들이 좋은 말해주는 걸 좋아합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좋으신 하나님만 소개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복 준다, 우리를 사랑한다, 또 복 받는다, 뭘 해준다, 좋으신 하나님, 이거만 계속 말해줘야 교인들이 많이 모인다는 겁니다. 듣기 싫은 소리, 죄 소리 하면 그건 좋아하지 않으니까 죄 소리 하지 않는답니다. 죄 소리 1년에 한 번도 안 하고, 그저 좋으신 하나님만 말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교인들이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게 벙어리 개인 줄 알아야 합니다. 당장에 도둑이 와서 양떼를 물어 가는데 개가 짖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당장 맹장염이 걸려서 터지게 됐는데 괜찮다고 아무 일 없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병 났다, 째야 된다, 수술해야 된다’ 이렇게 해야 되겠는데 좋은 것만 자꾸 말해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교역자들이 소경이 되고, 죄를 바로 볼 줄 모르고, 시대를 분별할 줄 모르고, 벙어리 되고, 미리 짖지 못합니다.
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하는 이런 것이 개라고 했습니다. 소경이요, 벙어리개요, 짖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소경이라는 건 죄를 보지 못한다는 뜻이고, 벙어리 개라는 건 죄를 책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도적이 오는데 가만히 있습니다. 도적이 온다고 짖어야 되겠는데 부르짖어야 되겠는데 교역자들이 죄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면서 좋은 말만 해주는 겁니다. 또 사람들이 좋은 말해주는 걸 좋아합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좋으신 하나님만 소개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복 준다, 우리를 사랑한다, 또 복 받는다, 뭘 해준다, 좋으신 하나님, 이거만 계속 말해줘야 교인들이 많이 모인다는 겁니다. 듣기 싫은 소리, 죄 소리 하면 그건 좋아하지 않으니까 죄 소리 하지 않는답니다. 죄 소리 1년에 한 번도 안 하고, 그저 좋으신 하나님만 말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교인들이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게 벙어리 개인 줄 알아야 합니다. 당장에 도둑이 와서 양떼를 물어 가는데 개가 짖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당장 맹장염이 걸려서 터지게 됐는데 괜찮다고 아무 일 없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병 났다, 째야 된다, 수술해야 된다’ 이렇게 해야 되겠는데 좋은 것만 자꾸 말해주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교역자들이 소경이 되고, 죄를 바로 볼 줄 모르고, 시대를 분별할 줄 모르고, 벙어리 되고, 미리 짖지 못합니다.
또 ‘꿈꾸는 자여, 누운 자여,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라고 했는데 꿈꾸는 자라는 건 세상주의로 나간다, 잠자기를 좋아한다, 영적 신앙의 잠자기를 좋아한단 말입니다. 신앙의 잠이 깊이 들었다는 겁니다.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로 알지 못하고 탐욕이 심합니다. 탐욕주의로 나가고 또 자기 길로 간다고 했습니다.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자기 볼 장만 보고, 포도주를 먹고 독주도 먹고 이렇게 세상주의에 도취되어 나가는 사람들이 파수꾼이란 말입니다. 이런 파수꾼은 개라는 말입니다. 개들을 삼가라고 하였는데, 개들을 삼가지 못하여 그런 교역자에게 한 번 걸려놓으면 그만 다 빼앗기고 맙니다. 자기 구원을 이루어나갈 수도 없고 모든 걸 다 빼앗기고 관둡니다.
2)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
교역자 가운데 행악하는 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기꾼, 강도들, 도적 이런 목사도 많습니다.
3) 손할례당을 삼가라
손할례당은 율법주의자들인데, 율법을 행하고 특별히 할례를 주장하면서 남에게 손해를 주는 자들입니다. 신앙에 손해를 주며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는다, 할례 안 받으면 구원 못 받는다’고 하면서 할례를 주장하면서 남의 신앙에 손해만 줍니다. 그래서 손할례당을 삼가라는 겁니다. 율법주의자들이 남의 신앙에 손해를 주니까 손할례당이라고 했습니다. 또 폐법주의자가 있는데 폐법주의자들은 ‘율법은 필요 없다, 이젠 믿음으로 구원 다 받아놨는데 율법이 무슨 필요 있느냐, 다 집어치워라,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도 손해주는 사람입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은 할례를 주장하면서 손해를 주고, ‘율법이 필요 없다 이제는 율법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사람은 율법을 폐하면서 손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삼가라는 겁니다. 삼가지 아니하면 까딱하면 걸려들어 신앙의 손해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를 행하라(三行)
본문 3절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참된 할례당, 즉 참된 믿음은 어떤 신앙이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가 곧 할례당이라’고 했습니다. 할례의 뜻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정욕을 제거한다는 뜻이 있고, 둘째는 약속의 표고, 셋째는 하나님께 속한다는 이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4장 4절에는 정욕을 제거한다고 했습니다. ‘정욕을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한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약속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할례에 참여하라고 했습니다.
할례는 약속의 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했다는 표로써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뜻이 세 가지인데 이 세 가지의 참 뜻이 여기 다 나왔습니다. 3절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라고 그랬죠?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한다는 건 하나님께 속한 것이 분명하다는 말입니다.
성령으로 봉사하는 게 하나님께 속한 거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자랑한다’는 건 언약에 참여한 표란 말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한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언약에 참으로 참여한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했습니다. 그 다음엔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욕을 제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적 할례, 육신적으로 양피 끝을 베어 버린 것이 참된 할례가 아니라 할례의 근본정신을 실행하는 사람이 참된 할례를 한 것입니다.
참 할례의 근본정신은 세 가지인데, 언약에 참여하고 정욕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성령으로 봉사합니다. 또 참으로 언약에 참여한 사람은 언약의 중심이 그리스도니까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정욕을 제거한 사람은 육체를 의지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할례의 근본정신은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할례의 근본정신에 참여한 사람인데 외적 할례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할례의 근본정신이 중요하니까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참여한 사람이다,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이다, 영적 할례 받은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1) 성령으로 봉사하라
그러면 영적으로 하나님께 바로 되려면 무엇으로 봉사해야 됩니까? 성령으로 봉사해야만 바로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서 성령으로 봉사한다는 건 예배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찾는다고 했는데 성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되고 진정으로 드려야 된단 말입니다. 그게 참된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고 그랬죠? 신령이란 성령으로 드리는 것인데 우리 중생한 영혼이 성령을 힘입어서 성령으로 드리는 거고, 진정이라는 말은 진리라는 말입니다. 헬라 원문에 보면 진리라는 말하고 진정이라는 말하고 같은 ‘알레테이아’인데 헬라어 ‘알레테이아’라는 말은 진리라는 말입니다. 그걸 진정이라고 또 번역을 한 겁니다. 그래서 진리나 진정이나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에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또 성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는데 성령을 힘입어서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참된 예배가 됩니다. 그러면 말씀으로 드리는 건 어떻게 드리는 것인가? 말씀으로 드리는 것은 성경 말씀을 배워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겁니다. 복종하며 드리라는 겁니다. 못한 거 회개하고 중심으로 복종하면서 예배드리는 것이 진리로 예배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을 힘입어서 성경 말씀을 복종하면서 예배를 드려라 이것이 참 예배라는 겁니다. 성령으로 봉사한다는 건 성령으로 예배한다는 말인데 성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서 성령으로 봉사한다는 건 예배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찾는다고 했는데 성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되고 진정으로 드려야 된단 말입니다. 그게 참된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고 그랬죠? 신령이란 성령으로 드리는 것인데 우리 중생한 영혼이 성령을 힘입어서 성령으로 드리는 거고, 진정이라는 말은 진리라는 말입니다. 헬라 원문에 보면 진리라는 말하고 진정이라는 말하고 같은 ‘알레테이아’인데 헬라어 ‘알레테이아’라는 말은 진리라는 말입니다. 그걸 진정이라고 또 번역을 한 겁니다. 그래서 진리나 진정이나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에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또 성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하는데 성령을 힘입어서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참된 예배가 됩니다. 그러면 말씀으로 드리는 건 어떻게 드리는 것인가? 말씀으로 드리는 것은 성경 말씀을 배워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겁니다. 복종하며 드리라는 겁니다. 못한 거 회개하고 중심으로 복종하면서 예배드리는 것이 진리로 예배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을 힘입어서 성경 말씀을 복종하면서 예배를 드려라 이것이 참 예배라는 겁니다. 성령으로 봉사한다는 건 성령으로 예배한다는 말인데 성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한다는 건, 진리의 중심이 그리스도니까 그리스도로 예배를 드린다, 자랑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즐거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중심이 그리스도 아닙니까? 예수님을 좋아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즐거워하고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 성령은 예수님에 대해서 더 자세히 가르쳐주는 성령입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바로 믿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자랑한다는 말에는 모든 진리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라는 겁니다.
3)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
그리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 육체는 육체의 정욕을 제거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육체의 정욕을 제거하면서 육체의 것은 다 신뢰하지 않으면서 다 떠나면서, 영으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예배드리는 것이야 말로 참된 예배입니다. 또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 가운데 정욕을 제거한다는 뜻도 있지만, 육체의 신뢰할 것들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본문 5-6절에,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들이 다 육체를 신뢰할 것들인데 과거에는 이런 육체의 것을 자랑하고 신뢰했지만 이제는 이런 것들을 전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반이다, 8일 만에 할례 받았다, 베냐민 지파다, 또 히브리 사람이다, 이런 육체의 것은 떠나는 것입니다. 베냐민의 지파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 요새로 말하면 ‘난 어디 사람이다 어느 지방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지역주의 다 없어져야 합니다. 지역주의는 예수님을 믿는데에 방해물입니다. 그건 육체를 신뢰하는 겁니다. 자기 지방 사람들 끼리끼리 모이는 지방 사상, 그건 분명히 육체를 신뢰하는 건데, 그건 영적 신앙하곤 반대입니다. 성령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사람이 지방으로 기울어지면 벌써 그건 다 끝난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지방주의에 절대 빠지면 안 됩니다. 투표할 때도 자기 지방 사람만 많이 투표해준다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하면 그건 다 육체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런 것에서 떠나야 됩니다. 또한 학벌주의에서 떠나야 합니다. ‘나 어디 나왔다, 서울대학 나왔다’, 서울대학이 천당 가는데 무슨 상관있습니까? 괜히 육체 것 자랑하려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떠나야 합니다. 또, 예를 들어, ‘경주 김가다’라고 하는데 경주 김가가 예수 믿고 천당 가는데 무슨 상관있습니까? 전주 이가다, 또 유씨도 양반 무슨 유가다, 이런 양반주의도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양반은 무슨 양반입니까? 그건 육체를 신뢰하는 겁니다. 양반이 육체를 자랑하는 바람에 예수님을 잘 안 믿습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이지, 육체 신뢰하는 것은 참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에다가 찌꺼기 끼워가지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찌꺼기들, 배설물입니다. 믿음은 금과 같은 것인데, 육체를 신뢰하는 것은 변소 간에 가서 배설물을 퍼다가 금 옆에 좀 담아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금과 같은 금 그릇을 만들어 놨는데 배설물 한 사발 옆에다 가지고 다니면 그것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육체 것을 가지고 오면 배설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배설물을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다 떼 내버리라는 말입니다.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가 곧 참된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신앙에 서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