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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7일 수요일

누가복음 20:1-8 예수님의 교권문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의 교권문제
누가복음 20:1-8

1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대답하여 가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5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저희가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대답하되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권세가 어디서 왔는지 물음

본문 1-2절에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 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유대나라 최고의 지도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또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여기서 ‘이런 일’이란 성전을 정결케 한 일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서 호산나 찬송을 받으셨는데(눅 19:38), 그 일에 대하여 이 사람들이 몹시 격분했습니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의 권세는 유대국가 최고의 기관인 유대교에서 줍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이 그러한 권세를 준 일이 없는데 예수님이 무슨 권세를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지, 또 그런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인지 되물으심

본문 3-4절에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말을 저희에게 물으신 것인데,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이 질문에 대답하면 예수님께서도 말해준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5-6절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저희가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예수께서 “왜 자신을 믿지 않느냐”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먼저 계신 자인데,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정결케 할 자이다.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밝히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이 “세례 요한이 하늘로서 왔다”라고 대답하면, 예수님께서 요한의 증거 한 말을 왜 안 믿느냐고 할 것이라는 겁니다. 즉, 그들은 세례 요한이 하늘로서 왔다고 하면 왜 요한이 증거한 그리스도를 안 믿느냐고 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또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들이 돌로 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로 인정을 하며, 세례 요한이 하늘로부터 와서 세례 베푼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람에게로부터 왔다고 하면 백성들이 돌로 칠까봐 두려워서 그들은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는 가운데 빠졌습니다. 

양심을 쓰지 않고 성경대로 하지 않은 자들

양심을 쓰면 되겠는데 그들이 양심을 쓰지 않았습니다. 양심을 썼다면 하늘로서 왔다고 답변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하늘로서 와서 예수님을 증거 한 것을 세상이 다 아는데, 양심대로라면 자기들도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습니다”라고 답변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하늘로서 와서 증거 했다고 하면 그 다음은 “그 말을 믿어라” 그럴 것이 아닙니까? 그 말을 믿으려면 누구를 믿어야 되게 되어있습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처음에는 몰랐어도 사람이 양심을 쓰고 성경대로 하려고 힘을 쓰면 하나님이 바로 인도해 주십니다. 양심을 쓰면 살 길이 생깁니다. 그러나 양심을 안 쓰고 성경 말씀대로 하려고 힘을 쓰지 아니하면 희망이 없습니다. 점점 더 마귀에게 끌려가고 오리무중(五里霧中)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확실히 서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아니면 끊어버려야 합니다. 말씀이 아니면 “아니다”라고 단정을 지어야 하는데, 말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지근하게 나아가다가는 반드시 마귀에게 끌리어 갑니다.

손톱으로 할퀴어 사람의 병을 고친다는 곳이 있는데, 그런 것이 성경에 있습니까? 손톱으로 할퀴어서 사람 몸에 상처를 내어 병을 고친다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까? 성경에 없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하는 것이 마귀의 짓인 줄 알면 됩니다. 아무 짓을 해서라도 ‘병만 나으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갈 것 같으면 도적질을 해서라도 병원에 가서 병만 나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 아무 짓을 해서라도 목적만 달성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방법이 선해야 합니다. 방법도 성경에 맞아야 하고, 목적도 성경에 맞아야 합니다. 방법은 성경에 안 맞는데 목적만 성경에 맞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방법은 성경에 맞는데 목적이 성경에 안 맞으면 그것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면에서 다 성경에 맞아야만 합니다. 성경에 안 맞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양심을 쓰고, 성경에 굳게 서지 않으면 언제든지 마귀의 미혹을 받습니다. 사기횡령해서라도 예배당만 지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것이고, 구원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정당하게 모든 것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마귀에게 다 속는 것입니다.

포천에 할렐루야 기도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가면 병을 다 낫게 해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병이 낫는다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병이 나을 사람은 병이 나을 것이고, 병이 안 나을 사람은 죽습니다. 또 그곳의 물이 한국에서 제일 좋은 생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의 물을 검사했더니 불합격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생수라고 하면서 그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했다는데, 무슨 병이 낫겠습니까? 괜히 허튼 소리 하는 것입니다. 나을 병은 수돗물을 먹어도 낫습니다. 그런데 그
물 한 컵 마시고는 그 물이 병을 낫게 한 것이라고 하니 정신 나간사람들입니다. 예전에 박태선은 도라무통에 있는 물에 자기 손을 한 번 담그고서 축복해주면 그 물이 전부 생수가 되고 약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물로 아이들 헌데를 발라주면 다 낫는다는 것입니다. 도라무통
에 있는 물은 손 씻은 물인데 어떻게 헌데를 낫게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생수를 낸 박태선은 왜 죽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게 미신에 빠진 것입니다.
그리고 할렐루야 기도원에 누구나 가면 거저 먹여 준다고 합니다. 일하기 싫은 것들은 다 거기 모이게 됩니다. 사람 다 못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왜 거저 먹여 주느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돈이 어디서 생기냐고 하니까, 병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무조건 돈을 많이 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였는데, 병 고침을 받은 것도 거저 받은 것으로 해야 하는데 왜
돈을 많이 내라고 합니까? 이것은 안 받아야 될 것을 많이 받아서, 안 먹여도 될 사람들을 먹여 결국 사람들을 다 실업자로 만들고, 게으름뱅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미신에 빠지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병만 나으면 된다는 생각, 살인강도짓을 해서라도 병원에 가서 병만 고치면 된다는 것은 악한 생각이요, 악한 일입니다. 사람이 양심을 쓰고 성경 말씀에 바로서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면 “하늘에서 온다”고 하는 것이 양심 쓰는 것인데, 모른다고 한 것은 양심을 안 쓴 것입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경 말씀을 순종하고, 양심을 써야 희망이 있습니다. 사람이 좀 잘못 되었다고 해도 양심을 쓰면 바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른 곳에서 배웠어도 양심을 안 쓰고 성경 말씀에 굳게 서지 못하면, 마귀에게 끌려가고 마귀의 밥이 됩니다. 진리에 굳세게 서야 합니다. 말씀에 굳게 서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습니다. “네가 말씀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양심을 안 쓰는 것은 믿음이 파선한 것입니다. 파선한 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돌보아 주시겠습니까. 

양심 안 쓰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알게 해주시지 않음

본문 7절에 “대답하되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한다”는 답변이 바른 답변입니까? 양심을 안 썼습니다. 양심을 썼다면 “하늘에서로부터 왔다”고 해야 합니다. 그 대답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본문 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도 말하여 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양심 안 쓰는 너희에게는 말해 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말해 주어봤자 진주를 돼지에게, 보화를 개에게 던지는 것과 같기 때문에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 안 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알게 해주시지 않습니다. 양심을 써야 알게 해 주십니다. 양심을 안 쓰면 진리를 모릅니다. 아무리 배워도 모릅니다. 양심 안 쓰는 사람은 아무리 배워도 하나님이 알게 해주시지 않기 때문에 모릅니다. 디모데후서 3장 5절에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배워도 양심을 안 쓰므로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말씀에 굳게 서고 양심을 써야 진리를 깨닫게 해주심

그러므로 말씀에 굳게 서야 하고 양심을 써야 하나님께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양심 안 쓰는 사람은 몇 십 년 배워도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양심을 안 쓰는 사람, 말씀에 굳게 서지 않는 사람은 유혹에 빠집니다. 하와가 왜 유혹에 빠졌습니까? 말씀에 굳게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실과를 다 먹지 말라하더냐”고 마귀가 말할 때, 하와가 무엇이라고 답변했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실과는 먹을 수 있으나, 중앙에 있는 나무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고 답변했습니다. ‘만지지도 말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안하셨습니다. 안 했는데 갖다 붙였습니다. 그리고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죽을까”로 고쳐 놓았습니다.

말씀에 에누리를 했습니다. 확실한 말씀에 굳게 서지 못하고 말씀을 고쳤습니다. 말씀에 굳게 서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고치면 마귀에게 미혹을 받아서 멸망합니다. 반드시 망합니다. 말씀에 굳게 서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그 틈으로 마귀가 들어와서 멸망시킵니다.

2.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임

그러면, 예수님의 권세가 어디서 왔습니까? 하늘에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왕권(王權)을 가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 종교단체에서 준 권세를 가지고 일하는 것 밖에는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 하나님이 주신 영권,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오늘날 교회도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일해야 합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가 있는데 그 권세를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쓰면 점점 더 많아집니다. 점점 더 늘어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쓰지 않으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써서 그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생명을 살려나가야 합니다.
주일학교를 맡았으면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써서 그 권세의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열매가 맺히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열매가 맺히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간판만 내걸어 놓고, 교회에서 생활비나 받고 일은 제대로 못한다면, 다른 사람 할 것도 못하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국 열쇠를 잡고 자기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하나님의 권세를 써서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가지셨는데, 가시는 곳마다 열매가 맺히고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은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권세를 우리에게도 주셔서 당신의 일을 시키려고 하십니다. 그 권세를 쓰는 저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유년부도 맡아 놓으면 늘어나야 합니다. 피땀을 흘려서 전도하고, 심방을 해서 점점 늘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권세의 열매가 맺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