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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마태복음 26:1-29 성찬 예식을 시설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성찬 예식을 시설함
마태복음 26:1-29

1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3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4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6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9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1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14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17무교절의 첫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가라사대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19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20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23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함 (1-5)

본문 1-2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가 다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마음의 작정을 하고 있는 때인데,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입니다.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본문 3-5절에,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고 했습니다. 어떤 수단이든 거짓된 계획을 세워서라도 예수를 잡아 죽여야겠다고 서로 의논을 했습니다. 유월절에 많이 사람이 모였을 때 하면 백성들의 반발이 심할 염려가 있으니까 명절에는 말자고 했습니다.

2. 마리아가 예수님께 기름을 부음 (6-13)

본문 6-9절에,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으로 문둥병이 나은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였습니다. 한 여자가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그 여자를 향해서 분히 여기면서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했습니다.

요한복음 12:2-6에,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고 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어치의 나드 한 근이었다고 했습니다. 요즘 돈으로 (장정 하루 일한 값이 한 데나리온) 하루에 10만원을 번다고 하면 3000만원어치의 향유입니다. 그게 얼마나 많은 돈입니까? 제자들이 볼 때에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서 발까지 내려갔는데 제자들이 볼 때에는 그것을 허비한 것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분하게 여겼습니다. 아까운 돈을 허비한다고 분히 여기며 여자를 책망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 머리에 부었다고 했는데 요한복음에는 발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머리에 부은 것이 발까지 내려갔으리라 봅니다. 요한복음 12장에는 머리털로 발을 씻어드렸다고 했습니다(요 12:3). 제일 먼저 불평한 사람은 가룟 유다였습니다. 

요한복음 12:4에,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고 했습니다. 불평은 언제나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이 시작을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번져나갑니다. 마귀의 종이 먼저 불평을 합니다. 믿음이 없고 도적질하는 심리가 있고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그런 사람이
먼저 불평을 하고 그 불평이 다른 사람에게 번져나갑니다. 어느 때나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고 마귀 종노릇하는 사람에게서 먼저 불평이 시작이 되고 이것이 점점 다른 사람에게로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을 말했지만, 구제 사업으로 가져오면 자기가 빼돌리려고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도적질 하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려고 이런 악한 말을 했습니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0절에,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허비한다며 분히 여기고 그 여자를 책망했습니다. 다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좋은 일한 것을 잘못했다고 하고, 신앙으로 볼 때에는 여자가 좋은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보는 관점하고 믿음 있는 사람이 보는 관점하고 다른 것입니다. 하는 일이 다 다릅니다. 

예수님하고 제자들하고 신앙의 정도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제자들의 신앙은 아직도 육에 속했고, 물질에 속했고, 세상에 속했고, 가난한 사람 구제하자고 하는 사업주의의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신앙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도 알고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자기의 가장 귀중한 머리털로 발을 닦는데까지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 예수님을 위해서 바치는 일, 사랑하는 일을 마리아는 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 구제하는 일, 기독교 사업주의를 첫째로 두고 그것이 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신앙은 예수를 위해서 바치는 것이 큰 줄 알았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 앞에 충성하고 희생봉사 하는 것을 큰 것으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신앙이 귀중한 줄을 아시고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회가 항상 있지 아니하니라

본문 11절에,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없는 시대가 없습니다. 천지가 있는 한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기회는 언제든지 있지만 예수님을 위하여 바치는 기회는 언제든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기회 지나가면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게 되면 예수님을 위해서 기름 부을 수 있습니까? 기회가 있을 때 예수님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기회 지나가면 못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주를 위하여 바치는 기회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기회도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을 열어 주었을 때 전도하고 문이 닫히면 못합니다. 여기 공산권을 전도하는 것도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 열어 주었을 때 해야 합니다. 소련이나 중국에 교회를 세우는 것도 하나님이 모처럼 70여년 만에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열어주셨을 때에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위해서 바칠 기회, 봉사할 기회, 충성할 기회를 주셨을 때 해야 합니다. 병나면 못합니다. 하나님이 건강 늘 주는 거 아닙니다. 얼마 안 있으면 다 데려가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 가기 전에 하나님이 건강 주셨을 때에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좀 있으면 못할 날이 옵니다. 아무리 하려고 해도 못할 날이 옵니다. 병났을 때는 낫기만 하면 주를 위해서 충성하겠다고 하지만, 데려간 다음에는 못하는 것입니다. 최유선 목사님이 병났을 때에 낫기만 하면 주를 위해 충성하겠다고 몇 번이나 맹세 하다시피 했는데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하나님이 데려가려고 작정하시면,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회 주셨을 때, 문이 열릴 때, 재산 좀 주셨을 때, 경제적인 힘이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다 없어지고 나면 할 수 없습니다. 늘 있는 거 아닙니다. 물질도 늘 있는 거 아니고, 얼마 있으면 다 걷어갈 날이 옵니다. 환경도 하나님께서 얼마 있으면 다 바꾸어 놓습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우리가 주를 위해서 충성하고 바칠 바를 바치고 봉사할 바를 봉사해야겠습니다.

십자가 구속에 대한 합당한 예물

요한복음 11:5에,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마르다와 함께 나사로(동생인지 오라비인지 알 수 없음, 동생으로 추정)를 데리고 셋이서 살았는데, 마리아가 삼백 데나리온어치의 향유를 구하려고 상당히 많은 노력을 했을 것 같습니다. 여자가 삼백 데나리온을 어디 가서 구하겠습니까? 요새로 말하면 3000만원인데 뭐든 팔 것을 팔고, 꾸어준 것 받을 건 받고 여러 방면으로 애써서 삼백 데나리온어치의 나드 한 근을 샀을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 머리에 갔다가 부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정성을 아십니다. 믿음도 알고 그 정성도 알고 왜 부었는지 그 목적도 아십니다.

왜 부었지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며칠 있으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겠는데 ‘무엇을 갖다 바쳐야 합당한 것일까?’ 생각하면서 많이 기도하면서 준비한 것 같습니다. 며칠 있으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겠는데, 십자가 죽음에 대한 합당한 예물이 무엇일까? 죽음을 위해서 합당한 예물은 향유가 아니겠는가? 십자가 죽음에 대한 합당한 예물을 준비하느라고 많이 준비했습니다. 죽음에 대해 붓는 기름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영접하고 존귀한 것을 바치고 희생 봉사하는 마리아의 행위입니다.

본문 12절에,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미리 알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에 감사해서 거기에 합당한 예물을 갖다 부은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는데, 여자의 일을 말하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영존하고 존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영존했습니다. 기름 부은 일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합당한 희생 봉사하는 일이었습니다
.
3. 예수님을 은 삼십에 매매함 (14-16)

본문 14-16절에, “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은 삼십은 당시 종 한사람의 값입니다. 예수님은 종 한사람의 값으로 제자에게 팔렸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 다녔는데 스승을 종 한 사람의 값으로 팔았습니다. 얼마나 악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게 됩니다.

4. 유월절 잔치 (17-25)

유월절 준비

본문 17절에, “무교절의 첫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무교절의 첫 날은 14일입니다. 유월절이 14일이 유월절입니다. 그 전날이어야겠는데, 예수님은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전날이어야 맞습니다. 무교절은 그 전날부터 지켰나봅니다. 제자들이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본문 18-19절에, “가라사대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내 때가 가까웠으니’는 십자가의 구속할 때가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라고 아무에게나 가서 말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락방을 하나 내주었다고 했는데, 이것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입니다. 그 다락방에 유월절 지킬 예비를 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반 예고

본문 20-21절에,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라고 했는데,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신 것은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자기를 가리킴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본문 22-23절에,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하십니다. 여러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면서 “내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 하시며 다시 한 번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두 번째 기회에도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24절에,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가시지만, 인자를 파는 가룟 유다에겐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지만 예수님은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지심은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만 예수를 팔아먹고 악한 마음을 품고 돈에 탐심이 나서 비참한 죄를 지으니 그에게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다시 한 번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26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라고 했고, 본문 25절에,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결국 그는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5. 성찬 예식을 시설함 (26-29)

본문 26-28절에,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떡과 포도즙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찬예식의 떡과 포도주는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주시는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에게 영적으로 예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해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살과 피가 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공재설(共在說), 즉, 떡과 포도주에 살과 피가 같이 있다고 주장하는 루터파가 있는데, 같이 있다고 하면 안 믿는 사람이 참여해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 성찬예식에 참여해서 먹게 되면 주의 살과 피의 효과가 나타나야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안믿는 사람이 참여해서 먹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가 아닙니다. 효과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효과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살과 피가 떡과 포도주에 같이 있다고 주장하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무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주장하는데, 성찬예식을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에게 성령이 함께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합당치 않게 성찬예식을 먹고 마시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범하는 죄가 됩니다.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는 말과 ‘나의 피’라고 하신 말씀을 들어서 진짜 살과 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신자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는데 신자가 진짜로 소금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상징하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본문 29절에,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나라’는 신령한 나라를 가르칩니다. ‘새 것으로’라는 것도 신령한 포도주인데, 이것은 구속의 은혜와 영적 생명운동을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9:17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되느니라”고 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새 생명의 역사, 새 생명 운동입니다. 새 생명의 역사에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참여하십니다. 다시는 물질적인 포도주를 먹지 아니하시고 영적인 새 생명의 포도주를 같이 나누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5:1-2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라고 하십니다. 포도주를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상징했습니다. ‘구속의 은혜’ 가 포도주이고,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새로운 생명의 은혜에 너희와 같이 참여할 것이다. 물질적인 것은 다시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담배 피우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담배는 양식이 아니고 배부르게 못할 것인데 그것을 사려고 은을 달아주지 말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