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이사야 49:8-19
이사야 49:8-19
8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9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10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11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12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 13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14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18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19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1. 메시야께서 당신의 백성을 자유와 빛으로 인도하심
신약시대는 언제나 은혜의 때, 구원의 날임
본문 8절에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
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서 이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을 만한 때와 구원의 날은 신약시대를 가리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어 택한 백성을 대속해주신 때를 가리킵니다. 신약시대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
시는 때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는 날입니다.
신약시대는 날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날마다 구원해주시는 때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여러 가지 시험, 환난 등이 닥칠 때가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입니다. 그때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기도를 들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것이 구원의 날입니다.
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서 이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을 만한 때와 구원의 날은 신약시대를 가리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어 택한 백성을 대속해주신 때를 가리킵니다. 신약시대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
시는 때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는 날입니다.
신약시대는 날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날마다 구원해주시는 때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여러 가지 시험, 환난 등이 닥칠 때가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입니다. 그때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기도를 들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것이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 환난, 사건, 어려움, 고난이 오게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기도시키고, 회개시키고, 바로 세워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십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며 성경대로 바로 순종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는 날이 옵니다. 이렇게 구원해주시는 것이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반드시 건지시고 도와주십니다. 구원해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
본문 9절에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내가’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시기를 나오라고 하시고, 흑암에 있는 자에게 이르시기를 나타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본문 8절 하반절에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황무하였던 땅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황무지와 같아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일으키셔서 황무한 땅을 기업으로 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막에 강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시며, 샘물이 나게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 강수로 흐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황무지와 같은 이 세상, 광야와 같은 세상에 길을 내시고, 생명 강수를 내십니다. 또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좋은 것을 기업으로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막에 강을 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시며, 샘물이 나게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 강수로 흐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황무지와 같은 이 세상, 광야와 같은 세상에 길을 내시고, 생명 강수를 내십니다. 또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좋은 것을 기업으로 주십니다.
잡혀 있는 자에게는 ‘나오라’고 하십니다.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에 잡혀서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잡혀 있지 말고, 포로 생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나오라고 하실 때에 ‘예! 나갑니다’하고 나가면 만능의 하나님께서 그곳으로부터 나오게 해주십니다. 나오면 혹시 잡고 있던 세력이 손해를 주지 않겠는가 하며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막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잡고 있던 세력을 다 물리쳐주시고 해방시켜 주십니다.
또 흑암에 있는 자에게는 ‘나타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주의 명령 입니다. 흑암에 있다는 것은 영적 흑암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속에 빛이 없습니다. 흑암에서 흑암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근심과 수심 속에 싸여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빛 가운데서 살지 못하는 자들에게 흑암에 그냥 있지 말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타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나오라고 하실 때에 ‘예!’하고 나오면 흑암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잠자는 자, 졸고 있는 자, 눈 감고 있는 자들은 거기서 나와야 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추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흑암에 앉아 있을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떤 것에 포로가 되어서 신앙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얽매여 광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자가 많습니다. 흑암에서 잡혀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러 가지 번민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흑암에서 나오도록 만들어주시고, 광명한 빛 가운데로 나오게 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광명한 빛의 세계로 인도해주십니다. 또 은혜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하십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왔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 오는데, 그 구원의 날에는 하나님께서 건지셔서 ‘구원이다. 나오라’고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주실 날이 옵니다.
은혜의 때, 구원의 날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해야 함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 생활을 할 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때입니다. 백성들이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면서 바벨론 사람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는데, 그것은 과거에 조상들이 우상을 섬기고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개시키셔서 그 사람들을 구원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70년간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고레스 왕을 보내어주셔서 포로에서 석방해
주셨습니다. 바벨론에서 이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날이 온 것입니다.
또 에서가 400여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죽이려 했을 그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때입니다. 야곱이 20년간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고 돌아오니까 그냥 데려가면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야곱은 14년간 아내를 얻느라 세월을 다 보내고, 돈을 버느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돈도 정당하게 번 것이 아니고 양심을 비뚤게 써서 장인의 것을 빼앗으면 벌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다 보냈습니다. 그대로 데려가면 아무 가치가 없는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을 하나님께서 쓰려고 하
시는데 그대로 쓰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마주 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때가 야곱에게는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살 수 없는 그때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인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기도하면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그러니까 에서가 와서 야곱과 화친했습니다. 야곱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날입니다. 은혜를 못 받으면 살수 없는 환경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안 도와주시면 죽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환경을 주실 때가 회개할 때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도 과거에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 여러 가지 죽을 고비에 빠졌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때입니다. 기도시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시키셔서 회개시켜주시려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십니다. 그것이 구원의 날입니다. 신약시대에는 내내 이런 시대인줄 알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이런 시험, 저런 시험, 이런 고난, 저런 고난, 이런 환란, 저런 환란을 당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은혜를 받지 못하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시고 구원의 날을 주셔서 구원해주십니다. 구원해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잡혀 있는 자에게는 잡혀 있지 말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말씀대로 믿음을 바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나오면 된다는 것입니다. ‘나오면 더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직장을 잃지 않겠습니까? 큰 핍박을 받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핍박 받지 않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다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다 물리쳐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잠자고 졸며 흑암 속에 있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빛에 거하지 못하고 빛 가운데로 걸어가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흑암에서 나오라고 하실 때에 ‘예!’하면서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오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빛 가운데로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를 먹이시고 보호하심
또 그들이 나와서 길가에 다니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십니다. 붉은 산, 나무가 없는 산에 가도 그곳으로 풀밭이 되게 만들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팔을 붙들고 나가는 사람은 길에 내버려져도, 붉은 산꼭대기에 내버려져도 거기가 풀밭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십니다. 나무 없는 붉은 산에 내버려져도 그곳으로 풀밭이 되게 해주십니다.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인도대로 따라가면 길가에 가도 먹을 것이 생기고, 붉은 산에 가도 풀밭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같이 계시는데, 왜 먹을 것이 안 생기겠습니까? 왜 풀밭이 안 생깁니까? 왜 안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면 어디로 가든지 청산이 되고, 길가에도 먹을 것이 생깁니다.
본문 10절에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능력의 팔을 붙들고 구원의 손을 붙들고나가는 사람들은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하고, 더위와 볕이 해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주리지 않습니다. 목마르지 않습니다. 더위가 와도 걱정이 없고, 볕이 그 사람을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막에 샘물이 나게 하시고, 강이 흐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끌어 샘물 근원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풀밭이 되고, 살기 좋은 곳이 됩니다. 그리고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게 해주십니다. 더위와 볕이 그 사람을 해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샘물 근원으로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수 강가, 샘물이 넘치는 행복스러운 자리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손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생수가 납니다. 어디를 가나 풀밭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하나님께서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항상 흡족합니다. 만족스러운 모든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산을 길로 삼고, 큰 길을 닦아놓고 다 모아 오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혹자는 원방에서, 서방에서, 시님땅에서 모아 오십니다. 시님 땅은 파사국이라고도 하고, 바벨론의 한도(道)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하여간 멀리에서부터 다 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 불러 모으시는 것입니다. 산이 가로막혔어도 산을 길로 삼으시고, 대로를 돋우셔서 길을 닦아 북방, 서방 어디 할 것 없이 다 불러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이 즐거워할만한 일입니다. 다 불러 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부모는 잊을지라도 여호와는 잊지 않으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심
본문 14절에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셨고, 또 주께서 잊으셨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고난을 당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회개시키시려고 징계도 내리십니다. 그리고 회개한 다음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내버려 두기도 하시고, 포로로 잡혀 가게도 하
시며, 환난 가운데 빠지게도 하십니다. 다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시며, 환난 가운데 빠지게도 하십니다. 다 은혜를 베풀어주시려고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도 하나님께서 자주 자주 징계하시고 어려움도 당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은혜를 베풀어주시려는 것이고, 구원의 팔을 나타내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즉,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신 다음에 생명수 강가로 인도해주시려는 것입니다. 회개하게 하신 후에 생명수 강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회개하지 않고 죄악의 요소를 그냥 가지고 나가고, 하나님께 바로 서지 못하고 비뚤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가만히 두면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하시고, 채찍질도 하시며, 환난도 주시고, 여러 가지 시험을 주셔서 회개시키시면서 기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셨다, 주께서 잊으셨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버리지 않으십니다. 환난이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부모나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우리를 영접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할 것
본문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 같이 따라 읽어봅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자, 얼마나 좋습니까? 부모가 혹시 우리를 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시편 27편 10절에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는 나를 버렸지만 여호와께서는 버리지 않으시고 영접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우리를 안 돌봐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면 버리는 것 아닙니까? 어린아이를 두고 부모가 세상을 떠난 집이 간혹 있습니다. 가서 이 성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호와께서 잊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또 환난이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사랑해주시는 증거입니다. 그럴 때에 더욱 더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바로 서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구원해주십니다.
본문 16절에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앞에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손바닥에 새기시고 항상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절대 잊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극하고 무한한 사랑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연단시키시려고 여러 가지 시험, 환난을 주시는 것은 버리신 증거가 아닙니다.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거기에서 회개시키시고, 기도시키셔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구원해주시려고, 팔을 펴게 해주시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극하고 무한한 사랑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연단시키시려고 여러 가지 시험, 환난을 주시는 것은 버리신 증거가 아닙니다.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거기에서 회개시키시고, 기도시키셔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구원해주시려고, 팔을 펴게 해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사랑으로 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주지 않으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떠한 시험, 환난, 고통, 풍파, 근심, 걱정이 와도 전부 사랑으로 주신 것입니다. 부모가 우리를 버려도, 그 상황도 사랑으로 주신 것입니다. 더욱 더 우리를 영접해주시려 함입니다. 부모를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게 하시려고, 부모를 먼저 데려가시는 수가 있습니다. 또 남편이 나를 버리고 세상을 떠났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영접해주시기 위해서 미리 데려 가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살던 것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고 미리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또 재물을 의지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고 재물을 제거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고, 회개시키려고, 바로 서게 하려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만들려고, 구원의 팔을 펴주시려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놓으시고 항상 보십니다.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3. 여호와께서 원수를 물리치시고 자기 백성을 창성케 하심
본문 17절에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고 하였습니다. 너를 헐며, 황폐케 하고, 핍박하며, 괴롭게 하고, 못살게 하고, 압박했던 사람들을 떠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물리쳐주십니다. 또 가까운 사람이 이렇게 핍박했으면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셔서 에서처럼 야곱과 화친하게 하십니다. 에서가 죽이려고 왔지만 야곱과 입을 맞추고 야곱을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었습니까? 이것처럼 하나님께서 해주십니
다. 에서가 야곱을 죽이러 왔지만, 그것은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때에 회개하고 바로 서면서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원수를 친구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오게 해주신 것입니다.
본문 18-19절에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방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네게로 사방에서 모여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고, 흑암 속에서 나오며, 잡혀 있는 자에게 해방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져주십니다.
또 모든 사람이 와서 장식이 됩니다. 믿음을 지키면 모든 사람이 돌아옵니다. 믿음을 지키면서 복음을 전하면 모든 사람이 모여 교회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핍박하던 자들도 교회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이 네게 장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예수님 믿는 아내를 핍박하고 고통을 주던 집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인이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다 이기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여러 해 후에는 그 남편이 교회에 나와 믿음을 잘 지키며 장로가 되었습니다. 부인이 믿음을 잘 지켰기 때문에 남편이 교회에 나와 장로가 되었으니, 그것이 자기 장식이 된 것입니다. 신부처럼 좋은 것을 차는 것처럼 장로를 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핍박하는 자, 괴롭게 하던 자들이 있어도, 믿음만 지키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다 장식이 되어서 그것들을 신부처럼 몸에 차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민이 많아지고 많은 사람이 네게로 모여와 구원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