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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히브리서 13:17-25 인도자에게 복종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인도자에게 복종하라
히브리서 13:17-25

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8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19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 20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2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23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24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5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찌어다

1. 교역자를 통해서 은혜와 진리를 공급됨

본문 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회계할 자인 것같이”란 ‘하나님 앞에 계산하고 진술할 자인 것같이’라는 뜻입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란 교역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교인들의 영적인 문제를 교역자에게 맡겼습니다(벧전 5:3). 그러므로 교인들은 인도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여 그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일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교역자는 복의 기관으로 하나님께서 교역자를 통해서 은혜와 진리를 공급해 주십니다. 교역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이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때도 있는데, 보통은 교역자를 통해서 주십니다. 교역자에게 배워서 아는 것이 자기 혼자 아는 것보다 몇 십 배 더 많이 압니다. 교역자는 정통적인 신학교에서 배운 바른 신학과 교리를 교인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교역자에게 배우는 것은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깨달은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또 교역자 자신이 기도하면서 깨달은 깊은 진리를 배워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기도해서 깨달은 것도 있겠지만, 교역자는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므로 아무래도 낫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를 통해서 은혜 받는 면이 상당히 큽니다.

스가랴 4:12에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흘러 내려오면 금관을 통해서 기름이 공급됩니다. 그 금관이 교역자입니다. 감람나무는 예수님이시고, 촛대는 교회입니다(계 2:1).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진리를 교회에 공급하는데, 그 은혜와 진리는 교역자를 통해서 교인들에게 공급되는 것입니다.

2. 인도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러므로 교역자에게 잘 배우는 것이 유익이 큽니다. “근심으로 하게 말고 즐거움으로 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 하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였는데, 교역자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복음운동을 하게 하면 교인들에게 유익이 많이 온다는 것입니다. 즉 큰 은혜가 되고, 자기에게 말할 수 없는 유익이 됩니다. 감람나무에서 금관을 통해 기름이 촛대에 공급이 되므로, 교인은 교역자와 막히면 안 됩니다. 교인과 교역자가 막힌 것이 있으면 금관이 막힌 것입니다. 관은 파이프로, 파이프 속에 막힌 것이 없어야 기름이 계속 흘러 내려 갈 수 있습니다. 또 교역자는 하나님과 막히면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의 은혜가 내려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막히지 않도록 항상 힘을 써야 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하였는데, 순종과 복종은 이해가 되어도,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해야 합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 이상 무조건 순종과 복종입니다. 그래야 자기에게 유익이 옵니다. 그러나 교역자가 “잘못했다, 죄를 지었다”는 등의 말이 있을 때에는 두 세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두 세 증인이 있어야 인정을 하고, 두 세 증인이 없으면 인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딤전 5:19). 한 사람이 교역자가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 생각대로 할 수도 있고, 또 추측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확실한 증거가 없이 말하는 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두 세 증인이 있어서 확실할 때에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순종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순종하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교역자를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근심으로 하게 말라”고 하였는데, 교역자가 근심하면 기도 하는데 지장이 많습니다. 즐거움으로 해야 말씀 연구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근심하면 기도도 안 되고, 성경 연구 하는데도 지장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교역자가 근심하지 않도록 잘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근심하지 않게 여러 면으로 신경을 써주어야 합니다. 교역자를 근심하게 해서 자기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또 하나님이 어떻게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종을 근심하게 하여, 하나님의 일을 잘못하게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즐거움으로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고 하였는데,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이 밤에도 자지 않고, 경성하여 눈을 들어 살피는 것과 같이 교역자들은 교인들을 위하여 항상 깨어 살피며 보호하고 양육하려고 힘을 쓴다는 것입니다.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한다고 했는데, 자기가 돈을 물어 줄 자와 같이 경성한다는 것입니다 회계란 돈을 계산하는 것으로 자기가 만원을 남에게 꾸었으면 만원을 물어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역자는 하나님 앞에 교인들을 바로 세우려고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같이 항상 힘을 쓴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이것을 알고 바로 가르치며 바로 인도해 주는 인도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잘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창 12:2-3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교역자는 복의 기관으로서, 하나님이 교역자를 통해서 교인들이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3.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

그러나 교역자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히브리서 13:7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지내보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를 오랫동안 지내보고 틀림없을 때에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를 지내보면 압니다. 이 사람이 ‘진실한 사람인가? 사기꾼인가?’를 좀 지내보면 압니다. 또 이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사람인가? 양심을 쓰는 사람인가?’를 지내보면 압니다. 오랫동안 지내보면 틀림없습니다. 약 십 년, 혹은 이십 년 동안 지내보고 진실한 사람이면 틀림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을만 합니다. 또 그런 교역자는 신임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의심하고, 또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그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지내보았으면 틀림없는데, 왜 비방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까?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며, 마귀가 그것을 이용해서 교역자와 이간 붙여 은혜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지내보고 틀림없는 교역자는 다른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해도 신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은혜를 받고, 교회가 잘 됩니다.

나로 말하면 이기선 목사님을 오랫동안 지내보고 내가 은혜를 많이 받았고, 또 이기선 목사님은 틀림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누가 별소리를 다 해도 나는 “이기선 목사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하며 안 믿었으며,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하며 반대 했습니다. 또 김현봉 목사님과 몇 십 년 지내보고, 김현봉 목사님을 신임했습니다. 사경회를 매년 일 년에 한번씩 김현봉 목사님을 모시고 하였는데, 틀림없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께 대해서 누가 비방하면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지내보아서 자신이 신임하는 분이라면 누가 어떤 말을 해도 그런 소리에 동요되면 은혜를 받지 못하고 또 그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서로 신임하여야 그 가정이 잘되고, 교회에서도 서로 신임하여야 그 교회가 잘 됩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을 신임하고, 교인들은 교역자를 신임하여야지, 신임하지 못하고 “목사가 돈 잘라 먹지 않았나?”하며 나가면 어떻게 교회가 되겠으며, 자신은 어떻게 은혜를 받겠습니까? 은혜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다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두 세 증인이 확실히 없는 이상 거기에 대해 동요되면 안 됩니다. 너를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으니까 순종하고, 복종하고, 존경하고, 신임하여야겠습니다.

4. 간구와 기도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라

본문 18절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라고 하였는데, 선하게 행하려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무엇이나 선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도 선하게 하고, 또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에 선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선으로 해결해야지 그것을 악으로 해결하려 하면 안 됩니다. 항상 선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악으로 파괴적으로 해결하려면 마귀에게 속는 것이고, 결국은 마귀의 일 밖에 안 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선하게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요셉이 정혼한 마리아가 자기와 관계없이 잉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선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당시에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때려 죽이는 때인데, 요셉이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폭로하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떻게 하면 선하게 해결할까? 하며,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일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알게 해 주었습니다(마 1:18-20).
만약에 요셉이 드러냈다면 마리아도 죽지만 예수님도 죽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선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물론 요셉의 생각에는 마리아가 간음으로 잉태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일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 “내가 데려오지 않으면 되지, 남을 죽일 필요가 뭐 있겠는가? 내가 안 데려오면 되는 것 아닌가?”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즉 관용심과 선한 마음을 썼습니다.

또 “이 일을 생각 할 때에”라고 하였는데(마 1:20), 요셉이 어떻게 된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본 것입니다. 마리아가 음행할 여자가 아닌데, 어떻게 된 것일까? 하며, 성경에 처녀가 잉태 했다는 말이 없을까? 하며 성경으로 해결해 보려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마리아가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처녀가 잉태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사야 7:14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에 선으로 해결하려고 해야지, 악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과거의 것은 다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괜히 과거의 것을 들추어서 악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둘 다 손해를 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것은 용서해 주고 이제부터 잘하여야 합니다.

선한 양심을 써라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라고 하였는데,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어야 하고, 또 선한 양심을 써야 합니다. 양심을 안 쓰는 것은 배가 파선된 것과 같습니다(딤전 1:19).

교역자를 위해 기도하라

본문 19절에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라는 말이 두 번 나왔습니다. 18절에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이 있고, 또 19절에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생활은 좋은 생활입니다.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교역자가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본문 20절에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의 큰 목자”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려 죽으셨고, 죽음 가운데서 하나님이 능력으로 부활시켜 성도에게 구원과 평강을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피로 우리가 구원과 평강을 얻었습니다.

5.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는 것

본문 21절에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일을 온전히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것

원하는 것이 세 가지입니다. 무엇을 원하는가? 하면 첫째는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라고 하였는데, 선한 일에 온전케 하기를 원하십니다. 선한 일은 믿음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잘 지켜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 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져 나가는 것

둘째는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뜻을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뜻을 이루어 나가시려고 애쓰시는데,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도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힘을 써야 하며, 힘쓰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가 되는 것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그 앞에 즐거운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잘 이루어지려면 성도가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잘 받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려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선한 일을 온전히 행함으로 온전케 되기를 원하시고, 
둘째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져 나가기를 원하시고, 
셋째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라고 하였는데, 영광은 하나님께만 있고, 하나님은 영광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지 않습니다(사 42:8, 48:11). 

6. 권면과 문안 

본문 22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간단히 권면의 말을 썼다는 것입니다. 권면할 때에 그 권면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권면을 했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권면은 효과가 없습니다. 인도자의 바른 권면을 잘 받아 들여 그 권면대로 바로서는 자라야 희망이 있고 복이 있습니다. 

분몬 23절에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가 주를 위해서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이 되었으나 아직도 바울에게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가 오면 디모데와 같이 고린도에 가서 보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쓸데없는 말과 남을 비방하는 말을 하지 말고, 믿음으로 서로 문안하는 생활은 좋은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항상 은혜가운데 있어야 강건해집니다(딤후 2:1).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아야 되는 것처럼 성도는 항상 은혜 가운데 있어야 심령이 살고, 모든 시험과 세상을 이기며 영이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강건한 신앙을 갖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히브리서 13:10-16 영문 밖까지 그리스도를 좇는 생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영문 밖까지 그리스도를 좇는 생활
히브리서 13:10-16

10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11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12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13: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으니, 

13:11 그 짐승의 피는 죄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성소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 몸은 진 밖에서 불태워지기 때문이다. 

13:12 그리하여 예수께서도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13:13 그러므로 우리도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으로 그분께 나아가자. 

13:14 여기에 영원한 성읍이 없고, 우리는 다만 장차 올 것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13:15 그러므로 그분을 통하여 항상 하나님께 찬양의 제물을 드리자. 이것은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이다. 

13:16 선행과 나누어 주기를 소홀히 하지 마라. 이러한 제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1.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본문 10-11절에,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고 했습니다.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들이 그 속죄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일년 일차씩 대속죄일에 속죄 제사를 드릴 때, 속죄 제물의 짐승의 피를 대제사장이 들고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육체, 짐승의 고기는 영문 밖으로 나가서 불살랐다고 했습니다(레 16:27). 영문 밖은 재를 버리는 곳입니다. 다른 예물은 제사장이 먹을 수 있지만 이 속죄 제물은 먹지 못하고, 피는 성소에, 고기는 영문 밖에서 불살라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렇게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인데, 실체되신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오셔서 자신의 피를 신령한 성소에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의 육체는 영문(예루살렘 성) 밖에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고난을 받아 죽으셨습니다.

본문 13절에,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능욕을 지고 가야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능욕을 지고 가야합니다. 즉, 십자가를 지고 가야합니다. 예수님의 받은 능욕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자신도 예수님을 위해서 같이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자신도 고난 받는 게 마땅하다 여기며 그 능욕에 동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스데반이 고난을 받으며 죽을 때에 ‘자신도 예수님과 같이 되는구나’ 생각함으로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생활, 예수님을 위해 능욕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 능욕을 지고 따라가야 합니다. 영문 밖까지 능욕을 지고 따라가야겠습니다.

영문 밖은 어디입니까? 영문 밖은 성문 밖이라는 뜻인데, 그곳은 무엇이든 버리는 곳입니다.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도 예수님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 세상적인 것은 버리고 고난을 각오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35절에,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했습니다. 나면서 소경된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소경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바리새교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 그 소경을 영문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소경이 쫓겨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서 물으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쫓겨난 다음에 찾아가시는 예수님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쫓아내고 핍박합니다. 그저 되는대로 믿으면 핍박하지 않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말씀대로만 따라가려고 하면 세상이 미워하고,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바울을 못 쓰겠다고 십자가에 못 박고, 바울도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서로 못 박으며 사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못쓰겠다고 버리게 되어있습니다. 영문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요한1서 2장 15-17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했습니다.

영문 밖으로 나가라는 것은 세상에 빠지지 말라는 것인데, 몸은 세상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에서부터 나가서 예수님에게 가 있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늘나라, 신령한 세계에 가 있어야 합니다. 영문 밖으로 나가있는 사람은 몸은 세상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 밖으로 나가서 신령한 세계에 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난 것과 같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난 것이 영문 밖이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은 영문 안쪽입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모세도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서 부귀영화와 모든 재물과 보화로 살았는데, 그렇게 사는 것은 영문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것은 영문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빠지지 말고, 마음을 세상에 두지 말고 영문 밖으로 나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받으신 능욕을 우리도 받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못 박히심과 같이 우리도 못 박힐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따라가려면 버림받을 각오를 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날마다 영문 밖으로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합니다. 마음은 매일 그리스도만 따라가야 하고, 매일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영구한 도성이 아닙니다. 장차 망할 장망성입니다. 장차 올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그곳이 우리가 영원히 살 나라입니다. 잠시 잠깐 있다가 갈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장차올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 나라에 마음을 두고 그 나라를 위하여 준비를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를 드리라

자족하고 감사하며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는 생활

본문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찬미’는 항상 기뻐하고 항상 찬송하는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면 얼마나 기쁩니까? 찬송이 저절로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근심이 들어오면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 알라고 했습니다.
내일 염려는 내일하라고 했습니다. 내일 염려는 마귀의 시험입니다. 염려를 주께 맡기고 항상 기뻐하면서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근심으로 살고, 싸우면서 살고, 항상 불만에 살고, 늘 모자란다고 하며 삽니다. 그런 생활이 지옥생활입니다. 지옥생활인데 잘 살면 뭐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많든 적든 자족을 배우며, 감사하고 찬송하고, 서로 웃으면서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찬송의 열매,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선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말을 하고, 선한 행실로 서로 나누어주기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남에게 주는 생활이 좋습니다. 물질, 사랑, 선을 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나누어줘야 하는데, 사랑함으로 나누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물질 면이나 다른 면에서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나 마음, 기도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남을 도와주면서 사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도움을 받으려고만 말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말고, 남에게 도움을 주려하고 사랑을 주려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남을 돕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기를 하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13:1-9 형제를 사랑하고 욕심을 버리며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형제를 사랑하고 욕심을 버리며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히브리서 13:1-9

1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4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5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 형제를 사랑하라

고난당하는 형제를 사랑하고 손님 대접하라

본문 1-2절에,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 지키다가 고난당하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믿음을 지키다가 쫓겨나서 떠돌이 하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천사를 대접했습니다. 천사인 줄은 몰랐으나, 그저 저녁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아브라함은 그 사람들이 보통사람들이 아닌 것을 영감으로 알았습니다. 영감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가 지나간다’고 알고, 그 사람들을 청하여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천사였습니다. 이렇게 손님을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형제를 사랑하여야겠습니다. 또 손님을 대접하여야겠습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을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랑하여야 하고, 모든 믿는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여야 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여야 됩니다. 사랑하려고 힘써야겠습니다. 자기 몸과 같이, 원수까지 사랑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가정들을 더 사랑하여야겠습니다. 이 사랑은 육신의 사랑이 아닙니다. 육신의 사랑은 마귀가 시험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사랑은 진리 안에 있는 영적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이고 인정적인 사랑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것은 다 정욕적이요 마귀적입니다. 거룩한 사랑, 영적 사랑,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특별히, 믿음 지키다가 고난 받는 사람을 사랑하여야 됩니다.
세 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을 보편적으로 사랑하고, 그 다음에 예수 믿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고, 그 다음에 특별히 믿음 지키다가 고난당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지키다가 쫓겨나서 유리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손님으로 알고 더욱 사랑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일하기 싫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을 대접해서는 안 됩니다. 일 해서 먹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 지키다가 쫓겨나서 일자리가 없는 손님은 특별히 사랑하고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고 대접하는 중에 천사를 대접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하나님의 종을 대접한 것은 하나님을 대접한 것이고 예수님을 대접한 것이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0-41절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을 영접하고 대접한 것은 예수님을 대접한 것이 됩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는 말대로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다’는 말대로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를 믿는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했는데, 믿음 지키는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그릇만큼만 도와주어도 상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지중에 손님을 대접했다가 천사를 대접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선지자 대접하는 것,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상을 받습니다. 또한 예수를 믿고 믿음 지키다가 환란 당하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은 천사를 대접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것이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 됩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 때문에 환란 당하는 사람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런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학대받는 자를 자신의 몸과 같이 생각할 것

본문 3절에,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감옥에 갇힌 자와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했는데, 환란 가운데서 믿음 지키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 환란 가운데서 믿음 지키다가 학대와 악형과 고문을 받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있을 때에 자기도 그 같이 당한 것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을 때에는, 자기도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다가 핍박을 받고, 환란을 당하고, 악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고 또한 학대 받는 자를 자신의 몸과 같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했는데, 고난당하는 성도의 몸이나 우리나 다 같은 몸입니다. 가서 매를 맞고, 악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는 그런 학대 받는 그런 사람이나, 우리나 같은 몸이니까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 지키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을 도와주어야 됩니다. 과거에 믿음 지키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온 교회가 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것은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또한 교역자가 순교 당하면 그 순교자의 가족을 온 교회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2. 욕심을 버리라

혼인을 귀히 여길 것

본문 4절에,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금욕주의가 나왔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3절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는 자들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혼인하면 죄다. 독신생활 하여야 한다. 고기 먹으면 죄다. 채소만 먹어야 한다’는 금욕주의자들이 초대 교회 때에는 많이 나왔습니다.

혼인하면 죄라고 하는 것은 금욕주의자들의 교훈인데, 본문에는 모든 사람들은 혼인을 귀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내신 제도니까 혼인하면 죄라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침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간음하는 자들과 음행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혼인하지 않고 음행하고 간음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간음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믿음을 잘 지켜나가라는 것입니다. 금욕주의로 나가다가는 간음죄에 빠지기 쉽고, 음행 죄에 빠지기 쉬우니까 혼인을 귀히 여겨서 혼인하고, 음행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금욕주의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 알 것

본문 5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9-10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는 여러 가지 시험과 올무에 걸리고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서 일만 악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갑니다. 돈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돈 많이 벌러 가자, 월급 많이 받는데 가자”하며, “많이 많이”를 좇아가다가 그만 자기가 마귀에 붙잡히게 됩니다. 물질에는 언제나 마귀가 따라 다닙니다.

직장에서도 돈을 보지 말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직장으로 알고 충성되게 잘 해야 합니다. 그러면 첫째 믿음이 바로 되고, 자기 인격이 바로 만들어 집니다. 돈은 못 벌어도 앞으로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욕심으로 돈 많이 벌려고 여기 좀 있다가, 저기 좀 있다가 하면, 인격에 아무 유익이 없고, 믿음도 못 지키고 결국은 마지막에 함정에 빠지고 관둡니다. 한 곳에 들어갔으면 하나님이 보내 준 직장인 줄 알고, 하나님이 내 보내시기 전에는 돈이야 많이 주건, 적게 주건 그 곳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돈 많이 받는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적게 받는다고 못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하루 밥 세끼 먹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하루 밥 세끼 먹습니다. 그러니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 잘 버는데만 가겠다고 욕심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는 직장을 간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직장에 간다’는 것이 맞는 것이지, 돈 많이 받는데 간다는 것은 반드시 시험에 빠지고, 올무에 걸리고, 믿음에서 떠나서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찌르는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는 바를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 있는 것이 얼마 있든 그것에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초막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그것으로 족한 줄 알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좋은 것을 주셨어도 그것으로 족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아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있는 것으로 족한 줄로 아는 생활, 현재의 형편과 처지를 족한 줄로 아는 생활을 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3.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행하시는 하나님

본문 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31장 6절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너와 함께 행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행하십니까? 우리와 함께 행하십니다. 또 나와 함께 행하십니다. 반드시 너를 버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또 우리와 함께 행하십니다.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는 것이지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하나님이 굶겨 죽이겠습니까? 또 하나님이 망하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주십니다.

시편 118장 6-7절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할고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고 했습니다.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자기는 대적을 무서워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주님은 내 편이시라’, 누가 나를 도와줍니까? 주님은 나를 돕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쓸데없습니다. ‘누가 도와 주지 않을까? 어디 가면 도움 받을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돕는 자이십니다. 만왕의 왕 되시는 주님이 도와주시면 다 되는 것입니다. 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있습니까? ‘무서워 아니하겠노라’고 했는데, 아무리 대적이 많아도 무서워 아니하고 주님이 나를 돕는 자시니까 담대히 말씀대로 나간다는 말입니다. 말씀대로 나가는데 무서워 할 게 없습니다. 주님은 나를 돕는 자시기 때문에, 주님이 내 편이 되기 때문에, 사람이 내게 어찌할 수 없습니다.

교역자의 행실이 진리에서 탈선되는지 주의할 것

본문 7-9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 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 너희를 인도하는 사람에 대하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믿음을 본받으라는 말씀은, 금욕주의로 교역자가 넘어 가지 않았는가 그 행실을 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행실이 진리에서 탈선되지 않았는가, 행실을 잘 주의하여 보고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단이나 신비주의나 금욕주의 등 잘못된 길로 나가는 교역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바른 진리를 말했지만, 오랜 세월이 가는 동안 세파나 이단 사상에 물들기 쉽습니다. 이단사상에 물들어서 나중에는 잘못 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금욕주의에 물든 사람도 있고, 신비주의에 물든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잘못 나갈 때에는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새 대개 교회들이 신비주의로 기울어져 나갑니다. 열광적으로 박수 치고, 성령 받는다고 떠들썩하고, 또 교회에서 북치고 하는데 이렇게 나가는 교회가 점점 많아집니다. 성경 말씀대로 가르치던 교회도 얼마가다 보면 그렇게 기울어져 나갑니다. 처음에는 성경대로 잘 하다가 성경대로만 가르치면 교인들이 많이 오지 않습니다. 무작정 굿을 하여야 많이 온다고 하니까, 교인들 많이 모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별 짓을 다하려고 교회에 북 사다놓고 치고, 열광적으로 하고, 손뼉치고 악악해서 교인이 많이 모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교인들을 많이 모으려고 진리에서 탈선되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잘 안 옵니다. 성경대로 하면서 교인을 많이 인도하는 것은 아주 힘든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하고, 자기가 많이 연단을 받고 자라나서 영권이 있어야 됩니다. 영권을 갖고 교회를 인도하고 가르치는 권세가 있어야 교인들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영권을 가지고 가르쳐야 모든 사람의 심령에 쏙쏙 들어가게 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아 이거다. 이 말씀이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다”라고 하면서 따라 옵니다. 기도 많이 하고, 영권 있는 사람이 되고, 진리의 말씀을 신령한 양식으로 먹여주고, 죽은 심령을 살리고, 병든 심령을 낫게 해서 영혼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너희를 인도하는 사람이 신앙에 탈선되어 나가지는 않는지 그것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지내보면 그 교역자에 대하여 압니다. 오랫동안 그 교역자가 해온 경력을 보고 틀림없다 인정되면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지내오면 다 압니다. 지내보고, 틀림없으면 하나님의 종의 신앙을 본받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변함이 없는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가다가 변하면 안 됩니다. 성경이 옳은 줄 알았으면 끝까지 성경대로 나가고, 보수신앙이 옳은 줄 알았으면 끝까지 보수신앙대로 나가고, 좋은 게 무엇인지 알았으면 끝까지 양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말씀대로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는 옛날부터 줄곧 변함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우리도 변함이 없는 신앙, 교역자도 변함이 없는 교역자, 교인들도 변함이 없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도 변함없는 말씀에 굳게 서서 변함없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본문 9절에,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끌려가고, 말씀으로 마음을 정하고 은혜로서 굳게 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하고 물어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뭐라고 말했는지 말씀대로 하고자 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뜻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한다고 했는데, 고기 먹으면 안 되고 채소를 먹어야 한다고 하는 금욕주의로 나가는 사람들은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12:18-29 시내산과 시온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시내산과 시온산
히브리서 12:18-29

18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19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21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22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24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26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28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12:18 너희가 이른 곳은 만질 수 있는 불붙은 산과 어두움과 흑암과 폭풍과, 

12:19 나팔 소리와 말씀하는 음성이 아니다. 그 소리를 들은 자들은 자신들에게 더 이상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간청하였으니, 

12:20 이는 "짐승이라도 그산에 이르거든 돌에 맞아 죽게 하여라." 하신 명령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2:21 그 보이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모세도 "너무나 두렵고 떨린다." 라고 말하였다.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곧 하늘의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와 

12: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12: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려진 피이다. 

12:25 너희는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만일 땅에서 경고한 자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다면,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시는 분을 배척하면 우리가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12:26 그때에는 그 음성이 땅을 진동시켰지만, 이제는 그분께서 약속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또 한번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진동시킬 것이다." 라고 하셨다. 

12:27 이 '또 한 번' 이라는 말씀은 진동하지 않는 것들을 남아 있게 하시려고 진동하는 것들, 곧 창조된 것들을 옮기실 것을 뜻한다.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하지 않는 나라를 받았으니, 감사를 드리자. 그리하여 경건함과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자.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1. 시내산 율법을 순종할 것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곳이 시내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불같은 율법을 주었습니다. 또 모세가 시내산에 가서 사십일, 사십야, 사십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주실 때에, 본문 18-19절에,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푹풍과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라고 하였는데, 이는 흑암과 흑운과 폭풍과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와 불붙는 것과 시내산의 여러 가지 무서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시면서 이렇게 무섭게 하시며 가르쳐 주신 것은 하나님은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알려 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율법도 엄위하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고, 엄위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니까 너희가 두렵고 떨림으로 이 율법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율법은 전부 시내산에서 주신 것으로, 특별히 돌비석에 준 것은 십계명입니다. 일계명에서 사계명까지는 첫째 판에 주셨고 오계명에서 십계명까지는 둘째 판에 주셨습니다. 돌판 둘에다 하나님이 친히 새겨서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십계명뿐만 아니라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여러 가지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을 후에 모세가 기록을 했는데 그것이 모세 5경입니다. 율법은 전부 613가지입니다. 613가지인데, 소극적인 면이 365, 즉 하지 말라는 것이 365가지이고, 적극적인 면, 즉 하라는 것이 248가지로 전부 합해서 613가지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율법을 주시면서 ‘이대로 행하라,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다’라 하시며 이렇게 엄위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서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대로 행해서 구원받으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고, 이대로 행하라고 했지만, 너희가 이대로 행하지 못하면 장차 그리스도께서 와서 구원해준다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율법 안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표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에게도 장차 나와 같은 선지자가 온다, 또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율법을 통해서 장차 그리스도가 온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하는 것도 그리고 유월절을 지키는 것도 그리스도가 와서 피 흘려 주실 것을 상징하는 제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에서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었고 십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죄다, 죄 가운데서 사망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부패했고, 또 연약하고 사람이 연약해서 못 지켰습니다. 부패해서 못 지켰습니다. 또 속에 악이 있기 때문에 율법을 준 기회를 타서 더욱 더 악을 행했습니다. 행하지 말라고 하니까 속에 반항심이 생겨서 더 잘 행했다는 것입니다. 하라고 하니까 사람이 악하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하지 않은 것도 많았고, 또 하려고 해도 연약해서 못했고 부패해서 못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엄위하신 율법을 주었지만, 그대로 행해서 구원받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 속에 장차 그리스도가 올 것을 예언적으로 계시해주셨습니다. 계시 된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구약 시대 성도들도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신약 시대 성도들도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용도가 무엇입니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해서 오실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역할입니다. 또 사람의 무능을 깨닫게 해서 그대로 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하고 사람의 악독을 깨닫게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리어 반항심을 가지고 탐내지 말라 하니까 더욱 탐냈고, 이렇게 사람이 그 율법을 준 기회를 타서 더욱 더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오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성격입니다. 하나님은 그 율법대로 해야만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을 지켜야 됩니다.

그러나 율법은 연약하고 사람도 연약하고 부패했고 악하기 때문에 인간의 힘을 가지고는 율법을 하나도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인인 줄을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와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계명을 폐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겠느뇨. 결단코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더 굳게 하느니라’고 했듯이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율법을 지킬 수가 있습니까? 구약 시대 성도도 다 못 지켰는데 신약 시대 성도가 어떻게 율법을 지킬 수가 있습니까? 로마서 8장 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법이 있고 또 성령의 법이 있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생명의 법이라는 것은 권세인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중생한 영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의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 성령의 능력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과 성령의 능력이 죄와 사망의 법을 다 이기고 하나님의 율법을 그대로 행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성도에게도 율법은 폐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이루어지게 해 놓은 것입니다. 폐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율법을 행해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율법대로 행해야 구원받는다는 것은 율법주의고, 폐했다고 하는 것은 폐법주의입니다.

신약 시대에 율법을 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서 생명과 성령의 능력이 속에 있기 때문에 그 능력을 가지고 율법을 이루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복음에 참여한 사람은 하늘의 시온산에 참여한 사람임

본문 22절에,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라고 말했습니다. 시온산,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속을 예루살렘에서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를 그곳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 하나님이십니다.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십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예수님 속에 들어갔으니까 하나님과 꼭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또 권세가 있습니다. 자녀가 되는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즉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영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찾아 왔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하였습니다. 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찾아왔습니다. 권세를 주시려고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믿습니다’ 하는 것이 영접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구주로 믿습니다!’ 하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저 우리 속에 쑥 들어오십니다.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권세, 능력,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요한복음 1장 12절에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살다가 내가 하나님을 영접해야 되겠다 생각이 들고 내가 하나님을 좀 멀리 떠나서 살았다 생각이 되면 ‘주여 믿습니다!’ 그것을 계속 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렇게 하면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시고, 변하여 새 사람 되고, 능력과 권세와 생명이 우리에게 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어디에 이르렀는지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22-24절에,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준 복음에 참여하는 사람은 이제 하늘의 시온산에 참여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도성에 참여한 사람이고, 천만 천사가 있는 나라에 참여한 사람이고, 하늘에 기록된 장자의 총회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참여했습니다.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에 참여했습니다. 이제 하늘나라에 가면 의인들의 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언약의 중보와 중보 예수에 참여합니다.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예수의 피에 참여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아주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의 피가 내게 있다고 말하면 천사가 벌벌 떱니다. 하늘나라 갈 때에 천사들이 천국 문에서 지키고 있다가, 누가 들어가려고 하면 ‘너 어떻게 여길 들어가려고 하느냐?’라고 물어본답니다. 천사가 물어보면 다른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나는 뭐가 있습니다, 박사 학위가 있습니다. 나는 또 무슨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무얼 잘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는 것도 다 쓸데없습니다. 그저 예수의 피가 내게 있다고 하면 천사는 벌벌 떨면서 ‘아, 들어가라, 들어가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가슴 쭉 내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먼저 간 사람들은 벌써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지금 영광 중에 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3. 복음을 믿는 사람은 진동치 아니할 나라를 이루어나감

그런데 이 복음을 받은 사람은 이제 거역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거역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라고 말했습니다. 땅에서 말한 율법을 거역한 자도 심판, 즉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했는데 하늘에서 예수님이 찾아와서 말씀해주신 이 복음을 거역하면 어떻게 심판을 피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너희에게 주어서 구원해주었으니까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본문 2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진동치 못할 나라를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진동할 것들이지만, 이제 복음을 믿는 사람은 진동치 아니할 나라를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진동하지 않는 것이란, 없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을 행한 사람의 외부적인 것은 다 진동해서 없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동하지 아니할 영의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진동치 아니할 나라를 이루어나가는 중에 있습니다. 믿는 일 하는 것은 진동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믿음 지킨 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순종한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다 진동이 되어도 그것은 진동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믿음 지키는 것, 순종하는 것, 영이 산 것,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 그것은 천지가 없어져도 안 없어집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한 것,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한 일, 그것은 진동하지 않습니다. 또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만든 일, 만들어나가는 것은 진동하지 않습니다. 믿음 지키는 것은 진동하지 않습니다. 순종한 것은 진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역한 것은 다 진동합니다. 심판 받아서 없어집니다. 그러면 이제 이렇
게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히브리서 12장 1-2절 상반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즉, 예수를 바라보고 달음박질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광을 바라보고 달음질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고 달음질을 해야 합니다. 달음질을 해서 만들어진 것은 영원히 진동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다 진동합니다. 세상일은 다 진동하여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음질한 것은 영원히 진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말했습니다. 죄와 싸워서 이긴 것은 진동하지 않습니다. 이겨야 됩니다. 이겨야지 지면 다 진동합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죄가 들어오려고 할 때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양보하고 지는 것은 전부 다 없어집니다. 양보해서 돈 번 것은 다 없어집니다. 진리를 양보해서 권세 얻는 것도 다 없어집니다. 세상에 진리를 양보해서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다 없어집니다. 안 없어질 것은 예수님을 향해서 달음박질하고 또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운 것입니다. 또 징계를 받을 때에 계속 회개하여 죄에서 나오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음질하고 그 다음에 순종하고, 그래서 은혜를 받아 경건한 생활을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진동하지 아니할 나라를 받았으니까 그 진동하지 아니할 나라를 점점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 나라가 점점 커져야 됩니다. 자기가 만들어져야 됩니다. 자라나야 됩니다. 순종한 것이 많아져야 됩니다. 달음질한 것이 많아져야 됩니다. 죄와 싸워서 이긴 것이 많아져야 됩니다.
이긴 것이 많아져야 진동하지 않을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기는 것이 없고, 죄만 짓고 세상에 빠지고 물질 따라가면 안 됩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행하다가 망하지 말고, 한 그릇 식물을 위해서 믿음 팔아먹는 에서와 같이 불쌍한 사람이 되지 말고 이제는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큰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의 자녀가 되었으니까 이제 순종해서 점점 진동치 아니할 나라, 진동치 아니할 인격, 하나님의 것을 점점 이루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는데 이대로 나가면 안 됩니다. 마지막 날 심판이 있습니다. 그 심판대를 향해서 우리가 준비하면서 진동하지 못할 나라를 잘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2017년 11월 29일 수요일

히브리서 12:14-17 교회 생활에 대한 권면.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교회 생활에 대한 권면
히브리서 12:14-17

1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5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16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 하라 17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1.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

본문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는 말입니다. 즉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여야 합니다. 화평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습니다. 그러나 싸우고 다투면 마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할 수 있는 대로 화목하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화목을 하려면 희생이 들어가야 되고, 남의 짐을 자기가 지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희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끼리도 서로 화목하여야 합니다. 원망하지 말고, 자기가 책임을 지면 화목이 됩니다.

어떤 집에서, 지붕 위에 올라가 호박을 따게 되었습니다. 시아버지가 호박을 따서 내려 보내면 아래에서는 며느리가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호박을 따서 내려 보내다가 며느리가 잘못 받아서 호박이 땅에 떨어지면서 비싼 약통을 깨뜨렸습니다. 그것을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습니다. 누가 원망하겠습니까? 시아버지부터 “눈깔이 썩어져서 그것을 못 받았느냐?” 하며 원망할 수 있습니다. 또 며느리는 “잘 좀 내려 보내시지 그렇게 벌벌 떨며 내려 보내니까 내가 어떻게 받겠느냐” 하며 원망할 수 있습니다. 아들도 원망하려면 할 수 있습니다. “젊은 것, 늙은 것, 집안에서 잘들 놀고 있다”고 하며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화목하는 가정이라면 아들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올라가서 땄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올라가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할 것이고, 시어머니는 “내가 약통을 거기에 놓지 말고, 다른데 두었어야 했는데 거기에 두어서 나 때문에 깨뜨렸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시아버지는 “내가 잘못 내려 보내서 깨뜨렸다”고 할 것이고, 며느리는 “제가 잘못 받아서 깨뜨렸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온 가족이 다 화목이 됩니다. 또 이런 가정이 잘됩니다.

이와 같이 화목하는 가정은 서로 “내가 잘못했다”고 하며 나갑니다.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돌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자기가 책임을 지고 나갑니다. 그리고 서로 용납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는 잘하고, 다른 사람은 잘못했다고 하면 싸웁니다. 가정에서도 남편은 자기가 잘했다고 하고, 부인은 남편이 잘못했다고 하면 밤낮 싸우다가 망합니다. 그러므로 화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화평이 없으면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속이 뒤숭숭하고, 복잡한데 그런 심정으로 어떻게 믿음을 지키겠습니까? 화평하는 마음을 가지면 믿음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화평하면 하나님이 백배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손해를 보아도 화평하며 나가면 하나님이 몇백배 더 나은 것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화목하기를 힘써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란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 성도가 두려워해야 할 것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가 있는가 두려워 할 것

본문 15절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두려워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란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으라는 말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로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지는 것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쓴 뿌리로 많은 사람이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할 것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라고 하였는데, 교회 안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할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쓴 뿌리는 구원운동을 방해하고 손해주는 자입니다. 또 잘못된 신앙 사상을 전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자는 교회에 큰 손해를 줍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쓴 뿌리가 나면 성도들이 합심하여 뽑아내야 합니다.

음행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할 것

본문 16-17절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음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고전 6:18에, 모든 죄는 다 몸밖에 있지만,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음행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자가 있을까 두려워할 것

그 다음에는 창 25:33-34에,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는데,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얼마나 망령된 것입니까? 사냥하느라고 하루 종일 먹지 못하고 돌아와, 야곱이 팥죽 쑤는 것을 보고 “팥죽 좀 달라고” 하니까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면 준다고 하였습니다. 배가 고파 죽게 생겼는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잘 됐습니까? 하루 굶으면 죽습니까? 또 이틀 굶으면 죽습니까?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장자의 명분과 바꾸어 팔았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배고픈 것만 귀한 줄 알고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긴 것입니다. 
즉 장자의 명분은 그다지 귀중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먹는 게 귀중하고, 물질이 귀중하고, 세상이 귀중합니다. “장자의 명분은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괜찮다”는 것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자의 명분이 무엇입니까?

장자의 명분은 
첫째,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창 12:2-3). 
둘째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창 15:5; 22:18). 나무로 말하면 원줄기가 있고, 원줄기에 붙어 있는 곁가지가 있습니다. 원줄기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입니다. 이 원줄기가 장자의 명분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받으려면 원줄기에 참여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셋째는 물질보다 내세의 복을 받으려는 것이 장자의 명분입니다. 
넷째는 선도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장자의 명분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인도할 자리에 서는 것이 장자의 명분입니다. 복음을 전하며 다른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장자의 명분입니다. 그러나 “천당에만 가면 된다” 고 하며 믿는 일에 힘쓰지 않고 뒷전에만 있는 것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는 에서와 같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원줄기에 참여하겠는가? 하며 원줄기에 참여하려고 힘써야 하지, 뒷전에나 앉아서 원망, 불평이나 하는 사람은 사람구실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즉 곁가지로 돌아가지 말고 원줄기에 참여하여야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원줄기에 참여한 것 같습니다. 김현봉 목사님한테 인도 받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김현봉 목사님의 구원운동에 참여하며 받들어 나갔습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나가다 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나아오게 됐습니다. 하여간 그 주동 세력에 참여하는 신앙이 좋은 것입니다. 또 그것이 장자의 명분입니다. 그 다음에는 현세의 복보다 내세의 복이 장자의 명분이라고 했는데, 에서는 내세의 복보다 당장 먹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이것이 장자의 명분을 파는 것으로 믿음을 파는 것입니다. 돈 얼마에 믿음을 팔아먹고, 세상 명예 권세에 믿음을 팔아먹습니다. 그것은 에서와 같은 사람입니다. 장자의 명분에 잘 참여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을 희생해서라도 장자의 명분에 참여하는 것을 귀한 것으로 알고, 항상 장자의 명분에 참여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에서가 나중에 눈물을 흘리면서 장자의 축복받기를 구했으나 기회가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 전까지가 회개할 기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하며, 장자의 명분에 참여하는 저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히브리서 12:5-13 주의 사랑의 징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주의 사랑의 징계
히브리서 12:5-13

5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9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10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11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12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저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12:5 또 하나님께서 아들들에게 하듯 너희에게 말씀해 주신 권면을 잊었다. "나의 아들아, 주님의 훈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마라. 

12:6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훈계하시고,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다." 

12:7 훈계를 참아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아들같이 대우하신다. 아버지가 훈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 

12:8 모든 아들이 받는 훈계를 너희가 받지않는다면, 너희는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다. 

12:9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훈계하여도 우리가 존경하니,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는 더욱 복종하여 살려고 하지 않겠느냐? 

12: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잠깐 동안 훈계하였으나, 영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도록 훈계하신다. 

12:11 모든 훈계가 그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것으로 단련된 자들에게는 의와 화평의 열매를 맺게 한다. 

12:12 그러므로 너희는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어긋나지 않게 하고 고침을 받게 하여라. 


1. 징계 받을 때의 자세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문 5-6절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 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징계는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면 징계가 오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라고 한 말씀은 징계를 받을 때에 무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즉 징계 받을 때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징계를 경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도가 안 되는 것도 징계이고 하나님이 멀어지는 것도 징계이고 은혜가 점점 떨어지는 것도 징계입니다. 믿는 일이 잘 안 되는 것도 징계입니다. 징계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면으로 징계하십니다. 물질을 통해서 사업을 통해서 징계하십니다. 몸에 병나는 것, 자녀들 문제, 가족 문제 등이 잘 안되고 실패하고 불순종하고 불량하게 나가고 세상에 빠지는 것들이 다 징계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마지막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징계 받아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징계가 왔을 때에 경히 여기지 말고 즉시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내게 징계가 왔다’ 하고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무엇부터 징계라고 했습니까? 기도가 안 되는 것, 기도 안 되는 것부터 징계입니다. 그리고 믿는 일 잘 못하는것도 징계입니다. 그럴 때에는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하고 즉시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주님의 사랑을 감사하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려움을 징계로 알고 회개하며 바로 서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징계로 여기지 않고 나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러면 운전사가 잘못해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며 상대방 운전사만 원망하고, 자기는 회개할 줄 모릅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자신이 병신이 되었어도 회개할 줄 모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징계하신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징계를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여러 면으로 징계가 올 때에 징계를 무시하는 사람은, 징계를 징계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하나도 징계가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되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하며 나갑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징계를 통해서 회개하고 바로 섭니다.

낙심하지 말라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나를 사랑해서 이런 꾸지람을 주신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꾸지람을 주시는 것이지, 사랑하시지 않으면 꾸지람을 안주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잘못했을 때에 바로 세우려고 채찍질을 하지, 돼지는 아무리 잘못해도 채찍질 하지 않습니다. 똥칠을 하고 다녀도 가만히 두고, 밥통을 뒤집어 엎어도 가만히 둡니다. 조금 있다가 잡아먹을 것이므로 징계할 가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바로 세워서 쓰시려고 징계하시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올 때에는 “하나님이 날 사랑하셔서 이렇게 징계 하시는구나, 참 감사합니다, 나를 돼지와 같이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취급해 주시는구나”하며 감사히 받아야 합니다.

본문 7절에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해서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잘못하였을 때에 바로 고쳐 주려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서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합니다. ‘육신의 부모도 이렇게 아들을 위해 징계하는데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입니다.

즉시 회개하고 바로 서라

본문 8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뻔히 잘못 나가는데도 징계를 받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잘못하였을 때에 즉시 징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잘못할 때에 즉시 징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며, 모아 놓았다가 이따금 한번씩 징계 받는 사람은 중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일생동안 가만히 두셨다가 죽을 때에 징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생동안 아무리 잘못했어도 가만히 내버려 두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되어 나갑니다. 사업도 잘되고 몸도 건강하고, 자녀도 잘됩니다. 이렇게 징계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까? 잘못할 때에 즉시 징계 받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시편 73:14에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루라도 거저 놔두면 안 되겠으므로, 즉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하루를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죄만 짓고 살면 하루가 손해나지 않습니까? 하루가 손해나면 그만큼 영원히 손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징계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징계를 받으면서 징계인 줄 모르고 나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징계를 받을 때에 징계인 줄 알고 즉시 고쳐야 됩니다. 병이 들은 사람은 병이 들은 줄 알고 즉시 초기에 고쳐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병이 들었는데 병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병원에 가보니까 암이 3기입니다. 초기에 알았어야 했는데, 3기까지 갔으니 다 퍼졌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병도 초기에 고쳐야지, 병이 다 퍼지면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있으면 고칠 수 있겠으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아니면 못 고칩니다. 그러므로 조금 아프면 “괜찮다”고 하면서 병을 기르지 말고, 초기에 발견해서 고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병이
있어서 병원에 갔는데, 검사 도중에 자궁암 초기로 발견이 되어 빨리 수술을 받아 멀쩡하게 나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징계도, 징계를 받을 때에 즉시 깨닫고 바로 서야 희망이 있습니다. 잘못하였을 때에 즉시 징계하는 사람이 있고, 혹은 몇 달, 몇 년 모았다가 한꺼번에 징계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일생동안 가만히 두었다가 나중에 죽을 때 한꺼번에 징계당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죽을 때에 마지막에 한꺼번에 징계 받고 죽으면 그다지 복이 없습니다. 그래도 택한 백성이므로 회개하고 천국에 가긴 갑니다.

본문 12-13절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하였습니다.“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라고 하였는데, 징계를 받아서 피곤해지고 연약해진 것을 일으켜 세우라는 것입니다. 즉 징계를 받아 낙심하고 연약해지기 쉬우나 회개하여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가면 희망이 있습니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란 징계가 올 때에 곧은 길, 즉 바른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부터 탈선이 되었나 찾아서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하였는데, 왜 저는 다리입니까? 이것은 징계를 받아 불완전한 몸이 된 것을 말합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난 것과 같습니다(창 32:25,31). 이것을 고치려면 신앙의 저는 다리부터 고쳐야 합니다. 신앙의 저는 다리는 예배시간에 가끔 빠지는 것, 성경을 매일 읽다가 가끔 중단하는 것, 매일 기도를 하다가 가끔 하지 않는 것 등입니다. 저는 다리는 고침을 받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에 회개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밤에 잠이 안와서 “하나님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잠이 안 오는 것입니까?”하며 일어나서 회개했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이전에 김현봉 목사님은 자정 12시면 깨신다고 합니다. 어떻게 12시에 깰 수 있는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요새 나이가 많아지니까 이해가 됩니다. 보통 자야 될 때에 잠이 안 오면 회개하여야 됩니다. 나이 많아서 일찍 깨는 것은 괜찮을 것 같고, 자야 되겠는데 잠이 안 오는 것은 그것이 징계인줄 알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징계가 임할 때에는 여러 면으로 옵니다. 자녀들을 통해서 징계하실 때가 있는데 그때에 징계인줄 알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할례 받는 것을 방해했을 때에 모세에게 징계가 임했는데(출 4:24-26), 그때에 십보라가 회개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가족 중에 누가 징계 받을 때에도 가족의 일원이 되면 그 사람도 같이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사업이 잘 나가다가 파산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징계인줄 알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이북에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징계가 지금 이북에 전국적으로 임한 것 같습니다. 어떤 동네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만 가만히 앉아 죽겠느냐?”하며 부잣집에 들어가 있는 것을 다 빼앗아다가 감옥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얼마나 큰 징계입니까? 이와 같이 여러 면으로 징계가 옵니다. 그때에 저는 다리로 하여금 온전한 다리를 만드는 신앙을 가진 자가 복이 있습니다.

징계를 달게 받아라

그러므로 즉시 징계 받는 것이 진짜 복입니다. 징계가 있을 때에 달게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신 줄 알고 감사히 받아야 됩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징계를 받을 때에 복종하라

본문 9절에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징계 받을 때에 복종해야 삽니다.

2. 징계의 유익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함

본문 10절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징계하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즉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아들로 대우해서,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려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안받는 사람보다 징계를 받는 사람이 큰 유익입니다.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고 하였는데, 징계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엡 4:24).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음

본문 11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입니다. 즉 징계가 임할 때에는 큰 일이 난 것 같고, 살 길이 막힌 것 같고, 죽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징계로 인하여 회개하면,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습니다. 즉 징계 중에서 성도를 연단시키시고, 징계 중에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하고, 징계 중에서 거룩하게 만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히브리서 12:1-4 달음질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달음질하라
히브리서 12:1-4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4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1. 푯대를 향해서 달음질하라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했습니다. 경주는 달음박질을 가리킵니다. 우리 앞에 당한 달음박질을 잘하라, 경주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계속 달음박질한다고 했습니다. 푯대를 향해서 달음질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앉은뱅이나 절름발이와 같이 달음박질하지 못하는 병든 사람들, 달음박질 잘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달음박질 잘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달음박질 할 때에는 푯대가 있는데, 푯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날마다 달음박질하는 것입니다. 달음박질하다 보면 점점 예수님이 가까워집니다. 점점 예수님의 빛을 받게 됩니다. 달음박질을 잘하면 점점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또 달음박질을 잘 하는 사람은 점점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더 많이 발견해가게 됩니다.
그리고 달음박질 잘하는 사람은 점점 예수님을 더 얻어가고 점점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어 갑니다.

빌립보서 3장 7∼9절에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했습니다. 좀 더 달음박질해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달음박질하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고 했습니다.
또 빌립보서 3장 10∼14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달음박질 하노라, 좇아가노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달음박질을 계속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달음박질하지 않는 신앙은 병든 신앙입니다.

진보가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 믿어도 달음박질하지 않는 신앙은 진보가 없고 자라나는 것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퇴보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달음박질하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달음박질하면 점점 예수님이 더 가까워집니다. 달음박질하니까 가까워질 것 아닙니까? 달음박질하면 예수님의 사랑을 점점 더 깊이 깨달게 됩니다. 감격이 넘칩니다. 달음박질하는 신앙은 예수님을 얻습니다. 달음박질하는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달음박질 잘하면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의 주만 남아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달음박질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내내 그 자리고 또 퇴보합니다. 전진하지 않으면 퇴보합니다. 전진하면 점점 더 하늘나라가 가까워지고 전진하지 못하면 점점 더 퇴보합니다. 찬송가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마음 속에 이루어지니’와 같이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더 가깝고 더 가까운 하늘나라 하룻길 밖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소망이 점점 더 견고
해집니다. 달음박질하는 사람의 믿음은 점점 신령한 믿음으로 되어가고 독실해집니다. 또 달음박질하는 신앙은 사랑이 점점 많아집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점점 자라납니다. 진보가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점점 더 견고해집니다. 하늘나라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하늘나라가 이제는 자기 속에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달음박질하는 신앙입니다.

2.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벗어 버리고 달음질하라

그러면 달음박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라고 했습니다. 달음박질하려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달음박질 하는데 무거운 것들이 있으면 잘 하겠습니까? 잘 하지 못합니다. 또 얽매이는 것, 발목 잡혀 놓고 달음박질하려면 달음박질할 수 없습니다.
즉 죄가 있으면 달음박질하지 못하고 무거운 것을 지고 가려면 달음박질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무거운 짐 지고 가는 사람들은 그 짐을 다 예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잘 가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했는데, 죄가 있으면 달음박질하지 못합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따로 말한 것을 보면 세상 짐을 자기가 지고 나가려는 것이 무거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맡기지 않고 자기가 짐을 지고 가는 것이 무거운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는데 안 맡기면 그것이 무거운 것이 됩니다.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면 하나님께서 권고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내일을 주께 맡겨 놓읍시다. 어떻게 될까 염려하지 말고 주께 맡겨 놓읍시다. 뭘 먹고 살까 염려하지 말고 주께 맡겨 놓읍시다. 장래에 또 어떻게 살까? 그것도 주께 맡겨 놓으십시다. 하나님께서 다 먹고 살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집의 아이들이 밥 달라고 할 때에 어머니의 밥을 달라고 그럽니까? 아닙니다. 내 밥 달라고 합니다. 정정당당히 먹고 살 것을 하나님께서 다 주셨기 때문에 자기 밥 먹고 살지 그 부모 밥 먹고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실 때에 다 먹고 살게 해 놓고 내신 것입니다. ‘하늘은 녹 없는 사람을 내지 아니하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녹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 먹고 살게 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내실 때에 이 사람이 뭘 먹고 살아야 될까? 다 준비하고 내신 것입니다. 왜 먹을 것이 없는가? 하나님께서 해 놓으신 것을 찾지 못해서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낮아지지를 않습니다. 낮은 곳 가서 먹어야 하는데 높은 곳만 다니니까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염려는 마귀에게 속한 것인데, 염려를 다 주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내일 일도 주께 맡기고 오늘 일도 주께 맡기고 장래 일도 주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께 맡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아이들 문제, 가정 문제, 여러 가지 염려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다 주께 맡겨 놓으십시오. 살든지 죽든지 맡겨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만 순종하면 됩니다. 또 죄는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그 다음에 달음박질하는 것입니다. 인내로써 참고 견디며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것입니다.

3. 예수를 바라보며 달음질하라

본문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주’라는 것은 ‘믿음의 주장자’라는 뜻입니다. 또 온전케 하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믿음의 주장자요,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신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의 말씀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본 받아 달음박질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니까 예수님이 어떤 예수님입니까? 우리의 믿음의 주장자고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인도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또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잘 참으셨다는 뜻입니다. 앞에 있는 즐거움이라는 것은 모든 택한 백성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와서 같이 찬송하는 것입니다. 또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앞에 있는 즐거움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가 닥칠 때에 그 고난만 생각한 것이 아니고 앞에 있는 즐거움을 생각하셨습니다. ‘앞에 어떤 즐거움이 온다, 승리가 온다, 찬송이 온다, 대승리가 온다, 또 죽어도 부활한다, 부활해서 모든 백성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 이 성도들이 다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같이 영생복락을 누린다’라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요, 부끄러움의 십자가입니다. 찬송가에는 ‘쓰리고 아픈 십자가, 나 위해지셨다’고 했습니다. 쓰리고 아픈 것이 얼만큼이었겠습니까? 한 사람 죽는 것만 해도 아픈데 억만 사람이 죽는 고난이 다 거기 있으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얼마나 쓰렸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잘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면서 고난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4. 참으신 자를 생각하며 달음질하라

3절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아주신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오래 참아주신 주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참아주신 주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뭐 괜찮아서 가만히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야 하겠지만 그래도 오래 참아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 참아주신 주님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5. 죄와 싸우며 달음질하라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와 싸우면서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죄를 벗어버리고 회개하면서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또 무거운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죄와 싸우면서 달음박질하라고 했습니다. 계속 시험이 있고 죄도 계속 들어오려 합니다. 마귀는 계속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한번 마귀가 시험하고 아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고 얼마 동안, 잠시만 떠났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지고도 마귀가 잠시 동안만 떠난 것을 보면 또 온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또 옵니다. 회개했다, 죄를 끊어 버렸다, 하고 다 된 줄로 알면 안 됩니다. 마귀가 또 올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오면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서 달음박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죄를 회개했다고 해도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계속 마귀가 오는데 물욕(物慾)과 정욕(情慾)과 사욕(私慾)을 이용해서 옵니다. 세 가지로 마귀가 들어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돌로 떡 덩어리 해먹어라(물욕), 성전에서 내려 뛰어라(명예심), 천하만국을 향해 한번 절하라(영광심)’고 했습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말세에 가서도 물욕과 정욕과 사욕이 시험거리입니다. 심을철 목사님 말이 마귀는 발전성이 없어서 내내 세 가지, 그것을 가지고 한다고 합니다. 옛날 에덴동산에서나 예수님
때나 말세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세 가지가 뭡니까? 물욕, 정욕, 사욕입니다. 마귀가 그것 세 가지를 통해 들어오는데 그것을 잘 막아야 합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생명 내놓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피 흘리기까지는 너희가 싸우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33-40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
히브리서 11:33-40

33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36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40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 믿음의 능력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고 의를 행하고 약속을 받으며 사자의 입을 막음

본문 33절에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나라들을 믿음으로 이겼다고 했습니다. 즉 삼손과 기드온 같은 사람들이 아말렉이나 블레셋 나라가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침략해 올 때에 그들이 믿음으로 나가서 다 이겼습니다.

또 “의를 행하기도 하며”라고 하였는데, 엘리야와 같은 사람은 의를 행했습니다. “약속을 받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받은 것, 가나안 땅을 받은 것 등은 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믿음으로 사자의 입을 막았고(단 6:7-23), 다윗과 삼손도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삼상 17:34, 삿 14:6).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고 칼날을 피하고 강하게 되며 진을 물리침

본문 34절에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 가운데에서도 믿음으로 죽지 않고 나왔습니다(단 3:19-30).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골리앗의 칼날을 다윗이 피했습니다. 또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연약하여 로뎀 나무 아래에 쓰러졌으나 믿음으로 강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기드온의 삼백명 용사가 믿음으로 미디안을 다 물리쳤고 (삿 7:22-23), 다윗이 믿음으로 블레셋 진을 물리쳤습니다(삼상 17:51). 다 믿음으로 했습니다.

믿음으로 죽은 자를 부활로 받고 악형을 받음

본문 35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들은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라고 하였는데, 사르밧 과부는 죽은 자기 아들을 엘리야가 기도해 줌으로 다시 살림을 받았고(왕상 17:21-22), 수넴 여자도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사가 기도함으로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왕하4:34).

그 다음에는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는데, 더 좋은 부활을 받으려고 악형을 받았지만 구차히 면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5:4에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많은 환난과 악형을 이긴 자들은 이 길을 자원해서 갔습니다. 또 죽는 길로 자원해서 갔습니다. 왜 자원해서 갔습니까?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고 자원해서 간 것입니다(롬 8:13). 믿음으로 생명을 바치면 더 좋은 부활을 받습니다. 즉 부활할 때에 영광과 존귀와 상급이 크고 더 좋은 면류관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진들은 악형을 받을 때에 진리
를 양보하거나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고 생명을 내놓고 싸워 나갔
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다 죽을 것인데, 이 죽을 것이 생명의 역사, 믿음의 역사에 삼킨바 된 것입니다. 즉 믿는 일을 하다가 자기 목숨까지 구원 역사에 삼키워지면 영원한 영광의 부활체로 나오게 됩니다. 즉 이 세상에서 잠시 편안히 사는 것보다 예수를 위해서 죽으면 영원한 영광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더 좋은 부활을 받으려고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36-37절에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톱으로 켜는 것과”라고 하였는데, 이사야가 믿음을 지키다가 톱으로 킴을 당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톱으로 켠다는 것은 관속에 산 사람을 집어넣고, 관을 세워 위에서부터 아래로, 절반을 톱으로 쪼개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관 속에 있는데 위에서부터 톱으로 켜 내려가는 겁니다. 즉 머리부터 켜내려가면서 몸까지 쪼개어 내려가는 겁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이런 고난도 다 이겼습니다. 죽었지만 사실은 이긴 것입니다. 톱으로 켜는 사형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정작 당하는 사람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밖에서 “톱 가져와라”해서 몇 번 왔다, 갔다하면 머리에 닿을 것 아닙니까? 머리에 닿은 다음에는 한두 번만 왔다 갔다 하면 정신을 잃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정신을 잃어 버렸으니까 모릅니다. 그러므로 톱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약 두 번 정도만 참으면 될 것 같습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이런 고난을 다 당했습니다.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라고 하였는데, 제사장 아히멜렉을 사울 왕이 칼로 죽였습니다(삼상 22:11-19). 또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라고 하였는데, 큰 핍박할 때에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다닌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란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큰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가산이나 직장을 빼앗겨 궁핍과 학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본문 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며 핍박하므로 신앙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로 도망쳐 다녔습니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양과 염소가 가는 것처럼 산으로 도망쳐 다녔습니다. 그럴 때에 먹을 것이 없어서 얼마나 궁핍을 당했겠습니까? 동네에는 내려오지 못하니까, 산으로 다니면서 나무껍데기 등 이런 것들로 양식을 삼으며 환란을 당했습니다. 요새, 산딸기 나는 계절인데, 산딸기 먹을 때에 무슨 생각이 나는가 하면, 6.25사변 때에 피난 다니다가 산에서 산딸기 따먹은 생각이 납니다. 그 때에 산딸기 따먹고 다녔는데, 이와 같이 신앙의 정조를 지키던 사람들이 이러한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고 하였는데,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는 말은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것은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음식으로 말하면 좋은 음식입니다. 그런데 위 병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음식일지라도 먹지 못합니다. 죽이나 먹어야 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이고, 세상에서 모본이 되는 사람이고,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인데,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기독교 핍박으로 산중으로 유리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였습니다. 또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다고 했는데, 암혈은 돌로 된 굴을 말합니다. 토굴에 유리하였다고 했는데, 소아시아에 가보면 “카타콤”이라는 지하 동굴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토굴입니다. 과거에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토굴 속에 들어가서 여러 해 동안 거기에서 살았습니다. 토굴에서 살다가 죽으면 거기에서 장사하고, 또 자손들도 토굴에서 살다가, 토굴 속에서 장사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많은 해골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 그 분들이 얼마나 믿음을 지키느라고 환난을 많이 겪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굴속에서만 산 것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이렇게 신앙을 지켰습니다.

2.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내어 놓고 나간 사람들

그러면 믿음을 지킨 사람들 가운데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나라를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싸워서 이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느라고 생명을 내어 놓고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생명을 내어 놓고 나간 사람들

둘째는 의를 위해서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라고 생명을 내어 놓고 나갔습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지키는 것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며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기도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이 내려왔어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열왕기상 8:46-50에 예루살렘 성전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시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고 말씀을 지켜야겠다, 사자 굴에 들어가도 말씀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다(단 6:11-18). 그러나 다니엘이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다니엘을 상하게 하지 못했습니다(단 6:19-23).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더 좋은 부활을 위해 고난을 당하며 나간 사람들

그 다음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좋은 부활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35절에 악형을 받되 더 좋은 부활을 바라보면서 구차히 면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죽은 성도가 신령한 몸으로 장차 부활할 것을 말합니다. 즉 “믿음을 지키다가 죽으면 더 좋은 부활을 얻는다”라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이겼습니다.

믿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고난을 당하며 나간 사람들

그 다음에는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이런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런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즉 믿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심령의 세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렇게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습니다. 믿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 가려고 하고, 우리의 기도를 빼앗아 가려고 하고, 우리의 열심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또 예수님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양보하는 것은 예수님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즉 신앙을 양보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예수님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조들은 예수님과 같이 살려고, 생명의 길을 걸어가려고, 여러가지 환난을 다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세상 나라를 다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 환난, 고난, 핍박 등을 이기면서,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3.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고난을 당하면 하늘의 상이 있음

마태복음 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그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앞서간 믿음의 선조들이 이렇게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싸워 이겼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기며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 환난, 대적하는 세력들을 이겨야 됩니다. 이기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나갑니다.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이겨 나가야 합니다. 이긴 자들에게는 하늘나라에 큰 상급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42에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 고린도전도 9:18에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 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라고 하였는데, 희생하는 것이 상입니다. 즉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상입니다. 얼마나 주를 위해서 희생하였는가? 그러므로 희생할 줄 알아야 됩니다.
희생할 줄 모르는 사람은 상이 없습니다. 주를 위한 수고는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고난당한 것은 다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남아 있습니다.

순교는 제일 큰 상임

제일 큰 상급이 되는 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입니다. 즉 순교 당하는 것입니다. 순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 됩니다. 순교를 하지 못해도 주를 위해서 희생 했으면 그것이 하늘나라의 상급입니다. 얼마나 희생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물질에 대해서 얼마나 희생했는가? 희생한 것만큼 하나님 앞에 가서 상을 받습니다.

4.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많은 증거를 얻음

본문 39-40절에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하였는데,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말합니다. 약속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오실 그리스도를 멀리 바라보며 믿고 즐거워하여, 큰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믿음을 잘 지켜 많은 증거를 얻었습니다. 즉 구약의 성도는 믿음으로 증거는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5. 신약시대의 성도에게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심

구약의 성도는 모판과 같음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신약시대 성도들을 위하여 구약시대 성도에게 주신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하여 오셔서 모든 진리를 나타내 주시고, 십자가에서 구속해 주시고, 부활 승천하실 것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모든 진리를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과 진리에 대하여 밝히 나타내 주시고,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속을 완성해 주시고, 부활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 성도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모판과 같습니다.

신약의 성도를 통해 결실함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통해서 결실한다는 것입니다. 봄에 벼 종자를 담가서 모판을 만들어, 모내기를 하면 자라나고, 가을에 가면 결실하는데, 이와 같이 결실은 신약시대에 와서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는데, 저희는 구약 시대 성도로, 구약 시대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 나간 것은 그리스도가 앞으로 오셔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할 것을 위해서 기초 공사한 것이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면 그 기초 위에 집을 잘 짓는 것이 신약시대의 성도를 통해 결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실하지 못하면 일 년 농사한 것이 온전함이 되지 못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일 년 농사하느라고 수고 많이 하지 않습니까? 봄철에 못자리를 하려면 논의 물이 얼마나 차갑습니까? 얼음을 깨고 들어가서 볏 종자를 뿌려야 됩니다. 그 때에는 장화가 없어서 그저 맨발로 들어갑니다. 못자리하려고 맨발로 들어서면 칼로 발을 싹싹 베는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발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발이 다 없어졌나?”하고 발을 보면 그대로 있긴 있습니다. 그만큼 차갑습니다. 요새는 장화가 있어서 신고 들어가지만 이전에는 장화가 없어서 그렇게 힘들게 못자리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모가 자라면 모내기를 하는데, 그 때에는 얼마나 허리가 아픈지, 어떤 사람은 허리가 너무 아파서 허리가 있나? 없나? 하며 만져보곤 했답니다. 그렇게 힘들게 모내기를 했습니다. 또, 김매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지 김을 매느라고 진땀을 다 빼야 됩니다. 또 가을에는 벼 베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요새는 기계로 베니까 쉽지만, 옛날에는 다 사람의 손으로 했기 때문에, 모내기 할 때와 벼베는 때가 제일 어려울 때입니다. 이렇게 수고를 많이 하여 길렀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해 농사는 헛농사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란 결실하지 못하면 내내 농사한 것이 온전함이 되지 못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농사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구약시대의 성도가 모판을 만들어 주었고, 그 다음에 모내기를 해주었고, 그 다음에 김을 다 매주었고, 자라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성도는 결실하는 때입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다 이루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루어 주었는가? 하면, 고난을 당하면서 이루어 주었습니다. 즉 생명을 내어 놓고 죽으면서까지, 또 토굴 속에 들어가서 몇 십 년 사는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구약시대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약시대 성도는 결실하는 때인데, 우리가 잘 결실하여야만 구약시대 성도도 온전해 집니다. 우리가 결실을 잘 하지 못하면 구약시대의 성도가 수고한 것이 다 헛된 데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결실하면 구약시대의 성도도 기뻐할 것이며, 구원역사도 완성되어 나갑니다. 즉 우리가 결실을 잘하면 하나님의 의도 완성되어 나가고,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운동도 완성되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이용당한 것만큼, 희생한 것만큼 상급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같이 우리가 생명을 내어 놓고 믿음으로 나가야 됩니다. 말씀을 지키며, 믿음을 지켜야 됩니다. 또 더 좋은 부활의 소망을 우리가 늘 가져야 합니다. 
나는 새벽에 기도할 때에 사도신경을 외우곤 하는데, 어디에 가서 멈춰지는가? 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에서 멈춰집니다.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처럼 나도 살아납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에는 구름타시고 오시는데, “나도 올라간다”는 소망을 가지고 사도신경을 외우곤 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확고히 가지고 나가는 자는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나가는 자는 어떤 환난도 이기며 나갑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세상이 못 이깁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기는 것입니다. 교회와 싸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교회와 싸와서 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실패합니다. 교회는 이기고 또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실을 잘하여야겠습니다. 우리가 결실을 잘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상으로 갚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아름답게 건설해 나갑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구약시대의 성도와 같은 믿음으로 기도하며, 생명을 내어 놓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지켜 나가면서 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히브리서 11:26-35 믿음의 발걸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믿음의 발걸음
히브리서 11:26-35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28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31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32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도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하고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으며,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11:27 믿음으로 그가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으니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처럼 여기고 인내하였기 때문이다. 

11:28 믿음으로 그가 유월절과 피 뿌리는 의식을 행하였으니 처음 난 것들을 죽이는 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11:29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넜으나, 이집트 사람들은 그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다. 

11:30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칠 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도니, 그 성벽이 무너졌다.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안하게 영접함으로써 불순종한 자들과 함께 멸망을 당하지 않았다. 

11:32 내가 무엇을 더 말하겠느냐?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과 선지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11:33 그들은 믿음으로 왕국들을 정복하기도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들을 받기도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하며, 

11:34 불의 세력을 꺾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데서 강하게 되기도하고 전쟁에서 용맹한 자들이 되기도하고 적진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11:35 여자들은 자신들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았으며, 또 다른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굳이 풀려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11: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였고 심지어는 결박과 투옥까지 당하였다. 

11:37 그들은 돌로 맞았고 톱으로 켜지고 검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은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면서 궁핍과 고난을 당하고 학대를 받았다. 

11:38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다. 

11:39 그런데 이들 모두는 믿음으로 증거는 받았으나, 약속된 것은 받지 못하였다. 

11:4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온전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셨다.

1. 상 주심을 바라본 모세의 신앙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김

본문 26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상이 있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능욕을 많이 받으면 상급이 크고 예수를 위해서 능욕을 적게 받으면 상급이 적고, 능욕 받은 것이 없으면 상급이 없습니다. 자,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을 받는 게 좋습니까? 안 받는 게 좋습니까? 받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를 위해서 고난 받아야 상급을 받습니다. 조금 받으면 상급이 적고 많이 받으면 상급이 큽니다. 얼마나 받으면 좋을 것 같습니까? 예수님을 위한 고난을 조금 받는 게 좋겠습니까? 많이 받는 게 좋겠습니까? 예. 많이 받으면 상급도 커서 참 좋겠지요. 사도바울은 얼마나 고난 받았는지 아십니까? 고린도후서 11장을 한 번 보도록 합시다. 사도바울에 비교하면 우리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절에,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클 것이 분명합니다. 수고도 넘치도록 하고, 옥에는 또 얼마나 많이 갇혔습니까? 한 번 갇히는 것은 그저 맛이나 보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많이 갇히고 매는 수없이 맞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고 했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가 제일 큰 매입니다. 제일 큰 매를 다섯 번 맞았다는 것은 서른아홉 대씩 다섯 번을 맞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얼마입니까? 백 구십 오대를 한 번에 맞으면 살지 못하는데, 서른아홉 대 맞고 얼마 있다 또 맞고, 나을만하면 또 맞는 것입니다. 매 맞아서 터진 것이 나을만하면 또 맞습니다. 얼마 후에 나을만하면 몇 달 후에 또 맞습니다. 또 세 번은 태장으로 맞았다고 했는데, 태장(막대기)로 볼기를 몇 번을 맞았다고 했습니까? 예. 세 번인데, 그것은 곧 죽는
고통입니다. 또 파선하는데 바다에서 일 주야를 깊은 데서 지내고, 또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과 굶고 춥고 자지 못하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주를 위해서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이 하늘나라 가면 상급이 많습니다. 상급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상 받을 것을 생각하니까 예수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게 더 좋다는 것입니다. 애굽에 모든 재물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는 것은 애굽에 모든 보화가 많지만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게 그 보다 더 큰 재물이란 말입니다. 세상 것은 모두 이 세상 떠날 때 없어질 것이 아닙니까? 하늘나라 가면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은 것이 더 큰 재물인 상급이 오는 것입니다. 세상 재물은 조금 있으면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고 하늘나라에 가면 영원한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상급을 쌓아 놓아야 됩니다. 영원한 상급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함

그래서 모세는 애굽 공주의 아들이라는 좋은 자리를 다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모든 향락을 전부 내어 놓았습니다. 누릴 수도 있지만 그거 다 내어 놓았습니다. 그 낙은 무슨 낙이라고 했습니까? 바로 죄악의 낙, 잠시 잠깐이면 없어지는 낙입니다. 또한 주를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해야 될 것 안 하고 누리는 것도 죄악의 낙입니다. 모세는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 백성 편에 서는 것이 좋습니다.
수넴 여자가 “나는 백성 가운데 거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사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인데, 무슨 군대 장관, 무슨 높은 자리 그것을 원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며, 거기에 말씀이 있는 것이고, 예배가 거기 있고, 그리스도가 거기 있는 것인데 얼마나 좋은가 말입니다. 아주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은 하늘나라 가서 큰 상을 받는 것입니다. 상급이 크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말씀에 참여함으로 얼굴에 광채가 남

그리고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는데 이것이 중요합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일 뿐만 아니라 그가 말씀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씀에 참여함으로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고린도후서 3: 7절에,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았는데 얼굴에 광채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의 광채인데, 말씀에 참여하니 그 말씀의 광채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의 심령 속에 있는 것이 그 얼굴에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말씀이 즐겁고, 말씀이 영광스럽고 그 즐거움과 영광스러운 광채가 얼굴에까지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직분에 모세가 참여했는데 그 직분에 참여하는 것은 말씀에 참여하는 것이고 또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직분에 참여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자체 속에 말씀의 영광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고난 받고,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에 참여하고 말씀에 참여하는 그런 사람은 속에서 말씀의 영광이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 인격이 그 말씀의 영광대로 이루어져서 그 인격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복음은 더 영광스럽습니다. 율법도 그렇지만 복음은
더 영광스럽습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사람은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 인격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고린도후서 3:18절에,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 같은 영광으로 화하고, 주의 말씀의 영광을 보니 같은 영광으로 화하였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말씀에 대한 직분을 가졌으므로 같은 영광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
은 것입니다. 얼굴이 환해집니까? 예. 환해집니다. 누구 얼굴이 환해집니까? 이 말씀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사람은 얼굴이 환해집니다. 변한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얼굴이 시꺼멓고 창백해서 돌아 다니더니 이 말씀에 참여하고 예배에 참여하고 이 은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에게 참여하고, 말씀의 영광에 참여하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환해진 것입니다.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아예 딴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큰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인격이 영광스러운 인격으로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역사하니 영광스러운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루어지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 그거 좋은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말씀에 사용되는 사람인데 성경말씀에 전도하고 돌아올 때는 기쁨으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기쁨으로 돌아옵니까? 그렇습니다. 전도하고 돌아올 때는 기쁨으로 돌아옵니다. 그 말씀을 전하는데 얼마 동안 사용된 것은 말씀의 도구로 사용된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그만큼 그 말씀대로 화해지는 것입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사용되고 하나님의 교회에 사용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고난 받는 데 사용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데 사용되는 것은
자신 자체가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 있는데 우리 교회 사람은 아닙니다. 그분이 어떤 교회에서 사찰집사와 같은 관리자로 취직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는 얼굴이 그렇지 못했는데 얼마 전에 보니까 사람이 변해도 아주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전에는 한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얼굴이 전보다 무척 달라져서 아주 거룩한 얼굴이 됐고, 점잖아지고 모든 게 다 달라진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여기 있었기에 이렇게 된 모양이로구나 싶었습니다. 여기 안 있고 다른 데 가서 다른 일했다면 이런 얼굴 가질 수 없고, 그 인품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잠시라도 쓰임을 당하면 영광스럽게 변화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당하는 것이 그만큼 복을 받습니다. 돈이야 뭐 적게 받든, 많이 받든, 안 받든 하나님께 쓰임 당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또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어가는 발, 그것이 아름답습니다. 그만큼 그 사람에게 영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의 영광이 그 인격 속에 이루어지고 그만큼 영광스럽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가지고 요즘 산을 넘어가는 사람들이 참 좋은 것입니다. 중국 가려면 무슨 산 넘어갑니까? 예. 장백 산맥도 넘어갑니다. 또 러시아 가려면 우랄 산맥을 넘어가야 됩니다. 우랄 산맥 넘어가서 모스크바나 알마타에 가는 것입니다.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그만큼 영광스럽게 되는데, 고난을 받지만 그 고난이 도리어 영광체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애굽의 공주의 아들 다 집어치우고, 또 애굽의 모든 재산 다 내놓고, 또 애굽의 모든 즐거움, 향락 다 내놓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은 것입니다. 애굽의 것은 잠시 후면 없어질 것이고, 이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은 영원한 것이고,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영원히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이며, 말씀에 참여하는 것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인데, 그 얼마나 좋습니까?

고난을 받을 만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말씀의 직분을 받았는데 이 직분 받은 것은 영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분에 대한 은사를 줍니다. ‘직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이 직분, 다시 말하면 말씀을 전하는 직분에 적합한 은사를 주었다는 말입니다. 직은, 직분에 대한 영광, 또 직능이 있습니다. 직분만 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능력을 줍니다.

마태복음 10: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 이 능을 주었습니다.

직능을 주셔서 내보냈다는 말입니다. 자, 이거 얼마나 좋습니까? 또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게 하는 그 능력을 주어서 내보냈습니다. 할만 하지 않습니까? 이거 안 하고 공주의 아들 하면 뭐가 좋겠습니까? 잠시 있으면 다 없어질 것이고 이것은 영원한 것인데 모세가 세상 부귀와 영화를 다 내어 놓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고 상 주심을 바라보고 나간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나가자고 했습니까? 상 받을 것을 바라보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상 받을 것을 보고 나가야 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박질하는 자들이 상 받을 것을 바라보고 나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하늘나라 가서 상 받을 것을 바라보고 거기에 참여하려고 달음박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이런 일 해야 합니다. 하여간 십자가를 지고 나갑시다. 그리고 말씀을 전해야 됩니다. 교회를 받들어야 됩니다. 교회 세워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적 부패한 존재라서 그 부패성들이 다 있지만, 그것을 저 밑에 두고 아예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맑고 깨끗한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성도에게 부패성이 있지만 그것을 다 밑에 깔아놓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예 일어나지 못하게 해서, 한계를 딱 그어 놓고, 그 위에 맑고 깨끗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요, 성령의 나라요, 성령의 사람들이요, 그리스도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거기 계시기에 성도가 즐거운 것이고 교회가 즐거운 것입니다. 교회가 아주 귀한 것입니다. 교회를 금촛대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세워나가고 교회에 봉사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주 귀한 일입니다. 심방하는 일도 아주 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심방하라고 하니까,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안 하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것을 다 빼앗기는 것인데 이거 안 하면 되겠습니까? 산동네여서 안 한다는 것입니다. 명륜동에 사는데 산동네로 가라하니 안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지를 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평지는 안 되겠다. 자기 몫의 십자가는 자기가 져야지 어디라고 안 가겠다고 하느냐 하면서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안 가겠다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잘 죽은 모습입니까? 쓸모없이 무용지물로 있다가 죽은 것입니다. 요긴하게 하나님의 일에 이용당해야 하는데 안 한다고 하니, 그 무용지물을 어디다가 쓰겠습니까? 집어치울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무용지물은 결국 내버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할 때 감사하면서 말씀에 이용당하고, 하나님의 나라운동에 이용당하고 복음에 이용당하면 이용당한 것만큼 자기가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해지는 것입니다. 이용되어야 할 사람인데 이용당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굴이 시꺼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광이 다 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용당하던 사람은 계속 죽을 때까지 이용당하십시오. 그게 큰 복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람은 또 하늘나라 가서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상급을 바라보고 이용당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면서 떠남

본문 27-28절에,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을 떠나라고 할 때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면서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을 먼저 알고 그 다음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게 믿음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말씀을 알고 믿고 순종하면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말씀 속에는 예수의 피가 있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 속에 하나님의 만능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또 그대로 성취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 순종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데, 말씀을 먼저 아는 게 중요하고 그 다음에 그대로 될 것을 믿는 게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일은 누가 해줍니까? 일은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그저 순종만 하면 됩니다. 알고 믿고 순종만 하면 됩니다. 또 일은 하나님이 다 해놓으신 것이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이 해 줄 것이고, 자기는 그저 순종만 하면 됩니다. 이건 아주 공짜로 먹는 것입니다. 순종만 하면 공짜로 먹습니다. 이젠 순종만 하면 되고, 가라 하면 가기만 하면 되고, 먹으라 하면 먹기만 하면 되고 가져라 하면 갖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심부름만 하니까 누가 해주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라는 것은 그저 심부름만 하면 되는 겁니다. 가라 하면 가기만 하고, 하지 말아라 하면 안 하면 되고, 그 다음 일은 하나님이 다 한다는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라 하시면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떠나라 할 때는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아, 어떻게 가겠습니까? 뭐 가면서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홍해바다는 어떻게 건넙니까? 또 애굽 사람들이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하는 말들은 하나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 주실 거니까 떠나라 하면, “예!” 하고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갈 때에 “앞에 홍해 바다가 가로 막혔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기도하니까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거 가리키면 어떻게 홍해가 갈라지겠나?’ 생각될 것입니다. 그래도 갈라지는 건 하나님이 하실 거니까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가리키니까 홍해도 다 갈라졌습니다.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홍해가 다 갈라져서 육지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가운데로 걸어가라 하여 걸어서 건너갔습니다. 하나님이 지팡이로 가리키면 갈라진다고 했으니까 하나님이 갈라주실 것을 믿고 지팡이를 가리켰고, 또 건너가라고 했으니까 하나님이 건너가게 해 주실 것을 믿고 건너갔습니다. 하나님이 건너가라고 했으니까 건너가는 것입니다.

물이 양쪽에는 바람벽 같이 쌓였는데 건너가다가 이거 합해지지 않을까 의심하면 합해집니다. 합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건너갈 때에 하나님이 건너가라고 했으니까 홍해 바다를 건너갑니다, “건너가게 해 줄 것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건너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이 못 들어옵니다. “믿습니다” 하고 건너가는데, 하나님이 갈라놓은 것이고,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가는데 물이 어디라고 들어옵니까? “믿습니다”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중간에 가다가 물이 합해지지 않을까 의심하면 그때는 다 죽습니다. 다 합해져서 죽는다는 말입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그저 믿습니다 하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다 건너가는데 자, 우리도 건너가자, 저 사람들보다 못한 게 뭐냐? 저 사람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리가 낫지 않느냐 우리도 건너가자’ 하면서 이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좇아서 홍해바다 가운데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애굽 사람들이 홍해바다를 건널 수 있었습니까? 건너지 못했습니다.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건너지 못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아무리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건너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애굽 사람에게 하나님이 건너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건너가라고 하는 말씀이 없는데 제 아무리 ‘믿습니다, 믿습니다’라고 백 마디, 만 마디 말을 해도 아무 쓸데없습니다. 건너가라는 말씀이 있어야만 건너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건너가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 믿고 건너간 것이지, 애굽 사람 건너가라고 누가 그랬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건너가도 말씀이 없으면 그건 안 되는 일입니다. 거의 반 정도 들어갔는데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시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켜라 하여 가리키니까 물이 다시 합해졌습니다. 쫓아오던 애굽 군병들이 다 죽었습니다. 들어가서 건너갈 때도 좌우에 벽이 된 물을 보고 이 물이 다시 합해지지 않겠나 의심하거나 염려하면서 건너갔을 것입니다. 그 애굽 사람이 무슨 믿음이 있었겠습니까? 남이 가는 것을 보고 그저 믿음 없이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것도 남이 하는 바람에 덩달아 다니면 안 됩니다. 자기가 믿어야 됩니다.

자기가 말씀을 깨닫고 자기가 순종하고 자기가 믿어야지 다른 사람 가는 데 붙어가려고 하지 말아야합니다. 덤으로 믿으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아들이 잘 믿으니까 나도 좋은 데 갈 것이라느니, 뭐 형님이 잘 믿으니까 동생 데리고 갈거다라는 식은 안 됩니다. 그렇게는 홍해 바다 못 건넙니다. 애굽 사람들은 믿습니다 하면서 건너지도 못하고, 또 믿습니다 말해도 안 되는 것은 애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다가 홍해바다에서 빠져 죽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2. 순종함으로 승리한 믿음의 선진들

순종함으로 여리고성이 무너짐

본문 30절에,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예. 여리고 성, 그렇게 견고한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하루 한 바퀴씩 돌고 제 칠 일에는 일곱 바퀴를 도는데 마지막 바퀴를 돌 때, 나팔을 부니 다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여리고성, 그 큰 여리고 성이 일시에 다 무너졌습니다. 그것도 말씀 순종하니까 하나님이 다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말씀 순종하면 하나님이 다 해준다는 것입니다. 자, 무엇을 안 해서 안 되는 것입니까? 말씀을 알지 못하고, 말씀을 믿지 않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서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알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순종하면, 여리고 성 같은 것은 한 시간이면 다 무너집니다. 그까짓 것은, 한 시간이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라는 것은 만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능이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순종함으로 구원 받은 기생 라합

본문 31-38절에,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기생 라합은, 여리고에서 기생 노릇을 하던 불결한 여자입니다. 기생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하던 존재인데 그래도 그 기생이 하나님이하시는 일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까? 여리고 성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다는 것,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천상천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 등을 다 믿었다는 말입니다. 또 이스라엘에게 이 여리고 성이 멸망 당하고 이스라엘에게 이 성을 준다는 것,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또 그 나라는 계속 창성해 나가는 나라라는 것, 또 그 나라는 영원히 계속되는 나라라는 것 등을 기생이 믿었습니다. 여호수아 2: 8-14절에, 라합이 너희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라고 정탐군에게 말했고 또 너희 하나님이 이 성을 너희에게 주신다고 한 것을 보면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안 것입니다. 기생 라합이 어떤 하나님을 알았습니까? 하나님을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신 줄을 알아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또 여리고는 장망성(將亡城)인데 같이 멸망당하지 아니하고 여기서 구원받을 수 없을까, 내가 여기서 구원받아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탐군이 왔을 때 고발해서 죽이려 했을텐데 보고하지 않고 정탐군을 영접한 것만 보아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 하려는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확실하지요? 하나님이 기생 라합이 이런 신앙이 있는 줄을 아시고, 정탐꾼을 그리로 보낸 것입니다.
정탐군이 오니까 기생 라합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아마도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구주가 온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자기를 구원해 줄 사람들이 온 것으로 알고 잘 영접 하면서 어떻게 해야 이 성이 망할 때 같이 망하지 않겠는지 물어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정탐군들이 우리가 왔던 것을 네가 누설하지 말고 우리가 성에 쳐들어올 때 창에 붉은 줄을 늘어뜨리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기생 라합이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 말씀을 지키고, 또한 정탐군들에게 복음을 들었다고 봅니다. 정탐군들이 기생 라합이 이렇게 사모하는데 이스라엘에 대한 말을 해 주었을 것 아닙니까? 또 이스라엘에게서 장차 구주가 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말해주지 않았겠습니까? 거기에 참여하기를 즐거워하면서 이제 정탐군을 잘 대접하여 숨겨주고, 그들이 말한 대로 그 집 창문에 붉은 줄을 늘여뜨렸기 때문에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 망할 때에 같이 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아서 예수님의 조상에 참여했습니다. 예수님의 조상에 참여한 것을 보면 얼마나 믿음이 좋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생 라합은 하나님을 믿었고 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믿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제 기생 라합이 구원 받는 길을 찾다가 정탐군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접을 했고 또 그들이 말해주는 것을 그대로 믿고 그들이 하라는 그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 망할 때 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아서 예수님의 조상에 참여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의 조상을 나열했는데 거기 기생 라합이 들어있습니다. 기생 라합을 통해서 계속 내려오다가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그 기생 라합이 얼마나 복 받은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분명히 알고 그의 뜻을 순종을 하고 그의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될 것을 믿고 그 다음에는 말씀을 더 받고 그대로 순종을 했기 때문에 기생 라합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멸망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순종함으로 승리한 기드온 삼백명 용사

본문 32절에,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사들이 나왔는데,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같은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기드온은 무엇을 한 사람입니까?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을 쳐서 물리친 사람입니다. 그것도 하나님 명령대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 명령대로 하여 300명, 그거 얼마 되지 않는 숫자인데, 작은 군사로 많은 미디안 군대를 쳐서 승리했습니다. 처음에 군대 모집하니 몇 명이 왔습니까? 3만 2천 명이 왔습니다. 그러나 돌려보냈다고 했습니다. 몇 명이 돌아갔습니까? 남은 숫자는 얼마였습니까?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 명도 너무 많다고 하시고, 강가에 내려가서 물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물 먹는 데 소같이 입을 강물에 대고 마시는 사람과, 손으로 물을 떠서 개와 같이 핥아먹는 사람을 나누라고 했습니다. 손으로 물을 떠서 핥아먹는 사람만 헤아려 보니 300명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머지는 전부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소같이 입을 강물에 대고 마시는 사람이 몇 명입니까? 9700명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300명은 손으로 물을 떠서 물 먹는 동안에도 원수를 살피면서 먹는 사람, 자기 사명감을 확실히 깨닫고, 자기에게 이스라엘의 흥망이 달린 줄 알고, 물 먹는 데만 정신 팔리지 않고, 또 물 먹는데 마음과 눈을 빼앗기지 않고, 물 먹는 동안에도 원수와 더불어 싸우는 정신을 가지고 물을 먹었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쓸 만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만 가지고 나가라는 말입니다.
목이 마르다고 해서 입을 강물에 대고 꿀꺽꿀꺽 마시는 것은 벌써 먹는 데만 정신이 다 빠진 사람입니다. 전쟁터에서도 먹는 데 정신이 다 팔려서 경계하고 무장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그런 사람으로는 승리할 수 없으며 일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먹을 것만 있으면 그저 정신 못 차리고 돌아가는 그런 정신 가지고는 안 됩니다. 먹기는 먹어도 원수를 살피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정신을 가지면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군대인줄을 믿고, 먹어도 그저 조심스럽게 손으로 떠서 핥아먹는 것입니다. 먹는 데 정신 안 뺏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들어서 하나님이 그 많은 그 미디안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또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순종하니까 된 것입니다. 이것도 명령대로 순종하니까 많은 그 원수를 물리친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블레셋을 물리친 삼손

그러면 바락이나 삼손은 또 무엇을 했습니까? 삼손은 블레셋 사람을 물리쳤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말씀을 지키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해서 블레셋 사람을 다 물리쳤습니다. 무슨 말씀을 지켰습니까? 네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라.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고 머리털을 그냥 두라는 그 말씀을 지키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내내 함께 해서 원수를 물리쳤습니다. 그러다가 누구에게 유혹이 되어서 머리를 깎게 했습니까? 예. 들릴라라는 그 여자에게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 지키지 못 했습니다. 그것 참 안 된 일입니다. 일개 이방 여자 하나에게 유혹이 되서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하고 블레셋을 다 정복해 나가던 이 용사가 머리털을 깎였다는 말입니다. 머리 깎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말씀을 어기니까 그 다음에는 블레셋과 싸우려고 해도 힘이 나겠습니까? 안 납니다. 말씀 어긴 다음에는 힘이 없습니다. 말씀 지킬 때 힘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데 그 말씀을 내 버리고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잡혀서 끌려가서, 두 눈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뽑혀 마침내는 소경이 됐습니다. 그리고 묶여서 옥중에서 맷돌을 돌렸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겠는지 생각 해 보십시오. 시키는 대로 순종만 하면, 이길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또 사무엘도 모든 원수를 다 이기고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모든 선지자들 전부 그렇다는 말입니다. 다 이겼습니다.

순종함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음

본문 33-34절에,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라 함은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므로 여러 나라를 다 이겼습니다. 다윗도 많은 나라를 이겼습니다. 의를 행하기도 했다는 것은 요셉이 믿음으로 의를 행했다는 말입니다. 또 약속을 받기도 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지 않았습니까. 또 다른 사람들도 약속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순종함으로 사자들의 입을 막은 다니엘

또 믿음으로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는 것은 누구를 들어서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니, 사자들의 입을 하나님이 막아주었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들어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루 세 번 기도하라는 성경은 없지만 그래도 다니엘은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숨어서 기도하려니까 심령이 허락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에 매인 바 되고, 성령에 붙들린바 되어서 하루 세 번씩 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령에 매인 바 되고 성령에 붙들린바 되어서 하루에 세 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믿음 지켰다는 말입니다. 심령에 매인 바 되면 믿음 지킨 것 아닙니까?

순종함으로 불을 이긴 다니엘의 세친구

또 불을 이긴 것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말아라 하는 명령 지키다가 풀무 가운데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그 풀무의 세력을 막아서 타지지 않게 해 주셔서 승리하고 나오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말씀 순종하면 풀무도 이기고 사자도 이길 수가 있으니, 여하튼 말씀을 순종하면 큰 능력이 있습니다. 못 이길 게 없고 성공 못 할 게 없습니다. 말씀 순종하면 풀무도 이기고, 풀무 가운데 들어가도 타지 않습니다. 사람들 보기에만 끔
찍하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뜨겁지 않습니다. 풀무라서 불이 타긴 타는데 안 뜨거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해서 시원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 지키면서 심령에 매인 바 되고 성령에 이끌린 바 되어서 하루 세 번씩 기도했는데 사자 굴에서 하나님이 왜 보호 안해주시겠습니까? 사자 입을 막고 사자 발을 붙잡아서 물지 못 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밤새도록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찬송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자 바라보고 무서워하면 사자가 잡아먹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알고 그 다음에는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사자가 우굴 우굴 해도 의심하면 안 됩니다. 못 잡아먹는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다가 들어왔는데, 네가 어디라고 잡아먹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이제 그만 올라오라 할 때 기뻐서 올라가다가 문득, 아 이거 뒤에서 좇아와 잡아먹지 않겠나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때는 사자들이 잡아먹습니다. 올라가면서도 이거 사자가 잡아먹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안 됩니다. 그럼 잡아먹힙니다. 올라가면서도 주여 믿습니다 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거의 다 올라가서 이제 굴 입구에 다다를 때, 사자가 어디쯤 따라올까 한번 바라보자 이거 물지 않겠나 하면 그때 사자가 뛰어 올라 발을 낚아채서 잡아먹습니다. 거의 다 올라갔어도 의심
하면 안 됩니다. 믿습니다 하고 올라가야 됩니다. 믿습니다, 머리가 입구로 올라 온 다음에도 믿습니다 하고, 또 거의 다 올라가서 이제 발만 나오면 되는 상황에서도 발 물지 않겠나 의심하면 와서 물어버립니다. 발을 물면 잡아당겨 끌려 내려가는 것입니다. 사자들이 얼마나 힘이 셉니까? 다 올라가기까지 줄곧 굳게 믿습니다 하면서 올라와야 됩니다. 하나님만 의뢰합니다. 그러면 사자가 잡아먹지 못 합니다.

순종함으로 칼날을 피한 다윗

칼날을 피하기도 한다고 했는데, 다윗이 그 칼날을 피한 일이 있습니다. 말씀 순종하다가 칼의 세력이 왔지만 다 피했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누구의 칼날을 피했습니까? 사울의 칼날입니다. 사울이 아무리 죽이려고 따라 다녔어도 하나님이 칼날을 모두 피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원수는 하나님이 막아줍니다. 그리고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한다고 했는데, 연약하다가 강해졌습니다. 믿음 지키면 강해집니다.

루터가 종교개혁하다가 낙심을 했다고 합니다. 하도 안 되니까, 낙심이 들어 침대에 누웠답니다. 아무 힘이 없이 누워서 눈만 멀뚱멀뚱 하고 있는데 루터 부인이 보니까 참 보기 딱하단 말입니다. 그 부인이 갑자가 나갔다가 부모나 남편이 죽은 것처럼 상복을 입고 들어왔답니다. 그것을 루터가 보고 아니, 누가 죽었길래 그렇게 상복을 입고 들어왔느냐고 물었보니, 하나님이 죽어서 이렇게 하고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루터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나님이 죽는다는 말이 어디 있느냐고 하니, 그 부인이 말하기를 여보, 하나님이 죽었으니 당신이 그렇게 절망하고 있지, 하나님이 살았으면 왜 그렇게 하고 있겠느냐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루터가 정신이 퍼득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안 죽었으면 내가 왜 이렇게 하고 있겠느냐. 하나님이 하는 것인데, 내 힘으로 하는 것처럼 왜 낙심을 할까 하면서 다시 용기를 내서 종교개혁을 성공으로 이끌었는데 이렇게 믿음으로 나가면 연약하다가도 강하게 됩니다.

순종함으로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을 물리침 

또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을 물리치기도 한다고 했는데, 이방사람 물리친 사람이 구약에 많이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이 멸망하는 것처럼 이 세상이 멸망할 것인데,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고, 그 하시는 일을 믿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여러 사람들, 곧 기드온, 삼손, 다윗, 사무엘과 같은 믿음으로 연약하다가 강해지고, 불의 뜨거움과 사자입도 모두 막을 수 있는 능력 있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23-29 모세의 믿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모세의 믿음
히브리서 11:23-29

23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28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1. 믿음의 발걸음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함

본문 23절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20에는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고 하였는데, 모세가 모태에서부터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아이 위에 충만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부모가 모세를 볼 때에 “이 아이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아이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 아이에게 충만하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앞으로 귀히 쓰실 것이다”라는 것을 알 만큼 아름답게 보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에는 노인도 아름답고, 어린아이도 아름답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에 왕의 명령을 어기면 그 부모까지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부모가 “이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하나님이 같이 하는 아이, 하나님이 앞으로 이 아이를 귀히 쓰실 것이 분명한데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면 안되겠구나”하며, 석 달을 숨겨서 기르다가 석 달 후에 갈대로 상자를
만들어 역청을 칠하고, 그 안에 모세를 넣어, 살려 주실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일강에 놓았습니다.

그 때에 바로 왕의 딸, 공주가 하숫가를 거닐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서 갈대 상자를 열어 보니까 아이가 있는데, 불쌍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로 삼아서 기르려고 유모를 구하려고 할 때에, 모세의 누이가 숨어서 보고 있다가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할 때에, 바로의 공주가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어머니를 불러다가 유모로 삼았고,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가 젖을 뗄 때까지 길렀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기르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고 또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를 가르쳤으며,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젖 뗄 때까지 완전한 신앙이 모세에게 들어갔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함

본문 24-25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장성하여 사십세 되던 때에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공주의 아들이면 바로의 아들과 같은 지위에 있고, 왕위까지 물려받을 만한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왕의 자리에 올라 갈 희망이 있는 자리인데, 모세는 그것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자리를 택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백성이고, 하나님의 권고가 있는 백성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백성이고, 장차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이므로, 모세는 이 모든 것을 공주의 아들의 지위와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쾌락주의, 향락주의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종살이 하는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무엇이 좋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자기 백성이 잘 되면 자기 백성 말하기를 좋아하겠지만, 자기 백성이 종살이 하면 말하기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도 일본에 가서 잘되고 출세하면, 한국 사람이라고 안 한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으로 귀화해서 아예 일본 사람으로 출세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고, 왕위와 그 모든 것을 물려받을 위치에 있었으나 종살이 하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 또 앞으로의 모든 부귀영화는 현재는 좋은 것 같으나 잠시 잠깐이면 다 없어질 것들임을 믿었으므로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인간의 일생은 아침 안개와 같이 잠깐 동안입니다(약 4:14). 칠십년, 팔십년도 못되어서 다 없어집니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에 참여한 것임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고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하면, 그것은 영이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는 것이며, 영원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에 같이 참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현재는 종살이를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이 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에 참여한 것임

창세기 15:5-6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오실 것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데 참여한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에게 참여한 것입니다. 창세기 12:1-3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복은 아브람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승되어 내려갑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종살이 하는 백성이지만 거기에 참여하기를 작정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그리스도가 나셔서 세계만방이 구원받을 것을 아브람에게 알려주셨는데(창 15:5), 장차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그리스도가 나셔서 “그리스도로 인해서 모든 백성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 받을 것이다”를 믿었기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하였는데, 죄악의 낙이란 믿음을 쓰지 않고 육신의 사욕을 좇아 방탕과 향락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낙을 추구하는 모든 것이 죄악의 낙입니다. 애굽의 낙은 죄악의 낙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즐거움입니다.

◉ 영광스러운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임

베드로전서 1:8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예수를 믿으면 외부적으로는 고난도 있으나 속에는 그리스도와 영으로 교통할 때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즐거움은 영적 즐거움이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즐거움이고, 말씀을 지키므로 영이 자라나는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세상 즐거움은 외부적으로는 즐거움이 있으나 헛된 것이고, 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술 마시면 기쁘고 즐거운 것 같지만 속에는 쓴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고난 받는 사람은, 외부적으로는 고난을 받으나 속에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애굽의 모든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아, 영광스러운 즐거움에 참여하려고 하였고, 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복에 참여하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출세, 향락주의는 죄악의 낙으로 그 가운데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외부적으로는 고난을 받아도 속에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습니다.

◉ 그리스도에게 참여한 것임

본문 26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기 전 1500년 전 사람인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았는가? 모세는 장차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바라보고 믿었으며 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에게 참여하였습니다. 창세기 3:15-16절에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속해 주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또 예언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영으로 같이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10-11에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선지자들 속에서 역사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영으로 구원역사를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3-4에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도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셨고, 만나를 먹었는데 하나님이 내려주셔서 먹었습니다.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라고 했는데, 반석이나 만나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그리스도가 저희를 영으로 따라 간 것입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생수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려고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신 것입니다. 또 만나를 내려 주신 것도 육신의 양식으로 주셨지만, 이제 그리스도가 오셔서 “영적 신령한 양식이 된다”는 것을 상
징적으로 가르쳐 주시려고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라고 하였는데,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동행하고 영으로 교통하며 믿음을 지키느라고 고난과 능욕을 다 받았습니다. 예수를 위해서 고난을 받고 능욕을 받는 것이 애굽의 모든 재물보다 더 큰 재물입니다. 애굽의 모든 재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때에는 애굽이 세계 일등 국가이므로 애굽의 재물을 값으로 말하면 상당한 재물일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모든 재물보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을 더 크게 여기며 나갔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능욕을 더 귀하게, 더 크게 여긴 것입니다.

◉ 하늘의 상에 참여한 것임

마태복음 5:10-12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인해서 욕을 먹고, 핍박을 받고, 거짓말로 비방을 받을 때에 복이 있습니다. 그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고난 받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애굽의 모든 재물은 다 쓰라고 해도 쓸 수가 없습니다. 뭣에 씁니까? 애굽의 재산을 다 준다고 해도 하루에 얼마나 쓰겠습니까? 다 쓰지 못하고 죽으면 못 가져 갑니다.
또 죽으면 자기 것이 아닙니다. 살았을 때만 자기 것이지, 죽으면 자기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상이 큽니다. 또 하늘의 상은 영원토록 있습니다. 하늘의 상급은 영원토록 자기의 것입니다. 면류관도 자기의 것입니다. 세상 재물은 잠시잠깐 쓰다가 놓고 가는 것이고, 또 자기 것이 못 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상급은 하늘나라에 간 날부터 영원토록 자기 것이 됩니다. 하늘나라에 가보면 “아! 내가 그 때에 조금만 더 고난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못 받았다, 아! 그때에 내가 좀더 참았어야 하는데 못 참았다”하며 후회할 것입니다. 이제 잠시잠깐이면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나라에 다 가게 됩니다. 그 때에 믿음을 지키면서 고난 받은 만큼 상급을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을 택하여야겠습니까? 애굽의 재물을 택하여야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고, 고난 받는 것을 택하여야겠습니까?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과 고난 받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재산보다 더 크며, 영원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믿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당장에 세상에서 잘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돈을 많이 벌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책망을 받지 않겠는가를 항상 생각하여야 합니다. 모세가 애굽의 재산을 택하였다면 하나님 앞에서 책망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기 때문에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받습니다. 잠시 잠깐이면 이 세상은 다 지나갑니다.


2. 믿음을 지킨 모세

믿음으로 애굽을 떠남

그 다음에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습니다. 애굽을 떠나서 유월절을 지키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본문 27절에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라고 하였는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고, 또 하나님께서 가나안까지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애굽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믿고, 모든 시험과 난관을 참고 견디며 나아갔습니다. 또 하나님을 살아 계시는 분으로 믿고 나아갔습니다. 애굽은
자기 나라가 아닙니다. 이제는 가나안 땅이 자기 나라입니다.

어떤 예수 믿는 사람이 남의 오이 밭에 들어가서 오이를 따려고 자기 아들한테 “누가 오면 알려 달라”고 하며 망을 보라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밭에 들어가서 오이를 따려고 하는데 아이가 밖에서 망을 보고 있다가 “봅니다!”라고 소리를 치니까, 오이 밭에 들어갔던 아버지가 놀라서 후닥닥 뛰어 나와 “누가 봤느냐?”고 하니까, “하나님이 봅니다!”라고 했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오이는 따지도 못하고 자기 아들한테 책망만 받았습니다. 죄 짓는 사람들은 다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있는 줄은 모르고, 사람의 눈만 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는데, 사람이 안 보면 괜찮은 줄 알고, 못된 짓 하며 다니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은밀히 다 보시고 죄에 대해서 징계 하시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안 보시는 줄 알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양심을 안 쓰며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돌아가는데, 왜 책망을 안받겠습니까?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함

본문 28절에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이 믿고, 의뢰하므로 애굽을 떠날 때에 유월절 양을 잡아 먹고,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장자가 죽는 것을 면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될 것을 믿고 그렇게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애굽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첫 새끼를 죽일 때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넘

본문 29절에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갈 때에 홍해를 만났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따라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어 죽게 되었는데,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고 하였습니다(출 14:16). 그리고 바다 가운데 생긴 마른 땅을 건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이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홍해를 가리키면 홍해가 갈라질 것을 믿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면 육지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널 것을 믿습니다”하며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 때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다음에 건널 때에는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물이 벽과 같이 쌓여서 넘실대지만 하나님이 무사히 건너게 해 줄 것을 믿습니다”하며 건너갔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에 “이 물벽이 허물어지지 않겠나?”의심 하면서 건너면 안 됩니다. 어떻게 건너야 됩니까? “하나님이 말씀대로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다 건너가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보호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널 것을 믿습니다”하면서 건너가야 다 건널 수가 있습니다. 애굽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건너가자”하며 갔으나, 애굽 군대가 강에 다 들어간 다음에는 “이것이 합해지지 않겠
나?”하며 의심하다가 홍해가 합해져서 모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즉 애굽 사람들은 홍해가 갈라진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믿지 않고 홍해가 우연히 갈라진 것으로 알고 자기들도 건너보려고 시험하며 건너 간 것입니다. 즉 애굽 군대가 건너면서 이 갈라진 물이 다시 합하여지지 않을까? 하며, 의심하고 염려한 것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에 대해 의심하고, 믿지 아니하고 나가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해주신다고 했으면 그대로 될 줄로 믿고 나가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하며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모세의 신앙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모세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다 할 수 있습니다. 다 떠날 수 있고, 다 버릴 수 있고, 고난도 달게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향락주의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주를 위하여 고난 받는 길로 가는 것이 참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여기에 아브람의 축복이 있고, 여기에 가나안 땅을 허락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같이 일하고, 같이 고난 받고, 같이 걸어가고, 같이 봉사하는 것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을 많이 받을수록 하늘나라에 가면 받을 상이 큽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해 고난을 좀더 받고 왔으면 좋을 뻔 했다, 내가 좀더 그리스도를 위해서 핍박을 받았으면 좋을 뻔 했다”고 그 때에 후회하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받을 좀더 큰 상급을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애굽을 담대히 떠나 홍해를 믿음으로 통과하는 이런 신앙을 가지고 우리가 전진하면, 모세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복을 우리에게 다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