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발걸음
히브리서 11:26-35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28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31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32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도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하고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으며,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11:27 믿음으로 그가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으니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처럼 여기고 인내하였기 때문이다.
11:28 믿음으로 그가 유월절과 피 뿌리는 의식을 행하였으니 처음 난 것들을 죽이는 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11:29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넜으나, 이집트 사람들은 그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다.
11:30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칠 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도니, 그 성벽이 무너졌다.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안하게 영접함으로써 불순종한 자들과 함께 멸망을 당하지 않았다.
11:32 내가 무엇을 더 말하겠느냐?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과 선지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11:33 그들은 믿음으로 왕국들을 정복하기도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들을 받기도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하며,
11:34 불의 세력을 꺾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데서 강하게 되기도하고 전쟁에서 용맹한 자들이 되기도하고 적진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11:35 여자들은 자신들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았으며, 또 다른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굳이 풀려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11: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였고 심지어는 결박과 투옥까지 당하였다.
11:37 그들은 돌로 맞았고 톱으로 켜지고 검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은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면서 궁핍과 고난을 당하고 학대를 받았다.
11:38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다.
11:39 그런데 이들 모두는 믿음으로 증거는 받았으나, 약속된 것은 받지 못하였다.
11:4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온전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셨다.
1. 상 주심을 바라본 모세의 신앙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김
본문 26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상이 있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능욕을 많이 받으면 상급이 크고 예수를 위해서 능욕을 적게 받으면 상급이 적고, 능욕 받은 것이 없으면 상급이 없습니다. 자,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을 받는 게 좋습니까? 안 받는 게 좋습니까? 받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를 위해서 고난 받아야 상급을 받습니다. 조금 받으면 상급이 적고 많이 받으면 상급이 큽니다. 얼마나 받으면 좋을 것 같습니까? 예수님을 위한 고난을 조금 받는 게 좋겠습니까? 많이 받는 게 좋겠습니까? 예. 많이 받으면 상급도 커서 참 좋겠지요. 사도바울은 얼마나 고난 받았는지 아십니까? 고린도후서 11장을 한 번 보도록 합시다. 사도바울에 비교하면 우리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절에,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클 것이 분명합니다. 수고도 넘치도록 하고, 옥에는 또 얼마나 많이 갇혔습니까? 한 번 갇히는 것은 그저 맛이나 보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많이 갇히고 매는 수없이 맞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고 했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가 제일 큰 매입니다. 제일 큰 매를 다섯 번 맞았다는 것은 서른아홉 대씩 다섯 번을 맞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얼마입니까? 백 구십 오대를 한 번에 맞으면 살지 못하는데, 서른아홉 대 맞고 얼마 있다 또 맞고, 나을만하면 또 맞는 것입니다. 매 맞아서 터진 것이 나을만하면 또 맞습니다. 얼마 후에 나을만하면 몇 달 후에 또 맞습니다. 또 세 번은 태장으로 맞았다고 했는데, 태장(막대기)로 볼기를 몇 번을 맞았다고 했습니까? 예. 세 번인데, 그것은 곧 죽는
고통입니다. 또 파선하는데 바다에서 일 주야를 깊은 데서 지내고, 또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과 굶고 춥고 자지 못하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주를 위해서 고난을 많이 받은 사람이 하늘나라 가면 상급이 많습니다. 상급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상 받을 것을 생각하니까 예수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게 더 좋다는 것입니다. 애굽에 모든 재물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는 것은 애굽에 모든 보화가 많지만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게 그 보다 더 큰 재물이란 말입니다. 세상 것은 모두 이 세상 떠날 때 없어질 것이 아닙니까? 하늘나라 가면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은 것이 더 큰 재물인 상급이 오는 것입니다. 세상 재물은 조금 있으면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고 하늘나라에 가면 영원한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상급을 쌓아 놓아야 됩니다. 영원한 상급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함
그래서 모세는 애굽 공주의 아들이라는 좋은 자리를 다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모든 향락을 전부 내어 놓았습니다. 누릴 수도 있지만 그거 다 내어 놓았습니다. 그 낙은 무슨 낙이라고 했습니까? 바로 죄악의 낙, 잠시 잠깐이면 없어지는 낙입니다. 또한 주를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해야 될 것 안 하고 누리는 것도 죄악의 낙입니다. 모세는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 백성 편에 서는 것이 좋습니다.
수넴 여자가 “나는 백성 가운데 거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사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인데, 무슨 군대 장관, 무슨 높은 자리 그것을 원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며, 거기에 말씀이 있는 것이고, 예배가 거기 있고, 그리스도가 거기 있는 것인데 얼마나 좋은가 말입니다. 아주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은 하늘나라 가서 큰 상을 받는 것입니다. 상급이 크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말씀에 참여함으로 얼굴에 광채가 남
그리고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는데 이것이 중요합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일 뿐만 아니라 그가 말씀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씀에 참여함으로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고린도후서 3: 7절에,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았는데 얼굴에 광채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의 광채인데, 말씀에 참여하니 그 말씀의 광채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의 심령 속에 있는 것이 그 얼굴에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말씀이 즐겁고, 말씀이 영광스럽고 그 즐거움과 영광스러운 광채가 얼굴에까지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직분에 모세가 참여했는데 그 직분에 참여하는 것은 말씀에 참여하는 것이고 또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직분에 참여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자체 속에 말씀의 영광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고난 받고,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에 참여하고 말씀에 참여하는 그런 사람은 속에서 말씀의 영광이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 인격이 그 말씀의 영광대로 이루어져서 그 인격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복음은 더 영광스럽습니다. 율법도 그렇지만 복음은
더 영광스럽습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사람은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 인격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고린도후서 3:18절에,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 같은 영광으로 화하고, 주의 말씀의 영광을 보니 같은 영광으로 화하였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말씀에 대한 직분을 가졌으므로 같은 영광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
은 것입니다. 얼굴이 환해집니까? 예. 환해집니다. 누구 얼굴이 환해집니까? 이 말씀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사람은 얼굴이 환해집니다. 변한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얼굴이 시꺼멓고 창백해서 돌아 다니더니 이 말씀에 참여하고 예배에 참여하고 이 은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에게 참여하고, 말씀의 영광에 참여하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이 환해진 것입니다.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아예 딴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큰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인격이 영광스러운 인격으로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역사하니 영광스러운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루어지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 그거 좋은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말씀에 사용되는 사람인데 성경말씀에 전도하고 돌아올 때는 기쁨으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기쁨으로 돌아옵니까? 그렇습니다. 전도하고 돌아올 때는 기쁨으로 돌아옵니다. 그 말씀을 전하는데 얼마 동안 사용된 것은 말씀의 도구로 사용된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그만큼 그 말씀대로 화해지는 것입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사용되고 하나님의 교회에 사용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고난 받는 데 사용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데 사용되는 것은
자신 자체가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 있는데 우리 교회 사람은 아닙니다. 그분이 어떤 교회에서 사찰집사와 같은 관리자로 취직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는 얼굴이 그렇지 못했는데 얼마 전에 보니까 사람이 변해도 아주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전에는 한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얼굴이 전보다 무척 달라져서 아주 거룩한 얼굴이 됐고, 점잖아지고 모든 게 다 달라진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여기 있었기에 이렇게 된 모양이로구나 싶었습니다. 여기 안 있고 다른 데 가서 다른 일했다면 이런 얼굴 가질 수 없고, 그 인품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잠시라도 쓰임을 당하면 영광스럽게 변화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당하는 것이 그만큼 복을 받습니다. 돈이야 뭐 적게 받든, 많이 받든, 안 받든 하나님께 쓰임 당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또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산을 넘어가는 발, 그것이 아름답습니다. 그만큼 그 사람에게 영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의 영광이 그 인격 속에 이루어지고 그만큼 영광스럽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가지고 요즘 산을 넘어가는 사람들이 참 좋은 것입니다. 중국 가려면 무슨 산 넘어갑니까? 예. 장백 산맥도 넘어갑니다. 또 러시아 가려면 우랄 산맥을 넘어가야 됩니다. 우랄 산맥 넘어가서 모스크바나 알마타에 가는 것입니다.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그만큼 영광스럽게 되는데, 고난을 받지만 그 고난이 도리어 영광체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애굽의 공주의 아들 다 집어치우고, 또 애굽의 모든 재산 다 내놓고, 또 애굽의 모든 즐거움, 향락 다 내놓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은 것입니다. 애굽의 것은 잠시 후면 없어질 것이고, 이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은 영원한 것이고,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영원히 그리스도께 참여하는 것이며, 말씀에 참여하는 것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인데, 그 얼마나 좋습니까?
고난을 받을 만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말씀의 직분을 받았는데 이 직분 받은 것은 영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분에 대한 은사를 줍니다. ‘직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이 직분, 다시 말하면 말씀을 전하는 직분에 적합한 은사를 주었다는 말입니다. 직은, 직분에 대한 영광, 또 직능이 있습니다. 직분만 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능력을 줍니다.
마태복음 10: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 이 능을 주었습니다.
직능을 주셔서 내보냈다는 말입니다. 자, 이거 얼마나 좋습니까? 또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하게 하는 그 능력을 주어서 내보냈습니다. 할만 하지 않습니까? 이거 안 하고 공주의 아들 하면 뭐가 좋겠습니까? 잠시 있으면 다 없어질 것이고 이것은 영원한 것인데 모세가 세상 부귀와 영화를 다 내어 놓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고 상 주심을 바라보고 나간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나가자고 했습니까? 상 받을 것을 바라보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상 받을 것을 보고 나가야 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박질하는 자들이 상 받을 것을 바라보고 나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하늘나라 가서 상 받을 것을 바라보고 거기에 참여하려고 달음박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이런 일 해야 합니다. 하여간 십자가를 지고 나갑시다. 그리고 말씀을 전해야 됩니다. 교회를 받들어야 됩니다. 교회 세워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적 부패한 존재라서 그 부패성들이 다 있지만, 그것을 저 밑에 두고 아예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맑고 깨끗한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성도에게 부패성이 있지만 그것을 다 밑에 깔아놓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예 일어나지 못하게 해서, 한계를 딱 그어 놓고, 그 위에 맑고 깨끗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요, 성령의 나라요, 성령의 사람들이요, 그리스도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거기 계시기에 성도가 즐거운 것이고 교회가 즐거운 것입니다. 교회가 아주 귀한 것입니다. 교회를 금촛대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세워나가고 교회에 봉사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주 귀한 일입니다. 심방하는 일도 아주 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심방하라고 하니까,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안 하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것을 다 빼앗기는 것인데 이거 안 하면 되겠습니까? 산동네여서 안 한다는 것입니다. 명륜동에 사는데 산동네로 가라하니 안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지를 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평지는 안 되겠다. 자기 몫의 십자가는 자기가 져야지 어디라고 안 가겠다고 하느냐 하면서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안 가겠다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잘 죽은 모습입니까? 쓸모없이 무용지물로 있다가 죽은 것입니다. 요긴하게 하나님의 일에 이용당해야 하는데 안 한다고 하니, 그 무용지물을 어디다가 쓰겠습니까? 집어치울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무용지물은 결국 내버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할 때 감사하면서 말씀에 이용당하고, 하나님의 나라운동에 이용당하고 복음에 이용당하면 이용당한 것만큼 자기가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해지는 것입니다. 이용되어야 할 사람인데 이용당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굴이 시꺼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광이 다 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용당하던 사람은 계속 죽을 때까지 이용당하십시오. 그게 큰 복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람은 또 하늘나라 가서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상급을 바라보고 이용당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면서 떠남
본문 27-28절에,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을 떠나라고 할 때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면서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을 먼저 알고 그 다음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게 믿음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말씀을 알고 믿고 순종하면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말씀 속에는 예수의 피가 있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 속에 하나님의 만능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또 그대로 성취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 순종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데, 말씀을 먼저 아는 게 중요하고 그 다음에 그대로 될 것을 믿는 게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일은 누가 해줍니까? 일은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그저 순종만 하면 됩니다. 알고 믿고 순종만 하면 됩니다. 또 일은 하나님이 다 해놓으신 것이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이 해 줄 것이고, 자기는 그저 순종만 하면 됩니다. 이건 아주 공짜로 먹는 것입니다. 순종만 하면 공짜로 먹습니다. 이젠 순종만 하면 되고, 가라 하면 가기만 하면 되고, 먹으라 하면 먹기만 하면 되고 가져라 하면 갖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심부름만 하니까 누가 해주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라는 것은 그저 심부름만 하면 되는 겁니다. 가라 하면 가기만 하고, 하지 말아라 하면 안 하면 되고, 그 다음 일은 하나님이 다 한다는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라 하시면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떠나라 할 때는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아, 어떻게 가겠습니까? 뭐 가면서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홍해바다는 어떻게 건넙니까? 또 애굽 사람들이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하는 말들은 하나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 주실 거니까 떠나라 하면, “예!” 하고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갈 때에 “앞에 홍해 바다가 가로 막혔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기도하니까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거 가리키면 어떻게 홍해가 갈라지겠나?’ 생각될 것입니다. 그래도 갈라지는 건 하나님이 하실 거니까 지팡이로 홍해를 가리키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가리키니까 홍해도 다 갈라졌습니다.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홍해가 다 갈라져서 육지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가운데로 걸어가라 하여 걸어서 건너갔습니다. 하나님이 지팡이로 가리키면 갈라진다고 했으니까 하나님이 갈라주실 것을 믿고 지팡이를 가리켰고, 또 건너가라고 했으니까 하나님이 건너가게 해 주실 것을 믿고 건너갔습니다. 하나님이 건너가라고 했으니까 건너가는 것입니다.
물이 양쪽에는 바람벽 같이 쌓였는데 건너가다가 이거 합해지지 않을까 의심하면 합해집니다. 합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건너갈 때에 하나님이 건너가라고 했으니까 홍해 바다를 건너갑니다, “건너가게 해 줄 것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건너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이 못 들어옵니다. “믿습니다” 하고 건너가는데, 하나님이 갈라놓은 것이고,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가는데 물이 어디라고 들어옵니까? “믿습니다”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중간에 가다가 물이 합해지지 않을까 의심하면 그때는 다 죽습니다. 다 합해져서 죽는다는 말입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그저 믿습니다 하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다 건너가는데 자, 우리도 건너가자, 저 사람들보다 못한 게 뭐냐? 저 사람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리가 낫지 않느냐 우리도 건너가자’ 하면서 이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좇아서 홍해바다 가운데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애굽 사람들이 홍해바다를 건널 수 있었습니까? 건너지 못했습니다.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건너지 못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아무리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건너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애굽 사람에게 하나님이 건너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건너가라고 하는 말씀이 없는데 제 아무리 ‘믿습니다, 믿습니다’라고 백 마디, 만 마디 말을 해도 아무 쓸데없습니다. 건너가라는 말씀이 있어야만 건너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건너가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 믿고 건너간 것이지, 애굽 사람 건너가라고 누가 그랬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건너가도 말씀이 없으면 그건 안 되는 일입니다. 거의 반 정도 들어갔는데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시 지팡이로 바다를 가리켜라 하여 가리키니까 물이 다시 합해졌습니다. 쫓아오던 애굽 군병들이 다 죽었습니다. 들어가서 건너갈 때도 좌우에 벽이 된 물을 보고 이 물이 다시 합해지지 않겠나 의심하거나 염려하면서 건너갔을 것입니다. 그 애굽 사람이 무슨 믿음이 있었겠습니까? 남이 가는 것을 보고 그저 믿음 없이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것도 남이 하는 바람에 덩달아 다니면 안 됩니다. 자기가 믿어야 됩니다.
자기가 말씀을 깨닫고 자기가 순종하고 자기가 믿어야지 다른 사람 가는 데 붙어가려고 하지 말아야합니다. 덤으로 믿으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아들이 잘 믿으니까 나도 좋은 데 갈 것이라느니, 뭐 형님이 잘 믿으니까 동생 데리고 갈거다라는 식은 안 됩니다. 그렇게는 홍해 바다 못 건넙니다. 애굽 사람들은 믿습니다 하면서 건너지도 못하고, 또 믿습니다 말해도 안 되는 것은 애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다가 홍해바다에서 빠져 죽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2. 순종함으로 승리한 믿음의 선진들
순종함으로 여리고성이 무너짐
본문 30절에,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예. 여리고 성, 그렇게 견고한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하루 한 바퀴씩 돌고 제 칠 일에는 일곱 바퀴를 도는데 마지막 바퀴를 돌 때, 나팔을 부니 다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여리고성, 그 큰 여리고 성이 일시에 다 무너졌습니다. 그것도 말씀 순종하니까 하나님이 다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말씀 순종하면 하나님이 다 해준다는 것입니다. 자, 무엇을 안 해서 안 되는 것입니까? 말씀을 알지 못하고, 말씀을 믿지 않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서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알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순종하면, 여리고 성 같은 것은 한 시간이면 다 무너집니다. 그까짓 것은, 한 시간이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라는 것은 만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능이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순종함으로 구원 받은 기생 라합
본문 31-38절에,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기생 라합은, 여리고에서 기생 노릇을 하던 불결한 여자입니다. 기생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하던 존재인데 그래도 그 기생이 하나님이하시는 일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까? 여리고 성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다는 것,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천상천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 등을 다 믿었다는 말입니다. 또 이스라엘에게 이 여리고 성이 멸망 당하고 이스라엘에게 이 성을 준다는 것,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또 그 나라는 계속 창성해 나가는 나라라는 것, 또 그 나라는 영원히 계속되는 나라라는 것 등을 기생이 믿었습니다. 여호수아 2: 8-14절에, 라합이 너희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이라고 정탐군에게 말했고 또 너희 하나님이 이 성을 너희에게 주신다고 한 것을 보면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안 것입니다. 기생 라합이 어떤 하나님을 알았습니까? 하나님을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신 줄을 알아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또 여리고는 장망성(將亡城)인데 같이 멸망당하지 아니하고 여기서 구원받을 수 없을까, 내가 여기서 구원받아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탐군이 왔을 때 고발해서 죽이려 했을텐데 보고하지 않고 정탐군을 영접한 것만 보아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 하려는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확실하지요? 하나님이 기생 라합이 이런 신앙이 있는 줄을 아시고, 정탐꾼을 그리로 보낸 것입니다.
정탐군이 오니까 기생 라합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아마도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구주가 온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자기를 구원해 줄 사람들이 온 것으로 알고 잘 영접 하면서 어떻게 해야 이 성이 망할 때 같이 망하지 않겠는지 물어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정탐군들이 우리가 왔던 것을 네가 누설하지 말고 우리가 성에 쳐들어올 때 창에 붉은 줄을 늘어뜨리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기생 라합이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 말씀을 지키고, 또한 정탐군들에게 복음을 들었다고 봅니다. 정탐군들이 기생 라합이 이렇게 사모하는데 이스라엘에 대한 말을 해 주었을 것 아닙니까? 또 이스라엘에게서 장차 구주가 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도 말해주지 않았겠습니까? 거기에 참여하기를 즐거워하면서 이제 정탐군을 잘 대접하여 숨겨주고, 그들이 말한 대로 그 집 창문에 붉은 줄을 늘여뜨렸기 때문에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 망할 때에 같이 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아서 예수님의 조상에 참여했습니다. 예수님의 조상에 참여한 것을 보면 얼마나 믿음이 좋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생 라합은 하나님을 믿었고 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믿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제 기생 라합이 구원 받는 길을 찾다가 정탐군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접을 했고 또 그들이 말해주는 것을 그대로 믿고 그들이 하라는 그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 망할 때 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아서 예수님의 조상에 참여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예수님의 조상을 나열했는데 거기 기생 라합이 들어있습니다. 기생 라합을 통해서 계속 내려오다가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그 기생 라합이 얼마나 복 받은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분명히 알고 그의 뜻을 순종을 하고 그의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될 것을 믿고 그 다음에는 말씀을 더 받고 그대로 순종을 했기 때문에 기생 라합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멸망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순종함으로 승리한 기드온 삼백명 용사
본문 32절에,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사들이 나왔는데,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같은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기드온은 무엇을 한 사람입니까?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을 쳐서 물리친 사람입니다. 그것도 하나님 명령대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 명령대로 하여 300명, 그거 얼마 되지 않는 숫자인데, 작은 군사로 많은 미디안 군대를 쳐서 승리했습니다. 처음에 군대 모집하니 몇 명이 왔습니까? 3만 2천 명이 왔습니다. 그러나 돌려보냈다고 했습니다. 몇 명이 돌아갔습니까? 남은 숫자는 얼마였습니까?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 명도 너무 많다고 하시고, 강가에 내려가서 물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물 먹는 데 소같이 입을 강물에 대고 마시는 사람과, 손으로 물을 떠서 개와 같이 핥아먹는 사람을 나누라고 했습니다. 손으로 물을 떠서 핥아먹는 사람만 헤아려 보니 300명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머지는 전부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소같이 입을 강물에 대고 마시는 사람이 몇 명입니까? 9700명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쟁에 나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300명은 손으로 물을 떠서 물 먹는 동안에도 원수를 살피면서 먹는 사람, 자기 사명감을 확실히 깨닫고, 자기에게 이스라엘의 흥망이 달린 줄 알고, 물 먹는 데만 정신 팔리지 않고, 또 물 먹는데 마음과 눈을 빼앗기지 않고, 물 먹는 동안에도 원수와 더불어 싸우는 정신을 가지고 물을 먹었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쓸 만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만 가지고 나가라는 말입니다.
목이 마르다고 해서 입을 강물에 대고 꿀꺽꿀꺽 마시는 것은 벌써 먹는 데만 정신이 다 빠진 사람입니다. 전쟁터에서도 먹는 데 정신이 다 팔려서 경계하고 무장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그런 사람으로는 승리할 수 없으며 일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먹을 것만 있으면 그저 정신 못 차리고 돌아가는 그런 정신 가지고는 안 됩니다. 먹기는 먹어도 원수를 살피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정신을 가지면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군대인줄을 믿고, 먹어도 그저 조심스럽게 손으로 떠서 핥아먹는 것입니다. 먹는 데 정신 안 뺏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들어서 하나님이 그 많은 그 미디안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또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순종하니까 된 것입니다. 이것도 명령대로 순종하니까 많은 그 원수를 물리친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블레셋을 물리친 삼손
그러면 바락이나 삼손은 또 무엇을 했습니까? 삼손은 블레셋 사람을 물리쳤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말씀을 지키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해서 블레셋 사람을 다 물리쳤습니다. 무슨 말씀을 지켰습니까? 네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라.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고 머리털을 그냥 두라는 그 말씀을 지키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내내 함께 해서 원수를 물리쳤습니다. 그러다가 누구에게 유혹이 되어서 머리를 깎게 했습니까? 예. 들릴라라는 그 여자에게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 지키지 못 했습니다. 그것 참 안 된 일입니다. 일개 이방 여자 하나에게 유혹이 되서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하고 블레셋을 다 정복해 나가던 이 용사가 머리털을 깎였다는 말입니다. 머리 깎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말씀을 어기니까 그 다음에는 블레셋과 싸우려고 해도 힘이 나겠습니까? 안 납니다. 말씀 어긴 다음에는 힘이 없습니다. 말씀 지킬 때 힘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데 그 말씀을 내 버리고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잡혀서 끌려가서, 두 눈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뽑혀 마침내는 소경이 됐습니다. 그리고 묶여서 옥중에서 맷돌을 돌렸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겠는지 생각 해 보십시오. 시키는 대로 순종만 하면, 이길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또 사무엘도 모든 원수를 다 이기고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모든 선지자들 전부 그렇다는 말입니다. 다 이겼습니다.
순종함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음
본문 33-34절에,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라 함은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므로 여러 나라를 다 이겼습니다. 다윗도 많은 나라를 이겼습니다. 의를 행하기도 했다는 것은 요셉이 믿음으로 의를 행했다는 말입니다. 또 약속을 받기도 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지 않았습니까. 또 다른 사람들도 약속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순종함으로 사자들의 입을 막은 다니엘
또 믿음으로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는 것은 누구를 들어서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니, 사자들의 입을 하나님이 막아주었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갈 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들어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루 세 번 기도하라는 성경은 없지만 그래도 다니엘은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숨어서 기도하려니까 심령이 허락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에 매인 바 되고, 성령에 붙들린바 되어서 하루 세 번씩 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령에 매인 바 되고 성령에 붙들린바 되어서 하루에 세 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믿음 지켰다는 말입니다. 심령에 매인 바 되면 믿음 지킨 것 아닙니까?
순종함으로 불을 이긴 다니엘의 세친구
또 불을 이긴 것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말아라 하는 명령 지키다가 풀무 가운데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그 풀무의 세력을 막아서 타지지 않게 해 주셔서 승리하고 나오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말씀 순종하면 풀무도 이기고 사자도 이길 수가 있으니, 여하튼 말씀을 순종하면 큰 능력이 있습니다. 못 이길 게 없고 성공 못 할 게 없습니다. 말씀 순종하면 풀무도 이기고, 풀무 가운데 들어가도 타지 않습니다. 사람들 보기에만 끔
찍하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뜨겁지 않습니다. 풀무라서 불이 타긴 타는데 안 뜨거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해서 시원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 지키면서 심령에 매인 바 되고 성령에 이끌린 바 되어서 하루 세 번씩 기도했는데 사자 굴에서 하나님이 왜 보호 안해주시겠습니까? 사자 입을 막고 사자 발을 붙잡아서 물지 못 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밤새도록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찬송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자 바라보고 무서워하면 사자가 잡아먹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알고 그 다음에는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사자가 우굴 우굴 해도 의심하면 안 됩니다. 못 잡아먹는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다가 들어왔는데, 네가 어디라고 잡아먹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이제 그만 올라오라 할 때 기뻐서 올라가다가 문득, 아 이거 뒤에서 좇아와 잡아먹지 않겠나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때는 사자들이 잡아먹습니다. 올라가면서도 이거 사자가 잡아먹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안 됩니다. 그럼 잡아먹힙니다. 올라가면서도 주여 믿습니다 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거의 다 올라가서 이제 굴 입구에 다다를 때, 사자가 어디쯤 따라올까 한번 바라보자 이거 물지 않겠나 하면 그때 사자가 뛰어 올라 발을 낚아채서 잡아먹습니다. 거의 다 올라갔어도 의심
하면 안 됩니다. 믿습니다 하고 올라가야 됩니다. 믿습니다, 머리가 입구로 올라 온 다음에도 믿습니다 하고, 또 거의 다 올라가서 이제 발만 나오면 되는 상황에서도 발 물지 않겠나 의심하면 와서 물어버립니다. 발을 물면 잡아당겨 끌려 내려가는 것입니다. 사자들이 얼마나 힘이 셉니까? 다 올라가기까지 줄곧 굳게 믿습니다 하면서 올라와야 됩니다. 하나님만 의뢰합니다. 그러면 사자가 잡아먹지 못 합니다.
순종함으로 칼날을 피한 다윗
칼날을 피하기도 한다고 했는데, 다윗이 그 칼날을 피한 일이 있습니다. 말씀 순종하다가 칼의 세력이 왔지만 다 피했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누구의 칼날을 피했습니까? 사울의 칼날입니다. 사울이 아무리 죽이려고 따라 다녔어도 하나님이 칼날을 모두 피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원수는 하나님이 막아줍니다. 그리고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한다고 했는데, 연약하다가 강해졌습니다. 믿음 지키면 강해집니다.
루터가 종교개혁하다가 낙심을 했다고 합니다. 하도 안 되니까, 낙심이 들어 침대에 누웠답니다. 아무 힘이 없이 누워서 눈만 멀뚱멀뚱 하고 있는데 루터 부인이 보니까 참 보기 딱하단 말입니다. 그 부인이 갑자가 나갔다가 부모나 남편이 죽은 것처럼 상복을 입고 들어왔답니다. 그것을 루터가 보고 아니, 누가 죽었길래 그렇게 상복을 입고 들어왔느냐고 물었보니, 하나님이 죽어서 이렇게 하고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루터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나님이 죽는다는 말이 어디 있느냐고 하니, 그 부인이 말하기를 여보, 하나님이 죽었으니 당신이 그렇게 절망하고 있지, 하나님이 살았으면 왜 그렇게 하고 있겠느냐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루터가 정신이 퍼득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안 죽었으면 내가 왜 이렇게 하고 있겠느냐. 하나님이 하는 것인데, 내 힘으로 하는 것처럼 왜 낙심을 할까 하면서 다시 용기를 내서 종교개혁을 성공으로 이끌었는데 이렇게 믿음으로 나가면 연약하다가도 강하게 됩니다.
순종함으로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을 물리침
또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을 물리치기도 한다고 했는데, 이방사람 물리친 사람이 구약에 많이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이 멸망하는 것처럼 이 세상이 멸망할 것인데,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고, 그 하시는 일을 믿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여러 사람들, 곧 기드온, 삼손, 다윗, 사무엘과 같은 믿음으로 연약하다가 강해지고, 불의 뜨거움과 사자입도 모두 막을 수 있는 능력 있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