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9일 수요일

히브리서 12:1-4 달음질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달음질하라
히브리서 12:1-4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4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1. 푯대를 향해서 달음질하라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했습니다. 경주는 달음박질을 가리킵니다. 우리 앞에 당한 달음박질을 잘하라, 경주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계속 달음박질한다고 했습니다. 푯대를 향해서 달음질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달음박질을 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앉은뱅이나 절름발이와 같이 달음박질하지 못하는 병든 사람들, 달음박질 잘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달음박질 잘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달음박질 할 때에는 푯대가 있는데, 푯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날마다 달음박질하는 것입니다. 달음박질하다 보면 점점 예수님이 가까워집니다. 점점 예수님의 빛을 받게 됩니다. 달음박질을 잘하면 점점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또 달음박질을 잘 하는 사람은 점점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더 많이 발견해가게 됩니다.
그리고 달음박질 잘하는 사람은 점점 예수님을 더 얻어가고 점점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어 갑니다.

빌립보서 3장 7∼9절에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했습니다. 좀 더 달음박질해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달음박질하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고 했습니다.
또 빌립보서 3장 10∼14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달음박질 하노라, 좇아가노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달음박질을 계속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달음박질하지 않는 신앙은 병든 신앙입니다.

진보가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 믿어도 달음박질하지 않는 신앙은 진보가 없고 자라나는 것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퇴보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달음박질하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달음박질하면 점점 예수님이 더 가까워집니다. 달음박질하니까 가까워질 것 아닙니까? 달음박질하면 예수님의 사랑을 점점 더 깊이 깨달게 됩니다. 감격이 넘칩니다. 달음박질하는 신앙은 예수님을 얻습니다. 달음박질하는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달음박질 잘하면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의 주만 남아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달음박질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내내 그 자리고 또 퇴보합니다. 전진하지 않으면 퇴보합니다. 전진하면 점점 더 하늘나라가 가까워지고 전진하지 못하면 점점 더 퇴보합니다. 찬송가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마음 속에 이루어지니’와 같이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더 가깝고 더 가까운 하늘나라 하룻길 밖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소망이 점점 더 견고
해집니다. 달음박질하는 사람의 믿음은 점점 신령한 믿음으로 되어가고 독실해집니다. 또 달음박질하는 신앙은 사랑이 점점 많아집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점점 자라납니다. 진보가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점점 더 견고해집니다. 하늘나라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하늘나라가 이제는 자기 속에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달음박질하는 신앙입니다.

2.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벗어 버리고 달음질하라

그러면 달음박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라고 했습니다. 달음박질하려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달음박질 하는데 무거운 것들이 있으면 잘 하겠습니까? 잘 하지 못합니다. 또 얽매이는 것, 발목 잡혀 놓고 달음박질하려면 달음박질할 수 없습니다.
즉 죄가 있으면 달음박질하지 못하고 무거운 것을 지고 가려면 달음박질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무거운 짐 지고 가는 사람들은 그 짐을 다 예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잘 가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했는데, 죄가 있으면 달음박질하지 못합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따로 말한 것을 보면 세상 짐을 자기가 지고 나가려는 것이 무거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맡기지 않고 자기가 짐을 지고 가는 것이 무거운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는데 안 맡기면 그것이 무거운 것이 됩니다.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면 하나님께서 권고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내일을 주께 맡겨 놓읍시다. 어떻게 될까 염려하지 말고 주께 맡겨 놓읍시다. 뭘 먹고 살까 염려하지 말고 주께 맡겨 놓읍시다. 장래에 또 어떻게 살까? 그것도 주께 맡겨 놓으십시다. 하나님께서 다 먹고 살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집의 아이들이 밥 달라고 할 때에 어머니의 밥을 달라고 그럽니까? 아닙니다. 내 밥 달라고 합니다. 정정당당히 먹고 살 것을 하나님께서 다 주셨기 때문에 자기 밥 먹고 살지 그 부모 밥 먹고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실 때에 다 먹고 살게 해 놓고 내신 것입니다. ‘하늘은 녹 없는 사람을 내지 아니하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녹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 먹고 살게 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내실 때에 이 사람이 뭘 먹고 살아야 될까? 다 준비하고 내신 것입니다. 왜 먹을 것이 없는가? 하나님께서 해 놓으신 것을 찾지 못해서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낮아지지를 않습니다. 낮은 곳 가서 먹어야 하는데 높은 곳만 다니니까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염려는 마귀에게 속한 것인데, 염려를 다 주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내일 일도 주께 맡기고 오늘 일도 주께 맡기고 장래 일도 주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께 맡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아이들 문제, 가정 문제, 여러 가지 염려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다 주께 맡겨 놓으십시오. 살든지 죽든지 맡겨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만 순종하면 됩니다. 또 죄는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그 다음에 달음박질하는 것입니다. 인내로써 참고 견디며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것입니다.

3. 예수를 바라보며 달음질하라

본문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주’라는 것은 ‘믿음의 주장자’라는 뜻입니다. 또 온전케 하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믿음의 주장자요,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신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의 말씀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본 받아 달음박질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니까 예수님이 어떤 예수님입니까? 우리의 믿음의 주장자고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인도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또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잘 참으셨다는 뜻입니다. 앞에 있는 즐거움이라는 것은 모든 택한 백성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와서 같이 찬송하는 것입니다. 또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앞에 있는 즐거움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가 닥칠 때에 그 고난만 생각한 것이 아니고 앞에 있는 즐거움을 생각하셨습니다. ‘앞에 어떤 즐거움이 온다, 승리가 온다, 찬송이 온다, 대승리가 온다, 또 죽어도 부활한다, 부활해서 모든 백성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 이 성도들이 다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같이 영생복락을 누린다’라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요, 부끄러움의 십자가입니다. 찬송가에는 ‘쓰리고 아픈 십자가, 나 위해지셨다’고 했습니다. 쓰리고 아픈 것이 얼만큼이었겠습니까? 한 사람 죽는 것만 해도 아픈데 억만 사람이 죽는 고난이 다 거기 있으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얼마나 쓰렸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잘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면서 고난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4. 참으신 자를 생각하며 달음질하라

3절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아주신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오래 참아주신 주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참아주신 주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뭐 괜찮아서 가만히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야 하겠지만 그래도 오래 참아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 참아주신 주님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5. 죄와 싸우며 달음질하라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와 싸우면서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죄를 벗어버리고 회개하면서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또 무거운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죄와 싸우면서 달음박질하라고 했습니다. 계속 시험이 있고 죄도 계속 들어오려 합니다. 마귀는 계속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한번 마귀가 시험하고 아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고 얼마 동안, 잠시만 떠났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지고도 마귀가 잠시 동안만 떠난 것을 보면 또 온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또 옵니다. 회개했다, 죄를 끊어 버렸다, 하고 다 된 줄로 알면 안 됩니다. 마귀가 또 올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오면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서 달음박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죄를 회개했다고 해도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계속 마귀가 오는데 물욕(物慾)과 정욕(情慾)과 사욕(私慾)을 이용해서 옵니다. 세 가지로 마귀가 들어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돌로 떡 덩어리 해먹어라(물욕), 성전에서 내려 뛰어라(명예심), 천하만국을 향해 한번 절하라(영광심)’고 했습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말세에 가서도 물욕과 정욕과 사욕이 시험거리입니다. 심을철 목사님 말이 마귀는 발전성이 없어서 내내 세 가지, 그것을 가지고 한다고 합니다. 옛날 에덴동산에서나 예수님
때나 말세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세 가지가 뭡니까? 물욕, 정욕, 사욕입니다. 마귀가 그것 세 가지를 통해 들어오는데 그것을 잘 막아야 합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생명 내놓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피 흘리기까지는 너희가 싸우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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