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
히브리서 11:33-40
히브리서 11:33-40
33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36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40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 믿음의 능력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고 의를 행하고 약속을 받으며 사자의 입을 막음
본문 33절에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나라들을 믿음으로 이겼다고 했습니다. 즉 삼손과 기드온 같은 사람들이 아말렉이나 블레셋 나라가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침략해 올 때에 그들이 믿음으로 나가서 다 이겼습니다.
또 “의를 행하기도 하며”라고 하였는데, 엘리야와 같은 사람은 의를 행했습니다. “약속을 받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받은 것, 가나안 땅을 받은 것 등은 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믿음으로 사자의 입을 막았고(단 6:7-23), 다윗과 삼손도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삼상 17:34, 삿 14:6).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고 칼날을 피하고 강하게 되며 진을 물리침
본문 34절에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 가운데에서도 믿음으로 죽지 않고 나왔습니다(단 3:19-30).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골리앗의 칼날을 다윗이 피했습니다. 또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연약하여 로뎀 나무 아래에 쓰러졌으나 믿음으로 강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기드온의 삼백명 용사가 믿음으로 미디안을 다 물리쳤고 (삿 7:22-23), 다윗이 믿음으로 블레셋 진을 물리쳤습니다(삼상 17:51). 다 믿음으로 했습니다.
믿음으로 죽은 자를 부활로 받고 악형을 받음
본문 35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들은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라고 하였는데, 사르밧 과부는 죽은 자기 아들을 엘리야가 기도해 줌으로 다시 살림을 받았고(왕상 17:21-22), 수넴 여자도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사가 기도함으로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왕하4:34).
그 다음에는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는데, 더 좋은 부활을 받으려고 악형을 받았지만 구차히 면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5:4에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많은 환난과 악형을 이긴 자들은 이 길을 자원해서 갔습니다. 또 죽는 길로 자원해서 갔습니다. 왜 자원해서 갔습니까?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고 자원해서 간 것입니다(롬 8:13). 믿음으로 생명을 바치면 더 좋은 부활을 받습니다. 즉 부활할 때에 영광과 존귀와 상급이 크고 더 좋은 면류관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진들은 악형을 받을 때에 진리
를 양보하거나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고 생명을 내놓고 싸워 나갔
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다 죽을 것인데, 이 죽을 것이 생명의 역사, 믿음의 역사에 삼킨바 된 것입니다. 즉 믿는 일을 하다가 자기 목숨까지 구원 역사에 삼키워지면 영원한 영광의 부활체로 나오게 됩니다. 즉 이 세상에서 잠시 편안히 사는 것보다 예수를 위해서 죽으면 영원한 영광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더 좋은 부활을 받으려고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36-37절에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톱으로 켜는 것과”라고 하였는데, 이사야가 믿음을 지키다가 톱으로 킴을 당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톱으로 켠다는 것은 관속에 산 사람을 집어넣고, 관을 세워 위에서부터 아래로, 절반을 톱으로 쪼개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관 속에 있는데 위에서부터 톱으로 켜 내려가는 겁니다. 즉 머리부터 켜내려가면서 몸까지 쪼개어 내려가는 겁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이런 고난도 다 이겼습니다. 죽었지만 사실은 이긴 것입니다. 톱으로 켜는 사형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정작 당하는 사람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밖에서 “톱 가져와라”해서 몇 번 왔다, 갔다하면 머리에 닿을 것 아닙니까? 머리에 닿은 다음에는 한두 번만 왔다 갔다 하면 정신을 잃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정신을 잃어 버렸으니까 모릅니다. 그러므로 톱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약 두 번 정도만 참으면 될 것 같습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이런 고난을 다 당했습니다.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라고 하였는데, 제사장 아히멜렉을 사울 왕이 칼로 죽였습니다(삼상 22:11-19). 또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라고 하였는데, 큰 핍박할 때에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다닌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란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큰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가산이나 직장을 빼앗겨 궁핍과 학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본문 38절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며 핍박하므로 신앙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로 도망쳐 다녔습니다.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양과 염소가 가는 것처럼 산으로 도망쳐 다녔습니다. 그럴 때에 먹을 것이 없어서 얼마나 궁핍을 당했겠습니까? 동네에는 내려오지 못하니까, 산으로 다니면서 나무껍데기 등 이런 것들로 양식을 삼으며 환란을 당했습니다. 요새, 산딸기 나는 계절인데, 산딸기 먹을 때에 무슨 생각이 나는가 하면, 6.25사변 때에 피난 다니다가 산에서 산딸기 따먹은 생각이 납니다. 그 때에 산딸기 따먹고 다녔는데, 이와 같이 신앙의 정조를 지키던 사람들이 이러한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고 하였는데,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는 말은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세상이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것은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음식으로 말하면 좋은 음식입니다. 그런데 위 병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음식일지라도 먹지 못합니다. 죽이나 먹어야 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이고, 세상에서 모본이 되는 사람이고,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인데,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기독교 핍박으로 산중으로 유리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였습니다. 또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다고 했는데, 암혈은 돌로 된 굴을 말합니다. 토굴에 유리하였다고 했는데, 소아시아에 가보면 “카타콤”이라는 지하 동굴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토굴입니다. 과거에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토굴 속에 들어가서 여러 해 동안 거기에서 살았습니다. 토굴에서 살다가 죽으면 거기에서 장사하고, 또 자손들도 토굴에서 살다가, 토굴 속에서 장사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많은 해골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 그 분들이 얼마나 믿음을 지키느라고 환난을 많이 겪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굴속에서만 산 것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이렇게 신앙을 지켰습니다.
2.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을 내어 놓고 나간 사람들
그러면 믿음을 지킨 사람들 가운데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나라를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싸워서 이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느라고 생명을 내어 놓고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생명을 내어 놓고 나간 사람들
둘째는 의를 위해서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라고 생명을 내어 놓고 나갔습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지키는 것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며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기도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이 내려왔어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열왕기상 8:46-50에 예루살렘 성전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시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고 말씀을 지켜야겠다, 사자 굴에 들어가도 말씀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다(단 6:11-18). 그러나 다니엘이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다니엘을 상하게 하지 못했습니다(단 6:19-23).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더 좋은 부활을 위해 고난을 당하며 나간 사람들
그 다음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좋은 부활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35절에 악형을 받되 더 좋은 부활을 바라보면서 구차히 면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죽은 성도가 신령한 몸으로 장차 부활할 것을 말합니다. 즉 “믿음을 지키다가 죽으면 더 좋은 부활을 얻는다”라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이겼습니다.
믿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고난을 당하며 나간 사람들
그 다음에는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이런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런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즉 믿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심령의 세계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렇게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습니다. 믿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빼앗아 가려고 하고, 우리의 기도를 빼앗아 가려고 하고, 우리의 열심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또 예수님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양보하는 것은 예수님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즉 신앙을 양보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예수님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조들은 예수님과 같이 살려고, 생명의 길을 걸어가려고, 여러가지 환난을 다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세상 나라를 다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 환난, 고난, 핍박 등을 이기면서,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3.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고난을 당하면 하늘의 상이 있음
마태복음 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그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앞서간 믿음의 선조들이 이렇게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싸워 이겼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기며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 환난, 대적하는 세력들을 이겨야 됩니다. 이기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나갑니다.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이겨 나가야 합니다. 이긴 자들에게는 하늘나라에 큰 상급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42에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 고린도전도 9:18에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 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라고 하였는데, 희생하는 것이 상입니다. 즉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상입니다. 얼마나 주를 위해서 희생하였는가? 그러므로 희생할 줄 알아야 됩니다.
희생할 줄 모르는 사람은 상이 없습니다. 주를 위한 수고는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고난당한 것은 다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남아 있습니다.
희생할 줄 모르는 사람은 상이 없습니다. 주를 위한 수고는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고난당한 것은 다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남아 있습니다.
순교는 제일 큰 상임
제일 큰 상급이 되는 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입니다. 즉 순교 당하는 것입니다. 순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 됩니다. 순교를 하지 못해도 주를 위해서 희생 했으면 그것이 하늘나라의 상급입니다. 얼마나 희생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물질에 대해서 얼마나 희생했는가? 희생한 것만큼 하나님 앞에 가서 상을 받습니다.
4.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많은 증거를 얻음
본문 39-40절에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하였는데,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말합니다. 약속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오실 그리스도를 멀리 바라보며 믿고 즐거워하여, 큰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믿음을 잘 지켜 많은 증거를 얻었습니다. 즉 구약의 성도는 믿음으로 증거는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5. 신약시대의 성도에게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심
구약의 성도는 모판과 같음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신약시대 성도들을 위하여 구약시대 성도에게 주신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하여 오셔서 모든 진리를 나타내 주시고, 십자가에서 구속해 주시고, 부활 승천하실 것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모든 진리를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과 진리에 대하여 밝히 나타내 주시고,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속을 완성해 주시고, 부활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 성도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모판과 같습니다.
신약의 성도를 통해 결실함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통해서 결실한다는 것입니다. 봄에 벼 종자를 담가서 모판을 만들어, 모내기를 하면 자라나고, 가을에 가면 결실하는데, 이와 같이 결실은 신약시대에 와서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는데, 저희는 구약 시대 성도로, 구약 시대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 나간 것은 그리스도가 앞으로 오셔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할 것을 위해서 기초 공사한 것이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면 그 기초 위에 집을 잘 짓는 것이 신약시대의 성도를 통해 결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실하지 못하면 일 년 농사한 것이 온전함이 되지 못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일 년 농사하느라고 수고 많이 하지 않습니까? 봄철에 못자리를 하려면 논의 물이 얼마나 차갑습니까? 얼음을 깨고 들어가서 볏 종자를 뿌려야 됩니다. 그 때에는 장화가 없어서 그저 맨발로 들어갑니다. 못자리하려고 맨발로 들어서면 칼로 발을 싹싹 베는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발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발이 다 없어졌나?”하고 발을 보면 그대로 있긴 있습니다. 그만큼 차갑습니다. 요새는 장화가 있어서 신고 들어가지만 이전에는 장화가 없어서 그렇게 힘들게 못자리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모가 자라면 모내기를 하는데, 그 때에는 얼마나 허리가 아픈지, 어떤 사람은 허리가 너무 아파서 허리가 있나? 없나? 하며 만져보곤 했답니다. 그렇게 힘들게 모내기를 했습니다. 또, 김매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지 김을 매느라고 진땀을 다 빼야 됩니다. 또 가을에는 벼 베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요새는 기계로 베니까 쉽지만, 옛날에는 다 사람의 손으로 했기 때문에, 모내기 할 때와 벼베는 때가 제일 어려울 때입니다. 이렇게 수고를 많이 하여 길렀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해 농사는 헛농사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란 결실하지 못하면 내내 농사한 것이 온전함이 되지 못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농사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구약시대의 성도가 모판을 만들어 주었고, 그 다음에 모내기를 해주었고, 그 다음에 김을 다 매주었고, 자라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 성도는 결실하는 때입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다 이루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루어 주었는가? 하면, 고난을 당하면서 이루어 주었습니다. 즉 생명을 내어 놓고 죽으면서까지, 또 토굴 속에 들어가서 몇 십 년 사는 고난을 당하면서까지 구약시대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약시대 성도는 결실하는 때인데, 우리가 잘 결실하여야만 구약시대 성도도 온전해 집니다. 우리가 결실을 잘 하지 못하면 구약시대의 성도가 수고한 것이 다 헛된 데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결실하면 구약시대의 성도도 기뻐할 것이며, 구원역사도 완성되어 나갑니다. 즉 우리가 결실을 잘하면 하나님의 의도 완성되어 나가고,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운동도 완성되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이용당한 것만큼, 희생한 것만큼 상급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같이 우리가 생명을 내어 놓고 믿음으로 나가야 됩니다. 말씀을 지키며, 믿음을 지켜야 됩니다. 또 더 좋은 부활의 소망을 우리가 늘 가져야 합니다.
나는 새벽에 기도할 때에 사도신경을 외우곤 하는데, 어디에 가서 멈춰지는가? 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에서 멈춰집니다.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처럼 나도 살아납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에는 구름타시고 오시는데, “나도 올라간다”는 소망을 가지고 사도신경을 외우곤 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확고히 가지고 나가는 자는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나가는 자는 어떤 환난도 이기며 나갑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세상이 못 이깁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기는 것입니다. 교회와 싸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교회와 싸와서 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실패합니다. 교회는 이기고 또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실을 잘하여야겠습니다. 우리가 결실을 잘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상으로 갚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아름답게 건설해 나갑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구약시대의 성도와 같은 믿음으로 기도하며, 생명을 내어 놓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지켜 나가면서 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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