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궤가 돌아옴
사무엘상 6:12-21
12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 13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것의 보임을 기뻐하더니 14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15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를 드리니라 16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로 드린 금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드린 바 금쥐는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견고한 성읍과 시골 동리 곧 다섯 방백에게 속한 사람의 모든 성읍의 수효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19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20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
시게 할꼬 하고 21사자들을 기럇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가로되 블레셋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사무엘상 6:12-21
12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 13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것의 보임을 기뻐하더니 14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15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를 드리니라 16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로 드린 금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드린 바 금쥐는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견고한 성읍과 시골 동리 곧 다섯 방백에게 속한 사람의 모든 성읍의 수효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19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20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
시게 할꼬 하고 21사자들을 기럇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가로되 블레셋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1. 블레셋 사람들이 재앙을 받아 여호와의 궤를 돌려보내려고 함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나라에 빼앗겨 일곱 달이 지났습니다. 일곱 달 동안 안 믿는 블레셋 지방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는데, 그 궤가 가는 곳마다 큰 재앙이 임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독종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또 징계를 받고 쥐가 나와서 많은 땅을 해롭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으로 가지고 갔는데, 그곳에 큰 재앙이 임했습니다. 다음에는 가드로 가지고 갔는데, 가드에도 큰 재앙이 임했습니다. 궤가 가는 곳에 독종이 나고 쥐가 많이 나와 많은 손해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에그론으로 가져갔는데,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고 큰 환난을 만났습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돌려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돌려 보내지 않으면 “우리가 다 망하게 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방백들과 우상 섬기는 제사장들, 복술하는 사람이 다 모여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돌려 보내야 되는가를 의논했습니다. 의논한 결과, 하나님의 궤를 돌려 보내려면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 “그들이 가로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꼬 가로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이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방백에게 내린 재앙이 일반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독종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을 당했는데, 독종 모양 다섯 개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또 금으로 쥐 모양을 만들어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2. 언약궤를 실은 수레가 바로 행하여 벧세메스에 이름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그 수레를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로 끌게 하였습니다. 본문 12절에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소들이 울면서도 돌아서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도 않으면서 이스라엘으로 똑바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소를 인도 하신 것 같습니다. 소를 가만히 놓아두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또 소 두 마리에 멍에를 메어 놓았으므로, 하나가 먼저 나가도 안 되고 또
하나가 물러서도 안 됩니다. 합할 수가 없습니다. 멍에를 처음으로 멨기 때문에 두 마리가 같이 메고 나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소가 울면서 벧세메스로 올라갔습니다. 왜 울며 갔습니까? 젖 먹던 송아지를 떼어 놨으니까 송아지 생각을 하며 운 것입니
다. 돌아서서 송아지한테 갈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가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곧장 간 것입니다. 송아지 생각을 하면서 돌아서면 일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송아지가 없는 소도 많았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돌아서는지 안 돌아서는지, 새끼에 대한 정으로 기울어지는지 안 기울어지는지를 보려고 암소와 송아지를 떼어 놓고 가도록 한 것입니다.
돌아설 수 있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안 돌아서는 것이 진짜입니다. 돌아서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직 앞을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길로 향하도록 했기 때문에 끝까지 벧세메스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그 수레를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로 끌게 하였습니다. 본문 12절에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소들이 울면서도 돌아서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도 않으면서 이스라엘으로 똑바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소를 인도 하신 것 같습니다. 소를 가만히 놓아두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또 소 두 마리에 멍에를 메어 놓았으므로, 하나가 먼저 나가도 안 되고 또
하나가 물러서도 안 됩니다. 합할 수가 없습니다. 멍에를 처음으로 멨기 때문에 두 마리가 같이 메고 나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소가 울면서 벧세메스로 올라갔습니다. 왜 울며 갔습니까? 젖 먹던 송아지를 떼어 놨으니까 송아지 생각을 하며 운 것입니
다. 돌아서서 송아지한테 갈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가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곧장 간 것입니다. 송아지 생각을 하면서 돌아서면 일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송아지가 없는 소도 많았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돌아서는지 안 돌아서는지, 새끼에 대한 정으로 기울어지는지 안 기울어지는지를 보려고 암소와 송아지를 떼어 놓고 가도록 한 것입니다.
돌아설 수 있는 형편이지만, 그래도 안 돌아서는 것이 진짜입니다. 돌아서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직 앞을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길로 향하도록 했기 때문에 끝까지 벧세메스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원래 고핫 사람이 메고 가는 것이지 수레에 싣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원칙은 메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특수한 방법을 허락하셨습니다. 블레셋 나라에는 하나님의 제사장인 레위 사람이 없습니다. 언약궤를 돌려 보내려고 해도 레위 사람이 갈 수가 없으니까 소 수레에 실어서 보낸 것입니다. 원리원칙은 고핫 자손이 메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수한 방법으로 소에게 멍에를 메게 해서 벧세메스, 즉 유대 나라로 돌아오게 만들었는데 잘 돌아왔습니다. 소 두 마리가 처음으로 멍에를 멨는데, 협조하며 잘 갔습니다. 또 좌우로 치우치지도 않았습니다. 가다 보면 다른 길도 많고 옆에 좋은 것도 많고 먹을 풀밭도 많이 있었을 텐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벧세메스로 향해 수레를 끌고 간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가는 소와 같습니다. 우리도 멍에를 메고 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8-29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멍에를 메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오늘날 교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다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있
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멍에를 메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교회를 메고 나가야 합니다. 목사도 하나님의 교회를 메고 끌고 나가고 장로도 하나님의 교회를 메고 끌고 나가고 집사, 권찰, 반장, 교인들도 전부 다 하나님 복음 운동의 멍에를 메고 끌고 나가야 합니
다. 끌고 목적지까지 잘 가면 대성공입니다.
블레셋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향해 잘 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나갈 때에 울면서 갔는데, 울면서라도 뒤를 돌아다보지 않고 가야 합니다. 송아지 생각이 나서 울지만,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돌아서면 안 됩니다. 그냥 앞을 향해서만 나가야 합니다. 앞을 향
해서 나가면 송아지가 점점 멀어지지 않습니까? 송아지는 뒤에 떼어놓았는데 자꾸 앞을 향해서 가니까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멀어져도 돌아서면 안 됩니다. ‘송아지를 보고 가야 되겠다, 젖을 먹이고 가야 되겠다’라고 하면 일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녀를 다 떼어 놓아야 합니다. 인정으로 기울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메어 주신 멍에를 메고 앞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돌아서면 안 됩니다. 가다가 좌우로 치우쳐도 안 됩니다. 좌우에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지만, 한 눈을 팔다가는 그만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것이 실패가 됩니다. 아무리 좌우에 볼 것도 많고 좋은 풀밭이 많더라도 하나님께서 메워 놓으신 수레를 메고 앞만 향해서 목적지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리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소들로 수레를 끌게 하였습니다. 처음으로 멍에를 메어서 목이 아프고 힘이 듭니다. 어떤 것이나 처음으로 하려고 하면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손도 일을 하지 않다가 하려고 하면 다 부릍고 힘이 듭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메는 것도 처음으
로 메려고 하면 어깨가 아파서 못 멥니다. 그래도 힘들다 하지 않고 힘든 것을 끝까지 잘 참고 나가야 합니다.
또 두 마리가 함께 나가기 때문에 잘 협조하며 나가야 합니다. 두 마리가 멍에를 함께 메고 나갈 때에 서로 협조를 잘 해야 됩니다. 한 마리가 먼저 나가도 안 되고, 다른 한 마리가 먼저 나가도 안 됩니다. 멍에 멘 두 마리가 똑같이 나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협조할 줄 알
아야 합니다. 저 혼자만 잘 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교만입니다. 자기 혼자만 잘 한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협조해서 다 같이 나가야 하나님의 궤를 바로 메고 나갈 수 있습니다. 또는 ‘내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할 것이다’, ‘저 소가 힘이 세니까 나는 안 해도
되겠다’ 하고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잘 끌고 나가다가 옆에 소가 힘이 있다고 자기가 주저앉으면 그 멍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면 옆에 소가 주저앉아도 자기 혼자만 나가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옆의 소와 잘 맞춰서 나가야 합니다. 서로 협조할 줄 알고, 서로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끌고 나가야 바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벧세메스까지 하나님의 궤를 메고 가야 합니다. 즉,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계속 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울면서라도 돌아서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계속 벧세메스까지 가야 합니다.
3.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영접함
본문 13-14절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것의 보임을 기뻐하더니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라고 하였습니다.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섰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여호수아는 모세 때의 여호수아가 아니고 그 후에 태어난 벧세메스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밭에 선 것입니다.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잡아서 여호와께 제사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수레를 싣고 온 소에게 수고했다고 잘 먹여주어야 하는데, 왜 그 소를 잡아서 제사를 드렸습니까? 또 수레는 왜 팼겠습니까? 수레 하나를 만들려면 무척 힘이 듭니다. 나무가 없어서 그랬겠습니까? 벧세메스에도 나무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를 잡아서 제사를 드리고 수레를 패서 나무를 드린 이유는 하나님 앞에 제일 좋은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일 좋은 제물은 어떤 소겠습니까? 하나님의 궤를 끌고 온 소가 하나님께 이용을 당했으니까 제일 좋은 소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입니다. 또 나무는 하나님의 궤를 싣고 온 나무가 가장 귀중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제일 좋은 제물과 제일 좋은 나무를 드리려고 그 수레를 패고 그 소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좋은 사람을 받으십니다. 찌꺼기같은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순교 당하는 것도 제일 좋은 사람, 곧 제일 좋은 제물을 받으십니다. 순교를 받아 주시기만 하면 큰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죽을까봐, 순교를 당할까봐 겁내는 찌끄레기 같은 사람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송아지를 떼어 놓은 소가 울면서 수고를 다하고 둘이서 힘을 합해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갔는데, 마지막에는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잘 끌고 나가던 수레를 패고 소는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몸까지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몸과 목숨까지 바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가다가 희생당하고 몸과 목숨까지 바치는 성도는 하늘나라에 가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가고 큰 복을 받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송아지를 떼어 놓은 소가 울면서 수고를 다하고 둘이서 힘을 합해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갔는데, 마지막에는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잘 끌고 나가던 수레를 패고 소는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몸까지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몸과 목숨까지 바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가다가 희생당하고 몸과 목숨까지 바치는 성도는 하늘나라에 가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가고 큰 복을 받습니다.
본문 15절에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를 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와 보물이 든 상자도 내려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금 보물이 담긴 상자는 하나님께 속건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제물로 바쳐진 것이니까 팔아서 하나님을 위해 사용했는지 다른 방법으로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우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본문 16절에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방백이 보고 ‘하나님의 궤를 하나님께서 가지고 가셨구나’라고 알고 돌아갔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가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줄 알고 삼가조심하여야 합니다. 방심하다가는 하나님의 궤가 실패하여 돌아갈 염려가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뛰어도 안 되고 주저앉아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가는 성도는 중대한 일을 하는 성도인 줄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삼가 조심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잘 수종들어야 하겠습니다.
4. 금독종과 금쥐의 수효
본문 17-18절에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전제로 드린 금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드린 바 금쥐는 여호와의 궤를 놓은 큰 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견고한 성읍과 시골 동리 곧 다섯 방백에게 속한 사람의 모든 성읍의 수효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금독종 다섯 개, 금쥐 다섯 개씩을 드렸습니다. 블레셋 나라의 큰 도시가 다섯인데, 금독종 다섯은 다섯 도시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통과한 도시들을 보면 아스돗, 가드, 에그론 세 곳에 옮겼는데, 여기 다섯 도시라고 한 것은 중간에 아마 작은 도시들이 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큰 도시는 세 곳이지만 다섯 도시를 통과한 것 같습니다. 또한 도시마다 방백이 하나씩 있으니까 다섯 방백입니다.
금쥐는 그 다섯 도시, 다섯 성읍의 수대로 한 것이고 금독종은 방백 다섯 명의 수대로 만들었습니다. 다섯 도시에 있었던 재앙은 여호와께서 내리셨는데, 다시 여호와께서 거둬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금독종과 금쥐를 만들어 하나님께 속건제로 드린 것입니다.
5.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자들의 죽음
본문 19절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보다가 (오만) 칠십 인이 죽었다고 했는데, 오만은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칠십 인은 죽은 것이 확실하고, 오만은 죽지 않고 징계만 받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징계 받은 사람은 오만 명이고, 그 가운데 죽은 사람은 칠십 명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보다 징계 받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매 맞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요새도 그렇습니다. 매를 맞고 징계 받아 죽는 사람은 소수이고, 징계를 받아 질병에 걸린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본문 19절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보다가 (오만) 칠십 인이 죽었다고 했는데, 오만은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칠십 인은 죽은 것이 확실하고, 오만은 죽지 않고 징계만 받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징계 받은 사람은 오만 명이고, 그 가운데 죽은 사람은 칠십 명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보다 징계 받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매 맞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요새도 그렇습니다. 매를 맞고 징계 받아 죽는 사람은 소수이고, 징계를 받아 질병에 걸린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죄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아마 궤가 그대로 있는지, 없는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또 블레셋 나라에서 일곱 달 동안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왔기 때문에 돌판을 꺼내지 않았을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죽이셨습니까? 궤가 그대로 있으면 되는데 왜 죽이셨습니까? ‘그대로 있나, 없나’ 한 것이 틀렸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궤를 돌려 보내주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궤를 열게 하셨겠습니까? 또 가는 곳마다 재앙을 만났다는 것을 듣고 알 수 있습니다. 궤가 가는 곳마다 독종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질병에 고통을 당하고 큰 재앙을 만났는데, 그 사실을 알고 왜 들여다 봅니까? 하나님께서 궤를 보호하시고 가는 곳마다 재앙을 내려 돌려 보내주셨으므로 그것을 생각하고 감사해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 것을 믿지 않고 들여다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죄입니다.
민수기 4장 15절에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찌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성물을 만지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4장 20절에는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 것은 죽을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소를 들어가서 보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을 믿지 않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보고 살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한 죄
그 다음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돌아올 때 하나님이 두려운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벌벌 떨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없습니다. 들여다 보는 것이 경외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우러러 공경하고 경외하였으면 들여다 볼 수가 없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도 왕을 경외하면서 함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계신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들여다 볼 수가 있는가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보통
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신성을 침범한 것입니다. ‘신성불가침’인데, 신성을 범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지경을 범한 죄
출애굽기 19장 12절에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경을 범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지경을 범하지 말라고 하였고 하나님의 성소를 들여다보면 죽는다고하였는데, 성경을 믿지 않고 인간의 생각으로 들여다 보다가 하나님께 징계 받아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언제나 거룩히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벌벌 떨면서 거룩을 침범하지 않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경외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늘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벌벌 떠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이사야 66장 1-2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고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벌벌 떠는 자는 권고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우러러 공경하고 제사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제사를 멸시하다가 벌을 받아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존중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예배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벌벌 떨면서 그 말씀을 순종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그저 인간의 생각만 해서 자기 생각대로 들여다 보면서 ‘없어졌나?’하면 죽게 됩니다. 인간의 방법대로 들여다보면 죽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을 멸시한 죄, 거룩을 침범한 죄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을 침범하는 죄를 범하면 안 되겠습니다.
6. 벧세메스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옮겨 가라고 함
본문 20-21절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하고 사자들을 기럇여아림 거민에게 보내어 가로되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가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7장 1절에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다가 많이 죽으므로 여호와의 궤를 모실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모시겠는가’하면서 기럇여아림으로 보내 가져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다가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다 놓았습니다.
역대상 13장 13-14절에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 메어 들이지 못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가니라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궤를 모신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다윗 왕 때에 기럇여아림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수레에 궤를 싣고 오다가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으로 궤를 붙들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그래서 다윗 성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복을 많이 내려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모신 집은 복을 많이 받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가는 곳에 복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벌벌 떠는 신앙으로 나아가야만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붙잡았다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흔들흔들해서 붙잡았는데 그러다가 벌을 받아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
이지 사람이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어나가십니다. 사람이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할 것뿐이지 들여다 보거나 자기가 붙잡으려고 하면 죽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할 것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순종하고 경외하며 받들어나가는 일만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