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
잠언 29:1-11
1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2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3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 4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5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6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7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8모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9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 10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11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잠언 29:1-11
1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2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3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 4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5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 6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 7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8모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9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 10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11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 목이 곧은 자는 패망함
본문 1절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아서 돌이키지 못하는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책망을 받을 때에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책
망을 받을 때에 회개하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며 그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은 목이 곧다는 것입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책망이 옳은 줄 알면서도 돌이키지 못하고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여 그것을 피하지 못합니다. 망할 날이 갑자기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놔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책망하셔서 바로 세우려고 하시다가 안 되면 그 다음에는 패망시키십니다. 다 멸망시키시고 심판하십니다.
본문 1절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아서 돌이키지 못하는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책망을 받을 때에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책
망을 받을 때에 회개하지 못하고 돌이키지 못하며 그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은 목이 곧다는 것입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책망이 옳은 줄 알면서도 돌이키지 못하고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여 그것을 피하지 못합니다. 망할 날이 갑자기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놔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책망하셔서 바로 세우려고 하시다가 안 되면 그 다음에는 패망시키십니다. 다 멸망시키시고 심판하십니다.
시편 49편 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존귀에 처하지만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도록 존귀하게 만들어놓으셨는데, 깨닫지 못하고 나가면 멸망하는 짐승처럼 망한다는 것입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아서 돌이키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갑자기 멸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책망을 받고 돌이키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잠언 28장 13절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책망을 받으면서 죄를 깨닫고 잘못된 것을 깨달았으면, 즉시로 돌이켜야 합니다. 안 돌이키고 계속하여 그 길로 나가면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 의인과 악인
본문 2절에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많아지니까 백성들이 서로 유익이 되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들에게 큰 손해가 옵니다. 무슨 악을 행할지 모르니까 백성들이 탄식을 하게 됩니다.
본문 2절에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많아지니까 백성들이 서로 유익이 되어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들에게 큰 손해가 옵니다. 무슨 악을 행할지 모르니까 백성들이 탄식을 하게 됩니다.
본문 3절에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사모하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혜이고, 말씀이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아비를 즐겁게 합니다. 아비는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자기 아버지도 즐겁게 하고, 하나님 아버지도 즐겁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탕한 여자를 사귀는 사람,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다 탕진한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해진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재산은 다 없어지고, 병이 들며, 망합니다. 패가망신합니다.
본문 4절에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공의대로, 법대로 왕이 나라를 다스리면 그 나라가 견고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어기고, 공의를 무시하고 나가면 나라가 약해집니다. 왕은 언제나 공의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면 나라가 견고해진다는 것입니다. 또 왕이나 정치가가 뇌물을 받고 무엇을 해주거나, 또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한다면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뇌물이 많아지면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본문 5 에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첨하는 것은 자기 이(利)를 위해서 발라맞추는 것입니다. 자기 이를 위해서 발라맞추고, 거짓말도 보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유익이 좀 있으니까 아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자기를 알아주고 높여준다면, 그 발 앞에 그물이 쳐 있는 것과 같아서, 그것에 걸려 그물에 잡힐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첨하지 말고 진실해야 합니다.
본문 6절에 “악인의 범죄하는 것은 스스로 올무가 되게 하는 것이나 의인은 노래하고 기뻐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범죄함으로 올무가 되어서 거기에 걸려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의를 행하고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항상 노래하고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는 것이 의인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3. 모만(侮慢)한 자는 요란케 하고 슬기로운 자는 노를 쉬게 함
본문 8절에 “모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거만하고 오만한 사람들, 불량하게 나가는 사람들은 성읍을 요란케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입으로 요란하게 만듭니다. 불량자들이 성읍을 요란케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슬기로운 자는 어떻게 합니까? 노를 그치게 합니다. 노를 그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니면서 격동시키고 요란케 하는 자는 모만한 자이고, 노를 그치게 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하여간 누가 노하면 그 노를 그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격동시키지 말고 ‘어떻게 하여야 노를 그치게 할까?’를 잘 연구해서 노하는 것을 그치게 하는 사람이 지혜
로운 자입니다.
본문 9절에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는데 지혜로운 자가 노해도 안 되고, 웃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노하면 미련한 자가 더 격동이 될 것 아닙니까? 또 지혜로운 자가 웃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련한 자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더 싸우자고 들 것입니다. 또 노하면 노했다고 더 싸우자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툴 때에 노해도 안 되고 웃어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물론 다투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다툴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잘 참아야 합니다. 그러나 참는 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즉, 다툴 때에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어 참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잘 참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와 다투게 될 때에 어떻게 하면 안 됩니까? 노해도 안 되고, 웃어도 안 됩니다. 싸움이 더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
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잘 참고, 말씀대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잘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악한 자인데, 그러한 사람들은 온전한 자들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아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참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다가와도 하나님께 맡기고, 참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못 죽인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호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노를 당장에 다 드러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노를 드러내지 않고, 억제하며 누른다는 것입니다. 화를 내고 당장에 노를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노를 드러내지 않고 노할 일이 생겨도 잘 누릅니다. 노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마산에 성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 목사님은 싸우고 변론하고 재판할 때에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노하게 해도 절대 노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많이 올라올수록 말을 점점 더 가만 가만히 하고 천천히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화가 나서 떠들어대지만 성 목사님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지겠습니까? 화내는 사람이 집니다. 상대방은 화를 다 냈는데, 성 목사님은 화도 내지 않고 천천히 말씀하니,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성 목사님은 성자(聖者)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 목사님의 잘못이 있었습니다. 잘못을 했는데도 지지를 받는 것입니다. 즉, 싸움하는 방법이 혈기를 안 내고, 천천히 말하고,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오히려 지지를 받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실은 옳은데, 그 사람이 화를 내는 바람에 그 옳은 것이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틀렸다’고 판단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고 해도 노를 발하면 벌써 실패합니다. 우리가 천천히 노를 억제해나가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노를 안 발하는 사람, 노할 일이 생겨도 노를 발하지 않는 사람, 억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노할 일이 생겨도 노하지 않아야 합니다. 노할 일이 안 생겨서 노하지 않는 것이라면, 노하지 않는 것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노할 일이 생겼는데 노하지 않는 것이 노를 억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격동을 시켜도 그 격동을 받지 않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얘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