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신앙을 가진 자가 되라
데살로니가후서 2:13-17
데살로니가후서 2:13-17
13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14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16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 진리의 신앙을 가진 자가 되라
본문 13-15절에,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유전과 편지는 성경을 가리킵니다. 성경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지킬 수가 있습니까? 첫째는 사랑해서 늘 사모하고 읽어야 됩니다. 성경을 읽고 또 성경을 배우고 성령 안에 있는 진리를 깨달아야 됩니다. 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아서 그 성경에서 생명을 얻고 힘을 얻고 점점 성경 가운데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진리를 믿어야 됩니다. 믿음으로 그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삼아야 됩니다. 그 말씀이 자기를 인도하는 말씀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그 말씀을 지켜서 그 말씀대로 자기가 인격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미혹을 받지도 않고 또 미혹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그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퇴보가 됩니다.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가 됩니다. 우리 신앙이 전진해야만 퇴보하지 않습니다. 퇴보하지 않으려고만 하면 그렇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계속 전진해야 퇴보가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계속 전진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5장 12절에 너희가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예수 믿은 지 오랜 사람은 마땅히 선생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학교로 말하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이렇게 올라가야 되는데 밤낮 초등학교 1 학년짜리로 그냥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진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요새 성도들이 자라나지 못하고, 전진하지 못하는 성도가 대부분입니다. 또 졸며 잠자는 성도가 또 많습니다. 조는 성도, 또 잠자는 성도, 심령에 잠이 들어서 영적 감각을 다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도무지 힘이 없습니다. 도무지 분별력이 없고 깨닫지 못합니다. 심령이 잠자는 것입니다. 잠자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6절에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일락을 좋아하는 이 향락주의는 살았으나 그 심령이 죽은 심령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끊어졌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죽는 법이 없이 늘 살아 있지만 그 역사가 중단되고 끊어지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에 역사가 끊어지면 감각이 없고 분별력이 없고 아무 힘이 없습니다. 환난과 맞닥뜨리며 환난을 이길 생각을 하지 않고 아예 뒤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산 신자, 생명 있는 성도는 환난을 마주하며 이기고 나갑니다.
학교로 말하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이렇게 올라가야 되는데 밤낮 초등학교 1 학년짜리로 그냥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진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요새 성도들이 자라나지 못하고, 전진하지 못하는 성도가 대부분입니다. 또 졸며 잠자는 성도가 또 많습니다. 조는 성도, 또 잠자는 성도, 심령에 잠이 들어서 영적 감각을 다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도무지 힘이 없습니다. 도무지 분별력이 없고 깨닫지 못합니다. 심령이 잠자는 것입니다. 잠자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6절에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일락을 좋아하는 이 향락주의는 살았으나 그 심령이 죽은 심령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끊어졌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죽는 법이 없이 늘 살아 있지만 그 역사가 중단되고 끊어지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에 역사가 끊어지면 감각이 없고 분별력이 없고 아무 힘이 없습니다. 환난과 맞닥뜨리며 환난을 이길 생각을 하지 않고 아예 뒤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산 신자, 생명 있는 성도는 환난을 마주하며 이기고 나갑니다.
빌립보서 1장을 보면 바울은 환난을 맞서 가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또 빌립보 교인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더욱 담대히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는데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자고 한 것입니다. 그 때 복음 전하면 십중팔구 모두 감옥에 갇히게 될 그런 상황인데도, “감옥에 갇혀도 좋다, 나가자, 나가자” 하면서 아주 힘 있게 나가서 전했습니다. 이것이 산 신자의 모습입니다. 죽은 신자는 환난이 들어오면 슬슬 도망치려고만 합니다. 일제시대 삼일만세운동 때에 기독교인들이 만세를 많이 불렀는데, 그 때문에 일본 경찰이 교회 집사들을 많이 잡아갔습니다. 오산교회의 어떤 집사 하나가 “아무개는 오늘부터 예수 안 믿는다”고 대문 앞에 써 붙였다고 합니다. 자기 잡으러 오는 것 같으니까 오늘부터 예수 안 믿는다고 광고 써 붙이고 그 다음에는 교회도 안 나간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신자의 모습입니다. 담대히 나가는 신앙, 환난과 핍박이 들어왔을 때 담대히 나가는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우리도 담대히 나갈 수 있을까요? 제가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의 장로 딸이 하나 있었는데, 피아노를 잘 쳤고 교회에서는 풍금을 연주했습니다. 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장로 딸이어서 자랑스러워하고 우쭐거리곤 했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무슨 잔치 할 때 일본순사가 갑자기 와서 호루라기를 한 번 부니, 그 장로 딸이라는 사람이 옆에 난 문으로 냅다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순사가 오면 왔지, 평소에는 교회 봉사 잘 하는 것 같더니 장로 딸이 도망가긴 어딜 도망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되는 장로도 가만 보니 똑 같다는 말씀입니다. 1948년 11월 3일 주일날 선거 할 때에, 임하균 목사, 그리고 우리 청년들이 우리는 주일날이라서 선거 못한다고 결정하고 교인들이 동참하려는데, 장로가 나서더니 일제시대 때에도 우리가 졌는데 우리가 한 번 더 집시다 하는 것입니다. 그 때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3년째인데 장로가 믿음으로 이기자고 해도 부족할 판에, 교인들이 선거를 하도록 부추겼던 것입니다. 그 바람에 많은 사람이 넘어 갔습니다.
말세에 가서도 잠자지 말고, 또 세상에 속화되지 말고, 향락주의로 기울어지지 말고, 전진하는 신앙, 전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좀더 나아져야 됩니다. 날마다 나아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전진하는 신앙이 있어야 됩니다. 영력이 점점 강해지고, 점점 새 생명의 역사가 커지고, 속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점점 커지고, 자기가 점점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이 역사가 점점 커져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를 점점 많이 소유해야 되겠습니다. 전에는 진리를 조금 알았
지만 좀 더 많이 배우고 성경을 많이 읽고, 또 많이 묵상하고, 점점 더 많이 성경을 소유해야 되겠습니다. 그 진리의 말씀을 믿고 그 다음에는 사랑하고 그대로 행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예배시간 늦지 말고, 성경 배우는 시간에 빠지지 마십시오. 성경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배우고, 그 말씀을 믿어서 그 말씀이 생명이 되고, 그 말씀대로 행하면서 무슨 소망을 가지라고 했습니까? 산 소망입니다.
로마서 5장 2-3절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망을 이루는 줄 안다고 했는데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될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데, 환난 가운데도 즐거워하는 것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만 보고 즐거워합니다. “아, 참 영광이 크다, 하나님 영광이 얼마나 큰가” 하며 바라만 보고 즐거워한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구경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제 내가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다.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다 하는 소망을 또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서 연단 받는다는 말입니다. 또한 참는 중에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도달합니다. 소망에 도달한다는 말입니다. 환난이 중요합니다. 환난이 없으면 연단이 못됩니다. 인내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환난이 있어야 연단이 되고 그 다음에 인내가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는 거기 도달합니다.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푯대에 도달한다는 말입니다. 표준에 도달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미혹 받는 세계에서 나와서, 좀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면 미혹하는 세력이 못 옵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못 옵니다. 찬송가도 있지 않습니까?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마귀의 역사가 못 옵니다. 미혹을 받는 사람들은 저 아래 흑암 속에서 헤매기 때문에 미혹을 받습니다. 그 속에서 올라오면 미혹을 안 받습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세계, 빛 가운데 걸어가는 세계, 진리를 행하는 세계, 진리에 서 있는 세계. 이러한 세계에 서 있는 사람에게 미혹하는 세력은 저 아래서 아물아물하는 것들 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 아무리 시험이 되고 유혹할 만한 것들이 말을 해도, “저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그걸 예수 믿는 거라 하고 있나?” 하면서 “척 보면 척이다” 하는 식으로 아주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데, 성경 위반하는 것인데 왜 미혹을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아래 세계에 빠져서 감각 없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말씀 가지고 미혹하거나, 신비스런 것으로 미혹하면 정말 그런가보다 하며 귀가 나팔 같아지는 것입니다.
1992년 10월에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많이 미혹시켰지만 우리 교인들 그곳에 한 사람도 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교인들 중에서도 성경에 서지 못한 사람들, 잠자는 교인, 믿음을 쓰지 않는 교인들은 앞으로 또 다른데 미혹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서고, 진리에 서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행하면 아무데도 미혹 안 받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진리에 서지 못한 그 세계에서 쑥 빠져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빛 가운데로 걸어가라는 말입니다. 진리의 세계에서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 말씀대로 걸어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한 걸음 더 올라갑니다.
더 올라가서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세계, 좀 더 올라가는 그 세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야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야만 올라갑니다. 좀 더 한 계단 올라가서, 이젠 빛 가운데서 좀 더 빛 가운데로, 신령한 세계에서 좀 더 신령한 세계로, 진리의 가운데서 좀 더 심오한 진리로 좀 더 깊은 진리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온산 정복을 향해서 올라가는 길인데, 이것은 힘을 써야 됩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언제나 끊어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올라가지, 아닌 걸 그대로 두고는 못 올라갑니다. 아닌 건 언제나 아니라고 끊어버리고, 옳은 건 옳다고 거기 서고, 또 아닌 건 끊어서 옳은 데 서면서 계속 이렇게 올라가는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소망은 무슨 소망입니까? 그렇습니다. 산 소망, 하나님을 닮아가는 소망, 자라나는 소망, 이 산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도달하려면 또 무엇이 있습니까? 환난, 인내, 연단으로 소망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데, 이룬다는 것은 점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소망을 가졌지요? 그 다음에 환난 가운데서, 인내로, 또 연단으로 하나님을 닮아 간다는 말입니다. 많이 닮아가야 됩니다. 하나님 닮아가고 예수 닮아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제 진리를 날마다 배우고 계속해서 그 진리로 자기를 만들고 닮아갑시다. 주일마다 생명 있는 진리를 먹어야 됩니다. 이전에 먹던 찬 밥술, 식은 밥 데워 먹는 것 가지고는 일이 안 됩니다. 옛날 배운 진리만 가지고 나가면 안 됩니다. 계속해서 새 생명 있는 진리를 받아먹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주일날마다 새 생명이 있는 진리의 양식을 계속 먹고 그대로 살려고 힘을 쓰고, 새김질하면서 자기의 생명의 살과 뼈로 삼고, 계속해서 진리를 먹고 또 먹어 자기가 힘을 얻고, 자라나
점차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됩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젖으로 먹는 것 가지고는 자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어서 점점 자라나는 그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2. 은혜와 축복
본문 16-1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좋은 소망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소망입니다. 그 영광에 가서 참여하는 소망입니다. 이런 소망을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에 소망을 든든히 붙잡고 소망을 점점 이루어 나가는 그 신앙, 그 자리에 서야 되고, 항상 하나님의 위로가 심령 속에 넘쳐 흘러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위로 속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슬픔 많은 이 세상이 천국으로 화하고, 항상 하나님의 위로가 충만한 은혜 가운데서 살면서, 모든 선한 일과 선한 말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선을 이루기 위해서 불렀다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너희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게 선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선이고, 원수를 용서해 주는 것이 선이고,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선이고, 모든 사람 앞에 선을 베풀어야 되고, 선한 사람이 돼야 되고, 또 여러 선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빌립보서 1장에 보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해서 선을 이루어 나가고, 진리를 분별해서 진리를 세워나가고, 복음을 전하는 것들이 모두 선입니다. 다른 사람 살리는 것이 선 아닙니까? 우리는 진리를 분별하는 그 선에 서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지극히 선한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을 하고, 또 전파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진리를 먹어서 내가 먼저 살고, 이 진리를 전하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이것이 다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도와 나가고, 지극히 선한 것을 날마다 분별하고 그 선에 굳게 서고, 선한 사람이 되고, 선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그 뜻을 이루어 나가는 저희가 되고, 진리를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참 교회를 세워나가고, 진리를 세워나가고, 이 진리를 전파하는 일, 이 일에 굳게 서서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