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교인들의 신앙진보를 위한 기도
에베소서 1:15-18
에베소서 1:15-18
15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11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그분의 의도대로 우리가 예정되어 그분 안에서 유업이 되었으니,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소망을 가진 우리가 그분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하려는 것이다.
1:13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1:14 이 성령이 우리 유업의 보증이 되시니, 이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의 구속을 위한 것이며, 또한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1: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에 대한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16 나의 기도 가운데 너희를 기억하며, 너희 때문에 감사드리기를 그치지 않는다.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시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18 너희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1:19 그분의 강력한 능력의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를 위해 베푸신 그분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지 너희가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소망을 가진 우리가 그분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하려는 것이다.
1:13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1:14 이 성령이 우리 유업의 보증이 되시니, 이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의 구속을 위한 것이며, 또한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1: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에 대한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16 나의 기도 가운데 너희를 기억하며, 너희 때문에 감사드리기를 그치지 않는다.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시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18 너희의 마음의 눈을 밝히셔서,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유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1:19 그분의 강력한 능력의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를 위해 베푸신 그분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지 너희가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1.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는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함
본문 15-16절에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는 좋은 소식을 바울이 듣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믿는 일을 잘하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또 교역자가 기뻐하며, 감사할 일입니다.
본문 1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첫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란, 주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주장자이시며, 우리는 종입니다. 예수라는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건져낸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으로 왕, 제사장, 선지자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제사장직은 도덕적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선지자직은 지식적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왕직은 능력 면에서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우리를 주장하시는 주께서 즉 주인이 되시는 주께서, 우리를 모든 죄에서 점점 건져내시고, 우리를 지식과 도덕과 능력 면에서 온전케 만들어 나가십니다.
“영광의 아버지께서”란 하나님은 영광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이 충만하시고 또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또 만물은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자리에 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라고 하였는데, 지혜는 영적 지혜를 말하고, 계시는 성경말씀을 가리킵니다. 정신은 영이라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2:12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은사를 가리킵니다. 계시의 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즉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을 점점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하나님을 많이 모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이시므로, 그 무한하신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조금밖에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의 영과 영적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을 점점 더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점 더 많이 알아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늘 더 알아 나가야 됩니다. 좀 더 알아 나가고, 또 좀 더 알아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를 기뻐하심
요새 제가 하나님을 좀 더 안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손해를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희생을 하면 하나님이 아주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의 편입니다. 또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눈으로 본 것과 같이, 손으로 만진 바와 같이, 귀로 들은 것과 같이 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손해를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손해 본 사람의 편이 됩니다. 또 하나님은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됩니다. 남이 겉옷을 취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속옷까지 가져가게 했으니까 손해 봤지요? 손해 봤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가리우지 않았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니까 겉옷과 속옷을 뭐하고 바꿔가진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바꿔가진 것입니다. 속옷과 겉옷 몇 백만 벌 갖다 준다 한들 하나님의 영광만 하겠습니까? 이 세계 것을 다 갖다 놓아도 하나님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나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몰라서 불순종하고 하고 나갑니다. 하나님을 알았으면 불순종하지 못합니다.
나라에서도 왕의 말을 안들을 수 있습니까? 왕의 말 한마디에 순종 안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신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거역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이 세상 왕의 명령보다 더 큰데 거역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 나가며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될 때가 가장 행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이 가장 귀하며, 또 그 명령과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심
또 하나님을 어떠한 하나님이신 줄 요새 깨달았는가? 하면, 하나님은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구원해 나가십니다. 말씀에 어긋나면 말씀대로 심판하시고, 말씀에 복 받는 길로 걸어 나가면 반드시 말씀대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말씀대로 나가면 반드시 말씀대로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외상하지 않으시고, 떼먹지 않습니다. 말씀대로하면 복 주신다고 하셨으므로, 말씀대로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또 지금 안주셨어도, 이제 조금 있으면 주십니다. 하나님은 외상으로 끌고 나가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빨리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말씀에 어긋난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말씀에 어긋난 것은 하나님이 떠나시므로, 잘되는 것 같아도 얼마 못가고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데 어떻게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말씀대로 가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나 말씀을 어기면 반드시 그 말씀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우리가 깨달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 예정하심
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를 우리가 점점 더 배워나가야겠습니다. 우리가 언제 택함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창세전에 택함을 받았습니다(엡1:4). 창세전에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가 필요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 택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것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 삼으시기로 하나님께서 작정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장차 영원토록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즐거워하며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측량할수 없는 너무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택함 받은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셨습니다. 불택자도 내셨고, 에덴동산도 내셨고, 선악과도 내셨습니다. 또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속해 주실 것도 예정하셨습니다. 택한 백성을 위해서 다 해주셨습니다. 또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전부 다 택함 받은 우리를 위해서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을 누구를 위해서 창설하셨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창설하셨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왜 따먹도록 예정하셨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예정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도 하나님이 예정해서 따먹었지, 하나님이 예정 안하셨으면 어떻게 따먹었겠습니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줄 하나님이 몰랐겠습니까? 하나님이 모르셨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지한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도록 하나님이 예정을 하셨습니다. 또 선악과를 따 먹은 다음에 하나님의 공의대로 심판하셔서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쫒아 내시고, 독생자를 주셔서 구원하실 것을 예정 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내신 목적은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동산인 줄 알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산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그 영이 자라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지켜야 자라납니다. 또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선악과를 내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아, 이것은 먹지 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다른 것은 하나님이 먹으라고 허락하셨다”하며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것에 감사할 줄 알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게 해서 그 영이 자라나게 하려고 선악과를 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따먹게 했습니까?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따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독생자를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악과를 안 따먹었다면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한량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그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즉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해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와 일치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와 일치된 성도는 다시 죽지 않습니다. 아담은 범죄로 인해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아담이 중생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담이 지옥에 갔다고 하는데, 아담은 구원받았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어서 심판을 받았지만,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창세기 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한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마귀의 세력을 멸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첫 복음이 창세기 3:15입니다. 즉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한다”는 것이 구약의 요절입니다. 신약의 요절은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신약의 요절입니다.
그러면 선악과는 따먹기 전에도 유익을 주시려고 내셨고, 따먹은 다음에도 유익을 주시려고 내셨습니다. 따먹은 다음에는 몇 가지 유익이 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와 일치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불택자는 왜 내셨습니까?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으로 필요하시기 때문에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세세무궁토록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내시려고 불택자를 내셨습니다. 로마서 9:21-23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고, 세세무궁토록 지옥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시려고 불택자를 내셨습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택하셔서 천당에 데려가시고, 어떤 사람은 안택하셔서 지옥에서 세세무궁토록 불구덩이 속에서 고난을 받게 하시는가?” 하며 불공평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세세무궁토록 지옥에서 고난 받게 하시니 “하나님은 무자비하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하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하는 사람에게 성경은 뭐라고 답변합니까? 로마서 9:20에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아” 하는 것은 누구보고 하는 말입니까? “어떤 사람은 택하고 어떤 사람은 안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공평하다, 무자비하다”고 말하는 사람한테 하는 말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라고 하였는데, 토기장이가 자기의 필요한대로 그릇을 만들지, 진흙을 봐주는 것이 아닙니다. 토기장이가 귀히 쓰는 그릇이 필요하면 귀히 쓰는 그릇을 만들 것이고, 또 천히 쓰는 그릇이 필요하면 천히 쓰는 그릇을 만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택자와 불택자를 내신 것에 대해서 인간은 항거할 수 없으며, 또 항거할 권리도 없습니다. 너무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항거할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 생일날 닭 한 마리 잡아먹었으면 자기 아들은 좋다고 하지만 닭은 그날 죽었습니다. 그래서 불공평합니까? 무자비합니까? 무자비한 게 아닙니다. 닭은 잡아먹으려고 기른 것인데 뭐가 무자비합니까? 자기 아들 생일날 남의 아들을 잡아먹었다면 그것은 무자비하며, 불공평한 것입니다. 사람이 길가다가 개미 한 마리 밟아 죽였습니다. 무자비합니까? 무자비한 게 아닙니다. 사람을 밟아 죽였다면 무자비한 것이지만, 개미 밟아 죽인 게 뭐 무자비하단 말입니까? 너무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그것은 무자비, 불공평을 갖다 붙일만한 것이 못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하시는 일에 사람이 뭐라고 항거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사람이 범죄로 전부 지옥으로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그 가운데서 몇 사람만 택해서 건져내시고, 몇 사람은 내버려 두셨다는 겁니다. 맞습니까? 전부 다 범죄해서 지옥에 가게 되었는데, 몇 사람은 거기서 건져내셔서 살려주시고, 몇 사람은 내버려 두어서 지옥에 갔다는 것입니다. 즉 지옥 간 사람은 자기가 자기 발로 지옥에 간 것이므로 하나님께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책임이 없을까요? 아이가 강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아이에게 자유를 주느라고 가만히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강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면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사람에게 책임이 없습니까? 아이가 강으로 빠져 들어가면 “야, 가지마라, 죽는다” 하고 건져내야지, 자유를 강탈할까봐 “아이를 막지 못해 강에 빠져 죽었다면 책임이 없겠느냐는 것입니다. 책임이 있습니다. 유기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즉 내버려둔 것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기설(遺棄說)을 쓰지 않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예정하셨다고 합니다. 아예 낼 때부터 종류가 다릅니다. 하나는 곡식이고, 하나는 가라지입니다. 또 하나는 양이고 하나는 염소입니다. 종류가 다릅니다. 언제부터 종류가 다릅니까? 창세전에 예정하실 때부터입니다. 불택자는 택한 백성을 위해서, 또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으로 쓰기 위해서 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아예 내실 때에 불택자는 불택자로 내기로 작정하셨고, 택한 백성은 택한 백성으로 내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주권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다 물에 빠져 들어가는데, 거기에서 몇 사람만 구해 냈다고 하면 하나님이 내신 목적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목적도 없이 왜 만들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예정하신 것입니다. 큰 것만 예정하신 것이 아니고 작은 것도 하나님이 다 예정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큰 것은 예정이지만, 작은 것은 예정이 아니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큰 것은 예정이고, 작은 것은 예정이 안 된단 말입니까?
시카고에서 불이 붙어서 많은 집이 불에 타고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불이 붙었는가 하면, 소가 켜 놓은 등불을 뒷발로 차서 그 등불이 떨어지면서 불이 붙어 Chicago 도시 전체가 탔고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많이 죽는 게 예정이라고 하면, 소가 뒷발질 하는 건 예정이 아닙니까? 불이 나서 사람이 많이 죽는 게 예정이라면, 소가 뒷발질 한 것도 예정이고, 등불이 떨어진 것도 예정입니다. 등불이 넘어간 것은 소가 뒷발질해서 넘어갔습니다.
소가 뒷발질 하는 것도 예정입니다. 그것이 예정이 아니라면 어떻게 소가 뒷발질을 했겠습니까? 그러면 소가 왜 뒷발질을 했는가? 파리가 와서 쐈기 때문에 뒷발질을 했습니다. 그러면 파리가 쏜 것도 예정입니다. 파리가 쏜 것이 예정이라면 날아오는 것도 예정입니다. 전부 다 예정입니다. 하나도 예정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예정했는가 하면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연단시키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하시려고, 모든 것을 다 예정하셨습니다. 쓴 것을 내신 것도 쓴 것을 먹어야 유익이 되기 때문에 쓴 것을 내셨고, 신 것을 내신 것도 신 것을 먹어야 유익이 되기 때문에 신 것을 내셨고, 단 것을 내신 것도 단 것을 먹어야 유익이 되기 때문에 단것을 내신 겁니다.
2. 마음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함
본문 18절에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둘째 번으로 너희 마음 눈을 밝혀서 너희를 부른 소망이 무엇인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소망이 무엇입니까? 하늘나라 갈 소망입니다. 즉 우리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되어서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같이 살 소망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소망입니까? 우리가 지금 이 땅 위에서 살지만 조금 있으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우리 몸도 변화되어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 다음에 천년왕국을 지나서, 그 다음에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삽니다.
이것은 마치 땅 속에 있는 굼벵이가 얼마 있으면 매미가 되어서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날아다니면서 노래하는 것과 같습니다. 굼벵이와 매미는 얼마나 차이가 많습니까? 우리도 굼벵이와 같이 땅 속에 있지만, 얼마 안 있으면 홀연히 다 변화 되어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과 같이 살게 됩니다. 우리 몸은 신령한 영광의 몸으로 다 변화되어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같이 즐거워하면서 삽니다. 아픈 것이나 병든 것이 없고, 곡하는 것이나 애통하는 것이 없고, 사망이 없습니다.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환하게 비치는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썩어질 몸이, 욕된 몸이, 또 흙에 속한 몸이, 약한 몸이 조금만 있으면 홀연히 다 변화 되어서 영광의 몸, 강한 몸, 썩지 않을 몸,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썩어질 몸이, 욕된 몸이, 또 흙에 속한 몸이, 약한 몸이 조금만 있으면 홀연히 다 변화 되어서 영광의 몸, 강한 몸, 썩지 않을 몸,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면 죽어서 장사지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죽은 사람은 죽는 즉시로 천당에 올라갔습니다. 즉 예수님이 계신 천당에 갔습니다. 연옥에 간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 3:12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죽을 때에 연옥에 가는 게 아니고, 즉시로 당당히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갑니다. 갈 때에 천사가 “너 어떻게 들어왔느냐” 물어보면 “내게는 예수님의 피가 있다”
하면 “아, 들어가세요”하며 벌벌 떱니다. 예수님의 피가 있는 사람이면 천사도 벌벌 떱니다. 예수님의 피를 갖다 대지 않고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서울특별시 어디에서 왔습니다, 나는 무슨 대학을 나왔습니다, 나는 박사입니다”하면 천사가 “너는 안 된다, 그런 것은 여기서 하나도 못 쓴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는 “예수님의 피가 있습니다”하면 당당히 들어가는 겁니다.
소망이 있습니까? 소망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나타나신바 되면 예수님과 같이 됩니다.
그래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예수님을 닮아나가는 소망입니다. 로마서 5:1-2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소망, 그 영광에 도달하는 소망, 하나님을 닮아가는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 가운데서 즐거워합니다. 로마서 5:3-4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점점 거기에 도달해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럴려면 환난가운데에서도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환난이 와야 인내를 이루고, 인내가 온전히 이루어져야 소망에 도달을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는 소망입니다. 도달하려면 환난이 옵니다. 환난가운데서 인내가 이루어집니다. 인내가 이루어지면 연단이 이루어집니다. 연단이 이루어지면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즉 처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만 보고 있다가 그 다음에 환난에서 인내, 인내에서 연단, 연단에서 소망을 이루어 나갑니다.
소망을 이루어 나가려면
첫째 바라보는 것을 잘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많이 오는데 거기서 말씀대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셋째, 잘 참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참으며 계속 나가면연단이 됩니다. 그러면 소망에 도달을 하게 되는 겁니다. 얼마나 소망을 이루어 가지고 갈까?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소망을 잘 이루어 가지고 가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소망을 이루어 가지고 가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긴 가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얼마나 거기에 도달해서 가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도달해서 가는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그 자격으로 사는 겁니다.
마태복음 13:41-42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나라에서 의인들이 해와 같이 빛납니다. 세상에서 의를 행한 것만큼, 즉 의를 이루어 나간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서 해와 같이 영원히 빛납니다. 소망을 잘 이루어 나간 사람은 해와 같이 빛날 것이고, 소망을 잘 이루어 나가지 못한 사람은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그런데 별과, 별의 차이가 있듯이, 자기가 이 세상에서 소망을 이룬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서 누리는 영광도 차이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13:41-42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나라에서 의인들이 해와 같이 빛납니다. 세상에서 의를 행한 것만큼, 즉 의를 이루어 나간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서 해와 같이 영원히 빛납니다. 소망을 잘 이루어 나간 사람은 해와 같이 빛날 것이고, 소망을 잘 이루어 나가지 못한 사람은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그런데 별과, 별의 차이가 있듯이, 자기가 이 세상에서 소망을 이룬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서 누리는 영광도 차이가 많습니다.
3. 마음 눈을 밝히사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함
본문 18절에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기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12:32에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34에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였습니다.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업이 얼마나 풍성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성도의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업은 굉장히 큽니다. 이 세상 기업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 전체가 우리의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버지로부터 토지 얼마를 물려받고, 또 어떤 사람은 회사를 기업으로 물려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았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기업으로 땅을 십만 평만 물려받아도 아주 큰 것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았으니 얼마나 큰 것입니까? 굉장히 큰 기업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부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기업으로 물려받아 누릴만한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즉 기업을 다 받긴 받았는데, 그것을 누리고 사용할 만한 실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가서 받을 기업을 누릴만한 자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이 세상에서 할 일입니다. 실력을 만드는 사람이 그 만큼 통치할 수 있고, 거기서 자기의 할 일을 제대로 해 나갈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신령한 일을 하는데 자기가 만들어진만큼 합니다.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 하리라고 하였는데(마 19:28), 이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일 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하늘나라에서 놀고 먹는 게 아닙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점점 이루어 나갑니다. 그렇게 영원히 하늘나라는 자라나는 것이며, 하늘나라가 자라나는데 있어서 우리가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16-17절에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라고 하였는데,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 달란트 전부를 다 투자해서 달란트 장사를 해야 됩니다. 달란트는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사입니다. 즉 우리에게 주신 시간, 환경, 분위기, 건강 등이 달란트인데 그것을 다 이용해서 복음 운동에 투자하고, 거기에 일심정력을 기울여야 됩니다. “나 같은 게 뭘 하겠는가?” 하지 말고, 세상 떠나는 날까지 달란트 장사를 하라고 다 주신 줄 알고, 달란트 장사를 잘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는 것입니다.
남은 여생을 달란트 장사하는데 다 기울여서 달란트를 남겨가지고 가야 기업을 누릴만한 자격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는 “잘하였다, 충성된 종아”하시며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라,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하였고, 또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 돈을 은행에 두었다가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하는 것이 마땅할 터인데 왜 그냥 묻어두었다가 가지고 왔느냐?”하며 책망하고 그 있던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남긴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달란트를 남긴 것도 하나님의 기업을 받을 때에 다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을 다 같이 공동으로 물려받는데, 자기가 어느 정도냐? 어느 정도를 관할할 만한 실력이 있느냐에 따라 그 만한 권세를 누리는 것입니다. 즉 ‘어느 정도 거기서 이용당할만한 가치가 있느냐? 실력이 있느냐? 지혜가 있느냐?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서 자기 실력만큼 하늘나라에 가서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늘나라에 가면 “의” 하나 이루어 가지고 가는 것이 영원토록 빛납니다. 그러므로 믿는 일 하나 하는 것이 아주 큰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을 얻어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믿은 일 하나 하지 못하는 것은,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그 다음에 아무리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할 일을 못하면 “오늘”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할 일은 오늘 해야지, 오늘 할 일을 내일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할 것을 잘 해나가야 됩니다. 의를 이루어 나가야 하고, 므나를 남겨야 하고, 자라나야 합니다.
“의” 하나 이루는 것이 한 고을 권세를 차지하는 것이고, “의” 열 개를 이루는 것이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는 것이고, “의” 다섯 개를 이루는 것이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세상 대통령은 사년 내지 오년하면 내놓는 것이지만 하늘나라에서 권세를 차지하는 사람은 영원토록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열 고을 권세와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할 만한 실력을 길러 간 사람은 영원무궁토록 그것을 차지하고, 거기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며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이 짧은 세월을 귀한 줄 알고, 우리가 헛되이 보내면 안 되겠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자라나는 것은 계속됩니다. 하늘나라의 기업을 물려받아 그것을 누릴만한 실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늘나라의 기업을 누리기 위하여, 세상에 사는 동안, 자기를 능력 있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즉 영적 지혜가 있게 만들어 나가고, 말씀의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고, 영이 자라나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기업의 영광의 풍성에 점점 도달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도에게 기업을 누릴 만한 자격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환난으로 연단시키시는데, 그 때에 마귀에게 지지 말고 말씀대로 나가야 됩니다. 말씀대로만 나가면 이기고 또 이깁니다. 그러면 연단이 되고, 자기가 만들어져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고, 소망에 도달하고, 또 풍성한 기업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만드는 것입니다.
4. 믿는 자에게 지극히 큰 능력을 주신 것을 알게 하기를 기도함
본문 19절에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 첫 번째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좀 더 알게 해달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망이 어떠한 것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기업의 영광의 풍성한 것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고, 네 번째는 믿는 사람에게 지극히 큰 능력을 주신 것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지극히 큰 능력을 주셨는데, 이것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력으로 역사하시는 지극히 큰 능력을 우리가 다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그러면 힘이 있는 자입니까? 힘이 없는 자입니까? 힘이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능력을 받았습니까? 지극히 큰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힘이 없는 사람은 왜 없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긴 받았는데,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거지가 거지 노릇하다가 일등부자인 형님을 만났는데, 형님이 몇 천억 불짜리 수표를 주었습니다. 그러면 몇 천억 불짜리 수표를 받았으므로 큰 부자입니다. 그런데 동생이 수표의 가치를 몰라서 쓸 줄 모릅니다. 수표를 쓰지 않으니까 얻어먹으며 거지 노릇을 여전히 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지극히 큰 능력을 받아서 능력이 자기한테 있는데, 이것을 쓰지 않으니까 거지와 같습니다. 즉 하나님이 지극히 큰 능력을 주셨는데, 이것을 쓰지 않고 호주머니에 넣어두기만 하고, 거지노릇하며 돌아다닌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지극히 큰 능력을 쓰기만 하면 됩니다. 지극히 큰 능력을 쓰면 거기서 집도 살 수 있고, 자동차도 살 수 있고, 비행기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쓰지 않으니까 거지 노릇하고 있고,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또 여러 가지 시험에서 실패하고, 가는 곳마다 약해서 쓰러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을 받은 자들인데 우리가 거지와 같이 살면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성도 모두에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이것을 안 쓰고 가는 곳마다 실패만 하고 다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을 주신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써먹는 것은 둘째이고, 알라는 것이 첫째입니다. 지극히 큰 능력이 있는 것을 알기만 해도 벌써 절반은 반 부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법대로 쓰기만 하면 됩니다. 지극히 큰 능력을 법대로만 쓰면 굉장한 효과가 나고, 마귀는 패전을 당하고,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법대로 안 쓰면 우리가 힘을 써서 나가도 결국은 마귀한데 이용당해서 실패합니다.
즉 믿는 일을 열심히 했긴 했는데, 마귀에게 이용당해서 헛된 “열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법대로 쓰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 말씀대로 나가는 것이 법대로 쓰는 것입니다. 즉 말씀대로 해나가라는 말이고, 신앙양심대로 해나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와서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나간다”고 하면, 죽을 자리라도 하나님이 안 죽게 만드시고, 마귀를 정복하며,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에서 어긋나게 나가는 자는 마귀에게 빼앗기고, 마귀의 종이 되고, 마귀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쓰지 않아서 실패하고, 또 열심히 하긴 하는데 법대로 쓰지 않아서 실패합니다. 즉 믿는 일을 성경말씀대로 안 하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