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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4일 토요일

열왕기하 6:24-33 고난 중에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기다리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고난 중에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기다리라
열왕기하 6:24-33

24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
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
이라 26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
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27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
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
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28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
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30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31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
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찌로다 하니라 32그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
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33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1. 사마리아 성중에서 아이를 삶아 먹음

이스라엘이 범죄하므로 아람 군대가 성을 포위함

본문 24절에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
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아람 군대가
와서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고 도단 성을 포위했다가 그들의 눈이 어두
워져서 엘리사에게 끌려 사마리아 성에 포위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엘리사가 그들로 떡과 물을 먹고 마시게 하고 잘 대접하여 보내
어, 아람 군대가 크게 감동을 받아 돌아갔습니다. 엘리사가 사랑으로
원수를 이겼으니까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아람 왕 벤하
닷이 또 온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쌌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먹을 것이 없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돌
아왔습니까? 엘리사가 사랑으로 원수를 이겨서 감동을 시켜놨는데, 어
떻게 그런 자들이 다시 왔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
들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아람 왕을 격동시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군대를 도로 보내셔서 이스라엘 사마리아 성을 포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 사랑으로 원수를 잘 이겨놓았어도 백성들이
범죄하면 이렇게 됩니다. 그 죄 값으로 많은 원수들이 격동을 받아 다
시 이스라엘 나라를 치러 왔습니다. 

범죄하면 원수들을 일으켜서 그 나라를 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레위기 26장 17절에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레위기 26장 25절에도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너희의 배약한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찌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
적의 손에 붙일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대적의 손에 붙인다’는 것입
니다. 백성들이 범죄하면 과거에 아무리 잘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서 원수의 손에 붙이십니다. 원수를 격동시켜 일으키시고, 원수의 손에
대적을 붙여, 포위하게 만드십니다. 사마리아 성은 포위당했기 때문에
심히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아예 굶어죽게 하려고, 아람 군대가 와서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치시면 사람의 힘으로 감당하지 못함

본문 25절에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
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성의 백성들이 양식이 다 떨어져 크게
굶주림을 당해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양식이 없어 다 굶어죽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형편없이 되었습니다. 평소에 먹을 것이 없고 그다지 가
치가 없었던 나귀 머리 하나도 은 80세겔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52.5
달러에 해당합니다. 50달러라고 해도 약 3만 원쯤 됩니다. 나귀 머리
하나에 한 3만 원이라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몇 푼짜리 밖에 안 되는
데 값이 이렇게 비싸졌습니다. 또 합분태라는 것은 콩의 이름입니다.
비둘기 똥같이 여물지 않은 콩입니다. ‘합분’이라는 것은 비둘기 똥이라
는 말이고, ‘태’라는 것은 콩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제비알콩이
나 제비콩이라는 것이 있는데, 합분태도 이와 같은 콩 이름입니다. 합
분태 사분지 일 갑이라고 했는데, 한 갑은 약 2리터입니다. 2리터의 사
분지 일이면 0.5리터인데, 반 리터에 은 5세겔이라는 것입니다. 한 되의 사분지 일이니 소로는 절반을 말합니다. 소 절반에 은 5세겔이라고 했는데, 5세겔은 한 3불 28달러 정도입니다. 한 불에 600원이라고 하면 3불은 한 2천 원 정도가 됩니다. 콩 반의 반 되가 요새 우리 돈으로 하면 한 2천 원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쌉니까? 곡식 값이 형편없
이 비싸졌습니다. 먹을 것 없는 나귀 머리 하나도 3만 원이나 되었습
니다. 지금 이러한 상황은 기근이 매우 심한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면, 돈이 있다고 해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
닙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으로 살지 못하니 돈을 마구 갖다가 퍼
주는 것입니다. 콩이 반의 반 되라고 하면 한 두어 줌이나 됩니까? 그
것을 지금 천 원이나 2천 원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또 나귀 머리 하
나에 3만 원이나 받고 팔아먹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돈이 제 가치
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해주셔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 한번 손을 대시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돈은 생명이 없습니다.
돈 가지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
을 살려주시면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징계를 한번 내리시면 돈은 맥이 없습니
다. 하루 아침에 다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려놓으시면 언제
나가는지 모르게 다 나갑니다.

세계적으로 기름 값이 자꾸 올라가는 것도 하나님의 징계 같습니다.
사마리아 성에서 나귀 머리와 합분태 값이 올라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가격이 자꾸 올라가니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전부 다 거기로 빠져나갑
니다. 지금 미국의 돈이 기름 값으로 얼마나 많이 빠져나갔는지 모릅
니다. 세계 사람들의 돈이 거기로 다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려놓으시면 아무리 물질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아무 맥을 못 춥니다. 

그것도 기근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돈이 맥을 못 춥니다. 또 돈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시면 되고, 하나님께서 안 해주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신문에 보니까 금값이 많이 올라서 7백 달러나 한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금값이 최고로 올랐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올라갑니다. 5백 불하던 것이 지금은 7백 불이 되었습
니다. 삼분지 일 이상이 올랐습니다. 세계적으로 금을 조금 사두면 산
다고 하는데, 아무리 사두어도 그것 가지고는 못 삽니다. 한국에서도
금값이 자꾸 올라갑니다. 국제 가격이 뛰니까 한국도 뜁니다. 그래서
금을 사둔다고 사람들이 지금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두어
도 그것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해주시면 살겠
지만 하나님께서 기근을 주시면 아무리 많이 사놓아도 그까짓 것은 헐
값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바로 쓰고, 바로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지, 그런 것을 사놓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범죄하면 막심한 기근이 옵니다.
심한 고난이 많이 옵니다. 

본문 26-27절에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
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
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
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
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여인
이 도와달라고 요청을 할 때에 왕은 ‘지금 양식이 없어서 도와달라고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기근이 심하여 전부 굶어 죽게
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돕
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
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돕
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너를 도울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도와주셔야지 나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난의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도
우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삶아 먹음

본문 28-29절에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
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
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또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이 여
인이 먹을 것으로 좀 도와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끔찍한 얘기를 했습니
다. 두 여자 중 한 여자가 하는 말이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
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
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왕에게 한다는 말이 아들을 잡아먹은 것에 대한 호소입니다. 둘이서
‘네 아들을 오늘 잡아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잡아서 나눠먹자’라고 합
의를 해서 나눠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네 아들을 내라
고 하니까 상대편 여자가 자기 아들을 숨긴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판단을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살아 있는 그 아들 좀 잡아먹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들을 때에 얼마나 기가 막히고 안타까웠겠습니까? 

본문 30절에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너무 안타까워서 자기 옷을 잡아 찢었습니다. 백성들
이 이렇게 아들까지 잡아먹게 되었으니, 지금 앞길이 보이지 않는 것
입니다. 다 죽게 되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 

레위기 26장 29절에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
를 먹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며 믿
음을 안 지키면, 아들의 고기를 먹을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신명기 28장 53절에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네 몸에서 난 자녀의 고기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28장 57절에는 “그 다리 사이에서 나
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이리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성경대로 되었습니다. 범죄하면 네 아들의 고
기를 먹는다고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였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아들
의 고기를 먹는 지경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픈들 자기 아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봐
야겠습니다. 사실 그 지경을 당해봐야 압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겪어보
지 못하면 추측만 할 뿐이지 잘 모를 것입니다. 굶어죽게 되었을 때,
사람이 먹을 것 밖에 모를 수 있습니다. 믿음은 다 떠나고 먹을 것 밖에
모르게 되니까 ‘아무것이라도 잡아먹고 살아야 되겠다’고 하면서 아들
을 잡아먹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믿음을 다 떠난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피난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자기 아들을 내버리고 가는 사람이 있습
니다. 업고 나오다가, 업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아이를 버리는 것
입니다. 힘은 들고 뒤에서는 적군이 따라오니 ‘아이 데리고 가다가는
둘 다 죽겠다’고 하여 아이를 집어내버리고 도망쳐 나오는 사람도 있
습니다. 또 6.25 전쟁 때, 3.8선을 넘어오면서 아이를 업고 배를 타다가,
아이가 울면 경비병들이 잡으니까 아이를 바다에 던지는 일도 있었습
니다. 몰래 배를 타고 살짝 넘어와야 하는데, 아이 소리가 나면 경비병
들에게 잡힐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바다에 던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자꾸 던지라고 합니다. 안 그러면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
를 바다에 던진 다음 이남으로 오면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돌
이켜보면, 사마리아 성에서 아이를 잡아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기 아이를 내버리고 나오는 것이나 자기가 잡아서 고기로 먹는 것이나 비슷합니다. 즉, ‘너는 죽어도 나는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너는 죽고 나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내버리고 나오는 것입니다. 너는 죽고 나는 살아야 되겠으니까 잡아먹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둘 다 죽을 테니까 ‘둘 다 죽을 바에는 하나만 죽고 조금 더 살아보자’하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나면 아들을 잡아먹는 개인주의로 빠짐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아이를 잡아먹는 사람들은 믿음을 아주 떠난
것입니다. 짐승이나 야수와 같은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에 잡아먹는 것
같습니다. 즉, 이기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자기만 살고, 아들은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들의 생명은 빼앗아도 자기 생명만 살
면 된다는 이기주의, 자기 하나만 살면 된다는 개인주의에 빠져 자녀
를 잡아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떠나면 순전히 이기주
의, 개인주의로 빠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는
남이야 아무렇게나 되던지, 나 하나만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
들을 잡아먹는 힘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것이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요새도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살
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매장합니다. 또 자기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
에게 사기횡령을 합니다. 남은 망해도 나 하나만 살면 된다는 사람들
이 많습니다. 자기 하나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훼방
하며, 죽을 통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안 몰아넣으면 자기가 죽을 것 같
으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저 사람을 죽을 통에 몰아넣으면 내가 살고,
안 몰아넣으면 내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딱한 사정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죽을 통에 몰아넣지 않으면 내가 죽고, 몰아 넣으면 내가 산다고 할 때 다른 사람을 죽을 고비에 몰아넣지 않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자기가 죽을 고비에 빠져도, 다른 사람은 죽을 고비에 몰아넣
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선한 자입니다. ‘내가 감옥
에 갇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살리고 봐야겠다. 내가 희생하더라도 다
른 사람들은 살려야겠다’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애국자
입니다. 또 신앙으로 말하면 믿음에 서는 자입니다. ‘내가 희생을 해도
우리 민족은 살아야겠다. 억울함을 당하고 매장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도 이 백성들은 사는 길로 인도하고 죽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며 행
동하는 사람이 진짜 애국자입니다. 그래서 애국자는 어떠한 희생을 치
루더라도 백성들에게 유익이 되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죽
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안중근 의사 같은 사람은 생명을 내놓고
국가를 위해 죽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입니다. 

그와 반대로 ‘백성들은 다 망해도 나 하나는 살아야겠다’고 하면서
일을 처리하는 정치가나 군대는 다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망해도 나 하나는 잘 되어야 되겠다는
것은 백성은 잡아먹고 저 하나만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매우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
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대개 ‘남은 망
해도 나 하나는 잘되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라는 망해도 자기 하
나만 잘 되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은 다 잘못되어
도 자기 하나만 잘되면 좋다는 방식으로 나가는 자는 악한 사람이요,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이요, 민족을 잡아먹는 사람이요, 국가를 잡아먹
는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내 생명보다 귀히 여기며 사랑해야 함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내놓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죽을 고비에 빠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네가 그 사람을 잡아주면 너를 살리고, 안 잡아주면 너를 죽인다고 할 때에 안 잡아줄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안 잡아주면 자기가 죽습니다. 내가 살려니까 그 사람을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를 죽는 데 내어주고, 형이 동생을 죽는 데 내어주
고, 아버지가 딸을 죽는 데 내어주고, 딸이 부모를 죽는 데 내어주는
것입니다. 안 하면 자기가 죽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1절에 “장
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형제가 죽는 데 왜 내어주겠습니
까? 안 내어주면 자기가 죽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안 잡아주려면 자기가 죽으면서까지
부모를 아껴야 합니다. 그 정도로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 또 부모가
자식을 안 잡아 죽이려면 자기가 죽으면서라도 자식을 살리려는 정신
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정신이 없으면 다 내어주게 되어있습니다. 또
자기가 죽는 데까지 형제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만 안 내어줄 수 있
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겠습니다. 내가 손해를 볼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손해 주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생
명을 내 생명같이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내가 죽어도
그 사람 생명은 다치면 안 되겠다, 내가 죽어도 그 사람은 아껴야겠다’
하는 마음까지 나아가야만 자식을 잡아먹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길 줄 알고 사랑할 줄 알아야겠
습니다. 자기가 죽을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지 아니하고, 오히
려 유익을 주는 자리에까지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래야 아
이를 잡아먹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원망하고 해하려 함

아무튼 이스라엘 왕이 여인의 말을 듣고 너무 안타까워서 자기 옷을 잡아 찢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속에 굵은 베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죄를 회개할 때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 요나 3장 5절에도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고 하였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이스라엘 왕
이 지금 굵은 베를 차려입었다는 것은 참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가
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근이 너무 심하여 백성이 다 죽게 되었을 때
이제야 하나님께 회개하는 태도를 가지고 굵은 베를 입고 나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왕이 백성을 사랑한 것 같습니다.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
에 여자 하나가 물어볼 때에 “내가 무엇으로 도와주겠느냐, 곡식 밭으
로 도와주겠느냐, 포도주 틀로 도와주겠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또 도
와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잡아먹은 사정
을 듣고는 너무 안타까워서 옷을 찢고 자기가 아이를 잡아먹은 것처럼
안타까워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도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위하는 왕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문 31절에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찌로다 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왕이 지금 엘리사의 목을 자르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사
의 머리가 그 몸에 붙어있으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
라고 하는 것을 보면 엘리사의 목을 자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왕
이 지금 엘리사 때문에 재앙이 내려온 줄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
사 때문에 우리나라가 기근이 심하여 망하게 되었다’고 원망하는 것입
니다.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원망하
겠습니까? 전에 아람 군대가 왔을 때 다 잡아 죽었으면 이번에 못 왔
을 텐데, 엘리사가 잘 대접하라고 해서 대접해서 보냈더니 그 사람들
이 또 온 것입니다. 그러니 ‘왜 엘리사가 먼저 번에 잡아 죽이지 못하
게 했느냐’고 하면서 원망할 수 있습니다. 

또 엘리사가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고 나갈 때에 “이제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신다. 아람 군대가 온다”고 왕과 백성들을 경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이 또 온 것입니다. 그러니 왕이 ‘왜, 온다 온다고 해서 원수를 끌어들이느냐’고 하면서 엘리사를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당장 잡아 죽인다. 목을 자른다. 안 자르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라고 결사적으로 각오를 하고 나
아가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목을 자르겠다고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왕이 속에 베옷을 입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데,
하나가 틀렸습니다. 원망하는 것이 틀렸습니다.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
원망하는 것, 불평하는 것,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것이 틀렸습니다. 그
리고 하나님의 종을 해하려는 것이 틀렸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악한
일입니다. 아무리 곤궁에 빠져서 다 죽게 되었어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은 아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다치지 않게 귀히 여겨야 하며,
하나님의 종과 교회도 다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관이 다
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아무리 곤궁에 빠져서 일시에 다 죽게
되었어도 하나님은 언제나 경외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관은
하나님의 종과 교회 아닙니까? 하나님의 기관인 하나님의 종과 교회를
언제나 아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관에 손해를 주기 시작하면 한꺼번에 망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왕은 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관에 손을 대려고
했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자기가 엎드러져서 통곡하
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왜 엘리사를 원망
하고 죽이려고 합니까? 물론 엘리사가 과거에 아람 군대를 다 죽이려
고 할 때에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원망할 만한 일이 있기는 있습니
다. 또 아람 군대가 온다 온다고 하면서 책망했을 때, 그 말도 듣기 싫
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기관에 절대 손해를 주면 안 됩니
다. 그렇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극심한 고난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교회를 위해야 함

욥은 재앙을 받아서 형편없이 되었지만, 하나님께 대해서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이 다 없어지고, 아들과 딸도 다 죽었습니
다. 또 자기 몸에 헌데가 나서 기왓장으로 긁었는데, 그 헌데를 개가
와서 핥았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며
죽으라고 했습니다. 욥이 이런 비참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을 언제
나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복을 받았습니다. 또 다윗은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따라다닐 때에 죽을 고에 빠졌는데, 그 가운데
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관, 하나님의 기름 부은 받
은 왕을 아끼고 귀히 여기며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에게 절
대로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중에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관에 손을 대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사람은
다 망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곤경에 빠져서 아들과 딸, 사위를 잃고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잃는다
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또 부인이 말할 수 없는 고통
을 준다고 할지라도 욥과 같이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또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언제나 경외하고 아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께 복 받을 날이 옵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쳐 비참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잘 섬깁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음으로 살고, 교회를 잘
받들려고 하고, 하나님의 종을 잘 받들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에 하나님께서 참 기뻐하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
님께서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셨을까? 왜 아들을 죽이셨을까? 왜 남편
을 죽이셨을까?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놓으셨을까’할 것 같은데 그
런 말을 절대 안 합니다. 아무리 아들이 죽고, 큰 곤궁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그저 감사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교회에 봉사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을 것 같습니다. 교인 중에 그런 사람이 더러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배워야겠습니다. 

모든 재앙은 여호와께로부터 온 것임

본문 32절에 “그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
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
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
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
지 아니하느냐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길에 앉았다가 자신을
해치려는 왕의 생각을 벌써 알고 그 집에 앉아있는 장로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라고 했
습니다. 여기서 ‘살인한 자의 자식’은 아합의 아들 여호람 왕을 가리키
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왕의 사자가 자기의 목을 자르려고 오는 것을
그가 오기 전에 벌써 알았습니다. ‘아,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람을 보
내는구나. 내 목을 자르라고 명령했구나’하고 영감을 통해 알았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미리 안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보낸 사람이 거의 다
와서 대문간에 섰을 때 그 사람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네 주인의 발소리가 네 뒤에 있지 아니하냐”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뒤를 쳐다 볼 것 아닙니까? 그러면 된다는 것입니다. 

왕도 보낸 사람의 뒤를 따라왔습니다. 목을 자르라고 사람을 보내놓
고는 왕이 뉘우친 것입니다. ‘홧김에 목을 자르라고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보내놓고 보니 잘못했음을 안 것입니다. 죽이지 말라고 하려고 급히 따라오는 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엘리사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람 왕이 홧김에 내
목을 자르라고 사람을 보냈다. 그런데 보내놓고는 후회하고 다시 자르
지 말라고 말리기 위해 급히 달려온다’하는 것을 다 알았습니다. 그러
니까 왕이 보낸 사자는 잠시만 막아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잠시 대문
간에서 기다리게 하면 왕이 와서 자르지 말라고 할 테니까 잠시 기다리게 한 것입니다. 

이제 사자들이 엘리사의 목을 자르기 위해 칼을 가지고 대문간에 왔
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사람들이 오히려 대문간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옷을 입고 있는 때가 다르긴 다릅니다. 베옷을 입고 있는 형
편에 사람을 잡을 사정이 됩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어떻
게 죽입니까? 이스라엘의 왕이 홧김에 엘리사를 죽이라고 말했지만
‘아이고 내가 잘못했다. 죽이면 큰 일 난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왕이 과거에 엘리사한테 신세를 많이 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이
빨리 엘리사에게 가려고 급히 따라왔습니다. 

본문 33절에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라
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줄 알긴
알았습니다. 알면 기다려야 하는데, 이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지금도 기
다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모스 3장 6절에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
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시키는 것이 아니면 재앙이 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재앙은 다 여호와의 시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시키시는 것이 아니면 재앙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재앙은 여호와께서 시키시는 데서 나오는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재앙 앞에서 ‘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아니하리요’라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잔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왔다. 엘리사 때문에 왔다’, 이런 원망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본주의로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이 재앙이 왔다’하고 믿어야 합니다.

모든 재앙은 다 여호와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통해 우리를 회개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임한
재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유익이 되겠기에 주시는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유익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왜 주시겠습니까?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
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
습니다. 반드시 합력해서 선을 이룰 줄 알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기다리라

또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
요”라고 하였는데, 왜 못 기다립니까? 기다리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기간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기다리기 힘들 때 조금 더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릴 것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조금 더 기다
려봐라’고 하시면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조금 더 기다리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고가 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4-26절에 “내 심
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
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
다”라고 하였습니다. 잠잠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선
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다리십시오. 조금 더 기다리십시오. 기다리지 못하다가 일이 다 틀어진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금 있다가 복을 주려고 하시는데, 그것을 기다리지 못해 사람이 일이 다 틀어지게 만듭니다. 조금 더 기다리십시오. 기다리면 복이 옵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여호와이십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했습니다. 잠잠히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을 베풀어주십니다. 

지금껏 참다가 기다리지 못하면 복을 받을 만할 때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복이 거의 임할 만하면 그만 못 참아서 뺑소니를 쳐버립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다시 기다린다고 하다가 못 기다리면 하나님의 복을
다 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면 반드시 하나님
께서 복을 내려주십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지금은 잘 안될
것 같아도 기다려 보십시오. 모든 것이 다 여호와께 있습니다. 재앙도
여호와께 있고, 그 재앙을 물리치는 것도 여호와께 있고, 또 일을 진행
해주시는 것도 여호와께 있고, 일을 성공시키시는 것도 여호와께 있습
니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해주시나 보자’하고 회개하고 바로 서면서 기
다려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을 베풀어주십니다. 기다려
보십시오. 조금만 더 기다려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을 베풀어주십니다. 

다시 말하지만, 기다리지 못해서 일이 틀어진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
에도 많고, 교회에도 많습니다. 한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 과거 급제
를 하기 위하여 공부를 열심히 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부인이 일을
해서 생활하는 모양입니다. 하루는 마당에 곡식을 널어놓고 아내가 이
것 좀 보라고 하고서 일하러 나갔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곡식이
다 떠내려갔습니다. 소나기에 곡식이 떠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남편은
공부만 한 것입니다. 부인은 이 일에 너무 화가 나서 이런 사람과 살
다가는 밥만 굶고 만다고 하면서 다른 데로 시집을 갔다고 합니다. ‘팔
자를 고쳐야지, 이렇게 하고 살다가는 내가 아예 망하겠다’고 하면서 그냥 내버리고 도망쳐서 다른 데 시집을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 시집간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겠습니까? 내버리고 간 형편에 잘 갈 수가 있겠습니까? 거기에 가서 곤궁하게, 거기에 가서도 또 일 해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데 가서도 일 해먹는 것이 좋은 것입니
다. 아무튼 그 부인이 거기에 가서도 일 해먹느라 힘든 것입니다. 그러
다가 어느 날, 그 마을에 과거 급제한 사람이 굉장하게 내려온다는 것
입니다. 말을 타고 번쩍번쩍한 사람이 오는데, 사람들이 ‘저 사람이 아
주 훌륭한 사람이다. 저런 사람을 남편으로 얻어서 사는 사람은 상팔
자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자세히 보니까 자기 남편이었던 것입
니다. ‘어떤 사람이 내려 오길래 그렇게 잘났나’해서 구경이나 한 번 해
보자고 나와서 보니 자기가 내버리고 간 남편이었습니다. 공부만 하느
라 곡식 떠내려가는 줄도 몰랐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 여자가 조금
만 더 참았더라면 상팔자가 되는데 팔자 한 번 고치려고 하다가 팔자
가 더 나빠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다시 말
하는데,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조금만 더 참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을 베풀어주십니다. 서울에 큰 교회가 하나 있는데, 그 교회 원 목사
님의 연세가 많았습니다. 그때 아마 80세 쯤 되었는데, 이름을 대면 다
아는 굉장한 부 목사가 한 명 들어왔나 봅니다. 한 6개월 쯤 있어 보
니, 여러 교인들이 젊은 목사가 낫다고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부목사
를 의지하고 그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때 부목사가 ‘이제 됐다. 옳다. 이
때 원 목사를 집어치워야지’하고 자기가 그 자리에 들어갈 생각을 했
습니다. 그래서 그 부 목사가 원 목사를 내쫓는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원 목사가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 목사를 내쫓았습
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 교회에 몇 십 년 있었던 원 목사가 더 권
세가 있지 않겠습니까? 늦게 온 부 목사가 일시적으로 인기가 있기는
했지만 정작 누구를 내쫓느냐 하는 일에 교인들이 아버지 목사를 내쫓진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 목사를 내쫓아치웠습니다. 그리고 6개월 안에 원 목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몇 달만 가만히 두었으면 전부 다 자기 것이 되었을 텐데, 그 부 목사가 못 기다린 것입니다. 다 가만히 놔두고 “예”하고 순종했으면 원 목사가 세상을 떠나고 부 목사가 다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못 참아서 쫓겨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것도 못 맡습니다. 늘 쫓겨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부 목사가 합동
측인데, 이제 다시 거기로 가려고 해도 못갑니다. 늘 쫓겨 돌아가는 것
입니다. 아무것이나 다 그렇습니다. 

시어머니도 그렇습니다. 며느리가 조금만 참으면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다 자기 것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참아서 다 깨뜨려놓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참으십시오. 여호와께로부터 온 십
자가,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재앙을 참아보십시오. 참으면 때가 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을 베풀어주십니다. 때가 이르면 반드시 선을 주
시므로 잘 참아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반드시 주십니
다. 참지 못하는 사람은 무슨 왕입니까? 여호람 왕입니다. 누가 참지
못하겠다고 하면 ‘여호람 왕의 아들인가 보다’라고 하면 됩니다. ‘여호람 왕의 족속’이라고 얘기를 하십시오.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것이 온다. 참자. 기다리자. 여호와께로부터 온 재앙인데 왜 안기다리겠는가?
기다리면 좋은 것이 온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지켜 나가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