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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4일 토요일

열왕기하 9:1-29 예후가 왕이 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예후가 왕이 됨
열왕기하 9:1-29

1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2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3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찌니라 4그 소년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5저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았는지라 소년이 가로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가로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뉘게 하려느냐 가로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6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7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8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9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찌라 10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11예후가 나와서 그 주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묻되 평안이뇨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 12무리가 가로되 당치 않은 말이라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대답하되 저가 이리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13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14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
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아람 왕 하사엘을 인하여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15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16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이 거기 누웠음이라 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17이스르엘 망대에 파숫군 하나가 섰더니 예후의 무리의 오는 것을 보고 가로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요람이 가로되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어 맞아 평안이냐 묻게 하라 18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파숫군이 고하여 가로되 사자가 저희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9다시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었더니 저희에게 가서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20파숫군이 또 고하여 가로되 저도 저희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의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21요람이 가로되 메우라 하매 그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22요람이 예후를 보고 가로되 예후야 평안이냐 대답하되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23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24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살이 그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저가 병거 가운데 엎드러진지라 25예후가 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취하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 아래같이 저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26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시체를 취하여 이 밭에 던질찌니라 27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그 신복들이 저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 열조와 함께 그 묘실에 장사하니라 29아합의 아들 요람의 십 일 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1.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임무를 줌

소년 선지자가 엘리사의 명을 따라 예후를 찾아감

본문 1-3절에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직접 가지 아니하고 수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 중에서 하나를 불러 명령했습니다. 그때 예후는 아람 사람과 전쟁하기 위하여 길르앗 라못이라는 곳에 나가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 중 하나에게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고 명령했습니다. 기름을 골방에 들어가서 부으라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붓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실 때 은밀하게,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부으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은밀한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세울 자를 세우시고 기름 부으실 자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그다음에 실제로 왕이 되는 문제, 즉 기름 부은 후에 실제로 왕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기름 붓는 일에 달린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젊은 선지자에게 예후에게 기름을 부은 다음에는 도망치라고 하였습니다. 기름을 붓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무를 다 감당한 다음에는 거기서 지체하지 말고 빨리 도망쳐 나와야만 합니다. 임무를 다한 다음에 거기에 머물게 되면 도리어 시험이 들어올 염려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악용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자기의 임무를 감당한 다음에는 곧 도망치라고 하셨습니다. 지체하지 말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은 엘리사에게 말씀 하신 것이 아니라 엘리야에게 하신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16절에“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명령하시기를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고 하셨는데, 엘리야 때는 그 일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자기 후계자 엘리사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셨다고 전한 것입니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 너는 때가 되면 그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분부를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엘리야의 명령을 받아서 예후에게 기름 붓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으실, 그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 하나님께로부터 이제는 가서 부으라는 명령이 왔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직접 가지 아니하고 젊은 선지자 생도를 보낸 것에는 무슨 큰 뜻이 있을 것입니다. 직접 가면 엘리사가 뭐 하러 왔느냐, 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일에 손해가 날 우려가 있습니다. 엘리사가 가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선지자인줄 알고 주목하게 됩니다. 즉, 엘리사가 직접 움직여서 예후를 골방에 데리고 가 기름을 붓는다고 하면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선지자 생도를 보내서 사람들로 누군지
모르게 하고, 예후를 골방에 데리고 들어가 기름을 붓게 한 것입니다. 임무를 주고, 일을 마친 다음에는 도망쳐 오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예후가 기름 부음을 받고 아합의 집을 치라는 임무를 맡음

본문 4-7절에 “그 소년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저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았는지라 소년이 가로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가로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뉘게 하려느냐 가로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사람이 예후가 있는 길르앗 라못에 갔습니다. 가보니, 군대 장관들이 다 앉아 있었습니다. ‘소년이 가로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가로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뉘게 하려느냐 가로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이때 예후가 아마도 거기서 군대를 거느리는 군대 장관으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후를 젊은 선지자가 안 것 같습니다. 군대의 총 책임자로 있으면서, 나가 전쟁을 하는 중에 있으므로 예후가 여러 사람에게 알려진 모양입니다. 이에 에후가 일어나 젊은 선지자를 따라 골방에 들어갔습니다. ‘소년이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예후에게 아합의 집을 치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왕은 요람입니다. 요람 왕은 누구입니까? 아합 왕의 아들입니다. 아합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스라엘로 우상을 섬기게 만들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종들을 많이 잡아다 죽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만든 악한 왕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 요람도 악한 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합의 집을 멸망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아합의 아내가 이세벨입니다. 그녀도 아주 나쁜 여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예후에게 너는 의에 서고 하나님 편이 되어서 악을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8-9절에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찌라”고 하였습니다. 다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을 멸망시키셨습니다.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와 같이 아합의 집도 멸망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이 악한 왕들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집, 또 바아사의 집과 같이 아합의 집도 반드시 다 멸망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북쪽 나라 이스라엘의 제1대 왕이 여로보암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다음에 바아사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다음이 아합인데, 그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는 악한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년 생도를 통해 예후에게 임무를 주셨습니다. ‘너를 지금부터 왕으로 삼을 것이니, 아합의 집을 치라’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대로 아합의 집에는 하나님의 종들을 많이 죽인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상 섬긴 죄가 있고, 성도를 많이 잡아 죽인 죄가 있습니다. 지금 그것을 하나님께서 갚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젊은 선지자 생도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한 아합의 집을 쳐야 한다고 예후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다음에는 그가 곧 도망했습니다. 


2. 예후가 왕이 됨

선지자의 생도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음

본문 11절에 “예후가 나와서 그 주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묻되 평안이뇨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예후가 나가니 밖에 모인 자들이 그 미친 자가 뭐 하러 왔는지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생도가 왔는데, 왜 미친 자라고 했습니까? 선지자의 생도들은 보통 사람들이 볼 때 미친 사람 같다는 것입니다. 왜 미친 사람 같습니까? 자기들과 같이 방탕하지 아니하고, 세상주의로 나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따라서 하나님의 뜻만 순종하려고 전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는 거리가 너무 먼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후와 함께 모였던 자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자신들의 거리가 멀다고 해서 그를 미친 사람과 같이 취급했습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움직입니다. 그들은 신령한 세계에 대해서 연구하고 또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것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세상주의로 나가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들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모인 사람들이 선지자의 생도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친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라가는 일, 신령한 길을 걸어가는 일, 썩지 않는 영생의 길을 걸어가는 일은 세상주의로 나아가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또 외모를 봐도 군대 장관들은 번쩍번쩍합니다. 위엄 있게, 혈기가 등등하게 나갑니다. 그러나 선지자 생도들은 구차한 옷을 입었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 선지자의 의복이 따로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례 요한이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은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더욱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래도 모인 사람들이 예후에게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왔느냐?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들이 지금 선지자의 생도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 하지만, 그래도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인 줄을 그들도 아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는 행동 하나 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니 지금도 무슨 이유가 있어서 오지 아니하였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후는 그대들이 이제 조금 있으면 알리라고 하면서 직접 말해주기를 거절했습니다. 예후의 이 모습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나다”하고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겸손한 태도로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셔서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주셨어도 “내가 왕이다”라고 하며, 사람들 앞에 나가기를 주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셨고 조금 뒤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니 조금 더 기다려보면 당신들이 알 날이 올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기다려 보면 압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광고하지 않아도, 자기가 나타내려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은 조금 있으면 알 수 있습니다. 너무 조급해서 인본주의가 되어, 당장 되지 않는다고 서둘러 돌아가다가는 반드시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하시려고 하는 일이므로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해준대로 될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우리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후가 이러한 의도로 말했습니다. 그때에 장관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본문 12절에 “무리가 가로되 당치 않은 말이라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대답하되 저가 이리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예후가 대답하되 “저가 이리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솔직하게 답변해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하는 것을 알고 있음

본문 13절에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리가 그 말을 듣고, 이제는 예후가 왕인 줄을 알고 자기들의 옷을 급히 벗어서 섬돌 위에 깔았습니다. 여기서 섬돌이라는 것은 계단 같은 무슨 돌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옷을 깔았습니다. 그리고 예후를 거기에 앉게 했습니다. 또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후를 왕으로 모든 사람이 모시게 됐습니다.
모인 무리들이 조금 전에는 선지자의 생도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지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 자인 것은 양심으로 알았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욕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하는 자인 것을 알았기에 그 사람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사람이 예후에게 기름을 부었다고 하니까, 이제 예후가 왕이라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특히 바로 믿는 사람들을 욕하고 비방하며 악감을 품고 몰아쳐도 양심이 압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맞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는 그 사람들을 욕하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비방했습니다. 미친 사람이라고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양심으로는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이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후를 왕이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모인 무리들이 선지자의 생도를 진짜 미친 사람으로 알았다면, 미친 사람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친 사람 말을 들으면, 들은 사람이 미친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을 보면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도 바로 하는 것을 알긴 압니다. 

사도 바울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26장 24절에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21절에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미쳤다고 했습니다. 또 누가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세례 요한은 귀신 들린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며, 귀신 들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느 아이를 미쳤다고 했습니까? 사도행전 26장 24절에 로데라는 아이를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미쳤다는 말은 자기가 하는 것과 그들이 하는 것이 너무 거리가 멀 때 나오는 것입니다.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 인간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은 다릅니다. 안 맞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신령한 세계를 걸어가는 것과 세상주의로 걸어가는 것은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서로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외모를 단정하게
꾸미며 겉 사람을 치장하고 세상주의로 나가는 사람은 그것을 초월해서 외모는 보지 아니하고 신령한 세계로 걸어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 외모가 다르다보니 미친 사람같이 취급하게 되고 나아가 미쳤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양심으로 상대가 옳은 줄을 압니다.
옳은 줄 아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지금 본문과 같이, 선지자의 생도가 와서 기름을 부었다고 하니까 바로 왕으로 대접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며 그들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후가 왕이라고 하면서 나팔을 불며 그를 추대했습니다.


3. 예후의 혁명

본문 14-16절에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아람 왕 하사엘을 인하여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사람에게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이 거기 누웠음이라 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요람 왕이 이스르엘에 있었습니다.
이스르엘에 왕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려고 길르앗 라못에 왔었는데, 와서 전쟁을 하다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부상 당한 것을 치료하기 위해 이스르엘 왕궁에 가서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유다 왕 아하시야가 요람을 방문하러 이스르엘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예후가 왕이 된 것입니다. 왕은 지금 부상을 당해서 왕궁에 돌아가 있는데, 길르앗 라못이라는 전선에서 군대
장관들만 있는 곳에서 예후가 왕이 됐습니다. 예후가 왕이 되어 너희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왕 앞에 가서 이 소식을 전하는 자가 없게 하라고 했습니다. 왕에게 이 소식을 전하면 안 되겠으므로 한 사람이라도 너희가 합당하거든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전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갔습니다. 요람 왕을 반격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4. 예후가 요람 왕을 죽임

하나님께서는 열심이 특심한 사람을 사용하심

본문 17-18절에 “이스르엘 망대에 파숫군 하나가 섰더니 예후의 무리의 오는 것을 보고 가로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요람이 가로되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어 맞아 평안이냐 묻게 하라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파숫군이 고하여 가로되 사자가 저희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파수꾼 하나가 이스르엘의 왕궁에서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저기 멀리서 지금 한 무리가 군사를 거느리고 온다는 것입니다. 오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아직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오다가 요단 강도 건너야 합니다. 거리가 상당히 있습니다. 길르앗 라못에서 이스르엘까지 오려면 하룻길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망대에 올라가면 멀리까지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요람 왕은 이것이 무슨 무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원수인 아람 군대가 다른 길로 해서 우리를 치러 오는 것인지, 아니면 아군이 승리해서 돌아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서 그 무리가 무슨 군대인지 알아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가서 무리를 만났습니다. 만나보니 예후입니다. 예후는 군대 장관이므로 사람들이 다 압니다. 가서 뭐라고 했습니까?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니까 예후가 뭐라고 했습니까?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평안이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은 너는 왕의 말만 듣지 말고 죽지 않으려면 와서 내 뒤를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지금 평안을 물을 때가 아닙니다. 다시 파수꾼이 보니까 한 사람이 가더니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하니까 왕이 또 한 사람을 더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 앞선 사람과 마찬가지로 예후에게 투항을 했습니다. 신분 보장을 하려면 이쪽으로 와서 합세를 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에 “파숫군이 또 고하여 가로되 저도 저희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의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파수꾼이 두 번째 사람도 가더니 안 돌아온다고 또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상거가 아직 멀지만, 병거 모는 것이 차차 가까워오므로 파수꾼이 예후가 오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예후가 군대 장관으로서, 열심 있는 자였던가 봅니다. 병거를 몰 때에 굉장히 빨리 몰아치우는 모양입니다. 너무 심하게 몰기 때문에 미치게 몬다는 별명을 얻은 것 같습니다. 병거 모는 것을 보니까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몰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보통사람들 보다 아주 급하게 모니까 예후가 모는 것 같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예후가 열심이 특심한 모양입니다. 예후가 보통 때 병거를 몰게 되면 아주 열심히 몰고, 급하게 몰고 나간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열심이 특심한 사람을 들어 쓰시려는 것 같습니다. 열심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들어서 쓰십니다. 악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때이므로 예후와 같이 열심히 특심한 사람을 들어서 써야 합니다. 미지근한 사람 가지고는 일을 못합니다. 예후는 열심이 특심해서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 전력을 다해서 그 일을 완성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남보다 먼저 가고, 일찍부터 가고, 힘 있게 해나가는 성격입니다.

주일학교하면서 예배시간에 늦는 반장들은 예후와는 반대입니다. 예후는 주일학교에 오라고 하면 남보다 먼저 갑니다. 예배시간에 늦어질 것 같습니까? 먼저 가는 것입니다. 우물우물하다가, 뭐 이것저것 하다가 늦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이것저것 합니까? 예후에게 예배 시간에 나오라고 하면 뭘 해도 빨리 빨리 하고 달아날 것입니다. 빨리 하면 반 시간이면 할 것을 우물우물하는 사람은 2시간이나 걸립니다. 명륜 교회 집회 끝난 다음입니다. 일을 조금 볼 것이 있어서 집에 늦게 왔습니다. 집에 오니까 한 8시가 됐습니다. 목욕탕을 갔습니다. 목욕탕이 다 끝났습니다. 그래서 다른 목욕탕에 가니 8시가 조금 넘었는데 문 닫는 시간이 9시까지이므로 아직 1시간이 남았습니다. 가서 빨리 빨리 해치우고 한 20분도 못 걸리게 목욕이 끝났습니다. 다 끝났다고 하니 나보다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아직 우물우물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습니다. 급할 때는 급하게 해야지 언제 1시간, 2시간 하고 있습니까? 그래도 난 할 것은 다했습니다. 20분 돼도 할 것은 다 하고 나왔습니다. 뭘 우물우물해서 목욕탕에 가면 1시간, 2시간씩 머무르고 있습니까? 아예 빨리 빨리 해치워야 합니다. 보통 때 시간이 있을 때는 오래하고 느긋하게 할 수 있지만 무엇이나 급할 때는 급하게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급할 때는 밥을 몇 분에 먹을 수 있습니까? 15분은 너무 늦습니다. 급하면 밥을 5분에 다 먹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급할 때는 시간을 봐서 ‘아, 시간이 급하다’하며 빨리 빨리 해치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빨리 해치워야 합니다. 예후가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예후 식으로 열심히 하고 급할 때는 급하게 하고 열심이 특심해야 합니다. 

엘리야도 열심히 특심하지 않았습니까? 엘리야도 열심히 특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쓰셨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0절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열심이 특심합니다. 속에서 불이 붙어 올라왔습니다. 불붙는 열심이 예레미야에게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심이 특심하여, 불의의 세력을 보고 속에서 불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불의한 일을 볼 때 속에서 불이 붙어 올라왔습니다. 올라와서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6절에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볼 때에 바울에게 분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바로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마음에서 분함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잘못된 것을 볼 때에 속에서 분한 마음이 나와야 합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하며 바로 하는 것이 나와야 합니다. 바로 세워야 되겠다는 분한 마음이 속에서 뜨겁게 올라와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일날도 말했지만 요새 교회와 신학교들이 어지러워지고 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이 와서 교회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신학교들을 자꾸 난립하여 어지러워지는 것을 볼 때에 속에서 불붙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바른 것을 세워야겠습니다. 남들을 다 틀렸다고만 하지 말고, 우리는 바른 것을 해야겠다는, 그런 의를 세워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는 것을 세워나가는 열심이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말씀하신대로 꼭 이루어짐

본문 21-22절에 “요람이 가로되 메우라 하매 그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요람이 예후를 보고 가로되 예후야 평안이냐 대답하되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고 하였습니다. 요람이 잘못한 것입니다. 요람이 지금 왕인데, 왕을 보호할 만한 보호병이 없습니다. 보호병 없이 병거를 내오라고 해서 병거를 타고 혼자 나가는 것입니다. 유다왕 아하시야와 함께 지금 예후를 맞으러 가는 것입니다. 왕으로 나가면서 어찌 보호병을 안 데리고 나갑니까? 이것이 바로 방심, 부주의한 것입니다. 또 자기가 왕이라는 자만심을 가지고,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안한 것만 생각하고, 왕의 위신을 가지고 나아가 명령하면 일이 다 될 줄로 안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마중을 나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사람이 잘될 것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잘될 것만 생각하다 실패하는 것입니다. 안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잘못될 경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언제나 대비해야 하는데, 지금 요람 왕은 잘못될 것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잘될 것만 생각합니다. 자기가 명령하면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명령 하에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잘됐으니까 잘될 것만 알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보호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 권위만 가지고 나가서 명령을 하려는 것입니다. 아하시야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요람을 방문하러 왔는데, 요람이 나간다고 할 때에 또 같이 나갑니다. 이 왕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들이 나가서 어디에서 예후를 만났습니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났습니다. 여기서 나봇의 토지는 요람의 아버지 아합 왕이 나봇을 잡아 죽이고 피를 흘린 땅입니다. 또 이곳은 선지자 엘리야가 와서 예언한 땅입니다. 너희 집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다 잡아 죽이겠다고, 아합 왕의 씨가 모두 멸망을 당하여 나봇의 포도원에 던짐을 받을 것이라고, 바로 그 예언을 한 땅입니다. 거기서 딱 만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서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곳에서 만나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 아닙니까? 사람이 보기에는 우연히 다 되는 것 같지만,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데, 결국 하나님의 섭리대로 되는 것입니다. 죽을 때 딱 만난 것입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과 같이, 하나님께서 요람 왕을 심판하시고 죽이시려고 나봇의 포도원에서 예후와 만나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후에게는 나봇의 포도원에서 더욱 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왜 그곳에서 힘을 주시느냐하면, 전에 엘리야가 나봇의 포도원에서 예언할 때에 예후가 그 예언을 들었습니다. 엘리야가 나봇의 포도원에서 뭐라고 예언했습니까? ‘이 토지에서 너희에게 갚으리라’는 말을 예후가 들었던 것입니다. 아합이 나봇을 죽일 때 들었습니다. 지금 예후가 요람 왕을 나봇의 포도원에서 만나게 됨으로써 전날의 예언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성취해야겠다는 열심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요람 왕이 예후에게 평안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예후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였습니다. 아마 이세벨이 온 이스라엘로 우상을 섬기게 만들어 영적 음행을 하게 하는 동시에 육신적으로도 음란하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술수가 많습니다. 수단과 방침, 사기 등, 이세벨에게 술수가 많았는데, 어떻게 평안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 23-26절에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살이 그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저가 병거 가운데 엎드러진지라 예후가 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취하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 아래같이 저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시체를 취하여 이 밭에 던질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람 왕이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을 치면서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하고 달아났습니다. 그때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살이 그 염통을 꿰뚫고 나갔기 때문에 병거 가운데서 요람이 쓰러져 즉살했습니다. 이에 예후가 장관 빗갈에게 뭐라고 하였습니까? “시체를 취하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 말씀하신 대로 꼭 됩니다. 죄는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망한다고 했습니다. 전에 나봇이 죽임 당할 때에 예후나 빗갈 등 장관들이 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나봇을 죽일 때에 같이 죽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죄짓는데 동조했다고 할지라도, 동조한 사
람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십니다. 예후를 통해서 요람이 심판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봇을 죽일 때에 예후가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또 빗갈이라는 장관도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또 이들이 동조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 사람을 통해서 악을 갚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모릅니다.


5.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임

아하시야의 최후

본문 27-29절에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그 신복들이 저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 열조와 함께 그 묘실에 장사하니라 아합의 아들 요람의 십 일 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도 결국 죽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범죄한 죄 값은 반드시 치러지게 됩니다. 죄짓고 잘될 것 같지만 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가 그대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심판하십니다. 또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자가 왕이 됩니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으로 세운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추대해서 왕이 된 것 같지만, 왕을 패하고 세우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나라 주장은 누가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국가를 주장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또 악은 누가 심판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리고 원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으면 원수가 자기 집 안에 있습니다. 원수가 자기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 값이 이렇게 무서운 것을 알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