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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1일 화요일

시편 3:1-4:8 믿는 자의 머리를 들어주시고, 안식을 베푸시는 하나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믿는 자의 머리를 들어주시고, 안식을 베푸시는 하나님
시편 3:1-4:8

3:1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2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5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7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4:1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3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5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6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7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1.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나를 치는 자가 많음

본문 3편 1절에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는 기록된 대로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입니다.
성도에게는 이처럼 대적이 많은데, 성도가 바른 진리를 주장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7장 7절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고 증거하기 때문에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미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증거하지 않고 가만히 두면 미워하지 않겠는데, 바른 진리를 주장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여 옳게 믿어야 된다고 알려주면 대적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나 하나만 잘하면 되지, 괜히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할 필요가 없다’고 하며 아무리 잘못한 것을 보아도 가만히 내버려두면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피해 죄를 지어도 내버려두는 성도들이나 교역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성경에서 ‘벙어리 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벙어리 개는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고 후에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다”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그 사람과 원수가 되고 미움을 받을 수 있더라도, 바른 말을 해주어야 하나님 앞에 옳습니다. 그것이 옳은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말을 다른 곳에서 비방으로 하지 말고 본인에게 직접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말하는 것은 비방하는 것이 되어 오히려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더 짓는 것이 됩니다.

본문 3편 2절에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로, 아버지의 왕권을 빼앗으려고 반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편에서 다윗을 치려고 하였습니다. 또 사무엘하 16장 5-6절에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향해 돌을 던지며 저주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고 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의 편에 서서 다윗을 대적하였습니다. 

본 절 끝에 ‘셀라’라고 했는데, ‘셀라’란 휴지부로서 ‘올라감’이라는 뜻입니다. 음악을 연주하거나 시를 읊다가 ‘셀라’라고 하면 쉬는 동시에 그것이 하나님께 올라가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아멘’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방패와 영광으로 삼고 기도함

본문 3편 3-4절에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적이 되어 다윗을 치지만,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적을 막아주시는 방패가 되십니다. 성도를 영광스럽게 만들어주시며, 머리를 들어서 절망 속에서 소망과 구원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그러한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 앞에서 목소리를 내어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목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성산(聖山)’은 ‘하나님께서 계신 신령한 산’이라는 뜻으로, 다윗이 신령한 영적 세계에서 깊은 기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안식을 누림

본문 3편 5절에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대적들이 있고 각종으로 비방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다윗이 잠을 달게 잤다는 것입니다. 그가 언제나 안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을 하며 두려워서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피난처’요, ‘영광’이요, 또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의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하게 눕고 깨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신 증거로 잠을 달게 자고 언제나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드는 사람은 언제나 안식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3편 6-7절에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천만 인이 와서 다윗을 둘러쳐도 다윗은 여호와께서 반드시 일어나셔서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뺨을 친다’는 것은 원수를 책망하는 것을 말하고, ‘이를 꺾는다’는 것은 세력을 다 꺾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처럼 다윗에게 큰 세력의 원수가 있어도, 그 모든 것을 다 꺾으시고 그들로 수치를 당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3편 8절에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시편 33편 16-17절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9장 11절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그것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셔야 이기는 것입니다.

2. 주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

핍박과 궤휼자들 속에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함

본문 4편 1-2절에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라고 하였습니다. 고난 중에 있는 다윗은 자신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자기 행동을 볼 때,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구원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왕권의 영광을 많은 사람들이 대적하여 욕되게 한다는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자를 대적하고 반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또 허사(虛事)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다윗이 가진 왕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그에 반역한 압살롬과 그와 합세한 아히도벨과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은 모두 헛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반드시 심판 받을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셔서 하나님의 종으로 세운 자를 대적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인생들은 회개하라고 탄원함

본문 4편 3절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경건한 자를 택했다’는 것은 ‘총애를 받는 자, 사랑하는 자를 구별하여 세웠다’라는 뜻인데, 특별히 왕으로 세운 일 같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구별하여 세워놓으셨습니다.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특별한 직분을 주셔서 구별하여 세워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여 세우신 자들이 하나님을 부를 때에 하나님께서 그 부름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4편 4절에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떨며’라는 것은 ‘분내어’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분내어 범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과거에 지은 죄를 분히 여겨서 다시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밤에 자리에 누워 잘못한 것을 찾아 반성하고 회개하라는 의미입니다. 밤에 자리에 누울 때 기도하고, 또 일찍 깨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밤에 자다가 일찍 깨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두 시나 세 시 쯤에 깨는 사람은 일어나서 기도하면 됩니다. 고요하게 자기를 반성하고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면 자신의 잘못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찾아서 회개하는 사람은 잠잠하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건이 일어나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원망하다 한 잠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다 보면 자기의 잘못이 깨달아지고 그 다음에는 잠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의 제사를 드리는 자를 안전히 거하게 하심

본문 4편 5절에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희생을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보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제사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의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순종하며 말씀에 서서 하나님을 섬기고 의를 세워나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의의 제사입니다.
참 교회는 인본주의를 쓰지 않고, 말씀을 바로 세워나가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갑니다. 영혼을 살려나가는 교회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여 세속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의의 말씀만 세워나가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힘써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4편 6절에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얼굴을 들어 빛을 비춰주시면 그 빛 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善)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보낼 수 있습니다.

본문 4편 7절에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로 다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님의 얼굴빛을 그 마음속에 비추어주셨기 때문에, 그 마음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보다 더 큰 기쁨이라고 하였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것들로만 기뻐합니다. 또 장사하는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면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마음에 주신 기쁨은 그것보다 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기쁨, 즉 속에서부터 나오는 영적 기쁨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로 기뻐하는 기쁨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나 큰 기쁨입니다. 풍성한 기쁨입니다. 아무리 기뻐한 곡식과 포도주라도 먹고 마시면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영적 기쁨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서 즐거워하는 즐거움이 참된 즐거움입니다.

본문 4편 8절에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평안히 눕고, 잠을 잘 자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평안히 눕지 못하고 잠을 잘 자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여기서 ‘평안히 눕는다’는 것은 육신의 평안만이 아니라 마음이 평안한 상태까지를 포함하여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안식을 누리는 마음을 가지고 눕고 잘 때에 평안히 잠을 잘 잘 수 있습니다.
잠을 달게 잔다는 말이 있는데, 시편 127편 2절에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단잠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단잠 자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만약에 잠이 안 올 때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잠을 주십니다.
또 ‘잠을 주신다’는 것은 안식을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심령에 안식을 주셔서 평안히 쉬게 해주십니다. 마음에 욕심이 없어야 평안합니다. 욕심이 있으면 평안치 않고 언제나 불평, 불만을 쏟아놓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한 가지만 있어도 감사할 줄 하는 자족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자족을 통해 언제나 심령의 안식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한 다음 그 실패한 것만 생각하고 병이 나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과거의 것을 잊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일어나자고 말해주어도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여전히 실패한 생각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다 잊어야 합니다.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며 자족해야 합니다. 자족을 배워야 합니다.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자족해야 합니다. 그보다 없는 사람을 내려다보고 사십시오. 만약 남편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 해방되었다’하고 사십시오. 성경에 남편이 있으면 얽매인다고 하였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얽매인 데서 놓였다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믿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유입니까? 예수 믿기 좋고 기도하기 좋고 기도원 가려면 얼마든지 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자족을 배우고 자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라는 말씀처럼 평안하고 안전하게 거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을 잃어버리지 말고, 늘 자족을 배우는 사람이 되어, 아무리 대적이 많다 할지라도 여호와로 방패와 영광을 삼아나가야겠습니다.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또 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안식을 얻고 주님의 얼굴빛을 마음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주의 얼굴빛 가운데 사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안전히 안식과 만족 속에 거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신앙을 갖고,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