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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2일 일요일

여호수아 24:11-18 여호수아의 최후 권면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수아의 최후 권면
여호수아 24:11-18

11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붙였으며12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 칼로나 너희 활로나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내가 또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셨느니라 14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
를 섬기겠노라 16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17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1. 가나안 땅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본문 11절에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붙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넌 다음 여리고 성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리고 성을 정복하게 했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너희 칼로나 활로 정복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6일간 돌았고 7일째는 하루에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성을 돌 때에 양각(羊角) 나팔을 불면서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7일째에 일곱 바퀴를 돌고 마지막에 양각 나팔을 불며 여호수아가 외치라고 할 때에 백성들이 일시에 다 외치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정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한 것입니다. 또한 아모리 족속, 브리스 사람, 가나안 사람, 헷 사람, 기르가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 등이 다 모여서 여호수아와 싸우려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너희의 손에 붙였으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붙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강대한 나라들과 싸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본문 12절에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 칼로나 너희 활로나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왕벌을 보내셔서 가나안 7족속을 다 멸망시키셨습니다.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시혼과 옥, 이 두 왕은 강한 왕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왕벌을 보내셔서 그들을 다 물리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왕벌을 보냈다는 것은 어떤 다른 나라의 강한 군대를 보내어 물리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천사를 보내서 두 왕을 물리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점령하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히스기아 왕이 두려워할 때에 천사를 보내셔서 18만 5천 명을 다 죽여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천사를 보내신 것이 왕벌을 보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아무튼 왕벌은 원수를 죽이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아무리 벌(대적)이 많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을 다 죽일 수 있는 강한 다른 나라 왕의 군대, 혹은 천사를 보내서 원수들을 다 멸망시킨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나 앗수르 나라를 통해서 백성들을 치게 만드셨습니다. 그것도 왕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나라가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왕벌을 보내서 이스라엘 나라를 치셨던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순종해서 나갈 때에는 대적하는 세력이 아무리 많아도 왕벌을 보내셔서 그들을 다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실지 모릅니다. 왕벌을 보내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 기적과도 같이 역사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두 하나님께서 해주셨습니다.

본문 13절에 “내가 또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고하지 아니한 땅을 주셔서살게 하셨습니다. 건축하지 아니한 성읍을 주셔서 거기에서 우리를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또 심지 아니한 포도 열매를 먹게 하셨습니다.

요새는 국내에 외국에서 들어오는 과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나나, 오렌지, 케일, 자몽, 키위 등이 외국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심지 아니한 과일을 많이 먹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도 모두 하나님께서 내신 줄 알아야 합니다. 다 하나님께서 내신 것입니다. 오늘날
북한 사람들이 우리가 먹는 과일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시장에 가도 살 것이 없다고 합니다. 아예 시장이 없다고 합니다. 무엇인가를 사먹는 것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이 풍성한, 심지 아니한 열매 먹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알고 감사해야겠습니다.

또 우리는 우리가 닦지 않은 길로 다니며 우리가 건축하지 않은 집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가 건축한 집에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대부분 자기가 건축하지 않은 집에 삽니다. 자기 집이든 셋집이든 대개는 자기가 건축하지 않은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지난날 6.25 사변 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6.25 사변 후에는 하꼬방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판잣집에서 살았는데, 여럿이 함께 지냈습니다. 방 한 칸에 한 세대씩 들어가 살았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한국 사람들에게 자기가 짓지 않은 아파트에 가서 살게 해주시고, 또 자기가 심지 않은 열매를 먹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잘 살게 해주셨으니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면 짐승과 같습니다. 언제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왕벌을 보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잘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6.25 전쟁 때 유엔군을 보내서 원수를 물리친 것도 하나님께서 왕벌을 보내서 물리쳐 주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졌을 때, 어려운 고통 가운데 빠져 죽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보내서 구원해 주신 일, 그것도 하나님께서 왕벌을 보내셔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자기 힘으로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에 왕벌을 보내셔서 건져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2. 하나님만 섬기라고 권함

본문 14절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러므로 이제’라고 했는데,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이제’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여기까지 나왔고, 또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고 집도 주시고 다 해주셨으니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원수를 물리치시는 하나님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장막 칠 곳을 앞서 가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실과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실과 진정’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성실한 마음으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성실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성실과 진정으로 합니까?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성실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애굽의 신들을 제하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의 신들을 제하라’는 말은 ‘우상을 제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 섬기는 것을 제하라는 것입니다. 우상 섬기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상 섬기는 것을 아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미워
하는 것이 우상 섬기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 1계명이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제 2계명이 ‘우상을 섬기지 말라’가 아닙니까? 즉 하나님께서 제일 미워하시는 것이 다른 신 섬기는 것과 우상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하여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만 섬기라는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신을 안 섬깁니까? 애굽에서 섬기던 다른 신, 우상 말입니다. 

무엇이 우상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 하는 것, 더 의지 하는 것, 더 지배 받는 것, 더 따라가는 것이 우상입니다.

또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이것들이 다 우상입니다. 욕심이 우상인데, ‘탐심이 우상이라’는 말은 ‘욕심이 우상이
라’는 말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욕심이 우상인데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이것이 다 우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상을 제하여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우상이고 ‘자기 목숨’이 우상입니다. 목숨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목숨을 내어놓고 믿으면 그것은 우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목숨을 내어놓을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예수 믿으면 죽인다고 할 때에 목숨을 내놓고 죽으면 그때 목숨은 우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고, 난 목숨을 내놓을 수 없다. 진리를 내놓으면 내놓았지 목숨은 못 내놓는다’라고 하면 목숨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에게 절하지않기 위해 풀무 가운데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절을 안 하면 풀무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풀무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우상에게 절했다고 하면 무엇이 우상인 것입니까? 바로 목숨이 우상인 것입니다. 자기가 우상, 목숨이 우상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상이 우상입니다. 이 세상이 큰 우상입니다. 다니엘 2장에 보면 큰 우상을 보았는데, 그것이 세상입니다.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 로마, 그 다음 열개로 나뉜 나라들입니다. 이 세상이 우상인데, 그 우상을 내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와 관련하여 이러
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짓지 아니한 집에 살게 해주셨고, 너희가 닦지 아니한 길로 다니게 해주셨고,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의 열매, 또 다른 열매들을 먹게 해주셨고, 너희가 죽을 고비에 빠졌을 때에 왕벌을
보내서 건져 주셔서 죽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다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네 가지를 하라는 것입니다. 첫째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인 줄을 믿고, 두렵고 떨림으로 그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실과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기가 섬기는 우상 즉, 하나님 외에 다른 신, 다른 데에 끌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여호와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러므로 이제, 성실과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우상을 멀리하며, 여호와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만 섬기는 것이 진짜입니다. 이것이 참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여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귀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곧 재물이 우상입니다. 재물이 우상이 된 사람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에는 우상을 붙들고 나가는 사람은 참으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으십니
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아예 우상을 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만 섬겨야 진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세상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마음은 받지 않으십니다.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인정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여호와만 섬겨야 합니다.

본문 15절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 너희들에게 좋지 않게 보이면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 즉 갈대아 땅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또 이 가나안 땅 사람이 섬기는 신을 섬기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는 것입니다. 확실히 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왔다 갔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확실히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니 너희는 마음대로 택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수아가 ‘나는 여호와만 섬기기로 작정했다’라고 말했을 때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3. 백성들이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답변함

본문 16-18절에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기로 작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확정하고 나가자 그 땅의 장로들이나 두목들, 제사장들, 재판장들, 또 모든 유사들이 ‘우리도 여호와만 섬기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했습니까? 첫째는 본몬 17절에 ‘애굽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셨기 때문에 여호와만 섬기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과거에 종노릇하던 것을 생각해보니 끔찍한 것입니다. 거기서 누가 건져 주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니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라고 한 것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누구만 섬기겠다고 했습니까? ‘여호와만 섬기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호와’라는 말이 참 좋은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참 좋습니다. 그런데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여호와’라는 말을 빼버리고 ‘주’라고 했습니다. ‘주만 섬기겠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하면 하나님만 여호와인데, ‘주’라고 하면 ‘주’가 얼마나 많습니까? 귀신들도 ‘주’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신, ‘주’가 많지 않습니까? 불교에도 ‘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에도 ‘주’가 많습니다. 무당들도 ‘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만 섬기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해야 하는데, ‘여호와’란 말은 빼놓고 ‘주’만 섬기겠다고 하니 그것이 말이 됩니까? 그래서 성경공회를 소집해서 ‘바른 성
경’을 출판했습니다. 거기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해놓았습니다. 히브리 원문에 ‘주’라는 말과 ‘여호와’라는 말은 다릅니다. 우리는 히브리어를 가지고 번역을 했습니다. 구약 원문은 히브리어입니다. 히브리 원문에 ‘여호와’라는 말은 ‘야훼’이고 ‘주’라는 말은 ‘아도나이’입니
다. ‘야훼’라는 말과 ‘아도나이라는 말은 글자가 아주 다른 것인데, ‘주’와 ‘여호와’ 이 두 말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주’라는 말과 ‘여호와’라는 말이 다른 것처럼 히브리 원문도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표준 새번역 성경에서 ‘야훼’를 빼버리고 ‘아도나이’로 다 통일 시켜놓은 잘못된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과 비교했을 때에 잘못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만 섬긴다고 할 때에는 다른 ‘주’에 해당하는 것들은 하나도 못 들어옵니다. 다른 ‘주’들이 끼어들 수 없습니다. 무당이 섬기는 ‘주’, 불교에서 섬기는 ‘주’, 다른 종교에서 받드는 주, 그런 것이 하나도 못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 한 분, ‘여호와’만 섬깁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엘로힘’인데 ‘엘로힘’이라는 말은 ‘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우리는 ‘하나님’하면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지만, ‘신’이라고 하면 또 ‘신’도 많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번역해놓고 다른 신을 갖다 붙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하나님’이라고 하면 다른 신이 못 옵니다. 우리나라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참 좋은 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하나님’은 그저 ‘신’이 아닌 유일한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없으니까 그냥 ‘신’이라고 해놓은 것입니다. ‘엘로힘’을 번역할 때 ‘신’이라고 번역합니다. 일본 사람들도 하나님을 ‘가미’라고 불렀습니다. ‘가미’는 아무 데나 써 붙입니다. 그러니 신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본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신’이라고 했기 때문에 거기에 반드시 ‘여호와’라는 말을 붙여야 합니다. ‘여호와 노 가미’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해야 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God’입니까? 그러나 책을 안 보고 들으면 대문자 ‘G’인지 소문자 ‘g’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라는 우리 말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면 다른 신들이 꼼짝 못합니다. ‘가미’하고 ‘God’라고 하면 다른 것도 다 ‘가미’, ‘God’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간 ‘여호와 하나님’이 제일 좋은 것이고 ‘여호와’를 빼버린 것은 성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본문 16절을 보면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결단코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 본문 17절에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 그가 우리와 우리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즉, 애굽의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 목전,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큰 이적 행하신 것을 우리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기적과도 같이 건져 주시고 앞장 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하나님만 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 주셔야 살지
그렇지 않으면 못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건져 주셔서 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건져 주셨기 때문에 살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살지 못합니다. 또 과거에 마귀의 종살이하던 데서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종살이 하던 데에서 건져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해서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행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지난 모든 백성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입니다. 셋째는 ‘보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 여기까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셔서 오늘까지 산 것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으셨으면 우리가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벌써 다 망하고 벌써 다 죽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다 넘겼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셔서 그때마다 죽지 않고 살게 된 것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습니다. 피난 다니다가 잡혀서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 하여간 여러 번 죽을 뻔한 것을 하나님께서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 여러 번 죽을 뻔했는데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셔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러한 경험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내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안 될 것을 되게 해주셨고 죽을 것을 살게 해주셨음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의 말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모리 사람들을 다 쫓아내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살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께서 한국 땅에 살던 일본 사람들을 다 쫓아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본 사람들을 쫓아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전부 만주 등으로 쫓겨 들어갔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일본 사람들이 다 들어와서 살게 되었을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정책은 한국 사람들을 다 쫓아 만주로 들여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만 섬기야 합니다. 여호와만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 바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셨지 마귀가 건져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