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함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함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로마서 5:1-21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함
로마서 5:1-21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12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15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
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 

5:2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한다. 

5:3 이뿐 아니라 우리는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다. 

5:5 그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아니하니,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졌기 때문이다.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해진 때가 되어,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 

5:7 의로운 자를 위하여 죽는 자가 많지 않고, 선한 자를 위하여 용감히 죽을 자가 간혹 있기는 하나,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5:9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 더욱 그분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분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니, 화목하게 된 우리는 더욱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다. 

5:11 이뿐 아니라 우리는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다.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으며, 그리하여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모든 이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5:13 율법이 있기까지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다.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에게도 사망이 다스렸으니,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이었다.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않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 

5:16 또 이 선물은 죄를 범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긴 결과와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들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르렀다. 

5:17 한 사람의 범죄로,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다스렸다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더욱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다스릴 것이다. 

5:18 그러므로 한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 

5: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이다.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많아지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으니,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다스린 것같이, 은혜도 의로 말미암아 다스리므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1. 득의 결과(得義 結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고, 의를 입혀주셨습니다. 즉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나 이제는 죄를 다 도말하여 의인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주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 함

본문 2절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서 은혜 가운데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잃었던 아버지를 찾았으므로 아버지가 너무 즐겁고, 그 아버지는 영광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며,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며, 인자하심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며,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영광의 아버지를 찾고, 바라보니 너무 기쁘고 즐겁습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함

본문 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왜 환난 중에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까? 그것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많이 받는 것이 복입니다. 환난을 많이 받아야 소망이 이루어져 나갑니다. 환난을 안받으면 이루어 나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4:22에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받아야 됩니다.

환난 받을 때에는 잘 참으면 됩니다. 말씀을 지키면서, 말씀에 바로서서,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참아야 됩니다. 참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참지 못하면 인내가 이루어지지 못하며, 연단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없는 사람이 복이 아니라, 환난을 받는 사람이 복입니다. 또 환난 받는 동안에 참고 견디는 것을 배워 나가며, 말씀 지키는 것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환난이 없는 때보다 환난이 올
때에 말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믿으면 죽인다”고 하며 생명을 위협하는 환난과 핍박이 올 때에 생명을 내놓고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옛날에 여자들이 예배당에 간다고 인두로 지지고, 결박하고, 몽둥이로 때리고, 머리카락을 잘라버리는 등의 큰 환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또 제사 안 한다고 때리고, 내쫓는 그런 환난과 일제 시대에는 신사참배를 안 한다고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는 많은 환난을 겪으면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난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환난이 없는 사람은 만들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는 환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 영광스러운 구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1:1-4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자로 만들어집니다. 환난을 많이 받는 곳에서 인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참고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지 못하면 만들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환난을 잘 참는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여러 가지 환난을 참을 때에 말씀을 지키면서 참아야 됩니다. 말씀에 굳게 서서 말씀을 붙들고 “죽어도 내가 이 말씀을 붙들고 죽는다”하며 참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뢰하고 생명을 바쳐놓고 참아야 됩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는데, 연단된 성도는 구비하여 하나님이 쓰실 만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란 소망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소망이 자기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 거기서 말씀을 붙들고 연단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란 예수님과 같이 될 소망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하면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세상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면서 거기에 도달하려고 하는 소망으로 계속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모하면 점점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환난을 겪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 가지 환난을 주시는데 잘 참아야 합니다. 이런 환난, 저런 환난. 경제적인 환난,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어오는 환난, 높이시는 것, 낮추시는 것, 괴로움, 평안, 풍부한 것 등 여러 환난이 옵니다. 풍부할 때에 믿음 지키기가 힘듭니다. 또 곤고함, 궁핍함, 매 맞음, 다른 사람들이 똘똘 뭉쳐 매장할 때 등 여러 가지 환난이 오는데 그 가운데서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잘 참아야 됩니다. 참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참지 못하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요새도 예수 믿는다고 감옥에 가두고, 죽이고, 고문하는 큰 환난이 있는데, 이북에 있는 성도들이 지금 그런 환난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순교당하는 성도가 일 년에 몇 백 명씩 된다고 합니다. 평안하고 아무 시험이 없는 가운데서는 만들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가운데서, 또 여러 가지 핍박 속에서 참고 나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참는 것, 말씀을 행하면서 참는 것,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참는 것 등을 통해 연단이 되면 소망이 점점 이루어
져 나갑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소망에 도달함

본문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이란 소망에 도달하도록 만든다는 말입니다. 소망을 바라보고 거기에 도달하여야만 부끄러움이 없겠는데, 소망에 도달하지 못하면 부끄러울 것이 아닙니까? 소망에 도달하도록 만드는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리워서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 가지 환난을 잘 참게 하시며 그 가운데서 연단이 되게 해주시고, 믿음을 지키게 해주시므로 소망에 도달합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에 끌리워서 소망에 도달합니다. 고린도후서 5:14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끌리워서 여러 가지 환난을 참는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에 끌리워서 믿음을 지키며,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하였는데, 그 사랑에 끌리워서, 감격에 넘쳐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렇게 아니할 수 없어서, 환난 가운데서 잘 참는다는 말입니다. 또 성령의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소망에 도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에 도달할 수가 있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결심하고 달라붙어서 믿음만 지키려고 애를 쓰며 말씀을 붙들고 나가면, 성령의 능력으로 또 하나님의 사
랑이 이끄시는 힘으로 믿음을 지킬 수가 있고 소망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2. 그리스도를 인하여 구원 얻음

그리스도의 대형대속(代刑代贖)

본문 6-8절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어 주시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했다는 말입니다. 독생자로 대신 죽어 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게 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해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다 이길 수 있고 또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

본문 9-10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원수가 되었을 때에”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1절에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 된 우리가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다가, 그 다음에는 소망이 이루어져 나가므로 즐거워하고,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살면서 즐거워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항상 즐겁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항상 즐거운 세계입니다. 즉 하나님의 세계는 즐거운 세계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란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바라보면서 항상 즐거운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3. 아담과 예수

한 사람 아담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옴

본문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은 것 때문에 세상에 죄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가 전가된 것을 가리킵니다. 신인계약(神人契約)에 있어서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과 계약(행위계약)을 했습니다. 계
약이란 “이대로 하면 살고, 이대로 안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즉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는 것이 계약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류의 대표되는 아담이 범했단 말입니다. 대표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은 언약을 범했기 때문에, 전 세계 인류가 다 범한 것이 되었고, 그 죄는 모든 사람에게 전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다 죄인이 되었습니다.

본문 13-14절에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의 죄와 같은 죄를 범치 아니한 자에게도 사망이 왕 노릇했다는 것은 죄가 전가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유전죄가 있습니다. 유전죄는 부패성입니다. 인류는 날 때부터 부패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중생하지 못하면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즉 법적 전가된 죄가 있으므로 태어날 때부터 악하며, 영혼은 죽었기 때문에 중생을 하여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란 오실 자는 그리스도이시며,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이 된 것은 대표 원리에서 그리스도와 같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제2의 아담입니다(고전 15:45). 표상이라는 것은 그림자와 비슷한 것입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즉 예표와 같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이므로 아담과 같은 대표가 앞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예표란 앞으로 아담과 같은 인류의 대표자가 온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대표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의와 은혜의 선물이 넘침

본문 15절에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이란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는 것은 인류의 대표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은혜의 선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넘쳤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사망이 왕 노릇함

본문 16절에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에서 “같지 아니하다”는 것은 죄와 사망은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왔습니다. 즉 죄와 사망이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흘러내려 와서 여러 사람이 다 죄인이 되었고,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
사는 그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많은 죄인을 예수님 한 분이 다 구원하셨습니다. 즉 아담의 죄는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인류 전체에 다 퍼졌지만, 인류에 퍼져있는 죄를, 즉 택한 백성의 죄를 한 분 예수 그리스도가 정결케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왕 노릇한다는 것은 권세가 있다는 말입니다. 즉 죄의 권세가 센 것으로 죄가 우리를 지배했고, 우리는 죄의 종이 되었고, 거역할 수가 없이 되었습니다. 왕 앞에 누가 거역할 수가 있습니까? 믿기 전에는 다 죄가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죄의 힘이 너무 세어서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의 종이 되어 죄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고,그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죄가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전 세계 인류에 죄가 왕 노릇했습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은혜와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함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는 무엇이 왕 노릇합니까? 그리스도의 은혜와 생명이 왕 노릇합니다.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합니다. 즉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거기에 끌리워 간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의, 구속의 은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나 그 은혜가 커서 그 은혜를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복종하게 됩니다. 전에는 죄의 종노릇 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그리스도의 은혜가 왕 노릇하고, 그리스도의 의가 왕 노릇하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왕 노릇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려고 해도 그 은혜에 감격해서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은혜를 배반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나를 큰 은혜로 구원해주셨는데 내가 어떻게 배반할 수 있을까?” 하며 그 은혜에 감격해서 끌리워 갑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은혜, 그리스도 의, 그리스도의 생명이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세력이 너무 세서, 즉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세력에 끌리워서 가는 것이며, 끌리워서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기 때문에 거기에 끌리워서 감사함으로, 기쁘고 즐거움으로 몸과 생명,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나갑니다. 아골 골짜기나 소돔 고모라나 어디든지 가는 것입니다. 

전에는 무엇이 왕이 되었습니까? 죄가 왕 노릇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죄에서 벗어나서 은혜와 의와 생명이 왕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왕 노릇한다고 하였습니까? 은혜와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해서 끌리워 가는데 첫째가 은혜입니다. 이 은혜에 감격해서 하는 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전에는 안 하면 “내쫓는다, 죽인다, 돈을 안 준다”고 해서 종살이 했는데, 이제는 그 집 며느리가 되었으므로 돈을 안 준다고 하지 않아도, 죽인다고 하지 않아도, 내쫓는다고 하지 않아도 그 집 종살이를 잘 합니다. 

본문 18-19절에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 아담이 순종치 않아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4.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함

율법으로 죄를 깨달음

본문 20절에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을 준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고 주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없을 때는 그것이 죄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온 다음에는 죄가 인정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죄인 줄 모르고 했는데, 율법을 받은 다음에는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반항함으로 더 죄를 지음

또 한 가지는 율법이 하지 말라고 한 것에 반항심을 가지고 도리어 죄를 더 많이 지었습니다. 가만히 두었으면 죄를 한 가지나, 두 가지, 또 혹시 안 지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하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인간의 부패성에서 반항심이 나와 죄를 더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라는 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전에는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몰랐는데, 율법이 왔기 때문에 죄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율법이 온 다음
에는 인간의 부패성에서 반항심이 나와 죄를 더 많이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가입한 것은 죄를 더 많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죄를 많게 하려고 율법을 주었습니까? 

5.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침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하였는데,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많이 깨닫는 사람은 은혜가 넘칩니다. 즉 죄를 많이 깨달은 사람이 회개하고, 회개할 때에 은혜가 넘칩니다. 죄를 많이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회개를 하긴 하지만, 그런 정도로 회개하고, 은혜도 그런 정도로 받습니다.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과 오백 데나리온 탕감 받은 사람 중에, 많이 탕감하는 사람이 더 감사하고 더 감격합니다. 조금 탕감 받은 사람은 감격이 그 만큼 적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많이 깨달은 사람이 은혜가 그 만큼 넘칩니다. 같은 죄를 지었어도, 죄를 많이 깨닫는 사람이 있고, 깊이 깨닫는 사람이 있고, 보통으로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로 인해 진액이 다 마르도록, 뼈가 다 쇠하도록 회개를 하는데, 다른 사람은 그런 죄가 있다고 해도 그저 한 마디 회개하고 그만 둡니다. 보통으로 생각하고 마는 것입니다. 다윗이 한 번 간음죄 진 것으로 인해 얼마나 회개를 했습니까? 시편에 침상이 썩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했다고 하였습니다. 진액이 마르고 뼈가 쇠하도록 회개한 것이 아닙니까? 보통 사람은 간음죄 지었으면 “간음죄 지었다”고 한 마디 회개하고 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같은 죄
일지라도, 죄를 많이 깨달은 사람에게 은혜가 많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보아도 누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세리가 더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속을 들여다보면 바리새인이나 세리나 다 같은 죄인입니다. 바리새인이 잘한 것 몇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껍데기 몇 가지 한 것이지 속은 다 같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바리새인이 무엇이라고 기도했습니까?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십일조를 드리고, 음란하지 아니하고, 토색하지 아니하고, 세리와 같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즉 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속은 세리와 같이 죄가 가득 합니다. 그런데 껍데기 몇 가지 잘한 것이 있다고 괜찮은 줄 압니다. 바리새인이 십일조를 드렸다고 했는데 그러면 십일조를 진짜 드렸겠는가? 십일조를 드렸어도 껍데기만 드린 것입니다. 속은 십일조 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드려야 참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을 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참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하나님께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치라고 하면 다 바치는 것이 십일조 정신입니다. 자기 몸까지 바쳐 놓아야 참으로 십일조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다 바쳐야 되는데, 바리새인이 그런 십일조를 드렸겠는가? 그저 몇 가지 해놓고 “드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이레에 두 번 금식을 진짜 했을까? 금식을 하긴 했지만 참 금식을 했는가? 하나님의 마음에 요구하시는 금식을 했는가? 금식의 목적은 자기의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케 하고, 죄를 회개하는 것이 첫째 목적입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고,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케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금식기도를 했다고 하면 자기도 죄인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이 참된 금식기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레에 두 번 금식기도를 했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 죄를 깨달은 금식 기도였다면 금식 기도했다고 말할 것이 없습니다. 또 음란하지 아니하고, 토색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지만 속에는 욕심이 가득합니다. 그러면 왜 세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았나? 세리는 죄를 많이 깨달았습니다. 바리새인은 죄를 많이 깨닫지 못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많이 깨달은 사람이 은혜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죄를 많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죄를 깨달아야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6.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함

본문 21절에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는데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한다는 것은 영혼이 자라나는 것을 말합니다. 영생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중생한 영이 자라나는 것이 영생입니다.
둘째는 하늘나라 가는 것이 영생입니다.
전에는 죄가 우리에게 왕 노릇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생명이 왕 노릇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너무 감사해서, 거기에 눌리워서 이제는 꼼짝 못하고, 왕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이루어 나가는 생활을 합니다. 즉 영이 살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생활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