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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일 금요일

야고보서 5:13-20 교회생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교회생활
야고보서 5:13-20

13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14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16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는 힘이 많으니라 17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18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19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1. 동고동락(同苦同樂)하라

본문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난당할 때에는 기도하고, 즐겁고 좋은 일이 생길 때에는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1-3절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이라고 한 것은,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예수 믿다가, 또 믿음 지키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이 있으면 자기도 같이 갇힌 것 같이 생각
하라는 것입니다. 학대 받는 자, 곧 믿음 지키다가 학대받는 자가 있으면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2. 병자를 돌아보라

본문 14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6:13절에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기름을 발라 고쳤는데, 당시 기름은 약으로 사용했습니다. 강도 만난 사마리아 사람에게 기름을 발라 고쳐주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병이 났을 때 약을 쓰면서 기도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기름을 성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령을 바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수술할 것은 수술하고 약을 쓸 것은 약을 쓰면서 병을 고쳐야 합니다. 장로들을 청해서 기도하라 했는데, 환자가 있으면 교회 사람들을 청하고 그들은 기도하고 돌봐주어야 합니다. 귀신들린 자가 있으면 위해서 매일 가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기도해주면 마귀가 나갑니다. 우리가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병 나을때에 가서 기도해주면 고마워서 교회에 잘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름은 그 때 약으로 쓴 것인데, 오늘날에도 기도할 때에 약을 쓰면서 기도하는 것이 성경에 맞는 것입니다. 약은 안 사용하고 기도해야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약을 쓰면서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또 병원에 가서 치료를 안 받고 기도만 하면 낫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치료받으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치료받아야 됩니다. 또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낫게 해주면 될 텐데 무슨 수술이냐 하고 기도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수술 할 것은 수술을 하면서 기도해야 성경에 맞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을 떠나서 약도 무시하고 의사의 수술도 무시하면서 나가면 그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물론 약을 안 써도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을 사용해서 낫도록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고, 약도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약을 쓰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약을 쓰면,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다 낫습니다. 기도하면 다 낫습니다. 또한 다 나을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로 데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또 데려갑니다.

본문 15-16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안수하는 문제는 성경에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고 했는데, 디모데전서 5:22절에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안수하는 것으로 교인을 많이 모아 교회가 된다고 하는 목사가 있는데, 안수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안수를 추구하다가는 결국 망합니다. 안수해서 병을 고쳐준다고 하며, 돈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심판받게 되어 있습니다. 안수를 추구하며 돈을 받고 자기가 높아지는 것은, 예수를 팔아먹고 예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안수 없이 거저 기도해주면 됩니다. 거저 기도해 주어도 병이 낫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경회 참여하여 말씀 듣는 중에 병이 낫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수로 병이 나으면 그 목사가 고쳐준 줄로 알고 목사에게 감사연보를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것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신랑에게 연결시켜 주어야지 들러리가 해먹으면 안 됩니다. 자기는 종인데 자기가 그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될 일입니까? 신랑에게 데려다 주라고 들러리를 세웠더니 자기가 신랑을 가로채서 데리고 살면 되겠습니까?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고 했습니다.

본문 17-18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능력이 있는 기도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였기에 능력 있는 기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힘을 입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능력 있는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이루어져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갑니다.

3. 진리를 떠난 자와 죄인을 돌아오게 하라

본문 19-20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면 자신의 죄를 덮을 것이라고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죄를 사함받기 위해 전도를 열심히 합니다. 그것은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한국성경공회의 <바른성경>에서 본문 20절을 잘 번역했는데, “그가 알 것은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죄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고 수많은 죄를 덮을 것이라는 것이다”라고 바른 성경에서는 번역했습니다. 죄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미혹 받은 사람을 돌아서게 하는 것인데 그런 사람은 권면하다가 그래도 돌아서지 않으면 그대로 두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는 것은, 전도해서 구원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면 그 사람의 허다한 죄를 덮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은 그 사람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것이고, 사망과 불 구렁텅이에서 건져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아무리 죄가 많다고 해도 그 죄를 하나님께서 덮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온 교회가 그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사망에서, 지옥에서, 불구덩이에서, 한 사람이라도 건져내는 일에 힘을 쓰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야고보서 5:1-12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야고보서 5:1-12

1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2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3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6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7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10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자시니라 12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5:1 부자들아, 이제 너희에게 닥칠 고생을 생각하고 슬퍼하며 울어라. 

5: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고, 

5:3 너희의 금과 은이 녹슬었으니, 그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될 것이며, 불같이 너희 살을 삼킬 것이다. 여러분은 마지막 날에도 재물을 쌓았다. 

5:4 보아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일꾼들에게 지불하지 않은 품삯이 소리를 지르며, 추수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이 만군의 주님의 귀에 들렸다. 

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쾌락을 즐기며 살육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다. 

5:6 너희가 의로운 자를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오래 참아라. 보아라, 농부가 땅의 귀한 열매를 바라고 오래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5:8 너희도 오래 참아 너희 마음을 굳게하여라. 이는 주님의 강림이 가깝기 때문이다. 

5:9 형제들아, 심판을 받지 않도록 서로 원망하지 마라. 보아라, 심판자가 문 앞에 서 계신다. 

5:10 형제들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모범으로 삼아라. 

5:11 보아라, 우리는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고 말한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으니, 주께서는 긍휼이 많으시고 인애하시다. 

5:12 나의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라. 하늘로도 땅으로도 다른 무엇으로도 맹세하지 마라. 너희는 '예.' 할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여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여라. 


1. 부한 자들에게 임할 심판

본문 1-3절에,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재물을 세상에 쌓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자기 먹고 살 것 정도로만 두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사야 5:8절에,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했습니다. 가옥에 가옥을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옥 하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 홀로 잘 살려고 하면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목사가 한국에서 교회를 하다가 미국으로 가는데 교회를 팔고 갔습니다. 교회 파는 것은 죄입니다. 그렇게 팔고는 미국에 가서 집을 하나 샀는데,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더 합해서 샀다고 합니다. 그러다 가 최근에 미국의 금융 위기로 집값이 뚝 떨어졌다고 합니다. 교회 팔아가지고 욕심으로 간 사람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살아야 하는데 욕심으로 무엇을 취하려 하다가 다 망합니다. 마지막은 사망인 것입니다.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북에서 부자들이 욕심으로 자기 집을 크게 지으려고 길바닥에 기둥을 세우다가, 이북의 부자들 숙청하며 쫓아낼 때에 울면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날 때에 자기 재물을 가지고 가지 못했습니다. 돈 때문에 그들은 통곡하면서 근심이 생겨서 죽은 사람도 있고 형편없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재물이 어느 때까지는 필요하나, 그 재물 때문에 화를 당할 날이 옵니다. 재물이 어느 정도 지나면 자기의 살을 먹습니다. 재물을 바로 처리하지 못하고 죽어서, 그 아들들이 재물 때문에 싸움하는 집도 있습니다. 재물 때문에 못할 짓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재물을 바로 쓰면 하늘에 쌓이는 것이고, 재물을 바로 못쓰면 자신도 나빠지고 자손들도 나빠지며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재물이 살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에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아야 합니다. 말세에는 재물을 땅에 쌓아둘 때가 아니라 하늘에 쌓고, 믿는 일을 할 때입니다. 세상에 쌓아 놓아봐야 좀이 먹고 맙니다. 아끼다가 자기도 쓰지 못하고 하나님께도 바치지 못한 채, 다 버리고 맙니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다 쓰지 못합니다. 의복도 아무리 많아도 다 입지 못합니다. 다 주어야 합니다. 아끼는 것은 쓰지도 못한 채, 좀이 먹어 버리게 됩니다.
어떤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까? 누가복음 6:20-21절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이 주린 자, 죄로 인해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요한 자는 화가 있다고 하였고, 배부른 자는 화가 있다고 하였고, 웃는 자가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자는 믿기가 힘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렵다고 하였습니까?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였는데, 계속해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였습니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못 한다는 말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자를 가난하게 만들어서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에 있는 부자는 믿는 일을 하지 않고 부자 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4:17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일 하지 않고 부자가 된 모든 부자는 다 화가 있습니다. 돈 벌 때 제대로 정당하게 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화가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고 했습니다. 정당하게 벌지 못했습니다. 품꾼에게 품삯을 안주었기 때문에,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습니다. 이것이 품값을 제대로 안주고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정당하게 벌었어야 했는데 벌 때 정당하게 벌지 못했습니다. 추수한 품꾼에게 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정당하게 벌지 못하고, 그것 가지고 사치하고 연락하다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오면 망합니다.

본문 5절에,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땅에서 연락하는 자로 사치하는 것이 죄입니다. ‘도살의 날’이라고 했는데, 도살이란 양심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을 죽이고 마음을 살찌게 했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심령이 살찐 자는 화가 있고 지옥이 저희 것입니다. 마음이 살찌면 안 됩니다. 언제나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재물이 있다고 마음을 살찌게 해서 살다가는 화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재물에 대해서 양심을 바로 쓰고, 재물 처리를 바로하며, 재물로 하나님의 일을 잘 하여, 자기 영혼과 하나님의 일이 잘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재물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기 것이라고 지키려 하지 말고, 싸우고 다투지 말고 돕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재물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래서 죽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제가 달려갈 길 다 가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습니다”고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 신앙으로 믿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 계획으로 이득을 보려고 해도 그것이 잘 안 됩니다.

주님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겠지만, 주의 뜻이 아니면 못합니다. 주의 뜻이 아니면 재산이 없어집니다. 울고 통곡할 날이 오고, 불같이 자기 살을 먹을 날이 옵니다. 재산보다는 믿음이 큽니다. 하늘나라가 더 큽니다. 그러므로 신앙양심을 써야 합니다. 양심을 안쓰면 벼 알에서 쌀알을 빼낸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양심을 써서, 선한 일을 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2.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본문 7-8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이므로 주님이 강림하실 그 때까지 길이 참으라고 권면합니다. 성도가 믿음을 지켜 나아갈 때에 시험과 환난과 핍박과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이 오게 되는데(딤후 3:12), 이 모든 시험과 환난 속에서 믿음을 지켜 나아가면서 참아야 됩니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여러 가지 재난이 닥쳐와도 길이 참고 계속 농사를 지어 나갑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에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와도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소망 중에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하였는데,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면서 농사를 짓습니다. 비가 잘 오지 않아도 다음 비를 기다리면서 참고 농사를 계속합니다. “이른 비”는 속히 은혜를 베풀어서 건져 주는 것을 뜻하며, “늦은 비”는 곡식이 다 시들고 잎사귀가 마를 때에 비가 내리듯이 속히 건져 주지 않고 오래 지난 후에 은혜 주심을 뜻합니다. 성도들이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속히 도와서 건져 주시는 때도 있지만 오래도록 건져 주시지 않아 기진 맥진하고 이제는 다 쓰러져서 죽게 되었고 또 소생할 가망이 안보일 때에 가서야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고 건져 주시는 때도 있습니다. 본문 8절에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하였는데, “주님이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는 것입니다. 참으라는 것은 말세에 죄악을 이기며 참으라는 것이고, 믿음을 지키면서 참으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면서 참으라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다 하면서 참으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에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또 복음을 전하면서 참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면서 참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면 세상과 마찰이 되고, 십자가의 고통이 옵니다. 세상과 짝할 때에는 아무 환난이 없습니다. 세상과 짝하지 않으려니까 환난이 옵니다.
그러므로 잘 참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길이 참으며 계속 농사해 나가면 하나님이 이른 비도 주시고 늦은 비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가물어도 계속 농사를 해야 됩니다. 추운 때가 와도, 더운 때가 와도 계속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십니다. 이른 비는 일찍 내리워 주는 비이고, 늦은 비는 늦게 내리워 주시는 비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빨리 내려 주셔야 할 때는 빨리 내려 주시고 또 늦게 은혜를 내려 주셔야 될 때는 늦게 내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중단 없이 하나님의 일을 계속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안될것 같아도 되게 만들어 주시고, 죽을 것 같아도 살게 해 주시고, 실패할 것 같아도 성공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계속 농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더워서 못한다, 가물어서 못한다, 비가 많이 와서 못한다, 추워서 못한다”고 하지 말고, 계속 농사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덥든지 춥든지 또 가물든지 길이 참고 나가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이 내리워 주셔서 마침내 결실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계속 농사하는 게 중요하고, 끝까지 참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농사한다는 것은 복음의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김을 매 주고, 결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 심방하는 일 등은 농사하는 일과 같습니다. 1년 농사를 지을 때에 한재, 풍재, 수재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오지만 끝까지 참으면서 계속해 나갑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일에 여러 가지 방해물들이 많이 오는데, 그것을 참으면서 이겨 나가면 하나님이 결실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마음을 굳게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
서 13:9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라고 했는데, 마음은 은혜를 받아야 굳게 할 수 있으므로 항상 은혜 가운데 거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또 주님의 강림이 가까운 것을 믿고 인내하면서 주님 앞에 설 준비를 갖추도록 하여야 합니다.

원망하지 말라

본문 9절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일이 다 자기 마음에 맞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잘 해주실 것을 믿고 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말세에는 특별히 원망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가 있습니다.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죄가 네 가지인데, 우상숭배와 간음과 하나님을 시험한 것과 원망한 것이었습니다. 왜 원망이 나옵니까? 자기의 사욕을 취하려 하기에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고 덕을 세우는 것을 위하면 원망이 안 나오는데 자기만 위하니까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고 했는데, 언행심사 모두를 심판하십니다. 한 가지도 거저 지나가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 심판 받을 것인데 교회를 자기 것으로 하려는 것은 얼마나 큰 심판을 받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떼먹고 잘라먹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인데 가룟 유다와 같이 범죄자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심판자가 문 밖에 서계신데, 두려운 줄 알고 재림준비를 날마다 해야 합니다. 주의 재림이 임박한 줄을 알고 전심전력을 다해서 예수님 영접할 준비를 하여야겠습니다.
야고보서 4:8-10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때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늘 생각하면서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셔서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으셨는데, 마음이 더러워지고, 세상과 벗 되었던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드시려고, 하나님은 성도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주시는데 여기에서 회개하지 못하고, 온전해지지 못하고, 아직도 손이 더럽습니다. 즉 마음이 성결하지 못합니다. 또 두 마음을 품어서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데 이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온전케 되어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생활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언제나 책임을 자기가 지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하나님이 공의로 통치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만 나옵니다. 회개할 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과 짝했던 것을 회개해야 하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가지고 나가던 것을 회개해야 하고, 구속의 은혜에 항상 감격하는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야고보서 4:11에는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방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자기가 이기려고 서로 싸우고 다투면 비방이 나옵니다. 비방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를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가 할 일만 하면 됩니다. 공연히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하고, 자기가 이기려고 하고,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니까 비방이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은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를 만들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환경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지 못하니까 걱정이 들어옵니다. 또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니까 비방과 원망이 나옵니다. 또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에 원망을 합니다. 믿음을 쓰면 원망이 없습니다.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하는 것은 믿음을 안 쓴 증거입니다.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 원망이 없어집니다.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는데, 무엇을 원망합니까?

요셉이 애굽에 팔리고, 종살이 하고, 감옥에 들어간 것 등을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당신들이 나를 애굽에 팔았으므로 한탄하지 마옵소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했다면 “형들이 팔아먹었으니까 원수 갚을 때가 왔다”하며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또 가룟유다를 예수님이 원망했습니까? “나한테 3년이나 배웠으면서 나를 팔았느냐?”고 하며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나를 파는 자는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원망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환난도 하나님이 주신 것, 십자가도 하나님이 주신 것, 어려운 일도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왜 사람을 원망합니까? 원망은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원망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므로 원망하지 않고 잘 참으며 나가야 됩니다. 즉 “나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한 것이 없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내게 주신 줄로 믿고 잘 참아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고 하였는데,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다는 것은 이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책망 안받도록 항상 회개하며 믿음을 잘 써야 되겠습니다. 회개가 끊어지면 안 됩니다. 항상 예수님의 구속을 생각하면서 회개해야 됩니다.

바울은 전에 지은 죄를 늘 애통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였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윗도 전에 지은 죄 때문에 침상이 뜨도록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죄 때문에, 매일 아침 닭이 울 때마다 일어나서 회개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교만했던 죄를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교만인가? 하면 자기가 교만입니다. 또 이기주의가 교만입니다. 제 생각, 제 뜻, 자기 위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또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그것이 죄라고 했는데,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았던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야고보서 4:13-14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아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며 계획을 세워 놓았는데,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세워 놓은 것입니까? 자기를 위해서 이를 보려고 세워 놓은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것이지, 자기가 계획하고, 자기가 하겠다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과 저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뜻이 아니면 안 해야 합니다. 또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 하였는데, 전도할 줄 알면서 전도 하지 않은 죄, 참아야 될 줄 알면서 참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을 용납해야 할 줄 알면서 용납하지 않는 것 등을 회개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3:17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하였습
니다. 이 말씀대로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관용은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순복하라

야고보서 4:7에는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순복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교회에서 무엇을 하라고 하면 순복하여야 합니다. 우리 신학교에서 기숙사를 지으려고 연보를 하려고 하는데, 그것도 순복을 잘 해서 정성껏 연보를 해야겠습니다. 안하는 것은 순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자는데 안하겠다는 것이 바로 되었습니까? 안하겠다고 하면 그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6.25때에 제주도로 피난을 갔을 때입니다. 어느 예배당에서 사경회를 했는데, 예배당 건물이 오래된 건물로, 참 한심합니다. 그래서 사경회 때 예배당을 다시 짓자고 하여, 예배당을 다시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내가 연보를 안 했습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도 제주도를 생각만 하면 후회가 나옵니다. 벽돌 몇 장이라도 했으면 후회가 안 될 텐데,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다 순복하여야 합니다. 즉 참여하여야 합니다.
참여하지 않으면 이 다음에 후회하고, 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순복하지 못한 죄를 찾아 회개해야 되고, 마귀를 대적하지 못하고 용납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마귀는 베드로를 통해서 들어왔고, 예수님의 어머니를 통해서도 왔는데, 예수님은 다 대적 하셨습니다. 그리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 원망할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 때에 모세는 뭐라고 하였습니까? 너희가 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와도 하나님이 주신 고난인 줄 알아야지, 사람이 준 고난인 줄 알면 안 됩니다.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본문 10-11절에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인내를 본받아서 끝까지 참으라는 것입니다. 욥의 재산이 하루 아침에 다 없어졌습니다. 자녀들도 하루 아침에 다 죽었습니다. 자신의 몸에는 병이 났습니다. 그 다음에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였고, 욥의 친구들은 와서 괴롭게 했습니다. 그래도 욥이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시오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하면서 끝까지 참았습니다. 이렇게 큰 고통을 당했지만 끝까지 참았습니다. 참으니까 나중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갑절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건강도 주셨고 또 신령한 믿음, 즉 연단된 정금과 같은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참는 자, 즉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나가는 자에
게 좋은 결실을 보게 하십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이시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켜 나가는 자는 내어 버리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좋은 것으로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잘 참아야겠습니다.

맹세하지 말라

본문 12절에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고 하였습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로도 맹세하지 말고,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또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37절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라는 것입니다.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맹세하지 말고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을 못하고, 또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을 못하고, 끊어 버려야 할 것을 끊어 버리지 못하면 그것이 죄라는 말입니다. 맹세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면, 일단 맹세해 놓으면 가다가 옳은 것을 “옳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맹세할 때에는 그것이 옳은 줄 알고 했는데 좀 가다 보니까 그것이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쳐야겠는데, 맹세 때문에 못 고치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또 맹세할 때는 저것은 아니라고 해서 맹세를 했는데, 좀 가다 보니까 성경대로 옳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리로 가야 되겠는데 맹세 때문에 못갑니다. 그러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헤롯 왕이 헤로디아의 딸이 와서 춤 출 때에 뭐라고 맹세했습니까? 나라의 절반이라도 준다고 맹세했습니다. 헤롯 왕은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딸이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할 때에, 맹세한 것 때문에 세례 요한의 머리를 주지 않았습니까? 맹세한 것 때문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습니까?
그러므로 맹세 때문에 죄 짓는 것이 많습니다. 떠나야 되겠는데 맹세한 것 때문에 못 떠나고, 안 해야 되겠는데 맹세한 것 때문에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생각이 다 옳은 게 아니고,또 세상의 법률이 다 옳은 게 아닙니다. 그 시대에는 유용했지만 그 다음 세대에는 유용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일단 맹세했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된 맹세라면 “실수한 것이다”라고 사과하고, 그 맹세를 따라 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야 됩니다. 저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맹세한 것 때문에 못 간다고 하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도는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
다”라고, 이것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사람 앞에서 맹세한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맹세를 했을지라도 성경에 맞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맹세 때문에 한다면 그것은 마귀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 맹세가 큰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큽니다. 안 바치기로 맹세를 했을지라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즉시로 바쳐야 합니다.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비방을 한다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을 지키는 것 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큰 복을 받습니다.

야고보서 4:13-17 선한 일에 열심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선한 일에 열심하라
야고보서 4:13-17

13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1. 안개와 같은 인생임을 알 것

본문 13절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했는데 이런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획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므로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2: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했습니다. 인생이 코로 호흡을 쉬는 동안에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호흡만 그치면 다 끝나는 것이므로 수에 칠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편 90:1-10절 말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7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9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생은 잠시 잠깐 동안 있다 간다는 것입니다. 시편 90:4절에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라는 말씀은 천년이 한 경점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100년을 생각하면 상당히 먼 것 같아도 금방 흘러갑니다. 또한 성경을 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오셨던 것, 다윗이 3000년 전에 있었던 것, 아브라함이 4000년 전, 아담이 6000년 전에 있었는데 점 하나 찍은 것처럼 금방 흘러갑니다. 우리의 인생도 점 하나 찍은 것처럼 잠깐 지나가는 것입니다. 또 여기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는데 인간의 연수가 보통 칠십 세입니다. 강건하면 팔십세까지 살 수 있고 혹은 몇 십 년 더 살 수 있더라도 대개 백년 이내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볼 때 구한국이 망한 것이 100
년 전이고 이조시대 500년, 신라1000년, 고려 500년 등 아침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가 사라져갔습니다.

본문 14절 가운데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무엇인지부터 알라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날지 하나님이 정해놓은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오라” 하시면 가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도 가고, 노인도 가고, 모두 다 갑니다.
이번에 동남아시아 지진 해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도 순식간에 다 죽었습니다. 집채보다 더 높은 큰 해일이 비행기만큼 빨리 와서 갑자기 닥쳤다고 합니다. 어찌나 빠르게 왔던지 뛰어서는 그것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자동차 속도만큼 왔다 하더라도 피하기 힘들었을 텐데, 자동차보다 몇 배 더 빠른 비행기 속도로 갑자기 덮쳤으니 사람들이 많이 죽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사람 생명이 아침 안개와 같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 년 계획, 십 년 계획, 오십년 계획, 백 년 계획 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엔 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라는 본문 14절 말씀처럼 우리는 내일까지 살지, 또 하나님이 오늘 밤에 불러 가실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사말로 “지난밤에 안녕하셨습니까?”라고 합니다. 이는 “지난밤에 죽지 않고 살아나왔느냐” 그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루 밤에 안녕할지 아닐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생명이 아침 안개와 같고 풀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우리의 생명이 코에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홀딱 홀딱하다가 홀딱하면 다 끝난다는 것입니다. 천 년이라는 긴 시간도 역사적으로 볼 때 점 하나 찍은 것과 같은데 우리의 인생은 수에 칠 가치조차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무엇이며, 우리의 생명이 무엇인지, 믿는 신자로써 바로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바로 알지 못할 때 욕심이 들어 와서, 몇 백 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아무 도시에 가서 일 년간 장사해서 이를 많이 봐야겠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다음에 더 무언가 잘 해서 득을 남겨야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가득한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본문 말씀입니다.

2.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

본문 15-17절에,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 놓으셨는데,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 것은 아무리 많이 해놓았어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세상 것은 헛된 것입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 문제가지고 싸우고 다투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만 먼저 구하며 믿는 일을 하면, 하나님이 세상 것은 덤으로 주십니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우리가 나가야겠습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했는데, 하나님께 순종할 줄 알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줄 알면서도, 자기 계획대로 하면 죄입니다.

누가복음 12:16-21절에,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믿음 쓸 줄 알면서 믿음을 쓰지 않으면 죄입니다. 오늘, 믿음을 쓰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바로 할 것을 바로하고 회개할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과 짝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회개를 위해 웃음을 애통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어리석게 세상에 쌓아놓으면 안 됩니다. 재물은 먹고 사는 것과 믿는 일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 지키고 선을 행하는 데에 재물을 써야 합니다.
바칠 것은 바쳐야 합니다. 세상 살 동안에 하나님께 옳은 일을 하고 가야 합니다. 믿는 일을 해야 할 줄을 알면서도 안하면 죄입니다.

3.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

로마서 14:23절에,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일을 해야 할 줄을 알면서도 안하면 죄입니다. 세상 계획을 세워서 이득을 보고, 사는 동안 잘 살겠다 하여 쌓아 놓고, 믿는 일은 하지 않은 것은 죄입니다.
성령께서 저희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데, 그 감동을 주실 때에 따라가야 합니다. 감동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고 하고, 세상 일만 잘되게 하려는 것은 죄입니다. 믿는 일이 첫째이고 세상 일은 둘째 혹은 셋째입니다. 세상 따라가면 실패입니다.

“주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주의 뜻이면 우리가 저것도 하리라 할 것이거늘”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주의 뜻이면 산다는 것은 주의 뜻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주의 뜻대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인데 주의 뜻대로 살고 주의 뜻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사를 가도 주의 뜻대로 이사하고 안가도 주의 뜻대로 안가고 모든 것을 주의 뜻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도 가고 그 정욕도 가고 다 지나가되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일은 영원히 거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24절에는,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잠시면 풀은 마릅니다.
육체는 풀이고 영광은 풀의 꽃이니까 꽃처럼 떨어집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일은 영원히 거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것은 영원히 거한다는 말입니다. 영원히 안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살기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무엇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돈을 쓰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쓰라는 것입니다. 
오늘 미국에 조덕래 목사님이 7백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목사님이 교회 어디에 쓰든지 목사님이 알아서 쓰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에 써야 할까 신학교에 쓸까 하다가 교회 주차장 건축하는 데에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덕래 목사 이름으로 주차장 연보를 7백만 원 했습니다. 미국에 가 있어도 교회를 받드는 정신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돈을 써도 주의 뜻대로 쓰고 또 살아도 주의 뜻대로 살고 뭘 하나 해도 주의 뜻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가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4.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지 말고 선한 일에 열심하라

16-17절에,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했습니다.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허탄한 자랑이라는 것은 믿음 안 지키고 세상에서 잘 된 거 자랑하는 것입니다. 믿음 안 지키고 세상에서 잘 된 것 자랑하는 게 다 허탄한 자랑입니다. 그것은 다 없어질 것이고 믿음 지킨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믿음 안 지키고 세상에 공부 많이 해서 출세했다, 또 사업에 성공했다, 돈 많이 벌었다, 뭘 했다, 뭘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 있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입니다.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 지키지 않은 것은 다 허탄한 것입니다.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어떻게 하든지 선한 일을 하고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겠구나 싶은 감동이 오면 해야 합니다. 자기가 안 해도 ‘다른 사람이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안 해도 남이 다 한다고 하면, 자기가 세상에 난 목적은 무엇입니까? 육신의 생명이 안개와 같고 내일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데, 오늘에 자기가 해야 할 믿는 일을 자기가 해야 합니다. 내 할 도리를 다하고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에 오병이어의 역사처럼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인간이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내 물질을 바치고, 시간을 바치고, 내 목숨을 바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안합니까? 그것은 세상 계획을 세워놓고 거기 도달하려고만 하다 보니 선을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의를 행하고 양심을 쓰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쓰지 않고 욕심을 부리면서 사는 것은 다 죄입니다. 세상 계획에 집중해서 사느라고 믿는 일을 못하고 마는데, 세상 계획이 다 맞아 떨어져 계획한 대로 된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믿는 일을 한 것만 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을 만들려고 건지셨다고 했습니다. 디도서 2: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고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구속해주었다는 말입니다.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 하나님을 위하는 것,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믿음 지키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신앙 양심을 쓰는 게 선한 일입니다.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옳다 생각하면 가라는 것입니다. 옳은 줄 알면서 안 가면 죄입니다. 이건 안 되겠다 하면서 가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안 되겠다 하면 안 가야 합니다. 양심에 가
책이 된다 하면 그것은 관두라는 것입니다. 양심에 가책되는 것을 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건 성경에 위반된다 싶으면 관두라는 것입니다.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은 죄라는 말입니다. 바로 하는 것을 알면서 행치 않는 것은 죄입니다. 전도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해야 되겠다 싶으면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해야 하는지 알면서 행치 않는 것은 죄입니다. 이렇게 하는 게 옳다, 이렇게 해야 되겠다, 또 봉사해야 되겠다 하면 하시기 바랍니다. 바쳐야 되겠다 싶으며 바치십시오. 또 구제를 좀 해야 되겠다 싶으면 하십시오.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는 건 죄니까 돈만 생각하지 말고 자기 육신의 안일주의만 생각하지 말고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입니다. 죽는 날까지, 자기 몸이 움직이는 날까지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니까 남은 여생 우리가 선한 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을 끝까지 하고 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야고보서 4:1-12 큰 은혜와 복을 받는 방법.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큰 은혜와 복을 받는 방법
야고보서 4:1-12

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4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5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9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11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12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4:1 너희 가운데 싸움이 어디서 오며 다툼이 어디서 오느냐? 너희의 지체 안에 있는 싸우는 정욕에서 오는 것이 아니냐? 

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을 하고 시기하여도 얻을 수 없는데, 너희는 다투고 싸운다.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4:3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4:4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벗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알지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4:5 너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시기할 정도로 사모한다고 하신 성경 말씀을 헛된 것으로 생각하느냐? 

4:6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라고 하셨다. 

4:7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여라. 그러면 마귀가 너희를 피할 것이다. 

4:8 하나님을 가까이하여라. 그러면 그분도 너희를 가까이하실 것이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여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여라. 

4:9 슬퍼하고 애통해하며 울어라. 너희의 웃음을 울음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어라. 

4:10 주님 앞에서 낮추어라. 그러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실 것이다. 

4: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마라. 형제를 비방하거나 자기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네가 율법을 판단하면, 너는 율법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재판관이다.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한 분이시니, 그분께서는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네가 누구이기에 네 이웃을 판단하느냐? 


1. 싸우지 말고 구하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본문 1절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싸우고 다투는데 그 싸우고 다투는 것이 ‘싸우는 정욕’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취하지 못하는 것인데 공연히 싸우고 다툰다는 말입니다. 싸우고 다투고 욕심 부려서는 죄만 짓는 것이지 참된 것을 얻지 못합니다. 욕심 부려서 얻고, 싸워서 얻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오면 다 없어지게 될 헛된 것들입니다.

가장 요긴한 것은 어떻게 하면 얻는다고 했습니까? 구하여야 얻습니다. 하나님께 구하면 가장 필요하고 가장 요긴한 것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구하면 얻습니다. 그럼 뭘 구하여야 됩니까? 마태복음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
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것들은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게 진짜고, 그게 제일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건 다 덤으로 주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고 가장 필요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주실 건데, 왜 영원한 건 구하지 않고 쓸데없는 것 가지고 싸우고 다툽니까?

사람들은 물질문제, 명예 영광 문제, 자기중심주의 때문에 싸우고 다툽니다. 그러나 그렇게 싸워서 좀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참된 자기 것이 아닙니다. 싸워서 물질을 빼앗았다 합시다. 그 물질 얼마나 갈까요? 죽을 때 다 내놓고 갈 거 아닙니까? 제 것이 되는 게 아닙니다.
시기하고 빼앗지 않아도,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 쓸 것을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다 먹고 살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는데 공연히 싸우고 다툰다는 말입니다.

싸우는 게 다 명예 영광 때문에, 또 권세 좀 잡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패가 나뉘어 싸우는 교회가 많습니다. 당파를 지어 싸우고 다투다가 한파는 1층에서 예배를 보고, 한파는 2층에서 보는 교회가 있어요. 그러니 교회가 잘 되겠습니까? 교인들이 점점 떨어져 나갑니다. 이 놈의 교회 갈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또 서로 장로 되겠다고 싸우고 다투고, 노회나 총회 하면서 또 싸우고 다툽니다. 총회장 한번 되려면 6억을 써야 된다는 교단도 있습니
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나는 것입니까? 그 돈 누구 돈입니까? 이것이 교회가 타락된 증거가 아닙니까? 얼마나 부패하면 돈을 써서 총회장 된다, 노회장 된다는 말이 나옵니까? 이것이 악한 일입니다. 이미 다 서로 짜 놓고, 선거할 때는 하나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고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얼마나 악한 일들입니까?

또 가정에서도 싸우고 다툽니다. 싸우고 다투는 가정도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싸우라고 결혼시켰습니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손뼉을 혼자만 쳐서는 소리가 안 납니다. 그러니까 부딪히지 않으면 됩니다. 부부간에 싸우려고 할 때 부딪히지 마십시오. 고부간, 형제간에도 싸우고 다투는 게 많습니다. 싸우고 다투면 뭘 얻습니까? 가정에서 싸움은 서로 자기 수하에 놓으려고, 서로 권리 차지하려고 싸웁니다. 누가 내 종이 되느냐. 아내는 남편을 자기 종으로 삼으려고 싸우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종 삼으려고 싸우지만, 편안 하려면 한쪽이 종이 되면 편안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좀 센 집은 남편이 종노릇하고, 남편이 좀 센 집은 여자가 종노릇하면 됩니다. 서로 종노릇 안 하려니까 싸우는 것입니다. 얻을 바는 다투어서 얻는 게 아닙니다. 참된 것은 싸워서 얻는 게 아닙니다. 싸워서 얻는 사람은 마귀 종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것은 구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그럼 뭘 구해야 합니까? 그 나라와 의를 구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구하고 덧입어야 합니다. 형상대로 창조 받았기 때문에 그 형상을 이룰 수 있고, 주의 형상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세계, 하나님과 교통하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그 통치가 이뤄지니까 벌써 귀한 것을 찾은 것입니다. 금보다 귀하고, 영원한 것을 찾은 것입니다. 또 ‘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의 하나가 천하보다 귀한데, 베드로후서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다 불타 없어져도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난다.
그 나라에는 의를 가지고 갑니다. 사람이 의로 살고, 의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또 의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사가 나타나고, 의로 다른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나가고, 의를 가지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돈, 명예, 영광, 사업체 못 가져갑니다. 교회, 가족 못 데리고 갑니다. 의밖에는 가져갈수 없기 때문에 의를 얼마나 이루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잘 순종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가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엔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 것을 가지고 갑니다. 하나님의 형상, 능력을 입어서 가지고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지혜로운 자가 되고, 하나님의 의를 닮아가며 세워 나가고, 하나님 능력을 이루어서 능력 있는 자가 되어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많이 구해서, 사랑과 긍휼을 이루어가고 자라나야 됩니다. 자라나서 가는 것, 그것을 구하라는 겁니다. 그것만 구해서 풍성해지면 다른 것은 덤으로 줍니다. 원 물건을 사면 다른 것은 덤으로 주지 않아요? 원 물건이 중요한 것이지 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원 물건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 하나님의 형상인데, 우리가 이것만 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하나님의 의만 구하면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의가 충만한 나라가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구하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러면 능력 있는 자가 되고, 진리 안에 있는 자가 되고, 거룩한 자, 지혜 있는 자, 진실한 자 다 이루어져 나갑니다. 점점 더 온전한 자가 되어 나가고, 점점 무한히 자라나가는 자가 되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독립적인 인격이 만들어져 나갑니다. 그렇게 자라나고 만들어진 것, 그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은 영원히 하늘나라까지 가지고 갑니다. 또 이 세상에서 그 나라 이루어 진 것이 천국입니다. 화평과 의가 충만하고, 사랑과 거룩이 충만하고, 거기에는 악한 자가 없습니다. 거룩한 자 뿐입니다. 더러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데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안 주시겠습니까? 서로 남을 종으로 부려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종살이 하는 나라입니다. 누가 머리입니까? 하나님이 맨 윗머리이고, 그 다음 머리 그리스도께로 내려오고, 그리스도의 머리에서 남자에게로 내려오고, 남자의 머리에서 또 여자에게 내려오는 것이 질서정연한 것입니다. 머리라고 해서 남을 압제하고 남을 죽이고 노략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라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걸 전달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머리도 종, 종도 종, 아랫사람도 종, 윗사람도 종인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예수님도 종이라고 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요 섬기려고 왔다, 나는 주도 되고 선생도 되지만 너희들 발을 씻어주기 위해서 왔다, 이걸 본받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부터 이렇게 섬기는 자리에 계셨기 때문에 제자들도 서로 섬겨야 됩니다. 자기 의만 내세우며 요한 형제가 서로 높아지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0:27-2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 나라 사람들은 서로 머리가 되겠다고, 권세를 잡겠다고 하지만 너희는 그게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는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어 놓는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종이 되어야 됩니다. 종이 큰 자이고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하늘나라 가면, 많이 섬기고 간 자, 얼마나 많이 섬겼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일 큰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창세 이후에 제일 많이 섬기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모든 사람의 발을 씻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목욕도 시켜주시고. 전 세계 모든 성도들 발 다 씻어 주시고, 이제 앞으로 올 성도들 다 씻어 주셨습니다. 앞으로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의 모든 성도들의 발을 다 씻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많이 섬겼습니까? 제일 많이 섬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분입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누가 클 것 같습니까? 누가 많이 섬겼습니까? 아마 사도 바울이 많이 섬겼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사도바울이 얼마나 많이 발을 씻어주고 얼마나 많이 섬겼습니까? 유럽으로 다니고 아시아로 다니면서 봉사하고, 또 평안히 그냥 있어도 되는데, 생명 내놓고 예수살렘에 올라가고, 열심히 성경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성경이 14권입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히브리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얼마나 많이 기록했습니까? 사도바울이 이렇게 많이 섬겼습니다. 하늘나라 가면 바울이 상당히 큰 자일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을 섬기다 가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됩니다. 싸우고 다퉈서 권리 잡은 자가 큰 자가 아고, 또 물질 전부다 빼앗아서 제 것으로 만드는 자가 큰 자가 아닙니다. 그건 다 전부 다 책망 받고 심판 받을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것은 그 나라와 의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모든 걸 덤으로 주십니다.

원 물건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덤으로 주는 것만 구하면 덤을 주겠습니까? 예를 들어 부잣집에서 딸을 데리고 가면 덤으로 줄려고 많이 준비 해 놓았다고 합시다. 근데 딸은 안 데려가고 덤으로 줄 것만 달라면 주겠습니까? 자동차도 하나 사 놓고, 아파트도 하나 사놓고, 옷장도 좋은 것으로 사 놓고, 살림살이 다 차려 주려고 준비 해놓았는데 딸은 안 데려가고 그런 것들만 달라고 하면 누가 주겠습니까? 안 줍니다. 하지만 딸만 데려가면 그런 것들 달라고 하지 않아도
다 순순히 따라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구하는 것도, 원 구할 것만 구하면, 다른 건 다 그 다음엔 덤으로 따라오게 하십니다. 괜히 덤 가지고 싸우고, 껍데기 가지고 싸우지 말고 원 물건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즉, 그의 나라와 의, 또 하나님의 형상. 이것들만 구하면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모두 덤으로 다 주십니다.

2.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라

본문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남편이고 예수님이 남편인데, 세상과 벗된 것이 간음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 된다’는 것은 세상 나라와 벗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로 말하면 앗수르나 바벨론 나라와 벗되어 의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라고 하였는데, 사도 바울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고, 바울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세상과 벗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되고, 간음하는 여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 이런 것들을 사랑치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3절에는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세상과 벗되지 말고 하나님과 벗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짝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2:4-6절에,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짝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가시로 길을 막고, 담을 쌓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과 짝하고 나가려 하는 자에게 가시로 길을 막고, 담을 쌓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십니다.

호세아 2:14절에,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라고 했는데, 그 앞 절을 보면 다른 나라로 가서 세상 나라를 남편을 삼아서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개유(開諭)하셔서 들로 데리고 나가 연단하신다고 했습니다. 한국성경공회에서 번역 출간한 <바른 성경>에는 ‘개유’를 ‘타이르다’로 번역했는데, 타일러 유인해서 광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개유(開諭)는 ‘유혹하다’, ‘꾀다’라는 의미인데, “나가면 잘 된다. 젖과 꿀이 흐른다. 복된 자리다”라고 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따라 나가보니까 복된 자리가 있었습니까? 나가보니까 광야, 먹을 것이 없는 곳, 물이 쓴 곳, 고생이 한정이 없는 곳입니다. 꾀임을 받아서 따라 나갔는데 가보니 광야였고 그곳에서 연단이 되었습니다. 잘될 줄 알고 나갔는데 죽을 지경을 당합니다.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이 사막만 있습니다. 그곳에서 연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세상과 짝하니까 성도를 꾀어서 광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하나님이 유인하시는 바람에 끌려 나갔는데, 가보니까 고생이 막심합니다. 죽을 지경입니다. 그곳에서 연단을 시키셔서 본 남편인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본 남편인 하나님께 돌아오면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은 연단시키십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는 길에, 환란, 궁핍, 고난, 대적 등, 많은 고난을 주십니다. 그러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고 나면 하나님 말씀대로 좋은 곳입니다.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 전에는 꼬임을 받아 나가 죽을 지경인 것입니다. 본 남편인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간음하는 여자를 회개해서 돌아오게 하려 하심입니다.

본문 5절에,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고 일하시는데, 시기하기까지 하십니다. 질투하는 하나님이신데, 세상과 짝하면 시기하고 질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고 짝하면 시기하셔서 가만히 안 두십니다.
세상을 보통으로 놓아두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욕심으로 취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것을 욕심으로 가져가는 것은 간음하는 여자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것입니다. 성령은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모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고 교통하라고 하시는데, 하나님과의 교통은 중지하고 세상과 교통하고 세상과 짝하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십니다.

3. 큰 은혜와 복을 받는 방법

겸손할 것

본문 6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의지할 것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합니다. 싸우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싸우고 다투지 말고 그 나라와 의만 구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복할 것

본문 7-8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하셨는데, 하나님 뜻이면 무조건 순복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디든지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데에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 하시면 죽어도 굶어도 가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 뜻이면 무조건 순복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할 것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는데,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마귀 일을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 시험에 들지 않고, 마귀의 충동에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이기지 피하면 더 따라옵니다.

심을철 목사님이, 마귀는 개와 같아서 도망가면 더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엎드리면, 달려들던 개가 도망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돌을 집어 들려고 엎드리는 것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돌로 자기를 칠까봐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를 피하면 계속 따라와 결국 물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마귀를 이기려면 피하지 말고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의 일을 많이 해주는데, 거짓이나 교만으로 마귀의 일을 합니다. 마귀의 특징은 거짓입니다. 그런 마귀 일을 해주지 말고, 대적하여 ‘사탄아 물러가라’하면서 이겨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마귀가 들어가서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마귀에게 속아 마귀의 일을 해주면 안 됩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마귀 일 하루 세 번만 해도 괜찮겠다”고 하셨는데, 불안한 마음이나 걱정하는 것, 분을 품는 마음이나, 혈기부리는 마음, 말다툼하는 것이나 언쟁 등이 다 마귀의 일입니다. 근심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귀가 와서 ‘근심해라. 근심해라’합니다. 마귀와 단짝이 되어서 근심하고 걱정하면 근심걱정에 빠집니다. 근심할 일이 생길 때에는 주께 맡기고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또 근심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또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맡기고 나가면 더 이상 근심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떻게 해 보려고 걱정을 하면 마귀에게 걸려든 것입니다. 근심을 대적해야 합니다. 근심걱정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 한가지인데, 결국 ‘죽을까봐’입니다. 그러니까 생명 내놓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라고 했습니다. 이생에서의 하루가 짧아지면 내생의 하루가 길어지는 것인데, 자녀들의 생명도 자신의 생명도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뱀이 하와를 속일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참으로’라고 한 말이 틀린 것입니다. 이 때에 하와가 사탄이 들어온 것을 알고 ‘사탄아 물러가라’했다면 마귀를 이겼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온 것도 모르고 마귀와 대화를 하는 중에, 결국 속고 말았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
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고 했습니다. 선의 반대는 악인데,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선이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악이라고 판단하십니다. 뱀은 ‘너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것은 선,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악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환영하는 것은 선, 자기를 반대하는 것은 악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맞는 것은 선이고 하나님께 맞지 않는 것은 악인데, 자기가 기준이 되는 것을 보니 이것이 하나님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 정도 되면 말 다한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가 역사하여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 십자가가 필요하다”라고 하고, 교만하라고 충동할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난 겸손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고 답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다 이기셨습니다. 절하는 것은 신앙을 양보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절하지 않으시고 다 이기셨습니다. 항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데(벧전 5:8), 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것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루 2시간 이상 기도하고, 성경을 하루 10장 이상 읽으라고 신학생들에게 시키는데, 직장인들도 아무리 바빠도 성경을 하루 3장 이상은 읽어야 합니다. 밥은 세끼 먹으면서 성경은 왜 하루 3장 못 읽습니까? 성경을 하루 3장 안 읽는 사람은 밥 세끼도 먹지 마십시오. 엎드리는 시간, 사모하는 시간, 은밀한 시간, 바위 틈 낭떠러지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점점 가까워져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자기를 통해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 4:8-9)”라고 했습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에서 ‘손’은 행동을 가르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했는데 손을 깨끗이 하라는 것은 행동을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두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인 두 마음인데,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따라와야지,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면, 세상 것은 뒤로 따라옵니다. 세상 것은 뒤돌아서서 잡을 것이 아닙니다. 돌아서서 세상 것을 잡으려고 하면, 세상 것이 달아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따라가면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세상이 나를 보고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따라오게 됩니다.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세상을 잡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세상이 나로부터 달아나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세상은 손을 뒤로 내밀어 세상을 잡으면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순복하면 이렇게 세상 것이 다 따라 오고, 우리는 “재미 좋습니다”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날마다 우리에게 와서 마귀 일을 하도록 유혹하면서, ‘네가 제일이다’라며 거짓말합니다. 거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믿는 일을 바로 하고 주 앞에서 낮출 것

본문 9절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고 했습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애통할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세상과 짝하면서 믿는 일 제대로 안 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지 않고 세상 것으로 웃는 사람들은 얼마 안 가서 애통과 비참한 일이 오는데, 이것을 알고 믿는 일을 잘 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우리는 믿는 일에 부요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는 일에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오락이나 운동구경하는 것에 집중하면 안됩니다. 세상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잘 쓰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쓰지 않습니다. 믿는 일 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애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6:24-26절에,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믿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안하고 세상과 짝하고 나가며 하나님을 본 남편으로 삼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세상 나라를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가는 이스라엘을 세상과 짝하지 못하게 가시로 막았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개유(開諭)하여 들로 내몰아 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것은 굉장해 보이나 막상 이루고 나면 고난이 더 많습니다. 무언가 이루고 나서 이제 되었다고 생각했다가 더 죽을 고생이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내 것은 다 주의 것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주의 것이 다 내 것이 됩니다. 우리의 것을 다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으면,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이 됩니다.

4. 피차 비방하지 말라

본문 11-12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했습니다.

비방과 판단이 왜 나옵니까? 세상과 짝하는 교인이 생기고 세상과 짝하지 않는 교인이 생깁니다. 세상과 짝하는 교회가 생기면 세상과 짝하지 않는 교회가 생깁니다. 세상을 끌어들이는 교회가 생기면 세상을 안 끌어들이는 교회가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비방하게 됩니다. 세상과 짝하는 교회는 세상과 짝하지 않는 교회를 비방하고, 세상과 짝하지 않는 교회는 세상과 짝하는 교회를 비방합니다.

오늘날 말세가 되어서, 유브라데 강이 말라서 세상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세상 오락과 향락과 놀이판, 세상 곡조와 춤추는 것들이 다 들어왔습니다. 오늘날 속이 다 비치는 얇은 옷을 입고 예배당 강단에 올라가서 춤추는 Worship Dance가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춤추며 예배드린다는 것인데, 이것을 많은 교회가 좋아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음란 방탕 육체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다는 사람들은 우리를 지적합니다. 비방하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신사 참배했던 목사들은 신사 참배 안한 목사들을 비방하고, 신사 참배하지 않은 목사들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신사 참배한 것을 회개하라고 지적했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잘못된 교회에는 나가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죽은 어머니 젖을 빨면 젖이 아닌 피가 나오는 것이라고 하시며, 신사 참배한 교회 즉 죽은피가 나오는 교회에는 나가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최권능 목사가 진짜인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이 들어오면 넘어가는 교인이 있고, 안 넘어가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비방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시험에 넘어가는 교회가 있고, 안 넘어가는 교회가 있는데, 우리는 세상의 시험에 넘어가는 교회를 비방하기보다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세상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 4:12)”고 했는데, 우리는 이웃을 판단하지 말고, 성경 따라가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지적해야 합니다.

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야고보서 3:1-18 말에 허물이 없는 자가 될 것.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말에 허물이 없는 자가 될 것
야고보서 3:1-18

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4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5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11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12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13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15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18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3:1 나의 형제들아,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마라.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기 때문이다. 말에 실수가 없다면, 그는 온몸도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자이다. 

3:3 우리가 말들을 순종하게 하려고 그 입에 재갈을 물려서 그 온몸을 끌고간다. 

3:4 보아라, 그렇게 큰 배들이 강풍에 밀려가지만, 사공은 지극히 작은 키로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간다. 

3:5 이처럼 혀도 작은 지체이지만 큰 것을 자랑한다. 보아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큰 나무를 태우는가. 

3:6 그 혀는 불이며, 불의의 세계이다. 그혀는 우리 지체 안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인생의 바퀴를 불사르니, 지옥불에 의하여 불살라진다. 

3:7 온갖 종류의 짐승과 새와 파충류와 해양 생물은 사람에게 길들여지며 또 길들여져 왔으나, 

3:8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으니, 억제할 수 없는 악이고,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3:9 그것으로 우리가 주님과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하니, 

3: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온다. 나의 형제들아, 이래서는 안 된다. 

3:11 샘이 어찌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3:12 나의 형제들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낼 수 없다. 

3:13 너희 가운데 지혜롭고 총명한 자가 누구냐? 그는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자신의 행위를 보여라. 

3:14 너희 마음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자랑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마라. 

3:15 이런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이고 육신적이며 악령과 같은 것이다.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다. 

3: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으로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위선이 없다. 

3:18 의의 열매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 화평으로 씨를 뿌려 거두는 것이다.


1. 가르치는 일은 하나님 앞에 책임져야 함

본문 1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2:47-48절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고 하였고, 마가복음 9:42절에,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선생 된 사람이 잘못 가르쳐서 소자 하나라도 범죄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하였습니다. 
지도자가 잘못 가르치게 되면 그 책임이 그 지도자에게 있습니다. 바르게 가르쳐야 하나님께 상급이 있지, 잘못 가르치면 여러 사람이 다 잘못됩니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잘못된 데 대한 심판은 잘못 가르친 사람이 다 받아야 합니다. 심판이 큽니다. “선생 된 우리는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씀처럼 확실한 것만 가르쳐야 합니다. 확실한 참된 진리만 가르쳐야 되고 참된 진리가 아닌 것을 가르치면 심판이 상당히 큰 줄 알아야 합니다. 잘못 된 말을 들은 사람이 그대로 하면 전부 잘못되기 때문에 그 잘못된 것에 대한 심판은 잘못 가르친 그 사람이 받습니다.

야고보서 1:19-20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라는 것은 모든 것을 속히 배우라는 말입니다. 말하기를 더디하라는 것은 입으로 발설하는 것은 조금 있다가 하라는 것입니다. 한번 발설해 놓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한번 발설하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듣는 것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괜찮지만 자기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확실한 것과 진리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라도 잘못 가르치면 그 심판을 전부 잘못 가르친 사람이 받게 됩니다.

2. 말에 허물이 없는 자가 될 것

본문 2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라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가 있으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잠언 10:19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 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말에 실수
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려면 마음이 바로 되고 생각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속에 바른 지식을 못 가졌는데 어떻게 말에 실수가 없겠습니까?
말에 실수가 있으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못 됩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려면 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바른 진리를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바른 진리를 배운 대로 말하니까 그 사람은 말에 실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교리를 배워서 말하니까 말에 실수가 있고 가다가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배우고, 바른 교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어야 온전한 사람이 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본문 3절에,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말이나 소를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을 물려서 온 몸을 끌고 갑니다. 소는 코를 꾀어 끌고 가고 말은 재갈을 물려서 끌고 가야만 말을 듣습니다. ‘온 몸도 굴레 씌운다’ 고 했는데, 말을 재갈을 물려서 끌고 가야 순종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려 입을 멋대로 놀리지 못하게 하고, 참된 진리대로만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입에다 재갈 물리는
생활은 말을 안 하는 것입니다. 말을 안 하는 생활, 꼭 필요한 말만 하고 필요하지 않은 말은 안 하는 것이 입에 재갈 물리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입에 재갈 물리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자기 몸이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입에 재갈 물리지 못하면 그만 바른 길을 걸어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말 하는 대로 됩니다. 사람은 말 하는 대로 되고, 또 된 대로 말합니다. 허튼 말을 하면 무슨 사람이 됩니까? 허튼 사람이 되고 거짓말 하면 또 무슨 사람이 됩니까? 거짓된 사람이 됩니다. 또 방탕한 말을 하면 방탕한 사람이 되고 음란한 말을 하면 음란한 사람이 되는데, 이렇게 말 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되는 대로 말하는 사람, 허튼 소리만 하는 사람은 허튼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농담도 허튼 농담은 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허튼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것을 자꾸 얘기하면 거짓된 사람이 되고 그 말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하고 필요한 말만 하고 입에 재갈을 물려서 자기 몸을 바른 데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4절에,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배를 보라고 했습니다. 바다에 큰 배가 있는데 그 배가 광풍에 밀려가는 것을, 사공이 지극히 작은 키로 그 배를 자기 뜻대로 운전한다고 했습니다. 사공이 지극히 작은 키로 그 배를 이리로 가려고 하면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려면 하면 저리로 갈 수 있도록 자기 뜻대로 운전한다는 말입니다. 큰 배에 비하면 키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동
이면 동으로, 서쪽이면 서쪽으로 운전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혀도 우리 온 몸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지체지만 그 혀를 가지고 몸 전체를 운전해서 바르게 갈 수도 있고 또 잘 못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혀가 중요합니다. 구렁텅이로 빠져서 망하게 할 수도 있고, 또 바르게 갈 수도 있도록 혀가 자기를 운전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앞길이 혀로서 잘 될 수도 있고 망칠수도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로 큰 것을 움직입니다. 말에 허물이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
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말한대로 하나님 심판대 앞에 가서 판단 받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라고 했습니다. 혀가 불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냥 한 개비가 많은 나무를 태울 수 있습니다. 성냥 한 개비의 불을 놓으면 많은 나무를 사르는 것과 같이 우리 혀가 불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 성냥 한 개비로 밥 짓는 나무에 불을 붙여놓으면 밥을 잘 지을 수 있습니다. 또 태우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수가 있습니다. 성냥 한 개비의 불이 작은 불이지만,
이것으로 많은 것을 다 태워 없앨 수 있고, 또 이것을 잘 사용하면 밥도 짓고, 떡도 하고, 또 다른 것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금도 연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이 작은 것이라도 큰 것을 이루어놓는다는 말입니다. 망하게 할 수도 있고 잘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와 같이 불과 같은 우리 혀를 가지고 잘 쓰면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 불로 금을 연단하여 금 그릇도 만들 수 있고, 다른 여러 그릇도 만들 수 있습니다. 불로 사기그릇, 질그릇 같은 것도 만들 수 있
는가 하면, 집에 불을 놓아 집을 모두 불태울 수도 있습니다. 혀를 잘 사용하면 귀한 것을 만들 수 있고, 혀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망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2:33-37절에,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말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람은 말한 대로 됩니다. 그리고 된 대로 말합니다. 사람이 선한 말을 하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한 말을 하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는 사람은 불평분자가 되고 맙니다. 선한 말을 하면 사람이 선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한 대로 심판도 받지만 우리가 말한 대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이 중요하기 때문에 남을 정죄하는 말, 깎아내리는 말, 남에게 손해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와 목사에게 손해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능하면 선한 말로 해주어야 합니다.

감정이 있으면 서로 감정을 풀고 좋은 관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감정이 있다고 싹 돌려놓고 자기와 친한 사람과만 상대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그 사람의 세계가 좁아진 것입니다. 자기의 세계가 넓어져야 되겠는데 말 안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 안하는 사람을 만들어 놓고 돌려놓으면 그만큼 점점 좁아져서 마지막에는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넓혀 나가야 합니다. 자기 세계를 넓혀나가려면 가깝지 않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과 좋아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넓어지고, 넓어져야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좁아지면 마지막에는 자기 설 자리도 없어집니다. 남에게 정죄하고 시원치 않다고 하고 다 돌려놓고 하면, 결국 자기가 왕따 당하고 사람들도 싫어하게 됩니다. 그렇게 남에게 시원치 않다고 하다가는 나중엔 자기가 시원치 않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부터 고쳐야 합니다.

말부터 선한 말을 하고 입에다가 재갈을 먹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마음대로 못하게 해야 합니다. 키를 돌려서 바른대로 가게 해야 합니다. 키를 잘못 돌려놓으면 배가 딴대로 갑니다. 혀는 배의 키와 같고, 말의 재갈과 같고, 불과 같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것입니다.
혀를 잘못 놀리는 사람은 앞으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말, 위로해주는 말, 도와주는 말, 용서해주는 말, 화목하는 말, 긍휼히 여기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안하고 속에 있는 말을 톡톡 다 내 쏘아가지고 남을 정죄하면, 나중에는 자기가 정죄를 받습니다.
다른 사람을 좋지 않게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사랑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본문 6절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혀를 잘못 사용하면 불의의 세계가 된다는 말입니다. 혀가 육신의 그 부패성에게 이용되면 몸을 더럽힌다는 말입니다. 또한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는 것입니다.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는 것은 자기 생명의 앞길을 다 망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난다고 했는데, 마지막에는 지옥불과 같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되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혀의 사용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혀를 부리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육신의 부패성인 욕심에 의해서 혀를 놀리면 지옥 불에서 나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에 의해서 혀가 사용되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혀를 욕심대로, 자기의 감정대로, 생각 없이 그저 움직이면 자기 생의 바퀴를 불사르고 다 망쳐놓고 지옥불과 같은 고통을 나중에는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혀를 잘못 놀리면 안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말을 툭툭 내뱉는 사람이 있는데 참으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사람 말을 저 사람에게 하고 저 사람 말을 이 사람에게 가서 하고, 이 집 얘기를 저 집에 가서 하고 또 저 집 얘기를 이 집에 가서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마귀의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이리 저리 말 옮기고 다니는 것, 그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말 안하는 게 낫습니다. 들었으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말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 하나 들었다싶으면 신이 나서 말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일로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몇 사람에게 옮겨가는 동안에 이상하게 변하여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합니다.

말 안하는 사람이 되어야 믿음을 조금 지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잘 하는 것은 은이고, 말 안하는 것은 금이라고 합니다. 또한, “소에게 한 말은 안 나도 어머니에게 한 말은 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소는 말을 할 줄 모르므로 말이 나가지 않지만 어머니에게 말한 비밀도 일단 발설하면 말이 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황희 정승이 너무 말이 많이 돌아가기 때문에 ‘얼마나 빨리 돌아가나 보자’하고 밤에 잘 때에 자기 부인에게 귀속말로 임금님 머리에서 금새가 나온다
고 조용히 말했답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지 않아서 임금님이 부르더랍니다. 금새가 어떻게 나오느냐고 임금님이 물어 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너무 빨리 돌아가기 때문에 과연 얼마나 빨리 말이 돌아가나 시험하려고 자기 처에게 밤에 귓속에 대고 한 마디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는 말까지도 같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말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고 했답니다. 말을 한 번 말하면 그게 돌아가는 것이 정상 같고 오히려 안 돌아가는 것이 참 특별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돌아가서는 안 될 말은 아예 안 해야 합니다. 한 사람에게 말하면 그게 또 다른 데로 간다는 말입니다. ‘당신에게만 말하는 것이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오’라고 하면 들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야, 너에게만 말한다. 이거 말하지
마라’ 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을 재갈을 물려서 꼭 해야 될 말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하는 것에 힘을 써야겠습니다.

잠언 26:20-23절에,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쟁이가 어디서 한 마디 얻어 듣고, 좋은 소식이건, 나쁜 소식이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얘기하여 분쟁만 일으키는데, 그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쉰다는 말입니다.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고 했는데 말쟁이는 이 사람에게 가서 불붙여 놓고, 불붙는 나무 위에다 나무를 놓고 숯불 위에다가 숯 놓는 것처럼 자꾸 시비를 더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 가느니라’고 말씀했는데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말을 하면 별식 먹는 것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까지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또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고 했는데, 이러한 말쟁이, 그리고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본문 7~8절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 해물은 다 길들일 수 있지만 혀는 길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독한 말이 나오는데 누가 길들이겠습니까? 독한 말이 나오면 자기가 무슨 사람이 된 거라고 했습니까? 독한사람이 된 것입니다. 자꾸 망하는 말을 하면 자기가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망하게됩니다. 그러니까 독한 말 하지 말고 악한 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해독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욕을 해도 듣는 사람은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됩니다. 들어도 못 들은 체 하고 있으면 누가 손해죠? 욕한 사람이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니까 얼마나 손해입니까? 선한 사람 입에서는 욕이 안 나옵니다. 별 소리 다 해도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의로 심판 하시는 하나님이 앞으로 다 심판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3:13-14절에는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는 했는데, 사람의 입이 이렇게 악하다는 말입니다.

본문 9절에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혀입니다. 혀로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사람에게 저주하면 안되겠습니다. 사람을 지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곧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12가지인데, 
비공유적 속성으로 
첫째는 영원자존성(독립성), 둘째는 불변성, 셋째는 무한성, 넷째는 단순성, 
공유적 속성으로 지혜, 지식, 선, 의, 거룩, 사랑, 진실, 능력이 그것입니다. 열 두 가지 속성대로 사람을 지어서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닮아 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 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 성품을 우리에게 줬다고 했으니까 우리에게 이러한 성품이 있는 걸 믿어야 합니다. 안 준 것을 왜 줬다고 했겠습니까. 또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는데 하나님의 형상 12가지 가운데 공유적 속성 8가지만 있고 나머지 비공유적 속성 4가지는 없기 때문에 삼분의 이는 닮아 갈 수 있고, 삼분의 일은 못 닮아 간다고 하는 것은 성경 전체에 안 맞습니다. 하나님은 영원자존자인데 우리는 영원자존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한데 우리는 우주에 충만한 자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인데 우리는 절대자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걸 닮아 갈 수 있는 성격을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다고 하여 다 무시하면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 받습니다. 하나님 같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줘서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억지로 진리를 왜곡 시키려고 하면 하나님께 가서 심판 받게 됩니다.

본문 10~11절에,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라고 했습니다. 한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옵니다. 또 단물과 쓴물이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옵니다. 누구 입에서? 우리 입에서 나옵니다. 찬송 부를 때는 신성한 단 물이 나오는데 집에 가서 “죽여라 죽여라”하고 싸울 때는 할 때는 쓴물이 나옵니다. 샘이 한군데서 쓴물이 나왔다 단물이 나왔다 한다는 것입니다. 단물이 나올 때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좋은 세상이 없는 것입니다. 좋은 말만 하고 찬송만 하고 은혜로운 말만 하고 참 좋은데, 쓴물이 나올 때는 남을 죽이고 못 살게 하는 것입니다. 독사의 독이 나와서 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그 나무대로 열매 맺는 것처럼 속을 온전케 해야만 온전한 말을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온전해져야 온전한 말을 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야 선한 말을 하고 마음의 선을 쌓아야 그 속에서 선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6:43-45절에,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했는데 마음속에 있는 대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악을 쌓은 사람은 악한 말이 나오고 속에 선을 쌓은 사람은 선한 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사람은 영에 속한 말을 하고 욕심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육신 중심의 말이 나옵니다. 악한 말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2:35-37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는데 말한 대로 이제 심판하십니다. 한 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심판받을 만한 말,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말은 안해야 합니다.

유다서 1:15절에,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치 않은 행동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또 경건치 않은 일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건치 않은 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경건치 않은 일, 경건치 않은 행동, 경건치 않은 말,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다음에 심판 받을 줄 알고 언제나 우리가 말에 허물이 없는 사람 되어야겠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교인들의 말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람 말을 저 사람에게 돌리고, 저 사람 말을 이 사람에게 돌리고, 또 여전도사들이나 집사들도 심방 갔다 오면서 그 집의 말을 다른 곳에 하지 말아야합니다. 여전도사들이 심방 갔다 나오는 길에, “그 집 아들은 어떻고, 어디는 어떻고 하는 이야기 하는 것을 그 동네사람이 듣고 그 집에 가서 일러줍니다. 아까 교회에서 왔던 사람들이 나가면서 이 집이 어떻고, 이 집 아들이 어떻고 하더라고 하면 시험만 들게 하는 것입니다. 아예 말 안하는 게 좋습니다. 어느 집에 심방 가서도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도리어 손해 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방 가서 필요한 말만 하고 필요 없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또 다른 사
람 말은 안 해야 합니다. 왜 다른 사람에 대해 말을 합니까? 말을 해서 손해 주는 것이 마귀 역사입니다. 또 더욱이 교역자에 대한 말은 안 해야 합니다. 교역자에 대해 말 하면 그 사람 은혜 못 받습니다.

은혜 못 받으면 그 사람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말도 기도하자, 우리가 믿는 일 잘해야겠다, 또는 봉사하자 라는 말,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은 좋지만 교회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교회에 대해서 좋지 않은 얘기를 돌리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벌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돌리지 마십시오. 또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모함하면 그 사람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12:37절에,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에 재갈 물리고 말 안하는 사람이 되고 필요한 말만 하고 필요 없는 말은 안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또한 말은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 속 사람을 잘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하늘로부터 온 지혜를 받아서 살아갈 것

본문 13-15절에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쓴물이 나올 때는 세상적이요 마귀적이요 정욕적인 신앙입니다. 독한 시기가 나오고 다툼이 나오고 한입에서 자랑하는 말이 나오고 거짓말이 나옵니다. 예수 믿는 신자 중에도 이처럼 마귀 노릇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자랑 하는 것도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입니다. 자기자랑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자기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뭘 했다고 해도 하나님 은혜로 한 것이고 무익한 종이라고 해야지, 자기가 뭘 잘했다고 자랑을 하겠습니까? 어떤 목사는 척 나서면 자기자랑 한다고 합니다. 자기자랑 자꾸 하면 남이 잘 알아 줄 것 같지만, 듣는 사람들이 “저건 벌써 틀렸다”고 하고, ‘예수만 자랑하라고 했는데 네 자랑하고 돌아다니느냐?’고 하나님께서도 틀렸다고 하시니까 절대 자기 자랑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기와 다툼으로 예수 믿는 사람, 자기자랑으로 예수 믿는 목사, 진리를
거스르고 거짓말 하는 교인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임에도 단물과 쓴물을 내고 찬송과 저주를 하고 또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면 그 사람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성도와 목사입니다. 마귀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교회도 마귀의 인도를 받는 교회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사탄의 회가 있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탄의 회가 있습니다. 믿음에 설 때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가 되고, 믿음을 떠날 때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으로 사탄의 인도를 받는 교회가 됩니다. 확실합니다. 시기와 다툼이 성령이 하는 것입니까? 싸우고 다투고 시기하는 것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교회입니다. 시기하고 다투고 자랑하고 진리를 거스르고 거짓말하는 것이 사탄의 회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단물이 나왔다가 쓴물이 나왔다가 선한 게 나왔다가 악한 게 나왔다가 무화과나무 열매 나왔다가 가시나무 열매 나왔다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령은 이렇게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위에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닙니다.

본문 16-17절에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아래로부터 난 지혜는 다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입니다. 남을 깎아 내리고 제가 이기려고 하고 올라가려고 하고 자기만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모두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입니다. 단물도 냈다가 쓴물도 내고 또 찬송도 하다가 저주도 하고 그러는 것 모두 위에서부터 난 지혜가 아닙니다. 다 땅에 속한 지혜입니다. 참된 성도는 위로부터 온 지혜를 받아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로부터, 성령으로부터, 위로부터 온 지혜를 받아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무엇입니까? 성결입니다. 싸우고 다투지 않습니다. 화평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마음이 평안합니다. 모든 사람을 다 관용해 나갑니다. 양순합니다. 긍휼과 선한열매가 가득하며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본문 13절에,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고 했는데, 위로부터 온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는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고 행한다는 것입니다. 싸우고 다투지 않으며,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행하면 얼마나 평안합니까?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고 관용하게 됩니다. 양순합니다. 온유합니다. 즉, 온순하다는 것입니다. 또 긍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선한열매가 가득하고 편벽이 없고 거짓이 없습니다. 그러면 시원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서 행하니까 시원합니다. 위로부터 온 지혜와 총명을 받으니까 시원합니다. 성결하니까 마음이 시원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남하고 싸우고 다투지 않습니다. 다투자고 해도 안 다투는 것입니다. 그저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만 받아서 말씀대로 순종만 하는 것이지 다툴 생각은 없습니다. ‘해먹으려면 해먹어라 나는 말씀을 지킨다’ 하며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가득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되게 행하지 않습니다. 자기 고향사람 끼리끼리 돌아가지 않습니다. 한국은 고향사람 끼리끼리 돌아가는 버릇이 있는데 그것도 악한 열매입니다. 선한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룩해진 사람이 다 화평해야지 자기 고향사람끼리 소곤소곤 하고 돌아가는 게 악한열매 아닙니까? 쓴물 아닙니까? 편벽이 없어야 됩니다. 헬라 사람이나 유다사람이나 야만이나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는 국경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민족이 없습니다. 예수의 피로 중생한 사람은 하나입니다.

본문 18절에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화평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마음이 성결하고 사욕이 없습니다. 욕심이 없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를 받았는데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거룩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마음만 가져도 벌써 하늘나라의 시온산 바람이 솔솔 불어옵니다. 시원해집니다. 그리고 화평합니다. 시기분쟁이 없습니다. 그저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 받아서 순종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 나가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룹니다.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일만 가득하고 편벽이 없습니다. 거짓이 없고 진실하고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는 교회, 화평이 많은 가정, 언제나 화평이 넘치는 심령들은 하늘로부터 온 지혜를 받아서 살아 간 결과입니다. 거룩하고 화평한 심령 얼마나 좋습니까? 얼굴도 화평하고 마음도 화평하고 다 화평합니다.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다 화평합니다.

야고보서 2:14-26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
야고보서 2:14-26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아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5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14 나의 형제들아, 만일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2:16 너희 가운데 누가 그들에게 "평안히 가라.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여라." 하고 말만하고 그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2:17 이와 같이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2:18 어떤 이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러면 나도 나의 행함으로 믿음을 네게 보이겠다." 라고 할 것이다. 

2:19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네가 믿느냐? 잘하는 일이다. 악령들도 믿고 떤다. 

2:20 허황된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익하다는 것을 네가 알고자하느냐?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지 않았느냐? 

2:22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 것을 네가 안다. 

2:23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하신 성경이 성취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었다. 

2:24 너희가 아는 대로,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다. 

2:25 이와 같이 기생 라합도 사자들을 영접하고 다른 길로 가게 하였을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았느냐? 

2: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다.


1. 믿는다 하며 행함이 없으면 구원을 이룰 수 없음

본문 14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고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합니다. 속에 생명 있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아무리 다녀도 그런 사람은 행함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원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습니다. 한 분인 줄을 믿습니다.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만 믿고 그 다음은 행하지를 못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 못 받고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마귀 즉 사탄의 믿음이고 귀신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서 영이 중생한 사람인데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긴 믿는데 행함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했는데 자기 구원을 이루어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행하지 않으면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유익을 받지 못합니다.

2.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임

본문 15-18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먹을 것이 없이 헐벗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보고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면서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자체가 죽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 있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 긍휼이 나올 것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나올 것이고, 그 사람에게 얼마라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면 어떻게 안 줄 수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봐도 못 본체하고, 주지 않고, “더웁게 하라 평안히 가라”하면 속에 생명이 없는 증거입니다.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없는 것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속에 생명의 역사는,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나옵니다. 또한 행함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도 안 나오는 것을 보니까 자체가 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속에 하나님의 긍휼이 있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긍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안 나오는 걸 보니까 속에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없는걸 보니까 생명의 역사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체가 죽었고, 죽었기 때문에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행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행함이 없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고, 죽었기 때문에 행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걸 보니까 죽은 증거입니다. 숨 쉬지 못하면 죽은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숨을 쉬지 못합니다. 숨을 쉬지 못해서 죽은 게 아닙니다. 죽었기 때문에 숨을 못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안나오는 것이고 그 자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7-18절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했습니다. 김현봉 목사님 말씀에 사람이 믿으면 행함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양잿물 먹고 죽는 줄 알면 안 먹습니다. 양잿물을 먹게 되면 죽기 때문에 때려도 안 먹고 내 쫓겨도 안 먹는 것입니다. 죽으면 무얼 하겠습니까?

그와 같이 확신 있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안할 것은 안 하게 됩니다. 옳은 것은 반드시하고 아닌 것은 절대 안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런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하고 그러면 안 해야 할 것은 안 합니다. 옳은 것은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죽은 믿음은 행함 없기에 감흥과 역사가 없습니다.

3. 행함이 없는 것은 귀신의 신앙임

본문 19절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귀신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한 분이신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습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줄을 믿습니다. 말씀에 귀신도 믿는다고 했으니까 믿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귀신에게 이 다섯 가지 믿음이 있어도, 문제는 행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하나님을 믿지만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복음을 생명으로 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함이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마귀와 사탄, 귀신이 가진, 다섯 가지 신앙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행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서 생명으로 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믿긴 하지만 심령 속 깊이 생명의 복음을 받아서 생명으로 삼지 못하고 행함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가 귀신에게는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행함이 없으면 귀신이 믿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 귀신의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에게 속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3:15절에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라고 했는데,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신앙입니다. 또 야고보서 3:14절에는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고 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시기와 다툼이 있고, 또 자기 자랑이나 하고 진리를 거슬려 거짓말하면 안 되겠습니다. 신앙은 신앙인데 마귀의 인도를 받는 신앙이 ‘세상에서 온 것이라, 정욕적으로 보낸 것이라, 육신 중심의 신앙이라, 자기 중심의 신앙이라, 사탄의 인도를 받는 신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귀신의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을 받아서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살아야 합니다. 자기속에서 이 복음을 즐거움으로 받고, 그 복음을 생명으로 삼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즐거움이 있고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행하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가 없으면 그것은 귀신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까닥하다가는 귀신의 신앙으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세상적인 신앙말입니다. 세상에 속한 신자, 정욕적인 신자, 마귀의 인도를 받는 신자말입니다. 신자가 마귀의 인도를 받습니까? 받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 하시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마귀의 인도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의 신앙은 마귀적이고, 정욕적이고, 세상적이었습니다. 마귀에게 속한 신앙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의 신앙에 얽매이지 말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항상 복음을 받아서 즐거워하며 생명으로 삼고, 그 다음에 행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는 왜 행하지 못합니까? 마귀 신앙은 왜 거기까지 나가고 못올라갑니까?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서 즐거워하며 행하면 되겠는데 왜 안 받습니까? 허락이 없어서 못 받는 것입니다. 허락이 있으면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마귀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아무리 받으려 해도 못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만 주셨습니다. 그런데 자녀들,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이 이 복음의 떡을 주셨는데,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먹으면 되고 행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것을 한 상을 받았습니다. 마귀는 아무리 받으려 해도 하나님께서 주시질 않으니 못 받습니다. 또 행하려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있어야 행하지 않겠습니까? 마귀는 그저 자기 행할 것 즉, 하나님을 방해하고 구원 운동을 방해하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귀신이 돼지에게 들어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귀신들도 예수님께 순종해야 하는데 가만있다가 쫓겨나면 안 되겠으니까 돼지에게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라’하시니 귀신들이 돼지에게 다 들어가서 돼지 이천 마리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처럼 귀신들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따라서 지식적으로 여기까지만 믿는 성도는 귀신의 신앙을 소유한 것입니다. 이제 한걸음 더 들어가고 귀신의 손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복음을 생명으로 받아서 생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즉, 생명의 역사가 있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귀신이 못 하는 것입니다. 하려고 해도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성도의 첫번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복음을 생명의 복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 복음이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이 복음으로 위로를 받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고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행해야 합니다! 귀신은 행하지 못합니다. 행하지 못하는 것은 귀신의 신앙입니다. 행하여야만 참된 성도의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17절에 보면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는데, 행함이 없으니까 죽은 것이 아니고, 죽었으니까 행함이 없다고 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것을 보니까 이미 죽어 있다는 말입니다. 나무에 잎사귀가 안 나오는 것을 보니까 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것입니다. 잎사귀가 안 나왔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잎사귀가 안 난 것이라는 말입니다. 숨을 못 쉬니까 죽은 것이 아
니라 죽었기 때문에 숨을 못 쉬는 것입니다.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자체가 종의 생명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행함이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4.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

아브라함의 신앙

본문 20-23절에, “아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드리려고 했을 때, 하나
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5-6절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전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말씀을 아브라함이 믿으니,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 뒤에 네 아들 이삭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번성할 것이라고 하셨을 때에도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말씀을 믿었고, 두 번째는 이삭을 통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는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신 뒤에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삭을 죽이라는 명령은, 이삭을 통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다른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것도 믿어서 이삭을 번제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바쳐도 나중에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려서 이삭을 통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겠다는 약속을 이뤄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습니다”하면서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삭을 죽인다고 해도 이 약속을 이뤄주실 것을 아브라함은 믿은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결과가 “행함”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이삭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는데, 믿고 행한 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확실히 믿으면 아브라함과 같은 이러한 행함이 나옵니다.

기생 라합의 신앙

본문 24-25절에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기생 라합도 정탐꾼을 지붕에 숨겨두는 행함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했는데, 라합이 어떻게 믿었습니까?

여호수아 2:9-12절에,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고 했습니다.

정탐꾼을 숨겨 준 것은 행한 것입니다. 그것은 쉬운 것입니다. 믿었으니까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 천하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리고를 이스라엘백성에게 붙일 것이므로 여리고성은 망할 것이고,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 만나서 살 길을 물어 볼 기회가 생겼는데 안 숨겨주겠습니까? 숨겨준 것이 탄로 나면 죽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해주고 대접해 주면 하나님이 죽지 않게 해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은 쉽습니다. 믿음을 행하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믿지 않으니까 행하기 힘듭니다. 정탐꾼들을 숨겨줬다가 탄로 나면 자기가 죽을 것인데 어떻게 숨겨주겠습니까? 또 자기 백성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나 기생 라합이 믿었기에 정탐꾼들을 영접하고 숨겨주었고, 믿었으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어 본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망할텐데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어보자 정탐꾼들이 붉은 줄을 창에다 매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도시가 당장 망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행하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망하는데 구원 받을 도리를 찾아야 될 게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왔는데 그 기회를 어떻게 놓칠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좋은 길을 가르쳐 줄 것을 분명히 믿으니까 생명 내놓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믿음은 행함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장망성’ 즉, 장차 망할 성에
소망을 두지 않고 정탐꾼들을 숨겨주었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귀한 줄 알고 하나님의 사람을 생명 내 놓고 영접했고, 또 믿으니까 구원 받을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기만 하고 행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기생 라합이 상천하지(上天下地)의 하나님을 믿고 여리고성이 망할 것을 믿고,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인 것을 믿고, 정탐꾼들을 이스라엘의 사자라고 믿기만 하고 그들을 영접하지 않고 대접하지 않았으면 구원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믿은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었다고 하면 대접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여리고성이 진짜 망한다고 하면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망하는걸 아는데 왜 살길을 안 찾겠습니까? 짐승들도 지진이 날 걸 알면 며칠 전부터 달아난다고 합니다. 왜 달아날까요? 살려고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확실히 알면 행함이 나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이 여리고성과 같은 장망성인 것을 아니까 살 궁리를 하고 살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종에게 살길을 가르침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하면 살길이 생깁니다. 이것이 기생 라합의 신앙입니다. 그녀의 신앙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입니다.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저들에게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정탐꾼을 영접하고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큰 것입니다. 믿었기 때문에 행함이 나온 것입니다. 믿는 것이 절반이고 행하는 것이 절반이 되어 둘이 합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없으면 안 됩니다. 반쪽이 되면 안 됩니다. 참으로 믿었으면 행함이 나와야 하고, 행한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은 숨쉬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면 숨 쉬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영혼이 없습니까? 영혼이 없기 때문에 못 쉽니까? 영혼이 없기 때문에 못 쉬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다고 하면 반드시 행함이 나오는데 행함이 안 나오는 것을 보니까 생명이 없고 영혼이 없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산 믿음은 반드시 생명의 역사가 나옵니다. 언제나 산 믿음, 말씀을 생명으로 받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 끊으라면 끊고 이기라면 이기고 가라면 가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게 행함입니다.

야고보서 2:1-13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야고보서 2:1-13

1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2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4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6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8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10누
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1.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아야 할 이유

영광의 주를 믿는 믿음을 받았으므로

본문 1절에,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영광의 주를 믿는 믿음을 받았으니까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취하여야 되겠는가? 영광의 주님을 믿는 믿음을 받았으니, 믿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서 거룩하게 만든 사람들이므로 거룩한 사람으로 대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일에 쓰시는 종으로 알고 대해야 됩니다. 우리가 다 종입니다. 다 하나님의 사람이고 종입니다. 믿는 사람을 대할 때에 그저 사람만 보지 말고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사람으로 봐야 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에 “믿는 사람은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피 뿌림을 얻기 위해서 택하심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서 거룩하게 만든 사람이고,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가운데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고전 3:16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거룩합니다. 피로 값 주고 샀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쓰는 심부름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들로 성도를 대해야 됩니다. 성도를 대할 때 외모를 보고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자다, 가난한 사람이다. 인물이 잘 생겼다, 못생겼다. 젊은 사람이다, 노인이다’ 이렇게 구별하면 안 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샀고, 거룩해져서 거룩한 자이고, 또한 하나님의 성전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인을 멸시하면 안 됩니다. 노인이나 젊은 사람이나 잘생긴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화장 잘하고 온 사람이나 안 하고 온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냄새나는 사람도 있는데, 냄새나는 사람도 냄새만 맡고 더럽다 하지말고, 그 사람도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사람이다. 거룩해진 자이다. 성전이다”라고 대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이다”그렇게 알고 취급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냄새나지 않도록 하고 다녀야 합니다. 좀 자주 세탁을 하고, 목욕도 자주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 근처에 오면 냄새 안 나게 하고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향수 뿌리고 다닙니다. 그러나 향수 뿌리고 다닌다고 뭐 더 알아주는 것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에 무슨 향수 다 갖다 뿌리고 다녀도 아름다운 향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서 거룩해진 것과 하나님의 성전인 것, 하나님이 쓰는 종, 그것이 아름다운 향기지 무슨 세상 향수 좀 뿌리고 다닌다고 해서 그게 무슨 아름다운 향수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됩니다. 예수님 믿는 냄새,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만 진짜 향기입니다.

본문 2-4절에,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교회에 어떤 사람이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들어왔습니다. 또 한 사람은 더러운 옷을 입고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를 돌아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하고 좋은 자리로 인도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저희들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저희 끼리 외모를 보고 구별하여, 속은 못 보고,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것도 못 보고, 거룩해진 것도 못 보고, 하나님의 성전도 못 보고,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시는 것도 못 보고,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 된 것도 못 보고 그저 외모로만 취급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속사람을 보라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 속사람을 봐야지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그것은 죄입니다. 악한 생각을 가지고 저희끼리 구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택해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본문 5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택해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데 너는 어찌하여 가난한 자를 멸시하느냐는 말입니다. 약속하신 나라를 가난한 사람에게 유업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5절에,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일입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했습니다. 부자에게도 물론 복음을 전파하지만 그들은 잘 받지를 않습니다. 속에 부귀영화가 가득해서 복음이 안 들어가지만, 가난한 사람은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천국복음을 전하면 대개 단 마음으로 받고 그대로 믿게 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는데(마 19:23-24), 하나님의 복음은 가난하고 겸손한 자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고 부자는 알아주는데,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여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고 했듯이 부자가 믿음이 없고 핍박을 합니다.

본문 7절에,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고 했습니다. 부자는 믿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혹시 예수 믿고서 부자 되는 사람이 있으나 부자로써 믿는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모로 사람을 알아주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믿음은 안보고, 속사람은 안보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것은 안보고, 외모로만 알아주고 높여주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부자 하나가 들어오면 장로감이 들어왔다고들 합니다. 그러다가 한 육 개월 있으면 세례주고, 그 다음에 집사 세우고, 한 몇 년 있으면 장로로 세웁니다. 하여간 유명한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몇 년간 있으면 대개 다 장로로 세웁니다. 돈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오면 헌금을 많이 하기 때문에 예배당은 크게 지을 수 있지만, 돈 많은 것만 본다면 나중에 교회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헌금 많이 내서 예배당 짓는 것을 생각지 말고, 참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참 교회를 세우려면 장로를 세울 때에도 돈 많고 아름다운 옷 입은 권세 많은 것을 기준으로 하여 세우면 안 됩니다. 권세가 있든지 없든지,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그저 믿음하나만 보고 세워야 합니다. 신앙중심, 예수중심인 사람의 즉, 하나님께 대한 희생 봉사하는 것을 봐서 직분을 세워야 교회가 바로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부자를 표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을 표준으로 하는 교회가 되면 교회를 망치고 맙니다. 그 다음은 사탄의 회가 됩니다. 또 율법주의다 뭐다 해서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을 훼방하고 핍박을 하게 됩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라 하셨으므로

본문 8-9절에,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최고의 법입니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가 최고의 법인데, 이것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과 같이할 때에, 먼저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여 자기 몸과 생명과 재산과 마음을 전부 바치고, 그 다음에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그저 이웃사랑하면 안됩니다. 이웃사랑하기 전에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해서 자기 몸과 마음과 생명을 바치고 그 다음에 이웃사랑하기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
해야 됩니다. 이렇게 안하면 인본주의의 사랑이 되기 때문에 그만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사랑하다가 죄짓고, 사랑하다가 믿음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할 때에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고, 또 자기 몸과 마음과 생명과 재산과 일생을 바치고, 그 다음에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법입니다. 이렇게 해야 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 하고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그건 죄를 짓는 것이라서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하나가 됩니다. 사랑하는 말이나 행동이 나와야 합니다. 상대가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게 만들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줄 알게 인사도 친절히 하고, 부부간에도 서로 소가 닭 쳐다보듯 하지 말고 서로 말 한마디라도 사랑함으로 잘해주어야 합니다. 속에 있는 사랑을 나타내는데, 부자나 가난한 자에게나 오래된 신자나 초 신자나 다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치 말고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 주신 것을 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에 사람이 들어오면 어떤 사람은 대접을 잘하지만 어떤 사람은 대접을 안 해주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가 최고의 법이라고 하셨는데(막 12:31), 모든 사람을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처음 오는 사람을 본체만체 하지 말고 잘 대접해줘야겠습니다. 
창광교회에 처음 나온 노인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 교회 처음 나올 때에 상당히 기뻐했습니다. 감사해서 눈물을 다 흘리곤 하였습니다. 한 5-6개월을 나온 것 같은데 그러다가 안 나옵니다. 이유를 물으니 몇 달을 교회에 나와도 자기에게 친하게 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랍니다. 자기를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잘 찾아서 인사도 하고 대화도 했었다면 그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았을텐데, 우리가 서로 친하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인사하고 어울리니까 처음 온 사람들이 교회에서 차별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 나온 사람만 사랑해주는 것도 안 됩니다. 그러면 원래 있던 사람들이 시험들 수 있습니다. 다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2. 율법에서 하나를 범해도 다 범한 것임

본문 10-11절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됩니다. 계명이 모두 몇 개입니까? 열 개입니다. 그중에 한 가지를 범하면 다 법한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등, 열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 가운데 하나만 범해도 다 범한 자가 됩니다.

고리 열 개를 꿰어가지고 둥그렇게 만들어 놨다고 합시다. 그것을 못에 걸어놨는데 어느 고리든지 하나만 끊어지면 못에서 떨어집니다. 첫째가 끊어져도 떨어지고, 둘째가 끊어져도 떨어지고, 다섯째가 끊어져도 떨어지고, 일곱째가 끊어져도 떨어지고, 여덟째가 끊어져도 떨어지고, 이렇게 하나만 끊어지면 다 끊어집니다. 그러니까 십계명 지키다가 하나 범하면 다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기 위해서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자는 율법주의자입니다. 계명을 지키면 구원을 받고 계명을 못 지키면 지옥에 간다는 것은 율법주의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율법을 폐한다고 했습니까? ‘그럴 수 없느니라’고 했고, 도리어 율법을 굳게 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31절에,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으려고 율법을 지키는데, 믿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영의 법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두려워서 지옥 갈까봐 억지로 지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율법을 지키지만, 감사함으로 자유의 법으로 지키기 때문에 즐거움으로 자유스럽게 지킵니다. 억지로 쫓겨날까봐, 매 맞을까봐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율법을 범하면 죄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나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죄이고 또 순종하다가 부족한 것이 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죄 지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노하시고 징계하시고, 죄 지으면 쫄딱 망합니다.

골로새서 3장 5-6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죄를 짓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에베소서5:6절에,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 5절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음행죄가 들어왔는데, ‘음행하는 자는 사탄에게 내어 주었으니 육신은 쫄딱 망하고 영혼만 주의 날에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믿었으니까 구원은 받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쫄딱 망하고 영혼만 겨우 구원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3:15절에,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얻되 불붙는 집에서 벌거벗고 후다닥 뛰어 나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구원 받아 놓았으니 절대 지옥 가지 않고 살긴 살았는데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한쪽 구석에서 벗은 채로 있습니다. 벌거벗은 그런 구원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구원은 구원입니다.

예수 믿었으니까 구원은 받긴 받았는데, 예수 믿어도 믿음을 지키지 않고 죄만 짓고 나가고 전부 자기를 위해서만 했습니다. 연보도 자기를 위해서하고, 또 자기를 위해서 직분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위해서 한 것은 전부 불타 버렸습니다. 하늘나라에 남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만 딱 남습니다. 아버지께서 심은 것, 아버지를 위해서 한 것만 남습니다. 자기 위해서 한 것은 하나님께 합당치 못합니다. 합격이 못 됩니다. 일생동안 했어도 자기 위해서 예수 믿고, 자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하고, 교회에서도 자기 위해서 일 한 것은 전부 불에 타서 없어집니다.

빌립보서 2:21-22절에,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다 자기를 위해서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구하지 아니하였는데, 다만 디모데만은 그렇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10-11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기를 위해서 일합니다. 자기 명예 영광을 위해서, 또는 먹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목사들이 자기를 위해서 하는지 주를 위해서 하는지 뭘 보고 알 수 있습니까? 희생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목사들에게 좋은 데 가라고 하면 누구든지 좋아합니다. 그런데어려운 곳으로 가라고 하면 다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고자 하는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을 보면 압니다.

3. 자유의 율법으로 계명을 지키게 됨

본문 12절에,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고 했습니다. 자유의 율법은 ‘영이 자유하는 율법’으로서 최고의 법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의 자유의 율법’이 있습니다. 이 법대로 너희가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영의 자유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영이 자유하는 법입니다. 영의 역사를 따라가는 법이고 영이 원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이 편안한 법, 영적 생명에 맞는 법이 자유의 율법입니다. 영적 생명에 맞지 않으면 영의 법이 아닙니다. 영적생명에 맞으면 영의 법입니다. 자유의 법대로, 영의 자유하는 법대로, 영적 생명에 맞는 법대로 살아야 됩니다. 영의 자유가 없는 법은 영의 법이 아닙니다. 영의 자유의 법이 아닙니다. 영이 자유해야만 영의 자유의 법입니다. 이제는 계명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자유의 법 때문에 못합니다. 계명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자유의 법 때문에 합니다. 계명으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자유의 법대로 하다보니까 계명이 다 지켜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영의 자유입니다. 또한 말씀 지키는 것이 영의 자유입니다. 영의 자유대로 하다보니까 말씀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영의 자유대로 하다보니까 하나님을 잘 공경합니다. 영의 자유대로 하다보니까 우상을 안 섬깁니다. 주일날을 잘 지킵니다. 주일 범하는 것은 영의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주일 지키는 것이 영의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영의 자유대로 하다보니까 부모를 잘 공경합니다. 간음하니까 영의 자유가 없고 영이 구속받습니다. 그러나 영의 자유대로 하다보니까 간음하지 않습니다. 영의 자유대로 하니까 살인하지 않습니다. 도적질 하지 않습니다. 거짓증거 하고 보니까 영의 자유가 없습니다. 영의 자유대로 하니까 거짓증거 하지 않습니다. 탐내면 영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자유대로 하니까 탐내지 않습니다. 믿기 전에는 “법으로 해라. 율법이다. 이렇게 하라”고 했지만, 이제 예수 믿은 다음부터는 무슨 법으로 합니까? 영의 자유의 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영의 자유의 법대로 살다 보니까 계명이 다 지켜졌습니다. 영의 자유의 법대로 하면 계명을 다 지켜집니다.

영의 세계에 살지 못하는 사람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영의 세계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여야 이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영의 자유대로 하다 보니까 기도하러 갔습니다. 영의 자유대로 하다보니까 십일조 했습니다. 영의 자유대로 하려니까 우상의 제물을 안 먹었습니다. 순종 안하니까 영의 자유가 없습니다. 영의 자유대로 하려다보니까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영의 자유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영의 자유의 법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편안합니다. 영의 자유의 법대로 살면 편안하고 참 좋습니다. 기쁘고 즐거움이 충만하고, 생명의 역사가 있고 하늘 문이 열리고, 영의 법대로 사니까 형통하게 되고, 언제나 영의 자유의 법대로 심판 받을 것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합니다.

자유의 법은 긍휼의 법입니다. 법에는 세상법, 도덕법, 율법, 자유의 법이 있는데 우리는 자유의 법 곧 긍휼의 법에 따라 판단 받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 법대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도덕법대로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인 율법이 있는데, 우리가 그 율법에 걸리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에 의해 판단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뛰어 넘어 긍휼의 법, 자유의 법에 의해 판단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의 법과 자유의 법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4.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 긍휼 없는 심판이 옴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서 살아야 함

본문 13절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무한합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 살아야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받으며 하나님의 심판도 받지 않게 됩니다.

사람에게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 없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긍휼 없는 심판이 임하게 될 때에 하나님 앞에 설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 없는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대로 심판하는 것인데, 그 앞에서 심판받지 아니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긍휼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서 사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풉니다.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사랑의 세계에서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이 공의의 심판을 이기고 자랑합니다.

디모데전서 1:9-10절에,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1:5-7절에,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세계에 사는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긍휼의 세계에서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긍휼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은 공의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라고 하였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벌써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공의의 심판은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공의의 심판은 안 받습니다. 그럼 무슨 심판을 받습니까? 행한 대로 갚아주는 심판을 받습니다. 고린도후서 5: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행한 대로 상 받는 심판을 받지만, 공의의 심판은 안 받습니다. 공의의 심판을 받으면 지옥 갑니다. 한 사람도 그 앞에 설자가 없습니다.

남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그릇이 자라남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라고 하였는데,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행해야 하나님의 긍휼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긍휼 없는 심판을 받습니다. ‘긍휼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서 살아야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자랑합니다. 마태복음 7:1-2절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받을 비판은 하나님의 비판입니다. 하나님께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남을 비판하면 안 됩니다. 긍휼의 하나님께 헤아림을 받지 않으려면 남을 헤아리면 안 됩니다. 남을 저울질한 그대로 자기도 저울질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잰 그 자로 우리가 잼을 받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행한 대로 하나님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사람에게 베푼 대로 하나님도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이것이 긍휼의 법인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겼으면 하나님도 우리는 긍휼히 여겨주실 것이고,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는 것이 그 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서 살면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서 사는 증거입니다. 베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세계에서 살지 않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긍휼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나눠주면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에게 옵니다. 나눠주면 더 많이 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나눠주면 그릇이 커집니다. 긍휼의 그릇이 커지면 거기에다 하나님이 더 많이 주십니다. 또 그 많은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면 또 그릇이 커지고, 더 큰 그릇에 하나님의 긍휼이 더 많이 오고 더 많은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면 그릇이 보다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긍휼의 그릇이 점점 커나가는 것인데 그것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긍휼의 그릇이 커가는 것이 영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안 나눠주면 하나님의 긍휼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긍휼의 그릇이 커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누가 손해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안 나눠주면 다른 사람이 긍휼을 못 받는 것보다 자기가 하나님의 긍휼을 못 받는 것이 더 손해입니다. 또한 자라나지 못했으니까 손해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베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좀 베풀까?’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사랑을 나눠줄까? 도와줄까?’하며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베풀어 줌으로서 많아지는 나라입니다. 주면서 많아지고, 주면서 커집니다. 모든 사람에게 우리는 긍휼을 베풀어야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눠줘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점점 더 그리스도의 사랑이 많이 오고 자기도 그만큼 자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