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일 금요일

야고보서 4:1-12 큰 은혜와 복을 받는 방법.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큰 은혜와 복을 받는 방법
야고보서 4:1-12

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4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5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9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11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12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4:1 너희 가운데 싸움이 어디서 오며 다툼이 어디서 오느냐? 너희의 지체 안에 있는 싸우는 정욕에서 오는 것이 아니냐? 

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을 하고 시기하여도 얻을 수 없는데, 너희는 다투고 싸운다.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4:3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4:4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벗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알지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4:5 너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시기할 정도로 사모한다고 하신 성경 말씀을 헛된 것으로 생각하느냐? 

4:6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라고 하셨다. 

4:7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여라. 그러면 마귀가 너희를 피할 것이다. 

4:8 하나님을 가까이하여라. 그러면 그분도 너희를 가까이하실 것이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여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여라. 

4:9 슬퍼하고 애통해하며 울어라. 너희의 웃음을 울음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어라. 

4:10 주님 앞에서 낮추어라. 그러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실 것이다. 

4: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마라. 형제를 비방하거나 자기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네가 율법을 판단하면, 너는 율법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재판관이다.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한 분이시니, 그분께서는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네가 누구이기에 네 이웃을 판단하느냐? 


1. 싸우지 말고 구하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본문 1절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싸우고 다투는데 그 싸우고 다투는 것이 ‘싸우는 정욕’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취하지 못하는 것인데 공연히 싸우고 다툰다는 말입니다. 싸우고 다투고 욕심 부려서는 죄만 짓는 것이지 참된 것을 얻지 못합니다. 욕심 부려서 얻고, 싸워서 얻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오면 다 없어지게 될 헛된 것들입니다.

가장 요긴한 것은 어떻게 하면 얻는다고 했습니까? 구하여야 얻습니다. 하나님께 구하면 가장 필요하고 가장 요긴한 것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구하면 얻습니다. 그럼 뭘 구하여야 됩니까? 마태복음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
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것들은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게 진짜고, 그게 제일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건 다 덤으로 주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고 가장 필요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주실 건데, 왜 영원한 건 구하지 않고 쓸데없는 것 가지고 싸우고 다툽니까?

사람들은 물질문제, 명예 영광 문제, 자기중심주의 때문에 싸우고 다툽니다. 그러나 그렇게 싸워서 좀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참된 자기 것이 아닙니다. 싸워서 물질을 빼앗았다 합시다. 그 물질 얼마나 갈까요? 죽을 때 다 내놓고 갈 거 아닙니까? 제 것이 되는 게 아닙니다.
시기하고 빼앗지 않아도,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 쓸 것을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다 먹고 살게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는데 공연히 싸우고 다툰다는 말입니다.

싸우는 게 다 명예 영광 때문에, 또 권세 좀 잡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패가 나뉘어 싸우는 교회가 많습니다. 당파를 지어 싸우고 다투다가 한파는 1층에서 예배를 보고, 한파는 2층에서 보는 교회가 있어요. 그러니 교회가 잘 되겠습니까? 교인들이 점점 떨어져 나갑니다. 이 놈의 교회 갈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또 서로 장로 되겠다고 싸우고 다투고, 노회나 총회 하면서 또 싸우고 다툽니다. 총회장 한번 되려면 6억을 써야 된다는 교단도 있습니
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나는 것입니까? 그 돈 누구 돈입니까? 이것이 교회가 타락된 증거가 아닙니까? 얼마나 부패하면 돈을 써서 총회장 된다, 노회장 된다는 말이 나옵니까? 이것이 악한 일입니다. 이미 다 서로 짜 놓고, 선거할 때는 하나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고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얼마나 악한 일들입니까?

또 가정에서도 싸우고 다툽니다. 싸우고 다투는 가정도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싸우라고 결혼시켰습니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손뼉을 혼자만 쳐서는 소리가 안 납니다. 그러니까 부딪히지 않으면 됩니다. 부부간에 싸우려고 할 때 부딪히지 마십시오. 고부간, 형제간에도 싸우고 다투는 게 많습니다. 싸우고 다투면 뭘 얻습니까? 가정에서 싸움은 서로 자기 수하에 놓으려고, 서로 권리 차지하려고 싸웁니다. 누가 내 종이 되느냐. 아내는 남편을 자기 종으로 삼으려고 싸우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종 삼으려고 싸우지만, 편안 하려면 한쪽이 종이 되면 편안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좀 센 집은 남편이 종노릇하고, 남편이 좀 센 집은 여자가 종노릇하면 됩니다. 서로 종노릇 안 하려니까 싸우는 것입니다. 얻을 바는 다투어서 얻는 게 아닙니다. 참된 것은 싸워서 얻는 게 아닙니다. 싸워서 얻는 사람은 마귀 종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것은 구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그럼 뭘 구해야 합니까? 그 나라와 의를 구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구하고 덧입어야 합니다. 형상대로 창조 받았기 때문에 그 형상을 이룰 수 있고, 주의 형상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세계, 하나님과 교통하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그 통치가 이뤄지니까 벌써 귀한 것을 찾은 것입니다. 금보다 귀하고, 영원한 것을 찾은 것입니다. 또 ‘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의 하나가 천하보다 귀한데, 베드로후서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다 불타 없어져도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난다.
그 나라에는 의를 가지고 갑니다. 사람이 의로 살고, 의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또 의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사가 나타나고, 의로 다른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나가고, 의를 가지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돈, 명예, 영광, 사업체 못 가져갑니다. 교회, 가족 못 데리고 갑니다. 의밖에는 가져갈수 없기 때문에 의를 얼마나 이루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잘 순종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가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엔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 것을 가지고 갑니다. 하나님의 형상, 능력을 입어서 가지고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지혜로운 자가 되고, 하나님의 의를 닮아가며 세워 나가고, 하나님 능력을 이루어서 능력 있는 자가 되어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많이 구해서, 사랑과 긍휼을 이루어가고 자라나야 됩니다. 자라나서 가는 것, 그것을 구하라는 겁니다. 그것만 구해서 풍성해지면 다른 것은 덤으로 줍니다. 원 물건을 사면 다른 것은 덤으로 주지 않아요? 원 물건이 중요한 것이지 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원 물건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 하나님의 형상인데, 우리가 이것만 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하나님의 의만 구하면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의가 충만한 나라가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구하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러면 능력 있는 자가 되고, 진리 안에 있는 자가 되고, 거룩한 자, 지혜 있는 자, 진실한 자 다 이루어져 나갑니다. 점점 더 온전한 자가 되어 나가고, 점점 무한히 자라나가는 자가 되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독립적인 인격이 만들어져 나갑니다. 그렇게 자라나고 만들어진 것, 그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은 영원히 하늘나라까지 가지고 갑니다. 또 이 세상에서 그 나라 이루어 진 것이 천국입니다. 화평과 의가 충만하고, 사랑과 거룩이 충만하고, 거기에는 악한 자가 없습니다. 거룩한 자 뿐입니다. 더러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데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안 주시겠습니까? 서로 남을 종으로 부려먹겠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종살이 하는 나라입니다. 누가 머리입니까? 하나님이 맨 윗머리이고, 그 다음 머리 그리스도께로 내려오고, 그리스도의 머리에서 남자에게로 내려오고, 남자의 머리에서 또 여자에게 내려오는 것이 질서정연한 것입니다. 머리라고 해서 남을 압제하고 남을 죽이고 노략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라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걸 전달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머리도 종, 종도 종, 아랫사람도 종, 윗사람도 종인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예수님도 종이라고 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요 섬기려고 왔다, 나는 주도 되고 선생도 되지만 너희들 발을 씻어주기 위해서 왔다, 이걸 본받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부터 이렇게 섬기는 자리에 계셨기 때문에 제자들도 서로 섬겨야 됩니다. 자기 의만 내세우며 요한 형제가 서로 높아지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0:27-2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 나라 사람들은 서로 머리가 되겠다고, 권세를 잡겠다고 하지만 너희는 그게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는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어 놓는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종이 되어야 됩니다. 종이 큰 자이고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하늘나라 가면, 많이 섬기고 간 자, 얼마나 많이 섬겼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일 큰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창세 이후에 제일 많이 섬기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모든 사람의 발을 씻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목욕도 시켜주시고. 전 세계 모든 성도들 발 다 씻어 주시고, 이제 앞으로 올 성도들 다 씻어 주셨습니다. 앞으로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의 모든 성도들의 발을 다 씻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많이 섬겼습니까? 제일 많이 섬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분입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누가 클 것 같습니까? 누가 많이 섬겼습니까? 아마 사도 바울이 많이 섬겼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사도바울이 얼마나 많이 발을 씻어주고 얼마나 많이 섬겼습니까? 유럽으로 다니고 아시아로 다니면서 봉사하고, 또 평안히 그냥 있어도 되는데, 생명 내놓고 예수살렘에 올라가고, 열심히 성경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성경이 14권입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히브리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얼마나 많이 기록했습니까? 사도바울이 이렇게 많이 섬겼습니다. 하늘나라 가면 바울이 상당히 큰 자일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을 섬기다 가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됩니다. 싸우고 다퉈서 권리 잡은 자가 큰 자가 아고, 또 물질 전부다 빼앗아서 제 것으로 만드는 자가 큰 자가 아닙니다. 그건 다 전부 다 책망 받고 심판 받을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것은 그 나라와 의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것만 있으면 모든 걸 덤으로 주십니다.

원 물건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덤으로 주는 것만 구하면 덤을 주겠습니까? 예를 들어 부잣집에서 딸을 데리고 가면 덤으로 줄려고 많이 준비 해 놓았다고 합시다. 근데 딸은 안 데려가고 덤으로 줄 것만 달라면 주겠습니까? 자동차도 하나 사 놓고, 아파트도 하나 사놓고, 옷장도 좋은 것으로 사 놓고, 살림살이 다 차려 주려고 준비 해놓았는데 딸은 안 데려가고 그런 것들만 달라고 하면 누가 주겠습니까? 안 줍니다. 하지만 딸만 데려가면 그런 것들 달라고 하지 않아도
다 순순히 따라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구하는 것도, 원 구할 것만 구하면, 다른 건 다 그 다음엔 덤으로 따라오게 하십니다. 괜히 덤 가지고 싸우고, 껍데기 가지고 싸우지 말고 원 물건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즉, 그의 나라와 의, 또 하나님의 형상. 이것들만 구하면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모두 덤으로 다 주십니다.

2.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라

본문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남편이고 예수님이 남편인데, 세상과 벗된 것이 간음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 된다’는 것은 세상 나라와 벗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로 말하면 앗수르나 바벨론 나라와 벗되어 의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라고 하였는데, 사도 바울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고, 바울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세상과 벗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되고, 간음하는 여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 이런 것들을 사랑치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3절에는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세상과 벗되지 말고 하나님과 벗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짝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2:4-6절에,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짝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가시로 길을 막고, 담을 쌓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과 짝하고 나가려 하는 자에게 가시로 길을 막고, 담을 쌓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십니다.

호세아 2:14절에,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라고 했는데, 그 앞 절을 보면 다른 나라로 가서 세상 나라를 남편을 삼아서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개유(開諭)하셔서 들로 데리고 나가 연단하신다고 했습니다. 한국성경공회에서 번역 출간한 <바른 성경>에는 ‘개유’를 ‘타이르다’로 번역했는데, 타일러 유인해서 광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개유(開諭)는 ‘유혹하다’, ‘꾀다’라는 의미인데, “나가면 잘 된다. 젖과 꿀이 흐른다. 복된 자리다”라고 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따라 나가보니까 복된 자리가 있었습니까? 나가보니까 광야, 먹을 것이 없는 곳, 물이 쓴 곳, 고생이 한정이 없는 곳입니다. 꾀임을 받아서 따라 나갔는데 가보니 광야였고 그곳에서 연단이 되었습니다. 잘될 줄 알고 나갔는데 죽을 지경을 당합니다.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이 사막만 있습니다. 그곳에서 연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세상과 짝하니까 성도를 꾀어서 광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하나님이 유인하시는 바람에 끌려 나갔는데, 가보니까 고생이 막심합니다. 죽을 지경입니다. 그곳에서 연단을 시키셔서 본 남편인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본 남편인 하나님께 돌아오면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은 연단시키십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는 길에, 환란, 궁핍, 고난, 대적 등, 많은 고난을 주십니다. 그러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고 나면 하나님 말씀대로 좋은 곳입니다.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 전에는 꼬임을 받아 나가 죽을 지경인 것입니다. 본 남편인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간음하는 여자를 회개해서 돌아오게 하려 하심입니다.

본문 5절에,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고 일하시는데, 시기하기까지 하십니다. 질투하는 하나님이신데, 세상과 짝하면 시기하고 질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고 짝하면 시기하셔서 가만히 안 두십니다.
세상을 보통으로 놓아두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욕심으로 취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것을 욕심으로 가져가는 것은 간음하는 여자요, 하나님과 원수가 된것입니다. 성령은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모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고 교통하라고 하시는데, 하나님과의 교통은 중지하고 세상과 교통하고 세상과 짝하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십니다.

3. 큰 은혜와 복을 받는 방법

겸손할 것

본문 6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의지할 것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합니다. 싸우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싸우고 다투지 말고 그 나라와 의만 구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복할 것

본문 7-8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하셨는데, 하나님 뜻이면 무조건 순복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디든지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데에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 하시면 죽어도 굶어도 가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 뜻이면 무조건 순복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할 것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는데,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마귀 일을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 시험에 들지 않고, 마귀의 충동에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이기지 피하면 더 따라옵니다.

심을철 목사님이, 마귀는 개와 같아서 도망가면 더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엎드리면, 달려들던 개가 도망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돌을 집어 들려고 엎드리는 것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돌로 자기를 칠까봐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를 피하면 계속 따라와 결국 물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마귀를 이기려면 피하지 말고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의 일을 많이 해주는데, 거짓이나 교만으로 마귀의 일을 합니다. 마귀의 특징은 거짓입니다. 그런 마귀 일을 해주지 말고, 대적하여 ‘사탄아 물러가라’하면서 이겨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마귀가 들어가서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마귀에게 속아 마귀의 일을 해주면 안 됩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마귀 일 하루 세 번만 해도 괜찮겠다”고 하셨는데, 불안한 마음이나 걱정하는 것, 분을 품는 마음이나, 혈기부리는 마음, 말다툼하는 것이나 언쟁 등이 다 마귀의 일입니다. 근심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귀가 와서 ‘근심해라. 근심해라’합니다. 마귀와 단짝이 되어서 근심하고 걱정하면 근심걱정에 빠집니다. 근심할 일이 생길 때에는 주께 맡기고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또 근심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또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맡기고 나가면 더 이상 근심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떻게 해 보려고 걱정을 하면 마귀에게 걸려든 것입니다. 근심을 대적해야 합니다. 근심걱정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다 한가지인데, 결국 ‘죽을까봐’입니다. 그러니까 생명 내놓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라고 했습니다. 이생에서의 하루가 짧아지면 내생의 하루가 길어지는 것인데, 자녀들의 생명도 자신의 생명도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뱀이 하와를 속일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참으로’라고 한 말이 틀린 것입니다. 이 때에 하와가 사탄이 들어온 것을 알고 ‘사탄아 물러가라’했다면 마귀를 이겼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온 것도 모르고 마귀와 대화를 하는 중에, 결국 속고 말았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
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고 했습니다. 선의 반대는 악인데, 하나님은 ‘절대 선’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선이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악이라고 판단하십니다. 뱀은 ‘너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것은 선,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악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환영하는 것은 선, 자기를 반대하는 것은 악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맞는 것은 선이고 하나님께 맞지 않는 것은 악인데, 자기가 기준이 되는 것을 보니 이것이 하나님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 정도 되면 말 다한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마귀가 역사하여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 십자가가 필요하다”라고 하고, 교만하라고 충동할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난 겸손해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고 답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다 이기셨습니다. 절하는 것은 신앙을 양보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절하지 않으시고 다 이기셨습니다. 항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데(벧전 5:8), 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것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루 2시간 이상 기도하고, 성경을 하루 10장 이상 읽으라고 신학생들에게 시키는데, 직장인들도 아무리 바빠도 성경을 하루 3장 이상은 읽어야 합니다. 밥은 세끼 먹으면서 성경은 왜 하루 3장 못 읽습니까? 성경을 하루 3장 안 읽는 사람은 밥 세끼도 먹지 마십시오. 엎드리는 시간, 사모하는 시간, 은밀한 시간, 바위 틈 낭떠러지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점점 가까워져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자기를 통해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 4:8-9)”라고 했습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에서 ‘손’은 행동을 가르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했는데 손을 깨끗이 하라는 것은 행동을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두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인 두 마음인데,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따라와야지,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면, 세상 것은 뒤로 따라옵니다. 세상 것은 뒤돌아서서 잡을 것이 아닙니다. 돌아서서 세상 것을 잡으려고 하면, 세상 것이 달아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따라가면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세상이 나를 보고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따라오게 됩니다.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세상을 잡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세상이 나로부터 달아나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세상은 손을 뒤로 내밀어 세상을 잡으면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순복하면 이렇게 세상 것이 다 따라 오고, 우리는 “재미 좋습니다”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날마다 우리에게 와서 마귀 일을 하도록 유혹하면서, ‘네가 제일이다’라며 거짓말합니다. 거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믿는 일을 바로 하고 주 앞에서 낮출 것

본문 9절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고 했습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애통할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세상과 짝하면서 믿는 일 제대로 안 하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지 않고 세상 것으로 웃는 사람들은 얼마 안 가서 애통과 비참한 일이 오는데, 이것을 알고 믿는 일을 잘 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우리는 믿는 일에 부요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는 일에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오락이나 운동구경하는 것에 집중하면 안됩니다. 세상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잘 쓰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쓰지 않습니다. 믿는 일 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애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6:24-26절에,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믿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안하고 세상과 짝하고 나가며 하나님을 본 남편으로 삼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세상 나라를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가는 이스라엘을 세상과 짝하지 못하게 가시로 막았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개유(開諭)하여 들로 내몰아 연단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것은 굉장해 보이나 막상 이루고 나면 고난이 더 많습니다. 무언가 이루고 나서 이제 되었다고 생각했다가 더 죽을 고생이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내 것은 다 주의 것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주의 것이 다 내 것이 됩니다. 우리의 것을 다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으면,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이 됩니다.

4. 피차 비방하지 말라

본문 11-12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했습니다.

비방과 판단이 왜 나옵니까? 세상과 짝하는 교인이 생기고 세상과 짝하지 않는 교인이 생깁니다. 세상과 짝하는 교회가 생기면 세상과 짝하지 않는 교회가 생깁니다. 세상을 끌어들이는 교회가 생기면 세상을 안 끌어들이는 교회가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비방하게 됩니다. 세상과 짝하는 교회는 세상과 짝하지 않는 교회를 비방하고, 세상과 짝하지 않는 교회는 세상과 짝하는 교회를 비방합니다.

오늘날 말세가 되어서, 유브라데 강이 말라서 세상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세상 오락과 향락과 놀이판, 세상 곡조와 춤추는 것들이 다 들어왔습니다. 오늘날 속이 다 비치는 얇은 옷을 입고 예배당 강단에 올라가서 춤추는 Worship Dance가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춤추며 예배드린다는 것인데, 이것을 많은 교회가 좋아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음란 방탕 육체주의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다는 사람들은 우리를 지적합니다. 비방하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신사 참배했던 목사들은 신사 참배 안한 목사들을 비방하고, 신사 참배하지 않은 목사들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신사 참배한 것을 회개하라고 지적했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잘못된 교회에는 나가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죽은 어머니 젖을 빨면 젖이 아닌 피가 나오는 것이라고 하시며, 신사 참배한 교회 즉 죽은피가 나오는 교회에는 나가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최권능 목사가 진짜인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이 들어오면 넘어가는 교인이 있고, 안 넘어가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비방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시험에 넘어가는 교회가 있고, 안 넘어가는 교회가 있는데, 우리는 세상의 시험에 넘어가는 교회를 비방하기보다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세상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 4:12)”고 했는데, 우리는 이웃을 판단하지 말고, 성경 따라가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지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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