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창세기 49:1-12
1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4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1.야곱의 아들들에 대한 예언과 축복
신령한 눈으로 보라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열 두 아들에게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하는 동시에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해 주었습니다(28절). 야곱이 아들들에게 축복해 줄 때에, 그 인격의 분량대로 성령의 인도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즉 믿음의 분량대로, 충성한 분량대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본문 2절에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부를 때에 “야곱의 아들아”라고 불렀고, 말을 들으라고 할 때에는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혈통에 속한
아들들을 불러서 승리자인 아버지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오랜 세월동안 신앙의 많은 경험을 하였고, 또 많은 신앙의 많은 선한 싸움을 싸우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승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나이 147세인데, 많은 신앙의 경험과 지혜와 지식으로 심령의 눈이 많이 밝아졌고 영이 많이 자라났으므로, 야곱이 밝은 심령의 눈으로 아들들의 장래를 바로 볼 수 있고, 바로 말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성령의 감동을 입어 앞으로 되어질 일을 말해주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에 승리한 사람이 말해 주는 것하고, 실패한 사람이 말해주는 것하고 다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이 보고 말 해 주는 것하고, 없는 사람이 보고 말 해 주는 것은 다릅니다. 또한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이 보는 것하고 신령한 눈이 열리지 못한 사람이 보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신령한 눈이 열리지 못한 사람이 볼 때는 잘 될 것 같아도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이 보면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또한 보통 생각할 때는 잘못 된 것 같았는데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이 볼 때는 잘 된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
한 눈으로 보아야 모든 것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8절에서 마리아가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님 발에 부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습니까? “기름을 허비한다.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구제하지 않고 허비하느냐고”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잘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2-33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한 것은 베드로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이라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그것은 마귀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야곱의 아들아 모여 들어라’하고 또‘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인격과 지혜와 하나님의 은사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눈이 열린 눈으로 너희에게 모든 것을 바로 말해 줄 것이니까 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
로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셔서 12 아들들에게 예언해 주려고 모여서 이 말을 들으라고 한 것입니다. 각자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2. 르우벤에 대한 예언
참 축복의 목적은 믿음을 잘 지키고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임
본문 3절에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끊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이라 하는 것
은 자기의 아들, 야곱의 자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승리한 자의 경험과 지식과 지혜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야곱이 자손들에게 할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바른 말씀입니다. 이것이 축복이라 하지 않습니까? 본문 28절 하반절에 “분량대로 축복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만, 그런데 축복 잘했습니까?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잘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게다가 특별히 시므온과 레위는 저주 받는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했습니다. “저주받는다. 단은 독사 새끼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다”라고 했는데, 무슨 축복을 이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셔서 한 것입니다.
축복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해야 됩니다. 요새 목사들이 축복을 어떻게 합니까? 무조건 복만 많이 부어 주는 것입니다. 기복적인 신앙으로 목사가 축복 많이 한다고 축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인의 시모 한 분이 축복 많이 하는 교회에 다닙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 목
사님이 집에 왔다고 합니다. 와서 심방 예배를 드리는데 많은 축복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축복을 해 줘서 얼마나 감사하다, 너무 기쁘다, 너무 큰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감개무량하다”고 했습니다. 그럼 축복을 그 집에 많이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사
업이 얼마 있다가 망하고, 그 누군가가 세상 떠났다고 합니다. 축복을 받기는 무엇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입으로만 한 것이고, 귀에만 풍년이고, 말로만 풍년입니다. 그렇다고 축복 다 받을 것 같으면 축복 못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가 축복 받을 일을 해야 축복을 받지, 축복 받을 일을 안 하고 입으로만 축복한다고 하면 말로만 진수성찬입니다. 실제로 복 받을 일을 안 해서 아무것도 받을 것이 없는데 축복해 준다고 복 받습니까? 그것은 사람한테 아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이용하여 아부하여 그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서 자기에게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된 축복이 아닙니다.
또 받는 사람은 속는 것입니다. 번쩍번쩍하는 간판을 보니까 속아 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진실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해야지 그렇게 허황된 말로 축복해 준다고 해서 그것으로 어떻게 복을 받겠냐 하는 것입니다. 참되게, 그 사람 바로 세우고 믿음
잘 지키게 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도록 해는 것이 원 목적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대접 좀 받고 환영받으려고 하는 것은 다 잘못 된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행동입니다. 참된 선지자의 행동이 아닙니다.
범죄하면 하나님의 축복과 장자의 명분을 다 빼앗김
본문 3절에 르우벤에 대해서 처음으로 축복해 주었는데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이라고 하였습니다. 위광은 그 위엄스러운 빛이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탁월하다는 말은 권력이 탁월하다, 맏아들이니까 권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또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맏아들이니까 능력의 시작이고, 기력의 시작이요,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 했습니다. 창세기35장 22절과 신명기 27장 20절에 보면‘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다’고 하였는데 계모와 동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범죄 했기 때문에 본문 4절에 “물이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범죄 하면 그 능력이나 권능이 다 없어지고, 또 위광이나 기력이 다 꺾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범죄하면 그 능력과 권세와 빛이 다 없어질 뿐만 아니라, 장자의 명분을 빼앗깁니다. 그 장자의 위치에서 잘못하면 떨어지고 말게 됩니다. 르우벤은 이렇게 처음에는 출발을 잘 했습니다. 좋은 위치에 있었고, 큰 그 능력이 있었고, 빛이 비추어 나갔지만은 범죄 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상실했습니다. 범죄 하면 다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은사를 준 것, 권능과 권세를 준 것, 탁월하던 것, 뛰어나던 것, 그 빛이 비추어 나가던 것, 이 모든 것을 범죄 하면 다 잃어버립니다.
‘물의 끓음 같았은즉’이라는 것은 물이 끓어서 넘었다는 것입니다. 물이 끓어서 넘었으니까 이것은 월권한 것이고, 제자리를 못 지켰기 때문에 권능의 탁월함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지만 그만 빛을 다 잃어버리고, 능력도 잃어버리게 된 것입
니다. 그런 잃어버린 상태에서 앞으로 나가게 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범죄 하지 않기를 힘을 써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그냥 유지하면서 발전하려면 범죄 하지 않아야 됩니다.
특별히 7계명을 범하는 간음죄를 범하지 않도록 많은 힘을 써야 됩니다. 이 죄에 한번 빠지면 다 잃어버립니다. 능력과 권세와 뛰어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다 잃어버리고, 자기 위치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비참하게 몰락합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남녀 이성
관계를 철저하게 우리가 범죄 하지 않도록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힘을 쓰고, 요셉과 같이 늘 승리하는 신앙을 가지고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아가페 사랑에서 육적인 사랑, 에로스 사랑으로 기울어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아가페 사랑에서 그 선을 확실히 긋고 있어야 됩니다. 육정적 사랑으로 기울어지면 안 됩니다. 거기서 망하게 됩니다. 르우벤과 같이 다 몰락되고 맙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에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넘어오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다 절도요 강도라는 것입니다. 인정이나 육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다 절도요 강도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귀고 사랑을 해도 언제나 예수님을 통해서 그 사람을 사귀고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사랑하지 못하면, 즉, 육적 사랑으로 기울어지면 망하게 됩니다. 그것이 절도요 강도입니다. 르우벤은 이렇게 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고 넘어갔습니다. ‘끓어 넘치는 자’로 문으로 안 들어가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절도요 강도가 되었고, 또 절도와 강도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뿐만 아니라 르우벤 지파까지 다 이런 가운데 빠졌습니다.
다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모든 것, 능력과 권세를 하나님께서 많이 주셨는데 다 잃어버리고 그만 몰락되고 말았습니다.
3.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
가까운 사람들끼리 당을 만들면 하나님이 흩으심
본문 5-7절에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
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열두 형제 가운데 시므온과 레위가 늘 함께 다니는 단짝입니다. 당파를 모으는 것입니다. 왜 시므온과 짝해서 자기네끼리만 다닙니까? 전부다 해서 열두 형제 밖에 없는데 끼리끼리 돌아다닌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왜 둘이 다닙니까? 시므온과 레위는 본문 5절에 보면 “형제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형제라는 말은 특별히 한 어머니의 형제이기 때문에 둘이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므온과 레위가 가까운 이유는 첫째, 어머니가 같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들이 시므온입니다. 셋째 아들은 누구입니까? 레위입니다. 이렇게 둘째 낳고, 셋째 낳고 이어서 낳은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동복형제인 동시에 또 연이어 낳았다는 것입니다. 연달아 낳았으니까 쌍둥이 비슷합니다. 요새로 말하자면 동창생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격이 비슷합니다. 성격도 맞습니다. 보통 끼리끼리 다니는 것은 성격이 비슷하니까 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하기야 성격이 안 맞으면 끼리끼리 못 다닙니다. 성격이 비슷합니다. 또 성격상 무엇이 맞습니까? 같이 다니면서 못된 짓 하는 것이 맞습니다. 잔인한 성격입니다.
같은 한 고향 사람끼리, 동창생끼리, 성경 맞는 사람끼리 이렇게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자기와 연령 비슷한 사람끼리, 이력이 서로 통하는 사람끼리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됩니다. 이렇게 돌아가면 반드시 시므온과 레위처럼 됩니다. 그렇게 돌아가면 누구처럼 됩니까? 시므온
과 레위처럼 됩니다. 저주 받는다는 말이 몇 번 있습니까? 시므온과 레위는 두 번 저주 받는다고 했습니다. 또 언젠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였습니까? 나누어 흩으십니다. 마지막엔 다 하나님께서 흩으시고 맙니다. 가만 안 두십니다. 심판이 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나 비슷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끼리만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고 하였습니다. 모이기 잘 한다고 집회라고 하였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가까운 형제 가운데도 가까운 형제고, 또 늘 둘이서 다니고 모입니다. 모여서 또 무엇을 합니까? 모
여서 의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둘이서 모여서 소곤소곤하고 늘 모여서 의논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고 하는 것은 그 집회나 모의에 참예하면 손해만 본다는 것 입니다. 자기네끼리 모여서 소곤소곤하는 것에 참예하면 신앙에 손해만 보니까, 그래서 야곱은 거기에 참예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네 가까운 사람끼리 자주 모이면 믿음만 다 팔아 먹습니다. 인정에 얽매이니까 믿음에 손해만 봅니다. 안 모이는 것이 사실 좋습니다. 참예 안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 모의에 참예하면 심령에 손해보고, 그 집회에 참예하면 영광이 손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혼에 손해를 보니까 의논에 참예하면 안되겠습니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고 한 것은 그 집회에 참예하면 영광이 다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영광이 없어집니다. 하여튼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도 옳게 안보니까 벌써 영광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회개하고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세우심
그런데 레위는 저주 받았는데 왜 또 제사장이 됐습니까? 그 다음에 진정으로 회개한 모양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쓰십니다. 그때에는 끼리끼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회개하면 됩니다.
우리도 같은 사람과만 같이 만나고 다니고 앉는 그런 버릇을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시므온과 레위처럼 되고 맙니다. 레위지파가 진정으로 회개만 하면 다시 제사장이 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늘 말하는 것은 늘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늘 회개하십시오. 회개하고 바로 서고 그 버릇을 고치면 하나님께서 귀히 쓰는 제사장이 됩니다. 과거에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다고 해도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이런 길을 걷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누구나다 자기에게 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이 있다고 해도 가까운 사람끼리 만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깝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 하고, 좀 더 통하지 않는 사람하고 좀 통하게 하고, 그래야 넓
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또 그래야 원만한 제사장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만한 제사장 자격이 못 됩니다. 신앙이 서로 통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신앙으로 하면 끼리끼리가 안 됩니다. 여러 사람이 다 같이 하는 것이지 자기들끼리 그럴 수 있습니까?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여러 형제들 다 같이 이렇게 취급하면서 다 같이 일을 주고, 다 보호해 주고, 다 같이 길렀지 자기 동생만 위했다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동생에게 줄때는 좀 많이 줬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자기 동생에게 특별히 해 준 것이 없습니다. 요셉은 다같이 사랑하고, 도와주고, 기르고, 혜택을 입혀주었습니다. 우리도 원만한 사람이 되려면 다 같이 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만 하지 말고 다같이 도와주고,
사랑하고, 서로 친절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 같이 하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제사장 자격이 됩니다.
분노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로 소의 발목을 끊으면 하나님의 심판받음
본문 6절 하반절에 ‘그들은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라고 하였습니다. 분노와 혈기대로 무엇을 하였습니까? 분노로 사람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혈기는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습니다. 그것을 왜 끊었겠습니까? 소의 발목 힘줄을 왜 끊었습니까? 소의 발목 힘줄을 끊으면 다
니긴 다니지만 힘을 못 쓰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좋은 소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긴 다녀도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소의 발목 힘줄을 끊으면 뛰지도 못하고, 다니긴 다녀도 일을 못합니다. 요새로 말하면 자동차 바퀴에 펑크를 내 놓는 것과 같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남의
자동차 타이어에 푹푹 찔러 가지고 다 펑크 내 놓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돌아갑니까? 남의 자동차를 못 타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펑크 난 차를 어떻게 타겠습니까? 소의 발목 힘줄을 다 끊어 놓으면 그 사람들이 소를 부리지 못할 것 아니겠습니까? 소
를 부리지 못하게 하며 결국 남에게 손해를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소를 부려서 일 하지 못하게 해서 그 사람을 약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의 약점을, 다른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방편입니다. 뒷전에서 살살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이 소의 발목 힘줄 끊는 것을 모릅니다. 살짝 소한테 가서 싹 끊어놓고 나면 주인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소를 부리려고 하면 소가 맥을 못 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 발목 힘줄이나
끊고 다니는, 남에게 손해나 주는 이런 잔인한 성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말에 '우라기르(うらぎる,裏切る)'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라(うら)는 뒤(裏)라는 것인데, '우라기르(うらぎる,裏切る)'는 ‘뒷전으로’라는 뜻입니다.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뒤를 베다'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배신하다'라는 뜻입니다. 일본 무사들의 세계에서 등을 돌린다는 것은, 상대방을 믿기 때문에 등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믿고 등을 보인 다른 무사의 등을 칼로 베니까,'배신하다'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라기르’는 우리말의 背信(배신)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배신이라고 하는데 일본말은 ‘우라기르, 즉, 뒤에서 벤다는 뜻입니다. 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뒤로 가서 끊어 놓으면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뒤로 모르게 살짝 가서 끊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타이어의 바람을 왜 뺍니까? 왜 그렇게 합니까? 가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발목의 힘줄을 끊는 것은 잔인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발목, 소 발목 힘줄을 끊었다는 것은 남에게 그만큼 남 모르는데 뒷전으로 가서 손해만 주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서 뒷전에서 손해 주는 말, 모든 언사를 안 해야 되겠습니다. 만나서는 괜찮은 체 하고 다니지만, 힘줄을 하나씩 끊어 놓거나, 비방하고 악행하고 그 사람의 약점과 모든 것에 거짓말 보태서 뒤에 가서 훼방해서, 남의 하는 일에 힘을 못 쓰게 만들어 놓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주 받는 일입니다. 직접 만나서 말해 주든지 책망을 해야지, 뒷
전에 가서 힘줄 끊는 식으로 그 사람의 힘을 못 쓰게 끊어 놓으면 그것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 일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본문 7절에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해서 다 나누고 흩어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분노, 혈기, 노염 등은 모두 손해나는 것입
니다. 그래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하셨는데 우리가 분노를 품지 않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혈기 안 부려야 됩니다. 혈기 부리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무엇이나 분노로 하지 말고, 불기운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노염으로 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모든 것
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노염이나 혈기나 분노가 나오게 되면 시므온과 레위같이 저주 받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다 흩어지게 됩니다.
4. 유다에 대한 예언
유다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날 것임
본문에서는 열두지파들에게 하늘의 복을 각자의 분량대로 축복해주었습니다. 각자가 행한대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축복해 주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유다지파는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9절 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고 하였습니다.
사자는 맹수의 왕이라고 합니다. 모든 짐승의 왕입니다. 그러니까 왕권을 가르칩니다. 유다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5절에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실 것과 그 왕권을 가르친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원수의 목을 잡아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굴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 상반절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라고
한 것은 사자가 그 짐승을 잡아먹을 때 움켜 찢어서 잡아먹으려고 높은 반석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를 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를 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상반절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홀이라는 것은 왕권을 가르칩니다. 홀은 왕이 갖고 있는 지팡이를 뜻하는 것입니다. 지휘봉 비슷한 것입니다.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라는 것도 치리자, 통치권, 지팡이, 권세를 가리킵니다. 본문
10절 중간에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라고 하였는데 실로라는 뜻은 화목자, 평화의 왕자라는 뜻이며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화목자, 평화의 왕자, 실로, 모두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 지파에 모든 족속이 복종을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짐승이므로 유다 지파가 화평한 지파요 포도와 우유가 넘쳐서 풍족할 것을 말했
습니다. 신령한 뜻은 유다지파에서 평화의 왕인 그리스도가 나와서 은혜와 진리가 넘쳐 나올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나귀와 나귀새끼같은 사람까지 다 혜택을 입고 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포도주에 옷을 빤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옷을 빤다는 것입니다. 모든 더러워진 복장을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나와서 빨아서 정결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포도주를 많이 먹어서 눈이 붉고, 우유를 많이 마셔서 이가 희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눈, 감격에 넘치는 눈을 가르칩니다. 또 우유를 인하여 이가
희다는 것은 이 우유도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치는데 은혜와 진리로 인하여 이가 희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인하여, 진리를 많이 먹어서 건강하고 윤택해 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가 희어 졌다는 것입니다.
범죄로 장자권중 그리스도의 진리권은 유다로, 가독권[家督權]은 요셉으로 넘어감
유다 지파는 이런 그리스도의 지파인 동시에 진리의 지파입니다. 그리스도와 진리. 그래서 제일 축복 많이 받은 지파가 유다 지파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로 돌아갔지만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에서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세와 진리는 유다 지파에게 다 주셨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 내려와 르우벤 지파로 이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것과 집을 다스리고 인도하는 가독권(家督權)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갈라졌습니다. 르우벤이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 속에 포함했던 두가지를 나누어서 그리스도의 진리권은 유다 지파에다 주고, 가독권은 요셉 지파에다 주었습니다. 가독권(家督權)이라는 것은 집을 다 총괄하고 다스리고 인도해 나가는 권세를 말합니다. 여기서 갈라졌습니다. 르우벤이 맏아들로서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르우벤 지파는 왜 장자권을 빼앗겼습니까? 범죄했기 때문에 빼앗겼습니다. 간음죄를 범했기 때문에 빼앗겼습니다. 특별한 위력과 능력과 영광이 처음에는 월등했지만 간음죄를 범하는 바람에 다 빼앗겼습니다. 그 두 가지 권세를 다 겸했었는데 그만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