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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6일 토요일

이병규목사설교집 15 창세기上 목차와색인

이병규목사설교집 15 창세기上 목차와색인

1. 천지 창조(天地創造) (창 1:1-31) · 7
2. 에덴동산과 선악과 (창 2:1-25) · 25
3. 하와가 뱀에게 미혹됨 (창 3:1-5) · 57
4. 실낙원(失樂園)의 원인 (창 3:1-24) · 71
5. 산 제사와 죽은 제사 (창 4:1-12) · 89
6. 가인과 아벨 (창 4:1-26) · 99
7. 하나님과 동행하여 승천한 에녹의 신앙 (창 5:1-32) · 117
8. 에녹의 신앙과 신앙의 계보 (창 5:22-32) · 129
9. 노아시대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창 6:1-14) · 135
10. 노아 시대의 죄악과 방주 준비 (창 6:1-22) · 151
11. 심판(審判) (창 7:1-24) · 167
12. 회 복 (창 8:1-22) · 173
13. 무지개 (창 9:1-29) · 179
14. 저주 받은 자와 축복 받은 자 (창 9:18-10:32) · 195
15.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돕는 사람이 되라 (창 9:24-27) · 215
16. 바벨탑 (창 11:1-32) · 227
17.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으라 (창 12:1-3, 히11:8-16) · 245
18. 새 출발하여 말씀을 따라가라 (창 12:1-4) · 257
19.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의 복 (창 12:1-8) · 267
20. 아브라함의 실패와 하나님의 구원 (창 12:9-20) · 281
21. 아브라함의 신앙노선과 롯의 신앙노선 (창 13:1-18) · 289
22. 아브라함이 4대 연합국을 이김 (창 14:1-15:1) · 307
23. 믿음으로 의인된 아브람이 받은 복 (창 15:5-18) · 321
24. 사래가 인본주의를 씀으로 실패함 (창 16:1-10) · 331
25. 육에 속한 신자 이스마엘 (창 16:12-16) · 343
26. 할례(割禮)의 언약 (창 17:1-27) · 357
27.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함 (창 18:6-32) · 379
28.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 (창 19:1-22) · 401
29. 소돔 고모라의 멸망과 롯의 벌거벗은 구원 (창 19:19-38) · 411
30.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정을 보호해 주심 (창 20:1-18) · 419
31. 말씀대로 권고하시는 하나님 (창 21:1-2) · 429
32. 이삭과 이스마엘 (창 21:1-22) · 443
33.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자 (창 22:1-24) · 461
34. 사라를 장사지내기 위해 막벨라 밭을 삼 (창 23:1-20) · 485
35.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이루어진 결혼 (창 24:1-67) · 507
36. 에서와 야곱이 장자권을 매매함 (창 25:1-34) · 523
37. 이삭의 창성 (창 26:1-35) · 539

1 천지 창조(天地創造) (창 1:1-31) 1992/4/5 주일오전
2 에덴동산과 선악과 (창 2:1-25) 2001/6/2 주일오전
3 하와가 뱀에게 미혹됨 (창 3:1-5) 1984/1/2 사경회
4 실낙원(失樂園)의 원인 (창 3:1-24) 2008/11/2 주일오전
5 산 제사와 죽은 제사 (창 4:1-12) 1998/7/26 주일오전
6 가인과 아벨 (창 4:1-26) 1984/1/3 사경회
7 하나님과 동행하여 승천한 에녹의 신앙 (창 5:1-32) 1998/5/10 주일오후
8 에녹의 신앙과 신앙의 계보 (창 5:22-32) 1984/1/3 사경회
9 노아시대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창 6:1-14) 2000/12/10 주일오전
10 노아 시대의 죄악과 방주 준비 (창 6:1-22) 1991/4/14 주일오전
11 심판(審判) (창 7:1-24) 1994/6/ 수양회
12 회복 (창 8:1-22) 1994/6/ 수양회
13 무지개 (창 9:1-29) 1994/6/ 수양회
14 저주 받은 자와 축복 받은 자 (창 9:18-10:32) 1984/1/4 사경회
15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돕는 사람이 되라 (창 9:24-27) 1994/6/ 수양회
16 바벨탑 (창 11:1-32) 1984/1/4 사경회
17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으라 (창 12:1-3, 히11:8-16) 2005/2/13 주일오전
18 새 출발하여 말씀을 따라가라 (창 12:1-4) 2002/1/6 주일오전
19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의 복 (창 12:1-8) 2006/9/24 주일오전
20 아브라함의 실패와 하나님의 구원 (창 12:9-20) 1984/1/5 사경회
21 아브라함의 신앙노선과 롯의 신앙노선 (창 13:1-18) 2008/9/28 주일오전
22 아브라함이 4대 연합국을 이김 (창 14:1-15:1) 2008/10/5 주일오전
23 믿음으로 의인된 아브람이 받은 복 (창 15:5-18) 2008/10/12 주일오전
24 사래가 인본주의를 씀으로 실패함 (창 16:1-10) 미상 미상
25 육에 속한 신자 이스마엘 (창 16:12-16) 미상 미상
26 할례(割禮)의 언약 미상 (창 17:1-27) 2004/6/20 주일오전
27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함 (창 18:6-32) 1984/2/15 신학교 종강예배
28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 (창 19:1-22) 1996/1/21 주일오전
29 소돔 고모라의 멸망과 롯의 벌거벗은 구원 (창 19:19-38) 1984/2/15 수양회
30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정을 보호해 주심 (창 20:1-18) 1984/2/15 수양회
31 말씀대로 권고하시는 하나님 (창 21:1-2) 1984/2/15 수양회
32 이삭과 이스마엘 (창 21:1-22) 1984/2/15 수양회
33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자 (창 22:1-24) 1996/2/11 주일오전
34 사라를 장사지내기 위해 막벨라 밭을 삼  (창 23:1-20) 1998/10/25 주일오후
35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이루어진 결혼 (창 24:1-67) 1997/ 27 수요예배
36 에서와 야곱이 장자권을 매매함 (창 25:1-34) 2004/ 29 주일오전
37 이삭의 창성 (창 26:1-35) 1997/09/10 주일오전

2017년 1월 5일 목요일

창세기 50:15-26 요셉의 신앙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요셉의 신앙
창세기 50:15-26

15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17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19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2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십 세를 살며 23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 되었더라 24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1. 장자의 신앙을 가진 요셉

히브리서 11장 22절에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임종할 때에 자기가 세상 떠난 뒤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실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해골을 부탁하였습니다.

요셉의 신앙에 대해서 살펴보면, 역대하 5장 1절에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장자의 명분에 합당한 신앙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장자의 축복을 받은 신앙을 요셉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믿음이 참 좋았습니다. 여기서 장자의 명분과 축복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걷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을 다 받는 신앙인 것입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장자의 신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친히 요셉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또 성령의 감동이 어렸을 때부터 요셉에게 충만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아 잘 해석하고 증거하였습니다.
요셉이 어린 시절에 꿈을 꾸고 그 꿈의 내용을 부모와 형제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꿈에서 요셉이 곡식을 묶었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것에게 절하였다고 하였고, 또 다른 꿈에서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꿈은 보통 꿈이 아니고 하나
님께서 계시로 주신 꿈입니다. 장자의 축복이 요셉에게 갔기 때문에 요셉이 어렸을 때부터 영감이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언제나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계시를 바로 깨달았습니다. 애굽에서 감옥에 갔을 때에도 떡 관원장과 술 관원장이 꾼 꿈을 요셉이 잘 해석해주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신 꿈인데, 요셉이 영감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잘 풀어주었습니다. 또 바로 왕이 꿈꾼 것도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신 것인데, 그것도 요셉이 잘 해석 해주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를 잘 알아 깨달았으며 해석도 잘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신앙을 어렸을 때부터 가진 것 같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경말씀입니다. 지금은 꿈으로 계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꿈꾼 것은 제 꿈 아니면 개꿈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믿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에 기록을 해주셔서 하나님과 하나님 뜻을 알게 해주시는 시대입니다. 요셉의 시대와는 다릅니다. 요셉의 신앙은 어렸을 때부터 성경말씀을 잘 알고 해석도 잘하고 그 내용 역시 잘 믿은 신앙입니다.

2.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형통하게 된 요셉

요셉의 신앙에 대하여 창세기에 몇 가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였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3절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가서 종살이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주인이 보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모든 일에 형통한 것을 보고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가 범사에 형통한 것을 그 주인이 알고 모든 사무를 그에게 맡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알았습니다. ‘아,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다 형통하게 해주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알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17세에 팔려가서 11년을 종살이했습니다. 그 11년 동안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알았습니다. 또 요셉이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한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해주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주인인 보디발이 그 가정의 제반사를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요셉으로 자기 가정의 총리를 삼은 것입니다. 보디발이 자신의 가정의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다고 했는데, 모든 것이 다 잘 되었습니다. 그 집에 모든 것이 다 형통하고 잘 되었습니다. 복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복이 그 집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종살이도 잘합니다. 무엇이나 맡긴 것은 다 잘하고, 또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주시니까,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니까, 모든 것이 다 잘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요셉이 감옥생활도 잘했습니다. 종살이만 잘 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2년간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감옥에서도 생활을 잘함으로 전옥이 감옥의 제반사를 그에게 다 맡겼습니다. 또 애굽의 떡 관원장과 술 관원장이 감옥에 들어왔는데, 그들이 꿈꾼
것도 요셉이 해석을 잘 해주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들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 꿈의 내용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즉 요셉이 감옥생활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시는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감옥에서도 당면한 문제와 꿈 해석하는 문제를 요셉이 잘 풀었습니다.

이후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셔서 요셉으로 하여금 7년 흉년과 7년 풍년 들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총리로서의 일을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7년 흉년이 올 것인데 어떻게 해야 그것을 잘 통과할 수 있겠는가? 흉년 들기 전, 7년 풍년이 올 때에 곡식을 많이 모아서 쌓아 놓았다가 그 다음 7년 흉년이 올 때에 팔면 된다.’ 요셉이 이것을 미리 알고 7년 풍년 동안에 곡식을 많이 사서 쌓아 놓았다가 그 다음 7년 흉년이 올 때에 내어 팔았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이 애굽 전체를 구원하고 자기 형제들을 다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다 구원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을 형통하게 해주셨고, 그 결과 요셉이 어디에 있던지 무슨 일을 하던지 다 잘했습니다. 부모의 슬하에서 심부름을 할 때에도 다 잘했고, 애굽에 팔려가 종살이를 할 때에도 다 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했습니다. 그 다음에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했습니다. 그리고 애굽 전국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잘 아라서 모든 것을 잘 했습니다. 요셉 같은 사람은 아무데나 갖다 놓아도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무엇을 맡겨도 다 잘합니다. 부모의 슬하에 있을 때도 잘하고, 종살이 할 때도 잘하고, 감옥에 갔을 때도 잘하고, 총리생활도 잘했습니다. 요셉 같은 사람이 총리가 되면 그 나라가 바로 됩니다. 또 요셉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그 나라가 바로 됩니다.

3. 시험을 이기는 신앙을 가진 요셉

둘째는 요셉이 시험을 잘 이겼습니다. 창세기 39장 7-9절에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보디발의 집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고 거절하고 같이 있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집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때에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붙들고 동침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요셉이 한 말, 그것이 바로 믿음의 말입니다. 창세기 39장 9절에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
였습니다. 여인은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고서 여인의 요청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합니다. 다윗과 같은 성자도 여자 시험에 넘어가 폐가 망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여인이 와서 붙들고 날마다 청하고 주위에 사람들도 다 없는 상황에서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외딴 데에 혼자 있을 때 와서 동침하자고 할 때에 단순히 거절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는 바로 이 말에 요셉의 위대함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100명의 한 사람 있을지 말지 한 것입니다. 100명이면 99명은 넘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거절하였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는 것을 보면 요셉이 하나님께 죄짓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여 벌벌 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시험에 합격 된 것입니다. 이 죄는 다윗도 이기지 못한 것인데, 여기서 요셉이 이긴 것입니다.

또 그 여자가 그 다음에 강제로 요셉을 붙들고 매달리려고 할 때에 요셉이 자신의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쳤습니다. 이에 그 주인이 들어오니 여인이 상황을 뒤집어 요셉이 자신을 겁간하고자 하였고 자기가 소리를 지르니 그가 옷을 벗어 내버리고 도망쳤다고 한 것입니다. 결국 주인이 화가 나서 요셉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를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감옥에서 2년간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을 이긴 요셉입니다. 우리가 이성관계의 시험부터 잘 이겨야 합니다. 요즘 음란, 방탕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말세가 되어서 이 세상이 노아시대와 같고 소돔 고모라의 시대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성에 대한 시험을 이겨야 됩니다.


4. 형들을 회개시켜 바로 세운 요셉

셋째는 요셉이 형제들에게 잘해주었습니다.
요셉이 열두 형제 가운데 하나인데, 열한 번째입니다. 그런데 열 형들이 요셉을 팔아먹었습니다. 그 당시 막내인 베냐민은 집에 있었습니다. 요셉이 팔려서 애굽에 가서 종살이를 11년 하다가 감옥에 2년 동안 갇혔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감옥에서 나와 애
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총리가 되어서 7년간 풍년이 들었고 그 때에 곡식을 많이 모아서 쌓아놓았습니다. 각 동마다 성마다 창고를 짓고 많이 쌓아 놓았습니다. 그 다음에 7년 흉년이 들게 되었을 때 창고에 있는 곡식을 내어 팔았습니다. 그 흉년은 애굽 뿐 아니라 애굽 부근 전체와 가나안 땅까지 이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곤란할 때에 요셉이 곡식을 내어 팔았다는 것입니다. 애굽에는 곡식이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방에는 곡식이 없었습니다. 풍년들 때 다 먹었던 것입니다. 흥청거리며 다 해먹은 것입니다. 풍년들 때에 다 써 치우고 저축을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앞으로 흉년이 올 것을 알고 저축을 잘 했습니다.

그때 요셉의 아버지가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아들들 보고 애굽에 가서 사오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에 온 것입니다. 그때에 요셉은 총리가 되고 나서 9년이 지났는데 자기 아버지 야곱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아버지네로 곡식을 보내주지 않았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소식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곡식을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곡식을 왜 안 보내 주었는가 하면, 형들이 곡식 사러 올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올 것 아닙니까? 아버지가 시킬 테니까 말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7년 풍년이 지나고, 2년째 흉년이 든 가운데 형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7년 흉년 중에 2년째 되는 해에 형들이 요셉에게로 온 것입니다. 20여 년 전에 갈라진 형들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이 서른 살이었으므로 지금은 서른아홉 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형들은 한 마흔 댓살, 오십 이상이 되었을 것 아닙니까? 형들의 얼굴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총리 옷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니 감히 얼굴 들고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곡식 사러 왔다고만 했습니다. 그때에 요셉이 나와서 반갑게 인사했습니까? 자기가 요셉이라고 인사했습니까? 안했습니다. 시치미 뚝 떼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는 그들이 정탐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결국 정탐인지 아닌지 한 사람을 묶어 가두어 놓고, 그 다음에 막내아들이 있다고 하니 그를 데려 오면 이다음에 만날 수 있다고 하며 나머지 형제들로 놓아 주었습니다. 막내 동생인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자신을 만나지 못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형들 가운데 시므온을 결박하였습니다. 창세기 41장 24절에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취하여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고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시므온을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여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을 제외한 나머지 형들로 하여금 곡식을 사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왜 시므온을 결박하였습니까? 요셉을 팔 때에 시므온이 앞장서 나갔습니다. 시므온이 요셉을 팔아넘기자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동생 팔아먹은 것을 회개 시키려고 시므온을 결박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형들에게 다음에 올 때에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자신의 얼굴을 보지,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것 역시 형제들을 회개 시키는 것입니다. 동생을 판 죄를 회개 시키는 것입니다. 요셉을 판 죄를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또 형제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회개시키려고 요셉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습니까? 쌀자루에 돈을 넣어둔 문제, 금잔을 넣어준 문제, 베냐민을 데려오게 한 문제 등으로 인해서 형들이 얼마나 애간장이 탔겠습니까? 회개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앞으로 이스라엘을 건설할 수 있습니까? 형제들이 과거의 상태로는 앞으로 이스라엘을 건설할 수 없습니다. 회개시켜서 앞으로 이스라엘을 건설하려고 요셉이 여러 가지 면으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진정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베냐민 자루에서 금잔이 나오고 요셉이 베냐민을 종으로 삼겠다고 할 때에 진정으로 다 회개했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가도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하고 다 망하게 되었으니, 그들 전체가 다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히스기야 왕도 좋은 왕이었지만 회개 안 하면 안 됩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려서 회개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15년을 더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회개하여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운다고 했습니다(마 3:10).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 기독교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도끼를 들어 찍지 않으실 것이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도끼를 들어 찍어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회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셉의 형제들과 같이 이렇게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우상이 되는 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고 애굽에서 사 온 양식을 다 먹었습니다. 그런 후에 형들이 아버지에게 다시 곡식을 사오려면 막내인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였으나, 아버지는 베냐민을 못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다 굶어 죽게 되었으니 아버지가 베냐민을 내어 놓았습니다. 창세기 43장 14절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베냐민이 우상이었습니다. 베냐민을 우상화했기 때문에 우상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우상이 되는 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베냐민이 우상인데, 그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상을 그냥 가지고 나가면 안 됩니다. 다 내어 놓아야 합니다. 야곱에게는 막내아들이 우상이었기 때문에, 바로 그것을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형들을 용서해준 요셉

형들이 회개하였을 때 요셉이 용서해주었습니다. 창세기 45장 5-7절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믿음이 얼마나 있습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나를 이곳으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우리 형제들, 우리 가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라고 하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팔아먹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에,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것은 형제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형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 보내시고 종살이하게 하셨다. 감옥에도 2년 간 들어갔다 나오게 하셨다’ 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아니하고 사람의 생각대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반입니다. 이렇게 요셉이형들을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본문 50장 15-18절에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부친을 장사하고 돌아온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이 전에 요셉에게 행한 악을 요셉이 보복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요셉이 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대로 놓아두었으나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이 직접 요셉에게 나아가지 못하고 사람을 내세워서 아버지가 살았을 때에 형들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유언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요셉이 형들에 대해서 마음이 뜨거워서 울었다는 소식을 형들이 듣고 이제는 그들이 친히 요셉 앞에 와서 엎드려 용서를 빌었습니다.

본문 19-21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와서 용서를 빌 때에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에게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하면서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한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그들은 요셉을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해하려고 했지만 도리어 그것이 유익이 된 것입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과 같은데, 형들은 화를 주었지만
하나님께서 복으로 내리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는데, 내가 이제 어떻게 하나님을 배신하겠습니까?’라고한 것입니다.

요셉은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랑으로 그들을 대접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신앙입니다. 종으로 팔아먹은 형제들, 그 형제들에게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애굽으로 오게 된 것은 형제들이 팔아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임을 요셉이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애굽으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대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요셉의 이러한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요셉의 경우 그 형제들이 자신을 종으로 팔아먹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살이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보내신 것입니다. 형들이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6.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는 요셉

본문 22-23절에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젊었을 때에 많은 고난을 받았으나 그것을 다 믿음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애굽에서 110세까지 살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자손 3대를 보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부친께 자신의 두 아들을 바쳤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두 아들을 창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본문 24-26절에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 가겠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이스라엘을 권고하셔서 인도해 주실 것이니, 그때에 그의 해골을 메고 가겠다고 하라고 한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맹세해 주셨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애굽에 와서 살지만 우리나라는 가나안 땅이다. 하나님께서 정녕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권고해 주실 것이다. 지금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지만 정녕 권고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갈 것을 맹세하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을 종살이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는 400년 후에 올라갈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셉 때에 애굽에 가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400년 후 먼 장래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의 삶은 나그네 생활이다. 임시로 와서 우거하는 생활이다. 이스라엘의 나라는 가나안 땅이다. 하나님께서 정녕 너희를 권고해 주실 것인데,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요즘 우리로 말하자면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녕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인데, 그 소망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신앙, 곧
소망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요셉이 왜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고 했습니까? 이때에 요셉이 가나안 땅에 자신의 해골이 묻히기를 원하면 가나안 땅에 묻힐 수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인데,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하면 가나안 땅에다 묻어 줍니다. 거기에 장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골이 가나안 땅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부흥시키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신이 죽은 다음에라도 요셉의 해골을 보고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신다. 요셉이 그때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는
가나안 땅이다’라는 신앙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셉이 죽은 다음 그 해골을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고센 땅에 매장하지 않았습니다. 시신을 방부처리하여 부패하지 않게 만들어 여러 사람들이 가서 그 관을 보도록 하였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400년 동안을 살면서 가나안 땅에 갈 소망을 잊어버리고 신앙이 타락되어 갈 때가 많이 있을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신의 해골을 보고 ‘메고 가라고 했다. 간다. 우리가 살 땅은 가나안 땅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다’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신앙을 깨우치려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요셉의 해골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400년 동안 깨우쳤습니다. 무엇이 깨우치게 했습니까? 해골을 메고 나가라는 요셉의 유언 한마디, 또 가나안 땅으로 간다는 예언 한마디입니다. 이 말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400년 동안 애굽에서 살 때에 신앙을 깨우쳐 주고
다시 북돋아 주며 부흥시켜 준 것입니다. 400년간 요셉의 해골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하여 요셉이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라고 한 것입니다. 실제로 해골은 아무데나 묻어도 괜찮습니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의 해골을 보고, 또 이다음에 메고 나가라는 요셉의 유언을 받들어서 그 말을 기억할 때마다 그들의 신앙이 깨우쳐 졌습니다. ‘우리나라는 가나안이다’라고 깨우쳐 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나그네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본향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하늘에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소망하고 나가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400년을 깨우친 요셉의 해골의 신앙, 이것을 우리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49:33-50:21 야곱의 예언과 유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야곱의 예언과 유언
창세기 49:33-50:21

49:33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50:1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 맞추고 2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4곡하는 기간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청컨대 바로의 귀에 고하기를 5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6바로가 가로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비를 장사하라 7요셉이 자기 아비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장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장로와 8요셉의 온 집과 그 형제들과 그 아비의 집이 그
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때가 심히 컸더라 10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리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12야곱의 아들들이 부명을 좇아 행하여 13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요셉이 아비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군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15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17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1. 야곱이 사후에 가나안 땅에 장사해 줄 것을 명령함

임종시까지 깨어서 하나님을 잘 섬긴 야곱의 신앙

본문 49장 33절에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임종시에 할 일을 다 하고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야곱이 죽기 전에 요셉을 불러다가 자기가 세상을 떠나면 가나안 땅에 장사 해 달라고 맹세를 시켰습니다.
창세기 47장 29-31절에 “이스라엘이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 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 하리이다.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일백 사십 칠세가 되어서 죽을 기한이 가까워서 요셉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손을 야곱의 환도 뼈 아래 넣어서 맹세시켜서,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선영이라는 것은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 장사해 달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한다고 아버지인 야곱에게 맹세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한 것은 야곱이 다 늙어서 침상에 누워 거동을 못하는 때입니다. 다니지를 못하고 겨우 침상에 누었다 일어났다 하는 정도인데, 침상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하는 것은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늙어서 세상을 떠나 갈 때에도 깨어서 하나
님을 잘 섬긴 야곱의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서 열 두 형제를 다 축복해 주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 돌아갔습니다. 야곱은 죽을 때까지 깨어있는 신앙으로 열 두 아들에게 축복하고 가나안 땅에 대한 견고한 소망을 가지고 후손에게 가나안에 돌아갈 소망
을 가지도록 교훈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침상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침상에서 발을 거두었다’라고 했습니다. 일어나 앉았을 때에는 침상에서 겨우 일어나 다리를 걸치고 발은 아래 땅을 짚고 침상에 앉아 축복해 준 것 같습니다.

야곱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감

야곱은 14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향수하였고, 이삭은 180세를 향수하였고 야곱은 147세를 향수하였습니다. 아브라함보다 이삭이 5년을 더 살았습니다. 이삭이 야곱보다 33년을 더 살았습니다. 요셉은 11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보다 37세를 더 살았습니다. 요셉은 총리대신으로서 생활을 잘 했을 텐데, 영양 섭취를 많이 했어도 일찍 죽었습니다.
누가 제일 많이 고생 하였습니까? 야곱이 고생을 제일 많이 하였습니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147세를 살았습니다. 기운이 진하여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기 전에 부탁을 했습니다. 창세기 49장29-32절에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
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굴이 아마 큰 모양입니다. 굴이 상당히 큰데 그곳에 아브라함과 사라를 장사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굴속에 장사지내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이삭과 리브가를 죽은 다음에도 굴속에 장사지냈습니다. 야곱도 자기 아내 레아가 죽은 다음에 굴속에 장사지냈습니다. 여러 사람을 장사지낼 만큼 큰 굴인 것 같습니다.

2. 야곱이 죽으매 가나안 땅에 장사할 허락을 바로에게 맡음

요셉의 효성

본문 50장 1절에 “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 맞추고”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아버지 얼굴에 다가 구푸려 울며 ‘죽은 아버지’하고 입 맞추었습니다. 죽은 아버지하고 입 맞춘 사람 보았습니까? 어떤 할머니가 수해가 나서 손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염리동에서 할머니 손자가 죽었는데 입을 맞추었습니다.

요셉이 약 56세 이상 60세 거의 다 되어 요셉도 나이 들었는데 자기 아버지 죽은 다음에 가서 아버지에게 얼굴을 굽혀 입을 맞췄다는 것은 아버지를 보통 사랑하고 사모한 것이 아닙니다. 보통 이상입니다. 어떤 사람 보니까 어머니가 젊어서부터 과부가 되어서 외아들을
길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어머니가 떠날 때 그 아들이 없었습니다. 다른데 갔다가 온 것입니다. 자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보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과부로 젊어서부터 외아들을 기르고, 돈을 벌어서 대학까지 다 보내주었는데 어머니가 세상 떠난 후에도 얼굴 한번 안 보더랍니다. 내가 다 섭섭했습니다. 그래도 세상 떠날 때 보지 못했으면, 와서 어머니가 진짜 돌아가셨는지, 살아나지 않을까? 하고 한 번이라도 봐야하는데 안 봤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요셉하고 천지차이입니다.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그 아들도 어머니를 사랑 했지만 어머니가 세상 떠났으니까 무서워서 안 들여다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체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체 무서울 것 하나도 없습니다. 시체가 뭐가 무섭습니까? 산 사람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목숨만 끊어졌지 산사람과 같다고 생각하면 시체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시체를 상당히 무서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얼굴을 구푸리고 울고 입을 맞추고 하는 것을 보면 요셉은 부모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시체에다 입 맞춘다고 해서 사랑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입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본받을 필요 없습니다. 시체는 쓰고 살던 장막집입니다. 장막 집에 입 맞추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살았을 때 잘해야 합니다. 요셉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 효도했다는 것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지, 입 맞추는 것을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부친을 존귀하게 장사지냄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를 아비의 몸에 넣게 했다고 했습니다. 향 재료를 넣는데 얼마나 걸렸다고 했습니까? 40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 당시 애굽이 세계 1등 국가이니까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부패하지 않도록 향 재료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애곡하는 날이 70일입니다. 왕궁에서 특별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이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또 왕궁이 아니라도 특별한 사람의 부모가 떠나면 이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보통사람들 죽을 때 70일을 곡하면 그것만 해야지 다른 것은 못 합니다. 옛날에 하던 풍속입니다. 40일 동안 향 재료를 넣었기 때문에 70일이 지나도 썩지 않고 냄새도 안 나는 것입니다.
요즘은 세상 떠난 다음에 주사 놓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 죽은 다음에 방부제를 섞어가지고 링거에다 매달아 놓으면 다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며칠 지나도 하나도 안 썩는다고 합니다. 그런 약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안 썩어가지고 무엇을 합니까? 장례할 때
에 썩어서 냄새나지 않으면 또 무엇을 하겠습니까? 장례 후에 썩어질 것인데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향 재료를 넣고, 70일 동안 울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괜히 산사람들 일만 못하고, 산사람들이 그것 하느라고 다른 일을 못하고 고생만 합니다. 옛날 풍속이 참 사치스러운 풍속입니다. 시체를 너무 존귀하게 여기다보니까 이런 풍속을 만들었는데 그 바람에 다른 일을 못합니다. 70일 동안 여러 사람이 일을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3일장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3일후에 땅에다 묻는 것입니다.
2일장도 괜찮습니다. 너무 오래 둘 필요가 없습니다. 애굽의 풍속은 하루라도 좀 더 두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 같습니다. 더 두면 무엇을 합니까? 70일 동안 있다 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70일 동안 애곡을 했다는데 애곡하는 것도 상주들만 우는 것이 아니고, 그 때는 세상 떠나면 울음꾼을 불러옵니다. 돈 받고 와서 울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울음꾼들이 오면 그 사람들이 우는 것이 전문이니까, 와서 ‘아이고, 아이고’ 통곡을 하면서 울어주는 것입니다. 하루 몇 번씩 울어줍니다. 울음꾼을 불러다가 돈을 주고 이렇게 70일 동안 울어줍니다.

본문 50장 4-5절에 “곡하는 기간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청컨대 바로의 귀에 고하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70일이 지난 다음에 요셉이 상주니까 직접 바로에게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우리 아버지가 맹세한대로 가나안 땅에 파 둔 무덤에 장사해 달라고 했으니, 나로 올라가서 장사하게 해 달라고 사람을 보내서 허락을 받게 했습니다. 바로가 안 올까봐, 또 염려 할까봐서 다시 오겠다고 허락을 맡으라고 했습니다.

3. 야곱을 가나안 땅에 장사함

본문 50장 6-8절에 “바로가 가로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비를 장사하라. 요셉이 자기 아비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장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장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 형제들과 그 아비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바로가 ‘장사하고 오라’고 허락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장사하러 누구누구 갔습니까? 바로의 궁에 바로의 모든 신하가 올라갔다고 했는데 신하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유지들, 원로들, 애굽 땅의 모든 장로들이
다 모였습니다. 또 요셉의 신하, 바로 궁에 있는 신하만 해도 수 백명은 될 것입니다. 전국 장로 다 모이면 수백 명, 아마 수천 명은 될 것입니다. 또 요셉의 온 집이 다 올라가고 아이들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본문 50장 9절에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고 하였습니다. 병거와 기병과 군대까지 다 동원한 것입니다.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때가 켰던 것입니다. 아마 수백 명 혹은 천여 명 수천 명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자
손 가운데 이 만큼 크게 장사한 것은 야곱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전무후무 합니다. 후에도 이만큼 크게 장사한 적이 없고 아브라함이나 이삭도 이렇게 장사한 적이 없습니다. 장사를 제일 화려하고 제일 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했습니다. 또 애굽 최고의 고관들이 다 동원이 되
고 군대가 다 동원이 되어서 병거와 기병대가 따라가고 하는 것을 보면, 야곱의 장례식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전무후무하게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심히 그 때가 컸더라’고 했습니다. 수천 명이 올라간 것입니다. 수천 명이 그 장례식을 따라서 가나안 땅으로 간 것입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 얼마나 멉니까? 본문 50장 10-11절에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리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가는 길입니까?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약 10일 길이나 되는 먼 길입니다. 아마 열하루 더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는 도중에 아닷 타작마당에서 7일 동안 쉬면서 애곡하였습니다. 가나안 주민들이 그것을 보고 애굽 사람의 곡함이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 행렬이 애굽에서부터 왔고 장례식이 애굽식이요 야곱의 자손에 비해 많은 조문객이 애굽인이고 우는 사람들도 애굽 말로 울었기 때문입니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옴

요셉과 그 형제들이 아버지 야곱을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장사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왔습니다. 본문 50:12-14절에 “야곱의 아들들이 부명을 좇아 행하여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
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요셉이 아비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군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고 하였습니다. 돌아올 때 요셉만 애굽으로 오지 않고 왜 다른 형제들도 같이 돌아왔습니까? 다른 형제들은 가나안 땅에 머무를 수도 있는데 말입
니다. 그런데 왜 요셉과 그 형제들이 모두 돌아온 것입니까?
그것은 아직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습니다. 또 요셉이 애굽으로 돌아오겠다고 바로와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겠다는 것은 자기 혼자만 온다는 것이 아니고 형제들도 같이 온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까지 애굽에서 살면서 많은 고난과 핍박과 학대를 받으며 낮아지고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시련을 통과하면서 연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나와야 됩니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연단을 받아서 인격이 만들어진 다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과 환난이 올 때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받아야겠습니다.

4. 요셉의 형제들의 불신앙과 두려워 함

야곱을 장사하고 돌아온 요셉의 형들은 전에 요셉에게 행한 악을 요셉이 보복하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본문 50장15-17에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아버지가 살았을 때는 아버지를 생각해서 형들을 그냥 두었다가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니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긴 것입니다. 잠언 28장 1절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직접 요셉에게 나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아버지가 살았을 때 형들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유언했다”고 전했습니다. 형들이 이렇게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요셉을 믿지 못하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형제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요셉을 두려워
하고 불신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말을 듣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요셉이 진정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고 위해 주었으나 형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울었습니다. 지금까지 17년 동안 형들을 사랑하며 돌봐 주면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었는데, 요셉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복수할까봐 의심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두 번째는 형들의 불신앙적인 태도를 보고 너무 불쌍해서 운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우신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1:25-35에 부활이요 생명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 나사로가 죽어 생명이 없다고 우는 사람들의 불신앙을 보고 우신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이 마음이 뜨거워서 울었다는 소식을 형들이 듣고 직접 요셉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본문 50장 18절에, “그 형들이 또 친히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하면서 형들이 요셉에게 와서 엎드려 용서를 빌었습니다. 노인이 된 나
이 많은 형들이 와서 엎드려서 절하는 것을 볼 때 요셉은 어렸을 때 꾼 꿈이 다시 한번 생각났을 것입니다.

5. 요셉이 형제들에게 사죄와 施恩(시은)약속

본문 50장 19-21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형들이 애굽에 자기를 팔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를 앞서 애굽에 보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도록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하면서 현재까지 잘해 준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하고 자녀들까지 양육하겠다고 약속하며 위로했습니다. 요셉은 여기서도 장자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우리도 요셉의 신앙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창세기 49:19-25 요셉에 대한 예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요셉에 대한 예언
창세기 49:19-25

19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20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을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21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2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24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25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
의 복이리로다 26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1. 여종의 아들들에 대한 예언

“갓”에 대한 예언

본문 19절에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갓을 위하여 핍박과 공격을 받겠으나 백절불굴의 용기로 승리할 것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7-1절에 빌라델비아 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핍박을 많이 했으나 적은 능력을 가지고 끝까지 참으며 말씀을 지켜 나갔기 때문에 빌라델비아의 교회가 문이 열리고 면류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핍박과 공격을 받을 때 하나님만 의뢰하고 끝까지 참으며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면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아셀”에 대한 예언

본문 20절에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셀에게서는 기름진 식물의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신령한 양식을 공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령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성도와 교회는 복이 있습니
다(마 24:45-46). 아셀지파가 왕에게까지 식물을 공급했다는 것은 귀한 직무로 복 받은 것입니다.

“납달리”에 대한 예언

본문 21절에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납달리에게 자유와 아름다운 소리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시편 18편 33절에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라고 하였고, 하박국 3장 19절에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슴은 높은 곳에서 뛰어 다니며 좋은 꼴을 먹는 짐승입니다. 시편 42편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하였는데,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한 것처럼 여호와를 찾기에 갈급한 납달리 지파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돌아다니고, 높은 곳을 빨리 뛰어 다니고, 아름다운 소리는 내는 것처럼 여호와를 찾기에 갈급하며 아름다운 노래를 내는 즉 바위틈 낭떠러지에 가서 기도하는 소리, 성도의 영이 새롭게 되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를 내는 성도와 교회는 아름답습니다. 납달리 지파는 높은 곳에 뛰어다니는 지파이며, 또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좋은 지파입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아름다운 소리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납달리 지방에서부터 천국 복음을 선포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또 아가서 2장 14절에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기도하는 성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위틈 낭떠러지를 찾아가서 기도하는 성도의 음성이 아름답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3절에는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새 노래가 아름다운 소리입니다. 새 노래는 성도의 영이 새롭게 되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납달리 지파는 좋은 지파입니다.

2. 요셉에 대한 예언

본문 22-26절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많은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요셉이 많은 축복을 받은 것은 요셉이 믿음을 잘 지켰으며 부모, 형제에게 많이 봉사하였고, 그의 신앙 인격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에게 특별한 것은 24절에 “그의 팔을 힘입어”, 25절에는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와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와 같이, 특별히 하나님과 관련된 말이 많이 나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부인이 유혹할 때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득죄하리이까”하였는데, 이와 같이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신앙을 따라서 그 신앙대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요셉의 받은 축복

요셉이 받은 축복은 첫째, 창성해지는 복입니다. 본문 22절에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하였는데, 샘 곁의 무성한 가지는 그 뿌리를 샘 곁에 박았으므로 더위가 오나 가뭄이 오나 계속 창성해 나갑니다.
이것은 요셉이 창성해 나간다는 뜻입니다. 요셉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처럼 계속해서 무한히 창성해 나가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단과 교회와 성도가 요셉과 같은 신앙으로 계속 창성해 나가야겠습니다.

둘째로 핍박을 받으나 승리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본문 23-24절).
요셉은 하나님을 힘입어서 항상 승리생활을 했습니다. 요셉은 믿음을 지켜 경건하게 살기 때문에 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하나님을 힘입어 나갔기 때문에 다 이겼습니다. 오늘날도 성도들이 하나님을 힘입어 말씀을 지키며 나가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셋째는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실 것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요셉지파에서 반석인 목자가 납니다. 이것은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돌아간 것을 가리킵니다(역대상 5:1-2). 요셉은 이스라엘의 장자로서 이스라엘 12지파를 애굽으로 인도하였고, 후에 요셉 지파에서 여호수아가 나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민수기 13장 16절에 “이는 모세가 땅을 탐지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칭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실제로 데리고 들어간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는 모세의 인도로 나왔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는 요셉지파에서 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민 13:8, 수 1;1-2). 요셉지파가 장자의 명분이 있고 장자의 일을 했습니다. 요셉 자신도 장자의 일을 했습니다. 흉년으로 죽을 형제들을 회개시키고 살린 것은 장자 일을 한 것입니다. 또 어렸을 때에 형제들의 잘못된 것을 아버지에게 고한 것도 장자의 일을 한 것입니다. 가만히 두면 망하겠으니까 바로 세우기 위해 아버지께 말한 것입니다. 바로세울 자는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형들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보고를 한 것입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에 대해서 잘못하는 보고를 받았으면 강단에서 바로 내리치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가 보고 받은 즉시로 강단에서 내치는 것은 100% 손해입니다. 보고 받은 다음에 강단에서 내리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고 그 교인을 바로 세우기 위해 힘을 써야 합
니다. 즉 지혜를 써서 그 교인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교인의 집에 심방을 가서 자연적으로 대화하는 가운데, 들은 소리가 나오게 만들어서 좋은 교훈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가장 지혜 있는 방법입니다. 강단에서 내리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전도 부인들은 보고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인이 잘못 나가는 것을 목사가 모르면 기도해줄 수가 없습니다. 교인이 무슨 시험에 들었다든지, 또 무슨 불만이 있다든지, 그것을 알아야 목사가 위로도 해주고, 바로 세워줄 수가 있습니다. 가정에 불화가 있는 것도 목사가 알아야 기도해 줍니다. 목사가 기도해 주는 것은 큰 것입니다.

넷째는 하늘의 복과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축복하였습니다. “위로 하늘의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령한 복입니다. “아래로 원천의 복”은 요셉지파가 풍성한 생활을 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또 영적으로 신령한 생수가 강 같이 흘러나올 것을 말합니다
(요 4:14).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은 자손이 번성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자손이 많아진다는 뜻도 있습니다.

다섯째는 부여조와 형제 중에 뛰어나게 될 것을 축복하였습니다. “부여조”는 아버지와 그 위의 여러 조상, 즉 이삭이나 아브라함 등을 말합니다. 요셉에게 온 장자의 축복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될 것이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축복은 무한히 창성해 나가고 영원히 계속 될 것을 말합니다. 그 형제 중 뛰어난 자는 요셉을 가리킵니다. 신명기 33장 16절에 요셉을 구별한 자라고 했는데, 이것은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몸을 바친 것을 뜻합니다.

창세기 49:1-12 예언 이병규목사설교집 계약신학

예언
창세기 49:1-12

1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4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1.야곱의 아들들에 대한 예언과 축복

신령한 눈으로 보라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열 두 아들에게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하는 동시에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해 주었습니다(28절). 야곱이 아들들에게 축복해 줄 때에, 그 인격의 분량대로 성령의 인도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즉 믿음의 분량대로, 충성한 분량대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본문 2절에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부를 때에 “야곱의 아들아”라고 불렀고, 말을 들으라고 할 때에는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혈통에 속한
아들들을 불러서 승리자인 아버지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오랜 세월동안 신앙의 많은 경험을 하였고, 또 많은 신앙의 많은 선한 싸움을 싸우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승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나이 147세인데, 많은 신앙의 경험과 지혜와 지식으로 심령의 눈이 많이 밝아졌고 영이 많이 자라났으므로, 야곱이 밝은 심령의 눈으로 아들들의 장래를 바로 볼 수 있고, 바로 말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성령의 감동을 입어 앞으로 되어질 일을 말해주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에 승리한 사람이 말해 주는 것하고, 실패한 사람이 말해주는 것하고 다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이 보고 말 해 주는 것하고, 없는 사람이 보고 말 해 주는 것은 다릅니다. 또한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이 보는 것하고 신령한 눈이 열리지 못한 사람이 보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신령한 눈이 열리지 못한 사람이 볼 때는 잘 될 것 같아도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이 보면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또한 보통 생각할 때는 잘못 된 것 같았는데 신령한 눈이 열린 사람이 볼 때는 잘 된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
한 눈으로 보아야 모든 것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8절에서 마리아가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님 발에 부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습니까? “기름을 허비한다.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구제하지 않고 허비하느냐고”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잘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2-33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한 것은 베드로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이라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그것은 마귀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야곱의 아들아 모여 들어라’하고 또‘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인격과 지혜와 하나님의 은사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눈이 열린 눈으로 너희에게 모든 것을 바로 말해 줄 것이니까 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
로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셔서 12 아들들에게 예언해 주려고 모여서 이 말을 들으라고 한 것입니다. 각자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2. 르우벤에 대한 예언

참 축복의 목적은 믿음을 잘 지키고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임

본문 3절에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끊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이라 하는 것
은 자기의 아들, 야곱의 자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승리한 자의 경험과 지식과 지혜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야곱이 자손들에게 할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바른 말씀입니다. 이것이 축복이라 하지 않습니까? 본문 28절 하반절에 “분량대로 축복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만, 그런데 축복 잘했습니까?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잘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게다가 특별히 시므온과 레위는 저주 받는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했습니다. “저주받는다. 단은 독사 새끼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다”라고 했는데, 무슨 축복을 이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셔서 한 것입니다. 

축복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해야 됩니다. 요새 목사들이 축복을 어떻게 합니까? 무조건 복만 많이 부어 주는 것입니다. 기복적인 신앙으로 목사가 축복 많이 한다고 축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인의 시모 한 분이 축복 많이 하는 교회에 다닙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 목
사님이 집에 왔다고 합니다. 와서 심방 예배를 드리는데 많은 축복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축복을 해 줘서 얼마나 감사하다, 너무 기쁘다, 너무 큰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감개무량하다”고 했습니다. 그럼 축복을 그 집에 많이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사
업이 얼마 있다가 망하고, 그 누군가가 세상 떠났다고 합니다. 축복을 받기는 무엇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입으로만 한 것이고, 귀에만 풍년이고, 말로만 풍년입니다. 그렇다고 축복 다 받을 것 같으면 축복 못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가 축복 받을 일을 해야 축복을 받지, 축복 받을 일을 안 하고 입으로만 축복한다고 하면 말로만 진수성찬입니다. 실제로 복 받을 일을 안 해서 아무것도 받을 것이 없는데 축복해 준다고 복 받습니까? 그것은 사람한테 아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이용하여 아부하여 그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서 자기에게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된 축복이 아닙니다.

또 받는 사람은 속는 것입니다. 번쩍번쩍하는 간판을 보니까 속아 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진실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해야지 그렇게 허황된 말로 축복해 준다고 해서 그것으로 어떻게 복을 받겠냐 하는 것입니다. 참되게, 그 사람 바로 세우고 믿음
잘 지키게 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도록 해는 것이 원 목적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대접 좀 받고 환영받으려고 하는 것은 다 잘못 된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행동입니다. 참된 선지자의 행동이 아닙니다.

범죄하면 하나님의 축복과 장자의 명분을 다 빼앗김

본문 3절에 르우벤에 대해서 처음으로 축복해 주었는데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이라고 하였습니다. 위광은 그 위엄스러운 빛이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탁월하다는 말은 권력이 탁월하다, 맏아들이니까 권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또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맏아들이니까 능력의 시작이고, 기력의 시작이요,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 했습니다. 창세기35장 22절과 신명기 27장 20절에 보면‘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다’고 하였는데 계모와 동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범죄 했기 때문에 본문 4절에 “물이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범죄 하면 그 능력이나 권능이 다 없어지고, 또 위광이나 기력이 다 꺾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범죄하면 그 능력과 권세와 빛이 다 없어질 뿐만 아니라, 장자의 명분을 빼앗깁니다. 그 장자의 위치에서 잘못하면 떨어지고 말게 됩니다. 르우벤은 이렇게 처음에는 출발을 잘 했습니다. 좋은 위치에 있었고, 큰 그 능력이 있었고, 빛이 비추어 나갔지만은 범죄 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상실했습니다. 범죄 하면 다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은사를 준 것, 권능과 권세를 준 것, 탁월하던 것, 뛰어나던 것, 그 빛이 비추어 나가던 것, 이 모든 것을 범죄 하면 다 잃어버립니다. 

‘물의 끓음 같았은즉’이라는 것은 물이 끓어서 넘었다는 것입니다. 물이 끓어서 넘었으니까 이것은 월권한 것이고, 제자리를 못 지켰기 때문에 권능의 탁월함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지만 그만 빛을 다 잃어버리고, 능력도 잃어버리게 된 것입
니다. 그런 잃어버린 상태에서 앞으로 나가게 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범죄 하지 않기를 힘을 써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그냥 유지하면서 발전하려면 범죄 하지 않아야 됩니다.

특별히 7계명을 범하는 간음죄를 범하지 않도록 많은 힘을 써야 됩니다. 이 죄에 한번 빠지면 다 잃어버립니다. 능력과 권세와 뛰어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다 잃어버리고, 자기 위치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비참하게 몰락합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남녀 이성
관계를 철저하게 우리가 범죄 하지 않도록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힘을 쓰고, 요셉과 같이 늘 승리하는 신앙을 가지고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아가페 사랑에서 육적인 사랑, 에로스 사랑으로 기울어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아가페 사랑에서 그 선을 확실히 긋고 있어야 됩니다. 육정적 사랑으로 기울어지면 안 됩니다. 거기서 망하게 됩니다. 르우벤과 같이 다 몰락되고 맙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에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넘어오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다 절도요 강도라는 것입니다. 인정이나 육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다 절도요 강도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귀고 사랑을 해도 언제나 예수님을 통해서 그 사람을 사귀고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사랑하지 못하면, 즉, 육적 사랑으로 기울어지면 망하게 됩니다. 그것이 절도요 강도입니다. 르우벤은 이렇게 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고 넘어갔습니다. ‘끓어 넘치는 자’로 문으로 안 들어가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절도요 강도가 되었고, 또 절도와 강도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뿐만 아니라 르우벤 지파까지 다 이런 가운데 빠졌습니다.
다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모든 것, 능력과 권세를 하나님께서 많이 주셨는데 다 잃어버리고 그만 몰락되고 말았습니다.

3.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

가까운 사람들끼리 당을 만들면 하나님이 흩으심

본문 5-7절에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
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열두 형제 가운데 시므온과 레위가 늘 함께 다니는 단짝입니다. 당파를 모으는 것입니다. 왜 시므온과 짝해서 자기네끼리만 다닙니까? 전부다 해서 열두 형제 밖에 없는데 끼리끼리 돌아다닌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왜 둘이 다닙니까? 시므온과 레위는 본문 5절에 보면 “형제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형제라는 말은 특별히 한 어머니의 형제이기 때문에 둘이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므온과 레위가 가까운 이유는 첫째, 어머니가 같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들이 시므온입니다. 셋째 아들은 누구입니까? 레위입니다. 이렇게 둘째 낳고, 셋째 낳고 이어서 낳은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동복형제인 동시에 또 연이어 낳았다는 것입니다. 연달아 낳았으니까 쌍둥이 비슷합니다. 요새로 말하자면 동창생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격이 비슷합니다. 성격도 맞습니다. 보통 끼리끼리 다니는 것은 성격이 비슷하니까 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하기야 성격이 안 맞으면 끼리끼리 못 다닙니다. 성격이 비슷합니다. 또 성격상 무엇이 맞습니까? 같이 다니면서 못된 짓 하는 것이 맞습니다. 잔인한 성격입니다. 

같은 한 고향 사람끼리, 동창생끼리, 성경 맞는 사람끼리 이렇게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자기와 연령 비슷한 사람끼리, 이력이 서로 통하는 사람끼리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됩니다. 이렇게 돌아가면 반드시 시므온과 레위처럼 됩니다. 그렇게 돌아가면 누구처럼 됩니까? 시므온
과 레위처럼 됩니다. 저주 받는다는 말이 몇 번 있습니까? 시므온과 레위는 두 번 저주 받는다고 했습니다. 또 언젠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였습니까? 나누어 흩으십니다. 마지막엔 다 하나님께서 흩으시고 맙니다. 가만 안 두십니다. 심판이 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나 비슷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끼리만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고 하였습니다. 모이기 잘 한다고 집회라고 하였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가까운 형제 가운데도 가까운 형제고, 또 늘 둘이서 다니고 모입니다. 모여서 또 무엇을 합니까? 모
여서 의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둘이서 모여서 소곤소곤하고 늘 모여서 의논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고 하는 것은 그 집회나 모의에 참예하면 손해만 본다는 것 입니다. 자기네끼리 모여서 소곤소곤하는 것에 참예하면 신앙에 손해만 보니까, 그래서 야곱은 거기에 참예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네 가까운 사람끼리 자주 모이면 믿음만 다 팔아 먹습니다. 인정에 얽매이니까 믿음에 손해만 봅니다. 안 모이는 것이 사실 좋습니다. 참예 안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 모의에 참예하면 심령에 손해보고, 그 집회에 참예하면 영광이 손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혼에 손해를 보니까 의논에 참예하면 안되겠습니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지어다’고 한 것은 그 집회에 참예하면 영광이 다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영광이 없어집니다. 하여튼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도 옳게 안보니까 벌써 영광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회개하고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세우심

그런데 레위는 저주 받았는데 왜 또 제사장이 됐습니까? 그 다음에 진정으로 회개한 모양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쓰십니다. 그때에는 끼리끼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회개하면 됩니다.
우리도 같은 사람과만 같이 만나고 다니고 앉는 그런 버릇을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시므온과 레위처럼 되고 맙니다. 레위지파가 진정으로 회개만 하면 다시 제사장이 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늘 말하는 것은 늘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늘 회개하십시오. 회개하고 바로 서고 그 버릇을 고치면 하나님께서 귀히 쓰는 제사장이 됩니다. 과거에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다고 해도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이런 길을 걷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누구나다 자기에게 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이 있다고 해도 가까운 사람끼리 만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깝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 하고, 좀 더 통하지 않는 사람하고 좀 통하게 하고, 그래야 넓
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또 그래야 원만한 제사장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만한 제사장 자격이 못 됩니다. 신앙이 서로 통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신앙으로 하면 끼리끼리가 안 됩니다. 여러 사람이 다 같이 하는 것이지 자기들끼리 그럴 수 있습니까?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여러 형제들 다 같이 이렇게 취급하면서 다 같이 일을 주고, 다 보호해 주고, 다 같이 길렀지 자기 동생만 위했다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처음에는 동생에게 줄때는 좀 많이 줬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자기 동생에게 특별히 해 준 것이 없습니다. 요셉은 다같이 사랑하고, 도와주고, 기르고, 혜택을 입혀주었습니다. 우리도 원만한 사람이 되려면 다 같이 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만 하지 말고 다같이 도와주고,
사랑하고, 서로 친절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 같이 하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제사장 자격이 됩니다.

분노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로 소의 발목을 끊으면 하나님의 심판받음

본문 6절 하반절에 ‘그들은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라고 하였습니다. 분노와 혈기대로 무엇을 하였습니까? 분노로 사람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혈기는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습니다. 그것을 왜 끊었겠습니까? 소의 발목 힘줄을 왜 끊었습니까? 소의 발목 힘줄을 끊으면 다
니긴 다니지만 힘을 못 쓰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좋은 소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긴 다녀도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소의 발목 힘줄을 끊으면 뛰지도 못하고, 다니긴 다녀도 일을 못합니다. 요새로 말하면 자동차 바퀴에 펑크를 내 놓는 것과 같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남의
자동차 타이어에 푹푹 찔러 가지고 다 펑크 내 놓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돌아갑니까? 남의 자동차를 못 타게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펑크 난 차를 어떻게 타겠습니까? 소의 발목 힘줄을 다 끊어 놓으면 그 사람들이 소를 부리지 못할 것 아니겠습니까? 소
를 부리지 못하게 하며 결국 남에게 손해를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소를 부려서 일 하지 못하게 해서 그 사람을 약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의 약점을, 다른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방편입니다. 뒷전에서 살살 돌아가면 다른 사람들이 소의 발목 힘줄 끊는 것을 모릅니다. 살짝 소한테 가서 싹 끊어놓고 나면 주인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소를 부리려고 하면 소가 맥을 못 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 발목 힘줄이나
끊고 다니는, 남에게 손해나 주는 이런 잔인한 성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말에 '우라기르(うらぎる,裏切る)'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라(うら)는 뒤(裏)라는 것인데, '우라기르(うらぎる,裏切る)'는 ‘뒷전으로’라는 뜻입니다.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뒤를 베다'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배신하다'라는 뜻입니다. 일본 무사들의 세계에서 등을 돌린다는 것은, 상대방을 믿기 때문에 등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믿고 등을 보인 다른 무사의 등을 칼로 베니까,'배신하다'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라기르’는 우리말의 背信(배신)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배신이라고 하는데 일본말은 ‘우라기르, 즉, 뒤에서 벤다는 뜻입니다. 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뒤로 가서 끊어 놓으면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뒤로 모르게 살짝 가서 끊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타이어의 바람을 왜 뺍니까? 왜 그렇게 합니까? 가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발목의 힘줄을 끊는 것은 잔인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발목, 소 발목 힘줄을 끊었다는 것은 남에게 그만큼 남 모르는데 뒷전으로 가서 손해만 주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서 뒷전에서 손해 주는 말, 모든 언사를 안 해야 되겠습니다. 만나서는 괜찮은 체 하고 다니지만, 힘줄을 하나씩 끊어 놓거나, 비방하고 악행하고 그 사람의 약점과 모든 것에 거짓말 보태서 뒤에 가서 훼방해서, 남의 하는 일에 힘을 못 쓰게 만들어 놓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주 받는 일입니다. 직접 만나서 말해 주든지 책망을 해야지, 뒷
전에 가서 힘줄 끊는 식으로 그 사람의 힘을 못 쓰게 끊어 놓으면 그것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 일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본문 7절에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해서 다 나누고 흩어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분노, 혈기, 노염 등은 모두 손해나는 것입
니다. 그래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하셨는데 우리가 분노를 품지 않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혈기 안 부려야 됩니다. 혈기 부리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무엇이나 분노로 하지 말고, 불기운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노염으로 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모든 것
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노염이나 혈기나 분노가 나오게 되면 시므온과 레위같이 저주 받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다 흩어지게 됩니다.

4. 유다에 대한 예언

유다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날 것임

본문에서는 열두지파들에게 하늘의 복을 각자의 분량대로 축복해주었습니다. 각자가 행한대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축복해 주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유다지파는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9절 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고 하였습니다.
사자는 맹수의 왕이라고 합니다. 모든 짐승의 왕입니다. 그러니까 왕권을 가르칩니다. 유다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5절에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실 것과 그 왕권을 가르친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원수의 목을 잡아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굴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 상반절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라고
한 것은 사자가 그 짐승을 잡아먹을 때 움켜 찢어서 잡아먹으려고 높은 반석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를 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를 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상반절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홀이라는 것은 왕권을 가르칩니다. 홀은 왕이 갖고 있는 지팡이를 뜻하는 것입니다. 지휘봉 비슷한 것입니다.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라는 것도 치리자, 통치권, 지팡이, 권세를 가리킵니다. 본문
10절 중간에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라고 하였는데 실로라는 뜻은 화목자, 평화의 왕자라는 뜻이며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화목자, 평화의 왕자, 실로, 모두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 지파에 모든 족속이 복종을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짐승이므로 유다 지파가 화평한 지파요 포도와 우유가 넘쳐서 풍족할 것을 말했
습니다. 신령한 뜻은 유다지파에서 평화의 왕인 그리스도가 나와서 은혜와 진리가 넘쳐 나올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나귀와 나귀새끼같은 사람까지 다 혜택을 입고 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포도주에 옷을 빤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옷을 빤다는 것입니다. 모든 더러워진 복장을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나와서 빨아서 정결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포도주를 많이 먹어서 눈이 붉고, 우유를 많이 마셔서 이가 희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는 눈, 감격에 넘치는 눈을 가르칩니다. 또 우유를 인하여 이가
희다는 것은 이 우유도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치는데 은혜와 진리로 인하여 이가 희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인하여, 진리를 많이 먹어서 건강하고 윤택해 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가 희어 졌다는 것입니다.

범죄로 장자권중 그리스도의 진리권은 유다로, 가독권[家督權]은 요셉으로 넘어감

유다 지파는 이런 그리스도의 지파인 동시에 진리의 지파입니다. 그리스도와 진리. 그래서 제일 축복 많이 받은 지파가 유다 지파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로 돌아갔지만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에서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세와 진리는 유다 지파에게 다 주셨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 내려와 르우벤 지파로 이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것과 집을 다스리고 인도하는 가독권(家督權)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갈라졌습니다. 르우벤이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 속에 포함했던 두가지를 나누어서 그리스도의 진리권은 유다 지파에다 주고, 가독권은 요셉 지파에다 주었습니다. 가독권(家督權)이라는 것은 집을 다 총괄하고 다스리고 인도해 나가는 권세를 말합니다. 여기서 갈라졌습니다. 르우벤이 맏아들로서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르우벤 지파는 왜 장자권을 빼앗겼습니까? 범죄했기 때문에 빼앗겼습니다. 간음죄를 범했기 때문에 빼앗겼습니다. 특별한 위력과 능력과 영광이 처음에는 월등했지만 간음죄를 범하는 바람에 다 빼앗겼습니다. 그 두 가지 권세를 다 겸했었는데 그만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48:14-22 야곱과 장자의 축복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야곱과 장자의 축복
창세기 48:14-22

14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15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19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그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
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1. 이스라엘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함

장자의 축복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사모하고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브라함의아들은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은 야곱과 에서입니다. 따라서 에서와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들입니다. 에서가 맏아들이고 야곱은 작은 아들인데 야곱은 작은 아들이면서도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사모 했습니다.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으려고 에서라고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고 요셉의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장자의 축복이 무엇인데 이렇게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야곱은 애를 썼습니까? 장자의 축복은 두 몫을 받는 것입니다. 신명기21장 17절에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
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장자에게는 두 몫을 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장자에게는 가족 전통의 모든 중요한 복을 다 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장자의 축복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그러면 야곱이 원하는 장자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몇 가지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장자의 축복은 첫째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 장자의 축복 가운데 제일 첫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언제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또 자기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기가 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즉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한 분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벗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장 23절에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벗이 되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벗이 되는 것 이상 더 큰 복이 없습니다. 그것이 제일 큰 복입니다. 이와 같이 야곱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자의 축복 가운데 첫째입니다. 

2)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걸어가려고 애를 쓰는 것

둘째는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즉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는 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받으려고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걸어가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노선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 노선에는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과 롯의 신앙 노선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아브라함을 따라 다니면서 좋은 믿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소돔, 고모라의 풍요로운 것과 잘되는 것을 보고 그곳을 택했습니다. 롯의 신앙은 오른손은 하나님을 붙들고 왼손에는 세상을 붙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7절에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라고 하였는데 롯도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의인이 소돔 고모라의 죄 짓는 사람들을 보고 날마다 심령이 상했다고 하였습니다. 롯의 믿음도 좋은 믿음이지만 롯이 잘못된 것은 한 손에 세상을 붙들고 하나님과 겸하여 섬긴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떤 신앙입니까?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은 오른손도 하나님을 붙들고 왼손도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 한 분만 섬기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고 먼저 선택권을 주었기 때문에 롯이 가지 않는 가나안 헤브론 산골로 갔습니다.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헤브론 산골에서 어떻게 살라고 들어갔느냐?” 하고 물어보면 아브라함은 “나는 하나님으로 살려고 들어갑니다. 세상 것이 없어도 하나님 한 분이면 나는 만족합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은 하나님 한분만 붙들고 살려는 것이고 이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만족합니다. 또 하나님이 살려줄 것을 믿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같이 해 주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야곱이 원하고 사모하는 장자의 축복이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모든 언약과 약속을 받고자 하는 것
셋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해주신 모든 언약, 약속을 받고자 하는 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물려받으려는 것이 야곱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을 전부 다 받기를 원하는 신앙이 장자의 축복을 받기 원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고 약속한 모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첫째는 장차 오실 메시아 즉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네 자손이 하늘에 별 같이 많아지겠다’고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
서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지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에게 약속해주셨는데 그리스도를 받기 원하는 것이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준다고 하셨는데 가나안 땅 받기를 원하는 것이 장자의 축복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 받는 것은 큰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해 준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해준 복을 야곱이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가나안 땅 하나를 값으로 말하면 얼마나 많습니까? 소돔 고모라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롯은 풍요해 보이는 소돔 고모라가 좋아서 한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에는 소돔 고모라를 붙들고 갔지만 아브라함에게는 가나안 땅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에 가나안 땅을 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신령한 구원의 세계, 믿음으로 얻는 모든 영적 축복, 하나님의 나라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모하는 것이 장자의 축복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하나님께 바치는 것, 십일조 드리는 것, 독자 드리는 것, 성전 짓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에는 야곱이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28장 12-13절에 “꿈에 본 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이삭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고 에서를 피해서 밧단아람으로 피난 가다가 벧엘에서 돌 베게 하고 잠잘 때입니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장자의
명분, 장자의 축복 받은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땅에서 하늘에 닿은 사다리를 봤는데 그 사다리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네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땅을 아브라함에게 준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도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야곱이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했고 성전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고 도망쳐서 벧엘에서 돌베개 베고 잠잘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다 나타내 보여주셨는데 이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되고,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따라가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모든 것을 다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자의 축복은 첫째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둘째는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따라가고 셋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
한 모든 약속을 다 받으려고 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음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사모하고 애를 쓰며 ‘어떻게 하면 장자의 축복을 받을까?’하고 전심전력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 형에게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 또 장자의 명분을 살 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아버지 앞에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
니다. 축복 받을 때 어떻게 받았습니까? 제대로 받았습니까? 자기가 에서라고 아버지를 속이고 받았습니다.
창세기 27장 1-4절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고 맏아들에게 에서를 불러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맏아들 에서에게 사냥해 온 고기를 먹고 장자의 축복을 해 준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7장 8-10절에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을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스시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네가 에서라고 해서 장자 축복을 받아라.”라고 했습니다. 리브가가 이삭이 에서에게 장자 축복을 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에서가 사냥하러 간 후에 야곱을 불러 에서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7장 11-19절에 야곱이 어머니에게 “에서 형은 털 사람이고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데 만져 보고 내가 아버지를 속이는 자로 알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겠습니다.”라고 하니 야곱의 어머니가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까 너는 시키는 대로 순종을 해라.”하고 양을 잡아 가지고 별미를 만들어 주고 야곱의 손과 목에 염소 가죽을 감아서 털이 북슬북슬하게 해놨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아버지께 들어가서 아버지를 보고 “사냥해 왔으니까 이것을 잡수시고 축복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네가 누구냐” 그러니까 야곱이 “에서입니다.”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이삭이 “그럼 만져보자.”하고 손을 만져보니까 털이 있어서 속았습니다. 이삭이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지만 손은 에서 손이로구나. 가져 오너라.”하고 음식을 잘 먹고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줬습니다. 즉 속여가지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됐습니까? 속여서 한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속이는 자체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의 축복을 받기를 사모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사모한 것만은 좋은데 방법이 틀렸습니다. 아버지가 속아서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해줬습니다. 누가 잘못입니까? 자기가 에서라고 속인 야곱이 잘못입니까, 어머니가 시켜서 그렇게 했으니까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잘못입니까,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지만 손은 에서의 손이라고 하면서도 속아서 장자의 축복을 해준 이삭이 잘못입니까? 누가 잘못입니까? 셋 다 잘못했습니다. 아버지도 잘못된 것입니다.

왜 잘못 되었습니까? 창세기 25장 2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쌍둥인데 쌍둥이가 출생하기
전에 벌써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나기 전에 어린 야곱이가 장자가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삭도 정신 안 차리고 다 잊어 버렸고, 이삭의 아내도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서로 속고 속이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아버지는 속고, 아들과 아내는 속였습니다.

안 속이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안 속였어도 됩니다. 야곱이 속이지 않아도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어떻게 받느냐 하면 야곱이 염소새끼 잡아가지고 가서 잡수시고 축복해 달라고 하면 됩니다. “너 누구냐”하고 물으면 “야곱입니다” 라고 했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너 나가라. 큰 아들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려고 한다.”고 해서 야곱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냥을 하는데 못 잡게 하시면 에서가 밤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았을 것입니다. 또 그 이튿날도 하나님께서 하루 종일 한 마리도 못 잡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얼마나 배가 고프셨겠습니까? 아니면 에서가 또 사냥하러 다니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게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기다리다가 “이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아, 네가 무엇을 해가지고 왔다고 했으니까 네가 좀 오너라. 하나님께서 네게 장자 축복을 해주시는가 보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다 잘 될 뻔 했는데 서로 다 신앙에서 떠나 있으니까 셋 다 속이고 속은 것입니다.
그러나 속였지만 하나님의 예정대로 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야곱에 준 다음에는 에서에게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줬는데 어떻게 에서에게 다시 주겠습니까?
에서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자기도 축복 해달라고 했지만 해줄 것이 없습니다. 해줄 것이 없어서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창세기 27장 39-40절에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새 아들에게 이와 같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장자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27장 28-29절에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인데 야곱에게 왔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신앙에서 떠나, 축복에서 타락됨

장자의 축복은 하나 밖에 없어서 그것을 누구에게 주느냐가 문제인데 야곱에게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와 별미를 만들어서 가져와서 울면서 장자의 축복을 해달라고 해도 하나 밖에 없는 것을 다 줬기 때문에 줄 것이 없습니다.

에서가 왜 장자의 축복을 못 받았습니까? 실제로는 에서가 장자이기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에서가 받아야 되는데 못 받은 이유는 장자의 신앙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신앙에서 떠나 타락된 사람은 이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타락된 사람에게는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 다. 장자의 축복을 사모해서 받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작은 아들이라도 반드시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장자의 위치에서 떠난 사람이 마지막에 받을 것은 창세기27장 39-40절에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하였더라”는 이것 밖에 없습니다. 장자의 신앙에서 타락된 사람은 결국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된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타락된 사람을 우리가 가서 권면하여 다시 장자의 신앙으로 돌이켜야 되겠습니다. 또 우리 각자가 다 장자의 신앙에 서도록 힘을 써야 됩니다. 이것은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사람이 받습니다.

2. 야곱이 손을 어긋맞아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명분을 줌

야곱이 나이 많아서 늙었습니다. 야곱이 일백 사십 칠 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는데 세상 떠날 날이 가까웠습니다. 그때에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축복을 받으려고 아버지께로 왔습니다. 그때 야곱도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왔다고 하니까 야곱이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절에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고 했습니다.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아버지 앞에 경배하고 그 다음에 축복 해달라고 맏아들 므낫세는 아버지 오른손을 갖다 얹게 했고 작은 아들 에브라임은 왼손에 갖다 얹게 했습니다. 맏아들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손을 어긋맞고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놓고 왼손은 맏아들 므낫세에게 얹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아닙니다.” 하면서 잘못됐다고 했습니다. “이 아이가 맏아들이고 이 아이가 작은 아들입니다” 하고 오른손을 맏아들 위에다 얹으려고 했습니다. 그때에 야곱이 나도 알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다고 하면서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고 므낫세에게 왼손을 얹고 축복해주었습니다. 

3. 장자의 축복이 요셉에게 돌아간 이유

장자의 축복이 왜 요셉에게 돌아갔습니까? 역대상 5장 1절에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
니니라”고 했습니다. 르우벤이 장자인데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장자의 축복이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에게로, 이삭에게서 야곱에게로, 이제 야곱에게서 요셉에게로 갔는데 요셉의 두 아들 가운데 맏아들 므낫세에게로 가느냐,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로 가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야곱이 손을 어긋맞고 장자의 명분을 작은 아들에게 해주어 에브라임이 장자의 명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은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대표입니다. 대표 지파가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라고 해도 되고 에브라임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둘 다 같은 것이니까 에브라임이 북쪽 이스라엘 나라 대명사이고 장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축복해주었습니까? 본문 15절에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이건 삼위일체입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섬기던 하
나님은 성부 하나님이시고,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6절에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본문 17-19절에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아비가 허락지 아니
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손을 바꾸어 어긋 맡겨서 요셉이 도로 바꾸려고 하니까 야곱이 “나도 안다. 그도 한 민족이
되고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고 하며 장자의 축복을 에브라임에게 했습니다.

왜 장자의 축복을 맏아들에게 안 해주고 에브라임에게 해주었는가 하면 평소에 그 두 아들의 믿음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의 믿음도 오랫동안 나타났고 또 므낫세의 믿음도 오랫동안 나타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알았습니다. 요셉도 알았고 요셉의 아버지 야곱
도 알았습니다. ‘에브라임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아서 장자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을 평소 믿음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 믿음을 보고 하나님께 감동을 받아서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평소에 장자의 축복을 사모하는 것,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 또 그 길로 걸어간 것,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걸어간 것을 봐서 장자의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육체적으로 장자라서 장자가 아닙니다. 호주라고 해서 호주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자가 호주이고 장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것 다 받으려고 애쓰는 신앙이 장자의 축복을 받는 신앙입니다.

4.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을 예언함

본문 20-22절에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보다 므낫세가 맏아들이지만 에브라임이 장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모든 복과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모든 것은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장자의 축복이 요셉의 맏아들에게로 간 것이 아니라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것이 몇 가지라고 그랬습니까?
첫째는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믿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가나안 땅은 처음에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한 땅이었는데 믿음으로 정복을 했습니다. 십일조 바치고, 성전 짓고, 독자 바치고, 바치는 생활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받는 것만 장자의 축복 아니고 하나님께 바칠 줄 아는 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누구나 다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돈 많다고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저금통장에 2억 몇 천 만원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도 못 쓰고 누가 먹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떠난 것입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하나님께 좀 바치고 떠났으면 천당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남아 있겠는데 하나도 못 바치고 누가 가졌는지도 모르
고 자기 딸도 못 가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큰 은혜인 줄 알아야 됩니다. 어떤 분은 몇 백억 되는 재산이 있었는데 별로 바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축연보 한다면 그저 10만원, 3만원 이렇게 냈습니다. 30억을 바쳐도 시원치 않겠는데 3만원 냈습니다. 하나도 못 바치고 떠났는데 어떤 여자인지 알지도 못하는 후처가 와서 다 가졌습니다. 참 안 됐습니다. 사실은 바치는 것도 은혜인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요새 주차장 하는데 주차장 연보 바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도 장자의 축복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연보 바쳐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쳐서 하라고 빨리 모든 것이 안 되게 만들어 놓으시고 자꾸 지연되는데 명년에 가서 연보해서 하라고 그러
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장자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에서와 같이 장자의 축복에서 떠난 사람은 하늘 이슬과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칼을 믿고 생활하고 멍에 매다가 벗으면 겨우 떨쳐 버린다고 했습니다. 장자의 신앙을 걷다가 타락된 사람은 그와 같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자의 신앙을 걷다가 타락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건져내려고 애써야 되겠습니다. 장자의 축복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에게, 이삭에서 야곱에게로, 야곱에서 요셉으로 갔다가, 요셉의 아들 둘 가운데서 에브라임으로 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장자의 축복을 받은 요셉, 에브라임, 야곱의 신앙을 가지고 장자의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장자의 노선, 장자의 길을 걷는 교회, 장자의 길을 걷는 교단, 아브라함의 신앙의 길을 걷는 교단이어야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 따라가야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장자의 길이 아닙니다. 교회도 장자의 교회, 자기 신앙도 장자의 신앙, 교단도 장자의 길을 걷는 교단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십니다. 장자의 축복이 거기에 임합니다. 우리는 장자의 축복을 받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창세기 48:1-22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한 축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한 축복
창세기 48:1-22

1이 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3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4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하에서 함께 하리라 7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전에 내가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8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가로되 이들은 누구냐 9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12요셉이 아비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15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19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1. 요셉이 부친 임종시에 찾아감

창세기 47장 27-31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 사십 칠 세라. 이스라엘의 죽을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가서 십칠 년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이 임종시에 요셉에게 ‘내가 죽거든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땅에 장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가나안땅에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데, 거기서 장사하기를 여기서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이것을 맹세했습니다. 

본문 1-2절에 “이 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라고 하였습니다. 그 일 후에 야곱이 병이 들었습니
다. 세상 떠날 때가 다 된 것입니다.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에게로 내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았습니다. 병이 나서 기력이 없지만 요셉이 왔다고 하니까 요셉을 장자로 세우려고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침상에 앉았습니다. 

2. 이스라엘이 축복해 준 근거

약속을 확실히 믿고 그 약속대로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신앙 본문 3-4절에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루스’라는 곳은 벧엘입니다. 하나님께서 벧엘에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맹세한바가 있습니다. 그것을 루스라고 합니다. 

창세기 28장 11-19절에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고 하였습니다. 벧엘에서 돌 베개하고 잠 잘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네 자손이 땅에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하며 너 누운 땅을 네 자손에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루스에서 누워서 잠자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고, 네 자손이 번성하여 동서남북에 편만해진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때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피난을 갈 때인데,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야곱의 나이가 많아져서 147세가 되었습니다. 근 100년 전, 야곱이 젊었을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분명히 믿고 언제든지 그 약속대로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고 확실히 그렇게 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굽에
가서 야곱이 죽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가나안 땅에 가서 살 것, 번성하게 될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확실히 믿는 그 신앙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늘 사모하는 신앙

본문 4절에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분명히 성경말씀대로 될 것이고 또 가나안 땅에 분명히 들
어가게 해 줄 것이다”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간절히 사모한 것입니다. “반드시 간다, 나를 애굽에서 장사지내지 말고 가나안 땅에 장례 하여라, 너희도 앞으로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이다, 우리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번성 할 것이다”하며 야곱은 하나님 말씀을 확실히 믿고 요셉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자기의 세상 고향을 사모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세상나라, 세상고향을 귀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9-10절에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 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고향을 사모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고향을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요셉이 가나안 땅을 늘 바라보고 사모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하늘나라를 늘 바라보고 사모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도 세상에서는 죽으면 자기 고향 선영에다가 장례 하겠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선영에 장례해도 좋고 안 해도 좋습니다. 꼭 자기 고향 선영에다가 시체를 묻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영에다 묻어도 썩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장례를 고향으로 가느라고 많은
비용을 쓰고 많은 시간을 소비하니 손해가 많습니다. 장례는 언제나 간단하게 하는게 좋고 먼 고향까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세상 고향을 사모할 필요가 없고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세상 고향을 사모한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고향, 하늘나라를 늘 사모 했습니다. 어디서나 살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살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야곱이 나이 많아서 늙을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된다. 허락한 가나안땅에 반드시 간다. 또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번성한다. 많은 백성이 된다. 영영이 가나안땅에 거한다. 가나안땅이 우리 기업이다.’ 이것을 확실히 믿고 나아갔습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많아 지면은 모든 생각이 희미해져서 다 잊어
버립니다. 그러나 야곱은 나이가 많아서도 확실한 신앙을 갖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붙들었으며, 명백하게 그 자손들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에 참여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의 기업을 사모하는 신앙

본문 5-6절에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 하에서 함께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들을 내 아들로 삼아야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다’고 하며 아들 둘을 야곱이 자기 아들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이 열둘인데 둘을 더 가지려고 합니다. 있는 아들만 해도 열둘인데 아들 많아서 무엇을 하겠다고 둘을 더 가지겠다고 합니다. 또 요셉은 아들이 몇입니까? 아들 몇을 낳았다고 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 요셉은 아들이 둘밖에 없는데 두 아들을 다 주고 다음에 낳은 아들을 아들로 하라는 것입니까? 왜 그랬겠습니까? 아들 둘을 내 아들로 해야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 요셉에게 복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요셉에게 복 주려고 내 아들로 삼아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복을 준 것이 나타납니다. 본문 6절에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의 명의 하에서 함께 하리라”고 했습니다. 신앙적으로 이스라엘의 12지파에 참여하여 영원한 하늘나라의 기업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을 예언함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내려감

역대상 5장 1-2절에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4대 족장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과 요셉이 됩니다.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고 나가면 더 주심

본문 21-22절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가나안땅에 복 받을 때 한몫을 받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두 몫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두지파가 된 것입니다. 다른 형제들은 한 지파인데 요셉지파는 두지파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내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손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야곱의 아들로 취급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가서 분배 받을
때 한 몫을 더 받습니다. 더 주려고 ‘내 아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주는 방법을 이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아들로 삼아야 더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 요셉에게는 두 몫을 주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더 주는 방법은 바치라는 것입니다. 바치면 더 준다는 것입니다. 내 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더 줄 수가 없습니다. 온전히 하나님 것으로 바쳐 놓으면 더 준다고 하셨습니다. 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놓고 네 모든 자녀를 하나님께 바쳐놓고 또 네 몸까지 하나님께 바쳐 놓으면 하나님의 것을 분명히 더 준다는 것
을 우리에게 알려 준 것입니다. 이걸 안 바쳐 놓고 재산도 내 것, 아들도 내 것, 자기 몸도 내 것으로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더 주시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끊어지고 말아버립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더 주는 복입니다. 바치는 것이 더 주는 복입니다.

우리 교역자들도, 개척교회 하는 교역자들도 비슷합니다. 교회 하나 만들어 내거다 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이건 내거다, 죽어도 내 놓지 못한다, 누가 만지지도 못한다, 교인들도 다 내거고, 예배당 재산도 다 내거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맘대로 하고 또 나 위해서
하고 자기 위해서 하면 교단에서 볼 때 우리 교단하고 상관이 없어집니다. 그 사람은 자기 교단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전부 다 자기 것을 만들어 놓았으니까 여기하고는 상관이 없어집니다.
어떤 지방도시에 그런 교역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교역자가 개인이 개척을 하고 우리 교단에 와서 가입을 하겠다고 해서 가입을 시켜 줬는데 제 것으로 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가입을 해서 이름은 우리 교단에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왕국을 하나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제 맘대로 하고 이름만 갖다 걸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교단이다, 우리 교단이 아니다. 이름만 우리 교단이지 실제는 자기 교단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자기 교단 하나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따금 오고 싶으면 오고 안 오고 싶으면 관두고 하는데 오면 뭘 합니까? 자기 볼 장이나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역자는 또 반대로 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개척은 하지만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어느 교단의 것이다’하며 자기는 언제나 충성하다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또 다른데 가서 일하라고 하면 일합니다. 자기 것이라고 하나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교단 적으로 볼 때 두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도와 줄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자기 것이라 생각 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하면 하나님의 운동이 잘 될 것 아닙니까? 또 진리운동이 잘 될거 아니겠습니까? 자기 것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하나님 운동이 잘 되지 않습니다. 자기 볼 장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역자는 도와줘야 하나님 운동이 잘되지 않고 진리운동에 유익이 없습니다. 자기 것 하나 만들어 놓고 제가 하는 것입니다. 붙어 있겠다고 하면 붙어 있는거고 또 떨어지겠다고 하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원리가 이와 같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네 아들이지만 내 놓아라’ 하면 내 놓아야 합니다. 내 놓으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욕심을 채우시려고, 혼자 빼앗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버지가 열 두 아들이 있는데 왜 둘을 더 빼앗아 가시겠습니까? 이것은 야곱이 요셉을 사랑해서 더주려고 한 것입니다. 두 몫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내 놓았다고 해서 자기 아들이, 자기 아들 안 되겠습니까? 아버지에게 바쳤다고 해도 요셉의 아들들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을 장자로 세웠기 때문에 두 몫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장자에게는 두 몫을 준다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다. 장자에게는 두 몫을 준다는 그 성경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의 원리로 장자에게 두 몫을 주려고 그 아들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1장 17절에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
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요셉을 장자로 삼았으니까 장자에게 두 몫을 주려니까 네 아들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바치면 두 몫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신 것이 큰 은혜인줄 알아야 됩니다. 바치라는 것은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연보를 바쳐라, 아들을 바쳐라, 몸을 바쳐라, 또 무엇을 바쳐라, 땅을 바쳐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쳐라, 또 밀가루를 바쳐라, 통에 있는 가루를 바쳐라, 기름을 바쳐라, 또 당나귀를 바쳐라, 다락방을 바쳐라’ 하시면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다락방을 누가 바쳤습니까? 마가요한이 다락방을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또 ‘내 아들 독자 이삭을 바쳐라, 사무엘을 바쳐라’ 하신 것은 더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받는 건 다 좋아 하지만 바치는 것은 싫어합니다. 바치라고 하면 쏙 들어갑니다. 처음 믿는 사람들은 교회 나오다가 연보 바치라고 하면 쏙 들어갑니다. 그래서 개척교회는 연보 내라는 소리를 못한다고 합니다. 연보 내라면 다 쏙 들어가니까 연보 내라는 것
을 못 가르쳐 줍니다. 또 사경회를 해도 연보 내라는 소리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사람들 보고 그럽니다. “그것은 잘 못 생각한 것입니다. 바쳐야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열매가 맺는 것이고, 바쳐야만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연보 안 가르쳐 주면 그 교인들 다 버린 것이고, 교인들 복을 받지 못 하게 한 것 아니냐”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제가 사경회 인도할 때는 반드시 연보하라고 말해줍니다. “교인들이 또 안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하지 말고 가르쳐 줘야 합니다. 또 안 나오면 그것이 잘 못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하시면 나와야지 연보 바치라고 안 나오겠습니까?
성경에 바치라고 했으니까 바치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연보는 반드시 시켜야 합니다. 시켜야 그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또 예배당 지으라고 하는 것도 우리에게 큰 짐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주려고 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예배당 안 짓는다고 해서 뭐 특별히 잘 살줄 아십니까? 앞으로 예배당 안지어서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 지어야 사실은 잘 됩니다. 다른 것이 다 잘 됩니다. 하나님이 더 주시려고 그런 것인데 예배당 지으라고 하면 ‘뭘 가지고 짓겠나? 또 받을 것이 있어야 바치지 않겠나?’ 이렇게 혹시 마귀가 와서 참소 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지으라고 할 때 지으면 하나님이 더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당 지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더 주십니다. 우리 다 경험 해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북한에서도 목회할 때 예배당 짓고 다 잘 됐습니다. 또 지금 예배당 지을 때 마다 다 잘 됩니다. 우리 창광교회도 예배당을 1965~66년도에 지었는데 그때보다 지금 더 잘 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십년 전에 심방 다닐 때 보면 한심 했습니다. 게딱지만한 판자 집에 오글오글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그런 집이 얼마 없습니다. 다 잘 됐습니다. 교회 증축할 때도 십년이나 되었는데 또 다 잘됐습니다. 그때보다 잘 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바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오늘 다른 교회에 있는 집사가 한분이 찾아 왔는데 자기 아들을 하나님께 바쳐야겠다고 합니다. 대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더 좋은데 가려고 지금 학원에 다니는데 가만히 생각 해 보니까 대학을 다녀가지고는 아들이 세상으로 나갈 것 같답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보내야겠
다, 하나님께 바쳐야겠다’고 작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신학교에서 받아주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학교 졸업하고 신학교 오라고 그러니까 안 된다는 겁니다. 대학교 졸업 맞고 세상으로 나가면 일이 다 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대학교 졸업 맞고 오면 좋겠지만 그러다가 세상으로 나가면 이것도 저것도 다 놓치겠으니까 하여간 미리 몰아넣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면 받아 줄 거니까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뭘 준비해야겠습니까? 맞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보고 강해서도 좀 읽어봐야 합니다. 하여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지 세상 지식으로 하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아들 바칠 것을 작정하고, 바치는 그 아들은 반드시 잘 될 것입니다. 바치는 것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몸 바치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몸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 주십니다. 반드시 잘 되고, 복 주고, 더 잘 되게 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를 바치라고 할 때 독자를 바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이 손해를 봤습니까? 몇 백 배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사르밧 과부가 아들과 한 끼 해 먹을 가루와 기름이 통과 병에 조금 밖에 없었는데 이걸 바치라고 할 때 바쳤단 말입니다. 바치니까 3년 6개월 동안 그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에 기름이 다하지 않았습니다. 내내 가루와 기름이 계속 나왔습니다. 바치면
더 많은 것을 주시려고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큰 은혜입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바치는 사람이 복 받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많은 것을 주십니다.

앞으로 젊은 청년들이 목회를 해도 자기 것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또 교단에다 바쳐야 합니다. ‘나는 그저 임시로 가서 시중드는 종이다. 청지기로서 임시로 있다가 하나님이 어디든지 가라 하시면 간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최권능 목사는 75개 교회를
세웠는데 조금 있다 다른데 가서 또 하고, 또 딴 데 가서 개척교회 사역을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최권능 목사가 상급을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자기 것으로 하나 만들겠다는 정신은 하나님의 복을 다 잘라버리고 하나님과의 담을 만들어 놓고 흑암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것을 빼앗아서 자기의 것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절도요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바치는 생활을 힐 때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는 것을 믿고 그 믿음을 언제나 써야 되겠습니다.

창세기 47:20-31 신정책(新政策)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신정책(新政策)
창세기 47:20-31

20그러므로 요셉이 애굽 전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드리니 애굽 사람이 기근에 몰려서 각기 전지를 팖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21요셉이 애굽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제사장의 전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의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 전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추수의 오 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25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 분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까지 이르니라 27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28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사십칠 세라 29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 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30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 하리이다 31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 하니라

1. 요셉의 새로운 정책

애굽에 대한 요셉의 정책

곡식, 짐승, 백성들의 몸을 바로에게로 돌림 애굽에 칠 년 동안 풍년이 든 후에 흉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흉년을 대비해서 풍년 때에 요셉이 각 성에 곡식을 저장을 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41장 47-49절에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각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중에 저장하매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풍년동안에 밭의 곡물을 성중에 저장해서 바다의 모래와 같이 심히 많이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풍년이 지나자 칠 년간 흉년이 들게 시작한 것입니다. 창세기 41장 54절에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흉년이 점점 심해지니까 각국 백성도 곡식이 떨어지고 애굽으로 와서 곡식을 사다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있는 요셉의 형들과 아버지도 애굽 땅에서 곡식을 사먹게 된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도 곡식을 사다 먹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 해가 다하고 새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고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짐승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 것도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전지뿐이라”고 했습니다. 애굽 백성들도 곡식을 사다 먹다보니 돈도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돈이 다했기 때문에 짐승으로 곡식을 바꿔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가 다 가니까 그 이듬해에는 이제는 짐승도 다 없어졌습니다. 짐승을 곡식으로 바꿔 먹었기 때문에 짐승이 전부 바로의 것이 된 것입니다. 

분문 19절에 “우리가 어찌 우리의 전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식물로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면 전지도 황폐치 아니 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돈이 다 떨어지니까 전지와 밭과 모든 농지를 식물로 사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전지와 몸까지 곡식으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바로의 종이 되어서라도 곡식을 바꿔다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또 죽는데 전지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전지도 다 바로에게 갖다 바치고 몸도 바로의 종이 되어 곡식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모든 것을 다 사서 바로에게로 돌렸습니다. 이제는 다 바로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돈도 다 바로에게로 돌아갔고, 짐승도 다 바로에게로 돌아갔고, 양과 소와 말과 나귀도 바로에게 다 돌아갔습니다. 전지도 전부 바로에게로 돌아갔고, 백성들도 이제는 전부 바
로의 종이 되었습니다..

2) 백성의 성읍들을 옮김

그 다음에 요셉이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 21절에 “요셉이 애굽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그 모든 백성을 이제 다 샀고, 그 다음에는 백성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 성읍에서 저 성읍으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이 성읍에 사는 사람을 저 성으로 옮기고, 저 성에 사는 사람을 이 성으로 옮기고, 전부 다 옮겨 놓았습니다. 이민을 시켰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그것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놓은 것입니다. 그곳에 있으면 전에 생각이 자꾸 나고, 또 자기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날것입니다. 이제는 바로의 것이 되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에 것에 대한 애착심과 집착심
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성읍에서 저 성읍으로 다 옮기게 한 것입니다. 전에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는 다 새로운 땅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3) 오분의 일은 상납하고, 사분은 취하도록 함

다음에는 농사할 때가 되었는데 곡식 종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종자를 달라고 하니까 요셉이 뭐라고 하였습니까? 본문 23-24절에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추수의 오 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백성들에게 종자를 주어서 그 땅에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를 안 샀다고 했습니까? 본문 22절에 “제사장의 전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의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 전지를 팔지 않았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의 전지는 사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라는 것은 애굽 사람들의 신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기 때문에 그들의 전지를 팔지 않았습니다.
그 외의 백성들의 것은 다 샀습니다. 팔겠다고 하기 때문에 산 것이고 강제가 아닙니다. 돈 가져다가 사자고 해서 곡식을 팔았고, 그 다음에는 짐승을 주고 바꿔달라고 해서 바꿔주었고, 그 다음에는 전지를 바치면서 곡식을 달라고 해서 주었습니다. 또 자기 몸을 곡식과 바꿔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하니까 곡식을 나눠주었습니다. 자원해서 하는것입니다. 강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원해서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요셉의 정책에 대한 백성들의 모습

1) 하나님의 종이 됨 그들은 뭐라고 답변했습니까? 본문 25절에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살려 주어서 그들이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셨으니 그 은혜에 감격해서 주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서 우리를 살려 주시지 않으셨습니
까? 또 여러 번 죽을 곳에 빠졌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살려주셔서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었으니 주님의 종이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지 않으셨으면 다 죽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다 죽을 뻔했습니까? 6.25 사변 때 다 죽을 뻔했는데 미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려놓으셨습니다. 또 그 후에도 우리가 죽을 뻔 한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죽을 고비가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때마다 다 주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살려 주셨으니 우리가 주님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독생자의 피로 우리를 구속해주지 않으셨으면 벌써 다 멸망해서 지옥 갔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지 않으셨다면 다 망했을 텐데 주의 피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셔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가 감사하고 감격해서 이제는 주의 종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값으로 산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값으로 샀다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몸도 너희 것이 아니다’ 몸을 다 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소유는 다 주님의 것입니다. 또 우리의 모든 짐승도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전지와 농토도 주님의 것입니다. 피로 값 주고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몸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주의 종이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살려주지 않으셨으면 다 죽었습니다.
또 몇 년 전에 전쟁 났으면 다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몇 년 전에 이북에서 전쟁 하려다가 안했다고 하는데, 그때 전쟁 났으면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으니 감사해서 우리가 주의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2)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남

요셉이 백성의 전지와 몸을 산후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성읍에서 다른 성읍으로 옮겼습니다. 본문 21절에 “요셉이 애굽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백성을 성읍에 옮겼으나”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을 이 끝에서 저끝까지 성읍을 옮겼습니다. 그러니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는 생활을 해야 되었습니다. 자기의 본토가 없어야 됩니다. 본토에 대한 미련 다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나는 어디 사람이다, 이북사람이다, 이남 사람이다, 호남 사람이다, 경남 사람이다, 강원도 사람이다, 충청도 사람이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세상의 고향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 본향은 어디라고 했습니까? 하늘나라입니다. 경주 김 씨다, 전주 이 씨다, 밀양 박 씨다, 또 무슨 양반들, 밀양 유씨, 그것 다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바로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다 떠나라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늘나라의 사람이지, 이 세상 어디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지방 사람이라고 당파를 만들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또 뭘 옮기라고 했습니까? 본토, 친척에 대한 애착심, 그걸 버려야 되겠습니다. 일단 떠나서, 자기 본토 친척 다 떠나서 다른 데로 간 것입니다. 그럼 자기의 본토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자기 친척이 없어졌습니다. 다 없어져야 됩니다. 경주 김가 다 없어지고, 전
주 이가 다 없어지고, 밀양 박 씨 다 없어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씨로 다 변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과거의 씨족 관념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나라에서 예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할 때 자기 지방사람 표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을 뽑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이 대통령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은 대통령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15장 33절에서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했는데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작정은 여호와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선거 운동을 하면서 애를 써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어떤 사람을 투표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이 되는데, 어떤 사람을 뽑는 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뽑는 것인지를 수 있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제가 한 마디 해줘야 되겠습니다.

성경대로 말하지 다른 것은 안 합니다. 출애굽기 18장 21절에 나온 말씀과 같은 사람을 투표하면 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는 건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8장 21절에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 부장과 십 부장을 삼아” 라고 하였습니다. 재덕이 겸전하다는 것은 재능이 있고 덕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역량이 있는 사람을 세워야 된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좁은 사람을 세워 놓으면 어떻게 나라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실력이 있어서 제대로 다스릴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덕이 있는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한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진실하고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불의한 이를 미워하지 않으면 바로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앞으로 투표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당파 사람이다, 자기 지방 사람이다, 자기하고 같은 성이다, 같은 학교 사람이다, 같은 무엇이다’하는 지연과 학연과 혈연 등을 보고 투표하는 것은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투표한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고,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사람을 투표하는데 결과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세우실지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심을 똑바로 써서 바로 투표를 하면 됩니다. 우리나라가 복을 받으려면 재덕이 겸전하고 진실무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사람을 세우면 복을 못 받습니다. 즉 재능도 없고 역량도 없고 밴댕이 속 같고 꽉 막혀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을 세우면 어떻게 나라가 되겠습니까? 정치할 줄 모르는 사람 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덕이 없고 진실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불의한 이를 좋아하는 사람 세우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잘 알고 정성껏, 성경대로 투표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A라는 사람을 세우시겠는지, B라는 사람을 세우시겠는지, C라는 사람을 세우시겠는지, D라는 사람을 세우시겠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복을 받으려면 좋은 사람을 세워
주실 것이고, 이 나라가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으면 그와 반대되는 사람을 세워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지도자를 세우는 것도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됩니다.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보고 선거에 대해서 일절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선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 믿는 성도가 어떤 자세로 선거를 해야 하는가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뿐입니다. 물론 A라는 사람을 지지해라, B라는 사람, C라는 사람을 지지해라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저도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지 정한 것도 아니고 누가 되는 것이 좋은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선거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 받을 것 같으면 좋은 사람 세워주실 것이고, 우리가 복 받을 사람이 안 되면 속이 좁은 사람을 세워서 다 망쳐놓아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누가 진실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잘 살펴보고 연구해보고 기도해보십시오. 우리는 주의 종이고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가 세상사는 동안 세상나라에 대한 심부름을 바로 하자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종이 되려면 재산을 다 주의 것으로 삼아놓고 내 것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산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전지, 짐승들, 우양, 또 요즘의 자동차 등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우리의 몸도 주의 피 값으로 대신 물어 주었으니까 몸도 하나님 것으로 바쳐놓으라는 것입니다. 내몸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사용할 몸이 아닙니다.

3) 추수의 오 분 일을 상납하고 사분은 취함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십니까? 주셨습니다. 본문 23-25절에 “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추수의 오분의 일을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와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사람과 어린 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
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먹을 것을 주지 않았습니까? 종자를 갖다 심어 농사해서 얼마를 바치라고 했습니까? 오분의 일을 바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취해서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 양식도 삼고 집 사람들과 어린 아이들 양식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거저 주는 것입니다. 종자도 거저 주고 논도 거저 주었습니다.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이제 농사해서 오분의 일만 바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분의 일은 십 분지 몇입니까? 오분의 일은 십 분지 이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의 십일조를 바치고, 그 외의 돈으로 다른 연보를 하면 십 분지 이가 더 됩니다. 십일조는 무조건 바치는 것입니다. 가령 10만원을 벌었으면 십일조가 만 원입니다. 그러면 만 원을 그대로 바치는 것입니다. 백만 원 벌었으면 십만 원 갖다 바치라는 것입니다. 천만 원 벌었으면 백만 원 바치라는 것입니다. 일억을 벌었다면 천만 원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다른 연보, 주일연보나 건축연보나 선교연보는 십일조를 뗀 다음에 해야 됩니다. 십일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 외의 돈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십 분의 몇이 됩니까? 십일조는 먼저하고 다른 연보는 십일조 이외의 돈으로 하면 말입니다. 그럼 몇 프로나 될 것 같습니까? 십 분의 이 되는 사람도 있고, 십 분의 삼 되는 사람도 있고, 또 건축 연보 많이 하는 사람은 십 분의 오까지 되어서 절반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더 넘는 사람도 있을 것을 것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는 먼저 바쳐야 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제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다른 연보는 다른 돈으로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제 오분의 일을 바치는 법을 세워놓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농사해서 오분의 일을 바치고 오분의 사 가지고 농사도 하고 종자도 하고 먹기도 하고 다 했습니다. 오분의 사 가지고 살 수 있습니까? 그건 십 분의 팔입니다. 수입에 대한 팔십 퍼센트는 자기 것이고, 이십 퍼센트만 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 수 있습니까? 살 수 있습니다. 십 분의 일은 바치고, 나머지로 농사하고, 일하고, 하나님께 바칠 것 바치고도 잘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먹을 것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십일조 안 바치는 것은 하나님 것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 것 도적질하고 복 받겠습니까? 또 조금 내는 십일조는 하기 쉬워도 많이 내는 것은 힘들다는 것입니다. 가령 십만 원 벌 때 만 원 바치는 것과 백만 원 받을 때 십만 원 까지는 바치기가 쉽습니
다. 그러나 일억을 벌 때 천만 원 바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어떤 우리 지교회인데, 그분이 어떤 직장에 다니다가 그 직장에서 퇴직을 했답니다. 공무원인 모양인데 퇴직금으로 일억을 받았답니다. 퇴직금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만 원을 뚝 떼어 가지고 교회 가지고 왔답니다. 믿음을 쓴 것입니다. 일억 받아서 천만 원 뚝
떼는 것은 믿음 쓴 것입니다. 십일조 조금 낼 때는 쉽지만, 많을 때는 힘듭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자기 것이 아닌 줄 알아야 됩니다, 언제든지 제 것이 아닌 줄 알고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일조 하고 다른 연보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셔서 하는 것이지 제 것 가지고 왔습니까? 자기가 벌었지만 하나님께서 벌게 해주셨으니 벌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도 주시고 또 직장도 보장도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재능을 주셔서 벌었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벌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돈을 잘 벌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신명기 8장 17-18절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
였습니다.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재물을 얻었다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을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과 기회와 환경을 주셔서 재물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주시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셨으니까 했지 병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병나서 죽은 사람이 재물 얻을 수 있습니까? 또 치료 잘한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암 연구하는 암 연구소 회장이 암 걸려서 죽었습니다. 남의 암 고쳐주려고 연구하다가 자기가 암 걸려 죽었습니다. 그 사람이 암 연구 전문인데 왜 자기가 걸렸겠습니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 안 주시면 암 연구하는 회장으로써 전문적으로 연구를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 주신 것과 재물 얻을 능을 주신 것이 감사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또 먹을 것 주십니다. 종자도 주시고 먹을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종을 굶어죽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2. 야곱이 사후에 가나안 땅에 매장해 달라고 함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임

본문 27-28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사십칠 세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센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했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가서 몇
년 살았습니까? 십칠 년 살았는데, 애굽에 백삼십 세에 갔으니까 죽을 때 몇 살입니까? 백 사십 칠 세에 야곱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본문 29-31절에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 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
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불러다가 “내가 죽으면 내 조상과 함께 눕거든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선영에 장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그 선영 무덤이 있는데 거기다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가로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고 해서 맹세하였습니다. 왜 가나안 땅에 장사하라고 했겠습니까? 야곱이 애굽에서 죽었는데 야곱이 죽으면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가나안 땅에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선영은 창세기 49장 29-32절에 나오는데,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장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도 거기다 장사했고, 내 아버지 이삭도 거기 장사했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했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거기다 장사했으니까 야곱도 거기다 장사하라는 것입니다.
왜 가나안 땅에다가 장사하라고 하였겠습니까? 그곳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하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 땅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너와 네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준다고 벧엘에서 그날 밤에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28장 13-14절에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이니까 거기다가 장사하라는 말입니다. 앞으로 야곱의 자손들이 다 가나안으로 갈 것 이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나를 장사 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에 묻히고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은 하늘나라임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고향에다가 장사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요새 고향에 가서 장사하는 붐이 일어났는데, 옛날에는 서울에 온 사람은 서울에서 장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향 가는 것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가고 몇 백 리라도 가는 것입니다. 무엇하려고 고향 갑니까? 세상 떠난 다음에 왜 고향 가느냐는 말입니다. 노인들은 세상 떠난 다음에 고향에 묻어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저는 세상을 떠나도 고향에 묻지 말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어도 거기다 묻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무엇 때문에 고향 가느냐는 말입니다. 아무 데나 장사 하면 됩니다. 영혼이 천당 갔으면 되었지 죽은 시체가 고향에 가면 뭐합니까? 그것은 아무 쓸데없는 일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미신적 사상이 있어서 명당자리에 묻힌다고 합니다. 또 죽어서 뼈라도 고향에 간다고 합니다. 뼈가 고향에 가면 무엇 합니까? 죽은 사람 뼈가 무슨 정신이 있습니까? 아는 것이 있습니까? 고향 가면 무엇 합니까? 우리 육신은 의복 같은 것입니다. 쓰고 살던
장막 집 벗어놓고 천당에 갔는데, 그 쓰고 살던 의복을 고향에 갖다가 묻으면 무엇 합니까? 아무 데나 묻는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어디다가 장사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무 데나 가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아무 데 가도 상관없다고 해야지 무엇 하려고 고향 가져가느냐는 말입니다. 고향 가면 얼마나 일이 많습니까? 또 믿지 않는 친척들이 와서 제사하겠다고 하고 시험이 많습니다. 천당갔는데 육신의 장막 집을 돌보긴 무엇을 돌봅니까? 쓰고 살던 장막 집 천당 갔는데 돌봐야 압니까?
그런데 야곱이 ‘내가 죽은 다음에 가나안 땅에 갖다가 장사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하늘나라와 같습니다. 허락하신 약속의 땅입니다. 애굽은 세상입니다. 이 세상 표준하지 말고 약속의 땅을 언제나 사모하고 또 자손도 사모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죽은 다음에 뼈를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요셉은 죽을 때 해골을 애굽에 입관했다가 이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갈 때 내 해골을 메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50장 25절에“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 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가나안에 장사하라는 것이 아니고, 장사는 애굽에서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가나안에 장사해달라고 했으면 장사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고 애굽의 정권이 있는
데, 그 가나안 땅에 갖다가 묻어달라고 하면 안 묻어주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굽에서 입관하고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정녕 하나님의 권고로 가나안 땅에 갈 것인데, 그때는 메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에 묻었고, 요셉은 애굽 땅에 묻었습니다. 야곱과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을 소망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벌써 야곱을 묻었고,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갈 때 뼈를 메고 나갈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예수님은 또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계시고, 또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이루어져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이제 잠시 잠깐 후에 세상을 떠나면 하늘나라에 갑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지만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하늘나라 가서 예수님과 같이 살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늘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창세기 47:1-10 요셉이 자기 가족을 바로에게 소개하고 돌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요셉이 자기 가족을 바로에게 소개하고 돌봄
창세기 47:1-10

1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가로되 나의 아비와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형들 중 오인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우거하러 왔사오니 청컨대 종들로 고센 땅에 거하게 하소서 5바로가 요셉에게 일러 가로되 네 아비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7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9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 요셉이 아버지와 형들을 바로에게 소개함

바로에 대한 정중한 예의를 지킴

본문 1-6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가로되 나의 아비와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형들 중 오인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우거하러 왔사오니 청컨대 종들로 고센땅에 거하게 하소서 바로가 요셉에게 일러 가로되 네 아비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와 형제들 다섯 사람을 택해서 바로에게 인사하러 보냈습니다. 인사하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칠십 인이 왔지만 칠십 인이 다 같이 바로 앞에 가지 않았습니다. 올 때에도 왕궁에 들르지 않았습니다. 그 도시 수도에 들르지 않고 고센 땅으로 바로 갔
습니다. 그리고 다섯 사람만 택해서 바로에게 인사하러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칠십 명이 왔지만 다 왕궁 수도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사람만 택해서 인사하러 아버지와 같이 간 것은 정중한 예의 법을 지킨 것입니다.

바로에게 순리대로 허락을 맡음

고센 땅에 자기 형제들을 거하게 하려고 하는데 바로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합니다. 바로가 허락을 안 해도 물론 거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바로가 다스리는 권세를 요셉에게 다 주었으니까 왜 거하느냐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에게 허락을 맡아야 순리대로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또 장래에 말이 없습니다. 현재는 요셉이 정권을 맡고 있으니까 고센땅에 거하게 할 수 있지만 요셉이 죽은 다음에 말썽이 생길 염려가 있습니다. ‘고센 땅에 너희가 왜 왔느냐’고 하면 바로가 허락해서 왔다
고 하면 되지만, 요셉이 허락해서 왔다고 하면 장래에 문제가 될 수있습니다. 애굽 족속하고 싸울 염려가 있습니다. 또 쫓겨 날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에게 허락을 맡아서 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앞에 보니까 인사하러 가기 전에 이렇게 말 하라고 다 가르
쳐 주었습니다. 

46장 마지막 절에 “가서 바로에게 네 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목축을 한다.”고 하라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조 때부터 목축을 하니 고센땅에 살게 해달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어떻게 하든지 바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허락을 맡아서 모든 일을 하려고 힘을 썼습
니다.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서, ‘믿는다, 진리 운동한다’고 하면 그것은 말로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진리를 막는 일 밖에 안 됩니다. 교역자들이 믿음 지키면 좋은 도덕적인 품성이 나오게 되지만, 믿음 지키지 않으면 도적이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도 예의를 지킬 줄 알아야 함

1) 먼저 자신의 인격을 믿음으로 다듬어야 함
우리도 이 예의와 법도를 배워야 되겠습니다. 교역자가 되기 전에 먼저 신자가 되어야 되고, 신자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바로 되어야 신자도 바로 되고 교역자도 바로 됩니다. 사람이 바로 되지 못하면 신자 구실도 못하고 교역자 구실도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가는데 마다 복음의 길을 막습니다. 입으로는 전도를 하지만 실제로는 길을 막습니다. 우리가 인사법, 예의 법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무례히 행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믿음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믿음은 무례히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바로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요즘 교역자들이 예의가 없다고 합니다. 예의를 전혀 모른다고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를 가르쳐준 스승에게 아무리 잘 못 가르쳐 주고 부족하다고 해도 가끔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서로 왕래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가르쳐 준 사람과 왕래를
하는데 믿는 사람이 발을 딱 끊어버리고 한 번도 다니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도 잘 가르쳐주었든지 잘 못 가르쳐주었든지 스승인데 배운 사람이 너무 딱 끊어 버리는 것이 섭섭한 모양입니다. 사제지간에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그렇게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딱 끊고 상관없는 사람처럼 하면 예의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바가 있습니다. 사제지간이나 부모님이나 우리가 인사를 바로하고 모든 일을 바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형제간에 대해서도, 동역자간에 대해서도 인사를 바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를 모시는 것에 대해서 바로 했고, 형제들에 대해서도 바로 했습니다. 또 자기 친족에 대해서도 바로 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권속들을 책임을 지고 다 돌봐 주려고 장소를 제공하고 식량을 공급했습니다. 아버지를 모셔다가 가까이 두고 그 친족들에게 요셉이 바로 한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도무지 친족들과 부모님께 대해 잘 할 줄 모르고, 또 자기 가르쳐준 선생님에게도 잘 할 줄 모르며 예의가 없습니다. 또 형제간이나 동역자들에 대해서도 예의가 없다면 그것이 무슨 신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마가복
음 12장 17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라고 하신 것처럼, 이 세상에 대해서도 할 도리를 바로 해야 되겠습니다. 고르반 사상으로 나가는 바리세인과 서기관과 같이 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대해서도 우리가 바로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에게도 바로 할 줄 알고 또 선생님의 대해서 바로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단이 다르고 신앙이 달라서 같이 못나간다고 할지라도 예의범절은 지켜야 되겠습니다. 한 교단에 있어야만 부모와 선생님이 아닙니다. 한 교단에 있지 않다고 해도 신앙의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자기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신자가 되어야 하고, 신자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덕을 빼면 목사라고 할 수 없고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의무를 잘 감당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한 예의를 바로 지킨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국가에 대한 예의를 바로 지키고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바로 지켜야 되겠습니다. 요셉이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바로에게 허락을 받아서 하려고 했던 것처럼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
켜야 하겠습니다.

2) 돈에 대해서도 양심을 바로 써야 함
‘성복 가구사’는 강대상과 의자를 만드는 한국에서 제일 큰 가구상인데, 그곳에서 우리도 강대상을 많이 사왔습니다. 그 곳에서 만든 것이 제일 좋습니다. 대구에 공장이 있고 종로 5가에 기독교 빌딩 2층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의자도 거기서 만드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58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합니다. 6.25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게 세를 못 내서 문 닫는다고 홍 장로님한테 맡아서 하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교회 목사들 상대해서 장사 못한다고 그러더랍니다. 가구 값을 언제 준다고 약속하고 가지고 가면 도무지 주지 않는답니다. 그런 교회가 많으니까 가구사가 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 창광교회의 집사 한 분이 있는데 여 집사입니다. 집을 팔아서 500만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옆에 다른 교회 나가는 집사가 좀 꿔달라고 했답니다. 예배당 짖는데 건축연보 작정 한 것이 있으니까 잠깐 빌려주면 갚아 준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빨리 가져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목사가 왔더랍니다. 교회가 가까우니까 어느 정도 아는 모양입니다. 목사님이 와서 잠깐만 좀 빌려달라고, 우리가 꼭 준다고 당장 급하다고 했답니다. 그 집사님이 마음이 좋습니다. 목사가 또 와서 그러니까 그것을 믿고 집 팔아서 다른 것 사려던 것을 빌려 줬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자기들 할 것은 다 하면서 그 돈을 안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준다고 하다가 요즘에는 딱 잡아뗀다고 합니다. 지금은 돈 달라고 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희망 없습니다. 내가 볼 땐 100% 못 받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돈에 대해서 양심을 써야 합니다. 첫째, 돈에 대해서 양심 안 쓰면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역자들이 돈에 대해서 바로 해야 합니다 옛날에 한문 하는 사람들도 ‘財産(재산) 分明(분명) 大丈夫(대장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정에 대해서 분명히 하는 것이 대장부라는
것입니다. 재정에 대해서 분명히 하지 못 한 것은 대장부가 못 됩니다. 그러니까 줄 것은 주고, 꾸지 말고 자기 책임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시커먼 마음을 가지고 남의 돈 줄 것 주지 않고, 자기 할 것 다하고 얼마나 악한 사람들입니까? 남의 것은 주지 않고 자기 할 것 다
하면 그건 악한 것입니다.

2. 요셉이 자기 가족 칠십 인을 돌봄

자기 백성에게는 땅과 먹을 것을 제공함으로 자기 책임을 다 함

요셉이 형제와 그의 가족들 칠십 인에게 식량을 공급했습니다. 자기 책임을 다했습니다. 권속이 살 땅을 노력을 해서 마련을 해 줬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식량을 돈 주고 사서 먹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짐승을 가져다가 바꿔 먹었습니다. 짐승도 다 바꿔먹은 다음에는 또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밭이나 논과 자기 몸까지 다 바치고 바꿔먹었습니다. 땅 다 바치고 바꿔 먹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거저 받았고 또 양식도 거저 줬습니다. 요셉이 땅도 거저주고 양식도 거저 줬습니다. 외딴곳에 갔다 줬으니까 다른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모른 것 같습니다. 거저 줬는지 바꿔 먹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외딴곳에 갔다 둔 것이 좋습
니다. 고센 땅에 둔 것이 숫자가 얼마 안 되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 했습니다. 애굽 사람에 대해서는 거저 준 것이 아니고 팔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자기 가속에 대해서는 거저 공급을 해 경제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우리도 약한 자를 믿음으로 도와주어야 함

우리도 다른 형제들에게 대해서 경제 부담을 해야 할 것은 꼭 해야 합니다. 우리도 전도비 내는 것, 상납금 내는 것, 학교에서 등록금 내는 것, 또 개척교회 분담금 내는 것은 반드시 해야 됩니다. 어제 저녁에 다시 다 정했습니다. 교역자들 십일조 절반을 개척교회 보조금으로 다 내기로 정했습니다. 참여 하지 않은 교회가 있으면 참여해야 합니다. 교역자들은 사례금 받는 것 중에서 본인이 십일조 내지 않겠습니까? 그 십일조에 대한 절반은 여기 총회 전도부에 내야 합니다. 전도부에 내서 지방 여러 교회들을 보조해 줘야 합니다. 지금 열다섯 교회를 보조 해 줍니다. 지방 교회 보조 안 해주면 다 굶습니다.

지방에 어떤 교회는 사례금 8만 원 주는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8만 원 가지고 어떻게 한 달을 살겠습니까? 아이들도 한 두 명 있을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2만 5천원 주는 교회도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10만 원 받는 교회도 있고, 3~4만원 받는 교회도 있어서 보조
안 해주면 살기 어렵습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것 보조해 주자는데 안하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진 것은 양심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들이나 동역자가 보조 안 해주면 굶주리는데 하지 않겠다는 것은 양심 안 쓰는 것입니다. 옆에 동역자가 와서 굶주리고 있는데 자기 혼자 다 먹겠다는 것과 마찬가
지입니다. 그것이 믿음인가 양심인가 생각을 해 보십시오. 보조 안 해주면 살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옆에서 굶고 있는데 안내고 앉아가지고 ‘주여, 주여’ 하면 무엇이 주여 인가 생각 해 보십시오. 자기가 밥 한 끼 안 먹고라도 같이 나눠먹을 생각까지 해야지 양심을 쓰
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무슨 생각으로 안 내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서로 약한 사람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16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
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형제나 자매가 먹을 것이 없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평안히 가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서 안준다는 것입니다. 돈은 내지 않으면서 만나면 ‘안녕하
셨습니까’ 인사하고 헤어 질 때도 ‘안녕히 가십시오. 평안히 가십시오’하고 인사 할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평안히 가겠습니까? 집에 가면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한쪽에서는 굶주리고 있는데 보조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겠습니까?

세상나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나라도 에티오피아에서 굶주리고 있는데 도와주려고 전 세계가 들썩하지 않습니까? 에티오피아는 공산주의 나라인데도 굶주리게 되니까 우리 한국에서도 보조해줍니다. 캐나다에 가보니까 학생들이 쌀 모아가지고 에티오피아 원조 해 주려고 합니다. 캐나다 정부에서는 정부가 원조 해 주지만 개인적으로나 국민적으로 많이 합니다. 캐나다는 개인적으로 에테오피아를 돕는다고 하면 개인이 돕는 만큼 나라에서 원조해줍니다. 예를 들어 국민이 1,000불 원조 하겠다고 하면 나라에서도 1,000불을 보태서 에티오피아로 보냅니다. 캐나다가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공산당 에티오피아 정부 당국자들이 영국과 소련에서 자동차와 비행기로 술을 사다가 마신다고 신문에 났습니다. 백성들은 굶주리는데 공산당 간부들은 술을 자동차와 비행기로 사다가 먹으면 도와 줄 필요 없다는 말이 나 올 수 있습니다. 백성이 굶
주리고 있는데 어떻게 돕지 않겠느냐고 해서 에티오피아 대사를 불러다가 지부에서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원조해 준 것이 정말 백성들에게 가느냐? 너희들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먹느냐?’ 물었더니 대사는 정말로 백성에게 가니까 에티오피아 정부를 믿으라고 했답니다. ‘간부들이 술만 마시고 있는데 어떻게 믿고 보내겠느냐? 무기 사다가 전쟁하려고 하지 않느냐?’ 의심을 하면서도 보내줍니다. 우리가 직접 가서 굶주리는 사람에게 전달하게 해 달라는 제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당국에서는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못하면 너희들이 술만 마시고 있는데, 이것 가져다가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까 ‘그렇지 않다’고 빌었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안 믿는 사람들도 한편에서 굶주리고 있으면 도와주는데 교역자들이 지방에 약한 교역자 있는 교회 도와주자는데 참여 하지 않으면, 양심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못합니다. 염치가 너무 없습니다. 자원해서라도 도와야 되는데 공동으로 하자고 결의를 하고 따라가지 않으면 일이 어떻게 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니까 아직도 참여 못한 사람 있으면 빨리 해서 약한 교회 교역자들, 약한 형제 도와주는데 지장이 없도록 합시다. 제 때 가져와서 도와주어야 차질이 없습니다.

재정에 대해서 양심을 바로 써야 함

우리는 재정에 대해서 양심 쓰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언제든지 배워야 합니다. 약한 교회 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재정에 대해서 양심을 써야 합니다. 마땅히 도와 줘야 할 것을 도와주지 않으면 죄입니다. 남에게 빼앗은 것만 죄가 아닙니다. 복음도 내가 전해야 될 것을 전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쓰라고 줬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않으면 죄 아닙니까? 그것이 불의한 재물이 됩니다. 성도들도, 자기가 돈을 벌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써야 될 때 쓰지 않으면 그것이 불의한 재물입니다. 부모형제, 동역 자, 선
배, 가르쳐준 스승에 대해서 자기의 의무를 감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크게 나누면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도덕적인 하나님입니다. 의와 선과 사랑과 진실과 거룩 등이 다 ‘도덕’입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다음에는 ‘능력’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우리에게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이 다 도덕입니다.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을 배워서 우리가 다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 사랑하는 모든 면을 배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배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바로 되지 못하면 신자 자격이 없습니다.
또 교역자는 더욱더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 노릇을 바로 해야 합니다. 요셉이 윗사람에 대해서 바로 했습니다. 자기의 능력으로 할 수 있지만 바로에게 허락을 받아서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형제들과 아버지가 갈 때 미리 말 할 것을 가르쳐 주고, 고센 땅을 바로에게 허락 맡
으려고 애 쓴 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좋은 일입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후대가 약 300년 내려가기까지 아무 지장이 없이 내려갔습니다. 400년대에 가서 애굽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왔을 때에 그때부터 핍박이 나온 것입니다.

3. 야곱이 바로를 축복함

그 다음에는 요셉의 아버지가 바로에게 가서 인사를 했는데 축복을 두 번 해줬습니다. 본문 7절에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바로를 만나서 축복을 해 줬습니다. 또 떠날 때도 축복 해 줬습니다. 본문 10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두 번이나 축복을 해 준 것입니다. 요셉이나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의 기관입니다. 또 교역자도 하나님의 축복의 기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