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신앙
창세기 50:15-26
15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17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19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2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십 세를 살며 23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 되었더라 24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창세기 50:15-26
15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17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19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2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십 세를 살며 23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 되었더라 24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1. 장자의 신앙을 가진 요셉
히브리서 11장 22절에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임종할 때에 자기가 세상 떠난 뒤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실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해골을 부탁하였습니다.
요셉의 신앙에 대해서 살펴보면, 역대하 5장 1절에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장자의 명분에 합당한 신앙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장자의 축복을 받은 신앙을 요셉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믿음이 참 좋았습니다. 여기서 장자의 명분과 축복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을 걷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을 다 받는 신앙인 것입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장자의 신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친히 요셉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또 성령의 감동이 어렸을 때부터 요셉에게 충만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아 잘 해석하고 증거하였습니다.
요셉이 어린 시절에 꿈을 꾸고 그 꿈의 내용을 부모와 형제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꿈에서 요셉이 곡식을 묶었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것에게 절하였다고 하였고, 또 다른 꿈에서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꿈은 보통 꿈이 아니고 하나
님께서 계시로 주신 꿈입니다. 장자의 축복이 요셉에게 갔기 때문에 요셉이 어렸을 때부터 영감이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언제나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계시를 바로 깨달았습니다. 애굽에서 감옥에 갔을 때에도 떡 관원장과 술 관원장이 꾼 꿈을 요셉이 잘 해석해주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신 꿈인데, 요셉이 영감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잘 풀어주었습니다. 또 바로 왕이 꿈꾼 것도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신 것인데, 그것도 요셉이 잘 해석 해주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를 잘 알아 깨달았으며 해석도 잘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신앙을 어렸을 때부터 가진 것 같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경말씀입니다. 지금은 꿈으로 계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꿈꾼 것은 제 꿈 아니면 개꿈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믿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에 기록을 해주셔서 하나님과 하나님 뜻을 알게 해주시는 시대입니다. 요셉의 시대와는 다릅니다. 요셉의 신앙은 어렸을 때부터 성경말씀을 잘 알고 해석도 잘하고 그 내용 역시 잘 믿은 신앙입니다.
2.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형통하게 된 요셉
요셉의 신앙에 대하여 창세기에 몇 가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였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3절에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가서 종살이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주인이 보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모든 일에 형통한 것을 보고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가 범사에 형통한 것을 그 주인이 알고 모든 사무를 그에게 맡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알았습니다. ‘아,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다 형통하게 해주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알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17세에 팔려가서 11년을 종살이했습니다. 그 11년 동안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보고 알았습니다. 또 요셉이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한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해주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주인인 보디발이 그 가정의 제반사를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요셉으로 자기 가정의 총리를 삼은 것입니다. 보디발이 자신의 가정의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다고 했는데, 모든 것이 다 잘 되었습니다. 그 집에 모든 것이 다 형통하고 잘 되었습니다. 복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복이 그 집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종살이도 잘합니다. 무엇이나 맡긴 것은 다 잘하고, 또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주시니까,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니까, 모든 것이 다 잘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요셉이 감옥생활도 잘했습니다. 종살이만 잘 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2년간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감옥에서도 생활을 잘함으로 전옥이 감옥의 제반사를 그에게 다 맡겼습니다. 또 애굽의 떡 관원장과 술 관원장이 감옥에 들어왔는데, 그들이 꿈꾼
것도 요셉이 해석을 잘 해주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들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 꿈의 내용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즉 요셉이 감옥생활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시는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감옥에서도 당면한 문제와 꿈 해석하는 문제를 요셉이 잘 풀었습니다.
이후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셔서 요셉으로 하여금 7년 흉년과 7년 풍년 들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총리로서의 일을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7년 흉년이 올 것인데 어떻게 해야 그것을 잘 통과할 수 있겠는가? 흉년 들기 전, 7년 풍년이 올 때에 곡식을 많이 모아서 쌓아 놓았다가 그 다음 7년 흉년이 올 때에 팔면 된다.’ 요셉이 이것을 미리 알고 7년 풍년 동안에 곡식을 많이 사서 쌓아 놓았다가 그 다음 7년 흉년이 올 때에 내어 팔았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이 애굽 전체를 구원하고 자기 형제들을 다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다 구원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을 형통하게 해주셨고, 그 결과 요셉이 어디에 있던지 무슨 일을 하던지 다 잘했습니다. 부모의 슬하에서 심부름을 할 때에도 다 잘했고, 애굽에 팔려가 종살이를 할 때에도 다 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했습니다. 그 다음에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했습니다. 그리고 애굽 전국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잘 아라서 모든 것을 잘 했습니다. 요셉 같은 사람은 아무데나 갖다 놓아도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무엇을 맡겨도 다 잘합니다. 부모의 슬하에 있을 때도 잘하고, 종살이 할 때도 잘하고, 감옥에 갔을 때도 잘하고, 총리생활도 잘했습니다. 요셉 같은 사람이 총리가 되면 그 나라가 바로 됩니다. 또 요셉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그 나라가 바로 됩니다.
그 다음에 요셉이 감옥생활도 잘했습니다. 종살이만 잘 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2년간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감옥에서도 생활을 잘함으로 전옥이 감옥의 제반사를 그에게 다 맡겼습니다. 또 애굽의 떡 관원장과 술 관원장이 감옥에 들어왔는데, 그들이 꿈꾼
것도 요셉이 해석을 잘 해주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들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 꿈의 내용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즉 요셉이 감옥생활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시는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감옥에서도 당면한 문제와 꿈 해석하는 문제를 요셉이 잘 풀었습니다.
이후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셔서 요셉으로 하여금 7년 흉년과 7년 풍년 들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총리로서의 일을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7년 흉년이 올 것인데 어떻게 해야 그것을 잘 통과할 수 있겠는가? 흉년 들기 전, 7년 풍년이 올 때에 곡식을 많이 모아서 쌓아 놓았다가 그 다음 7년 흉년이 올 때에 팔면 된다.’ 요셉이 이것을 미리 알고 7년 풍년 동안에 곡식을 많이 사서 쌓아 놓았다가 그 다음 7년 흉년이 올 때에 내어 팔았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이 애굽 전체를 구원하고 자기 형제들을 다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다 구원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을 형통하게 해주셨고, 그 결과 요셉이 어디에 있던지 무슨 일을 하던지 다 잘했습니다. 부모의 슬하에서 심부름을 할 때에도 다 잘했고, 애굽에 팔려가 종살이를 할 때에도 다 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했습니다. 그 다음에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했습니다. 그리고 애굽 전국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잘 아라서 모든 것을 잘 했습니다. 요셉 같은 사람은 아무데나 갖다 놓아도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무엇을 맡겨도 다 잘합니다. 부모의 슬하에 있을 때도 잘하고, 종살이 할 때도 잘하고, 감옥에 갔을 때도 잘하고, 총리생활도 잘했습니다. 요셉 같은 사람이 총리가 되면 그 나라가 바로 됩니다. 또 요셉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그 나라가 바로 됩니다.
3. 시험을 이기는 신앙을 가진 요셉
둘째는 요셉이 시험을 잘 이겼습니다. 창세기 39장 7-9절에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보디발의 집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고 거절하고 같이 있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집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때에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붙들고 동침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요셉이 한 말, 그것이 바로 믿음의 말입니다. 창세기 39장 9절에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
였습니다. 여인은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고서 여인의 요청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합니다. 다윗과 같은 성자도 여자 시험에 넘어가 폐가 망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여인이 와서 붙들고 날마다 청하고 주위에 사람들도 다 없는 상황에서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외딴 데에 혼자 있을 때 와서 동침하자고 할 때에 단순히 거절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는 바로 이 말에 요셉의 위대함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100명의 한 사람 있을지 말지 한 것입니다. 100명이면 99명은 넘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거절하였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는 것을 보면 요셉이 하나님께 죄짓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여 벌벌 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시험에 합격 된 것입니다. 이 죄는 다윗도 이기지 못한 것인데, 여기서 요셉이 이긴 것입니다.
또 그 여자가 그 다음에 강제로 요셉을 붙들고 매달리려고 할 때에 요셉이 자신의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쳤습니다. 이에 그 주인이 들어오니 여인이 상황을 뒤집어 요셉이 자신을 겁간하고자 하였고 자기가 소리를 지르니 그가 옷을 벗어 내버리고 도망쳤다고 한 것입니다. 결국 주인이 화가 나서 요셉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를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감옥에서 2년간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을 이긴 요셉입니다. 우리가 이성관계의 시험부터 잘 이겨야 합니다. 요즘 음란, 방탕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말세가 되어서 이 세상이 노아시대와 같고 소돔 고모라의 시대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성에 대한 시험을 이겨야 됩니다.
이렇게 시험을 이긴 요셉입니다. 우리가 이성관계의 시험부터 잘 이겨야 합니다. 요즘 음란, 방탕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말세가 되어서 이 세상이 노아시대와 같고 소돔 고모라의 시대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성에 대한 시험을 이겨야 됩니다.
4. 형들을 회개시켜 바로 세운 요셉
셋째는 요셉이 형제들에게 잘해주었습니다.
요셉이 열두 형제 가운데 하나인데, 열한 번째입니다. 그런데 열 형들이 요셉을 팔아먹었습니다. 그 당시 막내인 베냐민은 집에 있었습니다. 요셉이 팔려서 애굽에 가서 종살이를 11년 하다가 감옥에 2년 동안 갇혔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감옥에서 나와 애
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총리가 되어서 7년간 풍년이 들었고 그 때에 곡식을 많이 모아서 쌓아놓았습니다. 각 동마다 성마다 창고를 짓고 많이 쌓아 놓았습니다. 그 다음에 7년 흉년이 들게 되었을 때 창고에 있는 곡식을 내어 팔았습니다. 그 흉년은 애굽 뿐 아니라 애굽 부근 전체와 가나안 땅까지 이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곤란할 때에 요셉이 곡식을 내어 팔았다는 것입니다. 애굽에는 곡식이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방에는 곡식이 없었습니다. 풍년들 때 다 먹었던 것입니다. 흥청거리며 다 해먹은 것입니다. 풍년들 때에 다 써 치우고 저축을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앞으로 흉년이 올 것을 알고 저축을 잘 했습니다.
그때 요셉의 아버지가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아들들 보고 애굽에 가서 사오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에 온 것입니다. 그때에 요셉은 총리가 되고 나서 9년이 지났는데 자기 아버지 야곱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아버지네로 곡식을 보내주지 않았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소식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곡식을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곡식을 왜 안 보내 주었는가 하면, 형들이 곡식 사러 올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올 것 아닙니까? 아버지가 시킬 테니까 말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7년 풍년이 지나고, 2년째 흉년이 든 가운데 형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7년 흉년 중에 2년째 되는 해에 형들이 요셉에게로 온 것입니다. 20여 년 전에 갈라진 형들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이 서른 살이었으므로 지금은 서른아홉 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형들은 한 마흔 댓살, 오십 이상이 되었을 것 아닙니까? 형들의 얼굴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총리 옷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니 감히 얼굴 들고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곡식 사러 왔다고만 했습니다. 그때에 요셉이 나와서 반갑게 인사했습니까? 자기가 요셉이라고 인사했습니까? 안했습니다. 시치미 뚝 떼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는 그들이 정탐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결국 정탐인지 아닌지 한 사람을 묶어 가두어 놓고, 그 다음에 막내아들이 있다고 하니 그를 데려 오면 이다음에 만날 수 있다고 하며 나머지 형제들로 놓아 주었습니다. 막내 동생인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자신을 만나지 못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형들 가운데 시므온을 결박하였습니다. 창세기 41장 24절에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취하여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고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시므온을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여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을 제외한 나머지 형들로 하여금 곡식을 사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왜 시므온을 결박하였습니까? 요셉을 팔 때에 시므온이 앞장서 나갔습니다. 시므온이 요셉을 팔아넘기자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동생 팔아먹은 것을 회개 시키려고 시므온을 결박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형들에게 다음에 올 때에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자신의 얼굴을 보지,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것 역시 형제들을 회개 시키는 것입니다. 동생을 판 죄를 회개 시키는 것입니다. 요셉을 판 죄를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또 형제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요셉이 형제들에게 잘해주었습니다.
요셉이 열두 형제 가운데 하나인데, 열한 번째입니다. 그런데 열 형들이 요셉을 팔아먹었습니다. 그 당시 막내인 베냐민은 집에 있었습니다. 요셉이 팔려서 애굽에 가서 종살이를 11년 하다가 감옥에 2년 동안 갇혔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감옥에서 나와 애
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총리가 되어서 7년간 풍년이 들었고 그 때에 곡식을 많이 모아서 쌓아놓았습니다. 각 동마다 성마다 창고를 짓고 많이 쌓아 놓았습니다. 그 다음에 7년 흉년이 들게 되었을 때 창고에 있는 곡식을 내어 팔았습니다. 그 흉년은 애굽 뿐 아니라 애굽 부근 전체와 가나안 땅까지 이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곤란할 때에 요셉이 곡식을 내어 팔았다는 것입니다. 애굽에는 곡식이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지방에는 곡식이 없었습니다. 풍년들 때 다 먹었던 것입니다. 흥청거리며 다 해먹은 것입니다. 풍년들 때에 다 써 치우고 저축을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앞으로 흉년이 올 것을 알고 저축을 잘 했습니다.
그때 요셉의 아버지가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아들들 보고 애굽에 가서 사오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애굽에 온 것입니다. 그때에 요셉은 총리가 되고 나서 9년이 지났는데 자기 아버지 야곱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아버지네로 곡식을 보내주지 않았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소식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곡식을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곡식을 왜 안 보내 주었는가 하면, 형들이 곡식 사러 올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올 것 아닙니까? 아버지가 시킬 테니까 말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7년 풍년이 지나고, 2년째 흉년이 든 가운데 형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7년 흉년 중에 2년째 되는 해에 형들이 요셉에게로 온 것입니다. 20여 년 전에 갈라진 형들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이 서른 살이었으므로 지금은 서른아홉 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형들은 한 마흔 댓살, 오십 이상이 되었을 것 아닙니까? 형들의 얼굴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들은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총리 옷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니 감히 얼굴 들고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곡식 사러 왔다고만 했습니다. 그때에 요셉이 나와서 반갑게 인사했습니까? 자기가 요셉이라고 인사했습니까? 안했습니다. 시치미 뚝 떼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는 그들이 정탐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결국 정탐인지 아닌지 한 사람을 묶어 가두어 놓고, 그 다음에 막내아들이 있다고 하니 그를 데려 오면 이다음에 만날 수 있다고 하며 나머지 형제들로 놓아 주었습니다. 막내 동생인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자신을 만나지 못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형들 가운데 시므온을 결박하였습니다. 창세기 41장 24절에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취하여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고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시므온을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여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을 제외한 나머지 형들로 하여금 곡식을 사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왜 시므온을 결박하였습니까? 요셉을 팔 때에 시므온이 앞장서 나갔습니다. 시므온이 요셉을 팔아넘기자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동생 팔아먹은 것을 회개 시키려고 시므온을 결박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형들에게 다음에 올 때에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 자신의 얼굴을 보지,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것 역시 형제들을 회개 시키는 것입니다. 동생을 판 죄를 회개 시키는 것입니다. 요셉을 판 죄를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또 형제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회개시키려고 요셉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습니까? 쌀자루에 돈을 넣어둔 문제, 금잔을 넣어준 문제, 베냐민을 데려오게 한 문제 등으로 인해서 형들이 얼마나 애간장이 탔겠습니까? 회개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앞으로 이스라엘을 건설할 수 있습니까? 형제들이 과거의 상태로는 앞으로 이스라엘을 건설할 수 없습니다. 회개시켜서 앞으로 이스라엘을 건설하려고 요셉이 여러 가지 면으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진정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베냐민 자루에서 금잔이 나오고 요셉이 베냐민을 종으로 삼겠다고 할 때에 진정으로 다 회개했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가도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하고 다 망하게 되었으니, 그들 전체가 다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히스기야 왕도 좋은 왕이었지만 회개 안 하면 안 됩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려서 회개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15년을 더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회개하여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운다고 했습니다(마 3:10).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 기독교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도끼를 들어 찍지 않으실 것이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도끼를 들어 찍어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회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셉의 형제들과 같이 이렇게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우상이 되는 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고 애굽에서 사 온 양식을 다 먹었습니다. 그런 후에 형들이 아버지에게 다시 곡식을 사오려면 막내인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였으나, 아버지는 베냐민을 못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다 굶어 죽게 되었으니 아버지가 베냐민을 내어 놓았습니다. 창세기 43장 14절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베냐민이 우상이었습니다. 베냐민을 우상화했기 때문에 우상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우상이 되는 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베냐민이 우상인데, 그것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상을 그냥 가지고 나가면 안 됩니다. 다 내어 놓아야 합니다. 야곱에게는 막내아들이 우상이었기 때문에, 바로 그것을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형들을 용서해준 요셉
형들이 회개하였을 때 요셉이 용서해주었습니다. 창세기 45장 5-7절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믿음이 얼마나 있습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나를 이곳으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우리 형제들, 우리 가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라고 하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팔아먹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때문에,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것은 형제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형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 보내시고 종살이하게 하셨다. 감옥에도 2년 간 들어갔다 나오게 하셨다’ 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아니하고 사람의 생각대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반입니다. 이렇게 요셉이형들을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본문 50장 15-18절에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부친을 장사하고 돌아온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이 전에 요셉에게 행한 악을 요셉이 보복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요셉이 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대로 놓아두었으나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이 직접 요셉에게 나아가지 못하고 사람을 내세워서 아버지가 살았을 때에 형들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유언했다고 전했습니다. 또 요셉이 형들에 대해서 마음이 뜨거워서 울었다는 소식을 형들이 듣고 이제는 그들이 친히 요셉 앞에 와서 엎드려 용서를 빌었습니다.
본문 19-21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와서 용서를 빌 때에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에게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하면서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한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그들은 요셉을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해하려고 했지만 도리어 그것이 유익이 된 것입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과 같은데, 형들은 화를 주었지만
하나님께서 복으로 내리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는데, 내가 이제 어떻게 하나님을 배신하겠습니까?’라고한 것입니다.
요셉은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랑으로 그들을 대접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신앙입니다. 종으로 팔아먹은 형제들, 그 형제들에게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애굽으로 오게 된 것은 형제들이 팔아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임을 요셉이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애굽으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대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요셉의 이러한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요셉의 경우 그 형제들이 자신을 종으로 팔아먹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살이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보내신 것입니다. 형들이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으로 내리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는데, 내가 이제 어떻게 하나님을 배신하겠습니까?’라고한 것입니다.
요셉은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랑으로 그들을 대접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신앙입니다. 종으로 팔아먹은 형제들, 그 형제들에게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애굽으로 오게 된 것은 형제들이 팔아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임을 요셉이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애굽으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대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요셉의 이러한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요셉의 경우 그 형제들이 자신을 종으로 팔아먹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살이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보내신 것입니다. 형들이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6.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는 요셉
본문 22-23절에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젊었을 때에 많은 고난을 받았으나 그것을 다 믿음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애굽에서 110세까지 살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자손 3대를 보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부친께 자신의 두 아들을 바쳤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두 아들을 창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본문 22-23절에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젊었을 때에 많은 고난을 받았으나 그것을 다 믿음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애굽에서 110세까지 살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자손 3대를 보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부친께 자신의 두 아들을 바쳤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두 아들을 창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본문 24-26절에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 가겠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이스라엘을 권고하셔서 인도해 주실 것이니, 그때에 그의 해골을 메고 가겠다고 하라고 한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맹세해 주셨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애굽에 와서 살지만 우리나라는 가나안 땅이다. 하나님께서 정녕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권고해 주실 것이다. 지금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지만 정녕 권고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갈 것을 맹세하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을 종살이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는 400년 후에 올라갈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셉 때에 애굽에 가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400년 후 먼 장래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의 삶은 나그네 생활이다. 임시로 와서 우거하는 생활이다. 이스라엘의 나라는 가나안 땅이다. 하나님께서 정녕 너희를 권고해 주실 것인데,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요즘 우리로 말하자면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녕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인데, 그 소망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신앙, 곧
소망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요즘 우리로 말하자면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녕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인데, 그 소망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신앙, 곧
소망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요셉이 왜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고 했습니까? 이때에 요셉이 가나안 땅에 자신의 해골이 묻히기를 원하면 가나안 땅에 묻힐 수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인데,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하면 가나안 땅에다 묻어 줍니다. 거기에 장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골이 가나안 땅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부흥시키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신이 죽은 다음에라도 요셉의 해골을 보고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신다. 요셉이 그때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는
가나안 땅이다’라는 신앙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셉이 죽은 다음 그 해골을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고센 땅에 매장하지 않았습니다. 시신을 방부처리하여 부패하지 않게 만들어 여러 사람들이 가서 그 관을 보도록 하였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400년 동안을 살면서 가나안 땅에 갈 소망을 잊어버리고 신앙이 타락되어 갈 때가 많이 있을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신의 해골을 보고 ‘메고 가라고 했다. 간다. 우리가 살 땅은 가나안 땅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다’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신앙을 깨우치려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요셉의 해골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400년 동안 깨우쳤습니다. 무엇이 깨우치게 했습니까? 해골을 메고 나가라는 요셉의 유언 한마디, 또 가나안 땅으로 간다는 예언 한마디입니다. 이 말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400년 동안 애굽에서 살 때에 신앙을 깨우쳐 주고
다시 북돋아 주며 부흥시켜 준 것입니다. 400년간 요셉의 해골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하여 요셉이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라고 한 것입니다. 실제로 해골은 아무데나 묻어도 괜찮습니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의 해골을 보고, 또 이다음에 메고 나가라는 요셉의 유언을 받들어서 그 말을 기억할 때마다 그들의 신앙이 깨우쳐 졌습니다. ‘우리나라는 가나안이다’라고 깨우쳐 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나그네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본향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하늘에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소망하고 나가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400년을 깨우친 요셉의 해골의 신앙, 이것을 우리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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