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표적의 참된 의미
요한복음 6:1-71
요한복음 6:1-71
1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16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21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22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 척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28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33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38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41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42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4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52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58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60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61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4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7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1. 그것을 가져오라
본문 1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라고 하였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디베랴 바다입니다.
본문 2절에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병자를 고쳐 놓으시니 그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본문 3-7절에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빌립의 신앙은 계산적 신앙입니다. 계산을 잘했습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하고 계산이 나왔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이면 한국 돈으로 얼마입니까? 한 데나리온은 장정이 하루 일한 고가(高價)입니다.
요새 하루 일하면 얼마나 받습니까? 10만원?, 7만원?, 대략 하루 7만원으로 치고 이백 데나리온이면 얼마입니까? 1,400만원입니까? 빌립이 계산을 잘합니다. 딱 들어맞게 계산한 것입니다. 그의 신앙은 계산적이었습니다.
본문 8-9절에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4:15-18에는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떡을 사다 주어야 되겠다고 하니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시니 제자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 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서 조금씩 주어도 부족할 만큼 많은 사람들, 여자와 아이들 외에 오천 명이나 모였다고 했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떡을 사다 주어도 조금씩 밖에 돌아가지 않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떡을 구하러 갈 것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가져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져오라,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구하여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 가는 것을 예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갈 것이 없다는 겁니다. ‘너희가 주라’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있는 것,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2. 오천 명이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 남음
본문 10-13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고 하였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하나님께 바쳤을
때 예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에게 떼어주라, 고 하셨습니다. 이에 오천 명에게 다 떼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배불리 먹고도 조각이 남아 그것을 거두니 얼마나 되었습니까?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보리떡은 좋은 떡이 아닙니다. 제일 하급(下級) 떡입니다. 맛도 없고 모양도 좋지 않고 값도 싸고, 그런 점에서 가치가 없는 떡입니다. 그래도 바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보리떡과 같이 모양도 없고 가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도 하나님께 드려지기만 하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일하심으로 많은 생명을 살려나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좋은 떡이 없다고, 보리떡은 내어놓지 못한다고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있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보잘것없고 얼마 안 되어도 그것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께로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셔서 수많은 생명을 먹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비결입니다. 그러고도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바구니에 차도록 거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돈 없어 못한다, 물질이 없어 못한다, 얻으러 가야 되겠다’하면 예수님께서 안주십니다. “네게 있는 것이 얼마냐 되느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이렇게 물어 보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를 값으로 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이가 점심 한 끼 먹을 생각으로 싸온 분량, 그에 해당하는 값입니다. 또, 물고기라 해도 큰 것이 아니라 멸치보다 조금 큰 정도로 생각되는데, 이것 역시 값으로 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 1,000원이나 1,500원 짜
리 쯤 되겠는데, 넉넉하게 한 3,000원으로 해 둡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네게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느냐?”하실 때 “3,000원 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3,000원 밖에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10만원 있는 사람은 “10만원 밖에 없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100만원 있는 사람은 “100만원 있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가져오라, 갈 것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져가서 예수님께 바치기만 하면 됩니다. 이후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할 일을 다 하십니다.
많은 생명을 살리시고 또, 부스러기를 주우니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부스러기를 주우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은 부스러기 하나라도 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스러기 인간, 부스러기 사람들, 이렇게 부스러기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버리지 말고 거두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스러기 하나라도 버리면 안 됩니다. 다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가진 것을 바쳤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더 많이 주셨습니다. 바치면 많이 주십니다. 이것을 잘 몰라서 사람들은 전혀 안 바치기도 합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바치면 더 많이 준다, 십일조 드리면 창고에 넘치도록 복을 붓지 아니하나 보라, 바치면 한 사람 먹을 것이 오천 명 먹이고도 남는다”, 바치는 비결,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시는 비결, 바친 것을 가지고 일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우리가 알고 바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김현봉 목사님께서는 예수를 믿으려면 세 가지부터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주일부터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일 지키지 않는 것은 믿음의 초보도 안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일에 병을 고치셨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정죄했지요? 그러나 주일에 병 고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선한 일입니다.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사람을 건져내는 일이 좋은 일입니다. 주일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 그것이 좋은 일입니다. 성전에서 주일에 봉사하는 것, 그것이 좋은 일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주일을 지키면 천당에 가고 주일을 안 지키면 지옥에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이 안식일이었는데, 신약시대에는 주일로 변경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4:7에 다른 날을 정했다, 라고 했습니다. 주일은 구약시대의 날과 신약시대의 날이 다릅니다. 히브리서 7:18에는 옛 계명을 폐하고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한 날이고(요 20:19), 성령 강림한 날이며(행 2:1),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계 1:10)입니
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합동하셔서 이날을 은혜주시는 날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날짜를 변경시키신 것입니다.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있고 폐법주의자(廢法主義者)들이 있으며, 그 가운데 성경 말씀을 바로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폐법주의자들은 “이제는 법이 필요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다 완성하셨기 때문에 주일 지킬 필요가 없다, 십일조도 드릴 필요가 없다, 다른 계명도 지킬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다 행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행할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구원파는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사해주셨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로마서 3장에 율법으로 죄를 깨달아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고 했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구원 받으려고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달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율법의 용도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폐한 것이 아닙니다. 또, 그것을 지켜서 구원 받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첫째 용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구원 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쓰임에 있습니다.
셋째는 그 말씀을 지켜서 영의 양식으로 삼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일을 범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주일날 사고팔거나 일하면 안 됩니다. 소나 나귀, 자녀나 나그네나 주일에 일 시키면 안 됩니다. 예전에 주일을 지키다가 거창에서 순교 당한 사람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배추달 씨는 6.25 사변 때 거창에 있었는데, 인민군이 내려와 어느 주일에 “짐 싣고 가자”고 했답니다. 그래서 “주일이라 못 싣고 간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그 사람이 개를 끌고 다녔던 모양인데, “그러면 개라도 끌고 가자”고 했더니 “주일이라 못 끌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당이라도 쓸어라”라고 했더니 “주일이라 못 씁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러니 그 군인들이 파출소 뒤로 올라가서 쏘아 죽였습니다. 백씨는 순교 당한 것입니다. 주일날 지키다가 순교한 것입니다. 지금 백씨는 하늘나라에서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 순교자의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을 것입니다.
주일 하나를 못 지키면 다른 것도 못 지킵니다. 그러면 주일에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 안식하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받는 것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일입니다. 이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주일은 하나님께로부터 안식을 받아 안식하는 날입니다. 또, 사람을 살려내고 병자를 고치며 구원하는 일을 하는 날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내가 주는 안식을 받아라”, “내가 너희와 함께 안식을 누려야 하겠다”, “영원한 안식이 앞으로 너희에게 있다”라는 뜻으로, 그 표징으로서 안식을 지키라고 주신 날입니다. 구약에 보면 안식일을 표징으로 주셨다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을 내놓고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주일에는 마땅히 하나님 섬기는 일과 구원하는 일과 불쌍한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주일에 자신의 썩어질 유익을 위하여 일하면 안 됩니다. 물건을 사고팔면 안 됩니다. 주일에 제직회하고 음식점에 가서 사먹고 찬양대에 먹을 것을 사다 먹이는 것 등이 다 죄 짓는 것입니다. 주일은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는 소득에서 십분의 일을 떼는 것이므로, 월급 받는 사람은 하기가 쉽습니다. 100만원 받았으면 10만원 떼면 되고 200만원 받았으면 20만원 떼면 되고 300만원 받았으면 30만원 떼면 됩니다. 그런데 월급을 안 받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먹고 사는 경우입니다. 즉, 자녀들이 도와줘서 먹고 사는 것, 무슨 원조를 받아서 사는 것, 이렇게 저렇게 수입이 생겨서 사는 것, 꿔다 먹고 사는 것 등이 있겠습니다. 하여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월급을 못 받아도 생활비에서 십일조를 내야 합니다. 한 달에 얼마 가지고 생활하는 지, 수치(數値)가 있을 것 아닙니까? 계산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자기 생활비에서 십일조를 내야 양심을 바로 쓰는 것입니다. 일정한 수입이 없다고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양심을 삐뚤게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누가 도와줘서 먹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으면 그것을 어떻게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바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지 못합니다. 연보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한국에 구세군 교회가 있는데, 구세군 교회는 연보를 많이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세군 교회의 경우, 연보하면 전부 상부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교회 운영비나 목사의 월급은 상부에서 다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연보를 많이 하나 적게 하나 상부에서 내려오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구세군 교회가 연보를 적게 하거나 잘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세군 교회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구세군 교회 얼마 없습니다. 연보 안하는 성도는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못 받습니다. 다 안 됩니다. 연보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오병이어(五餠二魚)를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많은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바치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칠 때에 누가 그것으로 오천 명이나 먹을 줄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명령 순종해서 바쳐 놓으니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에 남았습니다. 바치지 않았으면 오천 명도 못 먹고 남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쳤을 때에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먹고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살아났으며 남은 것이 많았습니다. 또, 오병이어는 오천 명의 사람들에게 육신의 양식으로만 기능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신령한 양식을 주시려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좀 더 큰 것, 좀 더 신령한 것, 좀 더 영원한 것, 좀 더 참된 것을 주시려고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오천 명이 떡과 물고기를 먹고 부스러기 남은 것이 다가 아닌 것입니다.
3. 오병이어의 참 뜻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상징함
그러면 좀 더 큰 뜻은 무엇입니까? 떡은 예수님의 살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살을 몇 만 쪽 찢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으로 주실 것을 가르쳐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물질을 바칠 줄 모르는 사람은 신령한 것을 모릅니다. 신령한 것도 못 받습니다. 물질을 바쳐 놓으니,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시고 신령한 것으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또 부스러기는 더욱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본문 14-15에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 삼아 놓으면 먹는 문제가 해결되고 병 낫는 것도 해결되고,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억지로 예수님으로 임금을 삼으려 했습니다. 이때가 가장 큰 시험입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가만히 계셨으면 임금이 되십니다. 그러나 임금이 되시면 구속 사업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속 사업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지, 유대 나라의 왕이 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때가 되니 산에 혼자 올라가셔서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본문 16-21절에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산으로 기도하러 가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데 바람이 불어서 큰 파도가 일어나 아주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산에서 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위태한 가운데 빠져 있으니 내려가서 제자들을 살려 내시려고 예수님께서는 물 위로 걸어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때 예수님께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유령이 났다, 귀신이 났다,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이니 두려움이 쑥 다 없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죽을까 싶어 벌벌 떨며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하실 때에 그 말씀을 받아들이니 두려움이 다 없어졌습니다. 안심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에 모셨습니다. 배에 예수님을 모시니 배
는 곧 가려던 땅에 이르렀습니다. 무사히 도착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풍랑도 잔잔해지고 가려던 목적지에 무사히 갈 수 있습니다.
4.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본문 26-27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왜 찾아왔다고 했습니까?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본래 자기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니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도 남았다”, “가보자, 나도 한 번 얻어먹자”, 이렇게 한 사람이 한 명씩만 말했어도 만 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여자들과 아이들도 있었을 테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따라 온 것으로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많이 왔으니까 감사하다, 일단 등록을 하고 이제는 내 교인이 되라”고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즉, 어저께 배불렀
으니 오늘도 배부를 목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표적의 참 뜻, 오병이어의 궁극적인 목적, 그것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기억으로 모여든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으니 오늘도 배부를 목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표적의 참 뜻, 오병이어의 궁극적인 목적, 그것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기억으로 모여든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상징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으려고 왔다면 그것은 진짜입니다. 여기에 표적의 참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떡 얻어먹으려고 왔으면 표적을 참으로 본 까닭이 아니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 없습니다. 썩는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썩는 양식입니까? “예수님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실 수 있는, 능력이 크신 분이시다”라고 하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하는 말입니다. “떡 좀 얻어먹자”하는 것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찾아온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이적 행하는 것을 보자”하는 것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찾아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운동하시는 것이 굉장하다, 거기 사람이 많이 모였다, 가보자”하는 것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찾아 온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떡은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살을 먹으려고 왔으면 그것은 진짜입니다. 그것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그러나 요새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교회를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를 알아준다고 찾아가는 것, 취직하려고 찾아가는 것, 자기 회사 사장이나 상관이 나간다고 자기를 조금 알아 달라고 찾아가는 것, 직장에 취직하려고 찾아가는 것, 시집가고 장가가려고 찾아가는 것, 이러한 것들이 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모여드는 것과 같습니다. 또, 집사 한 자리 하려고 교회 나오는 것 등 명예나 영광을 위하여 모여드는 것, 이것이 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장로하려고 나오는 것이 다 무엇입니까?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입니다. 목사하려고 나오는 것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사업이 잘된다’라고 하면서 사업 잘되게 하려고 나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입니다.
창광교회에 한의사들이 이따금씩 나옵니다. 나오다 얼마 있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안 나오는지 아십니까? 창광교회에 교인이 많으니까 교회에 출석하면 병원에 찾아 올 사람이 있을 줄 알고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나와도 그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필요 없다, 하고 안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적을 보고 나오는 사람은 무엇입니까? 떡을 보고 배부른 까닭에 나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병이 나았다. 병을 고쳤기 때문에 나온다’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입니다. ‘교회에서 자기를 알아준다’하는 것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업이 잘된다’, 이런 이유로 교회를 찾아 나오는 사람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건강하다’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입니다. 이것들은 다 썩어지고 말 것입니다.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노회장이 되고 총회장이 되고, 이런 것들은 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이런 것으로 성도를 알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은 썩는 양식입니다. 그러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무엇입니까? 자기 영이 사는 양식입니다. 영생이니까 영이 사는 양식 아닙니까? 중생한 영이 사는 양식을 먹으러 나왔다고 하면 그것은 진짜입니다. 영이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가면 영이 살아야 합니다. 사경회에 참여하면 영이 살아야 합니다. 중생한 영이 살아야 합니다. 영이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이 사는 교회, 그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그러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먼저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피는 음료이고 내 살은 떡이다”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영생하는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영감으로 능력으로 역사로 받아서 자기 영의 양식을 삼는 것,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받아서 자기 영의 양식으로 삼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주는 양식을 영감으로 먹
고 주님으로 먹고 자신의 영이 살아야 합니다. 또, 자기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험적으로 그때그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감으로 먹고 자기 영이 살아야 하겠습니다. ‘때를 따라 주신다’는 것은 그 시대에 해당하는 말씀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시대에 주시는 양식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시대는 율법주의, 할례 문제 등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김으로써 영의 양식을 삼는 것입니다.
루터 때에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주시는 양식이었습니다. 과거의 왜정 말단 때에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 신사참배 하지 말라’는 것이 그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양식이었습니다. 썩지 않는 양식,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해방 이후 요새는 주일 문제가 하나님께서 주신 시대의 양식입니다. 이북도 그렇고 이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북에서는 주일날에 선거를 했습니다.
하여간 요새 주일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주시는 양식입니다. 때를 따라 주시는 양식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2:42에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지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때에 맞는 양식, 오늘날 이 시대에 맞는 하나님의 양식을 영감으로 먹고 생명이 자라나야 합니다. 또, 자기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엘리야에게는 “그릿 시냇가로 가라”하는 말씀이 그에게 해당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가야만 영의 양식을 먹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라”했을 때 갔습니까? 네, 가야만 신령한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아합 왕에게 보여서 갈멜산으로 가라”했을 때 갔습니까? 네, 가야만 영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썩지 않는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하사엘에게 은혜를 부어서 아람 왕이 되게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하
나님께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하셨을 때 엘리야가 그렇게 해야만 신령한 양식을 먹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안 하면 신령한 양식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하실 때 “그것은 못합니다, 나는 그저 기도만 많이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것만 하겠습니다”하면 책망을 받습니다. 또, “과부네 집에만 있겠습니다, 과부의 집에 있어보니 괜찮은데 나는 그냥 과부네 집에만 늘 있겠습니다”라고 하거나 갈멜산으로 가라하실 때에 “갈멜산은 위험해서 못 갑니다, 과부네 집에 있겠습니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처음에는 과부네 집에 있는 것이 괜찮았지만 지금은 과부네 집에 있으면 안 됩니다. 갈멜산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양식 즉, 썩지 않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그때그때 적당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감으로 지키면 그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됩니다. 그것이 양식입니다. 우리는 그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곳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받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받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여기서 참 교회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4장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교회가 참 교회라고 했습니다. 진리가 바로 되어야 하고 교훈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하고, 그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 즉, 영적인 면이 있어야 합니다. 영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받을 때에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새 힘을 얻고 소생함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날마다 자라납니다. 집에 가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영감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지키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그 외에는 다 썩는 양식입니다. 자기 영이 살지 못하고 ‘무엇이 잘된다, 큰 이적을 보았다, 병이 나았다, 사업이 잘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다 썩는 양식입니다. 영이 사는 것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본문 28-34에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아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하고 예수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을 하라고 하시니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하고 여쭤 본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믿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첫째가 ‘믿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누구로 믿습니까?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창조자로 도성인신하신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빛으로 생명으로 “믿습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믿는 일을 그만큼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합니다.
본문 35-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쫒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오는 자를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마지막 날 다시 살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40-45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바른 진리를 듣고 배운 사람은 다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중국에 가서 성경을 여러 해 동안 가르쳤습니다. 여러 곳에 여러 명의 교역자들이 가서 가르쳤는데, 그 가운데 신비주의자들, 또 중국의 온갖 잡탕들이 많이 와서 물을 흐려 놓았지만 그래도 거기에 감염되지 아니하고 늘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쳐 놓으면 아버지께로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46-53절에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방법,
어떻게 하여야 살을 먹고 어떻게 하여야 피를 마실 수 있습니까? 첫째는 믿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희생해 주신 것, 하늘 영광을 내 놓으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희생하여 주신 것을 믿는 것이 살을 먹는 것입니다. 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 죄 값으로 피 흘려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첫째는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였는데, ‘믿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56절). 셋째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57절).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몇 가지라고 했습니까? 네,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믿는 것’입니다. ‘믿습니다’하는 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희생하여 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주신 것’, ‘하늘 영광을 다 내어놓으시고 낮아지신 주님’, 그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 ‘내 죄를 위해하여 피 흘려주신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것, 그로 말미암아 그의 능력으로 그의 인도하는 대로 그로 인하여 사는 생활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또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 첫째는 무엇입니까? ‘믿는 것’, ‘믿습니다’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를 인하여 그를 힘입어 그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5.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함
본문 58-63절에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는 것은 영이 사는 것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육은 다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썩는 양식은 다 무익하다는 말입니다. 영이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이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것은 아무리 잘 해 주어도 무익합니다. 육신의 즐거운 말, 귀에 즐거운 소리, 자기 생각에 딱 맞는 말들, 도덕적인 교훈, 인간의 향락적인 것, 친목적인 것, 육신의 사랑 등은 다 무익한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좋은 것인데, 육신의 사랑은 무익한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영이 살러 나가는 것이지, 교회에 나가면 ‘무슨 대접을 받는다, 점심을 해준다, 친목한다, 무엇을 준다’, 이러한 마음을 품으면 안 됩니다. 어떤 교회는 주일에 교회에 나가면 몇 천 원씩 준다고 합니다. 주일에 한 번 나가면 점심 얻어먹고 몇 천원 받아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를 나가면 백 년을 다녀도 쓸데없는 것입니다. 무익한 곳에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점심을 안 주어도 영이 살아야지, 점심 한 끼 얻어먹으려고 교회에 가는 것이 다 무어란 말입니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 영이 사는 그 길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영이 사는 교회, 영이 사는 말씀, 신령과 진정으로 영이 사는 예배,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육은 무익합니다. 썩는 양식은 다 무익합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것이 다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 한 것이 아닙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생명이다 또, 말씀이 영이다’라는 말은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참된 말씀은 성령께서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이 생명이고 영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는 것이 영을 받는 것입니다.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 64절에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팔 사람이 가룟 유다인 것을 아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믿지 아니하고 스승을 팔아먹을 것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또, 전대에서 이따금씩 도둑질해 가는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다 아셨습니다. 그런데 아시고도 왜 가만히 두셨을까요? 내쫒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가룟 유다가 처음부터 안 믿는 것도 아시고 팔아먹을 것도 아시고 도둑질해 가는 것도 아시고 마귀에게 진 줄도 아셨는데 왜 두셨겠습니까? ‘후대에 교역자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있다’하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아서바리’로 이용하시는 것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 아서바리부터 올라갑니다. 요새 아서바리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아무튼 건물 지을 때에 벽돌부터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아서바리부터 올라가서 치고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택자도 제자 가운데 두시고 아서바리로 이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운동에 불택자도 이용하십니다. 또, 범죄자의 말로(末路)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려는 뜻도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끈이 끊어져서 배가 터져 창자가 다 나와 죽었습니다. 이렇게 범죄자의 마지막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유다를 내내 그냥 두셨습니다.
본문 65-67절에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였습니다. 다 달아났습니다. 떡 먹을 생각을 하고 이적을 보려고 몇 만 명이 왔었는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된다”고 하니 다 달아났습니다. 이제 열두 제자만 남았습니다. 그 열두 제자에
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하는 것은 가려면 가라는 말입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본문 68-71절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짜입니다. 말씀을 붙들려고 따라오는 것이 진짜입니다. 말씀을 붙들기 위하여 따라오려는 것이 진짜입니다. 떡 먹고 따라오는 것, 자기 알아준다고 따라오는 것, 이적 보려고 따라오는 것, 병 고침 받으려고 따라오는 것, 이러한 것들은 다 진짜가 아닙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말씀이 주께 있는데 우리가 누 구에게로 가겠습니까?’,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그 말씀을 얻어먹으려고 따라오는 것이 진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