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버려라
에스겔 8:1-18
에스겔 8:1-18
1제육년 유월 오 일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았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 2내가 보니 불 같은 형상이 있어 그 허리 이하 모양은 불 같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3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는 투기의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4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보던 이상과 같더라 5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 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니 제단 문 어귀 북편에 그 투기의 우상이 있더라 6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7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9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10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11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 12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13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의 행하는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4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15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6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17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 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18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1. 에스겔이 이상 중에 예루살렘으로 끌려감
본문 1절에 “제육년 유월 오일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았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이 유다 장로들과 함께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였습니다. 이때는 여호야긴이 포로되어 간지 6년 6월 5일이 된 시점입니다.
본문 2절에 “내가 보니 불 같은 형상이 있어 그 허리 이하 모양은 불 같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천사가 하나님의 대행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는 투기의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보던 이상과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신’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에스겔의 영이 성령에 이끌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있는데’라고 하였는데, 우상이 가득한 성전에 그래도 아직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전에 우상이 가득하기 때문에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2. 투기의 우상
본문 5-6절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니 제단 문 어귀 북편에 그 투기의 우상이 있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제단 문 어귀 북편에 투기의 우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북향한 문을 제단 문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 제사를 위해 짐승을 잡는 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레 1:11). 투기의 우상은 투기를 일으키는 우상으로, 어떤 일로 인하여 서로 투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가 시기, 질투하는 것도 투기의 우상을 섬기는 일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하는 일입니다. 또 우상을 섬기는 것은 2계명을 범하는 죄입니다. 우상을 만지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세 가지 죄 때문인데,
첫째가 우상을 섬긴죄,
둘째는 안식일을 범한 죄,
셋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물질을 의지한 죄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일에 장사하러 간다고 해서, 포로로 잡혀가고 싶으면 장사하러 가라고 하였습니다. 주일에 장사하는 것은 포로로 잡혀가는 죄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죄도 포로로 잡혀간 죄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물질을 의지하는 것도 포로로 잡혀간 죄입니다.
3. 방안 벽의 가증한 우상
본문 7-10절에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이 뜰 문에 가보니 담에 구멍이 있었고, 주의 명령에 의하여 담을 헐고 보니 또 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 안에 들어가 보니 사방 벽에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들을 그려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는 가증하고 더러운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나 속에는 각종 우상이 가득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예배 의식을 굉장하게 가지나 그 속에는 가증한 것들이 가득합니다.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한 신하가 두 왕을 섬기는 것과 한 여자가 두 남편을 섬기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하나님도 남편으로 모시고 우상도 남편으로 모신다면, 그것은 남편이 둘 있는 여자와 같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고 그러한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에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마 6:24). 또 탐심이 우상 숭배라고 하였습니다(골 3:5; 엡5:5). 속에 탐심이 들어오면 하나님이 가려집니다. 또 사무엘상 15장23절에 완고한 것이 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속에 완고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완고한 고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셔도 오지 않습니다.
본문 11절에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같이 오르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인은 출애굽 후에 모세가 세운 70장로에서 유래한 이스라엘 공회를 가리킵니다. 70인 장로는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합니다. ‘사반’은 요시야 왕이 종교 개혁을 할 때 함께 일한 서기관이며(왕하 22:3),
그의 아들 중에 아히감과 그마랴는 예레미야에게 호의를 베푼 의인이었는데(렘 26:24, 36:10), 야아사냐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잘 섬기며 왕을 돕고 받들던 훌륭한 서기관이었던 사반의 아들이 우상을 섬기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된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렇게 좋은 지도자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들었던 사람이 그 지도자가 죽고 나서 신앙을 버리고 죄 짓는 일에 앞장 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 12-13절에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 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의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만 행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의 심령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란 심령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지 않으시는 줄 알고 가증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4. 담무스 우상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따라가서 취하는 것은 다 우상임
본문 14절에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담무스’는 미동(美童)의 신으로, 우상입니다. 여기서는 여자들이 아름다운 남자가 죽었다고 우는 것입니다. 곧 육신의 욕망이 끊어졌다고 우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육신의 욕망, 육신의 소망, 육신의 좋아하는 것이 끊어졌다고 우는 것은 담무스를 위해 우는 것입니다. 자식이 죽거나 사업에 실패했다고 낙심하고 우는 것도 담무스를 위해 우는 것과 같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아들이 죽어 상여가 나갈 때에 그 뒤를 따라가면서 아들이 천당 간 것을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추석입니다. 그때에 세상 떠난 사람을 생각해서 우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것이 담무스를 위해서 애곡하는 것입니다. 운다고 살아 돌아옵니까? 또 천국에 갔는데 울긴 왜 웁니까? 딸이 시집가서 잘 사는데 딸을 위해서 어머니가 운다면 그것은 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욕심입니다. 딸이 시집가서 친정에서 사는 것보다 열 배, 백 배나 더 잘 사는데, 왜 시집을 갔다고 웁니까? 명절에 왜 딸 때문에 우는 것입니까? 자기 욕심을 위해서 우는 것이지, 딸을 위해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우는 것도 육적 세계에서 인정으로 사는 성도의 경우입니다. 성도는 육적 세계에서 인정으로 살면 안 됩니다. 성도는 신령한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날마다 영이 살아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성도는 아브라함과 같이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살아야 합니다. 본토를 떠난다는 것은 욕심을 떠나는 것이고, 친척을 떠난다는 것은 인정을 떠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의지하고 살던 것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욕심과 인정과 세상 것을 의지하고 살던 것을 다 떠나서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바라보고 따라가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또 자기가 우상이 되면 안 됩니다. 에스겔 14장 2-3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기가 잘되는 길을 찾아가는 것은 자기가 우상이 된 것이며, 또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지배를 더 받는 것도 자기가 우상이 된 것입니다. 말세에는 국가가 우상이 되고(계 13:1), 기독교 단체가 우상이 됩니다(계 13:11).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따라가서 취하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그리고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면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요새 천주교에서는 마리아, 요셉, 베드로 동상 등을 만들어놓고 절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추도 예배는 죽은 사람을 위해 예배하는 것이므로 옳지 않음
그리고 조상에게 제사하며 한 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입니다. 우리는 조상에게 제사하면 안 됩니다. 또 제사 음식도 먹으면 안 됩니다. 제삿날 제사하기 위해서 만든 음식은 목적이 제사를 하기 위한 것이므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만 제사하려고 만들고 일부는 먹으려고 했다면 일부만 제사 음식이 됩니다.
성경에 우상의 제물, 목매어 죽인 것, 피를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행 15:20)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면서(고전 8:4-6) 제사에 올렸던 음식을 먹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게 가져놓았던 것인데 왜 죄가 됩니까?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지식은 온전한 지식이 못 됩니다. 한 편만 아는 것입니다.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은 모르고,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아는 것은 지식이 바로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귀신에게 제사한 것을 먹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8절에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제물을 먹는 자들은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로 실제로 제단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추도 예배하는 것과 산소에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 것은 절하지 않고, 음식을 차려놓지 않고, 울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서 사랑하는 자를 생각해서 울면 담무스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그냥 돌보고 오는 것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덤이 아버지나 남편이 아닙니다. 그 영은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육신을 묻어놓은 것은 의복을 묻어놓은 것과 같습니다. 곧 장막을 묻어놓은 것입니다. 그것은 큰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큰 것이지, 장막이 큽니까? 무덤에 묻어놓은 것은 돌볼 수도 있지만 돌보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추도 예배에 대해서는 신명기 26장 14절에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라고 하였는데, 죽은 사람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거룩한 예식인데, 죽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시편 106편 28-29절에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신, 구약 성경 전체를 찾아보아도 죽은 사람을 기념하라는 말씀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또 기념한 적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아들 이삭이 아브라함을 그 다음 해에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아들 야곱이 이삭을 그 다음 해에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그의 열두 아들이 야곱을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그의 제자들이 베드로를 기념한 적이 없습니다. 추도 예배는 제사하는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날 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날에 합니다. 내일은 죽겠으니까 죽기 전에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제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방식만 바꾼 것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사진을 갖다 붙여놓고, 또 상을 차려놓고 추도 예배하는 곳이 있습니다. 제사하는 것과 똑같으므로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죽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손들과 먼저 예배를 드리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이렇게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그날을 기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모나 조상들이 좋은 일을 했다면 세상 떠난 날 가르치지 말고 다른 날에 가르쳐야 합니다. 일 년에 여러 번 가르쳐야지, 왜 한 번만 가르치는 것입니까? 우리가 모세가 잘한 것, 베드로가 잘한 것, 아브라함 신앙의 좋은 면을 늘 말하지 않
습니까? 늘 말해야지, 왜 일 년에 한 번만 말하고 마는 것입니까?
그러면 “믿는 가정이 추석이나 명절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떻습니까?”라고 하는데, 그것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명절날 가족, 친척들이 모여서 순수하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목적만으로 시간을 갖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제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제사는 못하니까 대신 예배를 드리자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명절에 다 모여서 노인을 공경하며 하나님을 섬기면서 예배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제사하는 목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위해서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죽은 사람을 위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하여간 추도 예배는 방식만 바꾼 것이지 제사입니다. 다 그만 두어야 합니다. 또 “그러면 핍박이 너무 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는데,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핍박을 각오하고 믿어야 합니다. 또 추도 예배를 하면 조상이 받습니까? 부모가 세상을 떠난 날 추도 예배를 하면 그 부모가 받습니까? 믿는 부모는 천국에 가고 안 믿는 부모는 지옥에 갔는데, 어떻게 받겠습니까? 너무 섭섭하니까 모여서 같이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천국에 갔는데 무엇이 섭섭합니까? 자녀들이 미국에 갔다고 섭섭합니까? 딸이 미국으로 시집을 갔는데 “아이고, 섭섭하다”라고 하며 웁니까? 잘 사는데 섭섭하
긴 무엇이 섭섭합니까? 또 안 믿고 지옥에 갔으면 섭섭해 한다고 오겠습니까? 이것이 우상인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며 제사하는 정신은 옳지 않습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를 기념하고 무덤을 찾아다닐까봐 하나님께서 모세의 시체를 없애버리셨습니다. 칼빈도 자기가 죽은 다음에 무덤을 없애라고 하였습니다. 무덤이 있으면 늘 무덤에 찾아와서 울고, 자신이 우상화될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만 즐거워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합니다. 바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앞에 있는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상이나 옳지 않은 모든 것은 뒤에다 세워놓고 떠나야 합니다. 담무스 우상을 떠나고, 오직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고 하나님을 위해서만 살면 우리의 영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영이 자라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을 길러나가는 것에 목적을 두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신령한 양식을 먹고 새 힘을 얻어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위해서 전진하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5. 태양 우상
본문 15-16절에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약 25인이 동방을 향하여 동방 태양에게 경배했다고 하였습니다.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한 것입니다. ‘동방 태양’은 새로 나오는 자연의 빛, 다시 말하면 새로 나오는 자연 과학, 자연 문명, 이 세상 문화, 세상 운동 등을 말합니다.
그것을 향해서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새로 나오는 세상 빛을 향해서 경배하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새로 나오는 세상 문명, 세상 과학, 세상 운동, 국가운동, 사상 운동 등이 세상 자연의 빛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교회 안에서 할 바가 못 됩니다. 정치는 정치가가 하고 교회는 정치에서 분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속죄 운동, 영적 운동, 천국 운동만 해나가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 국가 운동, 해방 운동, 통일 운동을 하는 것은 다 성경에 위배된 것입니다. 세계 기독교가 모여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하겠다는 것도 교회가 세상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에 되게 해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복음을 전도하여 생명 살려나가는 일, 영적 구원 운동에 힘써야 합니다. 그 일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교회가 세상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절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 새로운 것이 나왔다고 해도 그것을 교회에서 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성경대로 생명을 살려나가는 구원 운동만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선거 운동을 하고, 새 나라 운동을 하고, 해방 신학 운동을 하며, 민족 해방 운동을 하는 것은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다 동방 태양을 향해서 절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일이 가증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7절에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 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는 것은 태양에게 경배하면서 호흡을 내쉬는 것이 너무 황송하다는 말입니다. 콧김은 더러운 기운인데, 더러운 기운을 태양을 향해서 내쉴 수 없으니 나무 가지를 여럿 꺾어다 코 앞에 대고 호흡을 내쉴 때 태양을 향해서 그 기운이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다 사람들이 태양을 아주 신성시한 것입니다. 자연의 빛을 아주 존경하고 신성시하고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이 잘못되지 않게 하려고 이렇게 나뭇가지를 코에 대는 행세까지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다 가증하다고 하였습니다. 가증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전부 다 미워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을지라도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같이 오르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장로 칠십 인이 손에 향로를 들고 하나님께 제사하는데 향연이 구름같이 올라갔다는 것은 당시의 예배 의식이 굉장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약시대에는 향불을 피워서 예배를 드렸는데, 장로들이 다 모여서 하나님께 성대하게 예배 의식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에 들어가 보면 각양 우상이 가득하였습니다. 투기 형상, 곤충과 가증한 짐승의 우상, 담무스 우상을 위해 애곡하는 것, 또 25인이 동방 태양을 향해 절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로 하나님의 성소가 더럽혀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