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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9일 토요일

호세아 7:1-16 뒤집지 않은 전병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뒤집지 않은 전병
호세아 7:1-16

1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저희는 궤사를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2내가 그 여러 악을 기억하였음을 저희가 마음에 생각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 행위가 저희를 에워싸고 내 목전에 있도다 3저희가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방백들을 기쁘게 하도다 4저희는 다 간음하는 자라 빵 만드는 자에게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저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교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 5우리 왕의 날에 방백들이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나며 왕은 오만한 자들로 더불어 악수하는도다 6저희는 엎드리어 기다릴 때에 그 마음을 화덕같이 예비하니 마치 빵 만드는 자가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의 일어나는 것 같도다 7저희가 다 화덕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저희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8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9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찌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10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11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12저희가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 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 준 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 13화 있을찐저 저희가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찐저 저희가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저희를 구속하려 하나 저희가 나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고 14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15내가 저희 팔을 연습시켜 강건케 하였으나 저희는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16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 방백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인하여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1. 거짓과 도적질과 간음을 지적하심

죄와 악을 먼저 발견하고 그것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본문 1절에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저희는 궤사를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라고 하였는데, 치료하려면 죄부터 수술해야 합니다.
그래야 치료가 됩니다. 사람도 병든 사람을 치료하려고 할 때에 병든 부분, 곪은 부분, 썩어진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도려내고 수술해서 치료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려 하실 때에도 그 죄부터 드러내야 합니다. 또 악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발견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병이 났는가, 어디서 상처를 입었는가, 어디서부터 사고가 났는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죄와 악을 발견 해야만 치료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와 악을 우리에게 발견시켜 주십니다. 이것 때문에 병이 났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죄

그러면 이 사람들의 죄는 무엇입니까? ‘궤사를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궤사를 행한다는 것은 거짓으로 속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도적질을 하고 밖으로 나가서는 떼를 지어 노략한다는 것입니다.
속에 도적질하는 심리가 있어서 다 빼앗아온다는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이런 죄에 많이 빠집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의 정치가들이 궤사를 행하고 도적질하며 떼를 지어서 노략질하는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정치가들이 이런 죄를 많이 범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관리들이 많이 있는데, 정치가들이 궤사를 행하며 거짓으로 속여서 정치하는 일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거짓을 행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거짓을 행한 것이 없는지 우리 자신과 하나님 앞에 잘 살펴서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또 도적질한 것이 없는가를 살펴서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십일조를 안 드린 것이 도적질입니다. 그리고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므로, 주일날을 안 지키는 사람은 날 도적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안 지켰으니 날 도적이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에게 해당하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이 도둑질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자기가 인본주의를 써서 가지면 도적질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 말을 도적질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를 위해서 이용하고 잘못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유익을 위해 갖다 붙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도적질한 것이 없나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했다고 하였습니다. 하여간 우리는 도적질한 것을 회개하고, 떼를 지어 나가서 노략질하며 남의 것을 빼앗은 일이없는가를 살펴서 회개해야겠습니다. 또 돈을 꾸고 주지 않은 것이 없는가를 살펴야 하는데, 마땅히 줄 것을 안 준 것도 일종의 노략질입니다. 물론 형편이 안 되서 못 주는 것은 이 다음에 줄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벌어서 물어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나 물어줄 수 있는데도 안 물어주는 사람은 도적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노략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 2절에 “내가 그 여러 악을 기억하였음을 저희가 마음에 생각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 행위가 저희를 에워싸고 내 목전에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죄 지은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고 계시는 데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한 것을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가 죄 지은 것을 다 잊어버리고 회개도 안 하고 돌아갑니다. ‘이제 그 행위가 저희를 에워싸고 내 목전에 있도다’라고 하였는데, 우리의 행한 일이 다 우리를 에워싸고 하나님의 목전에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행위, 하나님 앞에 범죄한 행위가 다 우리를 에워싸고 여호와의 목전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과거에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그것도 하나님의 목전에 있어서 다 기억하고 계신 바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여간 잘못된 행위를 다 찾아서 철저히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현재에 행한 행위도 우리를 에워싸고 하나님의 목전에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행한 죄도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정당한 보고를 하는 자와 벙어리 개 노릇을 하는 자

본문 3절에 “저희가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방백들을 기쁘게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으로 왕을 기쁘게 하고 거짓으로 방백들을 기쁘게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거짓으로 사람을 기쁘게 해서 자기의 유익을 보려고 하는 것으로, 아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으로 꾸며서 자신이 유익을 보려고 윗사람에게 발라 바치는 것이 다 아부입니다. 정당하게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것은 아부가 아닙니다. 정당하게, 사실대로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것을 아부라고 하는 사람은 정당한 일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마귀의 종입니다. 정당한 보고는 윗사람에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잘못됐다고 하는 사람이 마귀의 종입니다. 정당한 보고를 못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 됩니다. 또 말이 무서워서 못하는 것은 벙어리 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정당한 보고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교인들이 교역자에게 정당한 보고를 해주어야 교역자가 그것을 알고 기도도 해주고 또 바로 세울 것은 바로 세우려고 할 텐데, 보고를 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그것은 아부라고 자꾸 말하니, 아부한다는 말을 안 들으려고 보고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당하고 정직한 보고를 하지 않고 그저 덮어두기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의가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보고했다고 추궁하는 것이 마귀의 종인데,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종에게 넘어가서 자기가 벙어리 개 노릇을 하는 것을 의로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가증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벙어리 개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오래 가면 벙어리 개 노릇한 것이 다 드러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그 벙어리 개가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다 드러난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짖지도 못하고 도적이 오면 가만히 엎드려 있습니다. 그러면 그 벙어리 개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보신탕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아부라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보기 위하여 윗사람에게 발라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정당한 일을 사실대로 윗사람에게 보고하는 것은 옳은 것이고, 보고하지 않는 것은 벙어리 개입니다. 참소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거짓으로 윗사람에게 고해바치는 것인데, 남을 해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사실대로 보고하는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것을 해야 일이 바로 됩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바로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하려고 마귀의 종들이 “누가 아부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다 드러나게 됩니다. ‘이 사람이 또 다니면서 마귀의 종 노릇을 하는구나’하고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그들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신 것과 같이, 책망 받아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 종의 말을 무서워 하거나 그것을 인정하면 안 됩니다. 이 면으로 속이고 저 면으로 속여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하려고 그들이 여러 가지 방면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마귀가 많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3. 악을 행하는 데 열심을 냄

간음하는 자와 달궈진 화덕과 같은 자

본문 4절에 “저희는 다 간음하는 자라 빵 만드는 자에게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저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교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다 간음하는 자라 빵 만드는 자에게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라고 하였는데, 악을 열심히 행한다는 것입니다. ‘달궈진 화덕’은 열심을 내어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또 ‘저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교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빵을 만들 때에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거기에다 이스트, 누룩을 넣고 발효시켜 부풀어 일어서기까지 가만히 둡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 일어서면 화덕에 가서 구어 내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발효되기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악한 계책을 세워서 어떻게 행하여야만 악을 잘 행할까 하고 모의하고 계획하며 방책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발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방책을 다 세우면 발효가 다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나가자”하고 나가서 열심히 그 악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데 너희가 너무나 열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 빵 만드는 사람이 발효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너희가 악한 계획과 방침과 음모를 은근히 밀고 나가다가 마침내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다 간음하는 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란한 마음을 품고 나가는 자이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마음으로 간음하는 자이며, 영적으로 간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가 세상과 짝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달궈진 화덕과 같다는 것은 다시 말하는데 열심히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혈기가 났을 때, 분이 났을 때 얼굴을 보면 시뻘개져서 달궈진 화덕과 같습니다. 혈기가 나고 분한 마음이 생기고 격동하여 격분이 되었을 때는 달궈진 화덕 상태입니다. 그리고 화가 나서 돌아간 다음에는 음모를 꾸밉니다. 계획을 세웁니다. ‘어떻게 해야 분풀이를 하겠는가’하고 가서 조용히 분풀이할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하고 방책을 잘 세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달궈진 화덕처럼 얼굴이 시뻘겋게 되도록 열심을 내어 그 일을 다 해치웁니다. 그것이 달궈진 화덕입니다. 분한 마음으로 원수 갚는 것이 달궈진 화덕입니다.

그런데 절대 분한 마음,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안 됩니다. 아무리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해 손해가 나고 낮아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시고 내게 손해가 나게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멸시와 낮아지는 자리로 인도하셨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내 죄를 생각하니 마땅합니다’하고 억울한 일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겨갈 때에 시므이가 저주하자 하나님께서 그로 자기를 저주하게 만드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드셨고, 하나님께서 저주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저 사람이 저주하는 것이다. 가만히 놔두어라. 죽이지 말라”고 한 다윗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믿음입니다. 분이 나서 자기를 저주한다고 당장 잡아 죽이려고 나갔으면 다윗이 거기서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달궈진 화덕과 같이 돌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멸망당합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는데 열심히 돌아가지 말고, 보복하는데 열심히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억울하다. 섭섭하다. 내가 불의를 당했다’고 해서 보복하는데 열심히 돌아가면 안 됩니다. 정당한 말을 하고 정당한 행위를 하고 정당한 방편을 취하며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정당하게 행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음모와 전복시킨 죄를 책망하심

본문 5-7절에 “우리 왕의 날에 방백들이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나며 왕은 오만한 자들로 더불어 악수하는도다 저희는 엎드리어 기다릴 때에 그 마음을 화덕같이 예비하니 마치 빵 만드는 자가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의 일어나는 것 같도다 저희가 다 화덕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저희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재판장들을 삼키고 왕들을 엎드러뜨리기 위해 마음을 화덕같이 뜨겁게 하여 가만히 엎드려 기회를 엿보는 백성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복 받을 백성은 왕이나 재판장을 공경합니다(벧2:17). 만일 왕이나 방백들이 잘못할 때에는 음모나 폭력으로 전복
(顚覆)하려 하지 말고, 합법적으로 충고해주며 하나님께서 바로 세워주시기를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저희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였는데, 나라가 잘못되어 나갈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가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바로 세워주십니다. 니느웨 성도 회개함으로 멸망을 면하였습니다.

4. 이스라엘이 열방과 혼합되었으므로 징벌하심

‘뒤집지 않은 전병’의 신령한 교훈

본문 8절에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은 전병입니다. 전병은 크게 만든 부침개나 빈대떡 같은 것인데, 뒤집지 않은 전병은 한 쪽은 익었는데 한쪽은 설익었습니다. 이것이 에브라임이고, 이스라엘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상태가 이런 전병과 같음을 주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나라와 혼잡되었기 때문에 뒤집지 않은 전병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 나라와 짝하기도 한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면은 잘되었으나 이방 나라와 짝하고 혼합하는 면은 익지 않은 것입니다. 설익은 것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이 비유는 오늘날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이 설익은 우리에게 주시는 신령한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책망으로 듣고 ‘내가 뒤집지 않은 전병이다’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 고쳐야 합니다.
씻어내야 합니다. 여러 면으로 다 원만하고 완전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여야 되겠습니다. 한 면은 익었지만 한 면은 설익은 것이 우리에게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는 좀 한다고 하지만 사람에게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고 하였습니다. 종교 면은 어느 정도 익었는데, 윤리 면, 인간 도덕의 면은 너무나 설익어서 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성경 보는 것은 어느 정도 하는데 연보나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나가는 면은 설익었습니다. 가정에 대한은 어느 정도 제대로 하는데, 신앙 생활에 대해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새벽 기도도 하지 않고 예배 시간에 이따금씩 빠지고 교회에 대해서 충성하지 못하여 뒤집지 않은 전병입니다. 하여간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내가 뒤집지 않은 전병이다’라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기 자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하지만 부모에 대해서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사람도 뒤집지 않은 전병입니다. 하나님 앞에 쓸 수가 없습니다.

교역자들도 자기 교회에 대해서는 좀 하는데 상부에 대해서는 너무나 비협조적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뒤집지 않은 전병입니다. 전체가 있어야 개체가 살고 전체 진리 운동이 바로 되어야 각 교회의 진리 운동도 바로 됩니다. 뒤집지 않은 전병, 자기의 설익은 면, 아직도 되지 못한 면, 이 면을 우리가 잘 찾아서 회개하고 바로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익지 않은 전병은 하나님께서 드실 수 없어서 내버리시게 됩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가 회개하고 지켜야 할 것들을 바로 지키고 보충시켜 나가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평안할 때에는 믿는 사람같이 제법 익은 것처럼 다니다가 환난이 들어올 때에는 설익은 것이 생생하게 나타납니다. 평안할 때에는 좀 익은 것 같은데 환난이 들어올 때에는 얼굴이 달궈진 화덕과 같이 시뻘개져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설익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제대로 익은 사람은 평안할 때에도 환난이 들어올 때에도 모든 것을 성경대로 통과합니다. 그것이 제대로 익은 것이고 바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 뒤집지 않은 전병의 상태를 회개하고, 바로 서서 뒤집어 놓고 익혀야 합니다. 안 익은 면을 뒤집어놓고 익혀야 합니다. 제물이 될 만하도록 뒤집어서 안 익은 면을 잘 익혀 하나님께 바쳐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방 나라에 힘이 삼키운 것’의 신령한 교훈

본문 9절에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찌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를 의지하였습니다. 이방 나라에 선물을 주고 모든 물질을 갖다 주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다가, 이방 나라에 이용을 당하고 그 바람에 힘을 다 빼앗겼습니다. 모든 물질은 먹고 살며 하나님을 섬기라고 주신 것인데, 이스라엘이 그것들을 이방 나라에 바쳤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불신 세상에 힘을 다 빼앗겨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봉사할 시간도 없고 바칠 물질도 변변히 없으며, 또 힘도 변변히 없습니다. 시간도 없고 피곤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조가 오래 되고 나이가 들어 백발이 얼룩얼룩하여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에 힘을 다 빼앗기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입니까? 연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왜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안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시긴 주셨는데, 땅에 쌓아놓고 하나님께 바칠 것이 제대로 없습니다. 죽어가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자식들에게 준다고 하는데, 재물을 많이 주면 아이들이 방탕하고 도리어 그것 때문에 사람 노릇을 못하기 쉽습니다. 제가 벌어
먹도록 하여야 합니다. 또 자식이 없는 사람도 하나님께 바치고 가지 못하는데, 참 어리석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집을 조카에게 주고, 죽을 때 “교회에서 나를 장례해줄 것이니 집을 팔아 5만원을 연보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돈이 그 당시로는 100만원도 더하는 돈이었는데, 아직도 그 조카가 연보를 못했습니다. 그러니 죽은 사람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겠습니까? 하나님께 바쳤으면 하늘나라에 상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제가 하고 갈 것이지, 왜 조카에게 하라고 합니까? 백발이 얼룩얼룩해도 모르고, 죽어도 깨닫지 못하고 갑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새벽 기도를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24시간을 주었는데, 왜 시간이 없습니까? TV 보느라 늦게 자고, 동서 팔방 쏘다니며 왔다 갔다 기운이 뻗쳐 돌아가다가, 다른 것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피곤해서 못합니다. 시간도 없습니다. 백발이 얼룩얼룩한 것, 눈이 잘 안 보이는 것, 이가 빠지는 것,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무릎이 아픈 것, 이 5가지 통지가 오면 간다고 합니다. 백발이 얼룩얼룩한 것은 하나님 앞에 갈 통지를 하나 받은 것입니다. 4개만 더 오면 갑니다. 3개가 오고, 또 하나씩 오면 갑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합니까?

자, 이제는 회개하고 좀 깨달읍시다. 실패를 거듭하는 생활은 멈추고 ‘하나님께서 주신 힘, 시간, 정욕, 물질, 마음 쓰는 것, 이것을 세상에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께 바쳐서 믿는 일을 좀 하다가 하나님께 가야 되겠다’하는 작정을 하십시오. 잠깐이면 다 지나갑니다. 백발이 얼룩얼룩하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때에, 믿는 일을 제대로 하여야만 합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나는 젊었다’하지 마십시오. 요한계시록 10장 6절에 ‘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고, 사도행전 7장17절에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4장 2절에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이 세상도 백발이 얼룩얼룩합니다. 징조가 다 나타났습니다. 성경에 말세가 되면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난다고 하였는데, 잎사귀가 났는가 안 났는가 가서 보십시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것이나 끝이 아니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다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붉은 말, 붉은 용이 나온다 하였고 두 뿔 가진 것이 교회 안에서 나온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해방 신학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나와서 사회 구원을 주장하는 사회주의와 합하는데, 이것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과 합한다는 것의 뜻이 됩니다. 그렇게 하여 참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이 모든 것들이 백발이 얼룩얼룩한 것 아닙니까? 이 세대가 지금 성경에 있는 대로 다 이루어져 백발이 얼룩얼룩합니다. 얼마 못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세상의 끝이 옵니다. 대 환난이 오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십니다.

본문 10절에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이라고 하였는데, 여러 가지 징계가 임하고 환난과 고통이 임해도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회개시키고 그 말씀대로 되지 못한 면을 고치고 바로 세워서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만한 대상자를 삼으시고, 또 그로 하여금 만물을 충만케 하고 만물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자기의 영적 양식으로 삼아야지,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말씀을 듣지 않은 것만도 못하고 죄만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개에게, 자기 며느리에게, 시어머니에게 하는 말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을 가져다가 도적질하여 하나님 앞에 말씀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자
기가 먹고 자기가 하나님을 닮아가고 회개하며, 또 하나님의 대상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리석은 비둘기와 같음

본문 11절에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배가 고프고 어려우면 자기 주인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데, 어리석게 애굽과 앗수르가 살려줄 줄 알고 그들을 의지하며 살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 어리석은 비둘기같이, 하나님께로만 가서 간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만 붙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세상 권세, 돈, 사람을 의지하여 살려고 합니다. 장사해서 그 돈으로 살려고 합니다. 살려주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또 우리를 어려움 가운데에서 건져내실 분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께만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가서 회개하며 간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이 사람을 좀 붙잡아 볼까? 저 사람을 좀 붙잡아 볼까? 돈을 좀 붙잡아 볼까?’하며 살피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비둘기입니다.

이런 자들은 성경도 다 고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떡에 있느니라’고 하고, ‘살같이 빠른 광음을 잃으면 못찾네. 헛되이 허비 말고서 돈 벌러 나가세’라고 하며 찬송을 고쳐부릅니다. 어리석은 비둘기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비둘기를 하나님께서 가만히 안 두십니다. 믿음에 바로 서라고 하나님의 징계가 와서 몸에 병이 났는데, 회개하고 하나님께만 돌아오면 다 되겠는데, 하나님께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고 의사만 붙잡습니다. 아사 왕이 그렇게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고 세상 의사만 붙잡고 의뢰하다가 죽었습니다. 아하시야 왕도 하나님께만 구하지 않고 이방에게 구하다가 죽었습니다. 이들이 어리석은 비둘기들입니다. 무엇을 좀 붙잡아 보려는 인본주의자들인 것입니다. 교역자들 중에도 교회에 돈이 좀 많은 사람이 하나 들어오면 이 사람을 붙잡으려 하고 권세 많은 사람이 하나 들어오면 그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는데,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어리석은 비둘기입니다.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만 붙잡히고 하나님께만 이용당하면 되겠는데, 이것은 하지 않고 무엇을 하나 붙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리석은 비둘기입니다. 벙어리 개는 어떻게 한다고 하였습니까? 보신탕집으로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두어야 밥만 먹고 쓸데없기 때문입니다. 이 어리석은 비둘기는 어떻게 합니까? 보신탕집에서는 개만 사지, 어리석은 비둘기는 사지도 않습니다.

어리석은 비둘기를 징계하시는 하나님

본문 12절에 “저희가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 준 대로 저희를 징계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비둘기는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로 날아가지 못하게 그물로 잡아놓으시고 그 다음에 내리 때리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좀 되지만 좀 있으면 일이 점점 안 되는데, 하나님께서 안 되게 만드십니다. 맞아야지 별 수가 있습니까?
‘공회에서 들려 준 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회에 선포하여 알려주신 말씀은 레위기 26장 14절, 신명기 28장 15절 이하에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28장 15-19절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대로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물을 쳐서 잡은 다음에 성경대로 징계하십니다.

어리석은 비둘기들은 제 멋대로 인본주의 세상, 애굽으로 나갑니다. 교역자들도 어리석은 비둘기가 되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안 두십니다. 그러므로 절대 인본주의를 쓰지 말고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능력만 힘입어서 그 말씀대로만 하려고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물에 잡아다가 말씀에 예언하신 대로 때려서 징계하십니다. 비둘기가 날아가면 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그물을 치신 줄 알아야 합니다. 교인들도 사업이 잘되어나가는 것 같아도 믿음을 안 지키고 나가면 한 코에 걸립니다. 하나님께서 걸리게 만들어놓으시면 안 걸
릴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잘해서 빠져 나갈 줄 알아도 그렇게 안 됩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상대방이 와서 박으면 꼼짝없이 다치게 되어 있는 것과 같이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지혜 있는 비둘기가 되자

‘주여, 이제는 하나님께로만 돌아갑니다. 살든지 죽든지 그저 뜻대로 하옵소서. 주의 명령대로만 순종하고자 합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참 비둘기입니다. 힘이 있는 비둘기입니다. 지혜 있는 비둘기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쓰면 지혜 있는 비둘기가 됩니다. 자기 지혜를 쓰면 어리석은 비둘기이고, 하나님의 지혜를 쓰면 지혜 있는 비둘기입니다. 비둘기는 새인데, 맹꽁이 같은 사람을 보고 새 머리라고 합니다. 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발전이 없습니다. 새 둥지 만드는 것이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흙이나 지푸라기 등을 입으로 물어 짓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비둘기가 자기 지혜로 하면 그것밖에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쓰면 큰 지혜가 옵니다. 자기 지혜 쓰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나은 지혜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쓰면 살통이 생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이고, 그것을 쓰는 방법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쓰는 비둘기들은 아주 큰 지혜 있는 비둘기가 되는데, 100배나 나은 비둘기, 10배나 나은 비둘기가 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있는 박사보다 10배나 낫다고 하였는데, 다니엘이 본래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쓸 때에 10배나 나아진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로 하려고 하면 왕의 진미를 먹고, 거저 시켜주는 공부를 하고, 왕 같은 생활을 하다가 3년 쯤 지나서 장관 자리 하나를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래도 다니엘이 성경말씀을 지키려고 그렇게 안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으로는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더니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서 죽지도 않고 다른 박사보다 10배나 더 나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를 쓰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쓰면 처음에는 죽을 것 같고 핍박이 오며 어려운 일을 당하지만, 결국 10배나 낫고 100배나 나은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를 쓰면 처음에는 잘될 것 같아도 그것은 어리석은 새의 지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물로 잡아 때리시면 가다가 쫄딱 망합니다. 그러므로 순종해야 합니다.

‘지혜는 뱀같이 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자기 지혜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쓰라는 뜻입니다. 뱀이 자기 지혜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밖에 있는 마귀의 지혜를 받아서 한 것처럼, 성도는 자기의 지혜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해야 합니다. 또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하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않고 그 뜻에 순종하지 않아서 이리한테 잡혀 먹히는 것이 어리석은 비둘기입니다.

5. 의식주의자들을 책망하심

신앙 양심을 쓰지 않고 물질주의로 나가며 악을 행함

본문 13절에 “화 있을찐저 저희가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찐저 저희가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저희를 구속하려 하나 저희가 나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대로 간 것이 아니고 제 고집, 제 뜻대로 그릇 나가고 자기를 위해서 삽니다. 아무리 건져주려고 돌아오라 해도 순종하지 않고, 신앙 양심을 쓰지 않고, 성심으로 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합니다.

본문 14절에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때리면 돌아와야 되겠는데, ‘억울하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하면서 침상에서 슬피 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는 생각은 먹을 궁리 뿐입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잘 살아볼까? 어떻게 해야 돈을 좀 벌어 볼까? 하며 먹을 곳, 돈 벌 데만 다닙니다. 계를 하고, 고리 대금을 하고, 이름을 팔아 장사하며, 신앙을 양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성령께서 기도하라고 감동을 시키셨는데 기도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감동을 시키셨는데 바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거역하고 나가기 때문에 어리석은 비둘기입니다.

땅에 쌓아놓으면 좀이 먹고 녹이 슬고 도둑이 다 도적질해갈 날이 옵니다. 그러나 하늘에 쌓아놓는 사람은 지혜 있는 비둘기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땅에 쌓아놓았는데 자기 아들이 다 빼앗아 가고, 어떤 사모님은 땅에 쌓아놓았는데 그 돈 때문에 남편에게 늘 방망이로 얻어맞는다고 합니다. 언제까지 그 비둘기가 맞겠습니까? 많이 쌓아놓았기 때문에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많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다 바쳐놓으면 하나님께서 아들보다 남편보다 더 좋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100배나 낫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비둘기가 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을 붙들고 사십시오. 먹자주의, 곡식과 새
포도주에 마음을 두지 말고 기도하러 가십시오. 하나님께 다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하나님으로 살아야지 지혜 있는 비둘기입니다. 성경대로 살아야지 지혜 있는 비둘기입니다.

본문 15절에 “내가 저희 팔을 연습시켜 강건케 하였으나 저희는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 4장 7절에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번성하게 해주신 목적은 그것을 가지고 믿음을 지키고 구원 운동을 하며 진리 운동을 세워 나가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번성할수록 죄만 짓고 나가는 것입니다. 악만 꾀하는 것입니다.

저희의 결국은 조롱거리가 되는 것임

본문 16절에 “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 방백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인하여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긴 하였는데, 껍데기만 돌아왔습니다. 그 영은 아직도 시온 산에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여 ‘속이는 활’과 같습니다. 활을 쏘긴 쏘지만 헛방만 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비둘기는 신앙 생활을 해도 높으신 여호와께 나오지 못하고 그저 예배당까지, 성전 바깥마당까지만 나왔다가 갑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 능력이 없고 생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 나아가되, 이제는 높으신 여호와께 나아가야 합니다. 유다에 있는 자들은 산으
로 도망쳐서 시온 산에 계신 하나님께 올라가야 합니다. 지붕에 있는 사람은 내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밭에 있는 사람은 뒤로 돌아가지 말고, 계속해서 시온 산을 향해서 도망만 치라는 것입니다. 높은 시온 산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 영접하고 깊은 교제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과 그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나가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면 하나님께서 칼을 보내서 세상을 망하게 하시고, 그때 그 사람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을 써서 언제나 높으신 여호와께 나아가야 합니다. 시온 산 정봉(頂峰), 하나님의 보좌 앞에까지 나아가 하나님을 영접하는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