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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골로새서 3:1-11 위엣 것을 찾으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위엣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1-11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11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니, 위에 있는 것들을 찾아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 

3:2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마라. 

3:3 너희는 이미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3:4 너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이다. 

3:5 그러므로 너희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라.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숭배이다. 

3:6 이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 위에] 임하니, 

3:7 너희도 전에 이것들 가운데 살 때에는 이것들 안에서 행하였다. 

3:8 그러나 이제 너희는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을 내버려라. 

3: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라. 너희는 옛 사람을 그 행위와 함께 벗어 버리고, 

3:10 새 사람을 입어라.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는 자이다. 

3:11 거기에는 헬라인도 유대인도,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자도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계신다. 
 
1. 위엣 것을 찾으라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란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중생한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의 믿기 전의 영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것인데(엡 2:1), 진리와 영감으로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난 것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의 영혼은 산 영혼이며, 믿지 않는 사람의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은 산 영을 가졌으므로 산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산 세계에서 살아라, 위엣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죽었던 자를 살려놓았으니까 이제는 위엣 것을 찾아서, 위엣 것을 가지고 살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은 위엣 것을 추구하고,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새 생명의 세계는 신령한 세계이므로 위엣 것을 가지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2. 위엣 것은 무엇인가?

신령한 세계임

그러면 위엣 것은 무엇입니까? 위엣 것은 신령한 세계입니다. 땅엣 것은 속화된 세계입니다. 언제나 예수 믿는 사람은 신령한 세계의 것을 찾으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임

또 위엣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부활과 승천으로 대승리를 이루신 예수님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즉 사망과 죄악의 권세를 다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승리하신 예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무엇을 하십니까? 로마서 8:34에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도와주십니다. 사울이 교회를 핍박할 때에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고(행 9:4),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에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하였습니다(행 7:56).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
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를 만능의 능력으로 도와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늘 찾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간절히 찾으면 예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 15:2-4에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지가 이제 오래였으나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가서 찾으매 저가 그들의 만난 바가 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너
희가 여호와를 찾으면 만나고, 여호와를 버리면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신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을 찾으면 만나고, 예수님을 버리면 예수님이 우리를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임

그 다음에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였는데, 위엣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언제나 사모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언제나 소망을 가지고, 그 나라를 바라보며, 그 나라가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이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됩니다. 주기도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였고,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다 하나
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살려놓긴 살려 놓았는데, 즉 예수 믿고 중생은 했는데, 땅엣 것만 찾는 사람은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 것입니다. 그러나 위엣 것을 찾으면 산 믿음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것은 위엣 것을 늘 사모하며 추구하여 위엣 것을 찾아 소유하려고 그 가운데로 들어가려고 하고, 그 세계에서 살려고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엣 것을 점점 더 많이 받으려고 힘쓰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것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것을 생각지 말라는 뜻입니다. 요한1서 2: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는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땅엣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임

마태복음 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하라”는 말은 신령한 것을 찾으라는 말로, 그것도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구하라, 찾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두드리라”는 것은 그대로 행하기를 계속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라고 했는데(16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도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도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이 위엣 것인데, 위엣 것을 찾아 예수님을 모시면 다른 것은 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땅엣 것만을 찾는 신자들은 생명의 역사가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위엣 것을 찾는 자는 산 믿음, 산 생명, 산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위엣 것을 찾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2.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

본문 3절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라고 하였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인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정죄는 우리의 정죄이고,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죽음이며, 예수님 장사는 우리 장사이며, 예수님 부활은 우리 부활이며, 예수님의 승천도 우리의 승천이며, 예수님의 나라는 우리의 나라입니다. 즉 예수님의 정죄는 내 정죄, 예수님의 죽음은 내 죽음, 예수님의 부활은 내 부활, 예수님의 승천은 내 승천, 예수님의 나라는 내 나라입니다. 참 좋습니다.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했는데, 그리스도가 하나님 안에 계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생명도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2:6에는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습니다. 

3. 새 사람의 싸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그런데 “죽이라”는 말씀이 5절에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했다고 했는데, 즉 살았다고 했는데, 무엇을 죽이라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5절)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영혼이 살았고,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고, 하나님 보좌에 앉아있다고 했는데, “죽이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살았다는 것은 법적으로 죄사함을 받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호적이 하나님 안에 옮겨졌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산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중생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나님과 같이 신령한 세계에 앉아있고, 또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정욕이라는 옛 사람이 있습니다. 영은 살아서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는데 육체의 정욕이라는 옛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것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10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하였고, 23절에는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하였는데, 영은 살았지만 몸은 죄로 인하여 사망 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 영은 양자의 영을 받아서 “아바 아버지”라고 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속으로는 탄식하면서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도가 이미 죄 사함 받았고, 살아났으므로 “이제는 회개할 것이 없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죄가 있으면 지옥에 간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며 밤낮 회개만 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부흥사들이 구원받은 것은 말하지 않고, 회개 안하면 지옥에 가고, 연보 안하면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로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법적으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적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고, 하나님 보좌에 앉아 있고(엡 2:6), 하나님 안에 감춰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점점 죽여 나가야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죽이는 일을 안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파”는 구원받은 것만 강조하고, 옛사람인 죄의 부패성을 죽이라는 것은 안하기 때문에 탈선된 것입니다. 또 요새 부흥사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공갈협박을 해서 굴복시키고, 연보를 하게 만듭니다. 인기가 많은 부흥사는, 장로들을 복종시키고, 연보 많이 나게 하는 부흥사입니다. 어떤 부흥사는 아예, 첫 시간에 내가 온 것은 장로를 때려잡으러 왔고, 연보 많이 하게 하려고 왔다고 합니다. 목사들이 장로를 복종케 하고 연보 많이 나오게 하는, 이 둘이 제일 큰 문제라고 하는데, 부흥사를 청하면 장로 때려잡고, 연보 많이 나게 하니까 두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평소에 장로들을 잘 가르쳐서 순종 잘하게 만들고, 평소에 잘 가르쳐서 연보 잘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중생한 영혼은 죄가 없으나 아직도 육체는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것을 죽여야 합니다. 이것을 죽인 것만큼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가고, 성전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는 것만큼 성전이 되어 나가고, 땅엣 것을 죽인 것만큼 성전이 되어 나갑니다.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위엣 것을 얼마나 많이 찾느냐가 문제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을 하느냐? 얼마나 신령한 세계에서 사느냐? 얼마나 하늘나라를 많이 소유하고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땅엣 것을 얼마나 많이 죽였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시험을 당해 보아야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언덕에서 한 번 굴려 보아야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언덕에서 한 번 굴려 보았을 때에 “왜 굴렸느냐?”고 하는 것은 아직도 죽지 않은 것 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연말에 집사들을 임명할 때에 한 번 굴려 보라는 것입니다. 굴려보아서 아무 소리가 없으면 집사의 자격이 되고, 왜 굴렸느냐고 불평하면 집사를 임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집사들을 한 번 굴려 보아야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산 것은 못씁니다. 제물을 죽여서 갖다 놓아야지 산 송아지나 산 양을 갖다 놓으면 어떻게 제물이 되겠습니까? 죽은 것이어야 제물이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죽이라는 것입니까? 땅엣 것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구름타시고 재림하실 때에는 성도들도 주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장차 올 대 환난을 이길만한 자격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는 무엇인가?

본문 5-7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 음란 성적인 죄입니다.
2) 부정 성적 죄를 포함한 더러운 행위들을 가리킵니다.
3) 사욕 음란 외에 자기중심에서 나오는 분노와 질투 같은 억제하기 어려운 욕망들입니다.
4) 악한 정욕 음란을 포함한 일반적인 욕심을 가리킵니다.
5) 탐심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사는 것이 그 재산의 넉넉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며,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했습니다. 또 사무엘상 15:23에는 고집이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고집이 우상이고, 돈이 우상입니다. 고집이 없는 사람 있습니까? 고집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주장, 자기 고집은 악한 것입니다. 자기를 다 죽여야 되겠는데, 아직도 못 다 죽였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는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는데, 쾌락이 우상입니다. 그리고 고집이 우상입니다. 언제나 우상 때문에 일이 안 됩니다. 이 우상 때문에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어도 되는 게 없습니다. 몇 십 년 동안 예수를 믿었어도 속에 우상이 들어 있으면 뭐가 되겠습니까? 욕심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음란한 마음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또 사욕, 자기를 위하는 것 등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이것들을 다 죽여야 됩니다. 

또한 탐심이 우상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는데, 우상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을 때에 “죄 사함 받았다, 의롭다 하심을 입었다, 새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다”하여 좋은데,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못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한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도가 죄만 짓고, 고집 부리며 나가고, 탐심을 우상 삼고 나가면 하나님이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또 사람이 우상입니다. 즉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입니다. 직장도 하나님보다 더 따라가면 우상입니다. 이것을 죽이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고린도후서 5:10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즉 위엣 것을 찾아서 위엣 것을 가지고 살면 항상 낙원에서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대로 죽일 것을 죽이지 못하고 살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대로 산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시고, 신령한 많은 것을 주셨는데, 죽일 것을 죽이지 못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항상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하며 바로 서야겠습니다.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

본문 8-10절에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분한 마음, 악의, 악한 뜻, 악한 생각, 훼방 등을 버려야 합니다. 훼방하지 말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헐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나 거짓말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란 중생한 자를 말합니다. 성도의 중생한 영은 새사람입니다.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했는데, 중생한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의와 진리와 거룩입니다. 에베소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진리의 지식이 점점 자라나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분별할 줄 알려면 진리를 많이 배워서 진리의 지식이 많아야 됩니다. 진리의 지식이 없으면 마귀에게 밤낮 속아 넘어가고, 마귀의 종살이만 합니다. 자라난 사람은 의로워지고, 진실해지고, 거룩해지고, 진리의 지식이 많아져서 하나님의 뜻과 마귀의 뜻을 잘 분별해서 하나님의 뜻만 따라갑니다. 호세아 4장에 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밤낮 마귀에 속고, 마귀에게 끌려 다닙니다. 

4. 그리스도 안에서는 차별이 없음

본문 11절에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안에 계시니라” 고 했습니다.

새사람을 입어 나가는 데 차별이 없습니다.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만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자에게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종교적이고 택한 백성인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과 달리 헬라인은 이방 사람인데 이방 사람이나 아브라함의 사람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할례 받은 사람이나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이나 차별이 없고, 야만이나 스구디아아인이 차별이 없습니다. 스구디아인이라는 것은 북방에 있는 문명하지 못한 야만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과도 차별이 없고, 또 종이나 자유인이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새사람을 입어 나가는 데는 민족도 차별이 있을 수 없고 또 계급도 차별이 있을 수 없고 또 과거적, 종교적, 역사적 차별이 있을 수 없고, 자유인이나 종의 차별도 있을 수 없고, 이 새사람을 입어 나가는 데는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을 입어 나가는 것이므로 주인, 종, 지식이 많은 사람, 무식한 사람, 또 문맹인이나 야만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그 새 생명으로 창조함 받은 자이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니까 차별이 있을 수 없고 다 똑같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새 사람이냐, 새 사람이 아니냐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는지, 안 입었었는지가 문제이지, 차별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나 그 사람이 어느 학교를 나왔나 상관이 없습니다. 누가 초등학교 밖에 안 나왔다고 해서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안에 대학생 딸이 있고 초등학교 딸의 구별이 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옛 사람들이 하는 노릇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대학 나왔네, 초등학교 밖에 못 나왔네 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안에 딱 들어서면 의복 다 벗어놓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장교나 사회인이나 의복 다 벗어 놓고 들어오는 것은 같습니다. 누가 잘 될는지 아십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 문제지, 과거에 믿었나, 세상 지식을 좀 터득했나, 그런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양반이냐 양반 아니냐, 그런 것을 보는 것도 아닙니다. 양반이면 어떻고, 양반 아니면 어떻고, 또 종살이 하면 어떻습니까. 그러므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종살이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면 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 했는데, 만유라는 것은 만물 전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만물 전체이다, 만유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
스도는 전체를 다 주장하고 계시고 창조하셨고 다 붙잡고 있고 이용하십니다. 유대인이나 혤라인이나 다 그리스도께 있는 것입니다.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그리스도께 있는 것입니다. 만유 안에서, 모든 일과 모든 것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붙들고 있고, 또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므로 마찬가지입니다. 어딜가나 차별이 있을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