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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디모데후서 4:7-8 바울의 신앙결산.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의 신앙결산
디모데후서 4:7-8

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 선한 싸움을 싸움

본문 7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일생동안 선한 싸움을 잘 싸웠습니다. 그리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하였는데, 달려갈 길이 멀지만 바울이 달려갈 길을 다 마쳤습니다. 또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했는데, 바울이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것은 이단, 율법주의, 신비주의, 비진리 운동 등과 바울이 잘 싸워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진리를 어지럽게 하는 이단과 비진리의 역사가 많이 있는데, 그것들과 더불어 싸워야 됩니다. 싸우지 않으면 마귀에게 다 먹힙니다. 적은 누룩이 들어왔는데, 누룩을 제거하지 않으면, 전체가 다 부패하고 맙니다. 

요새는 신신학자들이 많이 나와서 말씀을 떠나 인본주의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지 않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신신학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또 에큐메니컬 운동으로 진리가 혼탁해져 가고 있습니다. 자기는 신신학이 아니라고 하면서 신신학자들을 용납하고, 그들과 연합하고 나갑니다. 또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을 용납하고 나갑니다.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은 “계시를 받았다, 꿈을 꾸었다, 천당에 갔다 왔다, 지옥에 갔다 왔다”하며 이런 것들을 믿는데 이것은 다 성경에서 떠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용납하면 안됩니다. 

잘못된 교회가 세워지면 바른 교회를 더 많이 세워야 하고, 잘못된 성경이 나오면 바른 성경이 더 많이 나와야 하고, 잘못된 신학교가 생기면 바른 신학교가 더 많이 생겨 바른 진리를 증거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나가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마귀들이 와서 전복시킵니다. 마귀의 역사는 교회를 부패시키고, 교회를 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계속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악한 마귀의 역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야합니다. 참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이비한 역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참 교회를 혼돈시키는 사이비한 것을 용납하면 안됩니다. 싸워서 제거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가 바로 서 나갑니다. 사이비한 비진리 운동들과 타협하지 말고, 싸워서 계속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달려갈 길을 마침

그 다음에 바울이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하였는데, 바울은달려갈 길을 잘 마쳤습니다. 달려갈 길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나 혼자 예수 잘 믿다가 천당 가야겠다”는 생각은 썩은 생각이고, 죽은 신앙입니다.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예수 믿겠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달려가라”고 하면 달려가는 게 믿음입니다. 사도행전 20:24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
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달려갈 길은 자기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어디까지 전하려고 결심했는가 하면 로마에까지 전하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 감옥에 갇혔던 내용이 기록이 되어있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설에 의하면 바울이 다시 석방이 되어 서바나(스페인)까지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유대, 사마리아, 또 이방나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바울의 달려갈 길입니다. 자기 집 근처에만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라 멀리까지, 즉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순종하며, 달려갈 길을 일생동안 잘 달려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하지 말고, 즉 자기가 살고 있는 근처에만 복음을 전하지 말고, 좀 더 나가서 유대나라 전체에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즉 우리나라 전체, 더 나아가서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이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다 하고 하나님 앞에 가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겠는데, 땅끝이 어디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땅끝이 이슬람교권의 나라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마호메트를 믿는 나라들이 땅끝이라고 합니다. 그런 나라에는 복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 사람들은 마호메트를 믿고,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래도 이슬람 국가에 선교사들이 많이 갔습니다. 아무리 반대해도 그곳에 많은 선교사들이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란, 이라크, 터키, 시리아,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등의 나라들이 다 이슬람 국가들입니다. 송완규 목사님이 선교하고 계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도 마호메트를 믿는 이슬람교 나라입니다. 그래도 거기에 많은 선교사들이 가 있습니다. 복음을 반대하지만, 알바니아 같은 곳에도 선교사가 있고, 터키에도 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교회가 안 들어 간 곳은 북한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였는데, 북한이 땅끝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은 복음이 안 들어간 곳에 전하라는 것입니다. 북한에 지금 교회가 없습니다. 자유롭게 복음이 들어갈 수도 없고, 교회가 세워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이 사명을 잘 감당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교를 많이 세워 좋은 교역자들을 많이 양성하여 각처에 교회를 세우고, 그 다음에 북한에도 하나님이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실 때에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앞으로 북한에도 복음의 문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열리게 되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북한에 복음의 문이 중국만큼 열리면 교회를 많이 세울 수 있습니다. 그 때를 위해서 지금 준비하며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신학교를 하는 것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또 세계 각국에 선교사를 보내어 복음 전하는 사명을 다 하여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고 오라고 했는데, 복음을 조금만 전하고 하나님 앞에 가면 책망 받습니다.

예를 들어, 농사를 만평 하라고 했는데, 천평만 농사하고 구천 평은 황무지가 되게 했다면 주인이 책망할 게 아닙니까? “왜, 만평을 농사 하라고 주었는데 구천평은 어떻게 했느냐?”하며 책망합니다. 만평을 농사하라고 했으면 만평을 농사했어야 주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한 것입니다. 주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을 해야지, “천평만 하고 싶다”고 해서 천평만 농사 하면 안됩니다. 천평 농사 하는 것은 만평 농사하는 것 보다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쉽다고 해서 자기 생각대로 하면 안되고,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야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며 달려갈 길을 다 마쳤습니다.

믿음을 지킴

그 다음에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믿음을 지켜야 되고, 사건마다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일을 믿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즉 모든 사건, 모든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시험에 넘어가면 그것은 믿음을 안지키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겨야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매일, 매시간, 우리에게 닥치는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통과하면 그것은 믿음을 지킨 것이고, 말씀대로 통과하지 못했으면 믿음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에 대한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즉 일반적인 말씀을 지켜야 되는 반면에 자기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진리가 있는데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세리들이 세례 요한에게 와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하며 물어 볼 때에, 세례 요한이 정한 세 외에 더 받지 말라고 하였는데, 세리는 정한 세 외에 더 받지 않는 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군병들도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며 물어 볼 때에 누가복음3:12-14절에,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하였는데, 군병들은 강포하지 않고, 무소하지 않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아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지켜야 할 말씀이 다 있습니다.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믿음 지키는 게 다르고, 세리들이 믿음 지키는 게 다르고, 또 군인들의 믿음 지키는 게 다릅니다. 또 처한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할까? 바로 순종할까?”를 잘 생각해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일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은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을 지켜야,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싸우기 잘하는 사람은 “싸우지 말라”는 말씀을 지켜야 믿음을 지키는 것이 되고, 분노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화목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각자가 다 자기의 믿음을 지켜야 됩니다. 또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
인데, 그것을 이겨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면 직장이 떨어지고, 환난이 온다고 해도 직장 떨어질 각오와 환난 받을 각오를 하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만 지키면 하나님이 다 살게 해주십니다. 공중의 새를 먹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택한 자녀에게 먹을 것을 안주시겠냐고 하셨는데, 믿음만 지키면 하나님이 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거기서 자기가 연단을 받으며, 믿음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즉 영이 자라나고 자기가 만들어 집니다. 믿음을 지키는 일은 달란트 장사를 잘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섯 달란트 가진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기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두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두 달란트를 더 남기는 게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는 사람은 한 달란트를 더 남기는 게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남기지 않고, 그냥 가져오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장사해야 합니다. 즉 모든 것을 투자해서 믿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배나 남기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가라” 하면 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면 니느웨로 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다시스로 가라”고 하시면 다시스로 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니느웨로 가면 고난이 오기 때문에 니느웨로 가지 않고 아무 곳으로 가서 전도해도 되지 않겠나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니느웨로 가서 전하라고 하시면 니느웨로 가서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 유대 나라와 원수가 되어서 니느웨로 가면 환난이 올지 모르나, 그래도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게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갔다가 고기 뱃속에 들어 갔으나 회개할 때에 하나님이 요나를 고기 뱃속에서 나오게 하였습니다. 그 때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할 때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에 올라 가라” 할 때는 생명을 내어 놓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다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할 때에, 떠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독자 이삭을 바쳐라”고 할 때에 독자 이삭을 바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풀무 불에 들어가라”고 하면 풀무 불에 들어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자굴에 넣는다고 해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단 6장).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생명이 살고, 영이 자라납니다. 많이 자라나고, 많이 만들어진 자가 하늘나라에 가면 받을 상급이 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 각자에게 다 다르나, 하여간 복음을 땅끝까지 전할 사명은 예수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다 같습니다. 또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다 같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고 하실 때에 가야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가야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또 뒤에서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있는데, 뒤에서 도와주어야 할 사람은 뒤에서 도와주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할 곳으로 가야 할 사람은 가야하고, 뒤에서 기도와 물질로 도와
줄 사람은 기도와 물질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신앙의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먹여 주시면서 일어나 호렙산에 가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호렙산에 가는 게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가고 로뎀 나무 아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호렙산에 간 다음에는 그곳에서 세미한 소리를 듣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왕상 19:4-18). 믿음을 지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믿는 게 아니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에 생명도 다 바쳐놓고, 물질도 다 바쳐 놓고, 자기의 모든 환경도 하나님께 다 바쳐 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얼마쯤 달음박질 하면 많이 나아지고, 자라납니다.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몇 달만 있어도 쑥 올라가서 나아집니다. 장성한 자리에 이릅니다. 그러나 믿음을 안 지키는 사람은 밤낮 그 자리입니다.
믿음을 지키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려고 하지 않으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아무 진보가 없습니다. 계속 선한 싸움에 동참해야 하고, 믿음을 지키며,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가야 합니다. 바울이 계속 신앙의 달음박질을 할 때에 빌립보 교인들이 같이 참여했습니다. 

4. 의의 면류관이 예비됨

본문 8절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라고 하였는데,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며, 믿음을 잘 지키면, 하늘나라에 가서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 의의 면류관은 영광의 상급을 가리킵니다. 의의 면류관은 바울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바울과 같이 선한 싸
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킨 모든 성도에게 주십니다.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주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므로 편벽됨이 없이 면류관 상급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즉 믿음을 지키지 못하여 책망 받을 사람은 책망을 받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간 사람은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교회에 외부적으로만 나갔다, 들어갔다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데 동참하여야겠습니다. 즉 비진리와 싸우고, 이단들과 싸우고, 마귀의 역사와 싸워서 이겨야겠습니다. 또 평소에 믿음을 잘 지켜 모든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하고, 말씀으로 통과 하여 승리하여야겠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마땅히 지켜야 할 진리를 잘 지켜야겠습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잘 찾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찾
아서 그 뜻대로 순종하며 나가야겠습니다. 말씀으로 시험을 잘 이겨 나가며, 나의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바쳐놓고 나가는 신앙이어야 면류관 상급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주어진 면류관 상급이,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믿음을 지켜 나가고, 달려갈 길을 다 가므로 주님 앞에 설 때에 면류관 상급을 받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