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의 욥의 결백
욥기 30:24-31:12
30:24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겠는가 25고생의 날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26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27내 마음이 어지러워서 쉬지 못하는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28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 검어진 살을 가지고 걸으며 공회중에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29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30내 가죽은 검어져서 떨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하여 탔구나 31내 수금은 애곡성이 되고 내 피리는 애통성이 되었구나 31:1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2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의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에서 전능자의 주시는 산업이 무엇이겠느냐 3불의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재앙이 아니겠느냐 4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5언제 나의 행위가 허탄하였으며 내 발이 궤휼에 빨랐던가 6그리하였으면 내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 7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던가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던가 8그리하였으면 나의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산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이 마땅하니라 9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10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11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 받을 악이요 12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 나의 모든 소산을 뿌리까지 없이할 것이니라
욥기 30:24-31:12
30:24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겠는가 25고생의 날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26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27내 마음이 어지러워서 쉬지 못하는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28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 검어진 살을 가지고 걸으며 공회중에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29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30내 가죽은 검어져서 떨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하여 탔구나 31내 수금은 애곡성이 되고 내 피리는 애통성이 되었구나 31:1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2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의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에서 전능자의 주시는 산업이 무엇이겠느냐 3불의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재앙이 아니겠느냐 4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5언제 나의 행위가 허탄하였으며 내 발이 궤휼에 빨랐던가 6그리하였으면 내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 7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던가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던가 8그리하였으면 나의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산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이 마땅하니라 9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10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11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 받을 악이요 12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 나의 모든 소산을 뿌리까지 없이할 것이니라
1. 욥이 당하는 마음의 고통
본문 30장 24절에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지금 하나님 앞에 큰 환난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욥기 30장 20-23절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주께서 대답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굽어보시기만 하시나이다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히 하시고 완력으로 나를 핍박하시오며 나를 바람 위에 들어 얹어 불려가게 하시며 대풍 중에 소멸케 하시나이다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끌어 가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큰 재앙과 잔혹한 핍박을 주시고, 욥이 주께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간구해도 구해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굽어보기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바람에 불려 올라가는 것과 같이 욥이 정처 없이 떠밀려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2. 욥이 전날에 선을 행했으나 화가 왔다고 함
본문 25-27절에 “고생의 날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내 마음이 어지러워서 쉬지 못하는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고생을 당하며 궁핍한 사람을 위해 함께 울어주고 근심해준 사람입니다. 그는 고생의 날을 보내는 사람을 위해 같이 울었고 궁핍한 사람을 위해 마음의 근심을 같이 하였습니다. 로마서 12장 15절에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3장 3절에는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말씀은 고난 받는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라는 가르침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욥은 고생하는 사람을 보면 자기도 같이 울고 빈궁한 사람을 보면 자기도 같이 근심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이 그렇게 선한 일을 많이 행하면서 앞으로 복이 올 것을 바랐는데, 결과적으로 지금 그러한 소망과는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으며 마음도 어지러워 쉬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 검어진 살을 가지고 걸으며 공회 중에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병으로 혈액순환이 되지 않으면 살이 검어질 수 있는데, 지금 욥이 병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많이 받아서 얼굴과 살이 검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자신이 남을 많이 도와줬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부르짖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3. 고난당하는 욥의 형편
선을 행한 욥에게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
분문 29-30절에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내 가죽은 검어져서 떨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하여 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지금 마치 이리와 타조와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리와 타조는 무정하고 잔인한 짐승들입니다. 그런데 욥의 상황이 그것들과 같이 무정하고 잔인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러한 결과를 맞은 것과 같은 자리에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뼈가 탈 정도로 열이 높아져 답답한 가운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 날에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이 큰 고난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면 욥이 왜 이렇게 고난만 당하는 것입니까? 욥은 선을 행하며 복을 바랐는데, 왜 화만 온 것일까요? 광명을 바랐는데, 왜 흑암이 와서 잘되어나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고난을 많이 당하여 가죽이 검어지고, 이리와 타조 같은 자리에 내려갔다고 하였습니다. 또 뼈는 왜 열기로 탈 정도가 되었습니까? 악인은 모든 것이 잘되어나가는데, 욥은 그 반대로 믿음을 지키며 살려고 하는데도 화만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욥의 마음이 심히 어지럽고 답답한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욥은 이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하나님께 해결을 받아야 합니다.
욥기 21장 7-13절에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
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보냄이 양 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오히려 더 잘되어서 죽을 때도 잘 죽고, 살도 찌고,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더 많고, 자녀들도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도 잘되고 세력도 강하고 오래 살며 재산도 많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욥은 평생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섬기느라 힘을 썼는데도, 지금 흑암이 오고 고통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욥이 지금 현재만 보면 해결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연단시키셔서 다음에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시련을 주신 것입니다. 현재는 복이 없고 화가 왔지만, 지금의 연단을 통해 욥의 믿음을 정금과 같이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마침내 더 좋은 복을 주시려고 이런 연단을 주시는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연단 후, 정금같이 나온 다음에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이와 같은 연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연단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이 다음에 지옥에 보내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은 잘되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단을 잘 시켜 귀한 것을 주시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장래를 보면 욥이 더 잘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욥에게는 다시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전 날에 연단 받은 것이 상당한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는 악한 자가 잘되고, 되는대로 믿는 자가 잘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선을 행하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 반드시 잘되는 것입니다.
고난으로 연단을 받은 후의 상급
그리고 그렇게 연단 받은 사람이 영원한 내세에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더 큰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만약 욥이 이 세상에서 갑절의 복을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갑절의 복을 받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낫겠습니까? 아니면 갑절의 복을 받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낫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받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전부 다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받았으면 하늘나라에서는 그만큼 마이너스가 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세상에서 받은 것만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에게는 하늘나라의 복이 많을 것입니다. 욥이 받을 복 100개 중 말년에 받은 복이 10개라고 치면,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복이 90개입니다. 만약 욥이 이 세상에서 하나도 안 받았다면 하늘나라에서 받을 복이 100개가 되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10개라도 받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하나도 받지 않고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50개를 받으면 하늘나라에는 50개가 남고, 또 이 세상에서 다 받으면 하늘나라에서는 상급이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6장 5절에는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받으면 이미 받은 것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행한 데 따른 복을 다 받으면, 하늘나라에 가서는 받을 것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선한 일에 대한 상을 절반쯤 받았으면, 하늘나라에서는 절반 정도 남은 것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하나도 안 받았으면, 그 복이 전부 하늘나라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저금해놓은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조금 찾아 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들게 벌어 10억 가량 저금을 했다고 치고, 여기서 5억을 찾아 쓰면 나중에 찾을 돈은 5억 뿐입니다. 만약 안 찾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다 찾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과 권세가 많고 자녀도 잘되고 몸도 건강하여, 그렇게 다 찾아 쓰면 하늘나라에 가서는 받을 것이 없습니다. 욥이 얼마동안은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안 들어주시고, 살은 검어지며 뼈에는 열기가 올라 형편없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바랐더니 흑암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말년에 가서 얼마동안은 잘 지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말년에 가서 그 만큼 찾아 쓴 것입니다. 만약 말년까지도 고생하고 병을 앓다가 하늘나라에 갔으면 거기서 복을 배나 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받은 복을 찾아 쓰는 것도 괜찮지만, 스데반과 같이 하나도 못 찾아 써도 괜찮습니다. 스데반은 전도하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주를 위해 수고하고 선을 행하며 믿음을 지키다가 그 복을 찾아 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찾지 못하고
그냥 가는 것은 더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믿음을 잘 지킨 사람이 잘되다가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고생만 하다가 죽는 것이 좋겠습니까? 받아서 쓰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므로 괜찮으나, 대신 하늘나라에서 그만큼을 제외하고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받아서 써도 너무 많이는 쓰지 말고 조금만 받아 써야 하늘나라에 많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이너스가 되도록 받아서 쓰는데, 저금은 2만원을 하고 쓰기는 3만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여간 믿음을 지킨 자체가 복이고 선을 행한 자체가 복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충성한 자체가 복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서 그 말씀을 생명으로 받은 자체가 복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든지 안 당하든지, 앞으로 잘되고 잘못되든지, 죽든지 안 죽든지, 전부 다 유익인 줄 알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받아서 쓰는 것만이 잘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선을 행한 사람이 세상에서 잘되는 경우도 많지만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오히려 더욱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년의 욥에게 복을 배나 주신 것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이렇게 믿음을 지킨 사람은 장래에 복을 준다. 연단 받은 사람은 장차 복을 받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도 안 주셨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를 것이므로, 가르쳐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또 스데반과 같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을 하나도 못받고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과 같은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더 큰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킨 자체가 복이라는 것, 고난을 받은 것 자체가 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31절에 “내 수금은 애곡성이 되고 내 피리는 애통성이 되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애곡하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욥기 3장 24절에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환난이 크고 아픔이 심하기 때문에 앓는 소리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애곡하고 애통하는 소리가 물처럼 쏟아져 나와서 남에게 피리 소리와 같이 들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4. 욥이 음심(淫心)을 품지 않기로 결심함
본문 31장 1-2절에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의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에서 전능자의 주시는 산업이 무엇이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정욕대로 기울어지지 않기로 언약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정욕대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언약을 세우며, 힘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녀에게 주목하는 자는 위에서 내리시는 분깃, 즉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정욕으로 기울어지는 사람은 높은 곳에서 내려주시는 산업의 축복을 받지 못하며, 받을 자격도 없다는 뜻입니다.
본문 3절에 “불의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재앙이 아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정욕대로 기울어지는 자는 불의한 자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환난과 재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욕을 떠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깃과 신령한 산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에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감찰하시며, 우리의 걸음과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십니다. 우리의 걸음, 우리가 마음에 생각하는 죄악 등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죄악된 것에서 떠나야만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5. 거짓되이 행치 않았음
본문 5-6절에 “언제 나의 행위가 허탄하였으며 내 발이 궤휼에 빨랐던가 그리하였으면 내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이제껏 진실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은 언제나 진리에서 떠나지 않고, 궤휼에
빠져 허탄한 길을 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성경말씀대로 행하였기 때문에 허탄한 길에 빠지지 않은 것입니다. 욥은 그 일생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탈선의 길을 걸었던 적이 없고, 허탄한 길을 걸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궤휼에 빠진 적도 없이 바른 길을 걸어갔습니다.
6. 탐심으로 행치 않았음
본문 7-8절에 “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던가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던가 그리하였으면 나의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산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옳은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걸음이 진리의 길, 생명의 길에서 떠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종일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참된 진리의 길만 걸어간 것입니다. 그 어떤 일에도 명예, 영광심이나 유혹에 끌리지 않았습니다. 참 진리의 길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본문 7-8절에 “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던가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던가 그리하였으면 나의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산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옳은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걸음이 진리의 길, 생명의 길에서 떠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종일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참된 진리의 길만 걸어간 것입니다. 그 어떤 일에도 명예, 영광심이나 유혹에 끌리지 않았습니다. 참 진리의 길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간 적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안목의 정욕대로 간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안목의 정욕을 따라가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세상에서의 사치, 향락, 방탕, 연락(宴樂)들이 안목의 정욕인데, 욥은 안목의 정욕대로 따라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다 끊어버리고 나간 것입니다. 무엇이든 눈에 보기에 좋다고 따라가지 않고 다 끓어버린 것입니다. 눈을 따라가지 않은 것입니다. 욥은 욕심을 따라가지 않고 언제나 말씀만을 따라간 것입니다. 매사를 ‘잘된다. 좋다. 번쩍번쩍하다. 천하만국을 다 보여준다’는 정욕의 눈으로 보지 않고, 십자가를 지며 오직 말씀만 따라간 욥입니다. 그리고 ‘손에 더러운 것이 묻지 않았다’는 것은 더러운 재물을 취하지 않고 불의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욥이 더러운 죄 가운데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그리하였으면 나의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산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진리에서 떠나 안목의 정욕이나 욕심을 따라가면 ‘나의 심은 것을 타인이 먹고 나의 소산이 뿌리까지 뽑힌다’는 것입니다. 욕심을 따라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다 빼앗아 가신다는 것입니다. 욕심대로 나가면 진리의 말씀으로 심은 것을 다 빼앗기고 신령한 소산은 뿌리까지 뽑혀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선과 믿음, 신령한 것으로 심어놓으면, 조금 있다가 거두게 됩니다. 말씀을 심고 지키느라 지금까지 힘을 쓴 것은 조금 있으면 다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욕심과 안목의 정욕을 따라가면 지금까지 믿는 일을 한 것이 다 헛수고가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에게도 아무 소득이 없게 됩니다. 욕심을 따라가지 않고 끝까지 진리를 따라가야 지금까지 심어놓은 것들을 거둘 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거두게 되고 오는 세상에서도 풍성한 산업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와 영광을 따라가면 지금까지 심어놓은 것이 헛수고가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고 심느라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애를 쓴 것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7. 간음하지 않았음
본문 9-12절에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 받을 악이요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 나의 모든 소산을 뿌리까지 없이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6장 25절에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잠언 22장 14절에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저주 받은 자가 음란한 죄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믿음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빠지지 않습니다. 믿음을 쓰려고 하고, 신앙 양심을 지키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힘을 쓰는 사람은 색(色)과 관련한 죄 가운데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자에게 미혹되어서 그 가운데 빠져 버리면 생명을 다 잃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한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벌을 받게 됩니다. 또 이 죄는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요, 모든 소산의 뿌리까지 없어질 죄입니다. 욥이 그러한 죄에 빠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믿음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입니다. 간음하는 죄 가운데 빠지지 않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믿음을 쓰려고 할 때에 모든 죄를 이길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