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과 못 먹을 것
신명기 14:1-29
1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2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3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4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5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 흰 노루와 뿔 긴 사슴과 산양들 6무릇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7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약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8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9물에 있는 어족 중에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
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10무릇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11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12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13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14까마귀 종류와 15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6올빼미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17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18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19또 무릇 날기도 하고 기어 다니기도 하는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 20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을지니라 21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22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
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28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명기 14:1-29
1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2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3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4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5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 흰 노루와 뿔 긴 사슴과 산양들 6무릇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7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약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8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9물에 있는 어족 중에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
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10무릇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11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12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13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14까마귀 종류와 15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6올빼미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17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18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19또 무릇 날기도 하고 기어 다니기도 하는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 20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을지니라 21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22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
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28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 몸을 베지 말고 눈썹 사이에 털을 밀지 말라
죽은 사람을 위해 슬퍼하지 말 것
본문 1-2절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죽은 사람을 위한 슬픔의 표시로 몸을 베어 피를 흘리고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었다고 합니다. 음부의 신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피를 흘렸고, 죽은 사람을 위해서 눈썹 사이 이마의 털도 밀었습니다. 슬퍼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고 너희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큰 것이 아니고 살려나가는 일이 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 자기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장사하는 일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일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죽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으
면 벌써 천당에 갔고, 안 믿은 사람이면 지옥에 가기 때문에 다시 변동시킬 수 없습니다. 또 부모나, 사랑하는 자녀나,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이므로 일이 다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갔고,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났으니 죽은 사람을 위해서 너무
슬퍼하지 말고 이제 산 일, 생명을 살려나가는 일을 하는 것이 성도가 마땅히 할 일 이라는 것입니다. 살았을 때에 할 일을 다 해야 하고, 세상을 떠나면 그것으로 종결이 된 것입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살려나가는 생명의 역사, 구원운동을 해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죽은 사람을 위해 슬퍼하지 않아야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데려갈 사람을 데려갔는데 무엇 때문에 지나치게 슬퍼합니까? 둘째는 우리는 성민이며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구별하여 거
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셋째는 지상 만민 중에서 ‘너희를 택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넷째는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데려갈 사람을 데려 갔으니까 거기에 너무 치중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늘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요, 성민이요, 지상만민 중에 택함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에 이제는 하늘나라 운동을 위해서 힘 있게 나가야 합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슬퍼하지 않아야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데려갈 사람을 데려갔는데 무엇 때문에 지나치게 슬퍼합니까? 둘째는 우리는 성민이며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구별하여 거
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셋째는 지상 만민 중에서 ‘너희를 택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넷째는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데려갈 사람을 데려 갔으니까 거기에 너무 치중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늘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요, 성민이요, 지상만민 중에 택함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에 이제는 하늘나라 운동을 위해서 힘 있게 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 것이 큰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고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였다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겠지만, 예수 믿는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불러 택하여 낸 자이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지만 이제 하나님의 것으로 불러냈기 때문에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려나가는 일,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 이것을 전문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2. 성도가 먹을 짐승과 먹지 못할 짐승
구약의 제도는 폐하여짐
본문 3-6절에 “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 흰 노루와 뿔 긴 사슴과 산양 들 무릇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먹을 만한 짐승은 쪽발이 갈라진 짐승, 새김질 하는 짐승입니다. 쪽발이 갈라지지 아니하고 새김질 하지 않는 짐승은 성도가 먹지 못합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내 놓으신 제도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그것을 해제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구약의 제도는 폐하였지만 그 진리는 영원히 지켜야 함
1) 쪽발 갈라진 생활을 해야 함
그러나 여기에 들어 있는 진리는 신약시대에도 우리가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영원불변의 진리이고,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이 진리는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는 진리입니다. 의문과 증서는 십자가로 못 박아 도말했지만, 그 의문과 증서 가운데 포함 되어있는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의문과 증서를 도말했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 속에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성도는 새김질을 해야 하고, 쪽발 갈라진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새김질하는 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쪽발 갈라진 생활을 해야 하는데 쪽발이 여러 쪽으로 갈라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개발처럼 갈라지면 안 됩니다. 두 쪽으로 갈라져야 합니다. 소나, 양이나, 사슴이나, 염소나, 노루처럼 두 쪽으로 갈라진 쪽발, 이것은 성도가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며 갈라놓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언제나 둘로 갈라놓아야 하고, 육과 영을 갈라서 영의 운동, 육의 운동을 갈라놓아야 하고 하늘의 운동과 땅의 운동을 갈라
놓아야 하고, 마귀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갈라놓아야 합니다. 언제나 두 쪽으로 갈라놓아야 하고, 진리와 비 진리를 언제나 갈라놓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늘의 운동과 땅의 운동을 갈라서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은 떠나고 항상 옳은데 서는 것이 쪽발 갈라진 생활입니다.
2) 새김질 하는 생활을 해야 함
새김질 하는 것은, 일단 성경말씀을 받은 다음에는 그 말씀을 가지고 회개할 바를 회개하고, 자기가 바로 설 바를 바로 서는 것을 가르칩니다. 또 기도하면서 그 말씀을 되새기고 자기가 만들어지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대로 만들어지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김질 하는 생활입니다. 새김질을 많이 하는 사람이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자라날 수가 있습니다. 교역자가 새김질 하지 않고 한번 가르치고 그만두고, 성도들은 새김질을 안 하고 한번 듣고 내버리면 다 병난 사람들입니다. 되새김질을 해야 소화가 잘 돼서 자기 영양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되새김질을 하지 않고 먹으면 설사해서 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소가 새김질을 안하면 위에 병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들은 다음에는 그 말씀을 가지고 그대로 되새김질 하면서 그대로 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대로 되게 해달라고 결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부터 그대로 되어, 다음에 자기 심령이 새김질하는 가운데서 말씀대로 변화가 되고, 그다음에는 몸이 그대로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새김질 하는 생활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목자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 중에 중요한 것을 새김질 해야겠습니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오는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했습니다. 또 요한복음 10장 8절에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자도 먼저 온 자며 절도요 강도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못 내놓은 사람은 그 말씀을 가지고 회개하는 것이 새김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못 내놓았다고 해야 합니다. 내놓은 것 같지만 사실 다 못 내놓았다고 해야 합니다. 자기가 내놓지 못한 줄 알고, 자기 목숨이 우상이 된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예수그리스도 일은 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빌립
보서 2장 21절에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라고 하였는데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 자기 일만 구하고, 자기 이익만 도모하고, 자기를 위해서 하나
님의 일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내놓은 것 같지만 안 내놓았습니다. 다 이기주의자입니다. 교회 일을 하는 것도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하고 유익이 안 되면 안 하려고 합니다. 손해가 되고 고생이 되면 안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다 선한 목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고생하고 죽을 곳이라도 가라하면 가는 것이 선한 목자입니다. 좋은 데만 가려는 것은 삯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의 자리를 내어놓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고난을 받으러 오셨습니다. 이것은 단 마음으로 오신 것입니다. 또 생명을 버린 것도 자원해서 단 마음으로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양을 위하여 자원해서 버리신 것입니다. 미국 보스턴에 가 보면 이백년 전에 지은 집들이 많이 있는데 그 시대에도 빨간 벽돌로 몇 층씩 올려 짓고 살았던 것같습니다. 그때에도 화장실에 양변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0년 전에 어떤 원장님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때 원장님이 독일을 한번 갔었는데 독일 말을 못해서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물어볼 수도 없고 같이 간 한국 사람도 없고, 화장실을 어떻게 찾아가야 되나 하고 몸짓으로 했더니 저리로 가라고 했답니다. 가보니 화장실이 있더랍니다. 독일 말을 몰라서 화장실을 못 찾는다고 해도 갈 길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선교사들은 그 좋은 것을 다 내놓고 한국에 왔습니다. 미국의 토마스 목사님은 한국에서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그 시절에 한국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한 백 년 전 화장실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옛날에 시골 화장실은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재를 담아 버려두는 헛간 옆에 돌 두 개 정도 가져다 놓고 거기 걸쳐 앉아서 용변을 보았습니다. 제주도에 가보면 돼지 우리 위에 막대기 두 개를 걸쳐 놓고 거기 올라가 용변을 보는 것입니다. 돼지가 물까봐서 돼지를 쳐다보면서 용변을 봐야 합니다. 돼지우리에서 용변을 보는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이 그런 곳에 와서 생활하면서 선교를 했습니다. 또 강냉이와 강냉이 죽을 먹고, 산골로 걸어 다니면서 그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너무 사치스러워졌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너무 사치스러워졌습니다. 이제는 기도원도 고급주택이나 고급 아파트로 해야 교인들이 많이 간다고 합니다. 고생하는 곳은 안 간다고 합니다. 고생을 해야 효과가 나는데 고생을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좋고 큰 교회에서 목회 하던 사람도 산골에 가서 개척교회 하라고 하면 단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교역자 아니겠습니까? 참된 목자는 양을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는 것이 참된 목자입니다. 좋은 곳만 가고, 교회를 크게 짓고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고, 고급 자동차나 사려고 하고, 이렇게 하면 이게 무슨 참된 목자겠습니까? 자동차 사는 것도 좋지만 샀다가도 다 내놓고 산간벽지에 가서 개척교회를 한번 해야 합니다. 그게 참된 목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늘 되새김질해서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거기에 도달하려고 날마다 힘을 써야겠습니다.
3) 새김질과 쪽발 갈라진 생활을 같이 해야 함
본문 7절에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약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토끼는 되새김질을 못하는데 왜 여기에다가 포함시켜 놓았습니까? 되새김질을 안 해도 되새김질을 하는 것 가운데 내 놓은 것입니다. 입으로 오물오물 되새김질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되새김질 하는 것으로 취급을 한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쪽발이 갈라졌어도 새김질을 못하는 것은 먹지 말고, 되새김질을 해도 쪽발이 안 갈라진 것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둘 가운데 하나만 하면 안 됩니다. 둘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구별된 생활 을 해야 하고 또 말씀 새김질하고 나가는 참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쪽발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안 하는 것도 합당치 않습니다. 또 새김질은 하지만 족발이 안 갈라져서 분별력 없이 진리와 비 진리를 구별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또 새김질 하지 않는 것의 시체, 쪽발 안 갈라진 것의 시체도 만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새김질을 하지 않는 성도, 구별하지 못하는 성도는 시체라고 봐야 됩니다. 이런 성도는 생명 있는 성도가 못됩니다.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는 성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그런 사람들하고 타협하고 나가면 안 되겠습니다. 또한 죽은 생활을 하는 사람하고는 가까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그런 사람들하고 타협하고 나가면 안 되겠습니다. 또한 죽은 생활을 하는 사람하고는 가까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3. 물고기 중에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
전신갑주를 입고 방향을 잘 설정하여 전진하는 생활을 해야 함
본문 9절에 “물에 있는 어족 중에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물에 있는 고기 가운데는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전신갑주를 입고 방향을 잘 설정하여 전진하는 생활을 해야 함
본문 9절에 “물에 있는 어족 중에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물에 있는 고기 가운데는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가 먹지 말찌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비늘과 지느러미 있는 물고기만 먹으라고 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그 의식이 해제되었기 때문에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진리는 지켜야 됩니다. 여기에 대한 진리를 안 지키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성도가 못 됩니다. 비늘은, 성도가 비늘 있는 생활을 하라는 것인데,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물고기에게 비늘은 갑옷입니다. 지느러미는 방향을 바로 정하는데 쓰고, 전진하는데 씁니다. 그래서 지느러미는 방향조정과 전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향을 바로 정하고 항상 달음박질하며 전진하는 성도가 되어야 되고,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화살을 늘 막으면서 항상 자기를 보호해 나가야 됩니다. 자기를 지키지 아니하면 마귀의 화살에 맞아서 넘어 갑니다 언제나 손해 보지 않도록 하고 마귀의 화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야 됩니다. 방향을 바로 정하고 항상 전진하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4. 정한 새와 부정한 새
부정한 새를 먹지 말 것
본문 12-18절에 “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새들은 먹
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 가운데 좋은 새가 못 됩니다. 대게 남을 잡아먹는 새인 것입니다. 새매 같은 것과 독수리 같은 것은 남을 잡아먹으며 사는 것입니다. 까마귀도 시체를 파먹고 다닙니다. 낮에는 못 다니고 밤에 다니는 올빼미와 부엉이도 이와 같은 새들입니다. 공명정대하게 낮에 다녀야 되겠는데, 어두운 밤에 다니는 새 같은 성도는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박쥐나 황새도 남을 잡아먹는 새들입니다.
부정한 새를 먹지 말 것
본문 12-18절에 “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새들은 먹
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 가운데 좋은 새가 못 됩니다. 대게 남을 잡아먹는 새인 것입니다. 새매 같은 것과 독수리 같은 것은 남을 잡아먹으며 사는 것입니다. 까마귀도 시체를 파먹고 다닙니다. 낮에는 못 다니고 밤에 다니는 올빼미와 부엉이도 이와 같은 새들입니다. 공명정대하게 낮에 다녀야 되겠는데, 어두운 밤에 다니는 새 같은 성도는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박쥐나 황새도 남을 잡아먹는 새들입니다.
성도는 남을 잡아먹지 말고, 어두운데 다니지 말고, 정정당당히 하나님의 일을 낮에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낮에 다니라고 광명한 빛을 주셨으므로 공명정대한 것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남에게 손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잡아먹고 사는 사람은 신자구실을 못합니다. 교회도 교인들의 물질만 빼앗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사례비를 더 받고 대접을 더 받을까?’하는 사람은 이런 종류입니다. 또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다른데 가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다 박쥐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성도구실을 못합니다. 어디 내놓아도 공명정대하고 반듯하게 옳은 말만 하고 옳게 나가야 합니다.
비방하고, 수군거리고, 원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뭐 한 가지하면 ‘왜 그렇게 했느냐’하며 사사건건 트집이나 잡는 사람은 성도 구실을 못합니다. 트집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트집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다 옳게 봅니까? 다른 사람이 해 놓
은 것을 내용도 모르고 그저 무조건 척 보고 ‘잘못된 것 같다’고 하면 안 됩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원인이 다 있는 것입니다. 숨어 있는 원인, 알지 못하는 원인이 다 있고, 공개 하지 못할 원인이 다 있습니다. 그저 껍데기인 피상적인 것만 척 보고 ‘원인을 알지 못하고 왜 이
렇게 했느냐’고 하면 되겠습니까? 원인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되겠기에 그렇게 한 것인 줄 알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됩니다. 남을 자기보다 못한 자로 아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대적이 됩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자기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잘 했겠지’하며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사람들 식으로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미국사람들은 문지기를 해도 자기가 지키는 문만 간섭하지 남의 문은 간섭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지키는 문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살펴보며 그것만 바로 하려고 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이 문지기, 저 문지기 다 간섭합니다.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데 왜 그냥 두느냐’하며 간섭합니다. 그렇게 하면 속만 상하게 됩니다. 자기 문만 지키지 왜 남의 문까지 간섭을 합니까?
은 것을 내용도 모르고 그저 무조건 척 보고 ‘잘못된 것 같다’고 하면 안 됩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원인이 다 있는 것입니다. 숨어 있는 원인, 알지 못하는 원인이 다 있고, 공개 하지 못할 원인이 다 있습니다. 그저 껍데기인 피상적인 것만 척 보고 ‘원인을 알지 못하고 왜 이
렇게 했느냐’고 하면 되겠습니까? 원인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되겠기에 그렇게 한 것인 줄 알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됩니다. 남을 자기보다 못한 자로 아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물리치십니다. 대적이 됩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자기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잘 했겠지’하며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사람들 식으로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미국사람들은 문지기를 해도 자기가 지키는 문만 간섭하지 남의 문은 간섭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지키는 문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살펴보며 그것만 바로 하려고 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이 문지기, 저 문지기 다 간섭합니다.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데 왜 그냥 두느냐’하며 간섭합니다. 그렇게 하면 속만 상하게 됩니다. 자기 문만 지키지 왜 남의 문까지 간섭을 합니까?
이승만 대통령 때에 아랫사람을 하나 두면 아랫사람이 대통령까지 간섭했다고 합니다. 직분 하나를 맡겨 놓으면 자기 직분만 하지 않고 대통령이 하는 것까지 간섭했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의 성격이 그런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하나 맡겨 놓았으면 그것에만 충성을 하고 다른
데는 간섭하지 않아야 되는데 대통령까지 간섭을 하니까 얼마나 복잡해집니까? 자기가 대통령만큼 알겠습니까? 대통령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알고, 맞춰서 하는데 아랫사람이 가만히 앉았다가 ‘왜 이렇게 하느냐’고 합니까? 밤에 다니는 새, 남을 잡아먹고 사는 새, 죽은 것을 먹는 새, 즉 이것은 썩어진 생활인데 이런 생활은 성도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5. 스스로 죽은 것을 먹지 말라
본문 20-21절에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을지니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 그것을 성중에 우거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팔아도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고 하였습
니다. ‘죽은 것은 먹지 말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신앙이 죽은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죽은 것을 성도가 먹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것은 안 믿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염소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고 한 것은 염소새끼를 잡아 먹을 때 어미의 젖에 삶아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잔인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소새끼가 먹는 젖에다 고기를 삶아 먹으니까 잔인한 것입니다. 짐승을 잡아먹긴 잡아먹어도 잔인하게 잡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를 잡을 때에도 알까지 갖다가 잡아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꿩 먹고 알 먹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꿩을 잡아먹을 때는 알까지 먹지 말고 알은 놔두라는 것입니다. 잔인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잔인한 백성들은 가다가 안 됩니다. 잡아먹을 때는 잡아먹어도 너무 잔인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앞길을 내 주고 해야 합니다. 새를 잡아먹어도 새끼는 놔둬야 합니다. 이다음에도 새끼가 커야 되지 않겠습니까? 알을 먹을 때도 어미는 둬야 됩니다. 그래야 이다음에 다시 새끼나 알을 낳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언제나 희망을 주고, 앞길을 열어주고, 소망을 아예 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소새끼를 잡아먹으면 됐지 왜 젖에다 삶아 먹습니까? 그런 무자비하고 잔인한 일을 성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를 때릴 때에도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되고 잡아먹을 때에도 너무 잔인하지 않아야 됩니다. 잡아먹을 수는 있지만 염소새끼를 어미의 젖에 삶는 것처럼 그렇게 잔인한 일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죽은 것은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이 죽은 자, 영혼이 죽은 자들,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죽은 믿음을 자진 자를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살릴 수 있으면 가까이해서 살리고 살릴 가망이 없는 자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바로된 것입니다. 염소 새끼를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는 것은 무자비하게 하지 말고 소망을 아주 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6. 십일조
십일조의 종류
1) 제 1 십일조: 레위인을 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
본문22-23절에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택하신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민수기 18장 21-24절에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사람은 세상에 기업이 없고 하나님의 성전봉사를 전문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 십일조를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 1 십일조입니다. 그러면 레위사람은 그 십일조를 받아서 또 십일조를 떼어서 대제사장에게 주고, 대제사장도 마찬가지로 십일조를 떼어서 하나님의 성전 곳간에 드려야 합니다.
2) 제 2 십일조; 축제와 감사의 십일조
본문 24-26절에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택하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고 가서 가족과 종들, 다같이 먹으라는 것입니다. 만약 택하신 곳이 멀어 가지고 가기 힘들면 그것을 팔아 돈으로 가져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면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사서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고 같이 먹으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2장 6-7절에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
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 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신명기 12장 12절에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 같이 모여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레위인을 위해서 소산의 십일조를 바치고 남는 십 분의 구에서 또 십일조를 떼어 하나님께 감사하며 가족과 종이 다 같이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십일조가 있습니다. 이것은 축제와 감사의 제 2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를 떼고 남은 십분의 구에서, 또 십일조를 떼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가족과 자녀와 종이 먹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족적인 파티도 한 번씩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가족은 하나도 안 돌보고 밖으로 돌아만 다니고, 다른 사람만 도와주고 가족을 안 도와준다는 불평이 더러 있는데 여기
도 아마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대로 한번 해 보시길 바랍니다. 가족이 모여서 즐거워하라고 했으니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 년에 고기도 한 번 사 먹지 못하고 가족을 내버려두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 년에 십일조 한 번 떼어서 감사하면서 나누어 먹으라고 하였으므로 가족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배워서 한 번씩 해 보시길 바랍니다. 또 즐거워 할 때는 그 종까지라고 하였으므로 일꾼들까지 모여 한 번씩 즐겁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도 아마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대로 한번 해 보시길 바랍니다. 가족이 모여서 즐거워하라고 했으니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 년에 고기도 한 번 사 먹지 못하고 가족을 내버려두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 년에 십일조 한 번 떼어서 감사하면서 나누어 먹으라고 하였으므로 가족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배워서 한 번씩 해 보시길 바랍니다. 또 즐거워 할 때는 그 종까지라고 하였으므로 일꾼들까지 모여 한 번씩 즐겁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 년과 이 년에 낸 제 2 십일조를 다 잔치하면서 먹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다 먹겠습니까? 가령 일 년에 쌀 열 가마니를 제 2 십일조로 내는 집이 있다고 합시다. 그 열 가마니를 어떻게 다 모여서 먹겠습니까? 그러므로 그것의 일부는 먹는데 사용하고 일부는 믿는 일을 하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떼어 두었다가 사경회 하는데 쓰고, 복음 전도하는데 쓰는 것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매달 십일조를 두 번씩 떼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건축연보 같은 것을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일부는 가족이 다 모여서
가족 감사와 축제하는데 사용을 하고 그 다음에는 건축연보를 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가족 감사와 축제하는데 사용을 하고 그 다음에는 건축연보를 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3) 제 3 십일조: 구제의 십일조
또 매 삼 년 끝에 십일조를 드려서 빈민구제용으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일년, 이년 째에 제 1 십일조를 하고 떼는 제 2 십일조는 축제용, 감사용이고, 매 삼 년 끝에 떼는 제 3 십일조는 저금해 놓았다가 고아나 과부,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일 년과 이 년에도 제 1 십일조 후, 십 분의 일을 떼고 삼 년째도 제 1 십일조 후, 십분의 일을 뗍니다. 십분의 일을 떼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용도가 다른 것입니다. 일 년과 이 년에는 축제와 감사용이고 삼 년째 되는 해에 십분의 일을 떼는 것은 구제용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구제를 많이 할 것 같습니다.
또 매 삼 년 끝에 십일조를 드려서 빈민구제용으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일년, 이년 째에 제 1 십일조를 하고 떼는 제 2 십일조는 축제용, 감사용이고, 매 삼 년 끝에 떼는 제 3 십일조는 저금해 놓았다가 고아나 과부,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일 년과 이 년에도 제 1 십일조 후, 십 분의 일을 떼고 삼 년째도 제 1 십일조 후, 십분의 일을 뗍니다. 십분의 일을 떼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용도가 다른 것입니다. 일 년과 이 년에는 축제와 감사용이고 삼 년째 되는 해에 십분의 일을 떼는 것은 구제용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구제를 많이 할 것 같습니다.
십일조를 삼 년마다 한 번씩 떼서 불쌍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구제해야 합니다. 쌀 백 가마니를 수확했으면 십일조로 열 가마니를 떼서 바치고, 90가마니에서 한 번 더 십일조를 떼야 합니다. 두 번째는 9가마를 떼야 합니다. 9가마니는 하나님께 감사
제를 드리며 가족이 모여서 먹는 것입니다. 또 가족들에게 의복 한 벌씩 해주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 또 파티도 한 번 하고, 그 다음에 은혜 받을 때에 사용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일, 연보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저축하느라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
으면 되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구제하고, 가난한 교역자도 도와주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가난한 교역자들을 주려고 쌀 반가마니를 가지고 왔는데 오늘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은 좋은 것입니다. 또 도움을 받을 사람들은 도움을 받아야 되고, 우리는 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면 도적이라고 했습니다. 원리 원칙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은 레위 사람을 위해 바치는 근본을 말하는 것이고, 바친 다음에 남은 것을 가지고 십일조를 다시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바쳐야 함
본문 28-29절에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 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
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십일조를 드렸어도, 신약시대에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이 십일조는 철저하게 드렸지만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떤 교역자는 6개월분 생활비를 몽땅 다 바쳤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살겠습니까? 굶어 죽는지, 안 죽는지를 한번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 생각에는 안 굶어 죽을 것 같습니다. 이제 6개월 후에 굶어 죽는지, 안 죽고 왔는지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시켜서라
도 먹여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까마귀를 시켜서라도 그 교역자를 먹여 주실 것 같습니다. 성경이 맞지, 안 맞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마늘을 일 년에 80~90접을 했는데 하나님께 30접을 바치니까 31접이 더 나왔답니다. 일 년에 31접이 더 나왔으니까 30접을 바치고도 한 접이 더 남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면 이렇게 넉넉히 해 주십니다.
어떤 교역자가 교역자는 십일조를 안 드려도 된다고 했습니다. ‘레위인을 위해서 십일조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어떻게 드리겠느냐’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레위인도 십일조를 떼어서 대제사장에게 바쳤고, 대제사장도 거기서 또 십일조를 떼어서 하나님의 성전에 바쳤습니다. 교역자들도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면 선물 받은 것은 어떻게 합니까? 크리스마스 날 선물을 몇 만원어치를 받았다고 합시다. 사과를 약 3만원 어치를 받았다면 그것의 십일조를 떼어야 마땅합니다. 또 결혼식 주례를 해주고 구두상품권을 하나 받았다면 이것도 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생각하여 감사함으로 십일조를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무조건 떼어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레위사람을 위해서, 교역자를 위해서 바쳐야 합니다. 교역자에게 직접 바치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내면 교회 제직회에서 그 돈을 가지고 교역자의 생활비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란의 날에 교회에 모일 수 없을 때에는
십일조를 떼서 교역자에게 직접 주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또 물질을 가지고 레위 사람을 위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세상 사업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첫째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족이 모여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먹는 것이 둘째고,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셋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 가족, 불쌍한 사람 구제하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