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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로마서 6:15-7:6 하나님을 순종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을 순종하라
로마서 6:15-7:6

6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너희를 맡은 바 교훈의 18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7 1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15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짓겠느냐? 결코그럴 수 없다. 

6:16 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너희가 순종하는 그자의 종이 되는 줄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 

6:17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너희가 전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전하여 받은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 

6:18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방식대로 말한다. 너희가 전에는 너희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의 종으로 주어 불법에 이르렀던 것같이, 이제는 너희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도록 하여라. 

6:20 너희가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다. 

6:21 그때 너희가 무슨 열매를 거두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들을 부끄러워하니, 그것들의 마지막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6:22 그러나 이제 너희는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 있는 영생이다.

7:1 형제들아, 내가 율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율법이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를 지배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7:2 결혼한 여자는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여 있으나,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자유롭게 된다. 

7:3 그러므로 그 여자가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간음한 여자라고 불릴 것이지만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는 것이므로 다른 남자에게 가더라도 간음한 여자가 되지 않는다. 

7:4 나의 형제들아, 이처럼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분,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분께 속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속에서 작용하여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으나 

7:6 지금 우리는 우리를 얽어매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의식법 문자의 낡은 것으로 섬기지 않는다. 

1. 성도는 율법에서 해방되어 은혜 아래 있음

본문 15-16절에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율법에서 해방되어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하는 뜻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그럴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종노릇하면 결과는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노릇하면 의에 이르는데 그것은 자유라는 것입니다. 자유인데 법적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율법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서 자유로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으면 법이 와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죄의 종이 됩니다. 이제는 죄의 세력이 강해서 죄가 끌고가 멸망시켜 놓습니다. 죽이는 것입니다.

의의 종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면, 즉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면 의에 이르고 영생에 이릅니다. 내가 죄에게 순종할 때에는 죄의 종노릇했다가, 내가 하나님께 종노릇할 때에는 의의 종이 됩니다. 결과는 죄에게 순종할 때는 망하게 되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는 의의 종이 되어서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의 법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법, 마음의 법, 즉 네 영의 생리, 네 영적 상태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누가 와서 뭐라고 하지 않아도 죄의 길로 가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고, 죄의 종노릇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지고, 사망의 세력이 주장을 하여 영이 살지 못하고 영이 죽을 지경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 할 때에는 환하게 살아납니다. 기쁘고 즐겁고 의의 종이 되고, 은혜의 종이 되어 영생이 사는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영이 분별할 수 있습니다. 율법이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서 해방을 시켜 놓았는데 영이 살려면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죄의 종

영이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빠져서 죄의 종노릇을 하면 얼굴이 숯개떡처럼 새까매집니다. 심령이 편치 않고 괴롭습니다. 또 하나님의 손은 주야로 내리 누릅니다. 시편 32:4에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손이 주야로 내리 눌러서 죽을 지경에 빠졌다고 하였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주면서 죄를 지으라고 해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내
리 누르고, 죽을 지경이고, 답답한데 하루 만원씩 줄터이니 죄를 지으라고 하면 짓겠습니까? 그것은 물고기가 육지에서 나온 것과 같습니다. 물고기가 육지로 나오면 배가 땅에 닿고, 뒷잔등이 마르고, 아이들이 막대기로 찌르고, 개미 새끼가 기어 올라오고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것이 죄의 종노릇입니다. 은혜 가운데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의 종노릇하니까 죽을 지경입니다. 심령이 답답하고, 기도가 막히고, 양심에 부딪치고, 하나님의 손이 주야로 내리 누르고, 뼈가 쇠하고 진액이 마릅니다. 죄의 종노릇 한 결과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을 하나님께 바쳐서 의의 종노릇을 하면 심령이 편안하고 기쁘고 즐겁고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됩니다.
또 나는 하나님 안에 살고,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심령이 소생하여 올라가고 얼굴이 환해지고 영이 살아납니다. 즉 하나님의 의의 종이 되므로 날마다 영이 새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2. 하나님께 감사하라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됨

본문 17절에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죄에서 해방이 되고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의 종으로서 그저 종살이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는 해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노릇할 때에는 죽을 지경에 빠졌었는데 이제는 의의 종이 되어서 화평한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시편 32:1-4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종이었는데 이제는 의의 종노릇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아서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서 의의 종노릇하다가 이제는 죄의 종노릇하는 데로 다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의 종노릇 할 때에 얼마나 기쁘고, 힘이 나고, 감사하고, 영이 소생함을 얻고, 얼마나 새 힘을 얻어 독수리 같이 날아갑니까? 얼마나 영이 살아납니까? 그런데 의의 종노릇하다가 죄의 종노릇 하는데로 다시 돌아가면 하나님의 손이 밤낮 누르고, 뼈가 쇠하고, 진액이 다 마르는 죽을 지경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죄의 종 노릇하는데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돌아가면 비참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자유가 없는 강제 수용소에서 종살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병이 나도 병원도 못가고 고통 당하다가 죽으면 그냥 내어다 버립니다. 그런데 죄의 종은 이것보다 더합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우리 지체를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본문 19절에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지체를 즉 우리 몸을 의의 종으로 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옳게 살자, 하나님께 바로 살자, 몸 바쳐 살자”하면 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체를 죄의 종으로 사용하면 비참합니다. 죄
의 종이 되면 자유가 없습니다. 죄의 종이 되면 죄 짓는 동무가 생깁니다. 그래서 거기에 끌려 다니며 포로 생활을 하게 되므로 심령은 힘이 없고, 답답하며, 얼굴은 새까매지고, 하나님의 손은 주야로 내리 누르므로 죽을 지경이 됩니다. 그럴때에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하고 결심하고 나오려고 해도 죄의 세력들이 끌어 내리려고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나를 붙들라”고 하시면, 예수님의 손만 붙들면 예수님이 생명과 평안과 성령을 힘입어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영이 사는 세계로, 밤낮 하나님 얼굴을 보는 세계로, 의의 종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죄의 종의 결과는 사망

본문 20-21절에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의 대하여 자유하였다는 것은 의에 대해서 제제를 안받았다는 것이며, 의에 대하여 거침없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노릇 할 때에는 의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의를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의를 귀중히 여기지도 않고 의의 지배를 받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거침없이 죄를 행하였습니다. “의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난 나대로 한다”하며 의에 대하여서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의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종이므로 의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합니다. 의에 잡혀서 의가 하라는 대로 합니다. 의가 이렇게 하라고 하면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합니다. 그것이 의의 종입니다. 의에 대해서 자유는 의가 이렇게 하라고 했으면 안하는 것이 자유 아닙니까? 죄의 종노릇 할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입니다. 그러나 의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해서 자유를 못합니다. 아무리 하려고 해도 의가 아니므로 할 수 없습니다. 또 신앙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의의 종이며, 선의 종입니다. 의에 대해서 자유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의에 붙잡혀서 종살이 할 때가 좋은 것입니다. 즉 의라고 하면 꼼짝 못하는 때, 선한양심을 어길 수 없는 때입니다. 심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의의 종입니다. 그때가 의의 종노릇 할 때이며, 사는 때이며, 복이 있는 때입니다. 과거에 죄의 종노릇할 때에는 부끄럽고 그 결과는 사망이었는데, 그 사망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겠습니다. 

의의 종의 결과는 영생

본문 22절에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첫째,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곧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로 죄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에서 해방된 후에는 하나님의 종살이를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살이를 안하면 또 죄에게 잡혀 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으로 언제나 살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종살이를 하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되어 그 마지막이 영생입니다.

본문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종이 되어 날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날마다 거룩한 데로 나가므로 우리의 영이 자라나서 독수리와 같이 올라가는 영생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즉 날마다 영이 살아나가는 역사가 계속되어야겠습니다. 천당에 가는 것도 영생이지만 하나님의 종이 되어 날마다 거룩한 열매를 맺어 나가므로 영이 자라나는 것도 영생입니다.

3. 성도는 율법에서 벗어났음

본문 7:1절에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사람이 살 동안만 주장합니다.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율법이 주장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산 사람에게 대해서만 율법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고 또 산 사람에 대해서만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처벌하고, 사형 언도를 내리고, 사형을 시킬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율법이 주장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
면 율법의 주장이 끝납니다. 살았을 때에만 율법이 주장을 합니다.
 
본문 2절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는 이혼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죽은 자가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남편이 죽은 것에 대한 실례를 들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혼관계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강해서 5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남편이 있는 여인이 그 남편이 살았을 동안은 얽매인 바 되었다가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그 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즉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법적으로 해방 받아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편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란한 여자라 일컫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 자유하기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갈 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내 죽음

본문 4절에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것은 우리가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받을 사형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법에서 우리에게 사형언도를 내리시고 사형집행을 했는데 그 사형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죽은 것은 내가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실만한 아무 죄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벌써 사형 받아 죽을 자인데 예수님께서 대신 사형 받으신 것은 내가 받을 사형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즉 나와 연합해서 사형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적으로 볼 때에는 우리는 벌써 사형을 받은 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법으로 보면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란 우리는 다 사형을 받은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내 부활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함이니라”란 남편 있는 여인이 남편이 죽으면 법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형을 받아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고,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법이 주장을 못합니다. 다른 이에게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한테로 갑니까?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나신 예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에게로 가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즉 새 생명을 가지신 예수님, 부활의 생명을 가지신 예수님께로 가서 예수님과 연합하여 새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과거에는 누구하고 죽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의 예수님과 연합해서 거기서 죽었고, 죽은 다음에는 법에서 벗어났고, 이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께로 가서 새 생명의 열매를 맺힙니다. 즉 예수님과 같이 죽고, 예수와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연합을 했는데, 이것은 전의 연합과 다릅니다. 전의 연합은 죽기 위해서 연합한 것이고, 부활한 다음에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한 것은 새 생명으로 살기 위해서 연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벗어났고, 예수님과 연합해서 새 생명의 세계에 들어갔습니다. 

4.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열매를 맺음

본문 5절에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육신중심으로 살 때를 말합니다.
즉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로 가기 전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했다고 하였는데, 예수님과 살기 전에는 죄밖에 지을 것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열매를 맺은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5. 의문의 묵은 것으로 하지 말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라

본문 6절에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얽매였던 것은 율법을 가리킵니다. 얽매였던 율법에 대해서는 예수님과 같이 우리가 죽었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과 같이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의문의 묵은 것으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의문에서 벗어났습니다.
고린도후서 3:6에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새 언약의 일군은 의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영으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의문으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즉 영으로 섬겨야 합니다.
영으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군으로 만들어 놓으셨으므로, 하나님도 영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제는 의문에서 벗어났습니다. 즉 율법의 얽매였던 것에서는 우리가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섬길 것이 아니고, 의문으로도 섬길 것이 아닙니다. 의문은 구약의 율법에 대한 의문, 증서, 제도 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할례를 받는 것이든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든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든지, 소나 양을 잡아 제사 드리는 것이든지, 비늘 없는 고기, 족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을 먹지 말라는 것 등이 의문입니다. 이런 구약의 의문으로 신약시대에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문은 다 벗어났습니다. 어떻게 벗어났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예수님과 같이 죽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죽었기 때문에 구약의 의문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요새도 예배의 의식을 화려하게하고, 굉장하게 하는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문과 의식에 치중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의식에 치우치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영적 새 생명의 역사가 있는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