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여호와를잘섬기는자의복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여호와를잘섬기는자의복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월 19일 목요일

신명기 26:1-19 여호와를 잘 섬기는 자의 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를 잘 섬기는 자의 복
신명기 26:1-19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 거할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당시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것이요 4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취하여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을 것이며 5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6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7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8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찌니라 12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13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고하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14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잊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 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찌니라 16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17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18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19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1.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하고 첫 열매를 여호와께 바치라

본문 1-3 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 거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당시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하고, 그 중에 처음으로 익는 맏물을 취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아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 하나님께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의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기억해야 함

본문 4-11절에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취하여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을 것이며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
한 민족이 되었더니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
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네 하
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곡식의 맏물, 과수, 열매 등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서 그냥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 우리 조상이 유리하는 소수의 아람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하셔서 창대케 된 것과 또 학대 받는 자들을 구원하여 내시고 가나안 땅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시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원래 유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유리하면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살지 않았습니까? 또 아람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소수의 사람으로 애굽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몇 명이 들어갔다고 했습니까? 70명이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애굽에 우거했다는데 임시로 붙어살았습니다. 또 종살이 했습니다. 그런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이 번성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 중에 애굽사람이 학대하고, 괴롭게 하고, 중역을 시키므로 하나님께 애굽에서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강한 손을 펴서 큰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주었다는 것을 기억시키라는 것입니다. 

그 과거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과거를 잊어버리지 말고, 과거가 형편없던 자였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유리하는 민족이었고, 소수의 사람이었고, 형편없고 보잘 것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서 자랑하지만 근본을 보면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양반이라고 하는데 어느 지파가 양반 지파입니까? 베냐민 지파입니다. 전통이다, 이렇게 교만하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리하는 아람 사람에 지나지 않고, 또 소수의 사람, 몇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양반의 자손이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족보에 보면 여자가 4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마태 1장에 예수님의 족보 기록할 때에 여자 4명을 기록하였는데, 어떤 여자들이었습니까? 기생 라합과, 시부와 동침한 다말과, 또 다윗과 동침해서 솔로몬을 낳은 우리야의 아내와, 이방 여자 룻입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여자들이 성경에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교만하지 말고 형편없는 자들인 줄을 언제나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다 과거에 종살이 하던 자들 아닙니까? 일본 사람들의 종살이 하던 사람들입니다. 일본 사람의 속국으로써 종살이 하던 자들입니다. 아직 해방 안 되었으면 다 만주나 시베리아로 쫓겨 가서 형편없는 곳에서 고생하면 살았을텐테, 하나님의 은혜로 건져주신 것을 늘
잊지 않고 감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큰 이적과 기사로 이렇게 건져주신 것을 감개무량(感慨-無量)해야 합니다. 대동아전쟁 때 일본이 항복한 것은, 첫째는 하나님 은혜이고, 둘째는 미국 사람이 독립하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독립 안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독립이 안 되고 일본의 속국으로 있었으면 만주로 다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아 합니다. 

지금 이북에 있는 성도들이 이렇게 모여서 사경회 할 수 있습니까? 주일날 모여서 자유스럽게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북한에 봉수 교회를 세워 놓은 것은 선전하려고 세워 놓은 것인데, 그것은 공산당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진짜 교인들과 목사는 거기에 없습니다. 기독교도 연맹을 만들어 가입한 사람들만 있습니다. 교도연맹이라는 것은 공산당의 어용기관입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생각하고 지금이 있게 된 것을 언제나 감개무량하는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과거에 피난가서 살 때, 집 있었습니까? 부산이나 제주도 등으로 쫓겨나서 집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6.25전쟁 후에 집 있었습니까? 자기 땅 있었습니까? 기도원은 있었습니까? 휴가가 있었습니까? 휴가가 없었습니까? 그 명륜동 교회를 하면서 산에서 기도를 하곤 했는데, 그 때는 놀러오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한 주간 내내 개천가에서 있었어도, 사람들이 한명이나 두 명이 올지 말지 하였습니다. 어떤 주간은 한 사람도 안 옵니다. 휴가를 갈 여유가 있습니까. 당장에 코가 석자나 빠졌는데 언제 휴가 가겠습니까. 밤낮 일해도 잘 먹지 못하는데, 휴가를 갈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몇 년이 지난 후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그래서 우이동으로 기도하러 갔습니다. 우이동으로 가니 한 주간에 한 사람도 안 옵니다. 그리고 몇 년 있으니까 그곳에 또 놀이꾼들이 찾아와서 용인으로 기도처를 옮겼습니다. 용인으로 가서, 경방 뒷산으로 쑥 들어가서, 나무가 굉장히 많은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천막치고 기도했습니다. 거기에는 한 주간 있어도 한 사람도 안 왔습니다. 그래서 좋다고 했었는데, 또 몇 년 지나니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몇 명 찾아오더니, 그 후에 더 많이 찾아와서 3년 전부터는 그 기도하던 곳을 못 쓰
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매일 찾아오는데 어떻게 들어가서 기도하겠습니까? 그래서 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더 쑥 들어가서, 이슬람 신학교 자리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곧장 올라오면 또 사람들 곧장 올라오니까 오른쪽으로 쑥 들어가서 기도하는데, 거긴 요새는 아직도 사람들이 안 찾아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룰 것입니다.
요즘에는 수영장에 많이 놀러갑니다. 그러나 놀러가서 물에 아무리 들어가 있어도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엇이 얻어집니까? 같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성경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이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줄 깨달아야 됩니다. 물에 1년 12달 내내 들어가 앉아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성경말씀을 한마디 배울 수 있습니까? 또 물에 들어가면 영이 삽니까? 영이 살다면 나도 물에 밤낮 들어가서 엎드려 있겠습니다. 그러나 영이 못삽니다. 그러므로 전에 것을 생각하며 감사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과거에 종살이하던 생각을 늘 하라는 말입니다. 종살이 하고, 집 한간이 없고, 생활비가 없어서 쩔쩔매던 때를 늘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좀 나아졌을 때에, 좀 잘 됐을 때에, 전에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전에 못살던 때, 형편없던 때, 집 한간 없던 때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현재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수돗물이 안 나와도 감사하고, 비가 새도 감사합니다. 비가 샌다고 해도 집이라고 한간 있으니까 비가 새지, 집도 없는데 무슨 비가 새겠습니까? 불이 붙어도 감사합니다. 집이 있기에 불이 났지, 없는데 어떻게
불이 나겠습니까? 거지들이 방앗간에서 자다가 그 동네에 화재가 나니깐 아버지가 아들에게 “우리는 집이 없어서 화재가 날 염려가 없어서 좋다”고 했답니다. 집 없으니 불이 붙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버지가 “이게 다 내 덕인줄 알아라”라고 했답니다. 아버지 덕분에 집에 불붙은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종살이하던 것에서 구원해서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을 감사해서 맏물을 바침

과거에 못 살아서 종살이하고, 날품팔이 하고, 또 나가서 지게질 하고, 드럼통 굴리던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형편없었던 과거의 생활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좀 나아졌다고 더 나아지려고, 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자꾸 마음이 높아져서, 불만을 품고 살
지 말라는 말입니다. 잘 살수록 불만이 더 많아집니다. 언제든지 과거에 제일 비참하고, 종살이 하던 것을 기억하고, 또 하나님께서 이적과 기사로 건져주신 것을 감사해서 조금이라도 농사했으면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 아닙니까? 땅도 하나님께서 주셨지, 누가 주셨습니까?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 아닙니까? 농사도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신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가나안 땅을 주신 것 감사하고, 그리고 농사되게 해주신 것 감사해서 하나님께 맏물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제일 첫물, 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께 먼저 바치라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맏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일 처음으로 받은 한달 월급을 다 하나님께 바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농사해서 제일 처음으로 익은 것들 따서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도 있는데, 하여간 맏물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맏아들을 바치고, 하루에 첫 시간을 바칩니다. 그러면 첫 시간은 어떤 것입니까? 새벽기도로 첫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첫 시간을 하나님께 받치는 신앙이 맏물을 바치는 신앙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받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돈을 벌면 뚝 떼어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돈도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절반을 떼어다 바쳐도 절반이 남지 않습니까? 절반이 남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절반 남은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다가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형편없는 자들을 권고하셔서 많이 번성케 해주신 것입니다. 

2. 번성케 한 후에는 고난으로 연단시키심

번성케 한 후에 또 무엇이 왔습니까? 곧 5절에 번성케 해주셨는데 6절에 무엇이 왔습니까? 학대와 괴롭게 함과 중역이 왔습니다. 번성케 한 다음에는 학대와 괴롭게 함과 중역이 옵니다. 시험이 옵니다. 항상 번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늘 번성하면 그것도 못씁니다. 가다가 잘라줘야 됩니다. 고구마 넝쿨 내내 번성하도록 놔둡니까? 고구마 넝쿨 그냥 퍼지도록 가만 놓아둡니까? 고구마 넝쿨 잘라줍니까? 또 뒤집습니까? 고구마는 잘라주고 뒤집어야 됩니다. 고구마는 가만 놓아두면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면 제 맘대로 뿌리가 날것입니다. 돌에도 붙어서 좋아하겠지만, 그렇게 하면 고구마가 열매를 맺지 못 합니다. 이렇게 되면 고구마 넝쿨이 자꾸 뿌리가 퍼집니다. 고구마 넝쿨이 이리 퍼지면서 자꾸 뿌리쳐 나가면서 열매를 맺으려 하기 때문에 원 열매가 안 됩니다. 원 열매가 잘되려면 이 길가에 뿌리들을 다 빼내 주어야 됩니다. 빼내 주어도 열매를 또 맺으려하니까 잘라내고 뒤집어줘야 합니다. 조그만한 것들은 뿌리가 하늘로 올라가야 합니다. 또 감자줄기도 잘 자라 올라올 때 미리 순을 잘라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고구마를 잘라주고 뒤집는 것이 우리 신앙으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그것이 환난, 핍박, 시험, 학대, 고난입니다. 뿌리들을 잘라줘야 됩니다. 세상 뿌리가 자꾸 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하늘나라 뿌리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뿌리만 자꾸 커져나갑니다. 여기도 뿌리가 나가치고, 저기도 뿌리가 나가치고, 동창생 뿌리, 친구 뿌리, 고향사람 뿌리, 또 여러 세상 뿌리만 많이 뻗치고, 여기에 재미난 TV 뿌리, 연속방송 뿌리, 또 운동하는 뿌리, 등 세상의 뿌리만 자꾸 뻗치고 나가면 신앙의 열매가 맺히지 못합니다. 세상 뿌리가 자꾸 뻗쳐나가면 원뿌리인 고구마가 커지지 못합니다. 고구마가 작아지
거나 맺히지 못합니다. 

우리의 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뿌리는 하늘에 있고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나무의 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무뿌리는 땅에 있고, 가지가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열매도 위에 맺힙니다. 사람은 머리카락이 뿌리입니다. 뿌리는 위에 있고, 팔하고 다리가 가지입니다.
나무하고 반대입니다. 나무는 잎사귀가 떨어지면 어디로 갑니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뿌리가 있는 데로 내려가는데, 우리는 떨어지면 어디로 갑니까? 뿌리가 있는 곳인 하늘로 올라갑니다. 짐승들은 머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짐승들은 머리가 옆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옆으로 있으면 ‘사람을 믿고 삽니다.‘ 하는 것입니다. 또 소가 죽으면 어디로 들어갑니까? 사람의 배로 들어갑니다. 돼지나 소가 죽으면 사람 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뿌리가 하늘에 있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고, 나무와 모든 식물은 뿌리가 땅에 있기 때문에 땅으로 내려가고, 짐승은 옆으로 있다가, 사람 믿고 살다가 사람 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뿌리가 굵어져야 되고, 알이 맺혀 열매가 되어야 되는데, 세상 뿌리가 자꾸 자라나고, 없던 뿌리가 자꾸 생겨납니다. 안하던 것을 하게 됩니다. 이전에 안하던 것을 왜 이렇게 많이 하는 것입니까? 동창회를 간다, 친목을 간다, 등 낚싯밥이 많이 생깁니다. 여기
저기 많이 생겨서 그것을 하러 간다고 기도할 시간이 없고, 성경 볼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원뿌리에 열매가 맺히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원뿌리에 열매가 잘 맺히도록 세상의 뿌리를 잘라내고,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처음 열매인 새벽기도를 먼저 바치고, 성경을 먼저 읽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한 다음에 남은 시간을 가지고 다른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전도하고, 심방 할 사람 심방한 후에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첫 열매 받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첫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로 받쳐지고 난 후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나님 앞에 바쳐져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언제나 가지라는 것입니다.

3. 십일조의 종류

본문 12-13절에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고하기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
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제 삼년 곧 십일조 드리는 해에’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종류가 몇 가지입니까? 첫째 십일조는 무조건 십분의 일을 떼어서 그것을 레위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민수기 18장 21절에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일의 십일조

제일의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쳐 레위사람에 주라는 것입니다. 신약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떼어서 교회에다가 바치고, 교회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교역자 생활비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교역자 사례는 교회에서 정해주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바친 것으로 교역자 생활비, 전도
하는 사람들의 생활비로 지급합니다. 환난 때에, 교회 모이지 못할 때에는 십일조를 직접 교역자에게 드려도 괜찮습니다. 교회에 모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교역자가 환난 가운데에 피난 다니기 때문입니다. 또 교역자의 가족이나 순교자의 가족에게 직접 드릴 수 있지만,
그 외에는 교회에다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교역자 생활비, 전도하는 사람들의 생활비를 주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직접 받지 말고, 교회에다가 바쳐서 재직회에서 교역자에게 정해서 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가지고도 부족하면 교회에서 채워서 주는 것입니다. 또 십일조가 너무 많이 들어오면, 떼어서 또 다른 개척 교회도 보조하는 것입니다. 

‘십일조 가지고 동생 교회하는데 좀 도와주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자기 동생이 어디서 개척교회를 하는데, 십일조를 좀 떼어서 보내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성경에 보면, 십일조는 하나님의 창고에 드리라고 하셨지, 도와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교회에다가 바쳐야 합니다. 동생 도와주는 것은 십일조 이외에 다른 것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자기가 나가는 교회에 바쳐야 합니다. 다른 교회에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부산에서 어떤 할머니는 자기 손자가 신학교에 다니는데, 십일조를 손자의 신학교에다가 주었다고 합니다. 그 손자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일조를 잘라먹은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손자를 도와준 것이지 십일조를 바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고에 두어야 된다고 했으므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구제를 해도 안 되고, 또 십일조로 자기 낯을 내는데 써도 안 됩니다. 무조건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성경에 십일조를 안 바치는 것은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3장 9절에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안 바치는 것은 도적질이므로 하나님께 저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무조건 떼어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제이의 십일조

그리고 제이 십일조가 있는데, 십일조를 바치고 남은 데서 또 십일조를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이 십일조라고 합니다. 그것도 1년과 2년에 제 2 십일조를 드려서, 그 십일조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가족이나 종이나 다 모여서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믿는 일에 쓰는
것입니다.

신명기 14장 22-27절에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
이니라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
로 사되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는 가족이나 권속이나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서, 곧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먹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족 축제용으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는 비용에도 쓰고, 거기에 가서 여러 가지 사야할 것이 있을 때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소나 양이나 곡식을 사서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면서 먹습니다. 이것은 축제용으로 사용하는 십일조입니다. 이것은 십의 이조를 뗀 겁니다. 처음 십일조는 무조건 떼어서 하나님 창고에 바치고, 둘째 번에 남은 데서 또 십일조를 떼어가지고는 예루살렘에 가는 비용, 가서 우거하는 비용, 거기서 우
양과 좋아하는 것을 친족과 가족이 다 모여서 먹으며 즐거워하는 것으로 쓰는 것입니다. 

제삼의 십일조는 구제용으로 사용함

그리고 제 삼 년째에 십일조를 떼는데, 이 십일조는 삼년마다 한 번씩 떼는 것으로 구제하는 데 쓰는 것입니다.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를 위해서 구제하는데 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십일조는 그건 무조건 하나님 창고에 바치는 것입니다. 제이 십일조는 그 남은데서 또 십일조를 뗐습니다. 가령 일 년에 백 만원 벌었다 하면 십 만원을 십일조로 떼서는 무조건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나님 창고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90만원에서 9만원을
또 십일조를 떼서, 요즘으로는 사경회에 가는 비용과 먹는 비용, 가족이나 친족이 다 모여서 먹는 데에 쓰라는 것입니다. 또 교인들 같이 모여서 먹는 비용에 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제 3년째에 십일조를 뗍니다. 제 3년에는 제일 십일조를 안 떼고, 제 삼 십일조를 뗍니다.
다시 말하면, 그 해에는 십일조를 두 번 떼는 것입니다. 제일 십일조는 무조건 떼어서 창고에 바치는 것이고, 3년째에 십일조를 한 번 더 떼서는 구제용으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사회로 돌리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해마다 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 해와 둘째 해에 축제용으로 제 2의 십일조를 떼고, 삼년 째는 제 3의 십일조를 떼서 구제용으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객과 과부와 고아를 위해서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곧 일 년에 몇 억 원씩 버는 사람은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것을 절반 잘라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고, 사회로 돌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에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또 사회에 돌려서 불쌍한 사람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절반남지 않습니까? 절반 남아도 충분합니다. 가령 다 생활하고 일 년에 이억이 남았으면, 이억 다 자기가 가지지 말고, 일억만 가지고 일억으로 십일조를 떼고 남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쓰고, 또 남은 것은 사회에 돌리라는 것입니다. 일억만 있어도, 없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이억 다 가지고 가난한 사람의 원한을 사는 것 보다는, 절반인 일억만 가지더라도 원한사지 않고 다 같이 잘살면 그것은 장구한 것이 됩니다.
제 이 십일조는 가족끼리 모여서 먹는 십일조인데, 곧 크리스마스 날 교회가 다 같이 먹는 것도 여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제이 십일조 떼어서 크리스마스 날 다 가져와서 소한 마리 잡아서 다 같이 모여서 먹는 것입니다. 또 자기 가족도 먹고, 사경회에 가는 비용에도 쓰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지 않으면 민중신학이 생김

그리고 삼년마다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삼년마다 십일조를 떼어 가지고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일, 또 사회로 돌리는 일, 등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들, 고아, 과부들이 원한을 품고 싸우자고 할 날이 옵니다.
그것이 민중 신학입니다. 원한을 품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민중 신학은 가난한 사람들이 원한을 가지고 단결해서, 자본가를 뒤집어엎는 공산주의와 같습니다. 그리고 해방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있는 사람들이 3년마다 제삼년 십일조를 떼어서 나눠 주어야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이 맥을 못춥니다. 그래야 사회가 견고해지고, 자기가 가진 것도 견고해 집니다. 절반 남았어도 견고한 것이 낫지, 얼마 있다가 때려 부수면 다 없어질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3년마다 제삼 십일조를 드려서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구제하며 하나님을 섬기는데 써야 합니다. 

죽은 자를 위해서 성물을 쓰지 않아야 되기 때문에 추도예배는 성경적이 아님

본문 14-15절에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 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
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지 아니하였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성물이므로 애곡하는 날에는 먹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부정한 몸으로 그것을 떼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죽은 자를 위해서 하나님의 성물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으니 거룩한 처소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사 우리에게 주신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해서 성물을 쓰지 않았습니다. 십일조는 성물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것인데, 추도 예배를 하는 것에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 하는 것 옳지 않습니다. 성경에 죽은 자를 기념하지 말라하였는데, 추도예배를 하는 것은 죽은 자를 기념하는 것 아닙니까? 시편 106장 28-29절에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
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재앙이 임했다고 하였습니다. 또 에스겔 24장 17절에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을 기념하지 말라는 것은 성경 전체의 사상입니다. 누가복음 9장 59-60절에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와서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은 믿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생명의 길이므로 추도예배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것은 죽은 자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아들인 이삭이 추도예배한 적이 없고, 이삭이 죽은 다음에 야곱이 추도예배를 안했습니다. 또 야곱이 죽은 다음에 열 두 아들이 추도예배 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추도예배를 하라고 한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추도예배를 하는 것은 제사하는데서 나온 것입니다. 노아가 죽은 다음에 노아 아들이 추도예배를 했습니까? 추도예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추도예배는 제사하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제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사하는 방식만 다른 것입니다. 부모가 예수 믿고 세상 떠났으면, 천당을 갔는데 무엇이 슬퍼서 추도예배를 합니까? 또한 믿지 않고 세상을 떠났으면 지옥을 갔을텐데, 지옥간 것을 기념해서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죽은 사람은 다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추도예배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라고 했지, 죽은 사람을 위해서 성물을 쓰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추도예배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요새는 추도 예배하는 것이 점점 더 제사하는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사진 갖다 걸어놓고, 그 앞에다 밥상 차려놓고, 흰옷을 입고, 상가의 의복을 입고 절하면서 추도예배 한답니다. 또 떡을 해서 돌립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람은 제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8절에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제물을 먹는 사람은 제사에 참예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제사하는 것과 같은 줄 알면 됩니다. 사도
행전 15장 28-29절에 성령께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먹지 말라고 하시는데 먹으면 되겠습니까? 사도행전 15장 28-29절에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
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우상의 제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과 사도들과 요긴한 것을 말하는데,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집에서 제사하고 가져온 음식을 먹으면
죄입니다. 그러므로 먹지 말아야합니다.
기도하고 먹으면 된다고 하는데 양잿물을 기도하고 먹으면 안 죽습니까? 성경에 먹지 말라고 했으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기도하고 먹으면 됩니까? 디모데전서 4장에 기도함으로써 거룩해 진다는 것은, 그 당시에 금욕주의가 나왔습니다. 결혼하면 죄다, 고기 먹으면 죄다, 채소만 먹어야 된다는 등의 금욕주의가 나왔기 때문에 기도하고 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채소만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고기도 하나님께서 기도하면서 먹으라고 하신 것은 제사음식이 아닙니다. 고기를 기도하고 먹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도 정당히 가는 것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추도예배나 제사음식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로마 14장에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다는 것은 제사음식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먹지 말라고 했던, 레위기 11장에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 비늘 없는 고기, 등은 먹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새김질 하지 않는 짐승의 고기는 신약시대에는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된다는 뜻이고, 로마 14장에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이것을 우상의 제물에 갖다 붙이면 안됩니다. 성령께서 먹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다른 성경에서 먹으라고 하셨겠습니까? 우상의 제물 먹지 않아야 되고, 추도예배를 안해야 됩니다. 죽은 사람을 기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는 제사상 차려놓고 거기다가 십자가 올려놓고 절하면 괜찮다고 합니다. 그리고 추도예배 할 때 십자가 걸어놓고 하면 괜찮다고 하는데, 그 십자가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귀신이 붙어 돌아다닙니다. 예수님이 가실 데가 없으셔서 제사상에 올라가시겠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우상 섬기는 것이고, 신사참배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사상에 십자가를 걸어놓고 절하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고,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도예배 하지 말고, 또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믿으려면 바로 믿어야 합니다. 바로 믿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면 책망을 받습니다. 말씀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성경말씀가지고 나오셔서 ‘왜 추도예배했느냐, 왜 우상의 제물 먹었느냐’고 하시면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그런데 안 먹고 나왔으면 편안하지 않습니까? “왜 안 먹었느냐”고 하시면 “성경에 먹지 말래서 안 먹었습니다.”라고 하면 편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하는데, 성경대로 바로 믿음을 지켜나가야 됩니다. 애곡하는 날에 성물을 먹지 아니하고, 죽은 자를 위해 이 성물을 쓰지 아니하고 와서 하나님께 “말씀을 순종합니다”하고 복 달라고 기도하면 복 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 다 위반하고 와서 복 달라고 하면, 복을 안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하면서 하나님께 나아와서 “복을 주시옵소서.”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4. 신약시대에 하지 말아야 할 것 4가지

이제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몇 가지 찾아보고 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8절에서 신약시대에 4가지를 하지 말라고 예루살렘 공회에서 결의한 것이 있습니다. 성령과 사도들은 이 요긴한 것을 결의했다고 했습니다. 4가지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상의 제물 먹지 말아라.”라고 성령께서 말씀 하셨고, 둘째는 “목매어 죽인 것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고, 그리고 네 번째는 “음행을 멀리하라”는 것 등 4가지 입니다. 

그럼 ‘목메어 죽인 것과 개고기는 먹어도 괜찮은가’입니다. 요새 한국에서 개를 목메어 죽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메어 죽였다고 하면, 개나 아무 짐승이라도 먹으면 안 됩니다. 반면에 개라도 목매어 죽이지 않고, 소나 돼지처럼 망치로 때리거나 목을 찔러서 잡은 것은 먹어
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하여간 목매어 죽인 개는 먹으면 안됩니다. 개뿐 아니고 다른 것도 목매어 죽인 짐승의 고기는 먹으면 안됩니다. 어떻게 압니까? 모르고 안 먹으면 편안하겠지만, 보통은 개는 목 매어 죽인 줄 알면 됩니다. 목 안 매어 죽였다고 확실하면 그것은 먹어도 괜찮고, 모르면 안 먹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이북에서는 어렸을 때는, 예수 믿는 사람이 개고기 안 먹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나오는 사람이 혹시 개고기 먹으면, ‘개 예수’라고 했습니다. 진짜 예수가 아니라 개 예수란 것입니다. 개살구도, 그것은 가짜라는 말이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 그랬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목메어 죽이지 않은 것을 알면 그것은 먹어도 괜찮습니다. 

피는 선지피로 그릇에다가 받은 것은 먹으면 안 됩니다. 혹시 꼭 약이 된다고 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보통은 먹으면 안 됩니다. 순대국 같은 것도 안 먹어야 됩니다.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면, “너 왜 피 안 먹고, 순대국 안 먹었느냐.”라고 하시면, “사도행전 15장에 피먹지 마
라고 했기 때문에 안 먹었습니다”라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먹고 가서 왜 먹었느냐고 하실 때는 뭐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아무 목사가 먹으래서 먹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안 먹어야 됩니다. 

또 우상의 제물 먹지 말라고, 성경에 분명히 성령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 있는 전체사상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해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
해서, 다른 사람 망하게 만들게 되니까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마라’는 것이 전체사상이지, 먹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8장 4절에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 하였는데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서 먹었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라하는 지식을 가지고, 자기 지식에 맞춰서 우상의 제물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망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양심에 담력이 생겨서 우상의 제물을 먹었기 때문에, 네 지식 까닭에 다른 사람이 망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마귀에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20절에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지내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있는데 그 귀신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귀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귀신에게 제사한 것을 먹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방 사람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지식, 그 지식이 제대로 된 지식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8장 1-2절에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만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아는 줄로 생각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는 그 지식은 아직도 알 것을 채 몰랐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몰랐습니까? 귀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그 지식은 맞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귀신에게 하는 것인 줄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은 알지만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귀신에게 하는 것은 왜 몰랐냐는 것입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식은 맞는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서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으면 다른 사람이 망합니다. 그러면 다른데 가서 혼자 먹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곳에 가서 혼자 먹으면 다른 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에게 제사한 것 먹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지식도 옳은 지식입니다. 또 귀신이 있는 것도 맞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개가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개가 무는 줄도 알아야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알면 안 됩니다. ‘벌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벌이 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알았지, 쏘는 것은 몰랐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맞습니다. 하나님께 비하면 그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파리새끼 하나만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독을 줄 수 있습니다. 또 외딴 곳에 가서 혼자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다른 사람 망하지 않으면 그것은 합격입니다. 그것은 바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또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몰랐습니까? 귀신에게 제사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8절에 그 성령께서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모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은 안 먹어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8장 전체의 교훈이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지식 하나만 가지고 먹으면 다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귀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것은 좋은 지식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
때문에 또 다른 지식이 있는 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추도예배 안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면 성경대로 심판하실텐데, 안 먹고 안했어야 하나님 앞에 합격이 되는 것이지, 먹었으면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제사상은 안 차리고 교인들 주려고 음식을 장만해 놓고 와서 먹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괜찮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죽은 사람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면 그것이 추도예배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죽은 사람 기념하라고 했습니까? 죽은 사람 기념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 기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기념하지 않는 것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는 죽은 사람을 기념하지 말라는 성경에 위반이 되고, 또 “죽은 자는 죽은 자가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쫓아라”고 하는 말씀에 위반이 되기 때문에 추도예배는 하지 않아야합니다. 일단 세상을 떠났으면 그걸로 끝난 것입니다. 자기 할 일 다 끝나고 갔는데, 딸 시집간 날 모여서 한 번씩 울곤 합니까? 또 다른 나라 이민 갔는데, 이민 간 날 모여서 통곡합니까? 우리 아들과 딸이 이민 가서 잘 살면 되는 것이지, 기념할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잘됐는데 왜 기념합니까?

성락 교회의 김기동 목사는 죽은 후에는 지옥 간 영혼도 있고, 천당 간 영혼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영혼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일백 이십 세까지 살게 되어있는데, 일백 이십 세 전에 죽은 것은 천당에도 못가고 지옥에도 못가고, 귀신이 되어서 일백
이십 세가 되도록 공중에 떠돌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떠돌던 영혼이 들어가면 병이 난다고 합니다. 그것을 내쫓아야 난다고 합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왜 잘못됐습니까? 창세기 6장에 사람의 연수가 일백 이십 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그 당시에 죄악이 관
용했기 때문에 일백 이십 년 있다가 하나님의 심판이 와서 노아 때에 홍수로 다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홍수가 와서 심판한다는 것이지, 사람이 일백 이십 년 동안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몇 세까지 살았습니까? 육백 세 더 살아서 구백 오십 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면 노아가 일백 이십 세를 살았어야 했는데 왜 구백 오십 세까지 살았습니까? 또 아브라함 몇 세까지 살았습니까. 일백 칠십 몇 세지요? 또 이삭이 몇 세입니까. 백 팔 십 세입니다. 이렇게 노아 후에도 오래 산 사람 많습니다. 일백 이십 세 산 것이 아닙니다. 일백 칠십 세, 이백세까지 산 사람도 많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일백 이십 세를 정해 놓았으면, 그때 다 죽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또 시편이 안 맞습니다. 시편에 사람이 얼마나 산다고 했습니까? ‘사람의 년수가 칠십 세이고, 건강하면 팔십 세’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일백 이십 세 하고는 맞지 않습니까. 또 사람이 죽으면 예수 믿는 사람은 즉시 천당으로 가고, 안 믿는 사람은 즉시 지옥가는 것이지,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귀신이라는 것은 마귀의 종인데, 사람과 마귀는 다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고, 마귀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서 귀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의 영혼이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니다가 사람 속으로 들어오면 병이 생기고, 쫓아내면 병이 낫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부 마귀가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나는 것은 전부 귀신 때문이 아닙니다. 병이 나는 것은 여러 가지 종류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소경된 자도 있습니다(요한복음 9:3). 또 사람이 잘못해서 병이 나는 경우도 있고, 또 하나님의 징계로 병나는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귀신이 들려서 병이 난 것이 아니고, 전부 다 쫓아내면 낫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미혹을 받으면 안 되겠습니다. 

5. 규례와 율법을 지켜 행하라

본문 16-19절에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 하였고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듣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십니다. 잠언 28장 9절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 안 듣고 기도하는 것은 가증하다고 했습니다. 율법을 듣고, 율법을 지키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잘 들어주십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들이 부모의 말을 잘 들으면서 와서 무엇을 요구하면 잘 들어주지만, 말은 안 듣고 부모 속만 썩이다 와서 돈 달라고 하면 “야 이놈의 새끼야 보기 싫다. 말도 안 듣고 무엇을 달라고 하느냐”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님의 말을 잘 듣고, 잘 공경하면서, 제대로 사람구실 하면서 달라고 하면 왜 안주겠습니까. 필요해서 쓰겠다는데 왜 안 주겠습니까? 그런데 말을 안 듣고 못되게 하면서 달라면 주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도를 행하고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서 말씀을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말씀 잘 순종하면서 하나님 섬기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잘 들어주시고, 또 무슨 백성으로 삼아주십니까? 보배로운 백성으로 삼아주십니다. 그리고 칭찬과 명예와 영광을 얻게 해줍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잘 행하는 사람은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해주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주십니다. 어디를 가나 그 민족을 뛰어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성민이 되게 해주십니다. 이렇게 잘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려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계명을 지킴으로 복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큰 복을 받습니다. 또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안
지키면 징계를 받습니다.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징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 보면 고린도교회에 음행 죄가 들어왔는데, 그 사람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음행 죄를 지면서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그래도 죄지으면 마지막에 쫄딱 망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었으니까 영혼은 구원받습니다. 영혼은 구원 받지만 쫄딱 망합니다. 십계명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어떻게 해주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도를 다 들어주십니다. 하나님과 교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십니다. 그리고 보배로운 백성으로 삼아주십니다. 셋째는 칭찬과 명예와 영광을 얻게 해주시고, 넷째는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주시고, 다섯째는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잘 지키는 사람은 이렇게 많은 복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