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교회의 모본(模本)
데살로니가전서 1:1-10
데살로니가전서 1:1-10
1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4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6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8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들의 교회에 편지를 쓴다.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1:2 우리가 너희 모두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한다.
1:3 이는 너희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1:4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가 택하심을 받은 것을 안다.
1:5 이는 우리의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되었는지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다.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으니,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다.
1:8 주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들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1:9 그들이 우리에 대해 스스로 전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들어갔을 때 어떠한 대접을 받았는지, 또 너희가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10 하늘로부터 임할 그분의 아들을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시며 장차 임할 진노에서 우리를 건지실 예수님이시다.
1:2 우리가 너희 모두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한다.
1:3 이는 너희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1:4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가 택하심을 받은 것을 안다.
1:5 이는 우리의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되었는지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다.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으니,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다.
1:8 주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들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1:9 그들이 우리에 대해 스스로 전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들어갔을 때 어떠한 대접을 받았는지, 또 너희가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10 하늘로부터 임할 그분의 아들을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시며 장차 임할 진노에서 우리를 건지실 예수님이시다.
1. 문안 축복
본문 1절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실루아노’는 ‘실라’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늘 같이 다니면서 전도했으며, 디모데는 바울의 아들처럼, 바울을 아버지와 같이 여기며 잘 받들어나갔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는데, 구속의 은혜의 결과로 항상 은혜 가운데 거하고, 언제나 영적 평강 가운데 거하여야 됩니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두려움이나 염려함 없이 항상 평강을 누리는 사람, 환난이나 핍박이 올 때에도 항상 평강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평강, 화평, 은혜 가운데 항상 거하여야 되겠습니다.
2. 믿음, 소망, 사랑의 교회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
본문 2-3절에,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했는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상당히 좋은 교회입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 소망의 인내가 있는 좋은 교회입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만 산 믿음입니다. 역사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 믿음의 운동력, 믿음의 열매가 맺히는 역사가 있는 믿음,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었던 교회였습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또 사도바울을 받드느라 수고를 많이 한 교회입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언제나 따라다닙니다. 사랑하면 수고가 따라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하면 힘든 줄 모르고 합니다. 사랑에는 수고하고, 힘든 것도 모르고, 더러운 것도 모르고 잘 수고를 합니다. 유아를 기르는 어머니가 특별히 수고 많이 합니다. 자나깨나 뭘 먹여주고, 대소변 갈아주며, 업고 다니지만,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수고 많이 하면서도 힘든 줄 모릅니다. 그 수고를 단 마음으로 하고, 그 수고에 대해서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서로 돌봐주고 또 붙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이렇게 수고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자기 하나 잘 믿으면 된다’는 이기주의적인 신앙은 옳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줄 알고, 수고할 줄 알고, 돌봐줄 줄 알고, 고난을 달게 받으며 나가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
소망에는 인내가 따라옵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욥의 인내를 말했습니다. 욥의 인내를 생각할 때에, 욥이 얼마나 환난 많이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죄가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욥은 의로운 욥이라 했는데, 그래도 환난 많이 받았습니다.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졌고, 십남매 하루아침에 다 죽고, 몸에 병이 나도 욥은 낙심하지 아니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잘 참았습니다. 욥의 인내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결국 욥에게 나중에 모든 걸 배나 더 주셨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많은 상급이 있었을 것입니다. 용납하고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참지 못하고 싸우고 다투면 복이 없습니다.
하여간 참아야 합니다. 참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외부에서 들어오는 핍박 가운데서 참는 게 하나 있고, 그 다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참는 것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계속해서 믿는 일 하면서 참는 사람,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환난을 참는 사람입니다. 고등고시 시험 치르는 사람들은 잘 참으면서 계속 공부합니다. 그건 외부에서 들어오는 핍박이 없어도 자기 목표를 세워놓고 계속해서 그걸 달성하려고 잘 참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핍박을 참을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일, 선한 일, 믿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소망으로 잘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본문 10절 말씀에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 부활에 대한 소망, 천국에 대한 소망,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소망,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모든 고난들을 달게 받고 잘 참으며 나아가는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했는데,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신앙에 대해서 산 믿음, 산 사랑, 산 소망으로 살라고 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너희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믿음의 열매가 잘 맺히고, 사랑의 열매가 잘 맺히고, 소망의 열매가 잘 맺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도하는 사람도 상당히 기뻐하게 됩니다.
택한 백성의 교회
본문 4절에,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택한 백성이 있고 불택자가 있는데, ‘너희는 택한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택한 백성은 무엇으로 압니까? 요한일서 5장 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택한 백성은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는 것, 예수님께서 자기 구주라는 것이 믿어지는 게 택함 받은 증거입니다. 이것이 죽을 때까지 안 믿어지면 그건 불택자입니다. 믿어지는 사람은 택한 백성이고, 죽을 때까지 안 믿어지는 사람은 불택자이며 지옥 갈 사람입니다.
믿어지는 사람은 택한 백성인데, 믿어지는 사람은 자기가 믿기로 결심해서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예정한 사람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어지는 사람은 택한 백성이라는 게 확실하지 않습니까?
또한 “부활한다”는 부활에 대한 확신, “천당 간다”는 천당에 대한 확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심판대 앞에 가서 어떻게 될까?”하고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앞서 간 성도는 하늘나라 갈 준비를 잘 해서 갔는데, ‘남아있는 우리는 준비 잘 했을까? 책망 받을 일이 없을까? 양심의 가책되는 것이 없을까?’하고 생각해 봅시다. 또 내세에 대한 확신, 부활에 대한 확신, 예수님 재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또 옳은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옳은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불택자를 택한 백성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종류가 다릅니다. 불택자는 염소이고 택한 백성은 양입니다. 택한 백성은 곡식이고 불택자는 가라지로서 그렇게 종류가 다릅니다. 불택자는 아무리해도 택한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염소를 아무리 잘 먹여도 양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가라지를 아무리 잘 길러도 곡식이 될 수 없습니다. 종류가 다르니까 그렇습니다.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 지키는 것을 보니까 바울이 ‘아, 저 사람들은 택한 백성이다’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3. 전도의 모본이 되는 교회
말로 전할 것
본문 5절에,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전도할 때에 첫째는 말로 전도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7-18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난다’고 했는데,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듣는 것이 중요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 복음을 들려주십시오. 가서 들려주면 안 믿을 것 같지만, 그래도 택한 백성은 믿습니다. 택한 백성은 믿게 되어있습니다. 들려주면 그 말씀이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고, 또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들은 바 복음이 그 사람 속에서 폭탄과 같이 터져서 정복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에게로 끌려옵니다. 복음 전해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안 믿을 것 같아도 말씀을 전해주면 그 말씀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해서 마지막에는 말씀에게 사로잡힙니다. 말씀을 믿고 따라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말씀으로 전합니다. 이제 전도할 때에 말씀을 전해주란 것입니다. 그저 “예수 믿으시오. 믿으시오” 하기보다는 말씀을 전해줘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그 속에서 역사합니다. 아이들 말씀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할 때도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만 전해도 그 말씀이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다,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그 한마디가 사람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거저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세요”라고만 하지 말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하나 전하든지 해야겠습니다. 택한 백성이면 그 속에서 역사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능력으로 전할 것
그 다음엔 말씀을 능력으로 전하여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줬다고 했습니다. 능력으로 말씀내용을 전하는 것입니다. 최 권능 목사가 ‘예수 천당’ 두 마디 해가지고 교회를 일흔 다섯 개를 세웠다고 하는데 큰 권능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천당’ 그것도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간다’는 말입니다. ‘예수천당’ 하고 외치니까 그 말씀을 들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여 마침내 하나님에게로 나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우리도 권능으로 전도하는 일,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으로 전할 것
‘능력으로 전했다’고 했는데, 능력의 사람, 영권이 있는 사람입니다. 능력이 있고 영권이 있고,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성령께서 하라는 대로 나가서 전했다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광야로 갈 때에,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순종하여 광야로 가니까 그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전도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확신으로 전할 것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됩니다. 확신이 없이 전하면 듣는 사람이 큰 감동을 못 받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선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어서라” 해야지,“일어서겠나? 안서겠나?” 해가지고는 안됩니다.
평양 모란봉 기슭에 앉은뱅이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 믿는 사람이 그걸 일으켜 세우려고 작정을 했답니다. 그런데 사람 많은데서 안 일어서면 안 되겠으니까 하룻밤 지키고 있다가, 그 사람이 이제 동냥 다하고 모란봉 그 기슭으로 돌아가는 것을 따라가서 좀 서라고 하고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그 앉은뱅이가 일어섰겠습니까? 확신이 없이 전하는데 어떻게 일어서겠습니까? 실패입니다. 안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전제로 하고, 다른 사람 없는데서 해 보겠다는 것은 확신이 아닙니다. 확신을 가지고 하십시오. 확신을 가지고 해야 듣는 사람이 그 말씀을 받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확신을 가지고 가르쳐야 아이들 속에 능력이 됩니다. 그거 몇 가지입니까?
전도할 때에 첫째는 말, 둘째는 능력, 셋째는 성령, 넷째는 확신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전하라는 것입니다.
인격으로 전할 것
5절 하반절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는 말은 인격으로 전했다는 것입니다. 말로 전하고, 능력으로 전하고, 성령으로 전하고, 확신으로 전하고, 다섯째는 인격인데 인격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이 5가지로 전도합시다. 5가지로 전도하면 잘 되는데 첫째는 뭡니까? 말로 전하는 것, 말씀, 복음입니다. 둘째는 능력, 능력전도이고, 셋째는 성령으로 전도하는 일, 넷째는 확신으로 하는 일, 다섯째는 인격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했는데, 바울은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너희가 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성경말씀대로만 나아가는 사람이고 예수님을 닮아간 사람입니다. 성경, 하나님 말씀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예수님을 닮아갔던 바울입니다. 이러한 바울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가며 자기가 만들어지면서 전해야 됩니다. 욕심 부리고 사기횡령하면서 전도하면 어떻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과 같이 모든 면에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되어가면서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도 바울이 모범이 되면서 전도할 때에 많은 사람이 인도 받고 교회가 됐습니다.
4. 모본이 되는 교역자의 조건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증거하는 교역자가 되어야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본문 5절 말씀에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첫째, 말로 전해야합니다. 둘째, 능력으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셋째, 성령으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힘을 써야합니다. 능력 있는 교역자, 성령으로 전하는 교역자가 되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하나님의 명령에 죽도록 충성해야합니다. 그렇게 할 때 능력 있는 교역자가 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졸업 후에는 사도바울에게 있었던 것처럼 아라비아 신학이 있습니다. 또한 모세에게 있었던 미디안 신학이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40년간 모든 학술을 배웠지만 배운 학술로 이스라엘 구원운동을 하려고 하다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깊은 기도를 하면서, 신고 있던 신을 다 벗어 버리며, 자기를 벗어 버리는 깊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셨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절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디안 신학이 절반 더 있어야 합니다. 즉, 깊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영권 있는 교역자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항상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인도를 쫓아서, 언제나 성령을 힘입어,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말로 전하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능력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능력 있는 교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잘 안되는 것은 능력 없는 증거입니다. 능력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교역자가 되려면 하나님께 가서 엎드려야 합니다. 계속 부르짖고 애를 쓰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일심정력을 다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 능력이 조금씩 생겨납니다. 또한 말씀을 실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겸손한 가운데서 실천을 해야 합니다. 실천을 하면 그만큼 능력이 생깁니다. 그 다음에 희생을 해야 합니다. 희생을 한만큼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수단과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증거 해야 합니다. 진리를 바로 깨달아서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겠습니다.
인격이 바로 된 교역자가 되어야함
5절 하반 절 말씀에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너희가 아는바와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된 사람이 되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전하는 사람이 바로 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실패인 것입니다. 또한 인격이 바로 되어야합니다. 인간성이 바로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노인들을 부모와 같이 여기고 젊은 사람들을 형제와 같이 여기는 바른 인간성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다. 무던한 사람이다. 호인이다. 그 사람을 만나면 좋다. 만나고 싶다. 또 말하고 싶다. 의논이라도 하면 좋겠다. 좋은 인간성이다.”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성이 바로 되지 않아 교회를 인도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혼자 왕 노릇 하거나, 자기 명령을 순종하도록 강요하는 사람은 교회를 섬길 수 없습니다. 모든 모난 것이 사라지고 교만한 것이 낮아지도록 늘 자기의 결점을 찾는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인간성을 바로 세워 다른사람에게 본이 될 만한 인격자가 되어야합니다. 어떤 분은 가르치기는 잘 하는데, 인간성이 좋지 않아서 목회에 실패합니다. 또 물질에 대해 욕심 부리고 물질을 초월하지 못해서 교인을 다 잃어버린 교회도 있습니다. 물질에 대해서도 초월하고, 이성문제에 대해서 초월하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 원만한 사람,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인들을 억누르고 왕 노릇하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리에 서야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습니다.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교역자들이 게을러서 하나님의 일에 시간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이 안 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잘 만들어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너희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라는 5절 말씀처럼 능력 있고 말씀을 바로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성경을 바로 전하는 교역자가 되어야함
교역자는 성경을 전하는 것을 제일 잘 해야 합니다. 말씀을 잘 전하려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합니다. 또한 강도할 본문을 여러 번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증거 할 본문의 확실한 핵심, 중심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성도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 저것 말을 조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전해야합니다. ‘어떻게 해야 잘 전할 수 있을까?’ 늘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잘 전하려고 노력하는 교역자가 되어야합니다. 말씀을 잘 전하는 것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제일 중요하고 가장 요긴한 진리를 본문에서 찾아 말씀들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가 곧 능력 있는 교역자입니다.
성령으로 전하는 교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지혜로운 말이 나올까봐 벌벌 떨었다고 했습니다. 오직 성령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고,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만 있게 하려고 지혜로운 말을 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말씀을 전할 때 한 가지만 가르치지 말고 여러 가지를 다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의 뜻을 잘 알 수 있도록 성경의 여러 곳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로써 성도가 영적 양식으로써 성경을 알고 도덕적인 교훈, 교리적인 교훈도 알아 믿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역자는 여러면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에게 여러 말씀을 통해 신령한 양식을 늘 공급해야합니다. 예배시간에 교인들이 은혜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인들이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아 심령이 살아나야
교회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예배시간에 요리문답을 가르치면 은혜 받는 면에 많은 손상이 있습니다. 요리문답에 신령한 뜻이 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으로 바로 세울 수 있는 좋은 면이 있지만 은혜 받아서 심령이 살아나는 면에서는 약합니다. 요리문답은 조직신학과 같은 것인데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강의한지가 29년쯤 된 것 같은데, 거의 통달해서 알건 알지만 참 어렵습니다. 교회가 부흥되는데 있어서는 조직신학으로는 부족합니다. 성경을 증거 할 때 영생, 삼위일체, 중생, 영혼이 자라나는 것 등이 나오면 그 때 가르치면 됩니다. 조직신학을 표준으로 가르치면 은혜 받는 데 막대한 지장이 있습니다. 교회가 안 됩니다. 부흥이 안 됩니다. 목사의 임무는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것인데 교회가 일어서려면 교인들에게 신령한 양식을 공급해서 시간마다 새 힘을 얻게 해야 합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이 새 힘을 얻게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기가 그 말씀으로 힘을 얻어 새 힘으로 일어나 교인들에게 때를 따라서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라고 했는데 때를 따라서 양식을 공급하는 교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역자가 전하는 그 말씀을 듣고 살아나야 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궁극적인 목적은 살려내는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야 하고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아야 하고 소경이 눈을 떠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를 많이 하고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어떠한 조직신학이나 학과만 가르친다는 것은 영적으로 생명을 살려 나가는데 지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살려나가는 일에 중점을 두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또 저녁예배나 오후예배 같은 때는 성경을 모조리 가르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영을 살려나가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모조리 한다고 하여 지식을 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다른 사람을 살려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서 영적 생명양식을 먹고 자기가 먼저 살아나는 것 중요하다.
가르치기에 능한 교역자가 되어야함
교역자는 가르치는데 많은 연단이 되어야합니다. 한 본문을 가지고 열 번, 스무 번, 가르치기만 백번을 가르치다보면 말씀에 권위가 있습니다. 말씀 속에 있는 뜻을 많이 알게 되어 권위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배우고 배운 말씀을 새김질하여 그 말씀의 핵심을 강의하게 되면 학생들이 강의를 들을 때 생명이 살아납니다.
신학교 졸업생들은 가르치기를 잘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말씀에 “감독은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했습니다. 가르치기를 못하면 감독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한 시간 들어보거나 처음 예배 나온 사람들도 그 시간에 말씀을 확실히 받아 믿음의 결심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역자는 능력으로 가르치는 자, 성령으로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인격적으로 만들어져야합니다.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교인들이 생각할 때 ‘말은 잘 한다’고 생각하지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교역자는 다른 사람으로 더불어 신앙의 교제가 잘되어야 합니다. 교인들과 통해야 되고 융합이 잘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가고 자기는 자기대로 가면 실패하게 됩니다. 교인과 교역자가 다 한마음이 되고 한 뜻이 되어 서로 통해야 합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유치원에 가서 본적은 없지만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같은 말과 행동을 해야 아이들과 통한다고 합니다.
또 대구에 한 노인목사가 있었는데 대구 지방으로 사경회 하러 가면 늘 오셨습니다. 그 분께 돼지 잘 사육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돼지와 통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돼지와 통해야 젖을 먹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통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물어보니, 돼지가 아프면 자기도 아프고, 돼지가 배가 고프면 자기도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제게 돼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물어보는데 “모른다”고 했더니, 그 분 말씀에 돼지는 동풍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동풍을 제일 싫어한다고 합니다. 서로 통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역자가 바로 되어야만 하나님 말씀과 통하여 복음을 바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교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
다고 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고 이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다고 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고 이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5. 성령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도를 받은 교회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음
본문 6-7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어떻게 받았다고 했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많은 환난을 받았지만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으로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이 주는 말씀으로 이것 참 좋은 것입니다. 환난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받아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기뻐서 찬송하고 늘 즐거움으로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와 감동을 받아서 항상 기뻐하고, 말씀을 즐거워하고, 항상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즐거워하는 생활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으려면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회개 안하고 나가는 사람은 성령의 감동이 없습니다. 성령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말씀 받아서 성령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 안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없고,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 안 해서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가 노력한다는 것보단, ‘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생활하는 것도 즐거움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입니다.
마음으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생활하는 것도 즐거움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입니다.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데살로니가 교회
본문 8절에,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고 했는데, 마게도냐는 윗 지방이고 아가야는 아랫 지방입니다. 윗지방과 아랫 지방에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고 했는데, 각처에 퍼졌다는 것을 보니 얼마나 믿음이 좋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에 역사가 있고, 운동력이 있고, 사랑의 수고가 있으며,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은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6.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교회
믿음, 행함, 열매가 있음
본문 9-10절에,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
‘사시는 하나님,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했을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행했습니다.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믿음에 행함이 있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잘 받아서 열매 맺은 교회, 그것이 모본이 된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본이 되는 신자가 중요합니다.
‘사시는 하나님,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했을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행했습니다.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믿음에 행함이 있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잘 받아서 열매 맺은 교회, 그것이 모본이 된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본이 되는 신자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본이 되는 교회가 되려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첫째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믿고, 행하고, 또한 사랑하고, 수고하고, 그 다음엔 소망으로 바라보면서 참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믿고 행하여야 합니다. “믿노라” 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무슨 믿음이라고 했습니까? 그건 죽은 믿음입니다. 주께 행하십시오. 또한 사랑하고 수고하십시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로만 하고 수고가 없고 희생이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희생이 따라와야 됩니다.
그 다음엔 소망의 인내입니다.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참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으로 받는다’는 것, 하늘나라 소망입니다. 자기가 희생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다섯 달란트 남긴 자에게 하신 것과 같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주노니 들어와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칭찬을 받을 것을 소망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라와야 됩니다.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와야 합니다. 소망에는 인내가 따라와야 합니다. 참고 견디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좋은 날을 보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김
본문 9절에,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전도의 성공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이 전해주는 말씀을 듣고 즉시로 우상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안 믿던 사람이 우상 버리는 것은 힘듭니다.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완전히 변하여 새 사람이 된 증거입니다. 버릴 수 없는 우상을 어떻게 버렸냐하는 것, 이게 중요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우상을 버리지 못하면 예수 믿는 것도 헛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면 하나님 섬기는 것이 못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탐심,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남편을 더 사랑하면 남편이 우상이고,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녀가 우상이고,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기가 우상이고,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직장을 더 사랑하면 직장이 우상입니다. 자기 목숨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목숨이 우상입니다. 또한 세상이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난 세상을 더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험을 쳐봐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말씀 어기고 세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더사랑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자기 사랑하는 것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상이 다 있습니다. 그런 우상 따라가지 말고 이기려면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우상을 버릴 때에 생명 내 놓아도 안 죽습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우상 따라가면 나중에 죽습니다. 싹 다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생명은 주님이시다”라고 믿고 우상을 버리고 돌아오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림
본문 10절에,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들을 다시 살리신 건 부활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고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잘 기다리는 교회입니다. 잘 기다립니다. 데살로니가전서 매 장마다 재림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다린다’, ‘도적같이 오실 것을 기다린다’, ‘갑자기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오실 것을 기다린다’고 나옵니다. 그렇게 준비하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사도신경 외울 때에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그 다음엔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오시리라’ 할 땐 재림을 고대하는 신앙으로 외워야 합니다. ‘살아나사 하늘에 올라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를 할 때에는 하나님 우편을 생각하면서 외워야 합니다. 날마다 재림을 기다리는 이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아야 합니다. ‘그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 장래 노하심에서 구원해주시는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7-38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날마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믿는 사람은 공중으로 다 들려 올라갑니다. 그 때에는 무슨 옷을 입고 간다고 했습니까? 세마포입니다. 무슨 밍크 옷 한 벌 입거나, 무슨 가죽잠바들, 다른 의복들 많이 있는데 그런 거 입고 가는 게 아닙니다. 세마포입니다. “세마포 흰 옷 입고 나는 가노라”고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 옷으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결혼식 할 때 요새는 드레스 입고하는데, 드레스에 구멍 뚫어지고, 한 쪽은 째지고, 팔 하나 떨어진 그런 드레스 입고 나타나면 결혼식 할 자격 없습니다. 그런 드레스 입고 와서 저보고 주례해 달라고 하면 “야, 가서 다른 거 입고 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 나갈 때는 세마포가 제대로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세마포 다 장만해 놨습니까? 세마포 준비 다 해 놨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날마다 고대하는 신앙, 그래서 마지막 준비를 다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속히 가리라” 하실 때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며 영접할 수 있는 그런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