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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4일 수요일

창세기 43:1-34 베냐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베냐민
창세기 43:1-34

1그 땅의 기근이 심하고 2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비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라 3유다가 아비에게 말하여 가로되 그 사람이 엄히 우리에게 경계하여 가로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4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5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않으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6이스라엘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오히려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고하여 나를 해롭게 하였느냐 7그들이 가로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힐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그저 살았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리고 그 말을 조조이 그에게 대답한 것이라 그가 너희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8유다가 아비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기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우리 어린 것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10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11그들이 아비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찐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을 삼을찌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비자와 파단행이니라 12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도로 넣어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차착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3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5그 사람들이 그 예물을 취하고 갑절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의 앞에 서니라 16요셉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그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오정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17그 사람이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18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일 우리 자루에 넣여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를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19그들이 요셉의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고하여 20가로되 내 주여 우리가 전일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21객점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 본즉 각인의 돈이 본수대로 자루 아구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22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23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는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24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25그들이 여기서 먹겠다 함을 들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오정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26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그 집으로 들어가서 그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니 27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가로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지금까지 생존하셨느냐 28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비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29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가로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냐 그가 또 가로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30요셉이 아우를 인하여 마음이 타는 듯하므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31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32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하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하고 배식하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하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33그들이 요셉의 앞에 앉되 그 장유의 차서대로 앉히운 바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34요셉이 자기 식물로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오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1.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양식을 살 수 있음

베냐민을 보낼 수 없다고 하는 야곱

본문 1-5절에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비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라 유다가 아비에게 말하여 가로되 그 사람이 엄히 우리에게 경계하여 가로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않으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사온 양식은 다 먹었는데 흉년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아들들에게 다시 가서 양식을 조금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유다는 애굽의 총리가 “네 아우를 데려오지 않으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고 했기 때문에 베냐민을 같이 데리고 가야 양식을 사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 6-7절에 “이스라엘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오히려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고하여 나를 해롭게 하였느냐 그들이 가로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힐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그저 살았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리고 그 말을 조조이 그에게 대답한 것이라 그가 너희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왜 동생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자신을 괴롭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창세기 42장 36 절에 “그 아비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42장 38절에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고 하며 베냐민을 보낼수 없다고 했습니다.

라헬이 낳은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 중에 요셉도 죽고 베냐민만 남았는데 베냐민이 가는 도중에 재난을 만나게 되면 “너희가 나의 흰머리로 슬피 음부에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음부란 무덤을 가리킵니다. 이제 이 아들마저 죽으면 내가 슬피 울다가 흰 머리로 무덤에 내려갈 수밖에 없으므로 베냐민을 내놓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베냐민을 안 데리고 가면 양식을 사러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베냐민을 데려가지 않으면, 애굽의 총리가 얼굴을 보지 못한 다고 했으니까, 베냐민을 안 데리고 가면 곡식을 사올 수 없고 또 시므온을 가둬 놨는데 시므온도 찾아 올 수 없습니다. 또 양식이 없어서다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

그래서 얼마 동안 안 가고 있었습니다. 안 가고 있으니까 양식은 점점 다 떨어져서 굶게 되었고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본문 8-10절에 “유다가 아비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것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 하리이다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냐민을 같이 보내면 양식을 가서 사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 보내면 총리를 만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냐민을
보내야 양식을 사다가 야곱의 모든 권속들이 다 먹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냐민을 보내서 곡식을 사와야 죽지 않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애굽에 양식 사러 갔다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야곱의 아들들이 정탐자로 몰려 3일 동안 전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진실한 자로 인정받으려면 시므온만 남고 열 사람은 곡식을 가지고 가서 권속들의 주림을 면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올 때 동생을 데려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남아 있는 시므온도 내보내 주고 그들과 같이 무역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열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곡식 자루 하나를 풀어 보니 그 자루에 돈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42장 28절에 “그가 그 형제에게 고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이 일을 행하셨는고 하고”라고 하였는데, 돈이 도로 자루에 있었던 것 입니다. 돈을 주고 곡식을 사오는데, 자기들이 준 값이 다시 자루 속에 있으니 큰 문제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셨다는 말입
니다. 돈을 자루에 넣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사람을 시켜서 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못합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릴 수도 없고 땅에 떨어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요셉이 돈을 자루에 넣으라고 명령했고 또 아랫사람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것을 형제들이 알지 못하고 오다가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줄로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탐으로 몰아서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므온만 감옥에 갇히고 나머지는 집에 가게 되었는데 쌀자루에 돈이 그냥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하라고 지시하신 대로 요셉이 한 것입니다. 

회개 시키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정탐으로 몰으셨습니까? 정탐이 아닌데 정탐으로 몰면 꼼짝 못합니다. 이렇게 정탐으로 몰면 별 수가 없고 아니라는 증거가 없습니다. 정탐이 아니라고 해도 그 말을 누가 곧이 듣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회개시키려고 하신 것입니다. 회개시키려고 정탐으로 몰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형제 열 명을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쌀자루에 돈을 넣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회개시켜서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좋은 이스라엘의 조상을 만들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떠했습니까? 자기네끼리 싸우고 다투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45장 24절에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지금 까지의 생활은 형제간에 다투는 생활이고 아버지를 속이는 생활이었습니다. 요셉을 팔고 의복을 벗겨서 염소 피를 묻혀서 아버지에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은 줄 알고 얼마나 울었습니까? 아버지를 속인 것입니다. 이대로는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회개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회개하려면 곤고한 가운데 빠져야 회개합니다. 그래서 정탐이라고 몰아 3일 동안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정탐이라고 몰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자루에 왜 돈을 넣었습니까? 전에 돈을 받고 요셉을 팔은 것을 회개시키려고 자루에 돈을 도로 넣은 것입니다. 깜짝 놀라 벌벌 떨며 혼이 나서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하였는고”하며 동생을 판 것을 회개하고 바로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왜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까? 시므온은 왜 결박해서 감옥에 가두었습니까? 형제 귀중한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갇힌 다음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요셉 팔아먹은 것을 회개시키려고 시므온을 잡아다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왜 시므온을 가두
었습니까? 여러 형제가 있지만 요셉 팔아먹을 때 시므온이 앞장서서 팔아먹은 것이 분명합니다. 주동자를 잡아야 요셉 판 것을 회개할 것아니겠습니까. 또 창세기 34장에 세겜 성에서 모든 남자를 죽였을 때도 누가 앞장서서 죽였었습니까? 시므온이 레위와 함께 앞장 서 죽인 것입니다. 시므온이 아주 성격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무엇이나 좋지 않은 것에 앞장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잡아 가두어서 시므온도 회개시키고 형제들도 동생에 대해 잘못한 것을 회개시키느라고 이렇게 했습니다. 곡식자루에 돈 넣은 것도 동생 팔은 것 회개시키려고 돈을 도로 넣은 것입니다. 곡식자루마다 돈을 다 넣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팔아서 다 같이 나누었던 것 같
습니다. 같이 나누었기 때문에 곡식자루마다 돈을 넣은 것입니다. 한 사람만 넣었으면 나는 돈이 없다고 안심했을 텐데 다 넣었으니 다 혼이 나서 벌벌 떨었습니다. 창세기 42장 35절에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인의 돈 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 아비가 돈 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각기 다 쏟아보니 돈 뭉치가 자루 마다 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돈 뭉치 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과 그 아버지가 다 두려워했습니다. 돈을 주고 곡식을 샀는데 돈이 다 있으니 앞으로 도둑으로 몰린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했습니다. 이제 돈 때문에 혼이 나고 떨 날이 온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베냐민을 찾으시는 하나님

창세기 42장 36-37절에 “그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나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르우벤이 아비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나의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르우벤이 나의 두 아들을 죽여서라도 베냐민을 데리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말 잘 했습니까? 르우벤은 아주 말할 줄 모르는 자입니다. 이것은 아버지 입장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자 둘을 어떻게 죽이겠습니까? 이유가 당치 않는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죽여 놓으면 마음이 편하겠냐는 것입니다. 그것도 둘씩이나 말입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너무 불합리한 논리입니다. 이해될 만한 것을 말해야 하는데 되지 않을 일을 추진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입니다. 무조건 자기 아들을 죽인다는 것은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실제적으로 될 만한 것, 사실적인 것, 가능한 것, 다른 사람이 들어도 인정받을 만한 진실한 것을 말해야합니다. 그래도 그 동생을 데리고 갔다가 다시 데리고 오겠다는 결심은 좋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틀렸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베냐민을 아들 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창세기42장 38절에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고 하면서 베냐민을 보낼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혹시 재난을 만나면 나는 슬피 울며 음부로 내려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못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냐민을 안 보내면 좋겠지만 문제가 계속 생깁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양식이 없어 조금 있으면 죽게 되었습니다. 야곱과 아들들과 어린 것들 다 죽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베냐민을 안 내놓으면 다 죽습니다. 하나님이 베냐민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입장에서
는 베냐민 내놓을 수 있습니까? 내놓을 수 없습니다.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는데 어떻게 내놓겠습니까. 이것을 보면 아버지에게 베냐민이 우상이 된 것 같습니다.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아들은 다 안 내놓아도 베냐민은 내놓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다른 아들은 다 내 놓아도 베냐민은 못 내 놓습니다”라며 하나님과 맞서는 것입니다. 누가 이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기십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안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안 내놓으면 어떤 화가 옵니까? 안 내놓으면 다 죽습니다. 

우리 속에 내 놓지 않은 것, 베냐민

베냐민은 야곱에게 우상적인 존재입니다.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자이므로 내놓을 수 없는 귀한 아들이지만 하나님께서 내놓으라고 하실 때 베냐민을 내놓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살 길이 열립니다.
베냐민을 내놓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여 내놓기 어렵고 힘든 것들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우리 속의 베냐민을 내어 놓아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 길이 생기고 우리의 앞길이 열려집니다.

우리에게는 베냐민이 하나씩 다 있습니다. 우리 속에 내 놓을 수 없는 것, 하나님만큼 사랑하고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어떤 것이 베냐민이었습니까? 100세에 낳은 이삭이 베냐민이었습니다. 이삭을 내어 놓으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 이삭을 살려주셨고,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베냐민을 내어놓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껍데기일 뿐입니다. 욕심에 끌려서 흑암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냐민을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들이 베냐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여러 아들이 있다면 막내가 베냐민이 될 수 있고 맏아들이 베냐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편이 베냐민이 될 수가 있고 아내가 베냐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 직장, 기업체가 베냐민이 되어서 그것을 못내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이, 또 어떤 사람은 자동차가 베냐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집 못 내 놓는다, 굶으면 굶었지 자동차는 안 판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놓으라는데 안 팔면 쫄쫄 굶게 됩니다. 굶어도 안 판다며 끝까지 안 팔면 죽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1-22절에서 젊은 부자가 예수님 찾아 왔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부자 청년에게 베냐민은 돈이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부모가 베냐민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와 작별하고 와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베냐민을 내어놓아야 믿음이 바로 설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어 앞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베냐민을 내놓기 전에는 하나님이 주신 길이 열리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베냐민을 다 내어놓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찬송에 498장에 “내가 염려하고 계획하던 것 믿고 기도하며 모두 주께 맡기면”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염려하고 계획하던 것 또한 베냐민입니다. 안 내 놓겠다는 것이 베냐민입니다. 다 내놓아야 됩니다.
다 내놓고 자기는 무효 공이 되어야 합니다. 명예와 영광심 다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 4장 30절에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니엘 4장 31절에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고 하며 7년 동안 비참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한 것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겠다는 것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 영광, 자기 나타내려는 것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 것 다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내놓을 수 없는 것을 내놓는 것이 베냐민 내놓는 것입니다.
베냐민 내놓으라고 할 때 ‘맏아들 내 놓겠습니다’ 하고 맏아들 내놓으면 됩니까? 안 됩니다. 그러면 ‘다른 아들 모두 다 내놓겠습니다’ ‘양떼 다 내 놓겠습니다’라고 해도 안 됩니다. 베냐민 내놓으라 했지 누가 양떼 내놓으라 했습니까? 베냐민을 꼭 내 놓으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베냐민을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다른 것 내놓으면 안 됩니다. 다른 것은 안 받으십니다. 베냐민만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2. 유다가 베냐민을 책임진다고 함

이스라엘의 가정은 애굽에서 사온 양식을 다 먹게 되었습니다. 양식이 떨어진지 얼마나 됐습니까? 본문 10절에 “두 번 갔다 왔으리라”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왔던 양식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나귀에 곡식을 실었다고 했는데 약 열 필정도의 양식을 나귀에 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귀 한 마리에 한 가마니씩 실었다고 친다면 약 스무 가마 정도 사왔을 것인데 그 가정의 식구가 몇 명입니까? 창세기 46장 26절에 “야곱과 함께 애굽에 이른 자는 야곱의 자부 외에 육십 육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나온 자며”라고 했는데 자부까지 합친다면 약 7~80여명 될 것입니다. 그런데 스무 가마로 얼마나 버텼겠습니까? 이처럼 양식이 떨어졌는데도 다시 사러 가지 못하는 것은 베냐민 때문입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왜 아우가 있다고 말해서 자신에게 괴로움을 끼치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본문 7절에서 “그들이 가로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힐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그저 살았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말을 조조이 그에게 대답한 것이라 그가 너희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유다는 아버지에게 베냐민이 있다고 먼저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세히 힐문해서 대답한 것이라고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요셉이 물어본 것이 사실이었고 묻는 말에 정확히 답변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베냐민에 대해 민감해 있는 아버지에게 애굽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 했습니다. 상대방이 노하였을 때 사실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습니다. 노했어도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알려주어 오해를 풀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유다는 야곱이 베냐민을 함께 보내면 아버지와 우리 어린 것들이 다 살고 죽지 않지만, 만약 보내지 않는다면 다 굶어 죽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9-10절에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면 벌써 두번 갔다 왔으리이다”고 하면서 자신이 베냐민을 책임지겠다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말을 참 잘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감동을 했고 결국 베냐민을 보내게 됐었습니다. 

책임을 자기가 지려고 할 때 문제가 해결됨

유다에게 배워야겠는데 어떤 것입니까?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담보한다는 것”은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기가 ‘댓가를 치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댓가를 치른다’는 것은 베냐민을 데려오지 못할 때 자기가 베냐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모든 욕을 받을 각오를 한 것을 뜻입니다.

모든 문제의 책임을 자신이 지고 해결 할 때 해결이 됩니다. 책임을 남에게 지워 해결하려고 하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유다는 베냐민을 애굽 땅에서 데려오지 못할 때 그 책임을 자신이 다 지겠고 또한 영영히 죄인이 되어 욕을 먹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문제의 책임은 누가 져야합니까? 책임은 자기가 져야합니다. 자신이 담당하고 문제를 풀어 나가려고 힘을 써야합니다. 모든 책임은 자신에 진다고 진실 되게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의 주체와 핵심을 바로 파악해야 됨

유다는 지금 닥친 문제의 주체와 핵심을 바로 알았습니다. 곧 상대방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문제를 바로 파악하여 풀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문제에 주체를 알고 그 다음에 핵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책임을 자기가 져야합니다. 문제의 핵심을 모르고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문제에 대한 주체를 바로 알고 그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한 후에 해결해야합니다. 

본문에서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문제의 주체는 아버지 아닙니까? 또한 문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베냐민입니다. 우리는 유다와 같이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고 베냐민을 자신이 책임을 질 것을 말함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서 “아버지는 베냐민만
사랑하느냐”, “베냐민이 보기 싫다”, “과거에도 작은 아들만 밤낮 사랑하다가 당하고도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하는 말과 행동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에 대해 화풀이를 해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사랑하는 베냐민을 어떻게 하든지 사랑하고 아껴서 집의 주인인 아버지의 위치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주체를 바로 알아야합니다. 척 보고 알아야합니다. 이스라엘의 집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아버지 이스라엘입니다. 가령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아야합니다. 또한 어느 당이 나라를 대표하는지 알아서 그 안에서 문제를 풀어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체제를 바로 알고 그 체제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답입니다. 세상의 직장에서도 그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됩니다. 언제든지 우리들이 속한 체제를 인정하며 일을 바로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아버지가 막내아들만 사랑하는 것은 원리 원칙으로는 바로 된 것이 아니지만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서 어떻게든 해결 하려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담보하겠습니다”라며 자신이 책임을 지고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행동이고 얼마나 자신을 낮춘
희생입니까? 문제의 핵심을 바로 알아 문제를 해결하되 상대방을 문제의 주체로 인정하면서 자기가 희생하겠다는 것이 바로 된 것이며 귀한 마음입니다.


3. 이스라엘이 베냐민을 내어 놓음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게 된 야곱

본문 11-13절에 “그들의 아비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찐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을 삼을찌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비자와 파단행이니라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도로 넣어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차착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말할 때에 마음이 감동이 된 아버지는 베냐민을 내놓았습니다. 맏아들이 말했을 때는 완강하게 거부하여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유다가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이 말하고 다시 유다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말할 때 감동된 것입니다. 이렇게 감동되어 허락받은 일은 잘 한 것입니다. 처음에 안 되면 두 번째 하고, 두 번째 안 되면 세 번째하고, 그래도 안 되면 또 해서 허락이 될 때까지 계속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진지하고 성실한 말로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기면서 말해야합니다. 아버지와 베냐민을 귀히 여기면서 말을 했습니다. 자기 동생을 위해 자신은 영영히 죄인이 되겠다며 낮아진 유다의 책임감에 완강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일을 추진하는 방법입니다. 할 수 없는 일을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무엇이든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낙심하지 말고 한번 말해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면서 추진한다면 마침내는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 신학교 인가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꾸 가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한번 제출해서 안 되면 또 제출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히 여기면서 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겠습니다. 이렇게 인내하면서 어떻게든지 해달라고 하면 해주지 않겠습니까? 자주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마침내는 될 것입니다. 결국 시간이 문제입니다. 안된다고 낙심하거나 반항적으로 하지 말고 마침내 될 것으로 믿고 기다리며 끝까지 추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겠습니다.

어떤 일이나 자신이 책임지고 상대방을 존중히 여기고 그 체제를 인정하면서 또한 끝까지 추진해나갈 때 마침내는 될 날이 옵니다. 유한 것이 이긴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강하게 나갔지만 마침내 유하게 대응했던 아들들에게 허락하는 날이 온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베냐민을 보내는 것이라 안보내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면 다 굶어 죽을 상황인데 굶어 죽는 것보다 보내는 것이 훨씬 나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을 안 하면죽게 됩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큰 해를 당하게 되니까 결국 순종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선물을 가지고 감

이스라엘이 아들들에게 무엇을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까? 아름다운 선물을 가지고 가라고 했는데 곧 유향, 꿀, 향품, 몰약, 비자, 파단행입니다. 유향은 향품의 일종이고 꿀과 향품은 가나안에서 많이 나는 것이며 몰약은 유향의 일종으로 향품에 속합니다. 비자는 호도나 밤 같은 열매이고 파단행은 살구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또한 돈은 배나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어도 좋은 특산품이 있었고 돈도 어느 정도 갖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곡식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들이 많다하여도 곡식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곡식은 유향이나 꿀, 향품 등과 같이 달거나 특별한 맛은 없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생명을 보존시켜주는 육신의 양식인 곡식이 중요한 것처럼 영적 양식은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입니다. 달고 향기롭고 특별한 것으로만 살 수 없듯이 평범하지만 진리가 살아있는 영의 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이 평범한 진리의 양식을 우리는 매일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양식 값의 배를 가지고 감

또한 이스라엘이 아들들에게 전에 차착(差錯)이 있었을지 모르니 처음 가지고 갔던 돈과 이번에 가서 살 양식 값까지 합해서 양식 값의 배를 가져가라고 일렀습니다. 이것은 정당치 못한 돈을 자기 소유로 삼지 않으려는 바른 마음입니다. 또한 안전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려는 최선의 방책이었습니다. 전에 이스라엘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자기 형 에서에게 먼저 선물을 보내어 효과를 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애굽으로 자기 아들들을 보낼 때 이러한 예물을 준비한 것도 애굽 총리의 마음을 풀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또한 돈을 넉넉히 준비한 것도 양식을 사오는 데 지장이 없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내어 놓은 신앙

본문 14절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이 마지막에는 믿음을 썼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베냐민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잘 되게 해주시도록 맡기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아들을 데려가신다고 하면 잃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완전히 내놓아야합니다. 이것이 믿음이며 곧 신앙인 것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내놓을 때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께서 앞길을 열리도록 역사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가는 것입니다.

1) 잃게 되면 잃으리라는 신앙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는 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데리고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내시기를 원하노라” 그 다음에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고 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베냐민 내놓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내놓으니까 베냐민을 하나님께서 도로 돌려보내 주셨습니다.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하며 내어 놓으니 하나님을 모시게 됐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베냐민도 돌려 보내주셨습니다. 베냐민을 돌려보낼 때 많은 곡식, 시므온, 애굽에 있는 많은 선물을 같이 보내 주셨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옷 한 벌씩 주었는데 베냐민은 5배나 많이 주었습니다.
베냐민을 내놓으니까 선물을 5배나 많이 가져오고 그 다음에 요셉이살았다는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시므온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수레에 양식을 실어 보냈습니다. 베냐민을 내놓으니까 살 길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잃을 각오하고 내놓았는데 결국은 잃은 것이 아니고 다시 찾는 것입니다. 내 놓아라 할 때 내놓으면 다시 찾고 안 내놓으면 잃어버립니다. 

2) 하나님만 믿고 사는 신앙
“다 없어져도 하나님만 믿고 삽니다” 하고 내놓아야 됩니다. 베냐민이 없어져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자식 없어진다고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하박국 3장 17절에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즐거워한다는 말입니다. 베냐민이 하나님만 하겠습니까?

이 신앙에 도달해야 합니다. 베냐민에 애착심을 가지고 베냐민이 있어야만 살 줄로 알고 그것이 없으면 못 살 줄로 아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꼭 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만 믿고 살겠는데 그걸 안 내놓으면 하나님만 믿
고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네가 믿고 의지하는 것 그것을 꼭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제일 사랑하는 것을 내 놓으라고 하십니다. 없으면 못살 것 같은 것을 꼭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제일 중요하고. 제일 사랑하고, 제일 귀히 여겨서, 그것 없으면 못 살 줄 아는 것을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베냐민입니다.

다 내놓으면 무엇을 가지고 삽니까? 하나님만 믿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사는 것입니다. 베냐민이 하나님만 하겠습니까? 몇 만 배, 억 만 배 낫습니다. 세상 것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살겠다는 결심을 가지면 베냐민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내놓으면못 삽니다’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직장 내놓으면 못 삽니다’라는 말이 틀린 것입니다. 그 사람은 직장이 살려 주는 줄 아는 사람입니다. ‘돈 내 놓으면 못 삽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돈이 자신을 살려 주는 줄 아는 사람입니다. 또 ‘이 사람 내 놓으면 못 삽니다’라는 사람은 그 사람으로 살 줄 아는 것입니다. 내 놓으십시오. 다 없어져도 하나님 한 분이면 삽니다. IMF가 계속되어서 다 없어져도 하나님 한 분이면 살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신앙
우리는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내놓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잘 되게 해주실 것을 믿고 은혜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과거에 아들들을 내어놓았다가 잃어버렸습니다. 요셉을 잃어버렸고 시므온도 억류되었는데 다시 베냐민도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또 그 위험한 곳에 아들들을 보내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맡아서 인도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혹여 잃게 되더라도 ‘괜찮다. 좋다’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해야합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것만 순종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베냐민을 보내야 하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 와도 ‘잃으면 잃으리라’라는 마음으로 순종해야겠습니다.

에스더의 경우 하나님의 섭리가 왕 앞에 가야 할 때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각오로 왕 앞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 안전한 것만 하려 하지 말고 육체에 위험한 일이 생기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라면 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베냐민을
안 죽여야 할 것 같으면 안 죽게 해 주실 것이고. 죽여야 할 것 같으면 죽게 하실 것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은 안 죽게 하시고 좋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러나 특별히 축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데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 축복은 보통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이미 예비해 놓은 사람만 받게 되어 있습니다. 좌석권이 있는 사람만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곧 순교자의 좌석권을 받은 사람만 순교 당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목을 내놓고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 해도 베어갈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걱정하십니다. 하늘나라에 순교자의 자리도 없고 입석도 내어 줄 수 없으니 큰 문제인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다 잘되게 해주십니다. 혹시 육신이 잘못된다고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것은 특별 축복에 예비된 자들에게만 주는 것이므로 안심하고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하나님이 명하신 곳으로 그 섭리를 따라 가야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베냐민을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 내놓지 않으면 십년이 지나가도 내놓을 수 없습니다. 다 굶어 죽어도 못 내놓습니다. 그러나 내놓으면 하나님께서 앞길을 열어주셔서 형통케 하십니다.

본문 15절에 “그 사람들이 그 예물을 취하고 갑절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의 앞에 서니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마침내 예물과 갑절의 돈을 가지고 애굽에 내려가 요셉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4. 형제들을 요셉의 집에 인도하매 두려워함

본문 16-18절에 “요셉이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그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오정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그 사람이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그 사람들이 요셉
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일 우리 자루에 넣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잡아 노예를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회를 베풀어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자기 집으로 인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전에 자루에 있었던 돈 때문에 자기들을 끌고 가서 종으로 삼고 나귀까지 빼앗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추측을 했습니다. 크게 의심한 것입니다. 지나친 추측과 의심은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일을 망칩니다. 자기 자신을 더러운 곳에 빠뜨리게 하고 심한 고통 가운데 빠뜨리게 합니다. 이것은 믿음을 안 쓴 증거입니다. 성도가 두려워하거나 지나친 추측을 하여 의심하는 것은 믿음을 쓰지 않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썼다면 어떠한 형편에서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형제들에게 있었다면 안심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요셉은 고생한 형제들을 잘 대접하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짐승을 잡아 연회를 준비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도리어 자기들을 죽이려는 줄로 생각하여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형제들은 돈 때문에 자신들이 위험에 처한 줄 알고 요셉의 청지기에게 말을 합니다. 

본문 19-22절에 “그들이 요셉의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앞에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주여 우리가 전일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객점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인의 돈이 본수대로 자루 아구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 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돈 때문에 ‘종이 되지 않을까?’, ‘갖고 있는 나귀를 다 빼앗길 까?’ 하며 두려워하였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실 것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본문 23-24절에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
게 하며 그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고 하였습니다. 청지기가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들에게 좋은 말로 위안을 해주었습니다. 청지기는 요셉을 여러 해 동안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본받은 것 같습니다. 또한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좋은 성도 밑에 있는 청지기들은 성도의 신앙을 본받습니다. 룻기를 보면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의 신앙을 본받았습니다. 룻이 이방 여자였지만 어머니 나오미의 신앙을 본받아서 믿음의 길로 나갔습니다. 요셉의 청지기는 보통 지혜로운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의 믿음을 본받아 하나님을 알게 되어 요셉의 형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재물을 그들에게 주신 것이라며 위로해주었습니다. 또한 시므온을 옥에서 끌어내어 형제들에게 인도해서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여 발 씻을 물과 나귀에게 먹일 먹이를 주었습니다. 시므온을 만난 그들은 대단히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5. 열 한 형제가 요셉에게 엎드려 절하고 예물을 드림
본문 25-26절에 “그들이 여기서 먹겠다 함을 들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오정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그 집으로 들어가서 그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형제들이 가나안 땅에서 가져온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요셉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준비했던 예물을 드리고 열 한 형제가 땅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베냐민을 내놓은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배웠습니다. 베냐민을 내놓을만하지 않습니까? 내놓으니까 더 많이 가져왔습니다. 베냐민 내놓고 하나님 한 분으로 살려니까 앞뒤가 환하게 열렸습니다. 베냐민 왜 내놓으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을 내놓아야 믿음이 바로 되기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이스라엘을 건설할 수 없습니다. 다 내놓고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살려고 하니 이스라엘 건설할 자격이 된 것입니다. 다 회개했단 말입니다. 돈에 대해서 회개하고, 형제 죽이려고 한 것 회개하고, 전에 요셉을 애굽에 판 것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베냐민을 내 놓으니까 살 길이 생겼습니다. 살 길은 베냐민을 내놓는 것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늘 기억하고 회개하면서 우리 속에 있는 베냐민을 내어 놓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겠습니다. 명령을 순종하면 살길이 생깁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는 없으니까 순종하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라는 각오로 하나님 한분만 의지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6. 요셉이 부친에 대하여 문안함
본문 27-28절에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가로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지금까지 생존하셨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비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 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에 대해 물었을 때 형제들이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해있다고 말하며 경배한 것은 아버지까지 다 포함하여 요셉에게 경배한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요셉의 꿈이 들어맞은 것입니다. 창세기 37장 9절에서 “열 한 별과 해와 달이 절했다”고 했는데 요셉이 꾸었던 꿈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꼭 알아야겠습니다. 요셉이 과거에 꾼 꿈이었지만 그것은 곧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그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는 말씀입니다.

7. 요셉이 형들을 대접함

본문 29-30절에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가로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냐 그가 또 가로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요셉이 아우를 인하여 마음이 타는 듯하므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
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고 하였습니다. 베냐민을 보고 정을 인하여 타는 마음을 억제하기 위해 울 곳을 찾아 들어가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지금 요셉 스스로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게 되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일이 틀어지게 됩니다. 요셉이 해야 할 일은 형들을 회개시켜 바로 세우는 것이므로 정을 억제하며 하나님의 의를 바로 세워나가도록 바르게 행동한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인정에 끌리지 말고 다 억제하고 초월하여 하나님의 의만 세워나가도록 해야 할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배워야겠습니다. 

본문 32절에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하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하고 배식하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하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자리를 배정할 때도 신경을 썼습니다. 요셉자리를 따로 하고 형제들의 자리를 따로 하고 애굽 사람들을 따로 하였습니다. 지금 요셉의 권세는 바로에게서 위임 받았기 때문에 요셉의 명령이면 애굽 사람들과 상을 따로 하지 않고 같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이 상하지않도록 배려하여 죄가 되지 않는 한 그들이 모든 풍습을 존중하면서 일을 처리했습니다. 또한 요셉이 자리를 따로 한 것은 총리로써의 위엄을 나타내며 그 형제들이 요셉임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요셉임을 형제들이 눈치 챈다면 그들이 회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33절에 “그들이 요셉의 앞에 앉되 그 장유의 차서대로 앉히운 바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앞에 형제들을 앉게 할 때 장유 차서대로 앉게 하되 열 한 번 째 자리는 비워놓고 막내 베냐민까지 앉게 했습니다. 자리를 비워둔 것은 요셉이
빠진 것을 생각나게 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34절에 “요셉이 자기 식물로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오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베냐민을 오배나 준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차려놨을 것인데 배도 아닌 오배는 먹기 힘든
양입니다. 그런데 왜 요셉이 이렇게 많이 베냐민에게 주었습니까?

첫째, 형제들이 베냐민을 시기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과거 아버지가 요셉을 더 사랑한다고 항상 시기해왔던 형들 때문에 결국 애굽으로 팔려 온 요셉이었습니다. 그런 형들의 마음에 아직도 시기심이 남아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과 못되는 것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주신 것에 그저 감사하고 자기 책임과 사명을 다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믿음인 것입니다. 남에게 식물을 더 많이 주는 것이나 옷을 더 많이 주는
것에 시기하거나 간섭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죄가 들어오려 할 때 즉시 빼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에게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요한이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지를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1장 22절에 “내가 올 때까지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남의 일을 상관하지 말고 네 할 일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0장 10-15절에 포도원에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이 나중 온 일꾼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하여 불평했다고 했습니다. 주인은 한 데나리온을 똑같이 약속했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자기에게 주는 것에 대해 족한 줄 알고 감사하며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하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애굽 총리가 베냐민에게만 식물을 다섯 배 준 것에 대해 간섭하지 말고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총리의 집에 초청되어 환대받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껴야합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신앙만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모든 일이 잘되어져 나갑니다. 이것을 잘 행할 때 큰 믿음이고 크게 되는 것입니다. 혹여나 다른 사람은 주면서 나만 안준다고 섭섭하게 생각지 말아야겠습니다.

전에 저도 굉장히 섭섭했던 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신의주에 계신 이기선 목사님께 갔을 때 함께 동행 했던 진 권사님과 그 남편에게 차비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주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조사인데 권사님 부부만 주고 저는 주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참 무안하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기선 목사님이 감옥에 계실 때 그 부부가 자기 재산을 다 팔아 목사님을 사식을 넣어 드리며 옥바라지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의복이며 음식이며 일체 모든 것을 다 지원해
주었던 분들이었기 때문에 차비 정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목사님께서 감옥에 계실 때 한 번도 찾아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잠시 섭섭하거나 남에 대해 간섭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신학생들이든지 집사들이든지 이러한 마음이 들어올 수 있지만 내게 주신 것에 감사하면 시험 들지 않고 바로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