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밖까지 그리스도를 좇는 생활
히브리서 13:10-16
히브리서 13:10-16
10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11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12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13: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으니,
13:11 그 짐승의 피는 죄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성소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 몸은 진 밖에서 불태워지기 때문이다.
13:12 그리하여 예수께서도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13:13 그러므로 우리도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으로 그분께 나아가자.
13:14 여기에 영원한 성읍이 없고, 우리는 다만 장차 올 것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13:15 그러므로 그분을 통하여 항상 하나님께 찬양의 제물을 드리자. 이것은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이다.
13:16 선행과 나누어 주기를 소홀히 하지 마라. 이러한 제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13:11 그 짐승의 피는 죄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성소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 몸은 진 밖에서 불태워지기 때문이다.
13:12 그리하여 예수께서도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13:13 그러므로 우리도 그분의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으로 그분께 나아가자.
13:14 여기에 영원한 성읍이 없고, 우리는 다만 장차 올 것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13:15 그러므로 그분을 통하여 항상 하나님께 찬양의 제물을 드리자. 이것은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이다.
13:16 선행과 나누어 주기를 소홀히 하지 마라. 이러한 제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1.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본문 10-11절에,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고 했습니다.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들이 그 속죄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구약시대에 일년 일차씩 대속죄일에 속죄 제사를 드릴 때, 속죄 제물의 짐승의 피를 대제사장이 들고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육체, 짐승의 고기는 영문 밖으로 나가서 불살랐다고 했습니다(레 16:27). 영문 밖은 재를 버리는 곳입니다. 다른 예물은 제사장이 먹을 수 있지만 이 속죄 제물은 먹지 못하고, 피는 성소에, 고기는 영문 밖에서 불살라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렇게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인데, 실체되신 그리스도께서 제물로 오셔서 자신의 피를 신령한 성소에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의 육체는 영문(예루살렘 성) 밖에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고난을 받아 죽으셨습니다.
본문 13절에,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능욕을 지고 가야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능욕을 지고 가야합니다. 즉, 십자가를 지고 가야합니다. 예수님의 받은 능욕에 동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자신도 예수님을 위해서 같이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자신도 고난 받는 게 마땅하다 여기며 그 능욕에 동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스데반이 고난을 받으며 죽을 때에 ‘자신도 예수님과 같이 되는구나’ 생각함으로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생활, 예수님을 위해 능욕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 능욕을 지고 따라가야 합니다. 영문 밖까지 능욕을 지고 따라가야겠습니다.
영문 밖은 어디입니까? 영문 밖은 성문 밖이라는 뜻인데, 그곳은 무엇이든 버리는 곳입니다.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도 예수님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 세상적인 것은 버리고 고난을 각오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35절에,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했습니다. 나면서 소경된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소경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바리새교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 그 소경을 영문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소경이 쫓겨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서 물으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쫓겨난 다음에 찾아가시는 예수님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쫓아내고 핍박합니다. 그저 되는대로 믿으면 핍박하지 않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말씀대로만 따라가려고 하면 세상이 미워하고,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바울을 못 쓰겠다고 십자가에 못 박고, 바울도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서로 못 박으며 사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못쓰겠다고 버리게 되어있습니다. 영문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요한1서 2장 15-17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했습니다.
영문 밖으로 나가라는 것은 세상에 빠지지 말라는 것인데, 몸은 세상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에서부터 나가서 예수님에게 가 있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늘나라, 신령한 세계에 가 있어야 합니다. 영문 밖으로 나가있는 사람은 몸은 세상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 밖으로 나가서 신령한 세계에 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난 것과 같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난 것이 영문 밖이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은 영문 안쪽입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모세도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서 부귀영화와 모든 재물과 보화로 살았는데, 그렇게 사는 것은 영문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것은 영문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빠지지 말고, 마음을 세상에 두지 말고 영문 밖으로 나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받으신 능욕을 우리도 받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못 박히심과 같이 우리도 못 박힐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따라가려면 버림받을 각오를 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날마다 영문 밖으로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합니다. 마음은 매일 그리스도만 따라가야 하고, 매일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영구한 도성이 아닙니다. 장차 망할 장망성입니다. 장차 올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그곳이 우리가 영원히 살 나라입니다. 잠시 잠깐 있다가 갈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장차올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 나라에 마음을 두고 그 나라를 위하여 준비를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를 드리라
자족하고 감사하며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는 생활
본문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찬미’는 항상 기뻐하고 항상 찬송하는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면 얼마나 기쁩니까? 찬송이 저절로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근심이 들어오면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오늘 하루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 알라고 했습니다.
내일 염려는 내일하라고 했습니다. 내일 염려는 마귀의 시험입니다. 염려를 주께 맡기고 항상 기뻐하면서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근심으로 살고, 싸우면서 살고, 항상 불만에 살고, 늘 모자란다고 하며 삽니다. 그런 생활이 지옥생활입니다. 지옥생활인데 잘 살면 뭐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많든 적든 자족을 배우며, 감사하고 찬송하고, 서로 웃으면서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찬송의 열매,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선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말을 하고, 선한 행실로 서로 나누어주기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남에게 주는 생활이 좋습니다. 물질, 사랑, 선을 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나누어줘야 하는데, 사랑함으로 나누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물질 면이나 다른 면에서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나 마음, 기도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남을 도와주면서 사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도움을 받으려고만 말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말고, 남에게 도움을 주려하고 사랑을 주려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남을 돕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기를 하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